평생공부 가이드(모티머 J.애들러 지음)’란 책을 주문, 배송받고 포장을 뜯지도 않은 채 지내고 있는데 일본인 철학자 지바 마사야(千葉雅也: 1978 - )가 쓴 '공부의 발견'이란 책이 나왔다. '공부의 철학' 후속작이다. ‘공부의 철학을 다소 어렵게 느꼈던 독자들과, 다 읽었지만 어떻게 활용할까 고민하던 독자들에게 답이 될 책이라고 한다.

 

여러 목차가 의미롭게 보이지만 공부의 기술 1 : 자기 나름의 메타 게임을 만들다, 공부의 기술 2 : 어학을 공부하자, 글쓰기의 의미, 불안의 시대, 종이책의 새로운 발견, 새로운 우주를 만드는 일, 제작과 예술의 본질 등이 특별히 관심을 끈다. 전체 네 개의 장() 가운데 글쓰기는 한 장()을 차지할 뿐이다.

 

시중에 나와 있는 글쓰기 책들과 차원이 다르다. 공부를, 그것도 철학자가 이야기하는 가운데 글쓰기를 부분으로 다룬 책이기에 귀하다. 지바 마사야가 언젠가 글쓰기 전문 책을 쓸 날이 올 수도 있으리라. 물론 그러면 당연히 망설이지 않고 살 것이다. 나도 글쓰기 책을 몇 권 읽었다. 대체로 기법이나 요령을 가르치거나 마음 가짐을 강조하는 책들이다.

 

아직 강원국, 유시민의 책은 읽지 않았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너무 유명해(많이 팔려)서 굳이 나까지 그들의 책을 사줄 필요는 없다는 생각도 작용했고, ‘많은 사람들이 읽은 책은 전문성이 떨어진다는’(전문성이 떨어지기에 많은 사람들이 읽는다는) 편견일지 모르는 생각도 작용했다.

 

다시 말하지만 공부에 대해 언급한 책에서 주제와 관련지어 글쓰기를 언급한 책만이 읽어야 할 중요 책이다. 공부에 대한 책에서 말한 것은 아니지만 최진석 교수가 요즘 하는 말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다. 이 분의 주지(主旨)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공부에서 중요한 것은 답(을 하는 것)이 아니라 물음(을 던지는 것)이라는 말이다.

 

일리가 있지만 이 분은 글쓰기를 염두에 두지 않은 것 같다. 하찮을망정 글을 쓰다 보면 다른 사람의 생각을 정리하려는 의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한 자기 생각을 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자연히 물음을 던지게 된다.

 

글쓰기 책을 쓴 저자들에게 들려주어야 할 것이기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기법이나 요령이 아니라 세상에 새로운 내용을 더하는 것이다. 물론 글쓰기 요령도 필요하다. 누구나 글을 쓰는 시대이기에 간결하고 쉽고 명쾌하지 않은 글은 선택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새롭거나 창의성 있는 생각은 그런 기본 위에 덧붙여져야 하는 것이다.

 

 

모두에게 수학이 필요하다는 거대한 착각이란 부제를 가진 수학의 배신’(앤드류 해커 지음)이 눈길을 끈다. 유명한 대학 수학과에서 가르친 적도 있고, 늘 통계와 계량 분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회학자인 저자는 수학이 일상에서 아무런 쓸모도 없다고 단언한다.

 

저자는 당신의 좋은 것들을 수학에 빼앗기지 말라고 조언한다. 이 말을 들으니 칸트가 라틴어 외의 외국어를 공부하느라 애썼다면 그의 철학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란 말이 생각난다. 저자는 대부분 학부 수업에서 이차방정식을 쓸 일이 없고 일하는 데 수학이 필요한 직장인은 더욱 드물다고 말한다.

 

그리고 수학이 천직을 선택해 자기 삶을 알차게 꾸미고 싶은 학생들에게 큰 장벽이 되고 있다고까지 말한다. 일리 있는 이야기다. 내 이야기를 해야겠다. 내 서재에는 박석재 박사의 우주를 즐기는 지름길과 이종필 박사의 아주 특별한 상대성 이론 강의란 책이 있다.

 

두 책 모두 난해한 수식과 개념, 공식들이 가득하다.(언젠가 이 책들을 읽을 수 있기를,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두 책을 샀을 당시부터 변함 없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다.) 두 책 모두 고중숙 교수의 내 머리로 이해하는 E=mc²’을 읽고 난 후 자신감에 샀지만 상당한 내공과 노력이 필요한 책들이다.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책이 있다. 박자세(박문호의 자연과학 세상)에서 나온 유니버설 랭귀지이다. 경북대학교 전자공학 박사인 박문호 교수는 암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뇌과학에 들어가는 길은 100개 정도의 용어를 염불하듯 암송하면 될 정도로 간단하다고 말하고(415 페이지) 물리학이 어렵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자연과학에는 공식이 중요한 것이 10개도 안 되기 때문에 그것만 모두 외우면 된다고 말하는 분이다.(92 페이지)

 

박자세 회원 한 분(인문 전공자)은 중력방정식 발표를 마치고 상대성 이론의 구체적 풀이는 익숙해지는 것이 핵심이라는 말과 함께 너무 생소해 엄두가 나지 않았던 수식도 계속 적고, 찾아보고, 풀다 보니 진도가 나갔다고 말했다.(133 페이지)

 

박자세의 모토는 중요한 수식은 그대로 암기한다. 반복 학습을 통해 언잰가 이해된다.”는 것이다.(188 페이지) 뇌과학에 들어가는 100개 정도의 용어를 염불하듯 암송하면 된다는 말과 관련해 흥미롭게 보아야 할 말은 염불, 참선, 주문(呪文) 등 동일한 행위가 반복되어 자극이 동일할 때 브레인은 자극이 없다고 생각해 우리에게는 공간 좌표가 사라지고 그것이 극단으로 치달을 경우 몸이 없는 것으로 느껴지게 된다는 말이다.(423 페이지)

 

좋은 것들을 수학에 빼앗기지 말라고 조언하는 책을 이야기하다가 너무 전문적인 수학 이야기를 늘어놓았는데 나는 바로 그 수학의 배신이란 책의 논지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과 별개로 수식으로 이해할 것들이 여전히 많고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비판적 독해 분야에서 고득점을 받은 학생이 수학 고득점자보다 다른 분야도 잘 할 확률이 높다는 말을 한다. 대수학을 잘하고 싶으면 소설과 시를 더 많이 공부해야 한다는 주장이 더 신빙성이 높다는 말이다.(내가 문과 기질의 사람이어서 인용하는 것은 아니다.)

 

칸트는 내용 없는 사상은 공허하다는 말을 했다. 이 말을 응용하면 아무리 수식으로 우주의 질서, 본질을 깨달아도 인문학적인 내용을 알고 감동하는 것과는 별개라는 말이 가능하다. ’내용 없는 사상은 공허하다는 말은 자료로 뒷받침되지 않는 생각은 공허하다는 말이다.

 

나는 이 말을 인문학과 함께 추구되지 않는 자연과학적 우주(가 세상이라 해도) 이해는 공허하다는 의미로 이해한다. ‘수학의 배신의 미덕은 모든 학생이 어려운 수학을 배워야 한다는 주장을 여러 논거로 멋지게 반박했다는 데에 있다.(배워야 하리라.) 흥미로운 책이고 깨달음을 주는 책임에는 분명하다.

 

라틴어가 모든 사람에게 필요하지 않고 칸트 철학이나 베르그송, 스피노자, 니체의 철학이 모든 사람에게 필요하지 않지만 공부하는 사람이 있듯 자연과학도 그렇다. 내 서재에는 수학 언어로 문화재를 읽다란 책이 있다. 경복궁 전각을 설명할 때 다양성과 새로움을 기하기 위해 산 책이다.

 

읽기에 무리가 있지는 않지만 어떻게 그런 자연과학적 깨달음을 인문학적으로 쉽게 설명할 수 있을지 고민하느라 아직 읽지 못했다. 이 책 역시 산 지 2년이 넘었다. 지난 번 서강대에서 사이언스북스의 자연과학 강의를 듣고 받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보며 나는 자연과학에 다시 열심을 내라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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扃堂矩堂. 경당과 구당이다. ()은 바티칸 도서관에 대해 쓰다가 알게 되었고 구()는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 대해 쓰다가 알게 되었다. 시스티나 경당이라고도 하고 시스티나 성당이라고도 한다. 경은 문빗장 경, 살필 경이다. 유길준의 호가 구당(矩堂)이다.

 

구는 모날 구, 법도 구이다. 70이 된 공자가 자신을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慾不踰矩)라 표현했다. 불유구는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의미다. 마음먹은대로 행동해도 그랬다는 의미다.

 

유길준은 고종이 파견한 보빙사의 일원(통역원)으로 미국을 둘러본 뒤 유럽으로 가 프랑스 도서관을 비롯한 많은 문화 현장에 입회(立會)했다. 만일 내가 그 나라들에 가보았다면 나는 무엇을 보고 어떤 글을 남겼을까? 다음 도서관은 어디로 할까? 그때는 무엇을 배우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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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운궁(덕수궁)이나 정동(貞洞)에서 어김없이 나오는 이야기가 커피 이야기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커피를 마신 사람이 고종(高宗)인가 아닌가, 고종이 처음 커피를 마신 곳이 러시아 공사관인가 아닌가, 정관헌에서 고종이 커피를 마셨는가 아닌가....

 

듣는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기 때문이지만 해설 하는 분들이 내용을 새롭게 업그레이드하거나 자기만의 시각을 갖추려는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건물 이야기를 할 내공이 부족해서이기도 할 것이다.

 

최근 실록을 통해 확인된 바에 의하면 고종은 대한(大韓)이란 말을 처음으로 사용한 분이고 우리의 강토(疆土)4천리로 인정한 분이다. 이런 사실에 비하면 커피 이야기는 사소하다. 물론 고종의 대한 및 4천리 강토 이야기도 하고 커피 이야기도 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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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32) 종묘 해설을 들은 뒤 서촌 대오서점을 찾았다. 평소와 다르게 그날은 서점 사장님과 인터뷰를 했다. 조대식, 권오남 부부의 따님(사장님)과 손녀가 좁은 공간에서 함께 일을 했다. 들어가려니 기념품을 사거나 차를 마셔야 한다고 해 기념품을 샀다.

 

사장님은 인터뷰를 위해 오는 사람들 가운데 우리처럼 기념품을 사는 경우가 거의 없다며 우리를 환대하셨다.

 

자연스럽게 덕담 같은 말들을 주고 받은 인터뷰가 되었다. 인터뷰를 위해 오는 사람들은 기념품을 사거나 차를 마셔야 한다고 하면 저 집은 돈을 받고 사람을 들여보낸다는 말을 한다고 한다. 같은 말이라도 곱게 할 수는 없을까? 책으로 얻을 수 없는 귀한 정보를 얻는데 몇 천원 하는 기념품이나 커피 값은 아까운가?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저 집이 교보문고의 지원을 받는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고 한다. 원형을 유지한 채 수리를 하면 돈이 많이 들고 지난 겨울 기름 보일러가 파열되는 등 어려움을 겪어 이제 곧 가게를 처분할 것이라고 사장님은 말씀하셨다.

 

우리는 나중에 시간이 되면 차 마시러 오겠노라고 말씀드렸다. 지난 227일 종묘에서 지킴이 김** 님의 해설을 듣다가 일정 때문에 일찍 자리를 뜨며 32일 다시 오겠노라고 했었다. 그런 뒤 실제로 나타나자 해설사님은 반색을 하셨다. 빈말로 하는 인사가 너무 남발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또는 나는 차 마시러 갈 것이다. 그날은 밥 먹고 차 마신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마시지 못했다.안에 오래 된 촬영 도구가 있어 여쭈었더니 사장님은 할아버지가 우미관의 영사 기사였다는 말씀을 하셨다.

 

내가 걱정할 바는 아니지만 가게가 팔리면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서점이 북카페 형식의 카페로 변신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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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 21년이 된 장 뒤비뇨의 축제와 문명을 다시 읽고 있다. 오랜만에 이 책을 다시 읽는 것은 종묘 해설 준비 때문이다. 역자(譯者) 류정아 님은 이 책을 번역한 이후 축제 이론‘, ‘축제인류학’, ‘축제의 원칙등의 책을 냈다.(반갑다.)

 

가장 관심이 가는 책은 축제 이론이다. 이 책에는 아널드 반 제넵: 통과의례, ’마르셀 모스: 증여론‘, ’ 하위징아: 호모 루덴스‘, ’ 로저 카유아: 놀이와 인간의 정체성‘, ’ 바흐친: () 구조적 카니발과 소통시스템‘, ’장 뒤비뇨: 문명과 판타지 그리고 자유로움등의 챕터가 있다.

 

뒤비뇨가 말하는 축제에는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의식(儀式)이 치러지는 신성하고 종교적인 순간과 장소라는 의미가 있다. 이오덕 선생님께서 우리글 바로쓰기에서 하신 말씀들 중 잔치를 축제(祝祭)’라 부르지 말라는 내용이 생각난다.(축제라는 말 자체를 쓰지 말라고 하신 것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일본식 용어인 축제는 축하의 제사라는 말이다. 축하의 제사라니 이상하지 않은가. ()은 무축(巫祝)이란 말을 통해 알 수 있듯 샤먼과 장의업자 등과 관련된 말이다. 그런데 축하의 제사라는 말에 그럴 듯함이 있지 않은가 싶다. 제례를 길할 길자를 써서 길례(吉禮)로 분류한 우리 선조들의 예와 통하는 바가 있다.

 

종교적 휴일(religious holiday)을 의미했던 페스티벌과도 의미가 통하는 바가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신성하고 종교적인 순간과 장소라는 의미가 있지만 페스티벌과 동아시아권의 축제(祝祭)라는 말이 바로 맞대응하지는 않는다. 페스티벌에는 혼미(昏迷), 일탈(逸脫), 희열(喜悅) 등의 의미가 깃들어 있다.

 

나는 배경 지식을 먼저 공부하고 본론(本論)에 들어가곤 한다. 경우에 따라 종묘와 축제와 문명처럼 무리하게 보이는 연결도 시도한다. 때로 배경 지식에 빠져 본론을 소홀히 하기도 한다. 그래도 이런 공부가 즐겁고 재미 있다.

 

인상적인 것은 축제와 문명이 사회과학 서적이면서도 다분히 문학적 문체로 쓰여 있어 지적 희열감을 느꼈다는 번역자인 류정아 님의 말이다. 참고할 바이다. 통과제의에 대한 책도 읽고 싶고 기노시타 데쓰야의 주자학(朱子學)’ 같은 책도 읽고 싶다. , 책책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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