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부터 소장하려고 했으나 필요할 때마다 빌려보곤 하던 김용헌의 '조선 성리학, 지식권럭의 탄생'을 어제 알라딘 종로점에서 우연히 보고 구매했다. 정도전, 정몽주, 조광조, 조식, 이이 등의 문묘 종사를 둘러싼 논쟁을 다룬 책이다.
어제 청송당(聽松堂) 유지(遺址)가 있는 서촌 해설을 계기로 관심을 두게 된 성수침과 남명 조식의 일화를 흥미 있게 접한 뒤 만난 책이어서 관심이 더해지는 느낌이다. 성수침(1493-1564)은 여덟 살 아래의 남명 조식(1501-1572)과 서로 존경하며 일생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런 어느 날 성수침이 시를 써 조식에게 보내 화답을 요청하자 조식은 시는 본래의 소중한 마음을 잃게 하는 놀이 같은 것이라 답했다. 스승 조광조의 사사(賜死)에 충격받아 청송당에 은둔한 성수침과, 자의에 의해 홀로 묻혀 지내며 과거를 대비한 공부가 아닌 위기지학(爲己之學)을 연마한 조식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잘 보여주는 일화다.
남명 조식은 칼을 찬 유학자였다. 몸을 써서 욕망을 절제할 것을 가르쳤고 물 뿌리고 청소하는 일에서 공부가 시작된다고 본 사람이었다. 그가 칼을 찬 모습을 본 경상감사 이양원이 무겁지 않느냐고 묻자 남명은 "뭐가 무겁겠소, 내 생각에는 그대의 허리에 매단 금대(金帶)가 더 무거울 것 같은데.."라고 말했다.
이에 이양원은 바로 말을 알아 듣고 재주 없이 중책을 맡아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양원은 겸허하기나 하다. 오늘날 이양원을 보고 배워야 할 인물들이 너무 많아 안타깝다.
정도전은 불교는 사람을 짐승과 구별지어주는 측은지심 즉 인(仁)마저 비워버릴 것을 주장하기에 이단이라 말했다. 그런데 그런 정도전이 만일 임란 때 많은 승려들이 의병활동을 한 것을 보았다면 어떤 말을 했을까?
그때 백성들을 버리고 의주까지 도망한 유교 국가의 군주 선조는 인(仁)한 존재였는가? 동인 김성일의 말만 듣고 왜의 침략 가능성을 무시한 선조는 지(智)한 존재였는가?
정도전이 주장하는 바의 핵심은 불교는 모든 정념을 벗어버릴 것을 의도하는 문제적 종교라는 것이다. 하지만 석가모니 부처도 출가 후 자신의 나라에 닥친 정치적 문제를 보고 몇 차례 시정을 요구했다.
이는 정도전 이전의 일이었으나 아마도 당시의 자료 수준으로는 접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총체적으로 생각하고 보아야 지혜와 균형감각이 나옴을 정도전을 보며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