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대와 구원 - 혐오.배제.탐욕.공포를 넘어 사랑의 종교로 나아가기
조슈아 W. 지프 지음, 송일 옮김 / 새물결플러스 / 201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환대(歡待)란 말을 들으면 공동체를 떠올리게 된다. 그 가운데 특별히 초대 교회를 생각하는 것은 그 교회가 공동 소유와 나눔, 이방인들과의 교제와 만찬 등으로 설명할 수 있는 공동체였기 때문이다.

 

환대란 말을 통해 접하게 되는 만찬이란 말은 나로 하여금 밥이 하늘이라는 말을 생각하게 한다. 물론 이 말은 기독교의 말은 아니다. 불경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환대와 구원의 본문에서 밥이 하늘이라는 말에 필적할 말이 눈에 띈다.

 

예수가 죄인과 소외된 자들에게 베푸는 신적 환영에서 하나님 나라가 임재해오고 있는데, 예수는 하나님 나라가 식탁 교제를 통한 제자들의 사역 가운데 지속적으로 임재할 것이라고 선언한다.”(60 페이지)

 

저자는 사도행전 242절에서 47, 432절에서 35절을 예로 든다. 이 구절들에 의하면 공동체는 음식과 환대를 통해 주님이 임재하고 기억되는 장소다.(63 페이지) 저자는 예수가 자신의 사역을 식탁에서 섬기는 자로 요약했으며 자신의 열두 제자들을 “.내 상에서 먹고 마심을 통해 다스리도록 위임했다고 지적한다.

 

책의 구성과 관련하여 중요하게 언급되어야 할 말은 신적 환대가 인간의 환대를 이끌어낸다는 말이다.(73 페이지) 그 이유는 저자가 책을 신적 환대(1)와 인간의 환대(2)로 나누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리가 사회적 고정관념에 정면으로 노출된 사람들과 동맹이 되기를 거부하고, 무관심에서든 다른 사람들의 경험에 귀기울이지 못해서든 구조적인 인종차별주의, 성별 또는 성에 대한 비인간적인 고정관념의 영속화, 그리고 유색 인종에 대한 폭력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교회의 사명도 이와 유사하게 저해될 수 있다고 말한다.(81 페이지)

 

누가 - 행전에서 신적 환대를 받는 사람들은 사회에서 가장 낙인찍히고 소외된 사람들인 죄인, 세리(稅吏), 가난하고 굶주린 자, 죄많은 여인, 사마리아인, 신체 장애인, 비유대인, 내시, 야만인들이다.

 

누가복음의 예수와 사도행전의 사도들은 지속적으로 종교적, 문화적 경계를 넘어 사회에서 낙인찍힌 자들과 거절된 자들을 환영하고 축복한다.(80 페이지) 차이가 그 자체로 나쁜 것은 아니라 말하는 저자는 교회를 분열과 분리, 그리고 타인에 대한 냉대로 이끌지 않으면서 교회 내의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하고 포용할 수 있는가, 묻는다.(100 페이지)

 

교회가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 일치하고 조화를 이루는 것, 이것이 바울의 과제였다. 바울의 전략은 하나님의 환대가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교회들을 위한 공통의 정체성 즉 적들과 외인들을 친구와 가족으로 변화시킨 환영을 만들어냈는지 분명히 설명하는 것이었다.(130 페이지)

 

13요한복음에 묘사된 인간 존재의 의미와 교회의 사명에서 저자는 예수가 하나님의 환대를 매개하는 하늘에서 온 외인이라는 요한의 묘사는 예수가 유월절 전날 밤에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에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데서 정점에 달한다고 말한다.(156 페이지)

 

요한복음은 하나님의 환대를 경험한 사람들에게 우리가 식사와 환대의 만남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환대를 얻은 우리의 삶을 나누도록 초대하고, 다른 사람들이 구원하는 하나님의 환대를 만나는 기회로서의 빵, 포도주, , 집과 섬김의 참된 의미를 설명할 수 있는 방식들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요청한다.(167, 168 페이지) 하나님의 환대가 인간의 환대로 연결되어야 함을 당위로서 밝히고 있는 규정이라 하겠다.

 

2부는 각 장들이 주목을 끈다. 환대와 세상(4), 환대와 이민자(5), 환대와 경제(6)이기 때문이다. 나는 누가 - 행전(11), 바울 서신(2), 요한 복음(3) 등을 통해 본 환대도 의미가 크지만 2부에 소개되는 내용들에 더 큰 관심을 갖는다.

 

2부는 제목부터 인간이란 말이 들어간 인간의 환대다. 물론 2부는 각 장에 과제가 부여되었다. 4장은 종족주의 극복하기이고, 5장은 외국인 혐오 극복하기이고, 6장은 탐욕 극복하기이다. 과제란 말을 통해 알 수 있듯 2부의 극복하기 등은 모두 어려운 것들이다.

 

물론 2부도 성경 구절에 근거를 두고 이야기가 전개된다. 4장의 주요 이야기 거리는 바울과 예수의 관계다. 중요 단서 중 하나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되었다.”는 바울의 주장이 바울이 여성, 바리새인, 죄인, 세리와 함께 식사함으로써 하나님 나라를 선포했던 예수의 환대 관행을 기억하고 있음을 반영한다는 것이다.(194 페이지)

 

저자는 현대의 복음 전도 및 선교에 있어서 자신을 내어주고 힘을 거부하는 그리스도의 자세를 구현하는 바울의 선교 전략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204 페이지) 5장에서 저자는 창세기 19장의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가 성적 일탈에 대한 이야기라 생각하지만 아는 사실 아브라함의 환대와 대칭을 이루는 이야기로서 하나님이 취약한 외인을 학대하는 사회와 개인을 심판한다는 단순한 요점을 말한다고 설명한다.(227 페이지)

 

창세기에서 롯은 천사들을 환대했기에 구원받고 불친절한 소돔은 멸망당했다.(230 페이지) 저자는 창세기 19장을 설명하며 하나님이 두 남자의 형태로 저녁에 소돔을 방문했는데 소돔 사람들 중 누구도 누가 봐도 취약한 두 외인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으나 롯은 자기 삼촌 아브라함처럼 두 외인을 초대해 쉬게 했다고 말한다.(228 페이지)

 

저자는 사사기 19장을 이야기한다. 레위인과 그의 첩 이야기로 극악한 냉대의 남용과 환대 관례의 타락이 그 첩을 어떻게 섬뜩하고 폭력적인 죽음에 이르게 했는지 보여주는 장이다. 레위인의 장인은 집으로 돌아가려는 사위를 계속 붙잡는다. 저자는 이 무리한 행동을 설명하기를 환대에 있어서 이스라엘이 소돔보다 나은 점이 없음을 알 수 있다고 덧붙인다.(233, 234 페이지)

 

레위인 일행은 집으로 가는 길에 끔찍한 일을 당한다. 해가 질 때 그들은 이스라엘 족속의 기브아 성읍에 도달하지만 초대(환대)받지 못한다. 에브라임 출신의 한 노인이 그들을 집으로 불러 환대하지만 한 무리의 남성들이 이 노인의 집을 둘러싸고 에브라임 출신 거류민에게 자기들이 외인들(레위인들)과 성교하려 하니 그를 집 밖으로 내보내라고 요구한다.

 

이 노인은 자신의 처녀 딸과 자기 손님의 첩을 군중에게 내어준다. 밤새 능욕당한 여자는 죽은 채 발견된다. 이스라엘은 사악한 소돔보다 나은 것이 없는 형편이 되었다. 충격적이다. 저자에 의하면 모세 오경을 피상적으로만 읽어도 이스라엘이 이민 백성임이 드러난다.(243 페이지)

 

저자는 외인들에 대한 환대는 성서의 핵심이자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6장은 현실적인 문제를 다룬다. 외국인 혐오와 종족주의에서 환대로 옮겨갈 때 재정 문제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우리의 소비자 자본주의 사회에서 재화와 용역은 가지기 또는 모으기라는 의미에서의 소유라기보다 언제나 그리고 끝없이 자신의 외모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새로운 것을 획득하고 시장의 눈, 따라서 다른 사람들의 눈에 가치 있는 존재로 여겨지는 것을 획득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259 페이지)

 

저자는 자본주의 소비자 경제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이에 무비판적으로 참여하면 환대를 베풀기 위해 우리의 자원, 소유, 시간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데 중대한 장애가 초래될 수 있다고 말한다.(262 페이지)

 

저자는 로마서 122절을 예시한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저자에 의하면 성경은 악에 대한 경고들로 가득 차 있다. 바울은 디모데전서 6장에서 지족(知足)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고(6),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다(10)고 말했다.

 

예수는 식사 전에 손을 씻지 않는 자신에게 놀란 바리새인들에게 너희는 잔의 겉은 꼼꼼하게 닦지만 속은 탐욕과 악독으로 가득 차 있다고 비난했다.(270 페이지) 바울, 누가, 예수의 공통된 가르침은 하나님의 경제에 있어 첫 단계는 탐욕에서 자비로 옮겨가는 것이다.

 

나는 바울이 예수의 가르침을 관념화했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탐욕을 주제로 돈에 대해 언급한 바울의 메시지는 지극히 현실적임을 알았다. 탐욕을 우상숭배라 말하는 저자는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보고 이에 수반하여 동정심을 보이라고 말한다.

 

또한 기독교인들이 어떤 인간 경제도 신성화하지 말고 그 경제의 질서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할 경우 이로 인해 우리가 하나님의 경제에 참여하기가 실질적으로 불가능해질 수도 있는 방식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덧붙여 우리의 경제 제도가 어떻게 구속되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갈망, 그리고 타인에 대한 사랑을 향하여 정렬될 수 있는지 숙고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에 의하면 기독교인들은 빈곤한 중에도 자원을 나누도록 요구된다.

 

최근 기독교에 입문하라는 요구를 몇 차례 받았다. 저자가 언급한 부분들을 지키기 어렵다는 우려가 든다. 궁금하다. 이 책을 읽는 기독교인들은 어떤 답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할지. 저자의 책은 명료하고 (내가 성경과 기독교를 잘 모르지만) 성경적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준다. 조금씩이나마 환대의 의미를 염두에 두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며 책을 덮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부친과 문중의 반대를 무릅쓰고 천주교 신앙을 위해 단식 14일만에 31세로 세상을 떠난 이벽(李檗; 1754-1785)은 가족들 사이에서 고집이 센 사람으로 통했다.(벽은 황벽나무 벽이다.) 그가 천주교를 알게 된 것은 소현세자를 모시고 심양에 인질로 갔다가 귀국할 때 아담 샬에게서 받은 천주교 서적을 가지고 온 6대조 이경상 덕이다.

 

임제선사를 깨우치게 이끈 황벽선사도 황벽나무 벽자를 썼다. 황벽은 마인드가 상당히 유연하여 노파에게서도 배울 것은 배우려 했던 선사다. 세살짜리 아이도 자신보다 나으면 배울 것이고 백살 노인이라도 자신보다 못하면 가르쳐줄 것이라는 마음으로 선지식들을 찾아다녔던 '뜰 앞의 잣나무'의 스님 조주선사를 닮은 사람이라 하겠다.

 

그럼 이벽은 고집이 세고 황벽선사는 유연한 것인가? 아니다. 자신이 진리라 믿은 천주교를 끝까지 믿은 이벽이나 노파에게서까지 배우려 할 정도로 유연했던 황벽선사나 모두 진리에 철두철미했던 것이다. 진리를 위해 불교를 택한 것이지 불교를 위해 진리를 택한 것이 아니라는 성철 스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온릉(溫陵) 개방(1114일 이후) 소식을 듣고 양주시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다. 단경왕후(端敬王后) 신씨(愼氏)의 능인 온릉은 그간 군사보호시설 내에 자리한 관계로 개방되지 않았었다. 양주시청 홈페이지의 관광정보 코너에 교통편이 안내되지 않아 검색을 거쳐 개인 블로그를 통해 알았다.

 

신씨가 세상을 떠난 것은 1557년으로 명종 재위시였다. 왕릉 조성 기록에 나와 있지 않은 것은 중종반정으로 왕비가 되었지만 아버지 신수근이 연산군의 처남이라는 이유로 반정에 참여하지 않아 역적이 되는 바람에 신씨도 억울하게 즉위(왕후) 7일만에 쫓겨나 능이 아닌 묘()의 주인공이 되었었기 때문이다.(신씨가 복위된 것은 영조 대인 1739년이다.)

 

양주는 신씨 친정의 선산이 있던 곳이다. 온릉은 따뜻할 온()자를 쓴다. 평생 자식 없이 오로지 중종의 따스한 손길만을 그리워하며 살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재영 지음 조선 왕릉, 그 뒤안길을 걷는다’ 162 페이지)이라고 한다. 중종이 단경왕후의 집쪽을 바라보며 그리워하자 단경왕후가 분홍치마를 바위에 걸쳐놓아 화답했다는 전설은 유명하다. 인왕산 치마바위 전설이다.

 

하지만 계비 장경왕후가 인종을 낳고 산후병으로 6일만에 죽자 신하들 사이에서 단경왕후 복위 논의가 나왔으나 중종이 오히려 이를 물리치며 건의한 사람들을 유배보냈고 장경왕후 곁에 묻히고 싶어 하며 쌍릉 자리를 마련하라고까지 했다는 일화도 있다.(이종호 지음 역사로 여는 과학문화유산 답사기 조선왕릉편’ 206 페이지)

 

중종 능은 처음 장경왕후의 희릉(禧陵) 곁에 조성되었다가 중종과 함께 묻히고 싶어한 문정왕후에 의해 삼성동으로 천릉(遷陵)되어 정릉(靖陵)이 되었다. 정릉은 지대가 낮아 장마철마다 재실과 홍살문이 침수되는 피해를 입었다. 이에 명종은 어머니 문정왕후 윤씨를 태릉에 모셨다.

 

그러고 보니 중종, 장경왕후, 문정왕후 모두 홀로 묻히고 말았다. 굳이 따지자면 단경왕후까지 홀로 묻혔으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이 흩어짐으로 직계자손이 끊어졌다는 말이 있다. 실제로 명종 대에서 그런 일이 벌어져 선조가 최초의 방계자손 왕이 되었다.(선조는 중종의 서자인 덕흥대원군의 셋째 아들이었다.)

 

치마바위 전설과 함께 중종이 단경왕후 복위를 논의한 신하들을 유배보냈다는 이야기도 함께 해야 하리라 생각한다. 어떻든 중종이란 인물은 참 미스테리한 왕이다. 온릉 이야기로 시작했다가 중종이 미스테리한 왕이라는 이야기를 하니 주인공이 마치 중종인 듯 여겨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주역 스무번 째 괘는 풍지관(風地觀)이다. 괘사인 관(): 관이불천(盥而不薦) 유부옹약(有孚顒若)을 보자.

 

1) 강신(降神)을 보며 제물 올리는 것을 보지 않으니 믿음이 있고 공경스럽다란 뜻(신원봉 지음 주역’ 204 페이지),

 

2) ()의 길에서는 깨끗하게 씻어 준비해도 천거되지 못하는 수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가지면 우러름이 있을 것이다란 뜻(강병국 지음 주역 독해상경 357 페이지)

 

3) 심신이 깨끗하여 동요가 없고, 믿음과 공경이 있으면 관()의 도를 얻을 수 있다는 뜻(서대원 지음 주역강의’ 250 페이지)....

 

어떤 구절이 가장 그럴 듯 한가. 나는 2번이라 생각. 그리하여 유부옹약(부옹)을 믿음이 있으면 우러름이 있을 것이라는 말로 이해한다.

 

주역의 대가 김석진 옹은 43경 공부 순서를 대학, 중용, 맹자, 논어, 시경, 서경, 주역으로 꼽았다. 주역은 가장 마지막에 공부할 과목이다.

 

, ....나는 순서도 무시하고 무작정 주역을 공부하는 것인가?

 

정리하면.. 유부옹약(有孚顒若) 줄여서 부옹(孚顒)은 믿음이 있으면 우러름이 있다는 말. 스승님에 대한 내 마음을 표현하는 적절한 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어제 해설은 사진과 영상 제작 동아리의 어르신들과 함께 한 시간이었다. 사진 동아리이기에 프랑스의 위대한 사진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언급한 결정적 순간에 대한 언급으로 운()을 떼었다. 브레송은 삶의 환희와 고통, 현실의 적나라한 순간들을 사진으로 남겼다. 후에 수전 손탁의 사진 비판론을 논할 팀이 있으면 좋겠다. 손탁은 카메라를 총에 비유했다.

 

1) 연천군 미산면 아미리의 숭의전(崇義殿)에 있는 관세위(盥洗位)는 제향 때 제관이 손을 씻는 곳이다. 2) 배신청(陪臣廳)은 공신들을 모신 곳이다.(; 씻을 관, ; 모실 배) 3) 이안청(移安廳)은 임시로 어진을 모시던 곳이다. 4) 연천군 미산면 동이리에 있는 고구려 시대의 성인 당포성(堂浦城) 위에 팽나무 한 그루가 있다.

 

1)2)는 질문이 있어 정확히 답했다. 3)은 종묘의 망묘루 같은 곳이라 잘못 답했다. 4)에 대해서는 아무도 묻지 않았고 나 역시 몰랐다.(팽나무의 팽이 한문인지 한글인지 모르겠다. 한문이라면 어떤 글자를 쓰는지 궁금하다.)

 

당포성의 주소를 묻는 분에게 아미리라 했다가 숭의전이 아미리 아닌가요란 말에 아, . 동이리입니다라고 바로 고쳤다. 풍수 지식을 망원경에, 한자 지식을 현미경에, 문사철과 유불선 지식을 그물에, 사주와 관상 지식을 표창에, 샤머니즘 지식을 드릴에 비유한 조용헌 교수가 문득 생각난다.

 

언급한 것들은 조용헌 교수가 20년 넘게 여기저기 답사를 하다 보니 갖추게 된 지식이라고 한다. 다른 것은 몰라도 한자 및 문사철과 유불선에 대한 지식 정도는 갖추어야 하리라. 문사철에 포함되는 주역, 유불선에 포함되는 불교 미술에 많은 시간을 쓰고 싶다. 그리고 나만의 비기(祕技)를 개발하고 싶다. 물론 박학다식과 함께 갖추는 비기이어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