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 예상하지 못한 뜻을 가진 한자들이 있다. 긴장의 요인이지만 모르는 것을 알게 해준다는 점에서는 재미를 느낄 수도 있다. 제(第)는 차례를 의미하지만 등급, 과거(科擧), 단지(但只) 외에 집이나 저택을 의미하기도 한다.
지난 해 말 신영훈 목수의 ‘운현궁’(1999년 출간)이란 책에서 운현궁을 흥선대원군의 사제(私第)로 설명한 글을 읽었다. 사제(私第)는 사저(私邸)의 의미다. 신병주, 박례경, 송지원, 이은주 등이 지은 ‘왕실의 혼레식 풍경’(2013년 출간)에서 다시 한번 운현궁을 사제로 설명한 내용을 접했다.
운현궁이 거론된 것은 별궁을 설명하기 위한 결과다. 왕실의 친영(親迎: 신랑이 신부의 집에 가서 신부를 직접 맞이함) 의식에서 별궁이 꼭 필요했다. 국왕이 왕비의 사가에 직접 가는 불편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별궁으로 쓰인 곳은 태평관, 어의궁, 운현궁 세 곳이었다.
어떻든 과독(寡獨)인 탓에 다른 집들을 사제로 표현한 글을 접하지는 못했다. 숭례문 안 황화방(皇華坊)에 위치하던 태평관은 중국 사신을 접대하던 모화관(慕華館), 일본 사신을 접대하던 동평관(東平館), 여진족 사신들을 접대하던 북평관(北平館) 등과 함께 외국 사신을 모시던 장소였다.
소현세자의 빈으로 정해진 강석기의 딸이 별궁으로 활용된 태평관에 거처하며 세자빈 수업을 받았다. 소현세자와 세자빈 강씨의 혼례식 과정을 정리한 의궤인 소현세자가례도감의궤 말미에 친영 반차도가 8면에 걸쳐 그려져 있다.
반차란 지위와 임무에 따라 나눈다는 의미다. 어의궁이 별궁으로 쓰인 것은 인조가 장렬왕후를 왕비로 맞이하면서부터였다.(후에 자의대비가 되는 장렬왕후는 두 차례 예송 논쟁의 당사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