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수록 지혜로워진다 - 스피노자와 함께 인생의 새 판 짜기
신승철 지음 / 사우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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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철의 사랑할수록 지혜로워진다17세기 철학자 스피노자의 주저(主著) ‘에티카의 메시지로부터 비롯된 책이다. ‘기하학적 순서로 증명된 윤리학이란 부제를 가진 에티카는 자로 재고 칼로 자른 듯한 논리적 형식 속에 가장 비논리적인 영역의 정서, 사랑, 욕망의 자기 과정을 그려낸 책이란 것이 저자의 주지(主旨).

 

스피노자는 물론 신승철의 책들을 읽으려면 정동(情動)이란 개념을 알아야 한다. 스피노자 철학에서 감정과 정동을 날카롭게 가르기는 어렵다. 하지만 대체로 감정은 일시적이고 우발적인 기분 및 고립된 상태의 기분을 의미하고 정동(情動; affect)은 움직임과 관련된 생각, 삶과 관련된 것. 돌봄, 살림, 보살핌, 섬김 등과 관련된 것을 의미한다.

 

스피노자는 기쁨, 슬픔, 욕망 등이 정동의 기본적 형태이며 여기서 우울, 희망, 공포, 연민, 호의, 후회, 겸손 등이 파생된다고 말한다. 중요한 점은 기쁨, 슬픔 등의 정동은 아주 사소한 우발성에서 기인한다. 우발적인 것은 그저 돌발적이고 휘발적인 것이 아니라 정동의 자기원인이 되어 기쁨이 되기도 하고 슬픔이 되기도 한다.

 

물론 우발적인 것은 외부로부터 수동적으로 주어지지만 우리의 삶 내부에는 수동을 능동으로 바꿀 정동과 사랑의 능동적인 능력 즉 기쁨의 능력이 숨어 있다. 저자는 꽃은 한 뿌리에서 나와도 남성성이 강하면 수술을, 여성성이 강하면 암술을 만든다는 말을 하며 삶의 미세한 영역에서 사상을 발견하고 그것을 통해 더 지혜로워지는 것이 여성성의 역할이라는 점에서 자신은 자신 안에 잠재된 여성성의 영역을 더 계발할 것이라 말한다.

 

저자는 자신의 책에 자주 등장하는 욕망이란 말은 갈애나 탐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한 의지로서의 욕망이자 더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자 하는 욕망이라 설명한다. 스피노자는 그것을 코나투스(conatus: 자기보존욕구)라 불렀다.

 

천 개의 고원에서 들뢰즈, 가타리는 사랑을 되기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며 남성 되기는 없다는 전제하에 사랑이 성립하려면 여성의 여성 되기와 남성의 여성 되기가 만나야 한다고 말했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누구나 내면에 여성성을 가지고 있으며 여성 되기는 이미 자기 안에 있는 여성성을 발견하는 일이다. 살림의 지혜, 생태적 지혜를 공유해야 하는 것이다. ‘에티카의 출발점은 아주 작은 삶의 영역(국지적 영역)이다.

 

되기의 존재론은 존재의 존재론에 대한 의문에서 생겨난다. 나는 왜 나인가?, 나는 왜 바로 이렇게 존재할까?, 세계는 왜 꼭 그렇게 존재할까? 현실성보다 더 많은 존재, 실존하는 세계보다 더 큰 세계를 사유할 수 있는 운명을 타고난 존재인 인간은 늘 이렇게 묻는다..현실과 가능이 꼭 들어맞도록 일치한다면, 있음과 있을 수 있음(그리고 있어야 함)이 구분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에는 기쁨도 슬픔도, 희망도 절망도, 기대도 후회도 없을 것이다...다른 삶으로의, 바깥으로의 이행을 들뢰즈, 가타리는 되기라 부른다.”(이정우 지음 천 하나의 고원’ 164, 165, 166 페이지)

 

저자는 사랑한다는 것은 이렇게 해야한다는 당위나 의무가 아니라 이럴 수도‘, ’저럴 수도있다는 경우의 수를 제공하는 것이라 말한다. 저자는 되기는 사랑이라 말한다. 소수자 되기가 여성 되기, 노숙인 되기, 장애인 되기, 아이 되기, 동물 되기 등으로 나타나는 것이다.(51 페이지)

 

공동체가 전제되지 않은 내재성의 철학은 상상하기 어렵다. 스피노자의 삶은 렌즈 세공을 하는 작은 도제조합의 영토를 비롯해 친구들과의 교류와 우정으로 이루어진 공동체적인 관계망과 배치 위에서 이루어졌다.(내재성이란 초월성의 영역에 호소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스피노자의 내재성의 철학은 프로이트의 동일시와 다르다. 프로이트는 상담자에 대한 내담자의 동일시를 전이(transference)라 부르면서 각별히 중요시했다.

 

스피노자의 내재성은 타자와의 동일시가 아니라 타자가 갖고 있는 생명과 활력으로서의 특이성을 자신의 내재성(타자화된 외부가 자신의 내부적인 삶과 마음, 생활에 자기원인으로 들어와 있다는 의미다.)으로 이해하면서 공통성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차이를 이해하고 연대하는 과정이다.(67 페이지) 연대한다는 것은 다른 삶, 다른 생각, 다른 관계가 생산되고 환대받는 것을 의미한다.(68 페이지)

 

스피노자는 프로이트에 앞서 무의식이란 개념을 고안한 사람이다. 스피노자에게 무의식은 개인이 가지고 있는 관념이나 내면이 아닌 배치의 관계망에서 서식하는 마음이라 보았다. 스피노자는 우리의 삶에 순식간에 자리 잡는 욕망을 허구나 가상이라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삶을 구성하는 원천이자 자기원인이라 생각했다.

 

스피노자의 에티카는 단순하고 소박하고 절제된, 어쩌면 촌스럽게 느껴지는 정서의 기하학을 담고 있는 책이다.(115 페이지) 스피노자에게 사랑은 신적 속성이자 신체변용이다.(123 페이지) 스피노자는 순수, 겸양, 소박을 초월적인 신의 것으로 두지 않고 삶의 내재적인 것으로 보았다. 스스로 가장 먼저 내재적인 신, 범신론적인 신에 입각한 삶을 살았다.

 

물론 이는 개인도 수행하면 신이 될 수 있다는 영지주의와 거리가 멀다. 그렇게 생각하기 이전에 사물, 생명, 식물, 광물에도 신이 깃들어 있다는 것이 범신론이다. 그런 세계에서는 모두가 소중하고 유일무이하고 특이한 것으로 가득하다.(125 페이지)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의 신체, , 행동을 변화시켜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지혜를 얻는 과정이다.(144 페이지)

 

스피노자는 욕망을, 이성이 알지 못하는 이성이라 정의했다.(149 페이지) 스피노자는 사랑과 욕망이 많아질수록 가장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서로 모순되는 것으로 보이는 평행론을 주장했다. 그리고 그 평행론의 끝에는 사랑할수록 지혜로워진다는 결론이 있다. 지혜는 우리 안의 여성성을 어떻게 성숙시킬 것인가에 달려 있다.(153 페이지)

 

스피노자에게 앎이라는 문제는 나와 별개로 존재하는 수많은 진리를 내가 얼마나 많이 수용하고 취득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나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는 지혜를 나의 신체변용을 통해 얼마나 사랑하고 욕망하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160 페이지) 저자는 스피노자가 추구한 생태적 지혜의 노선은 생명과 삶이 던지는 문제제기일 수 있다고 말한다.

 

물음표, 호기심, 문제의식, 질문이 많아질수록 더 지혜로워지기 때문이다. 적어도 세상을 뻔한 것으로 보지 않으려면 질문을 던져야 한다.(161 페이지) 전문가만이 문제의 핵심과 본질은 이것이라고 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문제 제기는 답이 없을 수도 있고 여러 개일 수도 있다. 특히 삶, 사랑, 실존에 관한 질문이라면 더욱 그렇다.(162 페이지)

 

스피노자에게 정신은 신체변용을 거치지 않고 스스로 전개되거나 성숙하거나 발전할 수 없다.(164 페이지) 저자는 물론 모든 정동, 사랑, 욕망의 흐름이 과연 지적이고 이성적인 인과관계에 따라 작동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고 말한다.(174 페이지) 저자는 중요한 말을 한다. 일시적으로 다가와 마음에서 공회전하는 생각이 감정이고 그 감정 중에서도 자기원인에 따라 움직이는 생각이 정동이라고.(182 페이지)

 

주자(朱子)와 스피노자의 삶을 비교하는 것도 흥미롭다. 주자는 황제에게 올릴 상소문을 쓴 후 주역으로 점괘를 보고 올릴지 말지를 결정했다. 스피노자는 유한 속에 내재된 잠재성을 통해 무한으로 향하는 길을 걸었다. 스피노자의 이런 태도를 이론적으로 구현해낸 사람이 들뢰즈다. 그의 노마드는 제자리에서 여행하는 법인 국지적 절대성을 의미한다.

 

국지적 절대성의 과제는 국지적인 영역인 지금 여기 - 가까이에 무한한 잠재성이 내재한 삶과 신체가 있으며 이를 어떻게 하면 촉매하고 고무하여 색다름을 생산하고 창조할 것인가이다.(186, 187 페이지) 들뢰즈와 가타리의 소수자 되기라는 개념은 스피노자의 정동 개념을 현대적으로 혁신한 개념이다.

 

정동의 흐름이 성공주의, 승리주의, 성장주의의 논리처럼 위를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소수자에 대한 사랑을 통해 아래를 향해 내려간다는 점에서 그렇다.(190 페이지) ’에티카는 후반부에서 전반부와 전혀 다른 필체, 내용 등을 보여준다. 그를 후원하던 공화파 드 비트 형제가 잔인하게 피살당한 사건이 그런 변화를 초래했다.

 

스피노자는 3부 이후 당대의 증오, 예속을 영예로 여기던 상황, 맹목적 신앙에 빠진 상황을 정면 돌파하기 위해 고심했다. 스피노자는 입구와 출구의 불일치로 인해 발생한 에너지 소진을 이기지 못하고 에티카완성 2년 후인 167744세의 삶을 마쳤다.(195, 196 페이지) 스피노자의 에티카는 영구적 사랑의 탈주선이었다.

 

스피노자는 혼자였지만 가상의 독자를 설정해 자유인의 해방전략 즉 사랑이 곧 혁명이라는 것을 일갈했고 민주사회와 다중에 대한 민주주의 전략을 이야기했으며 사랑, 욕망, 정동의 지도 그리기를 시행했다.(215 페이지) 노마드 이론에 최적화된 사람이 은둔자로 불렸던 스피노자일 것이다.(220 페이지) 문제는 현실을 뻔하고 비루하게 보는 데에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생명과 자연이라는 그 신기한 외부가 우리 내부에 잠재되어 있다고 말한다. 삶의 내재성은 곧 외부성이라는 점에서 엄청난 잠재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 잠재성을 더 풍부하고 다양한 특이성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255 페이지) 저자는 스피노자를 탈근대의 예수로 정의한다. 답을 내놓는 철학이 아닌 아이처럼 호기심, 상상력, 질문을 던지는 탈근대의 상황으로 지평을 가로질러 주파했기 때문이다.(270, 271 페이지)

 

스피노자의 코나투스는 자기원인에 따르는 욕망 즉 정동의 개념이다.(285 페이지) 스피노자는 에티카를 완성하고 정치론과 민주주의에 대해 정리하던 중 폐결핵을 앓다가 숨을 거두었다. 아무런 소유도 없었고 병마에 시달리려 가냘픈 몸만이 있었다.

 

그는 임종을 지켜준 로데빅 마이어와 친구들을 평생 투명한 렌즈를 응시했을 그 눈으로 바라보며 숨을 거두었다.(287 페이지) 스피노자는 에티카에서 신 즉 자연이 지닌 질서를 이해하는 사람은 신을 사랑할 수 있을 뿐 결코 복종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결국 신은 우리 안의 보이지 않는 사랑, 욕망, 정동이다.(295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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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에 산, 구릉, 평야, 해저 등이 없는 이유를 설명하는 글을 공유한 뒤 달에 대한 책을 찾아봤다. 뉴턴 코리아에서 나온 달 세계 여행‘(2010년 출간)이란 책이다. 자료를 찾다가 칭동(秤動)이란 단어를 오랜만에 접했다. 영어로 Li로 시작하는 단어인데... 글쎄, 뭘까? 생각하다가 사전을 찾아 Libration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칭동이란 달의 겉보기 진동 또는 실제 진동을 말한다. 조상호 교수는 칭동을 달이 지구를 돌면서 조금씩 까딱까딱 스스로 흔들리면서 움직이는 것이라 설명한다.(’아빠, 천체 관측 떠나요‘ 182 페이지) 우리는 달의 공전 주기와 자전 주기가 같아 이론상으로 달의 한면(50%)만을 볼 수 있지만 칭동 때문에 59%를 볼 수 있다.

 

Pink Floyd'The Dark Side of the Moon'이란 앨범 제목은 측정 가능한 달의 면 넘어의 어두운 면을 표현한 곡인 듯 하다. 물 이야기로 돌아가자. 무슨 이야기인가? 달 표면에서 어둡게 보이는 지역을 달의 바다라 했다. 실제로 바다가 있어서 그렇게 부르는 것이 아니라 옛날에 그곳에 바다가 있다고 착각했을 때의 이름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다.

 

() 부근의 화구 바닥에 태양빛이 1년 내내 비치지 않는 영구 그림자라 불리는 극한의 영역이 있는데(특히 남극에) 연구자들은 그 밑바닥에 얼음 상태의 물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는 것이 달 세계 여행의 주장이다.

 

일반적으로 달의 물(과거에 달로 날아든 혜성에 포함되었던 얼음으로 추정)은 강한 햇빛을 받아 즉시 우주 공간으로 사라졌다고 볼 법하지만 영구 그림자에는 얼음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22 페이지)

 

지구에 있는 산, 구릉, 평야, 해저 등 다양한 지형이 달에는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구와 달리 달에는 물과 공기가 없기 때문이다. 물과 공기는 온도가 올라가면 가벼워지고 온도가 내려가면 무거워지는데 이렇게 온도차가 발생하면 공기와 물이 이동하며 진흙, 모래, 돌 등 다양한 물질을 데리고 간다.

 

물과 공기의 이동으로 지표 형태 변화가 수반되지만 달에는 물과 공기가 없어 물질 이동이 일어나지 않는 관계로 산, 구릉, 평야, 해저 등 다양한 지형이 없는 것이다.

 

대학에서 지형학, 자연지리학 등을 전공한 일본인 저자가 썼고 모 중학교 과학 교사가 감수한 이 책은 달에 물과 공기가 없어 크레이터가 생기면 지형이 그대로 남는 것의 예로 1969년 아폴로 우주선 비행사들이 달 표면을 밟아 생긴 발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들었다.

 

달 세계 여행2007년 일본의 달 탐사선 가구야가 달에는 물 등의 휘발성 물질이 적다는 사실을 밝혔음을 언급한다. 달 역시 탄생 당시 뜨거운 마그마로 되어 있었다고 한다.(104 페이지) 전문 영역은 어렵다. 그나저나 코로나로 인해 도서관을 이용할 수 없어 전에 사 두었거나 읽고 둔 책들을 다시 읽는 활용도가 높아졌다. ㅜ 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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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1632 - 1677)에게 데카르트와 동시대 다른 사상가들을 처음 소개한 사람이 스승 반 덴 엔덴이었을 것이다.(스티븐 내들러 지음 스피노자와 근대의 탄생’ 29 페이지) 클라라 마리아 반 덴 엔덴은 스피노자가 사랑했던, 스승 반 덴 엔덴의 딸이다.

 

널리 알려져 있지만 되풀이하자면 스피노자는 아버지의 유산을 예속으로 간주해 거부하고 렌즈 세공 장인이 되어 독립한 사람이고 유산을 가로챈 동생과 소송을 벌여 승리한 뒤 동생에게 재산을 다 돌려준 사람이고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교가 제의한 교수직도 공교육에 대한 불신과, 자신이 싫어하는 기독교적 가치를 가르칠 수 없다는 이유로 거부한 사람이다.

 

스피노자가 그 대학으로부터 받은 제안은 기존 종교 질서를 어지럽히지 않아야 한다는 조항이었다.(손기태 지음 고요한 폭풍, 스피노자’ 25 페이지) 자유인인 그는 그러나 유대교로부터 파문당하고 렌즈 깎는 일을 하다 폐질환으로 죽는데 그것은 세공 때 나온 유리 먼지 때문이었을 것이다.

 

스피노자 전문가 스티븐 내들러는 스피노자가 클라라 마리아 반 덴 엔덴과 사랑에 빠져 그녀와 결혼하고 싶다고 종종 말했으며 비록 그녀의 몸이 연약하고 기형적이었다 하더라도 그녀의 날카로운 정신과 뛰어난 학식에 마음을 빼앗겼다고 썼다.(‘스피노자 철학을 도발한 철학자‘ 223 페이지)

 

하지만 스피노자의 사랑은 그녀가 동료 학생인 테오도르 케르크링크(케르크링)와 결혼함으로써 슬프게 끝났다. ‘평생 독신을 유지한 그의 삶이 이 사건과 관련이 있는지, 있다면 어느 정도일지?’ 궁금하다.

 

어떻든 한 연구자는 스피노자를 원한도 가책도 없는 삶, 서로에게 죽음이 되지 않는 삶, 오직 긍정으로만 가득한 삶, 그런 삶만을 실천하고자 했던사람으로 소개한다.(이수영 지음 에티카, 자유와 긍정의 철학’ 16 페이지)

 

철학자 시인 서동욱은 스피노자를 “...모두가 증오했던 책의 저자/ 탐낼 것 없는 이 지위는/ 어이없이 덧없는 노력을 요구한다// 목적 없이 살아야 한다...”(시집 곡면의 힘수록 시 스피노자’: 109 페이지)란 말로 표현했다.

 

철학자 신승철은 스피노자의 에티카무의식, 욕망, 정동(情動) 등을 처음으로 다룬 책으로 알려져 있지만, 특이한 점은 성적 사랑에서 느끼는 질투에 대해서 언급한 최초의 책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사랑할수록 지혜로워진다’ 85, 86 페이지)

 

스피노자 철학에서 감정과 정동을 날카롭게 가르기는 어렵다. 하지만 대체로 감정은 일시적이고 우발적인 기분 및 고립된 상태의 기분을 의미하고 정동(情動; affect)은 움직임과 관련된 생각, 삶과 관련된 것. 돌봄, 살림, 보살핌, 섬김 등과 관련된 것을 의미한다. 정동은 나눌수록 더 커지고 풍부해지기 때문에 사랑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사랑할수록 지혜로워진다는 스피노자의 주저 에티카’(부제: ‘기하학적 순서로 증명된 윤리학’)를 자로 재고 칼로 자른 듯한 논리적 형식 속에 가장 비논리적인 영역의 정서, 사랑, 욕망의 자기 과정을 그려낸 책으로 정의한다. 물론 내 주된 관심은 사랑이 아니다. 그러니 질투는 당연히 아니다. 내가 관심 두는 것은 그의 삶과 무관할 수 없는 할머니의 삶이다.

 

그의 할머니는 마녀로 몰려 처형당한 분이다. 중요한 사실은 중세 유럽에서 종자, 발효, 요리, 식생 등에 관한 지혜를 갖고 있던 산파, 할머니, 寡婦 등이 마녀 누명을 썼다는 사실이다.

 

스피노자가 태어나기 몇 해 전인 1629년 독일에서 자행된 마녀사냥을 전한 한 책에 의하면 무고한 사람으로부터 마녀라는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심지어 머리에 알코올을 붓고 불을 붙이는 식의 잔혹한 고문도 빚어졌다.(박지형 지음 스피노자의 거미’ 67 페이지)

 

여담이지만 전기한 이수영의 고백이 내게는 흥미롭다. 대학 2학년 때 에티카를 사들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책을 펼쳐보았으나 참담하게도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으리라는 말로 유명한(물론 이 말은 종교개혁과 독일어 성서번역으로 이름 난 루터의 말이다.)

 

그의 철학을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는 것인데 지금 우리는 충실한 해설서들에 힘입어 꽤 전문적으로 에티카를 이해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다시 여담이지만 내 아이디 벤투의 스케치북3년 전 90세로 타계한 작가이자 평론가였던 존 버거의 책 제목이다.

 

벤투는 베네딕트의 줄임말로, 유대교로부터 파문당한 스피노자가 유대식 이름인 바루흐를 버리고 택한 라틴어 이름이다. 바루흐, 베네딕트 모두 축복받은 사람을 의미한다. 스피노자가 유대교로부터 파문당한 것은 24세 때였다. 그가 파문당한 이유는 신()을 연장(延長; extension)을 가진 존재로, 신을 자연(自然)으로 보았기 때문이다.(스티븐 내들러 지음 스피노자와 근대의 탄생’ 33, 34 페이지)

 

신승철 교수는 연결망의 지혜, 정동(情動) 속에서 싹튼 지혜 즉 생태적 지혜, 살림의 지혜, 정동의 지혜를 여성성의 지혜로 보았다.(‘사랑할수록 지혜로워진다’ 33 페이지) 최근 내가 주목하는 책은 토박이 지혜와 과학 그리고 식물이 가르쳐준 것들이란 부제를 가진 로빈 월 키머러(Robin Wall Kimmerer: 1953 - )향모(香茅)를 땋으며(Braiding Sweetgrass)’란 책이다.

 

언어 유희가 가능하다면 나는 향모(香茅)라는 말에서 향모(向慕)라는 말 즉 마음에서 우러나와 그리워한다는 말을 생각한다고 말하고 싶다.(내 주된 관심은 사랑이 아니라는 말과 모순되는가?)

 

북아메리카 원주민 출신 식물생태학자인 로빈 월 키머러는 속속들이 신비로우면서도 과학적이고, 성스러우면서도 역사적이고, 기발하면서도 슬기로운 여정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여성이란 평을 들었다.

 

김윤희, 송샘, 양명운, 한만형 등의 평등은 미래진행형 -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철학도 읽어야겠다. 여성이 사회로부터 배제되고 왜곡되는 과정과 그런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루소, , 칸트, 니체, 데리다, 아렌트 등의 철학자들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며, 그 속의 억압되고 소외된 여성을 말한 책이다.

 

너무 형이상학적인지 모르지만 이 책들이 생태, 숲은 물론 역사, 지질, 철학, 문학 공부에까지 두루 효과를 발하기를 바란다. 내가 알기로 형이상학이란 원리, 실재, 실체, 원인 등을 찾으려는 노력이다.: 이정우 지음 접힘과 펼쳐짐’ 223 페이지) 해는 지고 갈 길은 멀다는 의미의 일모도원(日暮途遠)의 심정이지만 행복하다는 생각으로 나를 속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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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의 결속은 깨어졌다. 인간은 마침내 그가 우주의 광대한 무관심 속에 홀로 내버려져 있음을, 그가 이 우주 속에서 순전히 우연에 의해서 생겨나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 우주의 그 어디에도 그의 운명이나 의무는 쓰여 있지 않다. 왕국을 선택하느냐 아니면 어둠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선택하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인간 자신에게 달려 있다.”

 

프랑스의 분자생물학자 자크 모노의 우연과 필연의 피날레 글이다. 10년 전 처음 읽은 이래 가끔 다시 읽지만 아직도 제대로 이해했는지 장담할 수 없는 책이다. 프랑수아 자콥의 생명의 논리, 유전의 역사역자(이정우 교수) 서문에 의하면 우연과 필연은 미시세계의 우연성과 거시세계의 필연성이 맺는 관계, 그리고 현대 사회의 가치 문제를 논한 책이다.

 

어떻든 모노는 모든 종교와 거의 대부분의 철학, 심지어 과학의 일부까지도 자기 자신의 우연성을 필사적으로 부인하려는 인간의 지칠 줄 모르는 영웅적 노력의 증거로 규정(궁리 출판사 번역본 71 페이지)한 데 이어 운명이란 진행되어 나가면서 쓰이는 것이지 결코 먼저 쓰여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을 했다.(205 페이지)

 

'우연과 필연이후 10년만에 읽은 책이 에드윈 풀러 토리의 뇌의 진화, 신의 출현이다. 토리는 죽음은 맞은 인간에게서 일어나는 현상을 상세히 언급했다. “사람이 죽으면 몇 시간 내에 피가 고인 피부에는 시반(屍斑)이 생기고 나머지 부위는 잿빛이 된다. 며칠 동안 사후경직으로 근육이 딱딱하게 굳었다가 부패가 시작된다.

 

최초로 부패하는 장기인 뇌는 아미노산과 지질로 분해되며, 회색의 점액이 되어 시신의 귀, , 입으로 흘러나온다... 신체 면역계에 의해 억제되어 있던 수천 수백만 마리의 장내 세균이 창자와 기타 장기를 분해하며 그 과정에서 가스를 배출하여 몸이 부풀어 오르는데 그로 인해...몸 바깥에서는 눈, , 생식기 주변에 maggot이 꼬여 피하지방을 분해하기 시작한다.

 

1주일이 경과할 무렵 잔뜩 부풀어오른 체내 장기들이 파열된다. 피부가 녹색이 되고 곳곳이 떨어져나간다. 이때쯤에는 몸 전체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maggot 무리 외에 근육조직을 선호하는 딱정벌레들이 합세한다. 2주일이 경과할 무렵의 시신은 사실상 용해된다. 허물어지고 푹 꺼져서 결국에는 땅으로 스며든다. 시체 썩는 냄새는 멀리서도 맡을 수 있으며 과일 썩는 냄새와 고기 썩는 냄새의 중간 정도로 강렬하고 역하다....”

 

이 리얼한 글 이후 토리는 우연과 필연의 피날레 글과 공명(共鳴)할 글을 소개한다. 영국의 의사이자 철학자 레이먼드 탤리스의 글이다. “한편 당신의 두개골은 지금 당신이 maggot에 대해 떠올리는 생각을 품어주듯 그 maggot들 또한 품어준다. 지금 당신에게 느껴지는 두개골의 말 없는 단단함은 바로 그런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당신의 머리는 누구의 편도 아니며 하물며 당신 편은 더더욱 아니다. 당신의 머리는 언젠가 자신을 둥지로 삼을 새의 울음에 무심하듯 당신의 슬픔, 두려움, 기쁨에도 무심하며, 당신에게 소중한 사람의 상을 맺게 해주는 빛을 환대하듯 당신의 눈구멍 틈새로 스르르 기어들어오는 뱀 또한 환대한다.

 

당신의 썩은 머리를 갉아먹고 그 위에서 폴짝거리며 자라는 생물체들은 당신의 생각이 얼마나 특별했는지, 독창적이었는지, 음란했는지 따위를 추호도 궁금해하지 않을 것이다.”(187, 188 페이지) 모노가 말한 '무관심'과 탤리스가 말한 추호도 궁금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 공명하는 것이다.

 

토리는 다른 사람의 일이었던 죽음이 자신에게도 일어나리라는 것을 이해하려면 과거로부터 축적된 경험을 활용하여 자신을 미래에 온전히 이론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투사(投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자전적 기억을 확보하는 것이다.

 

예컨대 자신 역시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예상하고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떠올려 보는 것이다. '뇌의 진화, 신의 출현'은 뇌가 진화함에 따라 신이 소환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일로만 알았던 죽음을 자신의 일로 상상하려면 자신을 미래로 투사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 다른 부분을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을 책이다. 물론 다른 부분도 꼼꼼히 음미하면 더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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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새내에 가서 모셔온 여성학 연구자 김미선 님의 2012년 출간 책 명동 아가씨’. 일부를 읽었는데 벌써 이 분의 후속작이 있는지 검색을 한다. 아직 없다. 아쉽다. 같은 시대, 같은 공간에서 함께했다 할지라도 누구의 경험을 중심으로 해석되고 쓰이느냐에 따라 그 공간의 역사는 달라진다는 말을 하는 책.

 

어머니께 딸이, 딸에게 엄마가란 조주연 교수의 글을 처음 읽었을 때만큼 신선함을 느꼈다. 차이가 있다면 김미선 님의 글은 책 전체와 관련이 있는, 공간에 관한 공적 담론이고 조주연 교수의 글은 책 전체와 특별히 관계가 있지는 않은, 사적인 글이라는 점이다. 김미선 님은 현재를 살아가는 나 자신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급진적인 신여성들의 삶과 행보에 매혹되었으며, 참담하기 이를 데 없는 그들의 비극적인 죽음에 안타까워했다는 말을 한다.

 

신여성, 하면 나혜석, 김명순, 김일엽 정도를 아는 나에게는 이름 없는 신여성들을 알 수 있는 기회가 온 셈이다. ‘명동 아가씨책 날개에 이런 글이 있다. 2012년 가을부터 미국 위스콘신대학교 역사학과 박사 과정에 진학하여 한국 여성사와 동아시아사를 공부할 예정이라는. 그의 신간 출간 소식이 들려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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