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정리를 단행했다. 몇 달간 무분별하게 사 방바닥에까지 쌓아둔 책들, 사놓고 먹지 않아 유통 기한이 지난 약들, 언젠가 읽을 것이라는 생각에 여기저기서 가져와 모아둔 인쇄물들이 주대상이었다. ..더이상 읽을 가능성이 없지만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붙잡아 두고 있던 책들을 버리고 그 자리에 최근 샀으나 공간이 없어 바닥에 놓아둔 책들을 꽂았고 먼지를 털어내고 필요 없는 잡동사니들도 버렸다.

 

공간이 넓어졌고 마음은 그만큼 가벼워졌다. 번뇌와 아집을 버리지 못한 채 살았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정리(整理)는 정리(情理)에 연계되어 버리지 못하고 두고 있던 것들과 정리(定離)한 것이기에 정리(正理)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공간만 차지하다시피 하던 책을 버리니 새로 산 책들에게는 기회가 되는 것이고 나에게는 어디 있는지도 몰라 읽지 못하던 책들이 눈에 띄니 일목요연의 통찰력이 생긴 셈이다.

 

사놓고 먹지 않은 약을 보면 누구에게인지 모르나 죄스러운 마음이 든다. 살 때는 꼭 필요하고 무언가 의미심장한 결과가 생기리라 생각했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흐지부지하다가 결국 돈을 버린 셈이기에 그렇다.

 

오늘 내 정리(整理)는 반하백출천마탕을 오래 벼르기만 하다가 주문해 먹고 있는 내 근황과 같은 차원의 결단인지도 모른다. 올해도 벌써 반환점에 접어들었고 책도 제재로 읽지 못하고 체력은 떨어져 힘들어하기만 하는 내 사정을 심각하게 고려한 결과 무언가 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을 갖게 된 결과이리라. 생강고(生薑膏)도 주문할 생각이다. 공자(孔子)께서 불철강식(不撤薑食)했지만 불다식(不多食)했다던 음식인 생강을 진액이 나오도록 오랜 끓인 음식이다. 이 역시 반하백출천마탕과 같은 목표로 구입하려는 음식이다.

 

내일은 210시간의 숲 해설 수업이 시작되는 날이다. 이런 저런 일들이 겹쳐 바쁘고 힘들지만 열심히 할 생각이다. 욕심으로 무리하게 신청한 것들은 포기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중요하지 않은 것들은 가려내고 집중할 것에만 집중해야 한다. 나는 그간 다른 사람들을 화제에 많이 올린 점을 반성한다. 변변히 아는 것도 없으면서 아는 척 했고 잘 나지도 못하면서 잘난 척 했다.

 

시간이 이렇게 가면 머지 않아 2021년이 되었다는 소리가 들릴 것이고 나는 불가피하게 화들짝 놀라며 상투적 반성과 오래된 다짐을 되풀이 할 것이 분명하다. 시간은 내 불성실과 치열(熾熱)하지 않은 삶의 결과 빠르게 느껴지지만 현대를 사는 누구나 어느 정도는 피할 수 없이 느끼는 것이리라.

 

두 달 후 치러야 할 새로운 목표로 인해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식의 읽기를 하게 될 것 같다. 얼마 되지 않는 기간이기에 읽고 싶은 책을 읽지 못하는 불편함이나 아쉬움은 크지 않을 것이다. 연천 재난기본소득으로 두 권의 책을 구입했다. 경기도 재난 기본소득으로도 두 권을 샀다. 남은 돈으로 살 책이 몇 권 더 있다.

 

무작정 서울에 가 나름으로 고른다고는 하지만 충동적으로 그리고 무원칙하게 책을 사다가 지방 소도시의 책방 사정 때문에 치밀하게 돈 계산을 하고 주문을 하고 받으러 가는 시스템에 잠시이지만 들어왔기에 나를 돌아보고 계획적인 구입을 하는 방향으로 내가 가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 사실 책 구입이 여의치 않아 평소 같으면 사지 않을 먹을 것들을 하릴 없이 구입하는 바람에 대책 없이 엥겔 계수만 올라간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마음이 어수선하면 방 정리를 추천한다. 많은 긍정적인 변화가 생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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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 출판사 대표이자 숲해설사인 강맑실 님의 경희궁 숲 해설을 들었다. 경희궁에 초점을 두고 찾아가 들었지만 사실 주인공은 나무와 꽃이었다. 수피가 특이한 모과나무도 보았고 열매가 등잔불을 밝히는 데 사용된 쉬나무와 (선비를 상징하는) 회화나무가 나란히 있는 장면도 보았다.

 

설명에 의하면 두 나무는 선비들이 이사갈 때 가지고 간 나무였다고 한다. 현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의 나무이지만 통의동 백송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나이테 분석 결과 일제 시기에 자라지 않았다는 나무다. 파란과 고통의 시대상황이 압박으로 작용한 탓이리라.

 

자료에 의하면 백송은 10년이 될 때까지 높이가 1미터도 채 되지 않을 정도로 천천히 자라다가 15년이 지나면 생장이 왕성하다.(전영우 지음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소나무’ 212 페이지) 이 부분이 마음에 든다. 바람(희망)을 투영해 들을 만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백송은 3엽송이지만 2엽송인 소나무나 해송보다 5엽송인 잣나무와 더 가까운 사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관다발을 기준으로 분류하기 때문이다. 즉 백송은 잣나무처럼 관다발이 하나이고 소나무나 해송은 둘이다.(전영우 지음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소나무’ 212 페이지)

 

조선왕조실록에 소나무 기록이 많다. 벌레를 잡도록 했다는 내용, 벼락 맞았다는 내용, 수피를 구황식품으로 사용하라고 허락했다는 내용, 능에 심었다는 내용, 큰 바람이 불어 뿌리가 뽑혔다는 내용, 금산(禁山) 명령을 어기고 베어 처벌을 받았다는 내용, 벌목을 허락했다는 내용,

 

비보(裨補)를 위해 심었다는 내용, 벌레가 잎을 갉아먹었다는 내용, 능의 나무가 쓰러지자 위안제를 지냈다는 내용, 임금의 관으로 사용되는 품질 좋은 소나무를 황장목(黃腸木)이라 한다는 내용, 옛 중국에서는 천자의 무덤에 심은 나무라는 내용 등이다. 소나무 관련 내용이 꽤 많음을 알 수 있다.

 

소나무가 우리에게 친숙하고 흔한 것은 우리가 사랑하는 나무 때문이기도 하지만 오랜 세월을 이기고 살아남은 소나무의 강인한 유전형질 때문이다. 이 부분이 백송 이야기(10년이 지나도 1미터도 채 안 되지만 15년이 되면 생장이 왕성하다는 내용. 백송에게 그 시기는 내실을 다지는 시기일 것이다.)와 공명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소나무에는 이래저래 이야기 거리가 많다. 하기야 유독 소나무에만 해당하는 사안은 아니리라. 해설 앞 부분에서 나왔듯 동물과 다른 식물의 사정이 반영되어 참으로 다양한 생식기관()을 가진 식물 자체는 그 만큼 이야기가 많은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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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단단함 - 세상.영화.책
오길영 지음 / 소명출판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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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를 실험하는 글쓰기, 감성적 체험의 글이 아닌 엄정한 성찰에 바탕을 둔 진실의 정신이 작동하는 글은 어떤 장르의 글일까? 바로 에세이다. 에세이에 필요한 것은 현란한 글재주가 아닌 지성적 사유의 표현이다. 저자 오길영 교수는 신영복 선생을 거론하며 에세이를 예술적 글쓰기의 독자적 형식이라 표현한다.(92 페이지)

 

그는 이런 정리된 글로 에세이 모음집인 아름다운 단단함을 시작한다. 책 제목인 아름다운 단단함은 김수영 시인이 사랑의 변주곡에서 운을 뗀 아름다운 단단함이란 표현에서 비롯되었다. 세상, 영화, 책 등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문학평론가이지만 좁은 의미의 문학보다 더 중요한 일이 세상에는 많다고 생각(57 페이지)하는 저자는 문학을 주어진 도덕에 물음을 던지고 더 나은 삶을 사유하고 상상하는 장르로 본다.(19 페이지)

 

저자가 배격하는 것은 작품 물신주의(작품을 작가와 분리해 바라보는 태도), 그리고 문학자족주의다. 저자는 삶과 분리되지 않은 아름다움의 가치를 긍정한다. 저자는 말한다. 삶과 분리된 작품의 아름다움은 공허하다고.(19 페이지) 저자가 생각하는 훌륭한 문학은 극한적인 삶에서 발생하는 극한적 사유의 표현이다.

 

저자의 글에서 나는 물적 토대 또는 생산력의 중요성이 강조된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이런 문장에서 그런 점이 드러난다. “한국사회의 물적 생산성이 과연 다수 시민들이 즉자적 생존을 걱정할 정도로 낮은가? 그렇지 않다면 답은 다른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다른 사회를 상상해야 할 것이다.”(33 페이지)

 

이는 먹고사니즘에 매몰된 우리 대학의 현주소를 논하는 자리에서 발해진 말이다. 다른 사회란 말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저자는 문학사의 평가에서 남는 것은 세월을 견디고 살아남는 작품뿐이라는 자신의 말이 구태의연하다면 그런 비평가로 남겠다는(27 페이지) 비평가, 불화나 고독감에 더 친화감을 느끼는(38 페이지) 비평가다.

 

저자는 대상의 핵심을 파악한 정확한 시를 좋은 시라 말하는 비평가, 시에서도 관건은 감각적 지성이라 말하는 비평가다. 같은 맥락에서 문학에 필요한 것은 감성, 감상, 감각만이 아닌 더 많은 냉철함, 자기 객관화, 지성(58 페이지)이라는 말이 읽힌다. 저자가 세상을 보는 주요 키워드 중 하나는 고통이다. 주체(the Subject)는 체제의 신하(the subject)이기에 그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라는 말에서 그의 의도를 알 수 있다.

 

인간은 주체가 되는 과정에서 하나를 얻는 대신 하나를 잃는 존재다. 저자가 의거하는 원칙은 유물론적 원칙이다. 이는 유아론(唯我論)과 대비된다. 유아론은 아몰랑의 현학적 버전이다. 저자에 의하면 유물론자는 자기변명을 하지 않는다. 저자에게서 느껴지는 바는 쿨함이다. 냉정이라고 표현해도 무리는 없겠다.

 

그런 점은 세상을 실상 그대로 본다는 의미의 여실지견이라는 말을 연상하게 할 만큼 불교적이다. 물론 저자의 그런 점이 의도의 결과인지는 모른다. 쿨함이라 했지만 저자는 에게 타자는 냉엄한 존재이고 그것이 의 마음에 들고 안 들고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 세상의 냉엄한 이치라고 말한다.(103 페이지)

 

유아론은 라캉이 말하는 상상계의 논리를 따른다. 상상계의 아이에게 주체와 세계는 분리되지 않는다. 상상계의 아이에게 욕망이 유예되거나 성취되지 않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다. 저자는 나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란 라캉의 말을, 타자들은 나의 욕망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말로 풀이한다. (105 페이지)

 

그에 의하면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나의 욕망이 아닌 타자의 욕망이라는 시각에서 현실을 보는 것이다. 세 부분(세상, 영화, ) 가운데 나에게는 여전히 낯선 장르가 영화다. 그래서 저자의 영화론을 눈여겨 보았다. 저자는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 문학평론가로 자신을 소개한다.

 

저자는 사바하(娑婆訶)라는 영화 -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소서란 의미의 불교 영화 - 를 통해 높고 고귀한 곳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낮고 비천한 짐승들의 세계를 바라보며 그 짐승들의 구원을 위해 자신을 던지는 것에 종교의 숭고함이 있다고 말한다. 이어 그런 숭고함이 사라져 가는 제도권 종교를 생각하게 된다고 결론짓는다.

 

곁에 두고 싶은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란 제목의 글을 보자.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몇 편을 함께 논한 글이다. 데뷔작인 환상의 빛과 최근작(2016)바닷마을 다이어리를 연이어 보았다고 말하며 저자는 그의 영화에서 지속되는 것과 달라진 것들을 비교하게 된다고 덧붙인다.(그것이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겠다. 영화를 분석하는 형식 또는 방식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작품에 대한 가치 판단을 떠나 그냥 소장하고 싶은 책이나 영화가 있다고 말한다. 살벌해져 가는 세상에 마음이 우울하거나 낙담할 때 다시 보고 읽으면서 위로를 얻을 수 있는 책이나 영화라는 말이다. 책 가운데 흥미롭게 본 작품은 내가 18권이나 소장하고 있는 이정우 교수의 책 가운데 한 권인 영혼론 입문을 소개한 글이다.

 

저자가 본 영혼론 입문은 영혼이라는 화두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통념을 해체한 책이다. “서구 근대 철학에 오면 영혼의 개념은 점차 사라진다. 그리고 그 자리를 정신 혹은 마음, 의식 등이 대체한다. 이제 영혼이라는 말은 거의 자취를 감춘다.”(249 페이지) 일정한 실체로서의 영혼/ 정신이 아니라 인식론적 능력/ 기능으로서의 마음, 의식이 문제가 된다.

 

그리스 철학에서는 감각과 지각이 구분되지 않았다. 감각과 지각 신체와 결부되어 있다. 책편에 실린 글들이 역시 묵직하다는 느낌을 준다. 사상과 정치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박찬국 교수의 하이데거와 나치즘을 소개한 글이 대표적이다. 박찬국 교수는 하이데거의 정치적 견해와 행위는 악성의 것이었으며 그것들은 그의 철학에 근거한 것이라는 입장을 따르되 그것을 수정한다.

 

하이데거의 정치적 견해와 행위와 그의 철학 사이의 필연적 관계는 부인하되 양자 간에 우연 이상의 관계가 존재한다고 보는 입장을 취한 것이다. 박찬국 교수는 하이데거의 나치 참여가 비록 그것이 사후적으로 볼 때 이해할 수 없는 치명적 오류였지만 자신의 시대와 사유를 결합시키려는, 시대와의 진지한 대결의 결과였다고 보는 것이다.(274 페이지)

 

저자는 하이데거 철학의 의미를 서구 형이상학의 극복이라는 추상적인 담론의 차원에서만 이해하려는 하이데거주의자들이 새겨 들을 주장이라고 정리한다.(277 페이지) 진은영 교수의 순수이성비판, 이성을 법정에 세우다‘(를 소개한 글)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매개라는 말이 그 중 하나다. 매개 없이 우리는 경험할 수도, 사랑할 수도, 소통할 수도 없다는 칸트의 아이디어는 철학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분야에 적용된다는 말이다.

 

대중들이 스스로 실천하는 자기 운동은 언제나 미리 구성된 질서, 보편적인 선험적 매개체에 굴복할 때에만 타당한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들뢰즈가 칸트의 정언명법을 다른 누구의 도움 없이도 네 스스로 무언가를 결정하며 행위해야 한다는 사실 즉 자기입법의 사실이 의무로 정해져 있다는 것으로 해석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가장 중요하기에 가장 끝에 배치하게 된 진술은 맥락과 분리된 작품의 이름다움만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작품 물신주의는 문제적이란 사실이다, 또한 맑스나 들뢰즈 같은 철저한 유물론자에게서 배운 사고의 관점은 원래부터의 아름다움, 작품만의 아름다움은 없다는 점이라는 말이다.

 

에세이에 현란한 글재주가 아닌 지성적 사유의 표현이 필요하다는 저자의 말대로 저자의 문제는 간결하고 지성적이다.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설명하며 한 대상의 핵심을 정확히 파악한 시가 좋은 시”, “시에서도 관건은 지성, 다시 말해 감각적 지성이란 말이 인상적으로 읽힌다. 정확한 감정을 정확한 언어로 표현하는 것을 좋은 시라 생각하는 저자의 시론(詩論)을 보게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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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은 때로 생성의 원천이기 때문에 영혼은 반드시 혼돈의 용암(熔岩)을 필요로 한다." 나다공동체 대표 김화영 교수의 '비극을 견디고 주체로 농담하기'에 나오는 말이다.(172 페이지)

 

나는 이 빛나는 상상력의 글을 보며 재미 없는 과학 이야기를 생각한다. 융해(融解; fusion, melting)는 고체가 액체로 변하는(녹는) 것이고, 용해(熔解; dissolution)는 물질이 액체 속에서 균일하게 녹아 용액이 만들어지는 일(물에 소금이 녹는 것)이라는.

 

응고(凝固; coagulation, clotting)는 액체가 고체가 되는 것이고, 액화(液化: liquefaction)는 기체가 액체가 되는 것이라는. 기화(氣化; evaporation)는 액체가 기체가 되는 것이라는.

 

중요한 사실은 융()과 용()이 모두 녹는다는 뜻이란 점이다. 더 중요한 것은 고체에서 액체 상태를 거치지 않고 바로 기체가 되는 것뿐 아니라 기체가 액체 상태를 거치지 않고 바로 고체가 되는 것도 승화(昇華)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고체에서 기체가 되는 것만을 승화로 알고 있다. 그래서 부정적이거나 이기적인 욕망을 긍정적이거나 이타적인 욕망으로 바꾸는 것을 승화라 생각한다. 긍정적이거나 이타적인 욕망에서 부정적이거나 이기적인 욕망으로 돌아서는 것을 승화라고 하는 것은 어의상 그 반대의 경우도 승화이기에 문제가 있다.

 

승화라는 말 대신 마음을 돌이키는 순간, 번쩍 혹은 아하 하는 초월과의 만남을 통해 삶의 전환점을 만들어내는 것을 의미하는 메타노이아란 말을 쓰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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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화, 금요일에 반납함의 책을 수거하는 것을 화, 목요일에 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어제(27일 수요일) 저녁 반납함에 열 권 중 여섯 권을 넣고 오늘(28일 목요일) 도서관에 가 네 권은 다시 빌리고 여섯 권은 새로운 것들로 빌리려 했다. 직원이 여섯 권이 반납 처리되지 않아 네 권만 빌리실 수 있다고 말했다.

 

다시 빌리려던 네 권 가운데 한 권만을 다시 빌리고 세 권은 새로 빌렸다. 이렇게 수습했지만 야구로 치자면 베이스를 적절하게 앞둔 거리에서 슬라이딩을 한 것이 아니라 너무 일찍 슬라이딩을 해 어정쩡한 곳에서 아웃 당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열 권을 빌리려다가 여섯 권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손가락을 잘라내는 것 같았다고 하면 지나칠까? 하지만 오늘 일이 꼭 나쁜 상황이었다고 할 수는 없으리라. 내가 정말 원하는 책 또는 필요로 하는 책이 무엇인지 알았기 때문이다. 친구와의 통화에서 나 잘 했지?”라고 묻자 친구는 호응하며 열 권 다 들고 오려면 힘들었을 텐데 다행이라고 말해주었다. 친구가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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