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16주 일정으로 계획된 건국대 통일인문학 연구단의 연천 강의를 듣고 있다. 간략하게나마 앙리 르페브르 이야기도 언급되었다. 여성학자 정희진씨가 언급한 앙리 르페브르 이야기를 떠올리게 된다. 르페브르는 시간 개념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온 인류 지성사를 비판하고 공간 생산을 사회변화의 주된 요소로 주장한 철학자다.
시간 순서에 따라 진보와 발전의 정도가 정해지는 수직적 – 시간 중심적 세계관은 문제다. 이 세계관에서는 남성이나 서구가 발달의 기준, 모델이라는 가정 아래 여성, 장애인, 유색 인종은 남성, 비장애인, 서구의 앞서간 시간을 따라간다고 여겨진다.(‘섹슈얼리티 강의, 두 번째’ 수록 정희진 글 ‘성적 자기결정권을 넘어서’ 222 페이지)
공간은 장소와 다르다. 공간은 사물들을 담는 그릇 같은 것이고 장소는 사물들로 이루어져 있다.(공간만을 배타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 기하학이다.) 르페브르는 그릇으로서의 공간 개념을 공간에 대한 본질화의 오류라고 비판했다. 정희진씨는 공간을 그릇으로 인식하는 것(공간의 대상화)은 위계적 인식론을 동반한다고 말하며 엘리자베스 그로츠의 공간론을 소개한다.
그로츠는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공간을 추상적 공간이 아니라 사회적 공간으로 보았다. 그로츠에 의하면 사회적 공간은 운동하고 변화하면서 다른 공간을 만드는, 계속적인 다른 거주의 가능성이다. 통일인문학 연구단의 워크북에 이런 구절이 있다. “사회적 공간은 서로 침투하면서 서로서로 포개진다.” 엘리자베스 그로츠의 문제의식과 공명함을 알 수 있다.
워크북에는 이런 글도 있다. “사회적 공간 특히 도시공간은 고전적인 수학의 동질성과 등위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기보다 얇은 조각들이 층을 이루고 있는 밀 푀이유(mille – feuille; 천 개의 나뭇잎) 페이스트리를 연상시키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나는 이 부분에서 DMZ를 평화의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 즉 다른 거주의 가능성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겠는지?란 생각을 한다.
사물과 현상의 본질과 기원을 추구하는 서구의 이성 중심주의가 기본적으로 시간 개념에 근거하고 있다는 권정화의 논의도 있다. 이 논의를 통과해 ‘되기‘론으로 가볼만 하다. 어떤 배경에서인가? 노마디즘(’유목주의; 遊牧主義’)이란 말이 유행하고 있는 현실이 배경이다. 나는 지난 번 동료 해설사에게 스마트폰과 노트북으로 무장하고 자동차로 기동력을 발휘하며 이곳 저곳 다니는 것을 노마디즘으로 알고 있는 것은 잘못이라는 말을 했다.
유목주의란 사막이건 시베리아건 자기가 선 자리를 초원으로 바꿀 수 있는 것, 그렇지만 그 초원을 결코 고향으로 소유하지 않는 것, 거기에서 더 나아가 고향이라는 표상성 자체를 제거해버리는 것이다.(‘사회변동과 여성주체의 도전’ 수록 고미숙 글 ‘노마디즘과 ’여성 - 되기‘ 219 페이지)
되기란 이전과는 다른 존재로 변이하고 생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정우 교수는 되기의 존재론에 대해 말한다. 현실성보다 더 많은 존재, 실존하는 세계보다 더 큰 세계를 사유할 수 있는 윤명을 타고 난 존재인 인간은 늘 묻는다는 것이다. 그런 안목으로 물을 수 있는 것이 우리가 배우는 DMZ에 대한 것이리라. 2회차 워크북에 이런 내용들이 있다. “그동안 DMZ, 하면 떠올랐던 생각이나 이미지들은 무엇인가요?”, “두 번의 강의를 들으면서 DMZ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거나 생각이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
연천은 파주, 김포(이상 경기도), 철원, 화천, 양구, 인제, 고성(이상 강원도), 강화, 옹진(이상 인천) 등과 함께 DMZ와 맞닿은 10개 지자체들 가운데 하나다. 당연히 초점은 변화다. 구체적으로 말해 적대적 서사의 극복이다. 르페브르는 지배적 공간과는 다른 이질성을 보이는 차이의 공간을 의미하는 헤테로토피아란 개념을 제시했다.
그곳에서는 다른 무엇인가가 실현 가능할 뿐만 아니라 혁명의 궤도를 정하는 토대가 되기도 한다.(데이비드 하비 지음 ’반란의 도시‘ 20 페이지) 하비는 르페브르의 도시권을 언급한다. “도시권은 도시 일상생활이 쇠퇴하는 위기에서 비롯하는 실존적 고통에 대한 반응이라는 의미에서 호소였다. 또 도시권은 이 위기를 똑똑히 직시해 대안적 도시생활을 창조하라는 명령을 담고 있다는 의미에서 요구였다. 여기서 르페브르가 말하는 대안적 도시생활이란 소외가 덜하고, 더 의미 있고 활기가 넘치는 것이지만 생성과 만남(두려움과 즐거움이 교차하는 만남)의 여지는 물론 미지의 새로움을 끊임없이 추구할 여지가 열린 감동적이고 변증법적인 도시생활이었다.”(데이비드 하비 지음 ’반란의 도시‘ 9 페이지)
서울 답사를 종로, 중구 중심으로 해온 입장에서 그간 광화문과 서울역사박물관 앞 거리 등의 중심지를 하지 않은 것이 마음에 걸린다. 도시론, 공간론 등으로 새롭게 보는 광화문과 서울역사박물관 앞 거리 답사를 가을쯤 시연(示演)하고 싶다. 르페브르, 하비, 그리고 최민아 등의 논의로부터 단서를 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