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자식물(속씨식물)의 화분의 기능 형태학적 연구 논문으로 박사가 된 이상태 교수의 식물의 역사에서 수 백개의 아미노산으로 이루어진 단백질, 수 천개의 뉴클레오티드로 이루어진 핵산으로 구성된 세포 이야기를 읽는다. 프랑수아 자콥(1910-1976)'파리, 생쥐, 그리고 인간'의 마지막 구절에서 우리는 핵산이 기억과, 단백질이 욕망과 나란히 언급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자콥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우리는 핵산과 기억, 욕망과 단백질의 가공할 혼합물이다. 저물어 가고 있는 이번 세기에는 핵산과 단백질이 우리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았다. 다음 세기의 관심사는 기억과 욕망이 될 것이다. 이러한 물음들에 대해 누가 대답해 줄 것인가?"

 

자콥의 말은 환원적(reductionism)으로만 보던 생명현상을 창발적으로 보려는 생물학의 변화를 짐작하게 하는 말이다. 환원주의는 여러 차원에서 논의되었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인상적이고 간결한 설명은 감정의 분자라는 책에서 저자 캔더스 퍼트가 제시한 개념이다.

 

퍼트는 환원주의를 가장 작은 부분들을 조사한 뒤 그것들을 외삽(外揷 - extrapolation; 수학에서 원래의 관찰 범위를 넘어서서 다른 변수와의 관계에 기초하여 변수의 값을 추정하는 과정)하여 전체에 관한 보편적인 가정을 이끌어냄으로써 삶을 이해하려는 시도로 설명했다.

 

'파리, 생쥐, 그리고 인간'의 번역자는 서양과학의 토대를 이루는 환원주의적 성격은 지속적 과학 발달과 더불어 학문에 대한 전문성을 요구하게 되어 유전학과 생화학, 생물학과 물리학, 인문학과 자연과학, 과학과 예술의 각 분야에서 소수의 전문가와 다수의 문외한들이 존재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자콥은 생명현상을 레고 놀이에 비유했다. 생명계는 레고 놀이와 유사한 것으로 요소들이 거의 고정된 조합체로 형성된 것이며, 복잡한 작용 방식을 결정하는 유전자나 유전자군의 조각들이 다양한 배열에 따라 조립된 것이란 의미이다.

 

진화에 의해 수반된 복잡성은 이미 존재했던 요소들이 새롭게 재정비되어 형성된 것으로 새로운 형태, 새로운 표현형의 출현은 종종 이 동일한 요소들의 참신한 조합에서 형성되는 것이라는 의미다.

 

자콥의 책에는 전갈과 개구리 이야기도 나온다. 강을 건너야 하는 전갈이 헤엄을 치지 못하자 개구리에게 부탁해 업고 강을 건너달라고 부탁한다. 개구리는 전갈에게 넌 나를 찌를 것이라 말한다. 그러자 전갈이 그러면 둘 다 빠져죽을 테니 그러지 않을 것이라 말한다. 개구리는 반신반의하며 전갈을 업고 강을 건너게 된다.

 

중간쯤에 이르자 전갈이 개구리를 찌르는 사태가 일어나고 만다. 개구리는 죽어가면서 물었다. 왜 나를 찌른 것이냐고. 전갈은 천성 탓이라 답했다. 이 이야기를 전하며 자콥은 전갈은 찌르느냐 마느냐라는 두 가지 선택 외의 다른 가능성은 없기에 자유의지가 전혀 없는 멍청이에 불과하지만 우리는 전갈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우리 역시, 우리의 수준에서 우리의 방식대로, 우리의 본성 속에 갇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콥은 생물학의 역사는 유물론과 환원론, 그리고 생물계 구조와 기능의 단위체를 향하여 계획 없이 나아가는, 혼돈스런 긴 행로와도 같다는 말을 한다. 자콥에 의하면 파리는 생물학의 가장 근본적 문제들 중 하나인 배() 발생 연구를 위해 선택되었다.

 

자콥은 생쥐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자콥은 이 동물이 특별히 특성 종양을 가지고 있어서 연구 대상으로 선택되었다고 말한다. 828일 광화문 해설 시간에 염상섭 좌상을 주요하게 다루어야 하는 나로서는 그의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단편 소설에서 개구리가 실험대상으로 나오지만 생물학 실험 또는 연구의 주된 대상은 파리와 생쥐였다.

 

눈에 띄는 것은 다음의 공통점이다. 식물에 대해 관심과 궁금증이 많은 분들을 위해 오래전부터 전문적이지만 그리 어렵지 않은 내용으로 책을 쓰고 싶었다는 이상태 교수의 글과 자콥이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도 쉽게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작지만 위대한 책을 썼다는 파리, 생쥐, 그리고 인간의 번역자의 글이다.

 

쉽고 간결하고 의미까지 잘 담는다면 금상첨화이리라. 물론 우리는 우리 역시, 우리의 수준에서 우리의 방식대로, 우리의 본성 속에 갇혀 있다는 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쉽고 간결하고 의미까지 잘 담은 책이 아니라 해도 실망하거나 힘들어 할 필요는 없다. “생각하는 노동이자 온몸으로 수행하는 수련인 독서”(여성학자 정희진씨의 말)는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새롭게 받아들인 타자의 글을 자신의 기존 지식장에 재배치하는 지식 생산 과정에 쉬움까지 요구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지나친 생각이다. 아직 접하지 못한 책을 만나면 좋은 벗을 얻은 것처럼 생각하고, 이미 접한 책을 만나면 옛 벗을 만난 듯 하라(독미견서 여봉양사; 讀未見書 如逢良士, 독이견서 여우고인; 讀已見書 如遇故人)는 말을 조금 바꿔 어려운 책이라도 만나면 좋은 벗을 만난 것처럼 생각하고, 전문적인 의미를 쉬운 표현으로 담아낸 책을 만나면 옛 벗을 만난 듯 여기면 된다고 말하고 싶다.

 

물론 그런 대세와 무관하게 늘 쉽게 쓰도록 애쓰는 것은 내가 자발적으로 스스로 부과한 과제이자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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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도서관 숲
김외정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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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은 인류가 99 퍼센트의 시간을 함께 한 생명의 터전이다. 나도 당연히 그런 조건의 산물이다. 내가 로망으로 여기는 곳이 있다. 침엽수림인 전나무 숲길이다. 침엽수는 활엽수에 비해 피톤치드를 더 많이 생산한다. 활엽수림에 비해 부엽토(腐葉土)가 적어 부족한 양분을 보충하기 위해 아미노산 생산에 필요한 피톤치드를 대량 생산하는 것이다.

 

이는 일본 바이오메틱 연구소의 실험 결과 밝혀진 사실이다. 붓다 사후 앞에 칠엽수(七葉樹)가 우거진 칠엽굴에서 결집을 한 이야기(마로니에 공원)와 학림(鶴林)을 이야기했었다. 보리수 아래에서 석가모니가 수행을 할 때 숲 속 피톤치드가 깨달음에 이르도록 큰 도움을 줬다고도 볼 수 있겠다. 상상으로 알아야 할 바다. 물론 숲은 석가모니의 고행 장소이기도 했다.

 

피톤치드는 후각에 작용한다. 후각이 미각, 청각, 촉각, 시각보다 먼저 우리의 몸에 작용한다. 향기는 인간의 사고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숲은 바다에도 없어서는 안 되는 자산이다. 남해 물건리의 방조어부림이 대표적이다. 물건리는 “..남해 물건리에서 미조항으로 가는 삼십 리 물미 해안/ 허리에 낭창낭창 감기는 바람을 밀어내며..”란 고두현 시인의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란 시에도 나오는 곳이다.

 

놀랍게도 이 방재림은 조선시대인 350년 전에 시작되었다. 도시에도 당연히 숲은 보물섬 같은 곳이다. 도시 숲이 경쟁력이란 말이 있을 정도다. 숲의 총량과 행복감의 총량은 상당 부분 비례한다. 인류의 삶은 철저히 자연에 의존해왔고 반드시 자연에 의존해야 하기에 자연을 찾는 것은 본능적이고 근원적이다.

 

숲에 가면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나무가 소나무다. 소나무는 1930년대 우리나라 산림면적의 75퍼센트를 차지했으나 80여년 후인 현재는 25퍼센트로 줄어들었다. 우리나라의 소나무는 지역에 따라 줄기가 곧게 자라는 성질(통직성; 通直性)과 굽어 자라는 성질(만곡성; 彎曲性)을 지녔다.

 

금강산에서 울진까지 동해안을 따라 자라는 소나무는 습기를 가득 머금은 습설(濕雪)의 무게에 부러지지 않고 잘 견디도록 줄기는 곧추서고 가지는 짧고 가늘게 변했다. 농사를 짓기 위해 숲을 개간하면서 잘린 소나무는 죽지만 참나무는 더욱 많은 가지가 나와 자랄 수 있다. 참나무는 산 높이에 따라 각기 터를 잡고 있다. 가장 아래서부터 상수리, 굴참나무, 졸참나무, 갈참나무, 신갈나무가 자란다. () 사이의 하이브리드가 가장 발달한 나무가 참나무다.

 

변종과 잡종이 많이 식별하기 어려운 참나무류에서 멀리서도 식별할 수 있는 종이 겨울철 떡갈나무다. 잎자루와 가지의 경계에 생기는 떨켜세포가 잘 형성되지 않아 시든 잎이 매달려 있기 때문이다.(일반적으로 떨켜세포는 시든 잎을 자연스럽게 떨어져 나가게 한다.) 참나무 섬유소를 분해하여 먹고 사는 것이 표고버섯이다.

 

나무 둘레를 굵게 하는 형성층이라는 세포분열층이 퇴화한 대나무는 조직 해부학적으로는 풀이지만 형성층이 있다가 퇴화한 것이기에 볏과의 나무로 인정한다. 대나무는 나무도 닮고 풀도 닮은 중간적 식물의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 어느 쪽도 닮지 않은 독특한 생활 특성을 보이기도 한다. 감자와 유사한 생태로서 바로 땅속줄기에 의해 오랜 세월 영양 번식하면서 군락이 성장하기 때문에 좀체 꽃이 피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60년마다 대나무가 꽃 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꽃 없이도 오랜 세월 잘 번성하던 대나무가 갑자기 군락 전체가 고사(枯死)하기로 작정하고 꽃을 피우는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대부분의 나무 씨앗은 중력을 이기며 바람을 타고 DNA를 전파하는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버드나무는 5월이 되면 종자의 운반 거리를 늘리기 위해 씨앗에 솜털(종모; 種毛)을 날려보낸다. 그런데 종모를 꽃가루로 오인한 사람들이 앨러지를 염려해 버드나무류 가로수를 많이 제거했다. 식물은 복잡한 뇌를 포기한 대신 정교한 호르몬으로 주위를 인식하고 반응하며 햇빛과 양분을 얻고 꽃과 잎을 피우며 종자를 결실한다.

 

물리화학적인 생체 메커니즘을 이용하여 중력을 거슬러 30미터 높이에 물을 뽑아 올리고 추위에 대비하여 단풍과 낙엽을 지우며 영하 70도의 혹한에도 얼지 않도록 세포의 삼투압도 조절한다. 은행나무가 한때 지구상에서 사라진 나무로 인식되었듯 메타세콰이어도 그랬다.

 

두 나무처럼 백합나무도 살아 있는 화석 수종으로 불리는 나무다. 겨울이 되면 나무들은 생명 유지에 필요한 수분이 얼지 않도록 세포액의 농도 즉 삼투압을 변화시키는 작업을 부지런히 한다. 나무는 물이 얼면 견딜 수 없는 열대 수목부터 영하 70도까지 견딜 수 있는 한 대성 수목에 이르기까지 종이 실로 다양하다. 버드나무와 자작나무 가지는 적당한 조건만 갖추어주면 영하 269도씨의 액체 헬륨에도 견딜 수 있다.

 

물은 서서히 차가워지면 빙점 이하에서도 얼지 않는 과냉각(過冷却; overcooling) 현상이 일어난다. 분비나무의 겨울눈은 영하 30도까지 과냉각한다. 그런 다음 세포 내부의 세포액 속에 당 함유량을 늘리고 삼투압을 높여 얼지 않게 한다. 나무가 내동성을 확보하는 두 번째 방법은 세포액의 수분을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다. 나무는 육상 생물종의 80퍼센트가 멸종한 K - T(중생대 백악기 - 신생대 팔레오기) 시기와 빙하기 추위 속에서도 진화했다.

 

페로몬이 같은 종에 작용하는 화학물질이라면 카이로몬은 다른 종에 작용하는 화학물질이다. 나무는 사실 귀머거리다. 식물은 움직일 수 없는 관계로 청각이 별 쓸모가 없다. 소리에 반응하는 식물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애기장대가 대표적이다. 애기장대는 애벌레가 자기 나뭇잎을 갉아먹는 아삭아삭하는 소리가 나면 애벌레가 싫어하는 머스터드 오일이란 물질을 뿜어낸다. 물론 이는 매우 특별한 상황이다.

 

식물은 클래식과 록 음악을 구분할 수 없어도 냄새를 맡을 수는 있다. 나무는 후각신경이 없는 대신 에틸렌 수용체를 통해 공기 중의 휘발성 화학물질을 감지한다. 나무들은 햇빛을 선점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한다. 키를 크게 하는 싸움이다. 하지만 햇빛을 많이 받는 만큼 나무 상층부는 수분 부족을 겪게 된다. 물을 빨아올리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의미다.

 

단풍에 대해서도 우리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나무는 왜 가을에 에너지를 소비하면서까지 붉은 색의 안토시아닌 색소를 만들어낼까? 2009년 이스라엘과 핀란드의 공동 연구진의 연구에 답이 있다. 그들은 대륙에 따라 단풍색이 달라지는 이유를 두 지역의 상이한 지질 변동에서 찾았다. 연구진에 따르면 식물은 약 3500만년전부터 곤충을 물리치기 위해 안토시아닌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 사이에 수차례의 빙하기가 닥쳤다. 이로 인해 유럽과 북미 대륙의 운명이 갈렸다. 북미대륙이나 동아시아에서는 수목들이 빙하기의 혹한을 피해 따뜻한 곳으로 남하할 수 있었지만 유럽은 알프스 산맥에 가로막혀 남하하지 못하고 멸종한 것이다. 이 가설을 설득력 있게 볼 필요가 있다.(유럽의 자생 수종은 80여종, 우리나라의 자생 수종은 1200여종)

 

즉 유럽은 빙하기에 나무들은 물론 곤충들까지 알프스 산맥에 가로막혀 대부분 멸종한 탓에 나무가 곤충이 싫어하는 붉은 색(이 색은 노란색에 비해 진딧물이 1/6 밖에 접근하지 못하는 색이라고 합니다.)(에너지를 소비하면서까지) 굳이 만들 필요가 없게 된 것이고 이로 인해 노란색 단풍이 우세해진 것이다.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면 나무가 붉은 색의 안토시아닌 색소를 만드는 것은 생태적 생존 전략의 일환인 것이다.

 

척박한 땅에서 자라는 송이가 과거와 달리 가스를 연료로 하는 환경 변화로 인해 솔가리를 긁어가지 않아 본의 아니게 맞는 비옥한 환경 때문에 개체가 줄어들고 있는 것도 먹고 먹히는 식물과 곤충처럼 두루 얽힌 인연의 그물을 생각하게 한다. 한편 자작나무는 산불 등 자연재해를 입은 지역에 가장 먼저 뿌리를 내리고 정착하여 토양을 회복시켜 주는 수종이다.

 

자작나무는 백색의 껍질이 옆으로 벗겨지는데 거제수나무도 회백색의 껍질이 벗겨지기 때문에 두 나무를 혼동하는 경우가 있다. 자작나무 껍질에 짙게 배어 있는 베툴린(Betuline)이란 정유물질은 불에 잘 타면서 습기에 강하기 때문에 젖는 나무로도 불을 피울 수 있을 정도다. 이 때문에 등산길이나 숲 속에서 야영할 때 비에 젖은 나무 중 모닥불 땔감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자작나무가 유일하다.

 

추위에 약한 단감나무를 키우려면 추위에 강한 고욤나무 종자로 기른 대목(臺木)에 단감나무 가지를 접붙이고 찬바람을 막아주는 곳에 심어야 한다. 이것도 인연(因緣)일까? 우리나라에서는 떫은 감은 임산물로, 단감은 농산물로 분류하고 있다. 감은 본래 임산물이었지만 단감은 단단한 상태의 열매를 수확하여 시장에 출하하기 때문에 물렁하게 익은 땡감의 홍시보다 유통 비용이 적게 들고 상품성이 오래 지속되어 소득원이 되기에 단감만 농산물로 분류하게 되었다.

 

나이테는 나무 그루터기에서 동심원 형태로 나타나는 성장 고리를 말한다. 열대 지역의 나무는 성장주기가 1년 단위가 아니기 때문에 나이테는 없고 다만 건기와 우기가 뚜렷한 곳은 성장주기를 표현하는 성장테가 생기게 된다. 뿌리가 지탱해주긴 하지만 나무가 그렇게 가늘고 높게 자라면서 중력이나 강한 바람의 혹독한 압력을 수백년 견딜 수 있는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

 

나무의 구조조직과 리그닌, 셀룰로스 등 화학 성분에 있다. 목재를 철근 콘크리트 전주(電柱)에 비유하면 셀룰로스는 철근, 헤미셀룰로스는 골재, 산소가 포함된 유기화합물질인 리그닌은 시멘트에 해당한다. 고등식물은 진화과정을 거치면서 리그닌을 합성하여 지상의 중력이나 바람에 대항하면서 다른 식물보다 훨씬 키가 크고 곧으며 단단하게 자랄 수 있게 되었다.

 

나무의 화학성분은 셀룰로스 50%, 헤미셀룰로스 25%, 리그닌 25% 등이다. 한지의 주원료는 뽕나무과에 속하는 닥나무다. 닥나무의 내피섬유는 세포막이 두꺼워 잘 썩지 않고 질겨서 긴 인피섬유를 얻을 수 있다. 닥나무를 물에 찌고 껍질을 벗기면 백피를 얻고 이를 약 30 40cm 크기로 잘라 가마솥에 잿물을 넣고 쇠죽을 끓이듯 8시간 정도 삶는 증해(蒸解) 과정을 거치면 닥나무 펄프를 얻을 수 있다.

 

이때 사용되는 잿물은 대나무의 셀룰로스 성분만 남기고 종이를 누렇게 변색시키는 리그닌 성분과 기타 불순물 등을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227, 229 페이지) 리그닌은 반응성이 높아 공기나 빛 등에 노출되면 쉽게 산화한다. 예부터 한지를 만드는 사람은 손이 희고 깨끗하다고 한다. 닥나무에 멜라닌 색소를 만드는 티로시나아제를 억제하는 카지놀 에프라는 미백 성분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인류는 30만년 전에는 숯을 발명하여 불씨를 보존하고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인류는 청동기 시대를 거쳐 1만년전부터 숯 에너지로 철 생산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철기시대를 열 수 있었다. 철제 농기구 사용으로 농업 생산량이 증대되었으며 이는 인구 증가와 교역 활성화를 촉진시켜 도시형 문명 구축에 이바지했다.(234 페이지)

 

산림에서 벌채한 원목을 땅에 그냥 두면 산불로 불쏘시개가 되거나 썩는다. 결과적으로 수목이나 토양에 저장되어 있던 탄소가 이산화탄소가 되어 대기 중으로 달아나고 만다. 이런 목재를 수집하여 숯으로 구워둔다면 목재 속의 탄소가 불활성화되어 고체 상태로 영구히 묶어둘 수 있다. 숯은 탄소 덩어리여서 영구히 썩지 않는다.(238 페이지) 숲은 천연 정수기, 공기청정기, 에어컨이 되어 우리가 사는 세상에 깨끗한 물과 공기를 선사한다. 또한 온실가스를 줄이며 거친 기후를 달래어 우리 삶의 환경을 쾌적하고 청정하게 만들어준다.(249 페이지)

 

저자는 인간은 숲의 종족이라고 전제한 뒤 기독교 창세기에 나오는 생명 나무는 대추야자나무를 신성하게 여긴 역사적 흔적으로 볼 수 있다고 말한다.(268, 269 페이지) 과학의 진군을 멈출 수 없다면 최소한 방향만이라도 공존으로 수정해야 한다.(272 페이지) 인간은 숲의 종족이기에 숲을 건강하게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이것이 최고의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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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달팽이, ()는 개구리다. ()는 달팽이 위에서 싸우는 하찮은 싸움이란 의미의 와우각상쟁(蝸牛角相爭)이란 말에 나오는 글자다. 개구리를 뜻하는 와()란 글자를 보면 무교회주의자 김교신 님의 개구리의 죽음을 슬퍼한다는 의미의 조와(弔蛙)’란 글이 떠오른다.

 

1942성서조선에 실린 이 글은 기도터인 반석(磐石) 아래에 살던 개구리들이 겨울 혹한에 얼어죽고 두, 세 마리가 살아 있으니 전멸을 면하였다는 심회(心懷)를 밝힌 글이다. 일제는 이 글에 나오는 혹한을 일제의 조선 지배정책으로 읽고 성서조선의 폐간을 단행했다.

 

()은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에 나오는 송백(松柏)의 글자다. 얼마전까지 소나무와 잣나무로 풀었는데 소나무와 측백나무 또는 침엽수 전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말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세한도의 세한은 날이 추워져야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늦게 시든다는 것을 안다는 의미의 논어의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야에서 유래한 말로 백을 잣나무가 아니라 측백나무로 보는 것은 공자는 평생 잣나무를 본 적이 없다는 사실에서 연원한다.(공자의 주 활동 무대였던 산둥성에는 잣나무가 자라지 않는다.)

 

()은 송무백열(松茂栢悅)에 나오는 글자다. 소나무가 무성하면 잣나무가 기뻐한다는 말이다. 백이 측백나무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어릴 적 햇빛이 적게 비치는 것을 좋아하는 음수(陰樹)로 소나무가 무성하게 자라 빛을 가려주면 잘 자라는 잣나무에게 맞는 말이다.(, 공히 사전에는 측백나무, 잣나무로 풀이되어 있다.)

 

한 유명 나무 전문가는 소나무가 무성하면 잣나무가 기뻐한다는 의미의 송무백열을 A(잣나무)B(소나무)의 성공(成功) 즉 무성(茂盛)을 기뻐하는 것이니 남이 잘 되는 것을 시기하는 것과 대비된다는 말로 풀이한다. 하지만 잣나무가 소나무의 번성을 기뻐하는 것은 자신에게 이득이 되기에 반기는 것일 뿐이다.

 

나는 소나무와 잣나무의 관계에서 쫓겨난 임금 연산군의 폐비 신씨(愼氏)와 중종의 원비로 역시 쫓겨난 단경왕후 신씨(愼氏)의 관계를 떠올린다. 두 사람은 고모와 조카 사이다. 신씨 가문의 두 폐비가 친정에서 만난 것은 엄밀히 말하면 동병상련이란 말로 수식해야 하지만 송무백열이란 말로도 수식할 수 있다.

 

전자가 다하면 후자가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떻든 중종의 비 신씨가 반정공신들에 의해 쫓겨난 것은 그녀의 아버지 신수근이 중종반정에 가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수근은 여동생의 남편 연산군 편에 섰다.(중종의 비가 쫓겨난 것은 그녀가 후사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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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해 이후에는 둘레가 굵어지지 않기에 조직해부학적으로는 풀이지만 형성층이 있다가 퇴화했기에 볏과의 나무로 인정하는 대나무는 줄기가 첫 해에만 자라며 키도 놀랍도록 빨리 크는 반면 다음 해부터는 더 이상 굵어지지도 않고 키도 크지 않지요. 물관과 체관의 관다발 세포벽이 두껍고 강하게 서로 묶여 있어 줄기가 딱딱해 나무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대<>는 풀을 닮은 모습과 아울러 땅속 줄기에 의해 오랜 세월 영양 번식하면서 군락이 성장하기에 좀체 꽃이 피지 않는다는 점에서 나무나 풀 어느 쪽도 닮지 않은 감자를 닮은 모습을 보이고 있지요.

 

우리는 60년마다 대나무가 꽃 피는 모습을 볼 수 있지요.(땅속 줄기는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가 리좀이란 말로 상세히 분석해 철학 용어로 삼은 것이지요.) 꽃 없이도 오랜 세월 잘 번성하던 대나무가 갑자기 군락 전체가 고사(枯死)하기로 작정하고 꽃을 피우는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지난번 숲 해설 수업 시간에 자신을 표현하는 나무를 하나 선정하라는 말을 들었지만 아직 정하지 못한 저는 60년이라는 숫자로 인해 대나무가 마음에 들지만 그 나무를 저를 표현하는 나무로 정한다고 해서 저절로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기에 다른 나무를 찾는 장정(長程)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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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비슷한 듯 다른이란 표현을 쓰고 관련 단서를 수습(收拾)하다가 찰스 다윈 이야기를 찾기에까지 이르렀다.(수습이란 어수선하게 흩어진 물건을 정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1차적으로는 그런 의미지만 파악; 把握하다는 말이 1차적으로 꼭 잡아쥐는 것을 의미하고 2차적으로는 어떤 일을 잘 이해해 확실히 아는 것을 뜻하듯 수습도 물건에서 나아가 생각을 정리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할 것이다. 물건을 쥐어보아야 온도와 결 등을 통해 느낌을 알 수 있으니 이해한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다윈은 딱정벌레의 매력에 빠진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에 대해 이렇게 썼다. “케임브리지에서 한 일 중에서 딱정벌레를 수집하는 것보다 내가 더 열의를 갖거나 큰 기쁨을 느낀 일은 없을 것이다.”(’나의 삶은 서서히 진화해왔다‘ 61 페이지) 알다시피 딱정벌레는 생물학자 홀데인(John Burdon Sanderson Haldane; 1892 - 1964)을 소환하게 하는 동물이다. 홀데인은 진화를 연구하는 학자로서 조물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주저 없이 조물주께서는 딱정벌레를 병적으로 좋아하셨나 봅니다(that God is incredibly fond of beetles)“란 말을 했다. 동물 중 가장 많은 종()을 차지하는 것이 딱정벌레다.

 

다윈은 수많은 관찰 일기를 남긴 사람이었다. 중요한 것은 그의 그 방대한 기록도 그가 자연선택이론을 만들어 질서를 부여하기 전까지는 해석 불가능한 단순 자료뭉치에 지나지 않았다(김경만 지음 글로벌 지식장과 상징폭력‘ 110, 111 페이지)는 사실이다. 갈라파고스에서 다윈은 핀치새의 부리 모양이 섬마다 비슷하면서도 약간씩 다른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고민했다. 핀치새들이 섬마다 비슷하면서도 약간씩 다른 것은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현상이다. 자연선택이란 환경에 적응할 수단이 있으면 살아 남고 그렇지 못하면 자연에서 사라진다는 의미다.(장수철, 이재성 지음 아주 명쾌한 진화론 수업‘ 26 페이지) 정리하면 내가 어제 물은 사촌 종 사이에서 비슷하면서 다른 꽃이 피어나는 것은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의 산물이고 차이일 것이다.

 

어제 질문은 청계산에서 초본식물 야외 수업을 받고 하게 된 질문이다. 상당히 지치고 힘들었지만 집에 돌아와 인문학자와 자연과학자의 꽃으로 세상을 보는 법이란 책을 보았다. 친구 사이인 두 사람이 같은 꽃에 대해 서로 다른 해석을 내린 내용 12 꼭지로 구성된 이 책에 이런 구절이 있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가시처럼 날카로운 시선을 유지하고, 예민한 가시 같은 감각을 견지하고, 주제를 꿰뚫는 가시 같은 언어로 사물을 분석할 줄 알아야 한다.“(118 페이지)

 

메타포로 빛나는 인문학자의 글이다. 하지만 이 말은 전문가란 자신의 분야에서 저지를 수 있는 모든 실수를 다 해 본 사람이라는 물리학자 닐스 보어의 말보다 부담스런 말이기도 하고 의욕을 자극하는 말이기도 하다. 물론 보어는 전문가는 해당 분야에서 저지를 수 있는 굵직한 실수들 몇 가지를 알고 그것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말도 했다. 여담이지만 보어는 노벨상 수상 이후 태극 문양(紋樣)을 가문의 문양으로 삼은 사람이다.(보어는 주역에 심취했던 서양인들 중 라이프니츠 만큼 흥미로운 사람이다.)

 

그런가 하면 인문학자와 자연과학자의 꽃으로 세상을 보는 법의 자연과학자는 가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무에게는 가시가 방어기제의 하나이지만 사람에게는 방어뿐 아니라 각성의 도구이기도 하다.“(105 페이지) 어제 여섯 시간의 야외 수업을 받고 돌아와 지친 나머지 위의 글을 읽었으나 글로 연결하지 못했다. 각성(覺醒)의 내공이 부족해 나도 모르게 잠에 곯아 떨어진 나는 가시에 대해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 지치면 눕게 되고 그러면 몸은 가시의 꼿꼿함과는 아주 다르게 연체(軟體) 동물처럼 무장해제된다는 말이 가능하다.

 

위 책의 자연과학자가 사람에게 가시는 각성의 도구이기도 하다는 말을 했거니와 나는 가시의 꼿꼿함을 보며 경책(警策)이란 말을 떠올린다. 사실 피곤하고 지쳤을 때 누워서 책을 읽는 것은 잠을 부르는 초면(招眠)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이때 독서는 잠에 빠지기 전의 공허한 짧은 제스추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눕지 말고 책상 앞에 앉아야 한다.

 

우리는 공부하는 가족입니다란 책에 공부는 독하게, 시험은 즐겁게란 챕터가 있다. 연우라는 아이의 이야기로 그녀는 어떤 일을 하다가도 책상에 앉으면 곧바로 공부에 몰두하는 스타일로 MIT에 입학해 박사과정(2014년 기준)을 밟고 있다. 인상적인 것은 그녀가 9포인트 크기의 작은 글씨로 노트를 빼곡하게 채웠다는 점이다.(연우는 고교 첫 중간고사에서 전교 230등의 순위를 받고 독하게 공부해 2학기 중간고사에서 전교 20등에 올랐고 그 해 기말고사에서 전과목 1등의 놀라운 성적을 거두었다.)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는 대체의학서처럼 말하자면 눕기는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가, 각성과 수면의 경계가 와해되지 않도록 가로막는 빗장을 푸는 일이다. 반면 앉기는 읽을 수 있고 구상할 수 있고 의미 있는 성과를 모을 수 있는 시발점이 된다. 다윈이 노트했듯, 연우가 노트했듯 해야 한다. 단 의미부여나 완전한 파악이 수반되어야 한다. 책을 쓰거나 이론을 만들려면 의미부여를, 시험을 보려면 최소한의 의미 파악이 따라야 하는 것이다. 화룡점정은 그런 상황에 쓸 수 있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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