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철원에 다녀왔습니다.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철원 평화 여행 진행을 위한 사전 답사 차원의 여행이었습니다. 전곡에서 경원선 전철 연장공사로 인해 운행하는 대체 버스를 타고 백마고지역에 내려 마중 나오신 철원 자연환경해설사 김선생님과 함께 노동당사를 거쳐 지뢰꽃길을 통해 소이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지뢰꽃길을 통해 우회한 것은 이야기거리를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올라가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산수국이 인상적이었고 지뢰 지대 출입을 차단하기 위해 쳐놓은 울타리가 군데 군데 뚫려 있는 것을 보며 살기 위해 치러야 했을 들짐승들의 고난을 제 일인 듯 여기는 이입(移入)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오리산, 검불랑, 평강고원, 오성산 등 상대적으로 먼 북의 땅과 경원선, 옛 한탄강, 백마고지, 고암산, 아이스크림 고지, 철원평야, 노동당사, 그리고 지뢰꽃길을 내려다 보며 김선생님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김선생님은 제가 철원 평화 여행 해설을 준비하기 위해 부탁한 노동당사와 소이산 뿐 아니라 직탕폭포, 고석정, 승일교, 송대소, 도피안사(여행 후 기억나는 대로 적은 것이니 ‘지; 之‘자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등으로 저를 안내하시며 친절히 해설해주셨습니다.
점심은 동송에서 순대국으로 해결하고 포천 관인으로 향했습니다. 지장산 도연암이 목적지였습니다. 이 자리에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습니다. 그러나..도피안사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사찰문화해설사 2기생들이 수업을 받다가 잠시 쉬고 있었습니다. 대웅(보)전은 보이지 않고 대적광전이 있어 그들에게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대웅보전은 없고 대적광전이 있는 이유는 뭘까요?”라고요.
그러자 한 교육생이 대적광전이 대웅보전이라고 답해 저는 뜻하지 않게 얕은 불교 지식을 늘어놓는 파계(破戒)를 했습니다.(얕은 지식을 부끄러워 하지 않고 자랑하듯 늘어놓지 말자는 제 스스로의 약속을 어겼다는 의미입니다.) 대적광전(大寂光殿)은 비로자나불을 모신 전각(殿閣)이고 대웅보전(大雄寶殿)은 석가모니를 모신 전각인데 대웅보전의 경우 협시(夾侍)가 모두 부처일 때 해당하고 협시가 보살이면 대웅전이라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이 말과 함께 돌아서 계단을 내려가는데 이런 말이 들려왔습니다. “부처가 왜 이렇게 많은 거야? 참 힘드네...” 아, 맞는 말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돌을 동정(同定; 생물의 ’속; 屬‘과 ’종; 種‘을 결정하는 것이지만 여기서는 분류의 의미로 동정이란 말을 썼습니다.)하고 나무를 동정하고 새를 동정하고 꽃을 동정하고 곤충을 동정하는 것에 비하면 부처를 분류해 아는 것은 얼마나 간단하고 쉬운지요? 미안함이 컸습니다.
어제 철원 일정의 마지막으로 간 도연암(度淵庵)의 생태 해설사 스님은 “꽃, 나무 이름 하나 더 안다고 의미가 있지 않다, 그 지식을 생태철학적으로 연결해 메시지를 전해야 의미가 있는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김선생님은 제가 스님과 이야기가 통할 것이라 생각하시고 저를 그곳으로 데려가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도(度)와 도(渡)는 다르지만 도(度)는 법도를 의미하는 한편 건너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며 승려가 되다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승려가 되다라는 말은 도첩제(度牒制)라는 말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도첩제는 고려ㆍ조선 시대에 백성이 출가(出家)하는 것을 억제하기 위해 승려가 되려는 자에게 일정한 대가를 받고 허가장을 내주던 제도를 말합니다.
철원의 옛 지명이 태봉(泰封)이었다는 김선생님의 말에 저는 태(泰)는 주역의 지천태(地天泰)괘에서 비롯된 것이라 말했습니다. 그리고 궁예의 상대자였던 왕건이 주역의 이섭대천(利涉大川)에서 이름을 얻어와 이천(利川)이라는 지명을 만들었다는 말도 했습니다. 이섭대천이란 큰 강을 건너는 것이 이롭다는 의미죠.
그러고 보니 어제 우리의 여행은 주제가 있는 여행이었습니다. 도피안사(到彼岸寺)의 도는 당도하다는 의미이지만 건너는 수고로움을 감내한 결과지요. 도연암(度淵庵)의 도(度)는 법도이기도 하고 건넘이기도 하지요. 고석정(孤石亭) 앞에서도, 도연암에서도 두루미를 보았습니다. 물론 모형이었습니다.
학(鶴)이 두루미를 의미하지만 학(隺)도 두루미를 의미합니다.(단 隺은 두루미 뿐 아니라 고상할 각, 오를 흑, 높이날 확 등도 의미합니다.) 언어 유희를 하자면 철원은 태봉이었고 태봉국을 세운 궁예는 미륵(彌勒)을 자처했지요. 미(彌)는 두루 미란 글자이지요. 두루미와 두루 미.. 학(隺)은 새 추(隹)에 덮을 멱(冖)을 추가한 것이지요.
묘갈(墓碣)과 묘비(墓碑)가 있지요. 묘갈은 비석이되 민머리 형태고 묘비는 지붕을 얹은 것이지요. 비유하자면 새는 묘갈, 학은 묘비이지요. 도(度)든 도(到)든 스스로 해내야 도(陶)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도; 陶’에는 기뻐하다, 즐거워 하다 등의 의미가 있지요.) 어제 제 여행은 한탄강을 나누어 가진 철원에서 시작해 포천을 거쳐 연천으로 귀환하는 것으로 이루어진 시간이었습니다.
그 중 철원과 연천은 이도(李祹)라는 이름을 가졌던 세종(世宗)의 강무(講武; 사냥을 겸한 무예 훈련)지였다는 공통점도 가지고 있습니다. 세종은 평강(平康)으로 강무를 가기도 했습니다. 세종은 애민 군주였지만 강무에 대해서는 다른 모습을 보였습니다. 백성과 군사들의 고통을 아랑곳 하지 않고 강무를 강행한 것입니다. 추위에 얼고 굶주린 군사들이 현기증을 일으키며 쓰러질 정도였다고 합니다. 물론 세종의 아들 수양(首陽)은 부왕 세종의 강무 강행은 건국과 창업기의 어수선함을 극복하기 위한 훈련 과정이었다고 말했지요.
어제 소이산에서 느낀 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May peace prevail on earth’란 문구에 대해서입니다. prevail이 만연하다, 이기다 등의 의미가 있어서 그렇게 좋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평화를 허락하소서’란 의미의 라틴어 도나 노비스 파쳄(Dona Nobis Pacem)이 어떨까요? 김선생님께 특별히 감사함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