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임순 님의 식민지의 적자들’, 광화문 해설을 준비하다 알게 된 책이예요. 정독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있어요. 그의 책을 너무 늦게 알았네요. 절판이기에 하는 말입니다. 아쉽네요. 빌려 읽고 있지만 노작(勞作)을 쓴 저자에게 예의를 갖추려면 책을 소장하는 것이 순리이니 말입니다.

 

대신 '우리 역사 소설은 이론과 논쟁이 필요하다'와 최근작인 '3.1과 반탁' 등 그의 다른 작품들을 읽고 소장해야겠어요. 광화문 해설 포스트 중 이순신 동상이 있지요. 공임순 님은 이순신 장군을 소환한 글들을 분석한 글에서 전통은 상속되는 것이 아니라 누가 무엇을 어떤 식으로 계획하고 불러냈는가라는 선택과 배제의 치열한 투쟁을 통해 새롭게 만들어진다는 말을 했어요.

 

덧붙여 우리 사회의 좌, 우파 모두 이순신을 자신과 동일시함으로써 스스로를 박해받는 수난자로 자리매김했다는 말을 했어요. 공임순 님은 김훈의 칼의 노래를 스스로를 가해자가 아닌 수난자로 인식하는 우리의 집단 심성을 아주 잘 파고든 작품으로 규정했어요. 저는 원래 김훈 작가 싫어했어요. 많은 사람이 읽는다고 무조건 안 읽거나 외면하는 것은 아니지만 바로 그 많은 사람이 읽는다는 이유만으로 김훈 작가를 읽지 않았지요.

 

공임순 님의 책을 보니 김훈 작가는 남성이 절대적으로 우월하고 압도적으로 유능하다고 본다는 말을 한 바 있네요. 그를 고독한 남성 영웅 멜랑콜리의 심성을 가진 사람이라고 평한 공임순 님의 시각은 설득력 있다고 보입니다. , 이제 정독을 해야겠습니다. , 해설 마치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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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척 한다, 잘난 척 한다 등의 말을 듣고 한 마디 한다. 나에게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아는 척, 잘난 척 하지 않는 것이겠다. 만일 자신들은 그렇게 하면서 남에게는 그렇게 하지 말라거나 남의 그런 모습은 못마땅해 한다면 이율배반적이다. 그들은 어떤 이유로 아는 척 하지 않는가? 이렇게 묻는다면 문제적인가? 영국의 박물학/ 과학사회학 학자 조지프 니덤(Joseph Terence Montgomery Needham; 1900 1995)의 질문이 떠오른다.

 

중국의 과학과 문명이란 대작을 집필한 니덤은 왜 중국에서는 과학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는가?”란 질문을 던졌다. 정인경 교수는 니덤의 질문은 유럽이 본래 우월하기 때문에 과학혁명이 일어났다는 안일한 대답을 피하기 위해 한 질문이지만 무엇이 일어났을 때 그 이유를 묻는 것은 있을 수 있어도 왜 일어나지 않았는지를 묻는 것은 있을 수 없기에 문제라는 말을 했다. 가령 어떤 집에 불이 났다면 왜 불이 났는지를 물을 수는 있어도 불이 나지 않은 집에 대해 왜 불이 나지 않았는지를 물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정인경 지음 모든 이를 위한 과학사 강의’ 122 페이지)

 

철학자 베르그손은 이를 추후적 사고의 오류라 설명했다. 물론 나는 그럼에도 그들은 어떤 이유로 아는 척 하지 않는가?”란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는 척 하지 않는 이유는 1. 겸손해서인가? 2. 귀찮아서인가? 3. 콘텐츠가 부실해서인가? 4. 자신이 애써 공부한 지식을 남에게 주고 싶지 않아서인가? 어떤 경우든 문제적이다.

 

겸손해서 그렇다면 그나마 낫지만 이 경우도 모임에는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귀찮아서 지식을 공유하려 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능동적인 사람이라 할 수 없다. 이런 사람들은 귀찮아서 공부나 글쓰기도 반드시 해야 하는 것만 마지 못해 하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해설사들은 다 수준이 같다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하는 것이다.

 

콘텐츠가 부실하다면 상대에게 아는 척 한다고, 잘난 척 한다고 말하지 말고 자신의 지식을 업그레이드 시키는 것이 순리다. 여우가 따 먹으려 했으나 높아서 그렇게 하지 못한 포도를 보고 저 포도는 신포도일 것이라고 말한 것처럼 그들은 자신의 지식이 부실하니 지식 있는 사람을 질투하는 것인가?

 

애써 공부한 것이기에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구든 공부한 것을 나누는 선학들이 있기에 지식을 얻고 공부할 수 있는 것임을 감안해 보라. 자신은 혜택을 입고 나누지는 않는 것은 이기적이다. 물론 누린 만큼 베풀 수는 없다. 능력면에서든 시간적인 면에서든 방법면에서든.

 

상대를 무시하며 아는 척 하는 것이 문제다. 나는 아는 척을 잘 하기에 공손하게 말하려 한다. 내가 상대를 무시했는가? 나는 그러지 않았다. 나를 보고 잘난 척 한다, 아는 척 한다고 하는 사람들은 자격지심(自激之心)을 발동시키는 것일 뿐이다. 세상 상식과 속설에 대해서는 그렇게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고 주저하지 않는 사람들이 유독 지식적인 면에서는 겸손을 미덕으로 여기는 것인가? 그렇다면 참 이상하다.

 

그들은 지식에 대해 경외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인가? 그래서 나 같은 장삼이사가 고급 지식을 이야기하는 것을 불경스럽게 여기는 것인가? 내가 신성모독이라도 행한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나는 오히려 새로울 것 없는 상투적인 이야기를 대단한 것이라도 되는 듯 늘어놓는 사람들이 놀랍게 보인다. 이해하기 어렵다.

 

나라면 닳고 닳은 이야기는 부끄럽기도 하고 재미도 없어서 못한다. 단 나도 그런 영양가 없는 이야기를 절대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나도 어설프고 부끄러웠고 초라했고 사소했다. 하지만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내가 지금 그런 모습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뜻은 아니다. 내가 만일 그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나는 안주(安住)하고 결국 정체(停滯)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이진경 교수는 니체는 선악의 저편에서 스피노자가 에티카에서 사용한 기하학적 서술방법을 과학에 대한 환상을 주려는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지만 어느 시기 이후 스피노자가 하려고 했던 것이 자신이 하고자 했던 것과 비슷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한다. 생리학적 윤리학 즉 자연학적 윤리학의 구상이 바로 그것이다.(이진경 지음 우리는 왜 끊임없이 곁눈질을 하는가’ 170 페이지)

 

나는 스피노자를 좋아한다. 그러나 그런 이유 때문에 니체가 스피노자를 통해 뒤늦은 깨달음을 얻었다는 내용을 인용하지는 않았다. 나는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치열하게 노력하되 자신이 틀릴 수도 있음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점을 말하려고 이진경 교수의 말을 인용했다.

 

공부하지 않으면 지식이 부족해서 문제가 아니라 이상한 논리를 고집하기에 문제다. 그리고 감히 말하자면 공부는 느낌이나 정서적인 면으로 치우치려는 자신을 바로잡는 과정이다. 물론 논리만 고집하는 것도 문제다. 그렇게 되면 메마르고 거친 세상을 만들게 된다. 나에게 아는 척 한다, 잘난 척 한다 등의 말을 한 사람들은 생각을 촉발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좋은 말로 생각을 촉발하는 사람들이 더 필요하고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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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20201111) 연천 옥계리 드라마미술전시장에서 있었던 생태 연못 만들기 행사에 참가했다. 이곳은 군남초등학교에 통합된 구() 옥계 초교에 새로 마련된 드라마 소품 전시장이다. 방송국 소품 담당으로 일하시다 연천으로 귀촌한 노** 선생님께서 그간 모은 시설과 도구, 소품, 장비들을 망라해 운영하는 곳이다.

 

연천에 살면서도 잘 알지 못했던 문화 시설을 알게 되어 감사하다. 내게는 지난 달 18일 동기 이 선생님과 권 선생님 덕에 처음 가게 된 은대리성 만큼 의미 있는 곳이다. 은대리성도 그렇고 드라마 미술 전시장도 그렇고 단순한 관방(關防; 변방 방어를 위해 설치한 요새; 은대리성) 시설, 문화 시설(드라마미술전시장)이 아니라 연천의 역사 및 문화적 감수성을 업그레이드시키는 곳이다.

 

드라마미술전시장의 여러 전시품들 가운데 상락아정(常樂我淨)이란 글이 눈에 띄었다. 무상하게 변하고 고통스럽고 무아(無我)인 세상과 다른 항상하고 즐겁고 나란 실체가 존재하는 정(; 깨끗)열반을 표현한 말이다.

 

생태연못을 만들다 보니 부엽 식물, 부유 식물, 침수 식물과 함께 정수 식물을 이야기 하게 되었다. 정수는 물을 깨끗하게 한다는 의미의 정수(淨水)가 아닌 정수(挺水). marginal plant란 영어 번역어와 돋다, 나오다 등의 의미를 가진 한자어 정()을 함께 고려해 물가에 살며 부레옥잠, 개구리밥, 수련, 물수세미 등에 비해 높이 솟아있기에 붙은 이름이 아닌가 추측한다.

 

정리하면 지난 해 지질해설사가 된 이래 내가 처음 가본 연천의 주요 공간들은 이렇다. 물문화관, 한탄강댐, 당포성, 호로고루, 은대리성, 잠두봉, 유엔군 화장장, 차탄천 주상절리, 임진강 주상절리, 백의리층, 베개용암, 연강나룻길, 오미뜰 공원, 효연재(曉然齋) 등이다. 아직 못 가본 곳이 많다. 시간이 나면 숭의전, 당포성, 임진강 주상절리 길을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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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전문적이거나 현학적일 때가 있다는 말을 들은 탓에 좌암우장(左巖右長)이란 말을 쓰지 못했다. 연천 지질공원의 핵심이라 할 좌상바위가 마을 좌측에, 장승(長丞)이 우측에 있는 것을 보고 좌묘우사(左廟右社)에 견주어 표현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한 것이다.(좌암우장이란 내가 만든 말이다.)

 

자살바위라고도 불렸고 풀무산이라고도 불렸던 좌상바위는 중생대 백악기 말의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바위다. 풀무산은 바위 모양이 풀무 같거나 그곳에서 풀무질을 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사실 용암을 분출한 화산을 풀무산이라 부른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풀무는 바람을 일으켜 불을 피우는 기구고 화산에서 나오는 것은 불이니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나는 풀무산이란 이름이 더 좋다.

 

이곳의 기반암은 고생대 데본기에 형성된 미산암이다.(연천군 미산면에서 처음 발견되어 붙은 이름이 미산암이다.) 미산암은 아우라지 베개용암과 함께 한탄강 지질공원이 세계 지질공원으로 지정되는데 중요한 몫을 했다. 중생대 백악기 말의 화산 활동의 결과물이라니 생각나는 것은 공룡이다. 당시 연천에도 공룡이 살았을까? 알 수 없다.(연구에도 불구하고 밝혀지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내가 모른다는 말이다.)

 

로마의 화산의 신인 불카누스(Vulcanus)란 말에서 화산(volcano)이란 말이 나왔다. 용암이 묽을수록 분화 기둥은 분수처럼 흩어진다. 이런 용암은 평범한 강물처럼 움직인다. 차이가 있다면 피처럼 붉을 뿐이란 점이다. 지질 공부를 하니 현무암의 어두움을 많이 접하고 생각하게 되지만 붉음도 그에 못지 않게 자주 생각하게 된다. 적벽(赤壁)이란 말을 통해 생각하게 되는 붉음이 대표적이다. 자색(紫色)이 붉은색을 훼손하는 것을 미워했던 공자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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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철원에 다녀왔습니다.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철원 평화 여행 진행을 위한 사전 답사 차원의 여행이었습니다. 전곡에서 경원선 전철 연장공사로 인해 운행하는 대체 버스를 타고 백마고지역에 내려 마중 나오신 철원 자연환경해설사 김선생님과 함께 노동당사를 거쳐 지뢰꽃길을 통해 소이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지뢰꽃길을 통해 우회한 것은 이야기거리를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올라가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산수국이 인상적이었고 지뢰 지대 출입을 차단하기 위해 쳐놓은 울타리가 군데 군데 뚫려 있는 것을 보며 살기 위해 치러야 했을 들짐승들의 고난을 제 일인 듯 여기는 이입(移入)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오리산, 검불랑, 평강고원, 오성산 등 상대적으로 먼 북의 땅과 경원선, 옛 한탄강, 백마고지, 고암산, 아이스크림 고지, 철원평야, 노동당사, 그리고 지뢰꽃길을 내려다 보며 김선생님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김선생님은 제가 철원 평화 여행 해설을 준비하기 위해 부탁한 노동당사와 소이산 뿐 아니라 직탕폭포, 고석정, 승일교, 송대소, 도피안사(여행 후 기억나는 대로 적은 것이니 ; 자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등으로 저를 안내하시며 친절히 해설해주셨습니다.

 

점심은 동송에서 순대국으로 해결하고 포천 관인으로 향했습니다. 지장산 도연암이 목적지였습니다. 이 자리에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습니다. 그러나..도피안사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사찰문화해설사 2기생들이 수업을 받다가 잠시 쉬고 있었습니다. 대웅()전은 보이지 않고 대적광전이 있어 그들에게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대웅보전은 없고 대적광전이 있는 이유는 뭘까요?”라고요.

 

그러자 한 교육생이 대적광전이 대웅보전이라고 답해 저는 뜻하지 않게 얕은 불교 지식을 늘어놓는 파계(破戒)를 했습니다.(얕은 지식을 부끄러워 하지 않고 자랑하듯 늘어놓지 말자는 제 스스로의 약속을 어겼다는 의미입니다.) 대적광전(大寂光殿)은 비로자나불을 모신 전각(殿閣)이고 대웅보전(大雄寶殿)은 석가모니를 모신 전각인데 대웅보전의 경우 협시(夾侍)가 모두 부처일 때 해당하고 협시가 보살이면 대웅전이라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이 말과 함께 돌아서 계단을 내려가는데 이런 말이 들려왔습니다. “부처가 왜 이렇게 많은 거야? 참 힘드네...” , 맞는 말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돌을 동정(同定; 생물의 ; ; 을 결정하는 것이지만 여기서는 분류의 의미로 동정이란 말을 썼습니다.)하고 나무를 동정하고 새를 동정하고 꽃을 동정하고 곤충을 동정하는 것에 비하면 부처를 분류해 아는 것은 얼마나 간단하고 쉬운지요? 미안함이 컸습니다.

 

어제 철원 일정의 마지막으로 간 도연암(度淵庵)의 생태 해설사 스님은 , 나무 이름 하나 더 안다고 의미가 있지 않다, 그 지식을 생태철학적으로 연결해 메시지를 전해야 의미가 있는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김선생님은 제가 스님과 이야기가 통할 것이라 생각하시고 저를 그곳으로 데려가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와 도()는 다르지만 도()는 법도를 의미하는 한편 건너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며 승려가 되다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승려가 되다라는 말은 도첩제(度牒制)라는 말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도첩제는 고려조선 시대에 백성이 출가(出家)하는 것을 억제하기 위해 승려가 되려는 자에게 일정한 대가를 받고 허가장을 내주던 제도를 말합니다.

 

철원의 옛 지명이 태봉(泰封)이었다는 김선생님의 말에 저는 태()는 주역의 지천태(地天泰)괘에서 비롯된 것이라 말했습니다. 그리고 궁예의 상대자였던 왕건이 주역의 이섭대천(利涉大川)에서 이름을 얻어와 이천(利川)이라는 지명을 만들었다는 말도 했습니다. 이섭대천이란 큰 강을 건너는 것이 이롭다는 의미죠.

 

그러고 보니 어제 우리의 여행은 주제가 있는 여행이었습니다. 도피안사(到彼岸寺)의 도는 당도하다는 의미이지만 건너는 수고로움을 감내한 결과지요. 도연암(度淵庵)의 도()는 법도이기도 하고 건넘이기도 하지요. 고석정(孤石亭) 앞에서도, 도연암에서도 두루미를 보았습니다. 물론 모형이었습니다.

 

()이 두루미를 의미하지만 학()도 두루미를 의미합니다.(은 두루미 뿐 아니라 고상할 각, 오를 흑, 높이날 확 등도 의미합니다.) 언어 유희를 하자면 철원은 태봉이었고 태봉국을 세운 궁예는 미륵(彌勒)을 자처했지요. ()는 두루 미란 글자이지요. 두루미와 두루 미.. ()은 새 추()에 덮을 멱()을 추가한 것이지요.

 

묘갈(墓碣)과 묘비(墓碑)가 있지요. 묘갈은 비석이되 민머리 형태고 묘비는 지붕을 얹은 것이지요. 비유하자면 새는 묘갈, 학은 묘비이지요. ()든 도()든 스스로 해내야 도()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에는 기뻐하다, 즐거워 하다 등의 의미가 있지요.) 어제 제 여행은 한탄강을 나누어 가진 철원에서 시작해 포천을 거쳐 연천으로 귀환하는 것으로 이루어진 시간이었습니다.

 

그 중 철원과 연천은 이도(李祹)라는 이름을 가졌던 세종(世宗)의 강무(講武; 사냥을 겸한 무예 훈련)지였다는 공통점도 가지고 있습니다. 세종은 평강(平康)으로 강무를 가기도 했습니다. 세종은 애민 군주였지만 강무에 대해서는 다른 모습을 보였습니다. 백성과 군사들의 고통을 아랑곳 하지 않고 강무를 강행한 것입니다. 추위에 얼고 굶주린 군사들이 현기증을 일으키며 쓰러질 정도였다고 합니다. 물론 세종의 아들 수양(首陽)은 부왕 세종의 강무 강행은 건국과 창업기의 어수선함을 극복하기 위한 훈련 과정이었다고 말했지요.

 

어제 소이산에서 느낀 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May peace prevail on earth’란 문구에 대해서입니다. prevail이 만연하다, 이기다 등의 의미가 있어서 그렇게 좋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평화를 허락하소서란 의미의 라틴어 도나 노비스 파쳄(Dona Nobis Pacem)이 어떨까요? 김선생님께 특별히 감사함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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