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을 아우르는 스토리텔링
랜디 올슨 지음, 윤용아 옮김 / 북스힐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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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를 자주 듣는다. 당연하지만 재미 있는 강의도 있고 지루한 강의도 있다. 지루한 강의를 들으면 이런 생각이 든다. “강사가 주제 없이 정보들을 나열하기만 해 재미 없었다.” 물론 이 말은 반만 맞는다. 재미 없고 지루하기만 해도 주제가 없을 수는 없다는 점에서 틀린 말이라면 강사가 정보들을 나열하기만 한 것은 사실이기에 맞는 말이다. 내가 잘못 파악한 부분은 무엇인가?

 

저자는 ABT(and, but, therefore) 구성을 제안한다. 그리고, 하지만, 그러므로 구성이다. 가령 캔자스의 농장에 한 어린 소녀가 살고 있다. 그리고 그녀의 삶은 무료하다. 하지만 어느 날 토네이도가 그녀를 휩쓸어 신비한 나라 오즈로 데려간다. 그러므로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는 여정을 떠나야만 한다.“ 같은 문장이 바로 전형적인 ABT 구성의 문장이다.

 

그런가 하면 AAA(and, and, and) 구성은 어떤가? 가령 이런 문장이다. ”사람들이 걷는다. 그리고 몇몇은 개를 데리고 있다. 그리고 해가 쨍쨍하다. 그리고 나무들이 있다. 그리고..“ 어떤가? ABT 구성은 흥미를 유발하는데 비해 AAA 구성은 지루하고 재미 없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바로 이점이다. 정보의 나열은 이야기가 아니고 이야기는 사건이 발생할 때 시작된다는 것이다.(저자에 의하면 서사 또는 이야기는 문제 해결 과정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다.; 223 페이지. 언급된 게 정보뿐이라면 이야기는 없다고 할 수 있다.; 224 페이지)

 

저자는 이채(異彩)로운 경력의 소유자다. 뉴햄프셔대학교 해양생물학과 종신교수직을 버리고 남가주대학교 영화과 석사과정에 진학에 할리우드 영화계로 진출한 것으로 저자의 삶이야말로 ABT 구성을 보인다. 오디세우스를 좋아해 랜디와 오디세우스를 결합해 랜디세우스라 자칭하는 저자는 하버드에서 생물학 박사학위를 받고 호주의 그레이트베리어리프의 한 섬에서 1년을 살았고 남극의 빙하 밑으로 다이빙도 했고 반 마일 깊이의 심해에서 잠수도 했고 60피트 깊이의 해저 서식지에서 일주일이나 지냈다.

 

그리고(A) 해양생물학과의 종신교수가 되었다. 하지만(B) 동부의 과학 세계를 떠나 서부의 캘리포니아로 향해 영화학과 석사 과정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러므로(T) 그에게는 목표가 생긴 것이다. 영화 감독으로 성공하는 것이었고 언젠가는 과학계로 돌아가 할리우드에서 배운 것을 전하는 것이었다. 저자가 과학계로 돌아가기까지 걸린 시간은 20년이었다.

 

과학계와 영화계를 모두 경험한 저자는 그 두 분야의 특성을 이렇게 파악한다. 과학은 서사의 구성과 진행을 따르는 분야지만 과학자들은 그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그것을 활용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저자는 이를 이렇게 풀이한다. 과학자는 학부 시기에 인문학을 건너뛰고 과학자로서만 최대치의 훈련을 받기 때문이라고.(65 페이지)

 

38세의 나이에 새로운 여정에 들어설 때까지 서사의 힘에 대해 알지 못했다고 말하는 저자는 자신이 목격한 베테랑 시나리오 작가의 경우 서사적 직관을 적용하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귀띔한다.(서사적 직관이란 말은 이야기 센스라는 말을 인문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과학계의 안주(安住)는 정년 보장과 큰 연관이 있다. 이에 비해 할리우드는 과거의 화려함이 어떻든 흥행에 한번 실패하면 언제 재기할지 장담할 수 없는 영역이다.

 

저자는 과학자들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쏟아내면 청중이 흡수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뇌는 특정한 방법으로 엮인 정보가 필요하다,“(54 페이지) 관건은 복잡한 사실을 구체화해 간결하게 전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도전이다.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 촬영 결과 재미 없는 이야기에 사람들의 뇌 반응도는 낮고 재미 있는 이야기에는 높다. 중요한 사실은 서사가 없으면 지루하고 있으면 흥미롭고 과도하면 혼란스럽다는 점이다.(23 페이지)

 

단 서사적 직관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35 페이지) 정리하면 중요한 것은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명확해야 하고 간결해야 하고 ABT 유형의 사건 또는 반전이 알맞게 갖추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강조점도 필요하다. 가령 진화론이 빠지면 생물학은 그저 잡다한 요소가 된다. 어떤 요소는 흥미롭고 궁금증을 유발하지만 의미 있는 큰 그림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같은 말을 보자.

 

진화론 즉 서사가 빠지면 아무 것도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있지만 잡다할 뿐이라 말한 것이다. 엘리베이터 피치라는 말이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는 동안 자신의 주제를 이야기한다고 가정해보자. 핵심을 간결하고도 인상 깊게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ABT 구성에 맞는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내가 쓴 숭의전에 대한 글을 예로 들 수 있다. 이 글에서 나는 반전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을 자주 언급했다.

 

임진(臨津)팔경을 이야기하며 그것은 파주 지역에만 국한되었지만 연천 지역에도 팔경이 있다고 한 점도 그렇고 이성계가 예성강에서 띄운 돌배<석주; 石舟>가 임진강까지 흘러왔다는 이야기를 언급하며 실제 여부를 말하지 않고 강() 또는 물길이 있는 곳에 이야기가 만들어진다고 한 점도 그렇다.

 

저자는 과학자에게 효과적 커뮤니케이션의 짐을 지라고 말한다. 수십 시간의 고민을 하고 몇 차례의 원고를 거치고 자료를 다듬어 청중의 뇌에 있는 둥근 수용기에 부드럽게 들어맞을 원통형 발표를 만들라는 것이다.(131 페이지) AAA는 귀납법이고 ABT는 가설연역법이다. 가설연역법은 발견된 패턴을 설명할 수 있을 법한 모든 가설 중에서 고민하고 실험하기에 시간 낭비인 것부터 쳐내는 방식이다.

 

일반론을 이야기하고 하지만으로 시작되는 문장으로 이어가는 것은 반전이고 They say..I say 형식의 문장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틀렸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이렇게 이야기한다.의 문장이다. ‘하지만을 갈등이라 할 수 있다. 갈등은 필연적이다. 스토리텔링에서 갈등은 음악에서 소리와 같다.(141 페이지) 서사의 방향은 한 번만 바꾸는 것이 좋다.

 

DHY는 그런데도(Despite), 할지라도(However), 그렇지만(Yet)을 의미한다. 서사가 너무 많은 경우다. ABT에 단어는 몇 개여야 적당한가? 직관에 따라라. 정해진 길이는 없다. 때에 따라 한 개 이상의 ABT가 필요할 수도 있고 청중이 누군가에 따라 각기 다른 ABT를 작성해야 할 수도 있다. 궁극적 목표는 서사적 직관을 기르는 데 있다. 직관적으로 서사의 문제를 감지할 수 있어야 한다.(171 페이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황금열쇠를 선별해낼 수 있는 서사적 직관이 필요한 것이다.(173 페이지)

 

ABT 구조를 잘 잡으면 사람들이 강연자의 주장을 따라가기 쉽고 강연자도 자신의 글을 기억하기 쉽다.(204 페이지) 이는 나도 평소 공감하던 바이다. 다만 나는 흐름이 좋은 글은 글쓴이 스스로 기억하기 쉽다는 생각을 했었다. 저자는 수없이 많은 과학책을 읽었지만 내용의 핵심을 설명할 수 있는 책은 거의 없다고 말하며 제임스 왓슨의 이중나선은 예외라고 말한다. 저자는 이중나선은 여러 부분이 선명하게 기억난다고 말한다.(204, 205 페이지)

 

저자는 왓슨의 책이 유명한 것은 생물학 역사상 가장 중요한 발견에 관한 책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한다. 만일 그 책이 서사적 역량이 떨어지는 사람에 의해 집필되었다면 밋밋한 책이 되었을 것이다. 공감한다. 하지만 내용(사건)과 서사적 역량이 함께 중요한 것이 아닌지? 서사적 역량만으로 밋밋한 이야기를 멋지게 이끌고 갈 수 있을까? 물론 이야기 거리가 되는 사건을 찾(아 쓰)는 것이 관건이긴 하다.

 

저자는 아직도 서사의 세계라 말한다. 과학 연구 지원 단체의 이야기가 약간은 충격으로 다가온다. 즉 그들은 현존하는 것이 맞는지 맞지 않는지에 대한 실험에는 관심이 없다. 모두 뚜렷한 패턴이 있는 새로운 이야기를 지원하고 싶어한다.(239 페이지) 저자는 서사라는 것은 평생의 공부이며 누구도 완벽한 경지에 오를 수 없는 문제라고 말한다.(261 페이지) 아무리 스필버그라도 그저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낼 때가 있다. 이것은 끝없는 도전이다.(262 페이지)

 

사실 저자는 할리우드로 진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영화는 너무 많은 정보와 방향이 잠재되어 있어서 정리하려면 며칠 더 필요할 것 같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런데 저자는 그 말이 칭찬인 줄 알았다고 한다. ”적법한 훈련과 시각을 통해 누구나 경지에 오를 수 있다.“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이것이 저자의 결론이자 가르침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저자가 만난 가장 완벽한 과학자는 스티븐 제이 굴드다.(내가 좋아하는 과학자여서 반가움이 크다.) 다시 굴드의 책들을 정독하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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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ue는 단서(端緖), 실마리, 힌트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다. 이 단어에 무엇 무엇이 없는, 무엇 무엇을 하지 않는, 무엇 무엇의 영향을 받지 않는 등을 뜻하는 less를 붙이면 '아주 멍청한', '무엇 무엇을 할 줄 모르는' 등의 예상 밖의 의미를 가진 단어가 된다. 이 이야기를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지난 해 동구릉 해설에서 계체석이란 말을 들었다.

 

한자로는 階砌石이라고 쓴다. 계절(階節; 무덤 앞에 평평하게 만든 땅) 앞에 조성한 장대석(長臺石; 섬돌, 디딤돌, 축대 등에 다듬어 놓은 긴 돌)을 말한다. 지금이야 익숙하지만 처음 들었을 때는 참 생소했다. 강사는 듣는 우리들도 자기처럼 익숙하다고 생각했는지 계체석이라고만 말하고 말았다.

 

지난 10월 철원 해설을 준비하다가 예전에는 철원 지역의 한탄강을 체천(砌川)이라고 불렀다는 사실을 알았다. 철원 한탄강 주상절리가 계단 같아서 그렇게 부른 것이다. 나는 이때 체()자를 찾아보고 그 단어가 섬돌 체자란 사실을 알았다. 즉 계()가 그렇듯 체()도 계단을 뜻하는 단어다.

 

나는 지난 1031일 철원 해설 때 "철원 지역의 한탄강을 체천이라 불렀습니다. 철원 한탄강 주상절리가 계단 모양 같아서 부른 이름입니다. 체는 섬돌 체자입니다. 섬돌을 뜻하는 한자로 계단이란 말에 쓰이는 계자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계와 체는 모두 계단을 뜻합니다. 바로 그 계와 체자를 쓴 단어인 계체석을 왕릉에서 볼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앞서 언급한 동구릉 해설사(행사를 진행하기 위해 동구릉에 온 외부 해설사)는 그 생소한 단어를 그렇게 짧게 말하고 지나갔을 뿐이었다. 가르치되 방법만 알려주고 진수(眞髓)는 스스로 깨닫게 함을 뜻하는 인이불발(引而不發)을 실천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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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 이전에도 진화론은 있었다. 다윈의 위대함은 진화론을 주장한 데에 있지 않고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론을 주장한 데에 있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관념적이거나 거창하게 보인다. 다윈의 또 다른 위대함은 진화를 생명의 나무로 표현한 데에 있다. 생명의 나무가 뜻하는 것은 진화가 단선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느 지점에서 종이 분기(分岐)하는 형태로 이루어진다는 의미다.

 

이는 생물 다양성을 의미한다. 다양성이라 했지만 자연의 다양성에 생물 다양성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구 다양성도 있다. 지구 다양성의 하나로 만나는 것이 지오파크다. 다윈은 산호섬 연구자였고 딱정벌레를 채집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을 보낸 학자였다. 다윈은 지렁이 연구자이기도 했다. 지렁이는 다윈의 마지막 연구 대상이었다.

 

다윈 생존시 가장 잘 팔린 책은 `종의 기원`이 아니라 `지렁이의 활동과 분변토의 형성`이란 책이다. 이렇게 말하면 실제적이고 현실적인가? 생태계란 개념은 지질학자였던 다윈이 종의 기원을 집필하면서 언급한 상호 연관된 종들의 복합체란 말에서 유래한다.(앤드류 슈왈츠, 이재돈 등 지음 생태문명 선언참고)

 

다윈의 생애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점은 그가 비글호를 타고 갈라파고스 제도를 여행했다는 점이다. 다윈이 해군 측량선 비글호에 탑승하게 된 것은 식물학자 존 헨슬로 교수의 추천에 힘입어서다. 비글호 선장 피츠로이는 창조론을 뒷받침할 증거들을 수집하기 위해 박물학자를 고용한 것인데 정작 다윈은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진화론에 대한 확증을 얻었다.(정인경 지음 뉴턴의 무정한 세계’ 122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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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7년은 경복궁 건청궁(乾淸宮) 내에서 점등식이 열린 해이다. 1884년 미국을 방문한 보빙사(報聘使)가 에디슨 회사를 찾은 뒤 일원이었던 유길준이 고종에게 보고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당시 고종은 서양 과학기술에 대한 강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어떻든 건청궁에 전등이 점등되었다는 사실은 내가 들은 가장 오래된 해설 내용 중 하나일 것이다. 4년전의 일인데 당시 강사는 에디슨의 악행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관심이 없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강사는 오직 진기한 뉴스거리에 초점을 맞추어 말했을 뿐이다. 잘 알려진 대로 에디슨은 직류 발전기의 발명자이고 니콜라 테슬라는 교류 발전기의 발명가다. 직류 발전기에 엄청난 투자를 한 에디슨은 교류발전기가 상용화될 경우 막대한 금전적 타격을 입을 것이 너무나 뻔했으므로 교류 전기가 더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개들에 전기 충격을 가하는 악마 같은 짓을 벌였다.

 

에디슨은 사형수에게까지 악행을 저질렀다. 에디슨은 직류 전기는 사람을 아무런 고통 없이 죽일 것이라 호언했다. 하지만 그런 장담과 달리 사형수는 처참하게 구워지며 죽었다. 이 일로 인해 사람들은 교류 발전기가 살상 도구라는 에디슨의 주장에 의구심을 가졌다고 한다. 이 구절을 보며 나는 의아함을 갖는다. 그들은 직류냐 교류냐가 문제가 아니라 동물이든 사람이든 생명체에 전기적 충격을 가하는 짓 자체가 문제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이다.

 

오래 전 대기(待機)가 많은 일을 하던 때 벌어진 사건이 기억난다. 함께 일을 하던 동료들은 무료해서 장기를 두거나 티브이를 보기도 했다. 장기판 주위에 훈수꾼, 구경꾼들이 몰려들어 왁자지껄 시끄러웠다. 그러자 티브이를 보는 사람들은 볼륨을 높였다. 두 무리는 서로 상대가 먼저 소리를 높였다고 주장했다.

 

내가 한 마디 했다. ”티브이도 안 보고 장기를 두거나 구경하지 않는 사람들은 안 보이시나요?“ 내가 한 말은 예컨대 당신들은 통합적 시각이 없다는 말이었다. 물론 나는 내 말이 모기를 보고 칼을 빼어 드는 것을 의미하는 견문발검(見蚊拔劍)의 말일 수도 있었음을 반성한다.

 

현대 물리학은 전기(電氣)와 자기(磁氣), 파동(波動)과 입자(粒子), 시간(時間)과 공간(空間)을 하나의 시각으로 본다. 우리에게도 이런 시각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것이냐 저것이냐가 아닌 통합의 눈으로 사태를 보아야 한다는 의미다. ”빛은 전기의 장()이 변화해 자기의 장()을 낳고 자기의 장이 전기의 장의 변화를 낳는 과정을 반복하며 공간 내에서 나아가는 전자기적 파동이다.“(정인경 지음 뉴턴의 무정한 세계‘ 176 페이지)

 

그러니 전기, 자기만이 아니라 전기, 자기, 빛이 하나라 보아야 한다. ”맥스웰은 셋(전기, 자기, )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단일한 힘의 현현이라는 획기적으로 변화된 관점을 제시했다.“(브루스 왓슨 지음, 이수영 옮김 ‘ 289 페이지 조금 변형)

 

맥스웰의 방정식은 더 놀라운 사실을 나타냈다. 전자기 효과가 전달되는 시간과 속도를 계산해보았더니 방정식에서 도출된 전자기파의 속도는 아르망 피조가 측정한 빛의 속도와 완전히 일치했다....이 결과가 일치한다는 것은 빛과 자기가 같은 물질의 작용이라는 것과 함께 빛이 전자기 법칙을 따라 장을 통해 전달되는 전자기파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정인경 지음 뉴턴의 무정한 세계‘ 175, 176 페이지)

 

아인슈타인은 맥스웰을 어찌나 존경했는지 자기 서재에 맥스웰의 사진을 걸어둘 정도였다.”(로빈 애리언로드 지음 물리의 언어로 세상을 읽다‘ 17 페이지) “맥스웰 이후 물리학자들은 자연계의 4가지 근본력, 곧 전자기력과 강력과 약력과 중력을 하나의 이론으로 통합하기 위하여 헤아릴 수 없는 노력을 쏟아왔다.”(월터 르윈 지음 나의 행복한 물리학 특강‘ 237 페이지)

 

사실 자연계의 4가지 근본력을 통합하려는 물리학은 철학 만큼이나 형이상학(세계의 궁극적 근거를 연구하는 학문)적으로 보인다. 이는 진리는 하나이고 하나여야 한다는 믿음에 근거한다.(이진경 지음 설법하는 고양이와 부처가 된 로봇‘ 399 페이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전기했듯 궁극의 진리를 찾으려는 무리(無理) 차원이 아니라 포괄할 수 있는 것들을 가능한 한 두루 담아내려는 차원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앞 부분에서 말한 바 있는 에디슨 일화에서 우리가 취할 점은 무엇인가? 경복궁 건청궁 내에서 일본이나 중국보다 먼저 전등을 밝혔다는 사실만을 전할 것이 아니라 그 배경과 역사적 연원, 의미, 그리고 에디슨으로 대표되는 탐욕스런 사업가는 물론 목적이 없고, 제안자 자신이 진화는 진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해지는 것이고 때로 퇴보도 의미한다고 밝혔음에도 그로부터 사회진화론(목적과 방향을 설정해 진보하는 사회를 추구하는 이론)을 이끌어내 약한 나라들에 대한 침략과 수탈을 정당화한 제국주의 세력(가장 대표적인 나라가 일본이다.)에 대해서까지 이야기하는 것이다.

 

건청궁과 전등 이야기를 했지만 이는 누구보다 먼저 나에 대해 하는 말이다. 지난 1128일 광화문과 세종대로 일대를 문학 작품으로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해설을 마치고 미흡한 점이 몇 가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가령 구보(仇甫, 丘甫) 박태원(朴泰遠; 1909 1986)은 경성역 등에서 황금을 좇아 흥청이는 천박한 세태를 보며 환멸감을 느꼈다.

 

내가 해설한 광화문 일대의 주요 포스트 가운데 하나가 구() 동아일보 사옥이다. 지금은 일민미술관으로 쓰이는 이 건물 외벽에 ‘1920 기억극장 황금광시대(黃金狂時代)’(20201081227)을 알리는 세로 현수막이 걸려 있다. 채만식의 레디 메이드 인생을 건축과 철학을 전공한 김소연(‘미치지도 죽지도 않았다; 파란만장, 근대 여성의 삶을 바꾼 공간의 저자이기도 한)이란 분이 주인공의 구직활동(동아일보 사옥에서의)에 초점을 두어 재가공한 작품(‘건축, 근대 소설을 거닐다수록)을 설명하는 데 그쳤다.

 

사전 답사를 두 번이나 했지만 내 생각에 빠져 못 보았거나 청계천(구 동아일보 사옥 옆의 청계광장에서 세운상가까지)에서 구보 이야기를 했기에 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후자라 해도 문제다. 청계천에서 내 해설을 들은 분들과 1128일 들은 분들은 다르고 같다 해도 상황이 다른 부분이기에 필요한 부분이었다.)

 

물론 조금 늦은 깨달음이지만 아예 알아차리지 못한 것보다 나은 것이라 생각하면 속상해 할 필요는 없다. 송재학 시인은 건달불이란 시에서 이런 말을 했다.

 

“1887년 경복궁에서 처음 켜진 전깃불은 물불이거/ 나 묘화(妙火)였다 향원정 연못의 물을 이용한 화력/ 발전이었기에 물불이라 했고, 기묘함 탓에 묘화란 이름을 얻었다 하지만 자주 켜졌다 꺼졌다 하면서/ 하릴 없이 애를 태워 건달불이라는 비웃음도 얻었다/ 게다가 이 전깃불은 대국이 아니라 오랑캐의 물건이/ 라던,...” 곧 다시 준비하고 찾고 쓰고 답사해야 하지만 적어도 이 순간은 평화로운 시간이다. 연이은 어렵고 부담스러웠던 해설들을 마치고 나니 시도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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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류와 지류..本流支流라 쓴다. ()에서 연원한 것이니 가지 지()자를 쓰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다. ()자를 쓴다. 는 지탱(支撑)하다 외에 가르다, 갈리다, 헤아리다, 계산하다, 가지, 근원(根源)에서 갈라진 것 등을 의미한다. 지탱하다가 한자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탱이란 자가 드문데...

 

탱화(幀畫)가 있고 탱천(撐天)이 있다. ()과 탱()은 비슷한 듯 다르다. 은 영정(影幀)이란 말에 쓰이고 탱화(幁畵)란 말에도 쓰인다. 그나저나 지류(支流)는 다른 강이나 개울에 합류하면서도 바다로 직접적으로 흐르지 않는 물줄기를 가리킨다고 한다. 처음 알았다. “바다로 직접적으로 흐르지 않는이란 말이 키워드다. 그런데 나는 지류를 바다로 직접적으로 흐르지 않고 다른 강이나 개울에 합류하는 물줄기라 해야 자연스러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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