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은 질량이 클수록 수명이 짧다. 태양 질량의 20배가 넘는 별의 경우 엄청난 자체 중력(서로 끌어당기는 힘)을 이기지 못하고 폭발한다. 폭발력이 안으로 향하는 것을 내파(內破)라 하고, 밖으로 향하는 것을 외파(外破)라 한다. 내파를 폭축(爆縮)이라고도 한다. 축(築)이란 말은 당연히 수축(줄어드는 것)을 의미하지만 흥미롭게도 옳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어디에 그런 말이 있는가? ‘맹자’에 나오는 자반이축 수천만인 오왕의(自反而縮 雖千萬人 吾往矣)란 말에서 그 사례를 만날 수 있다. 스스로 돌아보아 잘못이 없다면 비록 천만인이 가로막아도 나는 가리라는 뜻의 말이다. 자신과 관련된 일도 아니고 피해를 입은 것도 아닌데 이러쿵 저러쿵 말을 하는 사람 때문에 친구가 조심하자는 말을 한 끝에 결론 삼아 한 말이다.

 

폭축(爆縮)이란 말은 내성(內省)을 떠올리게 한다. 폭축이 폭발력이 안쪽으로 향하는 것이라면 내성은 밖으로 향하던 관심과 지향을 안으로 돌려 제 마음을 성찰하는 것이다. 어떤 경우 관심과 지향이 밖을 향하고, 어떤 경우 안을 향하는 것일까? 메타적 능력 즉 자기를 대상화해 바라보는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그러기도 하고 그러지 못하기도 할 것이다.

 

양적 변화가 쌓여야 질적 변화가 일어나듯 지식도 충분히 쌓여야 메타적 지식이 된다. 프린스턴대학의 천체물리학자 네터 배철(Neta Bahcall)의 말이 생각난다. 그는 우리 우주를, 팽창을 막는 데 필요한 질량의 일부만을 지닌 체중 미달의 우주로 정의했다. 별의 행보에 질량이 중요하듯 우리의 행보에는 자기성찰적 지식이 중요하다.

 

공부하지 않으니 숙고하고 점검해야 할 것이 없고, 또 그래서 시간이 남아 남의 개인사에 이러쿵 저러쿵 하는 것이다. 물론 그 덕에 나는 오랜만에 나를 돌아보는 계기를 삼았지만 그는 자신의 행동이 그 자체로 덕스럽지 못한 행동임을 알 것이다. 만일 그것도 모른다면 그는 나이만 먹은 아이 같은 어른에 불과하다. 나이가 들면 존경은 못 받더라도 지탄은 받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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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지켜낸 어머니 - 이순신을 성웅으로 키운 초계 변씨의 삼천지교 윤동한의 역사경영에세이 3
윤동한 지음 / 가디언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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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계는 지금의 경남 합천이다. 이순신의 어머니가 초계 변씨이다. 무인 변수림의 딸 초계 변씨다. 남편 즉 이순신의 아버지는 이정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순신의 어머니, 작은 어머니, 할머니가 모두 초계 변씨라는 사실이다. 이순신은 어머니를 시종 천지(天只) 즉 하늘이라 표현했다. 이순신의 무공(武功)이야 널리 알려진 바이지만 그의 어머니 초계 변씨의 혁혁함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조선을 지켜낸 어머니‘는 이순신의 어머니에 초점을 두고 쓴 책이다. 부제는 '이순신을 성웅으로 키운 삼천지교(三遷之敎)'다. 삼천이란 건천동에서 아산으로, 아산에서 여수로의 이사를 이르는 말이다. 서울 건천동에서 태어난 이순신이 아산으로 이사한 것은 할아버지(초계 변씨의 시아버지)가 중종의 국상 당시 혼인 잔치를 해 녹안(錄案; 관리의 범죄 사실을 기록한 장부)에 오름에 따라 자식들의 장래를 염려한 어머니에 의해서다.

 

아산은 이순신 어머니의 친정이었다. 이 시절 이순신은 문과에서 무과로 학업을 바꾸어 급제했다. 이순신의 어머니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순신을 정신적으로 후원하기 위해 아산에서 여수로 이사했다. 과연 이순신의 어머니 초계 변씨는 조선을 지켜낸 어머니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순신은 형 요신으로 인해 동학(東學)을 통해 유성룡을 만났다. 유성룡은 이순신을 정읍 현감, 전라좌수사에 적극 천거했다.

 

이순신의 할아버지 이백록이 기묘사화 때 조광조와 뜻을 같이하다가 목숨을 잃었다는 말이 있지만 이백복(이백록의 형)과 혼동한 결과로 보아야 한다. 이순신의 어머니 초계 변씨가 보인 주도적 역할은 당시만 해도 여성의 지위나 발언권이 높았던 시대였음을 감안해야 한다.

 

이순신을 중매 선 사람이 영의정인 동고(東皐) 이준경(李浚慶)이었다. 연산군의 어머니 윤씨에게 사약을 가져다 준 이세좌의 손자였다. 연산군이 내린 처벌로 집안에 남자가 없을 정도였으나 유모가 데리고 달아난 덕에 이윤경, 이준경 형제는 살았다. 이준경은 하성군을 세운 사람이기도 하다.(하성군은 선조다.) 이준경은 붕당의 출현을 이야기했고 왜적의 침입도 예언했다.

 

이준경이 중매를 선 것은 그가 이순신의 조부, 처조부와 같은 해에 과거에 급제한 동기였기 때문이리라. 이순신은 무과 도전 10년만에 급제했다. 이순신의 어머니 초계 변씨에 의해 주도된 아산 이주는 가문에게는 경제적 해결책이 되었다. 이순신의 어머니는 전라좌수사로 임명된 이순신이 찾아오자 가서 나라의 치욕을 크게 씻으라고 당부하며 이별을 조금도 탄식하지 않았다. 이순신은 어머니의 성격을 그대로 닮았다. 모자 모두 자주, 자립을 원칙으로 여겼고 아무에게나 손을 내밀지 않았다.

 

어머니는 여간해서는 흔들리는 성격이 아니었다. 냉정할 정도로 침착한 사람이었다. 이순신은 이런 인연, 저런 연줄을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었던 위치에 있었지만 절제했다. 모자는 애틋한 정을 주고 받았다. 어머니는 78세에 여수행을 결정했다. 아들 이순신이 49세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된 때다. 이순신은 탐후(探候船)이 오지 않자 '어머니의 안부를 알 수 없다, 걱정이 되고 눈물이 난다.'고 썼다.

 

이순신은 1596년 새해의 결심을 대학(大學)의 구절을 빌어 썼는데 부윤옥(富潤屋)이란 구절은 뺐다. 덕에만 관심이 있었음을 증명한다. 이순신은 예민한 사람이었다. 이순신은 가토 기요마사가 꾸민 간계에 걸렸다. 간계임을 알아차리고 기다렸지만 조정에서 어리석게도 사태를 바로 보지 못하고 이순신을 죽이라고 난리를 쳤다. 이순신을 비호해줄 유성룡은 지방 순시에 나가 있었다. 대신들이 하나 같이 이순신의 죄를 묻는 상소를 올리자 이순신을 질투(104 페이지)하던 선조는 못 이기는 척 이순신의 파직을 명했다.

 

여기서 통제영에 대해 말하자. 통제영은 조정으로부터 한 푼의 지원도 받지 않는 자립, 자영 체제였다. 수만의 군사를 동원할 수 있는 데다가 명나라 장수도 함부로 하지 못할 정도로 위세가 대단한 작은 정부였다. 이순신은 통제영의 원수(元帥)였다. 선조로서는 큰 위협을 느꼈을 수 있었다. 이순신은 순순히 체포되었다. 이순신의 직속 상사인 이원익은 단도직입적으로 왜적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은 뒤 바로 이순신이라 답하며 '지금 그를 죽여 무엇을 얻으시겠습니까? 부디 간언컨대 순신을 살려 전쟁으로 보낸 공을 세우게 하옵소서, 공을 세워 나라도 구하고 죄도 갚게 하소서.'라고 말했다.

 

이순신은 1597년 2월 한산도에서 체포되어 3월 4일 서울 전옥서(典獄署)에 수감되었다. 판중추부사 정탁은 처음에는 순신이 잘못한 줄 알았으나 진상을 들은 뒤 목숨을 걸고 탄원했다. 이에 선조는 특별사면령을 내렸다. 정탁의 상소는 유성룡의 우회적 상소라는 말도 있다. 아들의 하옥 소식을 들은 83세의 어머니는 내 관을 짜서 배에 실라는 말로 아들을 보려 가려는 자신의 건강을 우려해 반대하는 사람들을 물리쳤다. 아들이 풀려났지만 어머니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갔다.

 

저자는 모든 어머니는 자식의 의지처라는 점에서 어머니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있었던 이순신도 주요 해전에서 대승의 에너지를 어머니로부터 공급받았을 것이라 짐작한다고 말한다.(230 페이지) 사료를 집요하게 파헤치지 않으면 세세한 것들을 결코 찾지 못할 것이라 말하는(107 페이지) 저자의 집념이 빛나는 책이다. 흥미롭게 읽었다.

 

선조의 치졸함은 역시 안타깝게 읽혔다. 이순신의 어머니에 대한 기록이 많지 않아서인지 관련이 있지만 직접 자료가 될 수 없는 주변 인물들에 대한 정보가 다소 많지 않나 싶다. 1944년 중종 국상일(61 페이지), 이 충무공이 활쏘기를 연마하던 곳 한산정(閑山停)(110 페이지).. 신라시대의 지방군 부대를 이르는 한산정(漢山停)을 보고 잘못 쓴 것이 아닌지?(停; 신라의 군영) 등의 오류가 보인다.(한산정은 閑山亭이라 해야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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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떤 동네에 살고 있습니까 - 동대문구 사람들의 소소한 삶과 역사
시민나루 지음 / 시크릿하우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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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떤 동네에 살고 있습니까’는 동대문구의 동(洞)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다룬 동들은 제기동, 회기동, 이문동, 휘경동, 청량리동, 전농동, 용신동, 답십리동, 장안동 등 아홉 개 동이다. 이 동들은 놀라운 역사를 가진 동들이다. 조선 왕조의 출범과 함께 왕이 친히 농사의 모범을 보인 곳, 그 수고를 백성들과 국밥으로 나누며 하늘에 제례를 올리던 신성한 곳, 동부권 물류와 소비의 중심지, 도성의 채소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던 공급지, 국가의 전략적 중요 관리대상이었던 목마장이 있던 곳, 노동환경이 열악하던 시절 영상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최고의 복지를 제공하던 촬영소가 있던 곳...

 

제기(祭基)는 조선시대 왕이 제사를 지내던 터를 말한다. 회기동(回基洞)은 연산군의 생모 폐비 윤씨의 묘인 회묘(懷墓)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회묘는 고양 서삼릉 영역으로 옮겨졌다. 이 동에 경희대학교가 있다. 신흥무관학교를 이은 학교다. 하지만 관계자들은 그 사실을 감추려 했다.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 가운데 돈이 있는 사람들이 없어 재력이 있는 친일 경력의 인사들을 영입했기 때문이다.

 

연화사(蓮華寺)는 회릉의 원찰이었다가 회릉이 회묘로 격하되자 일반 사찰이 되었고 의릉(懿陵)이 들어서면서 다시 원찰이 되었다. 이문동(里門洞)은 시골이 연상되는 동이다. 도둑을 단속하기 위해 전국의 마을 입구에 세운 문인 이문은 성문(城門)과 대비된다. 성과 외부를 구분하는 문이 성문이라면 마을과 마을의 외부를 구분하는 기준점이 이문이다. 이문은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곳이다. 이런 곳에 설렁탕 같은 음식을 파는 곳이 있는 것이 자연스럽게 보인다.

 

세조는 야간 치안을 감당한다는 취지로 전국 요지에 방범초소격인 이문을 세웠다. 이문동에는 천장산(天藏山)이 있다. 상술하지 않겠지만 하늘이 숨겨놓은 산이 아니라 권위주의 시대의 정보기관이 숨겨놓은 산이다. 휘경동(徽慶洞)은 순조의 어머니 수빈 박씨의 역사가 깃든 곳이다. 휘경동은 수빈 박씨의 묘인 휘경원(徽慶園)이 있었던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청량리(淸?里)는 지역의 청량사(淸凉寺)란 절에서 유래했다. 전농동(典農洞)은 임금의 경작지인 적전(籍田)에서 유래한 동이다.

 

청량리가 대중적인 이름이라면 전농동은 유서 깊은 이름이다. 전농동에는 부군당(府君堂)이 있다. 신당(神堂)을 말한다. 조선 개국 공신 조반(趙?; 1341 ? 1401) 대감을 모신 곳이다. 전농동은 화가 박수근의 마지막 생을 기억하는 곳이다. 전농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산이 배봉산(拜峯山)이다. 110m 높이의 낮은 산으로 사도세자의 묘소인 '영우원'과 '휘경원'이 있었다. 정조가 부친의 묘소를 향해 절을 했기 때문이라는 설, 산의 형상이 도성을 향해 절을 하는 형세를 보이기 때문이라는 설 등에서 유래됐다.

 

배봉산 숲속 도서관은 가볼만한 곳이다. 용신동은 용두동과 신설동을 합한 이름이다. 신설동(新設洞)은 구한말 종로의 연장선의 의미로 세워진 신도시였다. 한성부의 숭신방과 주로 겹쳤다. 마을 뒷산의 세(勢)가 용의 머리와 같다고 해서 용두동이란 이름이 붙었지만 한국 전쟁 이후 북한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모여살던 판자촌으로서의 기억이 강하다. 청년 전태일이 이리저리 옮겨다니던 판자촌 중 한 곳이 청계천변 용두동이다.

 

답십리동은 뚜렷한 정체성이 없다. 지금 사람들은 청량리역과의 접근성 때문에 답십리를 청량리와 묶는 경향이 있지만 이 지역의 정체성은 왕십리 지역과 더 잘 묶인다. 왕십리는 조선 전기부터 한양도성에 채소를 공급하는 배후지였다. 당시는 저장시설과 운송수단이 발달하지 않아 고기나 채소 등 부패하기 쉬운 것들은 먼 곳에서 운반할 수 없었다. 그런 까닭에 청계천 주변의 왕십리 등 인근 지역 일대는 한양도성의 채소 공급지로 기능했다.

 

마장동 일대의 우시장도 그런 연유로 활성화되었다. 청계천의 지류를 활용해 왕십리와 답십리가 순무, 배추 등을 도성에 공급하는 역할을 했다. 답십리의 영화촬영소와 고미술상가는 가볼만하다. 장안동은 동대문구에서 인구, 공원, 학원, 사무실이 가장 많은 동이다. 현재 자동차 중고시장이 있는 장안평역 근처는 조선시대에는 말이 쉬어가던 살곶이 목장이 있던 곳이다. 장안동에 공원이 많은 것은 이곳이 군사적 요충지(말 목장, 군사 훈련장)였던 것과 관련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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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란공 2022-03-04 00: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릴 때 돌아다니던 동네가 나오니 신기합니다^^ 마장동 대로 주변에는 90년대에도 한 번씩 말이 다니곤 했는데 말이죠. 그리고 김수영 시인이 10대 시절(6년 정도, 1934-1940) 살았던 곳도 용두동으로 알고 있습니다.^^

벤투의스케치북 2022-03-04 07: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시군요.. 김수영 시인 이야기까지 들려주시고..감사합니다...
 
재미로 읽다가 100점 맞는 색다른 물리학 : 상편 - 교과서보다 쉽고 흥미진진한 물리학 교실 재미로 읽다가 100점 맞는 색다른 물리학
천아이펑 지음, 정주은 옮김, 송미란 감수 / 미디어숲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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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가 없으면 선택받지 못하는 시대다. 물리도 그렇다. 물리를 설명하는 방식도 재미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재미로 읽다가 100점 맞는 색다른 물리학(상권)’은 거북이와 달팽이, 참새의 상대 속도를 재미 있게 설명하는 것으로 테이프를 끊는 책이다. 물리학은 물질 운동의 가장 일반적인 규칙, 물질의 기본 구조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물체의 운동은 공간, 시간, 기준틀 없이는 설명할 수 없다. 각주구검(刻舟求劍)은 운동의 상대성을 이해하게 해주는 고사성어다. 각주구검은 배를 타고 가던 중 칼을 강물에 떨어뜨리자 배에 칼 떨어진 장소를 표시 해놓고 찾으러 간다는 뜻이다. 배는 움직이고 검은 그 자리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책은 1장 운동, 2장 힘과 뉴턴의 운동법칙, 3장 일, 에너지와 운동량, 4장 열현상 등으로 구성되었다. 사람이 걷는 현상도 흥미로운 분석의 대상이다.

 

사람이 두 발로 땅 위에 우뚝 설 수있는 것도 사람의 무게중심으로부터 지표면에 내린 수선(垂線)이 두 발을 지지하는 기저면의 범위 안에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앞으로 걸음을 내디딜 때, 가령 왼 다리를 앞으로 내디디면 무게중심의 수선이 오른 다리의 기저면 범위 밖으로 나가므로 앞으로 고꾸라져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 이와 같은 상황은 일어나지 않는다.

 

앞으로 내디딘 왼 다리가 이미 앞쪽의 지면을 밟아 무게중심의 수선이 다시 두 다리를 지지하는 기저면 범위 안에 들어가게 되기 때문이다. 걷는 것은 끊임없이 앞으로 쓰러지는 행위인데 넘어지기 전에 하는 동작이 수평면상에서 똑바로 서서 넘어지지 않을 조건을 충족하기 때문에 바닥과의 충돌을 피할 수 있는 것이다.

 

책은 불가피하게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려야 할 경우 어느 쪽으로 뛰어내려야 좋은가?란 물음도 던진다. 이는 뉴턴의 운동 제1법칙(관성의 법칙)에 관한 단서를 알게 하는 질문이다. 행성운동의 3대 법칙인 타원궤도의 법칙, 면적속도 일정의 법칙, 조화의 법칙을 발견한 케플러는 우주의 입법자라는 이름을 얻었다. 책은 배 위에 얹은 석판을 깰 수 있는 이유도 설명한다.

 

책은 고드름에서 피어오르는 김과 끓는 물에서 피어오르는 김은 같을까?란 질문을 던진다. 책 앞 장에 고체처럼 분명하게, 액체처럼 부드럽게, 기체처럼 날렵하게 물리학의 세계로 빨려 들어간다는 소개 문구가 있다. 재미 있는 책이다. 현실과의 연결고리가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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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에게서는 인식이든 사유든 마음 속의 모든 일은 4가지 인식능력에 의해 일어난다. (직관하는) 감성, 상상, (판단하는) 지성, (추론하는) 이성 등이 인식의 네 가지 능력이다. 모든 심리적 과정의 배후에는 언제나 서로 다른 방식으로 결합하여 작동하는 4가지 능력이 있다. 싸가지라 말하고 싶어 네가지라 쓰지 않았거니와 4가지는 사가지인데 네가지로 (알아서) 읽는다.

 

4개는 사개라 읽지 않고 네 개라 읽고 4등은 네 등이라 읽지 않고 사등이라 읽는 것, 우리 말을 배우는 외국인들에게 참 어려울 것 같다. 정말 궁금한데 원칙이 있을까? 각설하고 감성, 상상, 지성, 이성 등 네 가지 면에서 대체로 문제인 사람들을 나는 싸가지라 부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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