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해류 - 진화의 최전선 갈라파고스에서 발견한 생명의 경이
후쿠오카 신이치 지음, 김소연 옮김, 최재천 감수 / 은행나무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남미 북서부에 자리한 에콰도르에서 1000 km 떨어진 갈라파고스 제도(諸島). 해저화산의 폭발로 태평양에 갑자기 나타난 신천지(265 페이지)인 이 섬들은 1535년 남미 잉카로 파견되었으나 알 수 없는 이유로 표착(漂着)한 스페인의 전도사 프라이 토마스 데 베를랑가에 의해 발견되었다. 300년간 잊힌 섬이었던 갈라파고스가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다윈에 의해서다.

 

판구조론으로 형성을 설명(134 페이지)할 수 있는 갈라파고스 제도는 다윈이 진화론의 영감을 얻은 곳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저자는 “다윈의 고향이라 불리는 갈라파고스는 사실은 가장 다윈적이지 않은 곳”이라고 말한다.(209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이름이 있는 섬이 총 123개이고 주요 섬만 해도 13개나 되며 크고 작은 다양한 섬과 암초들이 산재하는 군도(9 페이지)인 갈라파고스의 생태계가 기묘하게 보이는 것은 그곳이 한없이 자유롭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작위의 변이와 자연도태의 압력만으로 진화를 설명할 수 있는 다윈주의와는 상당히 다르다. 다윈은 30세 무렵 유전형질(본능적 형질)과 획득형질(개체가 학습에 의해 얻은 형질로 그 한 대에 국한되는 형질)을 명확하게 구별했다. 이런 혜안은 진화론적 고찰로 이어졌다.(258 페이지) 독립 직후의 에콰도르가 영유권을 선언한 것은 1832년이었고 스물 여섯의 다윈이 비글호에 동선(同船)해 갈라파고스에 닿은 것은 1835년이었다.

 

에콰도르가 점령을 선언하기 전까지 갈라파고스는 해적선이나 포경선의 정박지였다.(225 페이지) 땅거북이란 의미의 갈라파고스 제도가 형성된 것은 구대륙에 비하면 최근인 수백만년전이다.(202 페이지) 1830년 콜롬비아로부터 독립한 에콰도르는 정치범, 파산자, 부랑아 등을 절해의 불모지인 갈라파고스에 이민단으로 보냈다. 무역상 비야밀의 아이디어에 의해서였다.

 

후쿠오카 신이치의‘생명해류’는 아사히 출판사의 제의를 받고 다윈이 들르지 않았던 산타크루스섬을 기점으로 여행을 시작해 플로레아나섬 - 이사벨라섬 - 볼리바르 해협 - 산티아고섬으로 이루어진 다윈의 여행 코스를 그대로 따른 뒤 쓴 관찰 및 탐사 기록이다. 다윈이 처음 갈라파고스를 접했던 원점으로 돌아가 그가 보았던 피시스(생명의 본 모습, 본래의 자연)를 확인하고 싶었던(24 페이지) 후쿠오카에게 아사히 출판사의 제안은 너무도 큰 선물이었다.

 

저자는 피시스의 전체상은 로고스의 틀 밖으로 밀려나기 쉽다고 말한다. 로고스는 인간의 뇌가 세상을 잘라내어 선분을 긋고 논리를 추출하여 편의대로 구축한 정돈된 인공물이다.(102 페이지) 저자는 자신이 홀로 갈라파고스에 간다면 자비(自費)와 노력으로 어떻게든 꿈을 이룰 수 있겠지만 그러면 아무리 노력해도 관광여행 이상은 될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저자의 핵심 주제는 동적 평형이다. 이는 다양한 것들이 유입되고 그것들이 한때 ‘나’의 몸을 형성하지만 지체 없이 흘러나가는, 흐름 속에 존재하는 생명을 표현하는 말이다. 저자는 절해의 고도는 저 먼바다 한가운데에 고립된 땅처럼 보이지만 끊임없이 생명을 받아들이고 키워낸다고 말한다.(176 페이지)

 

저자는 네이처 가이드에게 바위의 이름을 물어 그가 단지 지역 이름을 대자 ”맘대로“ 갈라파고스 생명의 자유자재로움을 상징하는 동적평형 바위라 명명하기도 했다.(246 페이지) 동적평형이란 말은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지구의 판을 통해 설명할 수 있는 개념이다. ”갈라파고스 제도는 지구의 동적평형 위에서 위태로운 균형을 잡으려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지리학적으로도, 생물학적으로도 움직임의 한복판에 있다.“(139 페이지)

 

동적 평형과 함께 거론할 수 있는 저자의 개념이 이타성이다.(71 페이지) 이 개념으로 대단히 넓은 마음의 소유자인 식물, 미생물을 설명할 수 있다. 그들은 자신에게 필요한 만큼만 영양분을 만들거나 자신이 생산한 암모니아를 독점하지 않고 언제나 조금 더 많이 활동하여 그것을 다른 생명에게 나누어준다. ”여유가 있는 곳에 이타성이 생기고 이타성이 생기면 그때 비로소 공생이 시작된다. 이타성은 돌고 돌아 자신에게 돌아온다.“(204, 205 페이지)

 

당연히 일정에는 많은 사람이 함께 했다. 여행 일기의 필자인 후쿠오카 신이치 박사, 마벨호의 선장 에두아르도 코셸료, 마벨호 부선장 프란시스코 산틸란, 만능 일꾼인 마벨호 선원 훌리오 모레타, 현지 가이드 오스왈드 차피, 마벨호의 요리사 조지 아빌레스, 통역사 도리이 이치요시, 야생 전문 사진작가 아베 유스케 등이다.

 

대부분이 국립공원인 갈라파고스는 자연보호 차원에 따라 들어갈 수 있는 곳과 들어갈 수 없는 곳이 엄밀히 정해져 있다. 아무리 전세를 낸 배라고 해도 반드시 현지 가이드가 동행해야 하며 가이드의 관리를 받으며 관찰하거나 행동해야 한다.(81 페이지) 갈라파고스의 자연물은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섬 밖으로의 반출은 엄금이며 섬에서 섬으로의 이동도 금지되어 있다. 신발이나 바지에 붙은 모래는 깨끗이 털어내야 하고 샘플도 현미경 관찰이나 촬영 후에는 모두 제자리에 돌려놓아야 한다.

 

화산 열도로 생성된 갈라파고스 제도 대부분은 용암지대이고 적은 강수량이나마 용암의 벌어진 틈으로 흘러들어가기 때문에 담수가 고여 있는 곳이 거의 없다. 물론 하천도 없고 연못도 없다. 물이 고여 있는 곳은 바닷물 또는 바닷물이 증발해서 생긴 염호(鹽湖)다. 이 때문에 인간은 오랫동안 갈라파고스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었다.

 

갈라파고스는 해저 화산 분화로 생긴 용암 섬이지만 섬마다 모습은 전혀 다르다. 섬의 나이에 따라 차이가 생긴 것이다. 저자는 지구의 판들을 땅거북의 등껍질 같다고 표현했다. 갈라파고스의 땅거북은 멸종했다가 유네스코의 노력에 힘입어 복원되었다. 그들은 1년 동안 물이나 먹이를 주지 않아도 알아서 살 정도로 생명력이 강하다.

 

문제는 남획된 이유다. 고기가 맛있고 체내에 대사수(代謝水)가 있어 유사시 담수의 공급원이었기 때문이다. 바다가 너무도 넓어 땅거북이나 이구아나 같은 파충류의 천국이었던 갈라파고스의 땅거북들은 이주민들이 데리고 온 염소, 돼지 때문에 또 한 번 수난을 당했다. 염소는 땅거북들의 먹이인 풀을 먹었고 돼지는 땅거북들의 알을 먹었다.

 

저자는 갈라파고스는 생명 진화의 현장이고 지금도 엄연히 발전하고 있는 곳, 막다른 길이 아니라 최첨단인 곳이라 설명한다.(201, 202 페이지)‘생명해류’의 장점 중 하나는 불확실 하던 다윈 진화론을 명확하게 짚은 데 있다. 저자에 의하면 다윈주의는 오로지 생식세포의 유전자에 우연히 생긴 돌연변이가 세대에서 세대로 유전되는데 그 안에서 생존에 유용한 것만이 자연선택 된다는 것이다.(167 페이지)

 

저자는 흙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그에 의하면 흙은 사실 모래 알갱이가 아니라 미생물이 만들어내는 유기물 입자다. 그러므로 흙은 살아 있다. 미생물은 공기 중의 질소를 암모니아로 변환시킬 수 있다. 암모니아는 아미노산의 재료이고 아미노산은 단백질의 재료이다.(203 페이지)

 

미스테리는 대륙에서 1000km 떨어진 갈라파고스에 어떻게 헤엄도 치지 못하는 땅거북이 옮겨갔을까, 이다. 천연 뗏목 가설이 주목된다. 갈라파고스 제도의 해역은 풍부한 수산자원을 품고 있다. 그곳으로 한류가 흘러들어온다. 한류가 흘러들어오는 까닭에 더욱 풍성한 바다가 된디. 얼핏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유가 있다. 태평양 쪽에서 갈라파고스 제도로 오는 적도잠류는 차갑기 때문에 수심이 깊은 부분으로 흘러들어간다. 이것이 갈라파고스 제도의 해저에 있는 해분(海盆)에 부딪혀 상승으로 솟구친다.

 

이 때문에 바다 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대량의 유기물의 염류가 표층으로 끌어올려진다. 이것이 표층부에 서식하는 플랑크톤이나 해조류의 중요한 영양소가 된다. 플랑크톤이나 해조류는 어패류와 해양생물의 식량이 된다. 어패류는 새, 바다사자, 물개들의 적절한 양식이 된다.(226 페이지)

 

저자는 에콰도르가 갈라파고스 제도를 영유하게 됨으로써 그곳을 구미 제국으로부터 지켜내 자연환경과 생태계의 보고(寶庫)로 만들 수 있었다고 말한다. 다윈이 동선(同船)한 비글호는 자연 조사와 해도 측량을 기치로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군함이다.(116 페이지) 에콰도르가 갈라파고스를 점령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영국이 그곳을 자국 영토화했을 것이다.

 

탐욕스러운 구미 열강은 갈라파고스가 거의 미개한 땅이라는 이유로 학술연구라는 미명 아래 조사단을 잇따라 파견했다.(144 페이지) 저자는 생태적 지위를 이렇게 설명한다. 그것은 개체가 스스로 생존을 찾는 장소이자 번식을 위한 공간이라고.(267 페이지) 갈라파고스는 넉넉한 생태적 지위를 갖는 곳이다. ‘생명해류’는 인문적 마인드와 생명 사랑으로 빛나는 분자생물학자인 저자가 ”혼신을 다해“(51 페이지) 쓴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역작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질 또는 지구과학 책을 꽤 비효율적으로 샀다. 정리 해본 결과 알게 된 바다. 가지고 있는 책에 찾아 헤매는 답이 있는지도 모르고 다른 책을 샀을 수도 있다. 그런 까닭에 얇은 책들을 들춰본다. 나는 어쩌면 무엇이라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내용을 찾아 다니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질해설사가 되기 전 산 책, 정통 지구과학 책이라 할 수 없는 책도 포함되어 있다. 오늘 재인폭포에 온 한 분과 대화를 나누었다. 최근 그랜드 캐니언에 다녀오셨다는 분이다.

 

어제 마침 '그랜드 캐니언, 오래된 지구의 기념비'를 산 뒤 아직 한 페이지도 읽지 못해 아쉬움을 느낀 나는 집으로 돌아와 지구과학 또는 지질 책 소장 목록을 작성했다. 목록 작성이 책을 체계적으로 읽는데 어느 만큼 도움이 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정리와 기록을 위해 내 자리 옆에 쌓아둠으로써 수시로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유효하리라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심리학이 조조에게 말하다 2 - 진실이 때론 거짓보다 위험하다 심리학이 조조에게 말하다 2
천위안 지음, 이정은 옮김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심리학이 조조에게 말하다’ 2권의 부제는 ‘진실이 때론 거짓보다 위험하다’이다. 5부 조조 불굴의 투지 효과, 6부 조조의 상호작용 원칙, 7부 조조 경쟁과 도전의 기술, 8부 조조 판단의 기술로 이루어졌다. 자신이 불리한 정보에는 물을 타라, 나를 떠나는 사람에게 호의를 베풀어라, 때로는 적이 내게 구명조끼를 던져 준다, 북극성은 모든 별의 기준이다, 어리석은 물고기는 그물에 두 번 걸린다, 문제점을 찾는 것은 돌다리를 두드리는 것과 같다, 경계하지 않은 믿는 도끼가 발등을 찍는다, 동맹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성벽이다, 스스로 계륵이 되지 말라, 생의 유한성에 도전장을 내밀지 말라 등 흥미로운 챕터들이 많다.

 

자신이 불리한 정보에는 물을 타라라는 챕터를 보자.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잘못을 시인한 적이 없었던 조조는 장수가 투항하자 큰 은혜를 입은 셈이 되자 호혜의 원리에 입각하여 지난날의 잘못을 더욱 부끄럽게 생각하며 결국 죄책감에 사과를 했다. 이 부분에 대해 저자는 그릇이 큰 사람이 큰일을 이룰 수 있다고 설명한다. 돈이 담기는 그릇이 아니라 열정과 의지, 도전의식과 진취적 사고가 담기는 그릇이다. 이 그릇은 본인이 직접 크게 빚을 수 있다. 문제는 주저하는 데 있다.

 

‘심리적 내성이 강한 사람은 거짓 정보에 흔들리지 않는다‘라는 챕터를 보자. 이 부분에 대해 저자는 심리학으로 들여다 보기라는 설명을 통해 심리의 백신을 잘 이용하면 인맥관리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대인관계에서 자기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불안과 갈등을 부르지 말고 인내와 포용으로 사람들을 보듬어야 한다. 작은 일에 일희일비 하는 사람은 무리에서 도태된다라고 말한다. 너무 멀리 가다 보면 원래의 목적지를 잊어버린다고 한다. 앞만 보고 달리지 말라. 빨리만 달리려고 하지 말라. 한 없이 달린 뒤 이 길이 아니었음을 안다면 좌절하게 된다. 삶이 채근하고 재촉하더라도 발밑을 다지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자. 반드시 목적지에 이를 수 있다는 믿음으로.

 

적이라고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또한 적이 없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것도 아니다. 나를 자극하고 움직이게 하는 것은 적이다. 적이 있기에 오늘 내가 행동한다. 경쟁심리가 없는 사람의 내면에는 나태와 태만이 똬리를 틀고 있을 뿐이다. 남자가 남자를 상대할 가장 좋은 무기는 검이고 여자가 남자를 상대할 가장 좋은 무기는 미모다. 여기서 미모는 외모가 아니라 지혜, 그리고 자신만의 개성이다. 겉모습에 치중하지 말고 자기만의 매력을 상승시켜라. 그러면 자신만의 강력한 무기를 소유하게 된다. 다른 사람의 문제를 찾았다면 그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알아야 한다. 지적질만으로는 상대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 벗어날 길이 없는 막다른 골목에 그를 몰아넣은 꼴이다. 함께 고민하고 개선 방안을 찾아야 한다.

 

때로 진실은 거짓말보다 위험하다. 분명 진실을 옳다. 그리고 바르다. 그리고 그 가치 또한 크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 감춰야 할 필요가 있다. 진실만이 정의를 실현한다고 할 수 없다. 그렇다고 거짓으로 일관하라는 말을 아니니 오해하지 마라. 세상에서 가장 믿을 수 없는 것은 바로 동맹이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성에서 함께 노는 것과 같다. 서로의 이익을 위해 연대했기에 이익에 반하는 지점이 나오면 등을 돌린다. 상대가 먼저일지 자신이 먼저일지 모른다. 그러므로 오늘의 동맹은 내일의 적이 될 수 있다.

 

잘못된 곳에 재능을 사용하면 계륵이 되어 버린다. 자신의 잘못된 판단이나 행동으로 이도 저도 아닌 존재가 되어 버린다. 그로 인해 인정받지 못하고 신뢰는 물 건너간다. 자신이 추진하는 일에서 정도를 지키고 명분을 세워라. 누구든 당신을 탐할 것이다. 편집인 리신타오는 명나라의 대학자 이지가 ’분서(焚書)‘에서 한 말을 인용한다. 남의 술잔을 들어 나의 근심을 없앤다라는 말이다.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라고 한다. 부디 이 책에서 많은 배움과 지혜를 없기를 바란다라고 말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심리학이 조조에게 말하다 1 -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다 심리학이 조조에게 말하다 1
천위안 지음, 이정은 옮김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심리학이 조조에게 말하다’는 침략자 천 위안이 쓴 명저다.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다'라는 부제가 달린 책이다. 책은 모두 4부로 구성되었다. 1부 조조의 승리의 기술, 2부 조조의 마음 다스리기, 3부 조조 리더십의 원칙, 4부 조조의 위기 관리 기술 등이다. 후한말의 정치가 조조(曹操)는 400년 한나라의 마지막 승상이자 최초의 위왕(魏王), 그리고 삼국시대 위나라의 추존 황제이다.

 

맹세보다 요구가 신뢰를 얻는다고 한다. 맹세는 의구심을 부르지만 요구는 자신을 증명해 보이는 길로 들어섰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특히 상대의 절대적 상징을 요구하면 확실한 각오나 다짐을 보여 줄 수 있다. 제 발이 저리는 도둑은 금방 잡히게 마련이다. 자신의 잘못은 자신이 가장 잘 안다. 그러기에 양심의 덫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심리적 압박이 몸의 세포와 정신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선견지명이란 이미 벌어진 상황을 귀뚫어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앞날은 누구도 얘기할 수 없다. 비나 눈처럼 과학적 경로를 통해 관측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상대의 심리, 사회윽 변화로 짐작하고 예측할 뿐이다. 나는 옳다라는 생각은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된다. 자기 확신을 주기 때문이다.

 

자신을 믿는 믿음이 행동과 생각을 결정한다. 옳다고 결정한 일에 망설일 사람은 없다. 당당함과 자신감이 옳다는 생각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때로는 친구보다 적이 성공을 돕기도 한다. 적을 이용하라. 의견대립이나 어떤 결정에 있어 당신의 반대편에 선 사람을 예의주시하라. 그의 의견과 생각의 성공에 해답이 있다. 자기 비하는 자신에 대한 편견이다. 자신의 능력이나 한계를 누구보다 자신이 더 잘 알기 때문에 미리 난 안돼라고 선언하는 것다.

 

이는 더 잘 나가고 싶은 욕심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자기비하보다 도전과 인정이 자신에게 이롭다. 이상이 1부 조조의 승리의 기술이다.

 

우리는 사회적 테두리 안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와 제약과 규제가 자유를 억압한다고 느낀다. 당신 뿐만이 아니다. 누구나 다 그렇다. 사람들의 안전을 지키는 선에서 더불어 사는 사회의 범주 안에서 이를 어떤 방법으로 해석할지 고민해 보자. 일하지 않으면 먹을 수 없다. 실적이 없으면 상도 없다 당연한 이치다. 다른 이의 성과를 시기하거나 질투하지 마라.

 

다음은 당신 차례이다. 그러니까 당장 목표를 향해 출발하라. 진실은 언제나 가면을 쓰고 있다. 가면을 들추려 하면 할수록 더 꽁꽁 숨는다. 그래서 진실을 왜곡하고 악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진실을 가리기 위해 언제나 가면을 들고 다닌다. 표면적 진실에 속아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쉽게 믿는 사람이 의심도 많다. 쉽게 믿은 사람에게 상처받거나 위기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 믿음을 확신하지 않는다. 일단 믿는 척 하지만 상대를 거듭 확인하려 든다. 과도한 하소연은 뭔가를 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넋두리는 절대로 상대에게 환호 받을 수 없다. 호감을 잃어버리는 지름길이다. 상대는 이야기를 듣는 것조차 부담을 느끼며 빨리 자리를 피하려고 한다. 하늘이 당신은 속이는 것은 당신을 아끼기 때문이다. 믿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러므로 어려움에 처하거나 일이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 당신의 장점을 먼저 떠올려라. 신은 자신이 준 재능이 활용되기를 기다린다. 단번에 끊지 못하면 문제는 더 커진다. 미적거리지 말라.

 

결론은 달라지지 않는다. 단호함은 냉정해 보이지만 미련을 두지 않도록 만드는 열쇠이다. 우유부단함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문명의 순응하는 것도 운명에 맞서는 한 가지 방법이다. 무작정 고개 숙이고 주어진 대로 받아들이자는 말이 아니다. 순응은 불만을 품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거기에서 대안이 생성된다. 불평하고 맞서면 싸우는 길 밖에 없다. 오기와 집착만 남는다. 편한 길을 걷다 보면 일탈이라는 오솔길과 마주치게 된다.

 

순조롭고 평탄한 길이 가끔 지루하고 지겨울 때가 있다. 새로운 자극을 꿈꾸게 된다. 그러나 그 자극이 당신의 인생을 뒤흔들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일상을 감사하게 받아들이라. 적은 늘 당신 주위에 있다. 언제나 말 조심, 행동 조심이 기본이다. 지금 모두 이해해주고 받아주는 상대가 언제 돌아서서 당신의 목에 칼을 들이댈지 모른다. 늘 조심하라. 예의와 존중은 삶의 미덕이다. 행복과 불행은 모두 기대에서 비롯된다.

 

기대에서 파생되는 기쁨과 불만이 행복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결국은 기대는 자기의 기대치다. 그 척도를 조금 낮추어 보자. 지금보다 훨씬 즐거울 수 있다. 이상이 2부 조조의 마음 다스리기이다.

 

생각지 못한 성과를 얻으면 친구는 기뻐하고 적은 경계한다. 함께 좋아해줄 친구를 만나라.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많지 않더라도 한 두명의 친구가 당신 인생을 풍요롭게한다. 상사의 말에 무조건 따르다가는 속죄양이 되기 쉽다. 자신의 주관이나 관점을 표현하라. 때로는 거침없이, 때로는 조심스럽게 행동하라. 위계질서에 의한 맹목적인 순종은 결국 화를 부른다.

 

스스로 정한 한 계 때문에 더 많은 기회를 잃는다. 자기만의 원칙이 있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 그러나 그 한계에 그친다면 오히려 없는 것만 못하다. 자기 한계 너머를 수용하고 한계 너머로 도전하는 모습은 매력적이다. 남의 성과를 가로채려는 것은 일종의 본능이다. 다만 이성을 가지고 조절하고 조정해 자신을 더 발전시키려 할 뿐이다. 탐욕은 누구에게나 있다. 이를 과하게 드러내고 키우면 야욕이 된다. 그 결과는 참담할 것이다.

 

과거가 쌓여 나를 만든다. 하루아침에 자라는 나무가 없고 삽시간에 지어지는 건축물이 없다. 하루하루가 모여 역사가 완성된다. 지나가는 시간에 담긴 자신의 의미를 확인하면 내일의 당신 모습이 그려진다. 원하는 사람을 움직이려면 꼬리표를 달아라. 친구나 가족처럼 관계 꼬리표도 좋지만 상대의 의미를 부여하는 꼬리표는 더 좋다. 의리 있는 친구라는 꼬리표를 달면 절대 배신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당신에게 달린 꼬리표는 무엇인가?

 

이성은 감정에 무릎을 꿇는 경우가 많다. 객관적이고 냉철한 판단은 이성적이다. 사랑이나 행복, 불안과 불행은 감정이다. 이성의 작용은 감성이 앞서는 순간 무기력해진다. 감정이 당신 몸의 세포 하나까지 지배하기 때문이다. 재는 눈이 내릴 때 그 가치를 발한다. 재는 눈을 녹이고 미끄러지는 일을 방지한다. 평소에는 쓸모 없어 보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의 역할을 해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평소에 관리를 잘해 두어야 한다. 이상이 3부 조조 리더십의 원칙이다.

 

사람이 많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가지 많은 나무는 바람 잘 날 없다. 무수한 말들이 오가고 수많은 이견이 생긴다. 거기서 중심 잡기란 어려운 문제이다. 많은 사람보다 현명한 사람 한두 명이 당신 곁에 있는 것이 낫다. 희망은 괴로움의 원천이다. 당신에게 채찍을 가하며 달리라고 종용 하기 때문이다. 생각대로 진행되지 않을 때는 좌절하게 된다. 가능하지 않은 꿈을 좇아 희망을 품지마라. 당장 한 걸음 옮겨 이룰 수 있는 목표가 유익하다.

 

때로는 거짓말이 진실을 밝힌다. 상대의 의중을 알지 못할 때 진실을 먼저 공개하면 안 된다. 바람보다 태양이 나그네의 옷을 벗기지 않던가. 감춰진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우회 작전을 펼쳐야 한다. 권력은 거짓말할 권리도 부여한다. 그러므로 감정에 호소하거나 인간적인 면모를 추구해서는 진실을 밝힐 수 없다.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근거를 들이대는 것이 효과적이다. 상대에 대한 과도한 칭찬은 간접적인 자화자찬이다.

 

칭찬에 몸둘 바를 모르는 상대가 결국 당신에게 그 덕을 돌리도록 하는 것 아닌가. 넘치는 백 마디 칭찬 보다 합리적인 언행이 상대를 기쁘게 한다. 모함은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다. 구성원은 물론이고 조직을 공중분해시킨다. 더 중요한 점은 그 파괴력이 자신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바르고 옳은 정도를 걷자. 그 길이 더디더라도 온전한 승리를 안겨준다.

 

당황하면 누구나 엉뚱한 소리를 하게 마련이다. 이런 일로 흉보거나 놀리지 마라. 상황과 환경이 바뀌면 누구라도 당황한다. 그때 그의 본성이나 본심이 드러난다. 당신에게는이를 간파할 절호의 기회다. 상대에게 이익을 제시하면 반드시 설득할 수 있다. 실현 불가능한 이익의 제시는 안 된다. 그에게 실익이 되고 유효한 제한이라야만 가능하다. 자신의 이익만 구하고자 일을 하면 안 된다. 내가 속임수를 쓸 줄 안다면 상대 또한 그렇다.

 

작전과 묘수는 당신에게만 있는게 아니다. 언제나 상대의 수를 읽고 파악하는 경계가 필요하다. 방심하다 허를 찔리는 낭패를 당하지 말자. 이상이 4부 조조의 위기관리 기술이다.

 

조조는 난세의 간웅이다. 한 왕조가 멸망한 후 천하의 주인이 없는 혼란 속에서 제갈량이라는 막강한 상대에 맞서 수많은 위기를 넘기며 자신의 왕국을 세우는데 성공한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생명이 백척간두 끝에 매달려 있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선택을 내리고 결단해야 했다. 그 속에는 결국 자신에게 유리한 판세를 이끌어내고 승리를 쟁취하는 영웅 조조의 심리전략이 숨어있다. 저자는 삼국지에 나오는 조조와 관련된 수많은 에피소드 속 영웅의 심리를 날카롭게 포착하고 독자에게 깨달음을 선물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과학으로 보는 문화유산 - 유물의 표정을 밝히는 보존과학의 세계
신은주 지음 / 초록비책공방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방사성 탄소 연대측정법의 한계를 보완하는 OSL(optically stimulate luminescence) 연대측정법이 문화재는 물론 지층의 나이를 아는데 요긴한 방법이라고 들었다. 신은주의 ‘과학으로 보는 문화유산’은 그런 앎의 연장선상에서 구입한 책이다. 1부 금속, 2부 토지, 도자기, 유리, 3부 목재, 4부 지류, 직물, 회화, 벽화, 보존환경, 5부 석조, 6부 미래에 남겨줄 우리의 유산 등으로 구성되었다.

 

서두의 방법론을 뒷받침이라도 하듯 저자는 주기율표 설명으로 책을 시작한다. 금(金)을 이야기한 챕터에서는 암석이 화성암, 퇴적암, 변성암으로 나뉘듯 광상(鑛床)도 화성 광상, 퇴적 광상, 변성 광상으로 나뉜다는 사실이 새롭게 다가온다. 산금(山金)이 묻힌 곳은 화성 광상이고 사금(砂金)이 묻힌 곳은 퇴적 광상이다. 광상은 유용 광물이나 자원이 묻힌 곳이고 광산은 그것을 채취하는 장소다.

 

저자는 어쩌면 지금 당신이 끼고 있는 금반지는 신라 귀족이 사용하던 금귀걸이였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금으로 만든 물건은 기능을 상실해도 녹여서 다른 형태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구리는 녹이라는 특별한 면모를 갖는다. 산소를 만난 청동이 보호막으로 만드는 것이 녹이다. 이 녹은 새로운 부식의 진행을 막아준다. 좋은 녹은 놔두고 나쁜 녹만 선별해 제거해야 한다.

 

일전 내가 선사박물관 해설에서 지질과 고고학을 연결시켜 화산탄과 모양이 비슷하다고 한 비격진천뢰는 시한폭탄이다. 둥근 무쇠 속에 화약, 철 조각, 죽통이 들어 있다. 나선형의 홈을 판 목곡이라는 장치에 감는 도화선(화약선)의 길이에 따라 폭발 시점이 조절된다. 철은 탄소 함량에 따라 수철, 연철, 주철, 강철로 나뉜다. 강철은 탄소가 2% 미만인 철로 강도가 좋고 충격에 잘 견딘다.

 

유리는 투명하고 단단하지만 잘 깨지며 물과 공기는 통과하지 못하지만 빛은 통과한다. 유리는 결정 구조가 없는 액체이되 점성이 높아 고체처럼 형태를 유지한다. 베개용암에 유리질이 있다. 용암이 차가운 물에 잠겨 급속히 식는 과정에서 생기는 비결정형의 검은 물질이다. 나주 오량동 옹관(甕棺) 가마터 이야기에서 저자는 점성이 좋은 점토, 석영, 장석, 운모, 활석 등의 광물을 비짐(첨가물)으로 넣는 태토(胎土; 바탕흙) 준비 과정을 이야기하며 암석, 광물, 토양, 점토 등에 대해 설명한다.

 

석영은 규소와 산소만으로 이루어진 광물로 화성암, 퇴적암, 변성암에서 모두 확인된다. 장석은 지각에서 60%를 차지하는 가장 흔한 광물이다. 상감(象嵌)기법은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고려만의 독창적 기법이다. 저자는 고려청자를 인간이 만든 보석이라 설명하며 최고의 찬사를 받는 고려청자는 당대는 물론 지금도 가치와 아름다움이 더해지는 도자기로 신석기시대부터 토기를 만들던 이들의 손에서 시작된 셀 수 없는 도전과 노력에 의한 것이라 마무리짓는다.

 

1200도 이상의 고온에서만 일어나는 류사이트(leucite)화(化)는 숨쉬는 그릇이라는 말로 언급할 수 있다. 공기는 드나들지만 물은 차단되어 빚어지는 현상이다. 류사이트는 화산암의 일종이다. 책에는 김원룡 교수 이야기도 나온다. 저습지 유적인 광주 신창동 유적 발굴을 위해 일본 나라문화재연구소에서 관련 정보와 기술을 배워와 발굴을 한 이야기다.

 

목재는 수침(水浸) 목재와 건조 목재로 나뉜다. 목재는 수분이 15~18%면 썩지 않는다. 수침목재도 세포 내부에 물이 채워지고 산소와 차된되어 썩지 않는다. 다만 발굴되어 땅 위로 나오는 순간 목재 내부에 함유되어 있던 수분이 증발하면서 형태가 갈라지고 뒤틀리는 등 수축, 변형이 생긴다. 그렇기에 신속하게 물이 담긴 용기에 담아 고정한 후 보존처리실로 즉시 옮긴다.

 

목재는 물이 이동하는 도관, 목섬유 등 세포의 집합체로 벌집처럼 속이 비어 있다. 세포와 공극(空隙), 수분(水分)으로 이루어졌으며 내부는 셀룰로오스, 헤미셀룰로오스, 리그닌 등의 성분으로 채워져 있다. 수침 상태가 되면 내부 성분들이 썩어 없어지는데 그 자리를 물이 차지하는 것이다. 셀룰로오스는 철근, 헤미셀룰로오스는 골재, 리그닌은 시멘트에 비유된다.

 

고대인들은 나무에 왜 옻을 칠했을까? 답은 옻을 칠하면 표면에 얇은 막이 생겨 물이나 곰팡이 등으로부터 나무를 보호하고 특유의 광택을 내기 때문이다. 이 말을 들으니 천장이나 벽에서 스며 나온 석회동굴 내부의 습기가 벽화의 표면에 맺힌 뒤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굳는 과정이 오래 반복되면 벽화 표면에 견고한 얇은 막이 되는 현상이 떠오른다.

 

대장경(大藏經) 목판은 주로 산벚나무로 만들었다. 대장경은 큰 그릇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산벚나무를 수년 동안 바닷물에 담갔다가 소금물에 찌고 오랜 시간 그늘에 말려 일정 크기로 만든 것이다. 이렇게 하면 수분 분포가 일정해지고 나뭇결이 부드러워진다. 궁금한 것은 조상들은 그런 방법을 어떻게 알았을까, 이다. 신라의 대형 고분들이 도굴되지 않은 것은 돌무지덧널무덤 구조 덕이다. 도굴을 시도하는 순간 돌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천마총은 다른 유적에서는 볼 수 없는 천마도가 출토된 것으로 유명하다. 천마도의 정식 명칭은 백화 수피제 천마문 말다래다. 말다래는 말을 타는 사람에게 진흙이 튀지 않게 해주는 마구(馬具)다. 백화 수피는 백화 나무 껍질이라는 의미다. 자작나무를 백화나무라 한다. 종이나 직물이 아닌 자작나무 수피에 그린 그림이다. 천마총은 능묘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무덤이다. 종이는 중국 후한 시기의 환관 채륜이 만들었다. 뽕나무 껍질, 삼베 등을 두드려 만든 채후지(蔡侯紙)에서 시작되었다.(채륜의 종이보다 앞선 삼으로 만든 종이가 발견되었다.)

 

과거 시험은 보통 합격자에게는 답안지를 돌려주었고 불합격자의 것은 되돌려주지 않고 재활용했다. 불합격자의 답안지를 낙폭지(落幅紙)라 한다. 공정한 평가를 위해 채점자가 특정인의 필체를 알아보지 못하도록 응시자의 답안을 서리가 베껴 썼다.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의 전통 종이 명칭은 다르다. 중국은 선지(宣紙), 일본은 화지(和紙), 우리는 한지(韓紙)라 한다. 조선 태조는 청색 곤룡포를 입었다. 명나라 황제 홍무제가 권지고려국사(權知高麗國事)라는 직책만 내렸기 때문이다. 권(權)은 임시란 의미, 지(知)는 (나랏일을) 맡았다는 의미다.

 

영조는 우리나라는 동쪽에 있으니 마땅히 청색을 입어야 하는데 사람들이 모두 흰옷을 입으니 문제라고 말했다. 종이(宗彛)는 종묘 제례용 술잔이다.(彛는 떳떳할 이, 술잔 이라는 글자다.) 구장복(九章服)에 놓는 수(繡)는 보, 불이라고 한다. 보는 도끼를 상징하고 불은 신하와 군신의 도리를 상징한다. 구장문에 쓰인 채색 안료를 에너지 분산형 형광 분석기로 분석한 결과 황, 적, 녹, 청으로 크게 구분되었다.

 

문화재의 보본 처리는 재료가 시간과 환경적 요인에 의해 기능과 상태가 변하는 열화(劣化) 현상이 일어나기 쉽다. 보존과학에 X선이 있다면 고고학에는 지하 투과 레이더가 있다. 2013년 네덜란드의 반고흐 미술관에서 황색 안료가 LED 램프에 의해 변색된 사례가 있었다. 구석기 시대를 대표하는 돌은 주먹도끼(전기), 흑요석(후기)이다. 전기 구석기 시대는 주먹도끼나 찍개 같은 크고 무거운 돌을 쓰던 시대였다. 빙하기가 끝나고 시작된 후기 구석기 시대의 흑요석은 날쌘 동물들을 잡기 위해 돌날, 찌르개 등의 작고 날렵한 석기들을 제작하게 되는 과정에서 탄생한 신소재였다.

 

유물은 외부 공기와의 노출을 최대한 피하고 보존처리실로 옮기는 것이 급선무이지만 봉안 순서 자체는 학술자료이기 때문에 그 어느(보존, 순서) 쪽도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문화유산에 대한 보수와 복원은 유물이 제작되었을 때와 동일한 재질과 기법으로 시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암석의 종류와 원산지를 찾는 연구가 그 시작이다. 첨성대를 두고 지진 시뮬레이션을 하는 경우도 다르지 않았다.

 

한반도는 유라시아 판 내부에 있어 일본 등 판 경계에 위치한 나라의 비해 상대적으로 지진 발생 빈도가 낮고 규모도 작지만 주변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인해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두 번의 큰 지진에도 흔들림이 없었던 첨성대도 시간을 거스르는 재주는 없다. 정밀한 조사와 분석을 통해 손상의 원인과 정도를 파악하여 향후 보존 처리가 필요한 시점을 준비하고 있다. 반구대 암각화에는 면 새김 기법, 손 새김 기법, 면 새김과 손 새김 기법이 혼합된 기법이 사용되었다.

 

신석기 말기부터 청동기시대까지 오랜 시간 차례로 새겨진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반구대 암각화가 그려진 암벽은 중생대 백악기의 암갈색의 역암, 셰일 또는 이암으로 퇴적암이 주를 이루고 있다. 체질적 특성을 분석하기 위해 시료를 수습하여 편광현미경으로 관찰했더니 미정질의 석영, 정장석, 사장석, 방해석, 녹니석 운모류 및 불투명 광물로 구성되어 있으며 풍화된 면과 신선한 면이 뚜렷한 경계를 이루고 있었다.

 

주사 전자 현미경을 이용하여 미세조직의 변화를 관찰한 결과 신선한 면에는 석영, 장석, 방해석 등이 치밀한 조직을 보이나 풍화된 면에서는 방해석이 빠져나가 토양 입자 사이에 틈이 생긴 공극이 남아 있었다. 이는 풍화작용으로 방해석이 수분과 반응하고 용출되면서 풍화층이 형성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화재 방재의 핵심은 철저한 예방 중심의 시스템이다. 문화재 복원에 기술과 성능이 좋은 신소재보다 전통 재료를 적용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문화유산의 보존 ,복원에 가장 적합한 것은 당시 사용했던 재료이다. 하지만 한국은 1960년대 이후 급격한 산업발전으로 전통적인 재료를 제작하는 장인들을 찾기 어렵게 되었다. 현재 전통 장인 몇몇에 의해 우리나라의 문화재 보본, 복원이 간신히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 현장에서는 전통 재료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필요하다면 현대 재료도 쓸 수 있는 유연성이 필요하다. 오늘날 수 많은 현장에서 쓰이는 에폭시 접착제도 전통 재료가 아니다. 과거에 썼던 접착제로 손상이 심한 문화재의 원형을 지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원형을 보존해야 하는 상황에서 현대 재료를 적용해야 할 경우 이에 대한 철학적 고민과 이유를 담아내는 것도 보존처리의 역할이다. 주기율표에서 원자번호 6번 탄소와 14번 규소는 위아래에 있다. 이는 비슷한 화학적 성질을 지니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탄소와 규소가 쓰이는 것은 전혀 다르다. 탄소는 생명체의 가장 중요한 원소로, 규소는 생물과는 거의 상관없는 암석으로 존재한다. 이 두 원소의 만남으로 만들어진 것이 실리콘이다. 현대 반도체 시대라고 불러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지금을 규소의 규자를 붙여 규석기 시대라 부르는 것은 그만큼 반도체로 만든 도구를 많이 사용하는 시대라는 뜻이다. 여담이지만 플라스틱으로 만든 최초의 물질은 당구공이라고 한다.

 

저자는 보존 과학은 현재의 학문이라고 할 수 있으며 과학기술과 함께 진일보하기에 미래의 학문이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더 나은 기술이 나오면 나올수록 더욱 안전한 방법으로 조사하고 분석할 수 있어 우선 최소한의 조치만을 취하고 나중을 기약하는 경우도 있다. 역사에서 보존 과학의 역할은 문화유산의 제작 기술과 그 속에 담긴 가치를 조명하여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다. 과학 기술이 발전할수록 사라져 버린 시간과 공간을 우리 앞에 생생하게 보여 줄 수 있다. 그 역사를 통해 나를 이해하고 우리를 이해할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