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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색 수국
김정수 지음 / 에세이스트사 / 2016년 8월
평점 :
품절
지금은 아산이 된 온양(溫陽)에서 태어나 성장 후 결혼해 남양주(南楊州)의 시댁으로 들어가 살게 된 김정수 작가(수필가). 이 분은 자신의 생을 온통 빛과 볕을 향해 있었던 향일성 식물 같은 삶으로 소개한다. 저자는 남양주를 ‘남쪽의 빛 고을’로 풀이한다. 물론 남양주의 양은 볕 양(陽)이 아닌 버드나무 양(楊)이다. 양(楊: 버드나무) 자체에는 빛이나 볕을 의미하는 바가 없지만 양수(陽樹)로 통하는 것을 감안하면 할 수 있는 연결이라 할 수 있다.
양수는 하루에 3에서 5시간 직사광선을 받아야 하는 나무이다. 버드나무는 극(極)양수라고 한다. 양수는 그늘을 견디지 못하는 나무이고, 음수(陰樹)는 그늘을 잘 견디는 나무이다. 이 분의 수필집 ‘청색 수국’은 여행을 많이 하고 삶의 현장에서 깨달음을 얻어내는 데 능한 60 중반의 여성 작가의 섬세한 일상성을 풍족하게 접할 수 있는 책이다.
수필은 essay와 miscellany로 나눌 수 있다. 흔히 essay를 중(重)수필, miscellany를 경(輕)수필이라 칭하는데 나는 essay는 사색을 위주로 하는 관념적인 수필, miscellany는 체험을 위주로 하는 실제적인 글로 나누는 것이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miscellany에 속하는 ‘청색 수국’의 특징은 그야말로 일상에서 소재들을 취한 책으로 서평, 영화평, 여행기 등과 거리를 갖는다. 이 책의 특징은 쉽고 잔잔한 감동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짧은 글들이 대종(大宗)을 이룬다는 점도 특징이다. 무엇보다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힘을 빼고 편하게 쓴 수수한 분위기의 글들이 읽는 사람들을 차분하게 만들어준다는 점이다. 물론 그런 글이라 해서 쉽게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심입천출(深入賤出: 깊이 공부하고 쉽게 설명하는 것)이란 말이 알게 하듯 그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참고로 나는 심입천출보다 심찬이시(深撰易施)라고 부른다. 撰은 지을 찬, 施는 베풀 시이다. 깊이 생각하고(짓고) 가려내 쉽게 (베)풀어보인다는 의미이다.
어떻든 miscellany이기에 당연히 체험 특히 가족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표제작인 ‘청색 수국’을 보자. 저자는 수국은 음지를 더 좋아하는 식물이라는 말로 글을 시작한다. 수국은 토질에 따라 흰색, 보라색, 붉은색, 청색 등으로 피어난다고 한다.(106 페이지) ‘청색 수국’은 아파트 앞 화단에 버려진 수국을 데려다 정성으로 키워 청색 수국을 피워낸 저자의 희로애락이 담긴 이야기이다.
저자는 청색을 가장 좋아한다고 한다.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신비와 동경을 상징하는 노발리스의 ‘푸른 꽃‘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나 역시 청색을 좋아한다, 보라색이 신비하다고 하지만 이제는 청색이 더 그렇게 느껴진다. 신비와 동경은 깨지기 마련인지 저자가 애지중지 키우고 애틋하게 대하던 그 꽃이 어느 날 누군가에 의해 훼손되고 말았다. 저자는 그를 무정한 사람이라 표현한다.
수국을 볕이 드는 곳으로 옮겨주어 문제의 그 사람의 눈에 띈 것이 발단이 된 그 사건을 저자는 볕으로 향하는 자신의 “잠재의식“이 만들어낸 일이라 표현한다. 이 글을 읽고 생각한 시가 있다. 배현순 시인의 ’봄‘이란 시이다. ”여린 연둣빛 봄/ 아장아장 새순 움트려 왔다가/ 호르르 가 버리는구나// 내 탓이구나/ 내가 너무 귀찮게 했구나/ 꽃이 만개했다고 속절없이/ 재잘 거렸구나//
형형색색 고운 빛에 취해/ 만지지 말라는 것을/ 그만, 손대고 말았구나/ 여리고 민감한 네게 거친 호흡으로/ 사랑한다고 고백했으니/ 꽃물이 되어 버리고 마는 붉은 눈물/ 바라보기 가슴이 에는구나// 미처 몰랐다/ 나로 인해“ 서른 막바지에 이르러 곧 마흔살이 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저자는 그 허망함을 달래기 위해 문학 강의를 들으러 가서 만난 문단의 선배에게서 이런 말을 듣는다.
”나는 육십대에 수필을 쓰기 시작했어. 지금 제비꽃 나이잖아. 앞으로 얼마든지 글을 쓸 수 있어. 그러니 어서 글 써.“ 어렵게 등단한 뒤 20년간이나 글을 쓰지 않은 저자는 이 말에 힘을 얻어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수필의 힘은 이런 데서 찾을 수 있으리라. 저자는 쓰는 일을 계속할 것이라 한다. ”절망은 견디기 힘든 일이긴 하지만, 때로는 쓸쓸한 가슴을 정화시켜주는 청량제가 되어주기도 하는 모양.“이라고 말하는 저자. ”나에게도 언젠가 꽃이 활짝 피어나는 봄이 오리라. 아직도 믿고 있다.“는 저자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