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예상하지 못한 결과이다. 물론 몇 해 전 일련의 건축 책들을 읽었으니 이번 관심은 생소한 것이 아니다. 과거의 관심이 공간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지금의 관심은 궁궐(宮闕) 공부에서 시작된 공부가 발전한 결과이다. 물론 궁궐에 대해서든 건축에 대해서든 지금 내 공부는 모두 소략(疏略: 꼼꼼하지 못하고 거칢, 엉성함)하기만 하다.

건축을 의미하는 영어 architecture는 으뜸, 처음, 근원 등을 의미하는 아치(arch)와 기술이나 학문을 의미하는 tect가 결합한 말이라고 한다. 그러니 건축은 최고의 학문이란 말이 가능하다. 최고의 학문을, 산을 오를 때 자세를 낮추는 입산위하(入山爲下)의 마음으로 대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내 관심은 언제든 건축 철학에 대한 관심으로 옮겨갈 능성이 있다.

건축학 박사/ 철학 박사인 브랑코 미트로비치는 ‘건축을 위한 철학‘에서 이런 말을 했다. 본래 철학이 건축을 닮으려 한 것이지 건축이 철학을 닮으려고 한 것은 아니라는... 그는 건축 철학이나 건축미학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건축은 철학과 미학이 탐구하는 바를 이미 그 안에 품고 있다는 말을 한다. 지금 건축학 교수 임기택이란 분의 ‘생성의 철학과 건축이론‘을 읽고 있는데 미트로비치의 말을 수용한다면 철학적 시각으로 건축을 보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들뢰즈와 니체, 라이프니츠와 스피노자, 흄과 베르그손, 그리고 노자(老子) 등의 철학을 건축의 시각으로 보는 저자의 시각은 신선하게 느껴진다. 이는 내가 쉽게 매혹되는 영혼이어서만은 아니다. 철학자 박영욱의 ‘필로아키텍처‘를 필두로 해 숨은 그림을 찾는 것이 될 내 건축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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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 수업 마치고 칼국수 점심 후 반장님과 서울역사 박물관에 가는 길에 고궁박물관에 들렀습니다. 오늘 수업 시간에 배운 지붕의 종류를 비롯 궁궐 건축의 많은 요소들을 확인할 수 있는 '영건(營建) 조선 궁궐을 짓다' 전시회를 보았습니다. 거기에 창덕궁 내의 여러 정자(亭子)들 중 지붕이 두 겹인 존덕정(尊德亭)이라는 정자도 있더라고요. 모임지붕이라고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경복궁 해설을 위해 자료를 찾는 과정에서 경복궁(정도전) vs 창덕궁(이방원)의 대립 구도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전조후시, 좌묘우사, 제후칠궤 등의 원칙을 지키며 경복궁을 중심으로 왕권과 신권의 조화, 궁역(宮域)과 궐역(闕域)의 확실한 구획을 의도한 정도전의 경복궁과, 신하는 독립된 권역을 가질 수 없고 왕에 종속적일 수 밖에 없는 이방원의 창덕궁.. 

 

올해 수업과 리허설을 위해 경복궁을 여러(?) 차례 찾았는데요 정자들 하나하나가 독특하고 모두 아름다운 창덕궁은 언제 갈 수 있을까요? 개인적으로 가야 하는 것일까요? 그나저나 창덕궁의 아름다운 정자들에 맞서 경복궁이 내세울 것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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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북촌 한옥 마을 테마 해설을 듣는 날이다.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의 마을인 북촌은 지난 2002년 창덕궁 인근에 화실을 가지고 있던 친구를 만나기 위해 몇 차례 들른 곳이다. 영화평론가 옥선희 씨가 북촌에 정독도서관이 없었다면 이사 오지 않았을 것이란 말을 한 생각이 난다. 어떻든 당시 나는 현대 사옥 인근의 원서동에 자리한 정신세계사에서 강의를 듣기도 했다. 지금은 폐쇄되었다. 현대 사옥은 계동에 있다는데 그 앞의 관상감 관천대(觀象監 觀天臺)는 원서동(창경궁의 서쪽에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에 있는 것으로 소개되어 있어 약간 의아하다.


우리는 내일 관상감 관천대 앞에 모여 현장으로 간다. 관천대는 천문 관측 기구인 간의(簡儀)를 설치했던 대(臺)이다. 현재 간의는 없고 대만 있다. 원서동에는 공간 사옥이란 유명한 건물이 있다. 지금은 미술관으로 활용되고 있는 이 건물은 김수근이 설계한 것이다. 김수근은 수많은 민주인사들과 학생들을 고문하는 곳으로 악용된 남영동 대공분실을 설계했다고 알려졌다. 조한(건축가)은 김수근이 "남영동 대공분실의 설계에 직접 관여했는지, 관여했다면 그 건물이 고문의 용도로 사용될 것을 알고 있었는지 확인할 방법은 없다."('서울, 공간의 기억 기억의 공간' 참고)고 주장한다.


반면 유영호는 현장을 둘러 보면 대공분실이 철저히 고문을 위한 공간임을 쉽게 알 수 있다고 전제하며 김수근을 철저하게 독재정권에 협력하면서 독재자의 사고와 희망을 자신의 건축 속에 구현한 사람으로 규정한다.('한양 도성 걸어서 한 바퀴' 참고) 흥미로운 것은 인사동의 기원이다. 1920년대 후반에 이르러 관직을 잃고 생활이 궁핍해져 돈이 될 물건들을 내다 팔게 된 북촌의 주인들로 인해 우정국 주변에 골동품 매매 상점이 생겨 인사동의 기원이 된 것이라고 한다. 내일 우리는 무엇을 배우게 될지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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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을 사용한 지 백일이 지났다. 수시로 자판을 두드려 글을 쓰다 보니 손가락 마디가 아프기도 하다. 급한 마음에 자판을 세게 두드리다 보니 충격이 누적되어 지금은 많이 안 좋다. 우스운 이야기이겠지만 피아니스트들의 손가락 질환이 생각난다. 강렬한 터치를 하는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나 빠른 연주를 하는 누군가가 생각난다. 스마트폰은 그야말로 소프트하게 접촉해도 되는데 나는 아직 옛 습관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스마트폰 터치도 연주라 할 수 있으니 아름다운 음악이 되게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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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16-12-07 21: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스마트폰 터치도 연주, 아름다운 음악이 되게 하고 싶다, 정말 기발합니다! ^^

벤투의스케치북 2016-12-07 21: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다행이네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닥터 페미니스트 여자의 몸을 말하다
문현주 지음 / 서유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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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열 사람의 병을 치료하기보다 여자(부인) 한 사람의 병을 치료하기가 어렵다는 동의보감의 말이 있다. 이는 성 차이를 고려한 의학(gender - specific medicine)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경향은 한의학을 통해 이어져 오고 있다. 4년 전 한 인문학자의 동의보감의 해설서에 해당하는, 여성적 시각에 근거한 책을 읽었다. 그 이후 다시 기계적 평등보다 상황을 고려한 공정을 기치로 내세운 한의학 박사 문현주 님의 책을 읽게 되었다.


제목은 닥터 페미니스트 여자의 몸을 말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성()이 생물학적 성(sex)이 아닌 사회적 성(gender)이라는 점이다. 의료 인류학 학사이기도 한 저자를 통해 알게 된 사실들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우리 몸의 세포에도 성()이 있을 만큼 남자와 여자는 차이가 크다는 점이다. 여자가 아니기에 세부 사항이나 치료 지침보다 전체적 틀, 문화적, 인류학적 시각을 위주로 책을 읽게 된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굳이 여자가 아니어도 공감할 만한 내용이 책에는 많다. 가령 아픔은 사람이 느끼는 것, 질병은 장기(臟器)가 갖는 것이라는 또는 아픔은 환자가 병원에 갈 때 느끼는 것, 질병은 진료실에서 받아 나오는 것이라는 진술 등이 그렇다.


반면 통증을 통하지 않아 생기는 것 즉 불통즉통(不通卽痛)만이 아닌 영양 부족으로 인한 것 즉 불영즉통(不營卽痛)으로도 보는 것은 새로운 무기를 장착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인상적인 것은 여자는 오장육부가 아니라 육장육부를 가지고 있다 해도 될 정도라는 말이다. 자궁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한의학은 뿌리를 다루는 의학이다. 저자에 의하면 한의학은 얼굴을 오장 육부의 거울로 본다. 닥터 페미니스트 여자의 몸을 말하다는 여성적 시각과 여성에 대한 배려, 한의학적 지혜가 두루 만난 인상적인 책이다.


더욱 저자가 의료인류학을 전공한 분이니 그런 시각이 알게 모르게 반영되고 배어 있으리라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저자를 통해 알게 된 또 다른 중요한 개념은 기()이다. 기란 피를 밀어주는 힘이다.(57 페이지) 흔히 여자는 혈허(血虛), 남자는 기허(氣虛)를 주로 앓는다고 한다. 저자가 말하는 여자의 몸이란 자연(自然)과 순리에 근거한 성 차이를 고려한 의학으로 여자쪽에 무게를 둔 한의학적 의미의 몸이다. 저자는 귀가 따갑도록 더 많이 여성 건강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한다.(11 페이지)


사회적 의미의 성(gender)을 이야기하는 저자는 임신에 대해서도 같은 차원의 말을 한다. 임신에 우호적인 환경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사회적 환경이라는 말이 그것이다. 여성의 몸은 사회적 지원이 결핍된 환경을 생식에 비우호적인 환경이라 인식하고 생식을 억제한다고 한다.(117 페이지) 관심 있게 본 부분들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건강한 임신을 위한 마법의 주문이란 글이다. 의식과 무의식의 불일치를 이야기하며 저자는 무의식이 느슨해지고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를 트랜스(trance: 깊은 명상) 상태라 명명한다.(129 페이지)


건강한 임신을 위한 몸과 마음이 준비되어 있다는 주문(呪文)을 주문(注文)하는 저자를 보며 생각하게 되는 것은 여성의 노고와 신비, 그리고 생명의 존귀함이다. 너무 많아 흔하게 보이지만 개별 생명체들은 너무 고귀한 존재들이다. 탄생의 어려움 또는 생명의 소중함을 알게 하는 단어가 활태(滑胎)이다. 이는 과일이 채 익기도 전에 자꾸 떨어지듯 태아가 엄마의 배 속에서 충분히 자라기도 전에 자꾸 미끄러진다는 의미로 반복 유산을 지칭한다.(135 페이지)


저자는 대부분의 유산이 임신 초기에 이루어지기에 마음은 아파도 몸은 별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짧은 기간 동안 임신과 유산을 오가며 급격하게 변한 호르몬과 임신을 준비했던 자궁과 난소를 회복하는 데 적절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저자의 책을 읽으며 생각한 것은 미병(未病)이란 개념이다. 뚜렷하게 병이라 할 수는 없지만 여러 증상들을 호소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진화생물학자 마지 프로펫(Margie Profet)은 입덧이 임신 초기 독소나 위험 물질로부터 태아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전이라 주장했다.


실제로 입덧이 심한 산모는 입덧이 없는 산모에 비해 유산 위험이 뚜렷하게 낮다고 한다.(156 페이지) 미국 연구팀이 임신부들의 출산일을 여러 차원으로 살펴본 결과 예정일에 맞춰 아이를 낳는 경우는 4퍼센트에 불과하다고 한다. 영국의 가디언지는 임신 기간 40주 신화는 깨졌다고 보도했다. 섣부른 유도분만은 제왕절개 위험을 높인다.(169 페이지) 출산은 가장 개인적인 사건이면서 새로운 사회 구성원의 탄생을 의미한다.(179 페이지)


2016년 인류학자 폴 후퍼 등은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는 데 많은 비용이 드는 사회일수록 출산율이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194 페이지) 저자는 가난한 사람이 부자보다 더 많은 질병에 걸리고 평균수명도 훨씬 짧다는 의료사회학자 리처드 윌킨슨의 연구 결과를 소개하며 이는 평등해야 임신한다는 말로 바꾸어도 맞는 말이라 설명한다.(195 페이지) 그리고 저출산은 빨리 결혼하라고, 아이 많이 낳으라고 윽박지른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 말한다.(197 페이지)


임신, 출산, 완경 등을 지나면 중년을 논하는 시기가 온다. 바버라 스트로치의 가장 뛰어난 중년의 뇌는 이런 말을 전한다. 중년의 뇌는 우리가 삶을 헤쳐 나가도록 도우며, 혼란을 가르며, 해답을 찾아내고, 누구를 무시하고, 무엇을 무시할지, 언제 왼쪽으로 가고 언제 오른쪽으로 갈지를 안다.(222 페이지) 기억력은 약간 떨어질지라도 탁월한 통찰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춘 중년의 위상을 우리는 알 필요가 있다. 치매와 건망증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 출산으로 인해 기혈이 허약해져 뇌에 충분한 영양을 공급하지 못하기에 건망증이 생긴다.(219 페이지)


여성은 매달 겪는 월경으로 인한 여성 호르몬과의 관련 때문에 우울증에 취약하다. 닥터 페미니스트 여자의 몸을 말하다는 생리(生理)에서 죽음까지 여성 건강의 A에서 Z까지를 망라한 책이다. 사랑하는 두 딸 예린과 채린 그리고 세상의 모든 딸들에게책을 바친다는 저자의 결어(結語)가 인상적이다. 나도 저자처럼 여성으로 당당하고 건강하게, 뚜벅뚜벅 걸어가는 그들의 발걸음을 응원한다. 물론 당연히 사회적 차원의 지원, 그리고 여성에게 우호적인 사회 환경이 필요하다. 건강하고 따뜻한 귀한 책으로 닥터 페미니스트 여자의 몸을 말하다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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