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과거의 일들을 온통 물들이고 있는 우연과 운명은 바로 이러한 책들의 혼란 속에서 그 구체적 모습을 드러낸다고 이야기 하고 싶다” 서정적이고 사려 깊은 좌파 지식인이었던 벤야민의 말이다.(‘발터 벤야민의 문예 이론‘ 31 페이지) 그간 책을 가능한 한 통독(通讀)해 왔지만 계속 그렇게 하는 것은 참 어렵고 비효율적인 일이라 생각하는 즈음에 한문학자 정민 교수의 말을 만났다.

같은 책도 여러 번 읽어야 할 책이 있고, 그냥 한번 보고 지나가야 할 책이 있고, 목차만 봐도 대개 알 만한 책이 있고, 한두 장만 읽어보면 더 볼 것도 없는 책이 있는데 왜 천편일률적인 독서를 하느냐는 것이다.(’궁극의 인문학‘ 314 페이지) 벤야민이 말한 혼란은 기억의 혼란을 말하는데 나는 그것을 정민 교수가 말한 유연한 읽기로 극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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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큰 집 - 종묘, 경복궁, 자금성, 파르테논 신전 새롭게 보기
구본준 지음 / 한겨레출판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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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고(故) 구본준 건축 담당 기자의 ‘세상에서 가장 큰 집’은 종묘, 경복궁, 자금성, 파르테논 신전 등 인류의 손꼽히는 건축 문화유산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한 책이다. 인류는 권위와 위엄을 과시하기 위한 의도로 종교 건축물과 궁궐 등을 지어왔는데 제목에 나오는 큰 집이란 높거나 긴 건축물들을 의미한다. 저자는 높이가 아닌 길이로 사람을 압도하는 건물로 종묘(宗廟)를 든다. 종묘는 처음부터 길었던 건물이 아니라 차츰 늘어난 경우이다.


물론 조선 왕조의 소멸과 함께 종묘의 확장도 멈추었다. 종묘는 경복궁보다 먼저 지어진 건물이다. 그 만큼 조선왕조는 종묘를 중시했다. 종묘(宗廟)는 임금의 위패(位牌)를 모신 곳이다. 조선은 제사를 통해 국가 경영의 틀을 확립하고 국민들에게는 정체성을 부여했다. 종묘의 길이가 늘어난 이유를 알기 위해 오묘제(五廟制)를 알 필요가 있디, 오묘제(五廟制)는 유교에서 제사를 지내는 원칙으로 다섯 분만 모신다는 의미가 담겼다. 다섯 위패는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고 계속 자리를 유지했기 때문에 불천위(不遷位)라 불렸다.


그런데 시조(始祖)는 아니지만 훌륭한 평가를 받는 임금이 늘어나면서 불천위가 늘었고 이에 따라 종묘 건물 길이가 늘어났다. 101 미터에 이르는 종묘는 우리나라 목조 건물들중 가장 긴 건축물이다. 종묘는 오른쪽(서쪽)을 기준으로 왼쪽으로 늘어났다. 서상(西上) 원칙 즉 서쪽을 동쪽보다 높다고 생각하는 원칙에 따른 것이다. 서쪽 즉 남면(南面)한 임금의 왼쪽으로 늘어난 것이다. 모든 나라가 최고 건축물을 처음부터 압도적으로 크고 길게, 그리고 기둥을 줄지어 세워 지었지만(열주: 列柱) 조선의 종묘는 시간과 건물이 함께 성장해나간 유일한 건축물이고 조선은 그런 건축물을 소유한 유일한 나라이다. 종묘가 위대한 이유는 크고 긴 건물이어서가 아니라 나라와 함께 건축물이 성장한 역사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책을 보며 숭고(崇古)란 말을 떠올렸다. 숭고(崇高)는 존엄함과 거룩함을 의미한다. 미학적으로 숭고는 여러 의미를 갖는다. 에드먼드 버크는 숭고를 위험을 바라보면서 몸의 안전을 확신할 수 있는 데서 생기는 기쁨이라고 표현한 반면 칸트는 우러러보며 두려워 할 대자연을 숭고로 파악했다. 주관적인 면에서 숭고는 주체가 대상에 압도당하면서도 자기를 높이는 데서 오는 쾌(快)와 불쾌(不快)의 혼합감정인 고양감(高揚感)이 드는 것을 말한다. 오늘날 숭고는 형이상학의 퇴조, 자연과학 또는 심리학의 득세 등으로 빛이 바랜 것이 사실이다.


최고로 신성한 건물을 만드는 방법이 길게 짓기와 높게 짓기이듯 건물을 배치해 숭고함과 위엄을 나타내는 방법도 두 가지이다. 권위를 강조하는 중심축 배치 즉 대칭구조와 부채꼴 배치이다. 전자는 한 건물을 지나면 또 다른 건물이 등장하고 다시 그 다음 건물이 등장하면서 가운데 동선을 따라 공간의 권위를 느끼게 하며 후자는 모든 건물이 시야에 펼쳐지는 부채꼴 배치로 아이맥스 같은 감동을 추구하는 방식이다.


사람의 눈이 미칠 수 있는 최대의 시각폭(eye maximum)을 의미하는 아이맥스는 일반적인 영화 스크린보다 10배 정도 큰 초대형 스크린의 영화를 지칭하지만 본래는 캐나다의 영화제작사인 아이맥스(IMAX corporation)의 필름 포맷을 말하며 이 필름 포맷을 사용해 촬영한 영화를 아이맥스 영화라 한다. 대칭구조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건물들이 드러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저자는 위대한 건축은 위대한 생각을 담은 건축, 다른 건축에는 없던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문화적 의미를 추구한 건축이라 말한다.


이세 신궁(伊勢 神宮)처럼 건물을 짓는 방식을 식년천궁(式年遷宮)이라 한다. 일본의 신사 (神社) 중 하나로 미에 현 이세 시에 자리하고 있는 이세 신궁은 신성한 건물을 오래 보존하기 위해 돌로 짓지 않고 오히려 수명이 짧은 나무로 계속 바꿔 짓는 방식을 택했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이렇게 되면 후배들이 건축 방식을 확실하게 배울 수 있다. 바로 옆에 원래 건물이 있어서 더 확실하게 똑같은 건물을 지을 수 있기도 하다. 1500년 전의 목조 기법이 확실하게 전수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최고 여신인 아마테라스 오미카미를 모시는 내궁과 농경의 여신인 도요우케 오카미를 모시는 외궁으로 이루어진 이세 신궁은 두 필지를 마련해 한 필지에만 건물을 짓고 20년이 지나면 헐고 비어두었던 곳에 새로 건물을 짓는 방식을 계속 취해오고 있다. 서기 260년에 시작되어 현재 건물은 62번째라고 한다.(99 페이지) 일본의 이세 신궁은 20년마다 새로 짓는다는 점에서 차별적이다. 그러니 언제나 새 건물인 셈이다. 짓는 방식도 독특하다.


대니얼 부어스틴은 이세 신궁을 보고 일본의 목재 건축가들은 예술의 생애는 짧고 예술 창조자는 영원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말을 했다. 조소는 내부를 필요로 하지 않지만 건축은 내부가 있다.(조소와 건축 모두 3차원 입체 조형물이다.) 궁궐은 여러 현실적 제약을 신경쓰지 않고 최대한 크고 화려하게 지을 수 있었던 유일한 건축물이다. 신전이 신성한 것을 추구한 개념적 건축이라면 궁궐은 나라와 사회를 지배하는 가장 세속적인 건축이다.


저자는 자금성과 베르사유 궁전 같은 거대 건축물은 그런 건물을 짓는데 동원된 백성들이 치른 엄청난 희생을 간과하게 한다고 말한다. 거대 건축물은 인간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한편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그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사람을 도구로 쓴 잔인함을 함께 보여주는 두 얼굴의 문화유산이다.(115 페이지) 저자는 자금성을 보는 우리로서는 그저 감탄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저 놀라운 건축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을지, 저런 건축으로 주변 나라를 어떻게 놀리려 했는지를 생각해야만 자금성에 속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다.(247 페이지)


저자는 궁궐을 권력을 보여주어 사람들을 복종하게 하는 거대 시각 장치 또는 무대 장치라 말한다. 보여주기의 극단은 루이 14세의 베르사유 궁전에서 시작되었다. 기존 파리의 루브르 궁전 대신 루이 14세는 왕실 사냥터였던 한적한 곳에 궁전을 지었다. 이것이 베르사유이다. 인류 역사를 보면 거대 건축이나 토목 공사에 집착한 왕조는 거의 예외 없이 짧게 존재하다 사라졌다.(131 페이지) 경복궁도 그런 예에 속한다. 대원군은 나라 사정이 좋지 않았음에도 거의 신축 수준으로 경복궁 중건을 강행했고 자금이 부족하자 당백전을 발행해 국가 경제에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남겼다.(132 페이지)


경복궁은 아주 큰 궁궐이다.(136 페이지) 경복궁을 자금성과 비교하며 너무 작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경복궁이 작은 것이 아니라 자금성이 유난스럽게 큰 것이다. 사실 자금성에 주눅들지 않는 건물이 없다. 경복궁은 72만 제곱 미터의 면적을 가진 자금성의 70 퍼센트 수준인 43만 제곱 미터의 건축물로 결코 작지 않다.(140 페이지) 중국의 면적이 우리나라 면적의 40배임을 감안해보라. 경복궁은 동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


경복궁 외의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경운궁(덕수궁)까지 감안하면 면적이 자금성의 두 배 가까이 된다. 사대문 안에서 궁궐들이 차지하는 면적을 보면 서울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궁궐 도시라 할 수 있다.(142 페이지) 경복궁은 자금성보다 먼저 지었다. 흥미로운 점은 조선의 왕들이 정궁(正宮)인 경복궁보다 이궁(離宮; 임금이 궁중 밖으로 나들이할 때 머무는 곳)인 창덕궁에서 훨씬 더 오래 머물렀다는 점이다.(146 페이지)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한 것도 극도로 약해진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서였다.(148 페이지)


저자는 자금성의 놀라운 규모에 경외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경복궁이 왜 그렇게 큰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248 페이지) 저자는 경복궁을 덕(德)의 건축물로 부른다. 왕권과 신권이 조화를 이룬 나라였고 주변 나라로부터 조공을 받아야 할 필요도 없었기에 억지로 특별한 효과를 추구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라는 의미이다.(249 페이지) 저자가 말했듯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옥상에 오르면 경복궁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훨씬 아름다운 경복궁을 볼 수 있는 것이다.(250 페이지)


경복궁은 건축적 관점으로 다시 보아야 할 곳이다. 저자는 건축은 크기나 세월로만 따질 수 없고 그 안에 담긴 문화적 가치 즉 고유한 생각이 건물의 가치를 결정한다고 말한다.(268 페이지)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이 말이 저자의 핵심 전언이다. 저자로 인해 건축에 대해 더한 관심을 갖게 되었음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궁궐을 필두(筆頭)로 조선사 공부에 더욱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말도 하고 싶다. 물론 새로운 시각과 관점을 갖춘 공부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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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궁궐을 중심으로 한 조선사 공부의 실적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지난 달 시연 프로그램 가운데 건청궁(乾淸宮) 프로그램이 내 관심을 끈 것은 그 궁의 안채인 곤녕합(坤寧閤) 때문이다. 건청궁은 명성황후 민씨가 일본의 낭인(浪人)들에게 무참히 살해당한 곳이다. 곤녕이란 이름은 하늘은 맑고, 땅은 하나로 평안하다는 의미의 건청곤녕(乾淸坤寧)이라는 도덕경 구절에서 유래했다. 건청과 함께 보아야 완전한 이름인 것이다. 어떻든 이름은 상징적일 뿐 현실적 효용과는 무관하지만 명성황후의 경우는, 살해 자체도 자체려니와 이름과 정반대의 사건이란 점에서 큰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경복궁 속 별궁인 건청궁은 일반 살림집으로 지은 건물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전기불이 켜진 곳이다. 고종이 거처했지만 살림집으로 지었기 때문에 단청(丹靑)을 하지 않았다. 이 곤녕합을 비롯 수많은 건물들로 구성된 경복(景福)궁 자체가 큰 복이라는 이름과 걸맞지 않게 피로 얼룩진 역사를 가졌다. 조선의 법궁(法宮)이었지만 임금들은 창덕궁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경복궁 자체가 치열한 권력 다툼이 부른 살인(형제간 살인, 삼촌이 조카를 죽인 살인)의 현장이라 할 수 있다. 앞에서 말했듯 명성황후 민씨가 살해된 곳도 경복궁이다.


일본은 광화문과 흥례문을 헐어버린 자리에 조선총독부를 지었다. 물론 경복궁만 훼철(毁撤)의 수모를 겪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경복궁은 법궁이기에 훼철 역시 상징적이고 그런 만큼 충격의 폭이 넓다. 구본준 기자는 우리가 경복궁을 자금성을 비롯한 외국의 거대한 궁전에 비해 작다고 느끼는 이유는 일본에 의해 저질러진 훼철 때문이라 말한다.('세상에서 가장 큰 집' 158 페이지) 다른 궁궐들에 비해 경복궁에 마음이 더 가는 것은 피의 역사와 훼철을 겪을 만큼 겪은 궁궐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물론 나는 내 오랜 추억이 서린 곳이자 세계문화 유산인 창덕궁에도 경복궁 못지 않은 애정을 느낀다.


경복궁 공부를 하면서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종묘(宗廟)이다.(아직 궁 공부가 미천하여 내게 창덕궁과 함께 떠올릴 건물은 없다.) 왕의 위패(位牌)를 모신 종묘는 우리나라 목조 건물들 중 가장 긴 101미터를 자랑한다. 조선은 궁궐보다 종묘를 먼저 건설했다. 하지만 이 사실 때문에 종묘를 떠올리는 것은 아니다. 종묘는 처음 시조(始祖)에 해당하는 다섯 임금들만 모시려는 계획에 따라 지어졌지만 시조에 해당하지는 않더라도 아주 훌륭한 임금들을 계속 모시다 보니 옆으로 계속 길이가 늘어나게 되었다.


모든 나라가 최고 건축물을 처음부터 압도적으로 크고 길게 지었지만 조선의 종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건물이 성장한(늘어난/ 덧붙여 지어진) 유일한 사례이다. 당연히 왕조의 멸망과 함께 종묘도 더 이상 늘어나지 않았다. 이미 죽은 건축 유형인 궁궐, 그리고 어느 시점에서 더 이상 늘어나지 않음으로써 왕조의 멸망을 증거하는 종묘... 좌묘우사(左廟右社: 곡식신과 토지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사직단은 궁궐의 우측인 서쪽에 두고, 왕실의 사당에 해당하는 종묘는 궁궐의 좌측인 동쪽에 배치하는 방식)라고 하지만 내 머리 속에는 좌궁우묘(左宮右廟)란 사상이 들어 있다. 적당한 시기에 종묘를 찾아 공부를 더욱 넓힐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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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박물관 공부 후 교보에서 구입한 구본준 님의 '세상에서 가장 큰 집'...저는 리뷰 내용을 정리하며 책을 읽는데 이 책은 손에서 놓을 수 없을 만큼 재미있어 난감합니다. 오늘 공부 시간에 배운 가장 긴 건물(한국에서 가장 긴 목조건물)인 종묘 이야기도 나옵니다. 높이로 압도하는 건물이 아닌 101미터에 이르는 길이로 압도하는 종묘는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을 설계한 프랭크 게리가 가장 좋아한 건물이었습니다. 
 
2012년 리움 미술관에서 특별 강연을 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게리는 사실 자신은 종묘 정전을 보기 위해 한국에 온 것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흥미롭게도 이 분은 일반 관람객이 없는 개장 전 이른 시각에 따로 관람을 하고 싶다는 주문을 했습니다. 
 
리움의 삼성문화재단은 종묘관리소를 졸랐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자 국립중앙박물관과 문화재청을 졸랐습니다. 전례가 없는 일이었는데요 어설프게 전기수(傳奇叟: 조선 후기의 직업적 낭독가) 흉내를 내 질문을 던져보겠습니다. 게리는 자신의 바람대로 혼자서만 종묘를 관람할 수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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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이들의 정다운 이야기를 즐겨 듣는다는 뜻의 열친척지정화(悅親戚之情話)란 말은 잘 알려진대로 도연명의 ‘귀거래사‘의 한 구절이다. 열화당(悅話堂)이란 출판사의 이름은 바로 이 도연명의 시에서 비롯되었다. 궁궐문화원 문화유산 전문해설사 36기 모임의 단톡방 대화에 나도 참여하며 내가 생각한 것이 바로 열친척지정화란 말이다. 즐거운 담소란 우리의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리라. 나는 경복궁 해설을 앞두고 있다는 이야기를 올렸고 이**님은 정태춘, 박은옥 부부의 고추잠자리의 엘피 버전을 녹음해 올려주셨다.

 

이‘‘님은 이 방 남자분들은 너무 로맨티시스트라 감성을 잃어가는 아줌마에게 너무 버겁다는 글을 올렸다. 온통 정치색인 세상과 잠시 격리(?)된 채 한담(閑談)을 즐기는 것도 좋으리라... 가장 바람직한 것은 관심을 두지 않아도 될 만큼 원활하게 돌아오는 정치이지만 그런 것을 기대하기에 현대 정치는 너무 타락했다. 사실 바른 정치는 시민의 현명한 참여가 만들어내는 것이다. 정치의 중요성을 놓치지 않되 문화적 감수성도 함께 간직하는 삶을 어떻게 구현해낼 것인가가 이 겨울 내 화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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