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우 기자의 ‘세종, 조선의 표준을 세우다’를 읽고 있다. 10년 전 책이기에 내가 그의 저서 중 유일하게 읽은 ‘슬픈 공자’(2013년)의 출간 기록은 책 날개에 반영되지 않았다. 이한우 기자는 군주(君主) 열전(列傳) 시리즈물로 ‘세종, 조선의 표준을 세우다’ 외에 ‘정조 조선의 혼이 지다’, ‘숙종, 조선의 지존으로 서다’, ‘선조 조선의 난세를 넘다’, ‘성종 조선의 태평을 누리다’, ‘태종 조선의 길을 열다’ 등을 썼다. 저자에 의하면 세종은 조선의 화신(化身)으로 영조니 정조니 하는 이야기는 조선의 에피고넨에 관한 모색일 뿐이다. 이 말을 다소 희극적으로 비틀면 세종을 먼저 사랑하지 않고 영조, 정조를 사랑하는 것은 순서와 개념이 없는 경도(傾倒)라는 말이 가능하지 않을지?
지금 읽고 있는 ‘세종, 조선의 표준을 세우다’는 오늘 도서관에서 빌린 ‘성종 조선의 태평을 누리다’와 ‘세종, 조선의 표준을 세우다’ 중 한 권이다. ‘세종, 조선의 표준을 세우다’는 지난 2003년 출간된 ‘세종, 그가 바로 조선이다’의 개정판이다. 인용이 너무 길고 문체도 다분히 논문 스타일이었다는 것이 저자의 자평이다. ‘세종, 그가 바로 조선이다’를 구해 ‘세종, 조선의 표준을 세우다’와 비교할 필요가 있다.(나에게만 필요한 것) 어떻게 인용을 간결하게 하고 (어렵고 지루한) 논문 스타일에서 벗어났는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기회이다. 의도적으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중뿔나게 어렵고 재미 없게 쓰는 나에게 필요한 작업이 아닐 수 없다.(중뿔나다: 분수에 지나친 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