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사정과 동기는 각인각색일 것이다. "다시 더 낫게 실패하라"는 말을 한 베케트가 이런 말을 했다. "잘 하는 게 글쓰기 밖에 없어서"... 자신을 명징하게 드러내는 글을 썼다는 다산과, 감추는 방법을 잘 활용한 글을 썼다는 연암 가운데 내 글쓰기 스타일은 어디에 가깝냐고 물은 적이 있다.(물은 적이 있다고 했지만 사실 어제였다.)

 

연암쪽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다소 의외인 답을 듣고 잠시 이런 저런 생각들을 했다. 그분의 취지는 내 글을 구성하는 높은 인용 빈도가 그런 말을 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베케트의 말에 빗댄다면 내게 '체험에 근거한 깨달음이 별로 없기 때문'이라는 말이 가능할 것 같다. 그런데 사실 내가 셀프분석을 잘 한다고 말하는 분들이 몇 분 있다. 그분들 중 한 분이 바로 내가 다산과 연암 운운하며 질문을 던진 분이다.

 

바울이 베드로에 대해 말한 것은 베드로보다 바울 자신에 대해 더 많은 사실을 알게 해준다는 말이 있다. 독일의 정신과 의사 한스 요하임 마즈가 한 말이다. 내가 인용하거나 근거하는 주장이 나를 알리는 실마리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내가 인용하는 글들은 나를 드러내는 만큼 한계도 갖는다. 남의 것이기에 나를 속속들이 드러낼 수는 없으리라.

 

하기야 온전한 나의 체험이란 것이 있을까? 그런 것이 설령 있다고 해도 표현은 늘 의도를 배반하고 핵심 밖을 맴돈다. 앞 부분으로 돌아가 말하자면 곡진하다는 점에서 다산에 가까운 성향이라 생각하고 있는 나에게 연암에 가까운 글(수준이 아니라 성향)을 쓴다는 답이 돌아온 것이다. 물론 나는 두 유형이 필요한 경우가 각기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인생엔 미지수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냐고/ 나는 커다랗게 열려진 황혼의 괄호를/ 바라보면서/ 어쩔 수 없이 꿈꾸는 기분에 잠겨 있었다."란 시(*)가 생각난다.

 

* 김승희 시인의 '낯선 고향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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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자 닐 타이슨과 떠나는 우주여행 헤르메스 1
캡 소시어 지음, 이충호 옮김 / 다림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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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논픽션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캡 소시어(Cap Saucier)의 ‘우주 여행’은 ‘아이들 눈높이에 맞춘 닐 디그래스 타이슨 전기(傳記)‘ 플러스 ’처음에서 마지막까지 쉽게 일별(一瞥)한 천문학‘ 책이다. 미항공우주국(NASA)가 발족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58년에 태어난 타이슨은 과학에 재능이 있고 별과 천문학을 사랑했지만 인종 차별 때문에 우주 비행사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아니 아예 도전 자체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흑인 및 여성에 대해 문호를 개방하지 않았던 NASA는 각각 흑인(1967년)과 여성(1978년)에 대한 정책을 폐기했다. 타이슨은 성격이 좋은 닐 세이건을 멘토로 삼았다. 세이건은 과학 대중화에 공을 세운 사람이다. 과학자인 타이슨은 유머 감각까지 겸비한 만능 저술가이다. 타이슨은 만일 무인도에 홀로 남게 되면 무엇을 가지고 가겠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가 답한 것은 와인 한 상자, 글 쓸 때 필요한 양초, 음악, 책 두 권(프톨레마이오스의 ‘알마게스트’와 뉴턴의 ‘프린키피아’), 망원경 등이다. 우리도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무엇을 이야기할까?


천문학 책이기에 별 이야기에 연결된 빛, 스펙트럼, 원소 주기율표 등 이야기가 쉼없이 나오는데 저자는 독자를 고려해 “천체물리학자가 되려면 과학과 수학을 잘해야 해요. 닐은 수학이 우주의 언어이므로 정확한 방정식들을 알면 우주와 대화를 나눌 수 있다고 말해요.”(57 페이지) 같은 친절한 말로 상세한 안내를 한다. 그런데 천체물리학자는 의사소통 능력도 좋아야 한다. 소통이란 강연, 글 등으로 지식을 전하는 것을 말한다.


암흑 물질, 암흑 에너지, 블랙홀을 지나 저자는 우주 화석을 이야기한다. 화석 인류의 뼈 화석과 발자국 화석이 고인류학자에게 진화를 알아내는 단서이듯 천체물리학자에게 화석은 오래된 은하에서 나온 가스와 빛이다. 암흑물질을 볼 수 있다면 그것도 우주화석이 될지도 모른다. 천체물리학자들은 암흑 물질 때문에 우리 은하의 별들이 흩어지지 않고 한데 모여 있다고 생각한다. 별들의 질량에서 나오는 중력만으로는 회전하는 은하에서 나오는 별들이 밖으로 달아나는 것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96 페이지)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공전 속도는 시속 10만 7000km(초속 약 30km)이다. 이렇게 엄청난 속도를 우리가 못 느끼는 것은 자전이 일정 속도로 일어날 뿐 아니라 공기도 우리와 함께 돌기 때문이다.(115 페이지) 지구는 1월에 태양에 가장 가까워지고 7월에 가장 멀어진다. 물론 계절 변화는 이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달이 없다면 지구는 불안하게 뒤뚱거리며 자전할 것이고 농부들은 농작물 파종 시기를 아는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고 동물의 생활 주기는 혼란스러울 것이다.(117 페이지)


모든 행성들은 둥글다. 아니 둥글어야 행성으로 인정받는다. 중력은 중심에서 같은 거리에 있는 모든 물체를 똑같은 힘으로 끌어당기기 때문에 모든 물질을 중심에 최대한 가까이 배열하려면 구(球) 형태가 될 수 밖에 없다.(124 페이지) 태양계가 끝나는 지점이 정확히 어디인지 분명히 구분하는 경계선은 없다.(153 페이지) “교양 있는 시민이라면 과학자의 길을 걷지 않는 사람도 기본적인 과학 개념을 알아야 해요. 모든 사람은 우리 앞에 닥친 과학의 쟁점을 알 필요가 있어요.”(158 페이지) “아직 과학을 불신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들은 기초 과학을 제대로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요.”(159 페이지)


1972년 이후 달을 밟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타이슨은 달의 뒷면은 망원경을 설치하기에 아주 좋은 장소라고 믿는다. 달에는 공기가 전혀 없기 때문에 우주의 모습을 아주 선명하게 볼 수 있다. 훌륭한 과학자는 마음이 아직 어린 사람이다. 결코 호기심을 잃지 않고 계속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이들은 솔직하고 우주에 대해 새로운 것을 배우려는 동기가 강하다. 천체물리학자, 저자, 강연자, 교사. 관장, 과학 전문가, 시민, 아버지 등.. 이 모든 것이 타이슨이 수행하는 항목들이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우주생물학자이다. 이들은 다른 행성이나 위성에서 생명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과학자이다. 우주생물학자는 천체물리학자와 긴밀히 협력해 다른 행성과 위성의 대기와 표면을 연구한다. 다른 곳의 생명체가 지구의 생명체와 완전히 다른 형태로 만들어질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탄소 대신 규소 같은 원소를 분자의 기본 구조로 사용하는 것, 액체 상태의 물 대신에 메탄이나 암모니아 같은 액체를 바탕으로 살아가는 것이다.(199 페이지)


전편을 통틀어 가장 가슴 뛰는 구절은 우리가 아는 생명은 모두 우리와 마찬가지로 DNA를 가지고 있어서 우리는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과 유전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말(206 페이지)이다. 또한 이제 우리는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물체와 화학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는 말도 그렇다. ‘우주여행’은 분량이 짧지만 인상적인 여운을 주는 책이다. 과학 지식도 중요하지만 우주를 꿈꾸는 것, 상상력을 갖는 것이리라. 이것이 캡 소시어의 ‘우주여행’이 주는 메시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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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서울역사박물관 중촌& 남촌 시연을 마쳤다. 암기한 것을 막힘 없이 전달해 좋았지만 듣는 사람들과 눈을 맞추지 않아서인지 소통이 부족하다는 평을 받았다.

오늘 시연을 하지 않은 분들 중 한 분이 내가 술술술술 말을 하는 것이 부럽다는 말을 했다.

오늘 시연을 한 우리 조의 한 분은 내가 내용을 급히 만들어 외운 것이 아니라 평소 하던 생각을 시연한 것 같다는 말을 했다. 물론 이 진단은 맞지 않는 것이다.

나도 다른 사람들 만큼 열심히 반복해 외우고 외웠으니 말이다. 다만 내용을 외우기 좋게 작성한 것이 차이라면 차이이다.

원장님은 내가 늘 유창하다는 말씀을 하셨다. 오늘 함께 시연을 한 다른 분은 내게 내용이 좋으니 전달 방법을 개선하면 최고의 경지에 오를 것이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소통이 부족하다는 원장님의 말씀에 내가 긴장해서 그렇습니다란 답을 하자 원장님은 ˝박** 선생님도 긴장하십니까?˝란 말씀을 하셨다. 사실 나도 긴장을 많이 한다. 왜 나는 긴장을 하지 않는 것으로 비치는 걸까?

시연은 늘 어렵다. 이제 내년 1월 12일에는 필기 시험을 치러야 하고 1월 19일에는 시연 평가를 받아야 한다.

오늘 실패를 거울삼아 쉽고 간결한 콘텐츠와 적절한 질문 등으로 소통도 하고 미션도 효과적으로 제시해 좋은 평가를 받도록 노력할 것이다. 갈 길이 멀다.

미래가 투명하게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아니 그렇기에 더 열심히 애써야겠다. 다시 시험과 시연 준비를 해야 하니 곧 바빠지겠지만 단 며칠만이라도 책을 실컷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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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한달 전 경복궁 단청 시연이 해설사로서의 내 첫 시연이었다. 수업 차원의 짧은 시연이었지만 단청과 경복궁에 대한 마음가짐 특히 단청에 대한 마음가짐이 남달라졌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늘 한 동기생이 뇌록(磊綠)이 방치되었다는 기사를 톡방에 올렸다.

(뇌록은 포항 장기현의 뇌성산에서만 생산되는 녹색 안료로 2018년 숭례문 복원 때 핵심 재료로 쓰일 것이라 한다. 포항의 뇌록 산지는 천연기념물이다.)

내가 설명한 단청 시연이 생각나서라는 설명과 함께... 나는 기억해 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그런데 내가 단청 시연을 했다는 사실만을 기억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 안에 포함된 뇌록에 대한 내용까지도 기억하는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나의 경우 동기들이 어떤 시연을 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물론 그 동기가 뇌록 기사를 올린 동기는 경복궁의 여러 해설 아이템 중 다른 아이템과 구별되는 단청을 한 나를 특별히 기억했기 때문일 수 있다.

뇌록이 단청의 안료이지만 내 단청 설명에 그 부분이 포함된 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단지 내가 단청 시연을 했다는 사실과 뇌록이 단청의 안료라는 점을 연결지어 나를 생각한 것이라 해도 감사하고 기쁜 일이다.

단청 시연을 짧게지만 한 번 하고 나니 단청 이야기를 들으면 친정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 이런 것이 아닐까 싶은 때가 있다. 이런 방식으로 무생물과도 인연을 만들어 가는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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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 2016-12-21 23: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까운 곳에 장기읍성이 있어요. 정약용, 송시열 유배지이기도 한 이 곳은 읍성에서 바다가 보이는 곳이기도 합니다. 뇌록이라 무슨 암석인지 궁금하네요.

벤투의스케치북 2016-12-22 04:43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포항, 가보고 싶은 곳입니다.
 


사찰과 성당, 궁궐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사찰과 성당은 종교 건축물이고 궁궐은 세속 건물의 정점이기에 공통점이 없는 듯 합니다. 하지만 이 건축물들은 지고한 권력의 정점을 보여주기 위해 햇빛을 후광처럼 쓰고 있는 건축물들입니다.(서윤영 지음 ‘건축, 권력과 욕망을 말하다‘ 236 페이지)

 

차경(借景)에 빗대어 차광(借光)이라 불러도 좋을 것입니다. 차경이란 자연 경관을 빌려온다는 말입니다. 주변의 경관을 자신의 경관으로 끌어들인 차경의 미학을 경복궁처럼 훌륭하게 이루어낸 건축은 세계에서 드뭅니다.(유홍준 지음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 6‘ 14 페이지)

 

차경이란 결국 주변 환경 즉 자연과 어울리도록 건물을 짓는 것을 이르는 말입니다. 성리학자로서 상징적인 명분을 중시해 왕궁 그것도 법궁(정궁)이 동향인 법은 없다며 무학 대사의 인왕산 진산론을 반대한 정도전의 사례가 생각납니다.

 

경복궁 내의 모든 건물은 남향입니다. 경복궁에서 차경(借景)을 가장 멋지게 한 사례는 북악산 일대의 한양 모습을 볼 수 있게 경회루를 지은 것입니다. 인왕산도 그렇습니다.

좁은 계단을 통해 2층의 경회루 누각에 오르면 낙양길 사이로 바라보이는 지붕선의 아름다움이 눈길을 멈추게 합니다.

 

서편으로 보이는 인왕산의 부드러우면서도 늠름한 바위산의 자태는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를 옮겨다 놓은 듯하고 북쪽의 당당한 백악 또한 그 푸른 자태가 빼어납니다.”(이향우 지음 ’궁궐로 떠나는 힐링 여행 경복궁‘ 146 페이지)

 

경회루 2층 누각은 매년 4월에서 10월 사이에 개방된다고 합니다. 36기 모두 승당(升堂)해 아름다운 경회루 2층 누각에서 수업할 또는 해설할 기회를 갖게 된다면 좋겠습니다.

 

* 승당; 오를 승, 대청 당, 들 입, 방 실을 쓰는 승당입실(升堂入室)의 준 말로 마루에 올라 방에 들어간다는 뜻. 학문이나 예술이 차츰 높은 수준으로 나아가 깊은 경지에 이른다는 의미. 승당은 고명정대(高明正大)한 경지에 이름을 뜻하고, 입실은 오묘하고 깊은 경지에 이른다는 의미. 출처는 논어 선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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