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고 있는 책들이 많지 않아도 나름의 방식으로 서가는 가득 차게 된다. 그러면 눕혀 두거나 상자에 담아 두는 등의 비일상적인 방법으로 책을 보관하게 된다.

그러다가 한 뭉터기를 솎아낸다. 뇌세포가 잘려나가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읽은 책이든 읽히지 못한 채 버려지는 책이든 그 자체가 기억은 아니다.

읽지 않은 책은 말할 것도 없고 읽은 책이라 해도 하나의 통합된 이야기로 엮여 기존 지식의 집에 합류되지 않는 이상 그냥 종이들이거나 글자들일 뿐이다.

솎여지는 책은 차라리 몸과 뇌의 세포들이라 해야 옳다. 인간은 ‘24시간마다 모든 세포가 대체되는 췌장, 열흘만에 전면 갱신되는 백혈구, 한달만에 대부분의 단백질이 교체되는 뇌 등 복잡한 사건의 집합‘이다(송희식 지음 ‘존재로부터의 해방‘ 71 페이지)

그럼에도 몇 달 전의 나를 변함없이 나라 부르는 것은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한 존재의 정체성과 관련되는 기억을 넓게 보면 생명체가 생명을 이어가는 것도 포함된다.(이정우 지음 ‘영혼론 입문‘ 67, 69 페이지)

이번에 정리한 장르는 일부 건강 및 심리학, 소설 등의 책들이고 비정상적으로 보관되다가 서가에 꽂힌 책들은 역사, 건축, 예술 등의 책들이다. 내 관심을 반영하는 일이다.

언제까지라고 기약할 수 없지만 앞으로는 시, 시비평, 역사, 건축, 예술, 철학, 정신분석 등을 주로 읽게 될 것이다. 하나의 전기(轉機)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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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교보 아트스페이스에서 본 제주 출신 강요배 화가의 ‘노각성 조부졸’이란 작품. 노각성 자부줄이란 이름을 오늘 듣고 다시 그 의미 탐색에 뛰어들고 싶은 마음을 확인했다. 하늘을 오르내리는 데 쓰인, 제주 신화의 줄인 노각성 자부줄은 삼승(산신: 産神) 할망과 관계된 실이라고..

물론 노각성이란 말, 자부줄이란 말의 어원은 오리무중이다. 다만 하늘을 오르내리는 데 쓰인 줄이라는 사실.

이런 실마리가 되는 것으로 아리아드네의 실이 있다. 니체로 인해 유명해진 디오니소스의 아내 아리아드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노타우르스라는 반인반우(半人半牛)의 괴물을 죽이기 위해 미궁으로 들어가는 테세우스에게 애인 아리아드네가 건네준 실타래.

테세우스는 실타래를 풀면서 미궁으로 들어가 괴물을 죽인 뒤 풀린 실을 따라 밖으로 나오는 데 성공한다. 나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낙소스 섬의 아리아드네’를 안다. 중저가 클래식 CD로 유명한 낙소스 레이블도 생각난다.

노각성 자부줄이 수직을 향한 것이라면 아리아드네의 실은 수평을 향한 것이라는 차이가 있다. 바벨탑 vs 종묘(宗廟)를 생각하게 된다.

바벨탑이 수직을 향한 탑이라면 종묘는 불천위(不遷位) 다섯 임금만을 모시려던 계획에서 후퇴(?)해 시조(始祖)에 준(準)하는 훌륭한 임금들을 추가로 모시기 위해 길이를 늘린 건축물이다.

한 철학자는 쌓아서 구원을 얻으려는 심리를 바벨탑 무의식이라 정의했다. 견고한 도시와 ‘꼭대기가 하늘에 닿는‘ 탑을 쌓음으로써 이름을 떨치려 한 바빌로니아 사람들을 창세기의 신이 언어를 혼란시킴으로써 더 이상 의사소통하지 못하게 해 쌓지 못하게 한 탑.

종묘는 조선의 멸망으로 더는 수평 증축(增築)되지 않게 되었다. 한 건축 칼럼니스트는 “중력의 지배를 받는 지구에서 무언가가 우뚝 서 있다는 것은 그 중력을 거스르는 일이어서 항상 눈에 띈다.”는 말을 한다.

권력 과시적 성격이 강한 건축물의 실상을 간단하게 요약해 보여주는 글이다.(서윤영 지음 ‘건축, 권력과 욕망을 말하다’ 187 페이지) 다른 건물보다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것 역시 권력 과시의 의미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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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Mer)와 태양(Sault)의 결합체인 뫼르소를 생각해 봅니다. 사형수로서 난생 처음 세계의 부드러운 무관심(또는 무차이)에 마음을 열었다는, 카뮈 ‘이방인‘의 주인공....길고 거대한 타락에 바탕을 둔 모든 감각을 통해 선지자가 될 수는 없는 시간들을 통과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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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인기도 면에서 최고의 역사 강사는 설민석이다. 물론 그는 충분한 실력도 갖추었다. 내가 여쭌 한 문화해설사는 설민석의 강의에 약간은 부정적인 견해를 표했다. 누군가는 그의 강의 스타일이 연기(演技) 같다고도 말한다. 물론 연기를 닮은 그런 스타일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실 이런 엇갈림은 너무 당연하다. 호평 일색이거나 악평 일색인 경우는 극히 예외적이다. 이력에 의하면 설민석은 연극영화과 졸업 후 대학원에서 역사교육학을 전공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강의는 제스추어와 리듬감 있는 언어 구사, 쉬운 스토리텔링 등으로 빛난다.

단언할 수 없지만 다이나믹함이나 리듬감이 없는 강의는 죽은 강의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다이나믹하면서 리듬감 있는 언어 구사, 참여를 유도하는 강의를 니체가 말한 비극에, 그렇지 않은 강의를 소크라테스적 미학에 대응시켜 볼 여지가 있다. 물론 두 항들이 아무 문제 없이 곧바로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어떻든 그리스적 비극이 도취에 바탕한 참여, 감정 이입 등을 주요 특징으로 하는 스타일이라면 소크라테스적 미학은 이성 중심과 절제, 공감을 유도하고 체험하도록 하는 것이 아닌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대화이다.

 

독서(讀書)와 간서(看書)의 차이도 중요한 단서다. 독서는 소리 내어 읽는 것(낭독朗讀)이고, 간서는 소리 없이 머리로 읽는 것(묵독黙讀)이다. 고전 평론가 고미숙 선생은 낭송(朗誦)을 강조한다.

 

그에 따르면 기본적으로 파동(波動)을 접하는 행위인 낭송은 텍스트와 자기의 세포가 섞여 에너지나 기운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낭송(朗誦)은 글을 소리 내어 외우거나 읽는 것이고, 낭독(朗讀)은 글을 소리 내어 읽는 것을 뜻하니 약간의 차이가 있다.(誦은 외울 송이다. 암송은 글을 보지 않고 외우는 것이고, 낭송은 보고 소리내어 읽는 것이다.)

 

불교의 그 유명한 결집(結集)도 오늘날처럼, 쓰인 것들을 모으거나 정독(精讀)하여 교정하고 정정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고 있는 것들을 모두 입으로 함께 암송하는 모임이었다.(미즈노 고겐 지음 ‘불교의 성립과 전개’ 71 페이지) 결집이란 불전(佛典) 편집을 위한 모임이다.

 

석가(釋迦) 입멸(入滅) 이후 더 이상 그의 살아있는 가르침을 들을 수 없기에 말씀을 정리해 문서로 만들어야 할 필요를 반영하는 모임인 결집은 (석가모니께) 이렇게 들었다는 의미의 여시아문(如是我聞)이란 유명한 말을 낳았다.

 

보르헤스는 말에 비해 항구적(恒久的)이며 죽어 있는 글의 속성을, 글은 남고 말은 흐른다는 말로 설명했다. 플라톤은 말은 빠르고 신성한 것이라 설명했다. 어떻게 자연스럽게 리듬을 타며 함께 하는 해설을 할 수 있을까, 란 궁리가 설민석을 말하게 한 것이다. 말을 진정 살아 있는 것이 되게 하려면 유도하고 변화를 주고 역동적이게 해야 한다.

 

이서영 아나운서는 스토리텔링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정적인 실체에 동적이고 생생한 서사 구조를 삽입함으로써 그 실체에 생동감을 부여하고 그로 인해 그 실체를 접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내용을 쉽게 이해하고 떠올리기 쉽도록 하며 자신과 연관 짓기 쉽게 하는 것을 말한다고 설명했다.(‘7일 만에 끝내는 스피치’ 220 페이지)

 

지난 12월 22일 서울역사박물관 중촌 & 남촌 시연은 내 단점을 고스란히 드러낸 시간들이었다. 적당한 간격과 완급조절이 없었던 내 모습은 변화구 없이 강속구 일변도의 투구를 하다 난타당한 정통파 투수를 닮았다고나 할까?(더구나 긴장 때문에 듣는 분들과 눈을 맞추지도 못했다.) 반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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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쇼팽을 기다리는 사람 

- 흰 건반 검은 시』


 

시와 그림으로 쓴 산문 ‘활자에 잠긴시’

그 첫 번째 이야기 쇼팽

그리고 그를 기다리는 박시하

 

▶ 책소개

 

첫 선을 보이는 ‘활자에잠긴시’

시로 쓴 산문.

한 번쯤 시로 쓰고 싶은 산문.

쇼팽, 켄 로치, 올리버 색스!

시인이 평소 동경하는 예술가와 만납니다.

당신의 ‘활자에잠긴시’를 들려주세요.

 

올겨울, 첫 선을 보이는 알마 ‘활자에잠긴시’는 시와 그림으로 쓴 에세이로 알마 출판사가 오랜 준비 끝에 선보이는 산문 시리즈다. 저자인 시인이 평소 동경하고, 많은 영향을 주는 예술가와 일대일로 만나서 서로 경계를 두지 않고 소통한다. 때로는 편지를 주고받고, 서로의 관심을 나누고, 무심한 듯 응시하기도 하며 각자의 가슴 속에 담긴 이야기를 시로, 음악으로, 그림으로 자유롭게 풀어간다.

 

박시하, ≪쇼팽을 기다리는 사람≫

‘활자에잠긴시’의 첫 번째 이야기는 한국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음악가이자 최근 쇼팽 스페셜 리스트로 알려진 피아니스트 임동혁을 통해서 더욱 유명해진 ‘피아노의 시인 ’쇼팽이다. 감각적인 문체로 삶의 소소한 기적을 발견하는 시인 박시하가 쇼팽을 만났다. ≪쇼팽을 기다리는 사람≫은 시와 그림으로 쓴 산문인 ‘활자에잠긴시’ 시리즈의 첫 문을 여는 상징적인 작품이다. ≪쇼팽을 기다리는 사람≫에서 시인 박시하는 평소 쇼팽과 그의 음악에서 느끼는 감정들을 각각 ‘만남’, ‘사랑’, ‘이별’, ‘대화’라는 테마 아래서 ‘발견’, ‘불일치’, ‘망각’ 등의 다양한 사유로 기록한다. 저자는 평소 쇼팽을 만나는 삶을 통해서 독자에게 쇼팽의 음악이 가진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쇼팽이라는 우주가 가진 빛나는 감정들, 쇼팽과 저자 사이에 오가는 비밀들을 독자에게만 은밀히 보여준다.  

 

이벤트 참여하기 

1. 기간 : 2016년 12월 18일 ~2016년 12월 25일

2. 당첨자 발표 : 2016년 12월 26일 

3. 모집인원 : 20

4. 참여방법

필수) 이벤트 페이지를 SNS(페이스북, 블로그,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에 스크랩하세요.

- 이 책을 읽고 싶은 이유와 스크랩 주소를 댓글로 남겨주세요.

 

5. 당첨되신 분은 도서 수령 후, 10일 이내에 '알라딘,네이버도서'에 도서 리뷰를 꼭 올려주세요.

(미서평시 추후 서평단 선정에서 제외됩니다)

 

*이벤트 기간은 변동될 수 있습니다

 

 

◆ 소개글

 

인간의 영역 밖, 쇼팽

쇼팽은 그 어느 것에도 관심을 두지 않고 오직 음악으로서만 자신의 삶을 완벽하게 이야기한 사람이다. 그는 15세 때 처녀작 ≪론도 작품 1≫을 내놓았고, 18세 때 베를린을 방문해 유럽 음악계를 견문했다. 특히 유럽 음악의 중심지인 오스트리아 빈에서 독주회를 열었을 때 슈만은 그를 이르러 “여기 천재가 나타났다”며 청중들에게 모자를 벗고 경의를 표하라고 말한 바 있다. 쇼팽은 음악에 몸과 영혼을 다 바쳤다. 그의 삶은 아픔으로 얼룩졌지만, 그의 음악은 완벽하다. 완벽. 하지만 그것은 얼마나 불가능한 단어인가! 저자는 불가능함에 이른 쇼팽의 음악을 가리켜 “노래가 되었고, 시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쇼팽이 살았던 삶, 슬픔과 고통, 환희와 기쁨을 통해서 저자는 그의 음악을 조금 더 잘 느낄 수 있으며 음악을 통해서 쇼팽 특유의 우유부단하고 서글펐던 몇 번의 사랑을 천천히 추적해나갈 수 있다고 말한다.

 

만남, 사랑, 이별, 대화

저자는 음악이 곧 만남이고 대화이며 동시에 사랑과 이별을 동반한다고 담담하게 읊조린다. ‘만남’, ‘사랑’, ‘이별’, ‘대화’로 이루어진 이 길지 않은 이야기는 분명 쇼팽에 관한 산문이라는 점에서 다른 에세이와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이 작품은 마치 책 속의 책처럼, 산문이라는 형태 안에서 ‘쇼팽’과 ‘박시하’라는 예술가가 더욱 밀접하게 교류하는 이야기다. 그것이 여느 산문집과 다른 신선함으로 독자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다. 저자가 하는 이야기는 때론 쇼팽과 무관해서 쇼팽이 한 번쯤 “나를 기다리냐”고 되물으며 책 밖으로 차가운 손을 내밀기도 한다. 경계 너머, 시와 그림으로 쓴 산문 ‘활자에잠긴시’ 그 첫 번째 이야기 손님 쇼팽. 그리고 그를 기다리는 손님 박시하. 이 둘의 활동 시기는 각각 다르지만 책이라는 테이블에서 시공간을 초월해 서로 만나고, 응시하고, 사랑하며 때로는 이별하는 먹먹함을 동시에 선사할 것이다.

 

피아노의 시인과 기적의 시인이 만나다

작가는 ‘음악성 그 자체로 이미 시’인 쇼팽의 삶과 죽음, 사랑과 이별을 담담하게 풀어놓는다. 쇼팽, 그의 음악은 단순히 드러나는 것이 아닌, 매우 조심스럽고 예민해서 마치 이 세계가 은밀히 품고 있는 비밀 같다. 작가는 시라는 것이 세계의 비밀을 누설한다는 점을 든다. 그리고 피아노 앞에서 이 세계가 품은 비밀을 연주하는 ‘피아노의 시인’ 쇼팽에게 더 가까이 다가간다. 때론 쇼팽을 바라보는 한 명의 관객으로서, 때론 쇼팽의 음악을 만나 삶을 확장시키는 주체로서 작가의 따뜻한 응시가 담겨 있는 이 작품은 지금 쇼팽을 기다리는 또 한 명의 독자와 만나려 하고 있다.  

지은이 박시하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편집디자이너로 일했다. 2008년 《작가세계》 신인상을 받았고 2012년 첫 시집 《눈사람의 사회》(문예중앙)와 2016년 두 번째 시집 《우리의 대화는 이런 것입니다》(문학동네)를 냈다. 산문집 《지하철 독서 여행자》(인물과사상사)를 냈으며 독립잡지 《더 멀리》의 디자인을 맡고 있다. 시와 산문을 계속 쓰고 있으며, 소설 읽기와 음악 듣기, 산책하기를 사랑한다. 성차, 성 정체성, 나이와 사회적 지위, 신체적 조건에 의해 발생하는 위계와 폭력을 반대한다.

 

그린이 김현정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덕성여자대학교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평면조형을 전공했다. 2008년 국문화예술위원회 문예진흥기금 신진예술가 부문에 선정되었고, 기억 속의 장면이 현재와 만나는 지점을 포착하여 회화의 감각에 집중하는 그림을 그린다. 2009년 《always somewhere》, 2012년 《열망Desire》 등 지금까지 6번의 개인전과 다수의 그룹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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