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유물들 가운데 전시되는 것은 일부이고 대부분은 수장고(收藏庫)에 갇힌 채 영원한(?) 시간을 보낸다.

유물이 늘어 수장고의 공간적 여유가 없어지면 다른 곳으로 옮겨지겠지만 학예사들이 설정한 흥미로운 주제에 합당해 전시되지 않는 한 수장고 처지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유물들은 원래 박물관에 전시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즉 박물관은 유물의 고향이 아닌데 전시라도 된다면 보람을 느끼겠지만 수장고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면 어둠과 슬픔으로 물든 삶을 사는 것이 된다.

책은 어떨까. 책도 보관 창고에 갇혀 빛을 못 보다가 폐기되기도 한다. 그러나 책의 그런 운명보다 더 한 문제는 생각을 풀어내지 못하는 것일 테다.

학예사들이 설정한 주제에 따라 유물들이 전시되듯 미발현된 내 생각들도 주제가 얼마나 흥미로운가에 따라 구체화되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갇혀 지내는 것들이 얼마나 빛을 보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세상의 정도는 다르다.

(두보의 시를 응용해 말하자면) 얼마나 많은 꽃잎이 떨어지는가에 따라 봄빛의 양이 달라지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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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대 시인의 ‘앵두꽃을 찾아서’에 “소주이거나 항주이거나”란 표현이 있다.

소주(蘇州)와 항주(杭州)는 중국의 명승지(名勝地)인데 소주이거나 항주이거나란 표현은 모두 아름다운 곳이니 차이가 없다는 의미인지? 아니면 인접(隣接)한 곳이기에 차이가 없다는 의미인지?
어제 사전 예약을 거쳐 경회루 2층 누각에 올라 높은 시야 즉 왕의 시선으로 경복궁 사방 풍경을 보았다.

평소와는 사뭇 다른 감회가 느껴졌는데 내게는 서쪽 방향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낙양각의 기둥과 기둥 사이에 펼쳐진 푸른 초목과 하늘 등의 풍경이 마치 액자 속의 절경을 보는 듯 했기 때문이다.

창덕궁 후원에 비견할 곳이 경복궁에는 무엇이 있는가, 란 의문을 가졌었는데 이제 경회루 2층 누(樓)에서 보는 낙양각 기둥과 기둥 사이의 풍경이라 말하고 싶다.

경복궁 (전체)이거나 경회루이거나란 말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열린 마당의 경우 계단을 올라 보면 남산 풍경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마치 액자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안양루(安養樓) 아래에서 보는 위쪽 풍경이 액자 같은 느낌을 자아내는 부석사(浮石寺)도 생각할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설계자는 바로 이 영주 부석사(浮石寺)에서 영감을 얻었을 것이다.

기록을 보니 부석사가 세워진 것은 676년이고 1580년과 1740년 중건되었다.

경복궁은 1867년 흥선대원군에 의해 중건되었다. 부석사(중건된 해는 1740년)가 경복궁(중건된 해는 1867년)보다 먼저 지어졌으니 경복궁 경회루의 액자 풍경이 부석사 안양루의 액자 풍경에서 영감을 받아 연출된 것이라 볼 여지가 있다.

물론 우연의 산물일 수도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아니 경회루의 경우든 안양루의 경우든 국립중앙박물관 열린 마당의 경우든 의도의 산물인지 우연의 산물인지가 사실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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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즈마 히로키의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에 의하면 동물과 스노비즘은 반대되는 의미를 가진 말이다.

동물은 소비자의 필요를 그대로 충족시키는 상품에 둘러 싸인 채 살아가는 존재, 미디어의 논리에 따라 바뀌는 모드(mode)를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는 존재이다.

반면 스노비즘은 주어진 환경을 부정할 실질적인 이유가 아무 것도 없음에도 형식화된 가치에 입각해 그것을 부정하는 행동양식을 말한다.

코제브가 스노비즘이라 부른 세계에 대한 태도는 후에 슬라보예 지젝에 의해 냉소주의로 불리게 된다.

알렉산더 코제브는 거대한 이야기가 사라지고 나서 사람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동물과 스노비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히로키는 ‘냉소주의 = 스노비즘’의 시대는 유효성을 잃었고 대신 독자나 시청자를 일정 시간 동안 지루하지 않게 하고 적당히 감동시키며 적당히 생각하게 하는 잘 만들어진 이야기에 대한 욕구가 높아진 시대가 도래했다고 말한다.

어떻든 스노비즘일지 모르지만 나는 잘 만들어진 이야기를 불편해 한다. 잘 만들어진 이야기는 세상의 단면을 보여주어 감동을 주지만 어느 정도 사기성(詐欺性)이 있는 것은 아닌지?

어떻든 나는 특히 감동할 거리와 생각할 거리가 적당히 섞인 이야기를 불편해 한다. 히로키는 스노비즘은 갔다고 말하지만 나는 내 비판적 시선들이 스노비즘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나는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문화를 명품 소비하듯 또는 허영심으로 소비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한다.

‘라깡의 루브르’(백상현), ‘미술관이라는 환상’(캐롤 던컨), ‘비참한 대학생활’(상황주의자 인터내셔널, 스트라스부르 대학교 총학생회),

‘동물원이 된 미술관’(니콜레 체프터), ‘동물화화는 포스트모던’(아즈마 히로키), ‘구경꾼의 탄생’(바네샤 슈와르츠)은 나의 그런 문제의식에 따라 선택한 책들이다.

자꾸 낯선 곳에서 엉뚱한 생각들과 씨름하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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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권(墓券)은 죽은 사람이 묻힐 땅을 구입했음을 증거하는 문서이다. 부장품(副葬品)이다.

‘직설 무령왕릉‘에서 김태식은 묘권을 무령왕이 지하세계의 신들과 토지매매 계약을 한 증거물로 설명한다.

충남 공주 송산리 고분 내의 무령왕릉은 삼국시대 고분들 중 거의 유일하게 조성 시기는 물론 누구의 것인지가 밝혀진 능이다.

<무령왕릉은 한국인들보다 일본인들이 더 많이 찾는 능이다.>(재외동포신문 2016년 9월 22일 ‘백제 무령왕 이야기‘) 흥미로운 일이다.

백제는 한성 시대를 거쳐 웅진 시대, 사비 시대로 나아갔다. 한성 백제가 고구려적이었다면 웅진 및 사비 백제는 세련되고 우아했다.

(지난 4월 11일 한성백제 박물관에 갔었는데 국립공주박물관의 웅진백제실, 사비백제실도 가보고 싶다.)

김태식은 묘권과 돈을 부장한 것은 지하세계를 관장하는 신의 동티 즉 노여움을 달래기 위해서였을 것이라 말한다. 망자의 노자(路資)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승에서 왕으로 살았던 사람도 지하세계에서는 불청객일 수 밖에 없다.(여담이지만 능에 묻은 묘권 및 돈은 면역억제제에 비유될 수 있을까?)

무령왕릉은 이야기거리가 많다. 세련된 문화, ˝도굴을 방불케 하는 졸속 발굴˝, 중국 천자(天子)에게만 썼다는 붕(崩)자가 발견된 묘지석 등으로 백제에 대한 관심이 솟아난다.

지난 2월 한국학 중앙연구원 김일권 교수(역사천문학)의 ‘고구려 별자리와 신화‘ 강의가 한성백제 박물관에서 있었다.

(나는 강의를 들은 동기로부터 핵심 부분들을 전해들었다. 안타까운 것은 김일권 교수의 책들이 아직 우리 학계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고구려가 조선과는 다른 자주적 우주관을 가졌음을 천문학으로 입증한 부분이 흥미로웠는데 ‘직설 무령왕릉‘에도 김일권 교수 이야기가 나온다.
무령왕 시대의 백제가 사용한 책력이 원가력(元嘉曆)이 아닌 대명력(大明曆)이라는, 오타니 미쓰오나 이은성 등 책력 전문가의 아성에 도전하는 경천동지할 주장을 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김일권 교수의 견해를 수용한다. 고구려 별자리와 신화 강의 대신 그의 저서를 읽고 하게 된 생각은 김일권 교수는 숨은 실력자라는 사실이다.
지난 2월 9일과 4월 11일의 한성백제박물관이 통합되어 우리 동기들이 함께 있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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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일 임석재 교수의 K - MOOC 강의( ‘건축으로 읽는 사회문화’)가 시작되었다. 종강일이 6월 16일이니 중간 참여가 가능하다면 도전해볼까?

고대 근동과 이집트의 건축, 그리스의 건축, 로마의 건축, 초기 기독교 및 비잔틴 건축, 로마네스크 건축, 고딕 건축, 르네상스 건축, 바로크 건축 등을 만날 수 있는 강의이다.

내 자의적인 선별이지만 임석재 교수 하면 경복궁, 한옥, 골목길, 간이역, 돌, 담, 길, 창, 문 공간, 꽃살, 기둥, 누각, 지붕, 선 등의 보이는 것은 물론 사상, 도덕, 공간, 시간 등 추상적인 것까지 두루 생각난다.(사상은 ‘한국 전통 건축과 동양사상’, 도덕은 ‘한국 건축과 도덕 정신’, 공간은 ‘한국의 전통 공간’, 시간은 ‘시간의 힘’ 등을 참고)

건축가로서 드물게 90여권의 책을 쓴 다작 작가인 임석재 교수의 많은 책들 가운데 나는 ‘예로 지은 경복궁’, ‘서울, 골목길 풍경’, ‘한국의 간이역’ 등에서 특별한 인상을 받았다.(물론 ‘한국 전통 건축과 동양사상’, ‘한국 건축과 도덕 정신’, ‘한국의 전통 공간’, ‘시간의 힘’ 등으로부터도 큰 영향을 받았다.

덧붙이자면 ‘예로 지은 경복궁’도 추상적인 것을 다룬 책이다. 눈에 보이는 것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 명사로 가야할 것이다. 물론 회귀는 자유롭다.) 경복궁은 문화해설과 관련해 내가 마음을 기울인 첫 사랑의 궁이고 골목길은 내가 참 좋아하는 기호(記號)이자 장소이다.

임석재 교수는 경복궁을 ‘주례(周禮)‘, ‘논어‘, ‘맹자‘, ‘순자‘, ‘춘추좌전‘, ‘국어‘, ‘시경‘, ‘서경‘, ‘주역‘, ‘관자‘, ‘한비자‘, ‘문심조룡‘ 등 동아시아의 거의 모든 고전이 총망라되어 반영된 공간으로 설명했다.

그런가 하면 한국의 간이역은 낭만과 수탈이라는 상반된 이미지를 가진 건축물로 설명했다.

간이역에서 우리는 추억, 낭만, 여행 등을 떠올리지만 일제가 한국으로부터 수탈한 곡물과 자원 등을 자국으로 실어가기 위해 임시로 세운 기지(基地)였다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

경복궁은 영원(?)하겠지만 골목길과 간이역은 변해가고 있다. 수적으로도 질적으로도. 물론 감소 쪽으로. 아쉬운 일이다.

건축물이라는 가시(可視)의 공간 vs 추상 명사, 역사 vs 낭만, 거대 vs 소박 등의 긴장이 좋다. 바람이 있다면 임석재 교수가 종묘(宗廟)에 대한 책도 쓴다면 좋겠다는 것이다.

공부 거리가 참 많다. 이 공부 거리들 사이에서 길을 잃지 않고 내 문제의식을 놓치지 않는 일이 중요하다. 지렛대(지렛대 효과의)를 제 몸처럼 여겨서도 안 되며 강을 건넌 후 뗏목(부처가 강을 건넌 후에는 버리라고 한)을 계속 이고 가서도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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