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고전/ 낭만 음악의 엄격과 무게감에서 자유롭고 싶은 때가 있다. 이럴 때 사티, 포레, 라벨, 드뷔스 등의 프랑스 근대 음악들을 듣는다. 올리비에 메시앙, 클로드 볼링, 피에르 불레즈 등의 현대 프랑스 곡들을 듣곤 하지만 아직은 익숙하지 않다.

미국의 작곡가 애런 코플런드(1900 – 1990)는 ˝진정한 음악 애호가는 옛날 것이건 요즘 것이건 가리지 않고 예술의 모든 형태에 친숙해지고자 하는 압도적인 열망을 가진 사람인 경우가 많다.“는 말을 한다.(‘음악에서 무엇을 들어낼 것인가‘ 41 페이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바흐, 베토벤, 브람스 등 3B로 대표되는 시대의 음악을 닳고 닳은 음악이라 칭하는 코플런드의 문제의식에 공감한다. 사티, 포레, 라벨, 드뷔스 가운데 내가 가장 친근감을 느끼는 작곡가는 포레이다. 나는 그의 곡들이 대체로 맑고 곱다고 생각한다.

오래 전 그의 ‘녹턴’을 선물하며 맑은 차를 마시며 나누는 고요한 대화 같다는 설명을 부가했었다. 진노의 날이 없는 ’레퀴엠‘도 좋다. 철학자 김형효 교수가 베르그손의 철학을 굵고 육중한 베토벤의 음악이 아닌 미묘하고 대단히 섬세한 드뷔시나 라벨의 음악에 비유한 것을 기억한다.

포레를 좋아하는 입장으로서는 아쉬운 부분이다. 그러나 나는 그 분의 비유를 이해한다. 인상주의 그림에 어울리는 곡은 포레보다 라벨, 드뷔시이기 때문이다.(김 교수는 베르그손의 철학을 물체의 무게를 느끼지 않게 하는 화법을 구사하는 마티스의 그림에 비유하기도 했다.)

빔 벤더스의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에 나오는 아프고 슬픈 천사에 공감하는 것도 좋지만 포레나 사티의 가벼운 음악, 마티스의 ‘춤’처럼 가벼운 비상(飛上)의 그림을 보며 마음을 가볍게 하는 것도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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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본의 아니게 문화 해설에 관한 질문을 몇 건 주고 받았다. 두 건은 한 것이고 한 건은 받은 것이었다. 우선 창경궁 명정전을 명정원으로, 창덕궁 인정전을 인정원으로 기록한 한 블로거에게 정말 몰라서 그러니 왜 그렇게 쓰신 것인지 묻는다는 글을 남겼으나 며칠이 지난 현재 아무 답도 듣지 못했다.

페이스북 친구인 역사학자께는 배우려는 마음으로 묻는다는 전제를 한 뒤 우리 역사는 국사(國史)이고 한국사는 제3국인이 부르는 명칭이라 하시고서는 한국사 문헌사료 연구소라 하시는 것은 얼핏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글을 전했다.

이에 그 분은 한국사가 워낙 일반화되어 있어서 후에 고치겠다는 생각으로 잠정적으로 그렇게 썼고 아직 정식 등록 단체가 아니기에 등록할 때 국사라는 이름을 넣도록 할 것이라는 답을 주셨다.
그리고 “맹목적 비판이 아닌 의문점이나 잘못된 점에 대한 비판에는 언제든 문이 열려 있”다는 말씀을 덧붙이셨다. 멋지고 쿨한 분이시다.(감사드린다.) 이 분과 왕릉 답사를 갈 날을 기다린다.

내가 받은 질문(이라기보다 댓글에 가까운데)은 재궁(齋宮)에 대한 내 글에 대해 블로그 친구가 제시한 글로 재궁(齋宮)을 재궁(梓宮)으로 착각한 글이었다.

나는 이에 재궁(齋宮)은 종묘에서 임금, 세자가 제향(祭享) 전에 목욕재계하고 의복을 정제하던 곳이고 재궁(梓宮)은 임금, 세자 등의 관(棺)을 말하며 출판을 위해 인쇄에 들어가는 것을 말하는 상재는 上梓라 쓰니 재궁(梓宮)의 재와 상재(上梓)의 재는 같은 글자(가래나무 재)라는 답을 달았다.

자칫 이런 주고받음에 재미를 붙일 수도 있다는 우려가 되기도 하지만 이런 과정은 기초를 다지고 정확성을 담보하는 시간으로 기록될 것이다.(늘 하는 생각이지만 언제든 내 잘못에 대해 지적, 또는 교정받을 용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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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사는 나무
장세이 글.사진 / 목수책방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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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해설 공부를 하다 보면 3이란 숫자를 자주 접하게 된다. 궁궐의 33(三門 三朝: 경복궁의 경우 광화문, 흥례문, 근정문/ 근정전, 사정전, 강녕전), 3(: 천지인), 3(: 신향로, 어로, 세자로), 3간택(揀擇), 주역의 3() 등이다.

 

장세이의 서울 사는 나무를 접하고 저자가 한 이야기는 나무 이야기이지만 결국 이는 집, 나무, 사람이라는 (변형된) 3()를 이야기한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한 전문서는 3재를 가치를 의미하는 천(), 법칙을 의미하는 지(), 주체를 의미하는 인()으로 풀었다.(송희식 지음 존재로부터의 해방’ 163 페이지)

 

3이란 숫자에 눈길이 가서인지 서울 사는 나무역시 서울의 세 곳(길가, 공원, 궁궐)에 사는 나무들을 이야기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물론 앞에서 말했듯 나무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집(길가, 공원, 궁궐), 그리고 사람까지 함께 어우러진 드라마이다.

 

역시 3이란 숫자로 볼 것이 하나 더 있다. 하수(下手)는 꽃을 보고, 중수(中手)는 잎을 보고, 고수(高手)는 잎도 꽃도 없는 한 겨울 줄기를 보고 나무를 구분한다고 한다는 이야기이다.

 

논어자한(子罕)편에 추운 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 것을 알게 된다는 구절이 있지만 추운 겨울이 되어서야 나무를 잘 아는 사람이 누구인지 드러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숲 해설사인 저자는 고백하건대 벚나무를 제대로 모르고 살았다. 이제라고 잘 아는 것도 아니다. 다만 살아남으려 꿀샘을 만들고 꽃만큼 단풍이 고운 나무라는 것만은 확실히 안다.“고 말한다.(33 페이지)

 

길가와 공원의 나무들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은 당연히 시민들이고 궁궐의 나무들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은 왕 또는 왕족들이다. 물론 서울 사는 나무는 길가, 공원, 궁궐 등을 두루 돌아다닌 저자의 관점에 따라 엮인 이야기 모음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헌법재판소에 백송(白松)이 유명하다.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켜 수많은 이를 죽여 온 동네가 피바다가 되자 이를 덮으려 재를 뿌려 잿골로 불리다가 지금은 재동(齋洞)으로 불린다.(재를 뿌려 덮은 것과 목욕재계의 재의 차이는 무엇일까?)

 

지난 527일 미래 유산 해설대회 시나리오 작성을 위해 바로 그 재동 백송을 찾았다. 역사/ 문화, 시민 생활, 나무가 결합된 해설이어야 한다는 규정이 제시된 대회이다. 이 역시 3()라 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는 백송 말고 가문비 나무도 유명하다. 나무 껍질이 검어 검은피 나무 즉 흑피목(黑皮木)으로 불리다가 가문비 나무가 된 것에서 알 수 있듯 가문비 나무는 검다. 저자는 헌재가 하는 일을 두 나무가 희고 검고로 차이나듯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것이라 말한다.(76 페이지)

 

저자가 다닌 다양한 명소들을 보면 체험이 많은 것을 말해줌을 알 수 있다. 서울역사박물관 수업을 받은 것이 지난 해 12월 두 차례였다. 경희궁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저자에 의하면 경복궁은 문화재청에서 관리하고, 전각이 여기저기 팔려나가고 정전인 숭정전(崇政殿)마저 옮겨진 경희궁은 공원으로 분류되어 서울시의 관리를 받는다.(153 페이지)

 

숭정전은 경희궁에서 즉위한 정조가 즉위 일성으로 나는 사도 세자의 아들이라 선언한 곳이다. 슈베르트의 보리수(菩提樹)’에 나오는 보리수의 정확한 이름은 피나무라고 한다. 저자에 의하면 식물학자가 아니라면 피나무 종류는 매우 비슷하여 거의 구분하기 어렵다.“고 한다.(204 페이지)

 

저자는 삼청공원의 나무 지도를 만들기도 했다.(224 페이지) 나무 이름을 모르니 부를 수 없고 그래서 아쉬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공감한다. 49만여 제곱미터의 거대한 창덕궁은 절반 이상이 후원 곧 숲이며 무려 16,000여 그루의 나무가 살아간다. 그런데 회화나무는 후원이 아닌 대문 앞에 심어져 있다. 중국에서처럼 삼정승(三政丞)을 상징하는 나무이기에 그렇다.(289 페이지)

 

()는 느티나무일 때는 괴, 회화나무일 때는 회로 읽는다. 정조 이야기를 했지만 창덕궁 낙선재(樂善齋)는 정조의 증손자 헌종의 사랑채이다. 낙선재는 단청을 하지 않은 백골(白骨)집이다. 연경당(演慶堂)도 그렇다. ()/ () vs ()의 대비는 이해하려만 골()이라니...연경당은 계동마님댁의 모델이다.

 

저자의 행보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이 종묘(宗廟)행이다. 저자는 종묘도 궁궐이라 말한다. 신들의 궁궐인 신궁(神宮)인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종묘는 망묘루(望廟樓)만 팔작지붕이고 정전(正殿), 영녕전(永寧殿), 전사청(典祀廳), 향대청(香大廳), 재궁(齋宮) 등이 모두 맞배지붕이라는 점이다. 맞배지붕은 소박미가 있다.

 

궁궐은 왕이 살아 있을 때 살던 곳이고 종묘는 사후 영혼이, 능은 몸이 사는(묻힌) 곳이다. 이 역시 3()라 할 수 있다. 종묘 정전은 건물 색이 밝았다가 진했다가 한다. 처음 짓고 난 이후 계속 덧지은 결과다.(368 페이지) 저자는 언제부터인가 종묘에 들면 재궁 앞 물박달나무를 찾는다고 한다.

 

저자는 기품도 없고 단정치 못한 물박달나무가 어떻게 종묘에 살게 되었는가를 묻는다. 나는 비무장 지대에 사는 나무들 특히 북의 화공(火攻)에 타는 나무들을 보며 참 기구(崎嶇)한 나무들이라는 생각을 하곤 하는데...(험할 기, 험할 구) 종묘 연못에는 향나무가 있다. 초혼(招魂)의 나무이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고 제사 공간의 상징성을 고려한 결과라는 말도 있다.

 

저자는 백성 없는 왕이 어디 있던가. 민초의 신산한 삶을 대변하는 물박달나무는 꿋꿋이 신들의 정원에 살며 우리도 기억하라고 외친다.”고 말한다.(375 페이지) 빵으로 치면 페스트리, 사무용품으로 치면 포스트잇이 덕지덕지 붙은 모습을 연상하게 하는 나무가 물박달나무이다. 나무 이야기는 결국 삶의 이야기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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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평론집을 읽는다. 나무 해설가는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내심 원인을 해결하면 되겠지, 하고 생각하는 내게 눈에 띄는 구절이 나타났다.

“베케트의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무대를 떠올리면 언제나 한 그루 나무가 서 있다.”(김행숙 지음 ‘천사의 멜랑콜리’ 79 페이지)는 구절이다.

나는 베케트가 자신의 작품에 늘 나무를 등장시키는 것은 징후적인가 생각하게 되는데 이는 요즘 내가 집, 나무, 사람(HTP: house, tree, person) 심리 검사 책을 읽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12년 잡지 기자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대책 없이 거리를 헤매다 숲 연구소를 발견하고 나무를 배우고 숲에 들기 시작한 이듬 해 숲 해설가 자격증을 받아들자 심신의 독기와 체기가 조금씩 사라져 갔다는 나무 전문가의 책을 읽다가 글 솜씨에 가슴 찡함을 느낀 것이 최근 일이다.

창덕궁 낙선재(樂善齋)와 관련한 덕혜옹주의 사연을 들려주던 그는 낙선재 앞에 사는 서너 그루의 감나무 가운데 덕혜옹주의 애처로운 신세를 닮은 외떨어진 나무 한 그루에 감이 영글었다는 말을 한다.(‘서울 사는 나무’ 309 페이지)

책에서 그(저자 장세이)는 길가(북촌로, 삼청로, 율곡로, 새문안로 등), 공원(낙산공원, 삼청공원, 서대문독립공원 등), 궁궐(경복궁, 창덕궁, 덕수궁, 종묘 등)에 사는 나무들을 알뜰히 불러낸다.

창덕궁(만이 아니겠지만)에 사는 나무(감나무)를 이야기한 글은 결국 집(창덕궁 낙선재), 나무(감나무), 사람(덕혜옹주)이 등장하는 드라마이다.(언제부턴가 종묘에 들면 재궁齋宮 앞 물박달나무를 찾아간다는 저자..)

HTP 전문가는 집, 나무, 사람이 만들어내는 구도의 전체적 안정성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집(궁궐, 종묘, 능)과 사람을 위주로 생각(해설)하는 내게 나무도 포함시키라고 타이르는 말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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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로 떠나는 힐링여행 : 창덕궁 인문여행 시리즈 8
이향우 글 그림, 나각순 감수 / 인문산책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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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봉(鷹峯)이란 종로구 와룡동, 삼청동, 성북구 성북동에 걸쳐 있는 산으로서 매봉이라고도 한다. 이향우 저자는 안국역이 아닌 종로 3가역에서 내려 창덕궁을 볼 것을 제안한다. 돈화문(敦化門: 창덕궁의 정문)을 향해 북쪽으로 길을 걸어보자는 의미이다. “돈화문로를 따라 걷다 보면 응봉을 머리에 얹은 돈화문이 보인다.”고 한다.

 

중용의 대덕돈화(大德敦化)를 출처로 하는 돈화는 임금이 큰 덕을 베풀어 교화를 도탑게 하다는 의미를 갖는다. 돈화문은 현존 궁궐 문들 중 가장 오래된 문이다. 저자는 무엇을 보고 어떤 감동을 받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취향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21 페이지) 계절, 날씨, 시간 등에 따라 달라질 분위기와 멋을 느낄 필요가 있다.

 

물론 나는 이야기 거리를 찾는 데 큰 관심이 있다. 왕이 움직일 때 머무르던 별궁(別宮)을 뜻하는 이궁(離宮)으로 출발한 창덕궁은 창경궁과 함께 경복궁 동쪽에 있다는 의미에서 동궐(東闕)로 불렸고 창경궁과 함께 후원을 공유했다. 돈화문은 창덕궁의 남문이다. 금호문, 요금문, 경추문은 창덕궁의 서문이다. 단봉문은 동문이다. 건무문은 북문이다.

 

돈화문 안쪽에는 천연기념물인 오래된 회화나무가 있다. 중국 주나라에서 궁의 외전 영역에 괴목(槐木: 느티나무)을 심어 삼정승들이 정사를 논한 것에서 유래했다. 같은 회()자를 쓰지만 회화나무일 때는 회, 느티나무일 때는 괴라고 읽어 구분한다.(장세이 지음 서울 사는 나무’ 285 페이지)

 

금천교(禁川橋)는 배산임수의 조건으로 명당수를 궁궐의 외전 영역에 인위적으로 끌어들인 냇물 위에 세운 다리이다.(39 페이지) 금천교는 조선시대 궁궐 돌다리들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모든 궁궐의 외전에는 반드시 금천이 있다. 창덕궁의 금천교(禁川橋)는 금천교(錦川橋)이다.

 

금천교 홍예 북쪽에는 현무를 의미하는 거북을 놓았고 남쪽에는 성군의 출현을 상징하는 백택(白澤)을 조각했다. 두 홍예 사이 가운데에 역삼각형 형태의 사나운 나티(짐승의 모양을 한 귀신의 일종) 부조 조각을 했다. 창덕궁 궐내각사는 궁궐의 궐내각사들 중 유일하게 복원되었다.

 

창덕궁에는 내각이라 불리는 규장각이 있다. 강화의 규장각을 외규장각, 창덕궁의 규장각을 내규장각(내각)이라 한다. 규장각은 왕립 도서관이다. 봉모당과 보각(왕실 서고) 사이에 향나무가 있다. 종묘가 국가 사당이라면 창덕궁 선원전은 왕실의 사당이라 할 수 있다.(65 페이지)

 

종묘 대제는 왕이 주관하는 친행(親行)과 세자나 고관이 대행하는 섭행(攝行)으로 나뉜다. 금천교를 지나면 진선문을 마주치게 된다. 태종과 영조 태 진선문 안에 북을 설치해 민원을 듣고자 했다. 옥당(玉堂)은 홍문관(弘文館)의 별칭으로 옥 같이 귀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는 의미이다. 학문 연구, 시강(侍講), 언론 기능을 했다. 시강은 왕이나 세자에게 경서를 가르치는 것을 의미한다.

 

정면 5, 측면 4칸의 중층 팔작지붕인 인정전은 밖에서 볼 때 2층으로 보이지만 내부는 천장이 높은 통층 건물이다.(88 페이지) 인정문을 들어서면 금천교를 이어 진선문에서부터 따라 온 삼도(三道)가 인정전 월대까지 이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삼도는 가운데 길이 양쪽 가장자리 길보다 넓고 약간 높다. 가운데 길은 임금이 다니는 어도이고 오른쪽 길은 문반이 다니는 길, 왼쪽 길은 무반이 다니는 길이다.

 

삼도 좌우에 품계석이 있다. 정조가 조정의 위계질서가 문란해졌다 하여 바로잡기 위해 관리의 품계를 나타내는 표지석으로 세운 것이다.(95 페이지) 인정전에도 잡상이 있는데 잡상은 궁궐 건죽에만 나타나는 것으로 악귀의 침입을 막기 위해 지붕 추녀마루에 장식한 토우의 일종이다. 우리 나라 궁궐의 잡상 종류는 모두 열 가지이다.(108 페이지)

 

인정전 월대 모퉁이에 있는 무쇠로 만든 큰 물동이를 드므라고 한다.(110 페이지) 창덕궁의 편전은 선정전이다. 선정문과 선정전의 중앙을 가로지르는 행랑이 있는데 이렇게 건물 중앙을 가로지르는 행랑을 천랑(穿廊)이라 한다. 선정전은 혼전(魂殿)으로도 사용되었다. 혼전은 임금이나 왕비의 국장 뒤 삼년간 신위를 모시던 전각이다.

 

선정전은 조선의 궁궐 전각 중 유일하게 남은 청기와 건물이다.(117 페이지) 선정전 앞은 창덕궁의 동쪽 궐내각사가 있던 곳이다.(120 페이지) 선정전 동쪽의 희정당은 국왕이 평소 거주하던 곳이다. 순종이 타던 리무진 승용차가 건물에 쉽게 진입할 수 있도록 남행각에 현관(porch) 시설을 덧붇였다.

 

희정당 지붕 동쪽 합각 마루에는 강()이란 글자가, 서쪽 합각 마루에는 녕()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132 페이지) 희정(熙政)이란 화평하고 즐거운 정치를 의미한다. 희정당은 내전(內殿) 영역에 속하는 왕의 침전으로 지었으나 순조때부터는 편전으로 주로 사용했다.(137 페이지)

 

보경당(寶慶堂)은 성종 때에 수렴청정을 하던 정희왕후가 신료들을 개별적으로 만나 정사를 보던 곳이다. 장고(醬庫)는 음식물을 항아리에 담아 보관하던 곳이다.(: 젓갈 장) 대조전(大造殿)은 왕비의 시어소(時御所: 임시 거처)이자 침전 영역이다. 용마루가 없는 무량각(無樑閣) 지붕의 건물이다.

 

대조전에 딸린 휴식 공간으로 사용된 경훈각(景薰閣)이 있다. 경훈은 경치가 훈훈하다는 의미이다. ()은 향풀 훈자인데 종묘가 위치한 곳이 훈정동(薰井洞)이다. 희정당 동쪽의 성정각(誠正閣)은 창덕궁의 동궁이다. 성정이란 거경(居敬) 궁리(窮理) 성의(誠意) 정심(正心)에서 유래한 말이다. 영현문(迎賢門)이 유명하다. 현인을 맞이하는 문이란 의미이다.

 

관물헌에 걸려 있는 현판의 집희(緝熙)는 인격이 오래 빛나기를 바라다, 계승하여 넓히겠다는 뜻이다.(174 페이지) 관물은 사물을 관찰한다는 뜻이다.(: 모을 집) 성정각 담장 너머에 중희당(重熙堂)이 있었다. 세자의 교육을 담당하던 동궁 영역으로 여러 천문 기구들이 마당에 놓여 있었다.

 

중희당은 정조가 장자인 문효세자를 위해 지은 세자의 집이었으나 문효세자가 5세에 죽자 정조가 자신의 편전으로 사용하다 후에 효명세자(순조의 세자)가 대리청정을 한 곳이다.(179 페이지) 낙선재(樂善齋)는 헌종의 사랑채로 단청을 하지 않은 소박한 집이다. 석복헌 동쪽에 수강재(壽康齋)가 있다. 낙선재나 석복헌과 달리 단청을 한 집이었다.

 

대왕대비의 처소를 동조(東朝)라 한다. 궁궐의 동쪽에 위치했다. 수강재는 순원왕후의 육순을 맞아 대왕대비의 거처로 고쳐 지어졌다.(206 페이지) 창덕궁 후원을 현재와 같은 규모로 확장한 왕은 세조이다. 후원 영역에 많은 정자가 지어진 것은 인조 때이다.(234 페이지) 후원의 면적은 약 9만평으로 창덕궁 전체 면적 145천평의 60퍼센트에 이른다.

 

천원지방(天圓地方)에 근거해 지은 정자가 많다. 부용정도 그렇다. 하늘의 덕은 둥글고 원만한 데 있고 땅의 덕은 반듯한 데 있다는 의미이다. 주합루(宙合樓)의 주합은 천지를 의미하고 규장각(奎章閣)의 규장은 황제가 지은 문한(文翰)이나 어필을 의미한다. 규장각은 문장을 담당하는 하늘의 별인 규수가 빛나는 집이라는 의미이다.(254 페이지)

 

17763월 경희궁에서 즉위한 정조는 즉위 석 달 무렵 창덕궁 후원에 규장각을 짓도록 명하여 9월에 완공시켰다.(255, 256 페이지) 의두합(倚斗閤)은 효명세자(순조의 아들)가 닮고 싶었던 할아버지 정조를 지칭한다. 효명세자는 할아버지인 정조의 뜻을 이어 왕권을 강화하고 세도정치를 타파하고 이상 정치를 실현하려 했다.(285 페이지)

 

연경당(演慶堂)은 효명세자가 1828년 아버지 순조의 40세 생신에 존호를 올리며 의례를 행하기 위해 진연처로 창건했다.(293 페이지) 연경(演慶)은 경사가 널리 퍼진다는 의미이다.(: 펼 연) 북촌의 계동마님댁이 창덕궁 연경당을 본따 지은 건물이다. 연경당은 궁궐 안의 민가 형식의 집으로 단청을 올리지 않은 백골(白骨)집이다.(295 페이지)

 

연경당은 본디 사랑채의 당호였다. 사랑채는 대청을 중심으로 사랑방과 누마루로 나뉘어져 있다.(299 페이지) 창덕궁 존덕정은 모임 지붕의 건물이다. 용마루 없이 추녀마루로만 구성된 지붕이다. 존덕정 북쪽 창방에는 정조가 쓴 글이 걸려 있다. 만천명월주인옹자서(萬天明月主人翁自序)란 글이다. 만개의 개울이 달빛을 받아 빛나고 있지만 하늘의 달은 오직 하나라는 뜻이다.

 

정조 자신을 달에 비유하여 달빛이 만개의 개울을 고루고루 비추듯 만백성을 보살피겠다는 애민사상과 하늘의 달이 하나이듯 임금도 오로지 정조 하나 뿐이니 이에 대한 도전은 결코 용서할 수 없다는 강력한 왕권을 주장한 개혁 군주로서의 정치관을 읽을 수 있다.(321 페이지)

 

창덕궁은 그 어떤 임금보다 정조와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나의 뜻에 따르는 것이 태극과 음양오행에 합당한 일이며 우주의 원리를 거스르지 않는 일이라 말한 정도...품계석, 규장각, 주합루, 만천명월주인옹자서, 상조회(賞釣會) 등은 그의 그런 의지를 잘 보여준다.

 

폄우사(砭愚榭)는 효명세자의 독서처였다.(326 페이지) 폄우란 어리석음을 경계한다는 의미이다.(: 돌침 폄. : 정자 사) 관람정(觀纜亭)은 부채꼴 모양의 정자이다. 관람정의 현판은 파초잎 모양이다. 청의정(淸猗亭)은 궁궐 안의 유일한 초가 정자이다. 정조는 문장을 아름답게 꾸밀 줄 알면서 환을 쏠 줄 모르는 것은 문무를 갖춘 재목이 아니라고 꾸짖었다. 규장각 신하들에게 활을 쏘게 한 곳이 바로 춘당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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