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읽히지 않는 쉬운 책도 있고, 쉽게 포기하지 못하게 하는 어려운 책도 있다.
내게는 잘 읽히지 않는 쉬운 책 중 하나가 2015년 겨울(12월) 월동 준비라도 하듯 사 서가(書架)에 꽂아둔 뒤 이듬해 봄(5월) 박물관 나들이시 손에 들고 다닌 ‘꽃으로 세상을 보는 법’이었다.
이 책은 인문학자와 자연과학자가 하나의 주제를 각자의 설명 방식으로 풀어낸 책이다.
가령 자연과학자는 연리목은 몸의 공유를 택한 경우로, 혼인목은 공간의 공유를 택한 경우로 설명하고 인문학자는 배려의 최고봉은 뿌리도 둘이고 몸도 둘이지만 두 나무가 하나처럼 사는 혼인목이라 풀어낸다.
어떻든 나는 250여 페이지 정도에 시집만한 크기를 가진 ‘꽃으로 세상을 보는 법’을 다 읽지 못했었다.
그러다가 최근 나무에 대해 다시 생긴 관심으로 그 책을 펴보게 되었다. 분명 같은 책이지만 이전과 다른 분위기, 다른 뉘앙스를 가진 책으로 느껴지는 것이 신기하다.
이 뿐 아니라 나는 그 낯선 새로움에 편승해 시인들이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말한 나무 시들을 찾아 읽었다.
리기다 소나무의 제법 굵은 삭정이가 자신의 걸음 앞에 툭 떨어지는 것을 보고 나무가 썩어가는 제 팔 하나를 스스로 잘라내가면서 말을 건넨 것으로 표현하는 시(엄원태 시인의 ‘나무가 말을 건네다‘).
꽃피는 열기에 봄비가 휘어져 내리는 목련 부근을 이야기하는 시(고옥주 시인의 ‘다시 목련’).
엄원태 시인의 시는 오래도록 병을 앓고 있는 시인의 감정이 이입된 시로, 고옥주 시인의 시는 공간을 휘게 하는 중력장(重力場)을 연상하게 하는 시로 나는 읽었다.
이 두 생각에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 천문학자는 진정한 과학자들의 한 가지 공통점으로 호기심을 들었다.
그에 의하면 절대적 진리는 인간의 큰 관심사가 아니다. 그리고 진리는 인간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발명품이다.(데이비드 헬펀드 지음 ‘생각한다면 과학자처럼’ 36 페이지)
물론 헬펀드가 말한 진리 구성의 주체는 인간 개개인이 아니라 집단지성이다. 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 없이 집단지성은 있을 수 없다.
호기심과 진리 구성(構成), 이것이 가장 중요한 기본이리라. 당연히 나무를 보는 데에도 적용될 덕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