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윤선(允善)님이 올린 실상사(實相寺) 사진을 보고 정끝별 시인의 ‘여운(旅雲)’이란 산문집을 찾아보았다.

5월을 맞이하는 실상사, 지리산 뱀사골 아래의 그 절 연못에 수련(睡蓮)이 떠 있는 사진을 보고 경복궁 향원정, 종묘(宗廟)의 하지(下池), 중지(中池), 상지(上池) 등의 연못 생각을 했다.

여담이지만 내 사는 연천을 漣川이 아닌 蓮川이라 쓴 현판을 단 한 문화 단체를 보고 연꽃을 사랑하는 마음이 간절해 그런 것이겠거니 생각했다. 맞거나 말거나..

‘여운’에는 우포 이야기도 있다. 실상사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그곳에 들렀다. 마음으로만. 실상사는 지리산 뱀사골 아래에 있는 절이다. 고정희 시인이 이곳 뱀사골 계곡에서 실족사했다.
‘2003년에 나온 ‘여운’이란 책은 여행지와 관련된 시를 소개하는 책이어서 시도 익히고 여행지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게 한다.

손남숙 시인의 시집(‘우포늪’)과 산문집(‘우포늪, 걸어서’)이 반영되기에는 너무 앞서 나온 책이다.

‘우포늪’이란 시집에 실린 시 제목들만 보아도 우포늪의 정경이 그려지는 듯 하다. ‘늪의 수레바퀴’, ‘꽃과 새들이 열람하는 우포늪’, ‘달에 가는 달뿌리풀’, ‘새들의 배경은 물결’....

여름 우포늪의 백미(白眉)라는 가시연꽃을 보려면 내년을 기약할 수 밖에 없겠다. 아니 내 사정이 되어야 여행도 할 수 있겠다.

그제는 숲해설사 공부를 하는, 나의 문화해설사 동기가 레이첼 카슨의 ‘잃어버린 숲’을 숲해설사들의 바이블 같은 책이라 이야기하기에 숲 공부를 하지 않지만 참고로 삼기로 했다.

그리고 오늘은 트리스탄 굴리(작가이자 내비게이터, 탐험가)의 ‘산책자를 위한 자연수업’이란 책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의 부제는 ‘우리 주변에 널린 자연의 신호와 단서들을 알아보는 법’이다.

말하기, 듣기, 보기 등 세 가지 핸디캡을 가졌던 헬렌 켈러가, 못 보는 것은 자신을 사물과 멀어지게 했고 듣지 못하는 것은 자신을 사람과 멀어지게 했다며 듣지 못하는 것이 더 힘들다는 말을 한 기억이 난다.

자연의 신호와 단서들이란 말 때문에 생각해낸 사실이다. 자연(自然)을 생각으로만 향유(享有)하는 버릇은 깨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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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워진다는 것‘에 실린 나희덕 시인의 ‘흔적’이란 시는 시인 자신이 무엇으로부터 찢겨진 몸일까란 궁금증을 풀고자 여기 저기에 자신의 몸을 대보는 상황을 노래한 시이다.

시인은 유난히 엷고 어룽진 쪽을 여기 저기에 대본다. 시인은 열무잎, 흰누에나방의 날개, 헝겊조각, 어린 나뭇가지, 검은 해초 뿌리, 조개의 둥근 무늬, 딸아이의 머리띠 등에 몸을 대본다.

이 상황이 특별한 것은 어딘가에서 가져온 것을 자신의 몸에 대보는 것이 아니라 몸을 무엇인가에 대보기 때문이다.

해설 시나리오를 쓰고 나서 ‘흔적‘이란 시를 떠올려본다. 글을 쓰는 과정은 결국 어딘가에서 가져온 글감들을 내 글의 전개에 끼워 맞춰 보는 일이 아닐지?(물론 머릿 속에서)

덕수궁을 제외한 경복, 창덕, 창경궁 시나리오를 대충 완성했다며 동기 신** 선생님이 이것 저것 보고 마구 써서 다시 차근 차근 고쳐야 할 것 같다는 말을 한 것은 지난 8월 초였다.

그는 지난 8월 2일 내 해설 컨셉이 새로와 좋았다고 평하며 자신도 완전 새로운 컨셉으로 경복궁 외전(外殿)을 준비했다가 부족하다는 생각에 자신이 없어 그냥 일반 버전으로 해설했다며 아쉬움을 표했었다.

‘브레너(Brenner)의 빗자루’(Sidney Brenner’s Broom)란 개념이 있다. 자신이 탁월한 아이디어나 명쾌한 통찰을 지녔다고 믿는 사람은 과감히 발표한 뒤 해결되지 않은 것이나 이해되지 않은 것은 빗자루를 이용해 양탄자 아래로 쓸어버리듯 아이디어를 버리면 되는 상황을 의미하는 개념이다.

이에 비해 오컴의 면도날(Ockham‘s razor)이란 개념도 있다. 어떤 현상을 설명할 때 불필요한 가정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면도날은 불필요한 것을 잘라내는 도구를 의미한다. 오컴의 면도날은 처음부터 불필요하거나 부적당한 것들을 아예 잘라버리는 것이고, 브레너의 빗자루는 먼저 쓰고(포함시키고) 나중에 해결되지 않은 부분이나 이해되지 않은 부분을 잘라내는 것이다.

절제와 균형의 미를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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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恩惠)를 뜻하는 일본어 메구미(めぐみ)를 닉네임으로 설정한, 이름에 은혜 은(恩)자가 있는 한 동기를 보며 나도 빼어난 나무를 뜻하는 수수(秀樹)의 일본어인 히데키(ひでき)를 닉네임으로 하려다가 그냥 수수(秀樹)라 하기로 했다.

나무가 상징하는 것이 마음에 드는데 더구나 빼어난 나무이니 더 없이 의미 있는 말이다. 히데키는 ‘한글의 탄생‘을 쓴 일본인 학자 노마 히데키이다.(のま ひでき이고 한문으로는 野間秀樹이다.)

캘리그라피를 하는 페친이 있고 타이포그래피를 하는 페친이 있는데 노마 히데키 교수는 1977년 현대일본 미술전 가작상을 수상하는 등 미술가로 활동하다가 한국어와 한글에 매력을 느껴 독학으로 한글 공부를 시작했고 대학에 들어가 한국어학을 전공했다. 글과 그림의 밀접한 연관을 알게 하는 사례이다.

캘리그라피는 아름다운 서체를 표현하는 예술이고 타이포그라피는 문자 조형을 형상화하고 배열하는 예술이다.(지나친 단순화일까?)

히데키가 한글에 대해 한 말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것은 한글이란 문자는 음의 세계에 있는 자음과 모음을 조합하는 것이 아니라 자음과 모음을 나타내는 자모를 문자의 세계에서 조합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히데키는 에크리튀르(ecriture)란 말을 사용하는데 이는 쓰는 것, 쓰여지는 것, 문자, 필적, 문체 등을 의미한다.

히데키는 세종(世宗)의 훈민정음 창제를 정음(正音) 에크리튀르 혁명이라 부른다. 한글 창제는 정음 혁명파와 한자 한문 원리주의의 투쟁을 빼놓고 생각할 수 없다.

안타까운 것은 한글이 반포된 지 300년 정도가 지난 시점의 조선의 지식인들/ 실학자들인 박제가, 박지원, 정약용 등조차 한글 사용을 거부했다는 점이다.

조선의 사대부들은 훈민정음의 놀라운 기능을 인정하면서도 학문이나 공적인 용도로의 사용은 거부하는 이중성을 보였다.

정조 역시 비슷하다. 몇 통의 한글 편지를 남기기도 했지만 그의 관심은 문체반정을 통한 한문 문체 개혁에 있었지 한글의 보급에 있지는 않았다. 한글이 널리 보급되게 한 일등 공신은 소설이다.

정조는 이런 말을 했다. “근래 문체(文體)가 날로 더욱 난잡해지고 또 소설을 탐독하는 폐단이 있으니 이 점이 바로 서학(천주교)에 빠져드는 원인이다.”,

“내가 소설(小說)에 대해서는 한 번도 펴본 일이 없으며, 내각에 소장했던 잡서도 이미 모두 없앴으니, 여기에서 나의 고심을 알 수 있을 것이다.˝(’정조실록‘ 참고)

김만중이 정조 시대에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조선 시대의 한글 소설 가운데 최고의 구성력을 자랑하는 ‘구운몽(九雲夢)‘ 같은 작품이 나올 수 있었을까?(‘구운몽‘은 숙종 시대의 작품이다.)

정조가 소설을 한번도 펴본 일이 없다고 하니 ‘구운몽‘도 펴보지 않았겠지만 만일 보았다면 어떤 평가를 했을지 궁금하다. 정조의 심정이 되어 재독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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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 40번 교향곡 1악장을 기타와 첼로로 퍼포먼스하듯 연주하는 것을 보고 파격이라는 댓글을 달려다 자판을 잘못 눌러 파계라 치고는 얼른 고쳤다.

 

''를 친 후 '' ''을 쳐야 하는데 , 자판 위에 있는자판을 침범하기 쉽다. 이러면 파격이 아닌 파계가 된다. 파격과 파계는 얼마나 멀까? 아니 얼마나 가까울까?

 

어제 도착한 김리영 시인의 시집 춤으로 쓴 편지의 자서(自序)에 이런 구절이 있다.

 

블루베리 마카롱과 라스베리 마카롱은 서로 비교하지 않는다 하나는 새콤한 맛 다른 하나는 달달한 맛 각자 부서지거나 녹으면서 그들의 생애를 산다..

 

파격은 파격이고 파계는 파계겠지? 김용범 시인의 별의 늪이란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죽은 별들의 광량을 모아 휘황한 별들로 다시 태어나는/ 아 침묵이 거름이 되는/ 아 죽은 별들의 광휘가 새로운 별들의 에너지가 되는 수억 광년 너머의 별의 늪”..

 

죽는 별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초신성(超新星)이라 부른다. 다른 별들이 태어날 수 있는 뿌리가 되는 죽음이기에 초신성이라 부르는 걸까   

김중식 시인의 이탈한 자가 문득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태양보다 냉철한 뭇별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이다..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

 

포기한 자는 정말 자유로울까?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물기가 저절로 없어지는 것을 뜻하는 자진(自盡)과 같은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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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새쯤 전 국회방송의 경복궁 해설 프로그램을 보았다. 궁궐의 전각들이나 소품들 중 잡상을 이야기하는 부분이 관심을 끌었다. 잡상이 500년간 경복궁을 지켜냈다는 말 때문이다.

잡상은 궁궐이나 누각 등의 지붕 위 네 귀에 덧얹은 짐승 모양의 상으로 어처구니라 불리기도 한다. 어처구니가 없다는 말에 나오는 그 어처구니이다.
그런데 경복궁이 임진왜란으로 불에 타 폐허가 되어 방치된 280년의 시간에도 잡상은 사악한 기운으로부터 경복궁을 지켰는가?

만일 궁궐이 타 없어진 기간까지 잡상이 궁궐을 지킨 것으로 계산한다면 조선이 망한 이후 현재까지 잡상이 경복궁을 지켜오고 있는 것이라고는 왜 계산하지 않는가?

임진왜란이라는 국가 비상사태에도 불구하고 조선은 망하지 않았지만 경복궁은 폐허가 되었고 흥선 대원군에 의해 경복궁이 중건된 이후 조선은 망했지만 경복궁은 일제에 의해 훼손되었을망정 임진왜란시처럼 폐허가 되지 않고 남아 있었다.

잡상이 500년 동안 경복궁을 지켰다고 말한 사람은 건물이 아닌 나라를 기준으로 연수를 계산한 것인가?

건물은 없어졌어도 주권이 있다면 건물은 있는 것으로 간주되는가?

마찬가지 논리로 건물이 있어도 주권이 사라졌다면 건물은 없는 것으로 간주되는가?(건물은 가시적이고 주권은 추상적이다.)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건물이라는 가시적인 사물과 주권이라는 추상 명사의 관계를 고려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경복궁이 창건된 1395년부터 국권을 잃은 해인 1910년까지를 계산해 500년(실제는 515년)이라 말한 것이리라.

생각이 여물지 않은 글이어서 망설이다가 게시하는 것은 나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지는 않지만 4대 문예지의 평론 부문에서 몇 해째 당선작이 없는 이유로 뻔한 해석, 이론 의존, 비판 부재 등이 제시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알라딘 서재에서 한 이웃이 나를 늘 생각거리를 남겨주는 사람으로 정의한 것도 작용했다. 상투적인 것을 싫어하는 마음으로 비판정신을 가동시키면 새로운 자신만의 관점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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