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趣味)와, 재미의 어원인 자미(滋味)에 관심이 생긴 탓이겠지만 충남 서산의 해미 생각이 불현듯 난다.

취미란 원래 미각과 관련있는 말이었고 칸트는 취미를 미(美)를 판단하는 능력으로 보았다.

재미의 어원인 자미라는 단어에 맛을 의미하는 글자가 있는데 이 역시 몸에 무언가 도움이 되어야 재미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음을 뜻한다.

해미를 이야기하는 것은 다산(茶山) 선생 때문인데 아쉽게도 해미는 海美이다.

다산이 관계 맺었던 곳들은 참 많다. 태어나 자란 곳, 관리로서 근무했던 곳, 유배지, 학문과 관련된 곳, 운길산 수종사처럼 자주 찾았던 곳, 23세 때 둘째 형 약전, 이벽 등과 배를 타고 가며 서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두미협(협곡) 등.

다산은 현재는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인 광주군 초부면 마현리에서 태어났다. 한자로는 마현이라 부르지만 흔히 마재라 부른다.

해미는 예문관을 지내던 다산이 29세 때 사직소를 제출하고 왕의 부름에 응하지 않아 열흘간 유배당한 곳이다.

20년 가까운 세월 유배당했던 강진과 너무 다르다. 물론 그 시간도 다산 선생에게는 힘든 시간이었을 수 있다.

다산 선생이 그 해미에 대해 어떤 말을 했는지 찾아보아야겠다.

짧은 체류가 무미(無味)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리라 생각한다. 아니 쓴잔으로 자신의 그 시간들을 표현했을 가능성이 높겠다.

프랑스의 시인, 철학자, 과학자였던 바슐라르는 '공간의 시학'에서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오랜 세월 기나긴 여정을 마치고 옛 집으로 돌아오면 가장 여린 몸짓, 가장 어린 시절의 몸짓이 여전히 온전하게 문득 되살아나는 것을 보고 몹시 놀란다는..

다산은 오랜 세월 강진 유배 생활을 마치고 고향에 돌아와 어떤 감회에 빠졌었을까?

단순히 옛 감회라고 할 수 없는 복잡미묘한 정치적 감흥이 그를 휩쌌을 것이다. 한 면모만이 아닌 종합적인 면을 보는 눈을 갖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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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시험을 앞두고 있다. 바쁘고 아파 일주일 전부터 겨우 준비했고 그나마 전력을 다하기 시작한 것은 이틀 전부터이다.

감기까지 나를 힘들게 하는 상황이고. 시간이 없어 교재 대신 기출 문제를 푸는 것으로 공부를 대신 하고 오늘 새벽 세시 잠이 들었다.

아침 일곱시 무렵 허기 때문에 깼는데 머리가 아프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심하게 아팠을 머리인데 스트레스가 나로 하여금 괴로움을 느끼지 못하도록 유예시켜 주는 것 같다.

문제를 보며 저자들께서 참 출제를 위한 출제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비슷한 문제가 되풀이되는 것도 보인다.

이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 출제자 자신을 위한 것일까, 시험을 치르는 사람들을 위한 것일까? 둘 다일 것이다.

객관식 시험의 문제를 장점(편의성)과 함께 생각해보게 된다. 나는 우리(?)도 프랑스나 독일의 고교생들처럼 서술형 문제로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보이는 시험제도를 실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운전 면허나 자격증 시험도 아닌데 체계화된 생각을 말하는 것으로 성취도를 평가하지 않다니 의아하다.

바쁘고 경황 없는데 이렇게 페북을 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 생각한다. 여유를 차리는 것이기도 하고 주변을 정리하듯 마음을 가다듬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부의 비결이랄 것은 없고 틈나는대로 쪽잠을 자며 암기하는 것이 내 노하우라면 노하우이다.

잠을 자야 잘 외워진다. 잘 자는 것도 페스티나 렌테(festina lente; 천천히 서두는 것)의 하나이다.

잘 먹어야 하는 것도 사실이라고 내게 응원의 말을 건넨다.

아침 식사부터 하는 것으로 약 25시간 정도 남은 비상 상황을 헤쳐나가기로 했다. 잘 먹어야 한다(il faut bien ma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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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릉(東九陵)은 동팔릉이었던 시절, 동칠릉이었던 시절, 동오릉이었던 시절, 동삼릉이었던 시절을 거쳤다.

최종 이름인 동구릉은 서울 동쪽에 자리한 아홉 왕릉의 군집지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런데 동구릉(東龜陵)이 있다. 개성에 소재한 릉으로 왕릉으로 추정하는 곳이다. 거북 받침으로 된 비석이 있기에 구릉(龜陵)이라 불린다.

서구릉(西龜陵)도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동구릉을 한문으로 변형하려면 東九陵이라고만 뜨는 반면 서구릉은 西龜陵이라 뜬다는 점이다.

동구릉은 고려의 왕릉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이고 관련 문헌들도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서구릉은 주인을 알 수 없지만 고려 왕릉임이 분명한 무덤이기 때문이다. 물론 동구릉도 서구릉도 보존급 유적이다.(장경희 교수 지음 ‘고려왕릉’ 참고)

‘고려왕릉’을 구입한 것은 동구릉의 한철수 선생께서 적극 추천했기 때문이다.

‘고려왕릉’을 보고 왕릉 공부의 길이 훤하게 보여 전율감마저 일었다는 그 분의 표현이 과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스피노자의 초상화를 보는 순간 자신의 과거는 물론 내생까지도 훤하게 꿰뚫게 되었노라는 철학자 김영민 교수의 말이 생각난다.

2018년 우리 왕릉 연구팀은 여주 영릉(英陵: 세종과 소헌왕후의 능), 영릉(寧陵: 효종과 인선왕후의 능), 파주 장릉(張陵: 인조와 인열왕후의 능), 김포 장릉(章陵: 원종과 인헌왕후의 능), 영월 장릉(莊陵: 단종의 능) 등 서울 밖의 능들을 돌아보게 된다.

설렌다. 팀장님을 비롯 전 팀원들 덕이다. 새 팀원 세 분이 합류하게 되니 더욱 그렇다. 멋진 2018년을 그리게 된다. 무엇보다 12월을 열심히 보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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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가 '미술 이야기(The Story of Art)'인 에른스트 곰브리치의 '서양 미술사'. 직역해 '미술 이야기'라 하지 않고 서양 미술사라 한 것은 왜일까? 곰브리치의 전공이 미술사학과 고건축이라는 데에 눈이 간다.

 

그가 만일 우리나라에서 문화유산 해설을 한다면 어떤 결과가 빚어질까? 종묘 정전을 세계에서 가장 장엄한 건축물이라 평한 건축가 프랭크 게리처럼 그도 어떤 멋진 말을 남겼을 것이다. 물론 그런 말보다 더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곰브리치가 세운 원칙이다.

 

곰브리치는 '서양미술사'에서 도판으로 수록하지 않은 그림은 가능한 한 언급하지 않으려는 원칙을 세웠다. 곰브리치는 '서양미술사'를 예술가들을 장황하게 나열하지 않은 친절한 책으로 만들었다.

 

이 두 미덕은 문화해설을 하는 데 특히 참고해야 할 점들이다. 문화해설은 궁궐이든 박물관이든 왕릉이든 현장의 전각 또는 전시물을 설명하는 것이 주가 되어야 한다. 장황해서도 안 되는 것이고.

 

시간을 내어 그의 '서양 미술사'를 다시 읽고 싶다. "부분은 단순하지만 전체는 빈틈없는 성채(城砦)"인 곰브리치의 역작을 다시 한 번 읽어야겠다. 문화 해설을 하기 이전에 읽었던 책이 입문 후인 지금 어떤 의미로, 어떤 참고점을 주는 책으로 읽힐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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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따라갔다가 다시 되돌아오는 산책이 끝나면 문장에서는 종종 쓸모없는 단어들이 제거되었다. 산책에서 돌아오는 길에 생각났던 문장과 이전에 써놓았던 문장을 비교해보면 나는 이따금 만족스러운 생략과 압축 같은, 일종의 청소가 이루어지는 것을 깨닫게 된다."(레진 드탕벨이 인용한 소설가 쥘리앙 그라크의 말. '우리의 고통을 이해하는 책들' 100 페이지)

 

<고리키도 체호프와 톨스토이에게서 문장이 거칠다는 비평을 받고 나서는 다듬어 쓰기를 누구보다도 열심히 하였다. 그래서 그의 친구가 "그렇게 자꾸 고치고 줄이다가는 작품이 어떤 사람이 태어났다, 사랑했다, 혼인했다, 죽었다의 4마디만 남지 않겠나?"라고 말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만큼 고리끼의 다듬어 쓰기는 끝이 없을 정도였다... 동서양의 문호라 일컫는 사람들이 명문 명작품을 낳을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다듬어 쓰기라는 갈고 닦는 작업이 밑받침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서정수 지음 '문장력 향상의 길잡이' 470 페이지)

 

<..내가 건네준 원고를 대충 훑어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고는 매우 흥미로운 듯하나 너무 길게 썼으니 한 반쯤으로 원고를 줄일 수 없겠느냐고 물으면서 왜 그렇게 길게 썼느냐고 나무라듯이 말했다. "짧게 쓸 시간이 충분하지 못해서요." 하고 내가 빈정대듯이 대답했다. ", 파스칼이 한 말이군요!" 하고 노인이 그제서야 자리에서 일어서며 자기 소개를 했다. 그가 다름아닌 그 유명한 조제 코르티씨(출판인)였다.>(김화영 지음 '바람을 담는 집' 185 페이지)

 

산책도 하고 긴 우회로를 거쳐 짧게 쓰는 시간을 갖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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