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홍성의 대안(代案) 학교인 풀무학교(1958년 설립)가 남강(南岡) 이승훈(李昇薰; 1864 - 1930) 선생님이 세운 평북 정주(定州)의 오산학교를 모델로 한 학교라는 글을 읽다가 연천의 정주 동산 생각을 했다.

전화를 해 정주 동산의 정주가 오산학교가 있던 평북 정주의 그 정주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카톨릭 세례를 받은 분, 다산(茶山; 1762 -1836) 선생의 매형은 이승훈(李承薰; 1756 - 1801)이란 분이다.

오산학교를 모델로 삼아 세운 풀무학교는 대안학교인 반면 연천의 정주동산은 공원 묘지이다.

풀무학교의 공동 설립자 중 한 분인 이찬갑 선생은 오산학교가 1920년대부터 총독부의 시책을 점차 수용하자 비판의 소리를 냈다.

풀무학교의 정신은 무교회주의(無敎會主義)이다.(풀무는 불을 피울 때 바람을 일으키는 기구이다.)

지난 14일 함석헌 기념관에 들러 함석헌(咸錫憲; 1901 - 1989) 선생님이 우찌무라 간조[內村鑑三; 1861 - 1930]의 무교회주의의 영향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산(茶山)의 서학(西學), 함석헌 선생님의 무교회주의.. 그분들의 생에 있어서 어떤 사상적 비중을 차지했으며 의미는 어땠는지, 지속(持續) 정도는 어땠는지 등이 궁금하다.

간조(かんぞう)의 한자어인 鑑三과 신영복 선생님의 서삼독(書三讀)도 함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싶다.(세 가지를 비춘다는 감삼과 세 가지를 읽는다는 삼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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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영감을 주는 페친께서 오늘 이런 글을 올렸다.
1) “완벽한 사람도 없고 완벽한 부모는 더군다나 없다.”..

이를 보며 나는 “어떤 사람에게 밥인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독이 될 수도 있다. 이런 마당에 다른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바를 남김 없이 확실히 안다고 자부하는 일이야말로 철딱서니 없는 노릇“이라는 불교학자 에드워드 콘즈의 말(‘한글세대를 위한 불교’ 100 페이지)을 인용한다.

2) “나의 작은 소견으로는 배가 고프면 먹고 배가 부르면 수저를 놓는 것,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해가 지면 요기만 하거나 먹지 않아야 한다.”...

이를 보며 나는 ‘때가 되면 자고 때가 되는 먹는 것이 수행이다. 때 아닌 때 먹거나 자면 안 되는 것이다. 수행이란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말’을 하게 된다.

요기(療飢)란 시장기를 겨우 면할 정도로 조금 먹는 것을 말한다. 요(療)는 치료할 요, 기(飢)는 주릴 기이다. 위를 비워 치료를 기약한다는 의미가 요기란 말에 담겨 있는 듯 하다.

세계적 명상 스승 아잔 브라흐마는 자신이 아는 한 스님 이야기를 들려준다. 태국 불교계에서 가장 높은 지위인 종정(宗正)이 되려는 찰나에 그 자리를 탐낸 다른 승려가 공산주의자라고 고발함에 따라 감옥에 갇힌 승려이다.

이 승려는 작은 독방에서 소박하고 정결한 음식을 먹으며 많은 자유를 누렸다. 이 분의 비결은 어디에서든 기꺼운 마음으로 자신의 처지를 인정, 수긍하는 것이었다.(‘성난 물소 놓아주기’ 166 페이지)

케임브리지 대학 물리학도 출신의 승려 아잔 브라흐마는 명상의 힘 덕분에 건강 문제가 사라진 경험을 한 한 승려 이야기를 한다.

이 분은 암으로 고생하다가 명상 덕에 퇴원 후 25년을 더 살다가 입적했다. 이 승려의 사례를 거론하며 아잔 브라흐마는 “명상하는 사람인 내게는 우리가 우리 자신의 세계를 지어낸다는 것이 더없이 자명한 사실로 보인다.”는 결론을 내린다.(32 페이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일까? 확언하기 어렵다. 내 관심을 끄는 것은 “당신이 사물과 현상에 관여하지 않으면 그런 것들은 당신의 의식에서 말끔히 사라져 버린다,”는 말이다.(Let it go)

의식은 지어내는 만큼 사라지게도 한다는 의미일까?(물론 일체유심조든 우리가 우리 자신의 세계를 지어낸다는 말이든 나로서는 판단을 유보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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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시여, 침을 뱉어라‘(2017년 12월 30일 16시 - 17시. 김수영 문학관. 02 - 2091 - 5673. 무료) 관람을 신청했다.

이 연극이 내게 ˝송년˝의 잔치가 되기를 기대한다.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이상 ‘눈‘에서)는 김수영 시인의 시, 더 구체적으로는 ‘시여, 침을 뱉어라‘란 산문에서 유래한 ‘시여, 침을 뱉어라‘를 제목으로 설정한 이 연극을 보면 김수영 시인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내용을 예상 해볼 생각으로 ‘눈‘을 읽어보았지만 특별하게 얻은 것은 없다. 다만 ˝시는 그 속에 시인이 모종의 심오한 뜻을 새겨놓고 그 해석의 열쇠를 어딘가에 감춰놓은 상형문자가 아니˝(‘시의 아포리아를 넘어서‘ 287 페이지)라는 글을 읽게 된 것이 소득이다.

시인이 ˝눈은 살아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있다˝는 말을 작품의 첫 줄에서 말하고 있음에도 그간 눈을 순수한 것으로 읽어온 것이 일반적인 독법이었으리란 생각이 든다.

순수보다 살아있음에 초점을 두고 읽어야 하는데 말이다. 자료를 찾다가 민음사에서 나온 김수영 시선 ‘거대한 뿌리‘의 첫번째 수록 시가 ‘공자의 생활난‘이란 사실을 알았다.

이 시를 이야기하는 것은 철학자 김상환 교수가 작년 6월 ‘공자의 생활난‘이란 인문서를 출간했기 때문이다. 이 책의 부제는 ‘김수영과 논어‘이다.

검색해보니 이 작품이 ‘2014 연극 창작환경 개선 지원 사업 민간 소극장 활용 창작스튜디오 선정작‘이다.(당시에는 전석 2만원이었고 예술가 1만원, 김수영 시인 관련 서적을 가져오거나 인증샷을 보여줄 경우 1만원을 할인해주었다. 혜화동 소재 스튜디오 76 공연장)

남은 2주 동안 김수영 시인의 시와 산문들, 시인론 등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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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자꾸 사야 할 책들이 생긴다. 신간이 아닌 구간을 그것도 책 내용이 아닌 저자의 행동 때문에 사게 되다니.

다름 아닌 일본의 카톨릭 작가 엔도 슈사쿠(遠藤周作; 1923 - 1996) 이야기이다.

읽지 않고도 그의 이름, 그의 작품 이름이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은 김은국(金恩國) 작가의 ‘순교자‘를 읽고 관련 자료로 함께 읽으려 했었지만 실패해 이름만을 기억하자고 생각한 덕이다.

‘순교자‘를 읽은 것은 1989년 시골교회 청년회 시절이다. 담당 전도사께서 추천하신 책이었다. 문제의식을 일깨우는 인상적이고 충격적인 소설이었다.

엔도 슈사쿠의 작품을 읽으려 하는 것은 그가 윤동주 시인 등을 상대로 생체실험을 한 일제의 만행을 폭로했기 때문이다.

물론 ‘바다와 독약‘이 윤동주 시인 등에 대한 일제의 생체실험을 직접적으로 폭로하지는 않았다.

‘바다와 독약‘은 2차 세계대전 말기 일제가 미군 포로에게 행한 생체해부 사건을 다룬 소설이다. 일제의 생체 실험 폭로의 서막이 된 것이다.

김승철에 의하면 ‘바다와 독약‘은 액체성의 제목이 붙은 소설이다. 액체성은 서구 기독교와 일본의 정신적 풍토를 날카롭게 대립시켰던 엔도 슈사쿠가 물이라는 상징을 매개로 두 대립항을 어우러지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벚꽃과 그리스도‘ 37 페이지)

엔도 슈사쿠의 대표작은 ‘침묵‘, ‘깊은 강‘ 등이다. 김승철이 인상적으로 해석한 엔도 슈사쿠의 액체성은 가스통 바슐라르의 4원소의 상상력을 떠올리게 하고 더 나아가 주역(周易)까지 생각하도록 만든다.

개그 같지만 엔도 슈사쿠의 ‘바다와 독약‘, ‘침묵‘은 베르코르의 ‘바다의 침묵‘으로 관심을 돌리게 한다. 물론 개그라 하기에 ‘바다의 침묵‘은 엔도 슈사쿠의 정신 세계와 통하는 바가 있다.

‘바다의 침묵‘을 쓰기 전 소설을 쓴 적이 없었던 화가 베르코르가 소설로 그린 세계는 거대 담론보다 지극히 인간적이고 순수한 개인들의 세계이다.

아, 이 순수(fine)한 무목적의 논의라니! 순수하다는 것은 그 자체가 목적 즉 끝(피날레; finale)이라는 의미이다.(모티머 애들러, 찰스 반 도렌 지음 ‘생각을 넓혀주는 독서법‘ 233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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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읽는 하늘과 바람과 별 - 책으로 만나는 윤동주 100년 생애 전시회
윤동주 100년 포럼 지음 / starlogo(스타로고)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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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윤동주(尹東柱) 시인 탄생 100년의 해가 다 저물어 간다. 여러 기념 행사가 열렸고 최근 윤동주.윤일주(尹一柱: 1927 1985) 형제 동시집 민들레 피리도 출간되었다. 이 책은 윤동주 형제들에 대한 관심을 끈다. 31녀인 윤동주 형제 가운데 셋째인 윤일주 시인은 건축학과 교수를 지낸 시인이다. 넷째 윤광주도 시인이었다.

 

윤동주 100년 포럼이 엮은 사진으로 읽는 하늘과 바람과 별을 통해 윤동주 시인에 대한 다양한 정보들을 얻는 것은 어떨까? 제목에서 알 수 있듯 210여 페이지의 이 책은 사진과 글 자료가 비슷한 분량과 비중으로 담겼다. 전체 7(1부 가족, 2부 소년기, 3부 청춘, 4부 유학, 5부 옥(), 6부 죽음, 7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긴밀하게 엮였다.

 

윤동주 시인의 대표 시들은 어떤 것들일까? ‘별헤는 밤’, ‘자화상’, ‘십자가’, ‘참회록’, ‘편지등이 포함될 것이다.(나는 쉽게 씌어진 시를 가장 좋아한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를 들으러 간다”,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같은 구절 때문이다.)

 

19171230일 북간도 명동(明東)에서 태어나 해방을 6개월여 앞둔 1945216일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獄死)한 윤동주 시인은 대표적인 민족 저항시인으로 알려져 있다.(명동明東은 동쪽의 조선을 밝힌다는 의미이다.)

 

지난 98일 종로구 청운동 소재 청운문학도서관에서 열린 윤동주 탄생 100주년 특별 강연에서 구효서 소설가는 윤동주 시인의 시들을 자신의 내면과 투쟁하는 뛰어난 세계관을 갖춘 시로 평하며 그의 뛰어난 시들을 세계문학으로 넣고 싶다면 민족 저항 시인이라는 특수한 프레임 안에 가둬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은 평생 윤동주 시인에 빠져 윤동주 시인을 연구한 일본의 시인이자 윤동주 시인의 릿쿄 대학 후배로 윤동주 선배가 자신과 같은 의자에 앉아 공부했다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고 말한 야나기하라 야스코(楊元泰子)의 주장과 맥이 닿는다. 그는 윤동주 시인은 저항을 넘어 보편 가치를 추구한 지성(知性)이라 말했다.

 

윤동주 시인은 의대 진학을 바란 아버지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윤동주 시인의 6촌인 가수 윤형주도 부친이 의대 진학을 원했다. 윤형주는 연대 의대에 입학했으나 중퇴했다. 윤동주 시인은 연세대의 전신인 연희전문 문과(文科)에 입학했다. 윤동주 시인은 연희전문을 마치고 일본 유학길에 올라 릿쿄대 영문과에 입학했다.)

 

윤동주 시인에게는 많은 인연이 있었다. 절친으로 50대 후반에 늦봄이라는 아호를 짓고 시인으로 데뷔한 문익환 목사, 윤동주 시인의 연희전문 2년 후배로 윤동주 시인에게서 받은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필사본이 책으로 출간되게 한 정병욱(1922 1982) 전 서울대 국문과 교수, 고향 용정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기도 했던 분으로 1948년 월남할 때 윤동주 시인의 육필 원고와 사진 등을 가지고 내려온 윤혜원(1923 2011), 윤동주 시인과 같은 해 같은 집에서 태어난, 윤동주 시인의 고종사촌으로 독립운동 혐의로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사망한 송몽규, 1948년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출간되도록 한 분으로 윤동주, 송몽규 등과 연희전문 입학 동기이자 경향신문 기자였던 강처중 등..

 

이 밖에 직접 인연이 닿지는 않았지만 윤일주 교수의 요청을 받고 용정 동산에 있는 교회 공동묘지에 묻혀 있는 윤동주 시인을 찾아낸 일본인인 오무라 마스오 교수, '바다와 독약'이란 책을 발표해 일본이 윤동주 시인 등에게 행한 생체실험을 폭로한 문인이자 일본의 양심으로 불린 엔도 슈사쿠, 앞서 언급한 야나기하라 야스코(楊元泰子やなぎはら やすこ: 윤동주 연구자, 릿쿄(立敎)대학 시인 윤동주 기념회 회원, 시인 윤동주의 고향을 찾는 모임 회원. 1946 - ) 등도 빼놓을 수 없다.

 

윤동주 시인(1917 1945)과 그가 타계한 해에 태어나 윤동주 연구가가 된 야나기하라 야스코(1946 -)의 관계는 성호 이익(1681 1763)과 그가 타계하기 1년 전에 태어나 그를 사숙했던 다산 정약용(1762 1836)의 관계를 연상하게 한다.

 

릿교대학을 다니던 윤동주 시인은 자신의 시적 스승인 정지용(1902 1950) 시인이 다닌 도시샤(同志社)대학으로 적()을 옮겼다. 시인은 194242일 릿쿄 대학에 입학했으나 단발과 군사 훈련 등을 강요한 일본 군국주의 체제가 싫어 한 학기만에 도시샤 대학으로 편입했다.

 

윤동주 시인은 이곳에서 독립운동가인 사촌 송몽규와 자주 만나 민족의 진로에 대해 논의한 것 때문에 독립운동죄로 기소되어 2년형을 선고받고 옥중에서 정체불명의 생체 실험용 주사를 맞다가 비참한 죽음을 맞았다.

 

고문을 당한 윤동주 시인은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유달리 허약했고 뼈만 남았을 만큼 말랐다. 한 시인은 윤동주 시인의 시를 읽으면 그 사람을 가졌는가’(함석헌 선생님의 글)를 연상한다고 말한다.(경상일보 2017528. 엄계옥 시인) 인연의 소중함을 생각하게 하는 글이다. 윤동주 시인의 부친 윤영석(1895 1965)과 모친 김용(1891 1948)을 생각하게 된다.

 

청운동의 윤동주문학관을 다시 가보아야겠다. 연희전문 입학 2년 만에 기숙사를 나와 지금은 서촌이라 불리는 종로구 누상동에서 정병욱과 하숙을 시작한 윤동주 시인은 효자동 길을 따라 인왕산에 올라 시상을 다듬곤 했다. 나도 윤동주 시인처럼 윤동주문학관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 윤동주 시인에 대한 책들을 더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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