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의 힘 - 공부의 시작과 끝, 논문 쓰기의 모든 것
김기란 지음 / 현실문화 / 201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글쓰기 강사이자 연극 평론가인 김기란의 논문의 힘은 순전히 저자 자신의 경험에 근거해 쓴 책이다. 저자는 1999년 독일 유학을 준비하면서 독일 대학에 제출했던 연구서가 반려된 당혹감을 털어놓는다. 논문의 목적이 불분명하고 논문의 주제가 너무 포괄적이라는 이유를 제시받았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알지 못했다고 한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논리적 글쓰기이다. “대학의 강의는 논리적 글쓰기 능력을 전제로 진행된다.”(8 페이지), “논리적 글쓰기를 반복적으로 연습함으로써 논문이라는 글쓰기도 가능해진다.“(12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논문을 작성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텍스트의 객관적 이해와 이해된 것을 글로 표현할 수 있는 정확한 요약 능력, 텍스트를 비판적으로 판단하고 평가할 수 있는 분석 능력, 그리고 이 둘을 자신의 논점과 매개시키는 통합적 인식 능력 곧 메타적 인식 능력이다.(12 페이지)

 

논문은 사회공동체에서 공유되어야 할 공공재이다.(19 페이지) 저자는 논문을 쉽게 쓸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은 없지만 화려한 필력이 없어도 그 장르적 본질과 특성을 익히면 성취할 수 있는 것이 학술논문이라고 말한다.(21 페이지)

 

논문 작성에서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것이 표절 여부에 대한 이해이다. 표절 여부는 주석(註釋)의 규정된 형식, 인용된 분량, 표현의 유사성, 내용과 아이디어 차원의 유사성 여부 등을 통해 판단된다.(26 페이지) 저자는 머리의 생각이 펜까지 이르는 길은 너무도 멀다고 한 독일 비평가, 극작가 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Gotthold Ephraim Lessing: 1729 - 1781)의 한탄을 인용하며 생각한 것을 정확하게 글로 옮겨내기 위해서는 많은 훈련과 연습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표현은 서툴지만 내용은 훌륭하다거나 형식 때문에 내용이 제대로 전개되지 못했다는 말은 최소한 논문 글쓰기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말한다.(28, 29 페이지) 저자는 논문의 형식은 절대적으로 변하지 않는 것으로 보는 교조적 태도를 문제삼는다. 생각하는 방식이 다름으로 인해 구성되는 정보의 배열 형식이 수없이 다양하기 때문이다.(29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구성 방식 자체가 사유 방식이다.(30 페이지) 논문을 쓰기 위해서는 준비 단계에서부터 치밀한 계획이 요구된다. 당연히 논문 작성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작성자 자신이다. ”조언의 내용을 반영하되 자신의 글을 성찰하며 논문의 주제를 전개하는 것은 오롯이 논문을 집필하는 사람의 몫이며 책임이다.”(31 페이지)

 

형식과 내용이 모두 중요함을 강조한 저자는 읽기와 쓰기에 대해서도 같은 통합적 방식으로 그 중요성을 강조한다. “읽기 활동만 두드러진 학술논문은 논점이나 독창성이 결여된 글이 되기 쉽고 쓰기 활동만 있는 학술논문은 독단적이며 논증이 부족한 폐쇄적인 글이 되기 쉽다.“(34 페이지)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위험하고 생각하기만 하고 공부하지 않으면 허망하다(사이불학즉태 학이불사즉망学而不思则罔死而不学则殆)는 공자의 말을 생각하게 된다.

 

저자는 자신의 관점(생각)이 주체적으로 정립되지 않으면 수집한 정보를 처리할 수 없고 정보를 논리적으로 분석하지 않으면 문제해결의 방향을 제시할 수도 설득할 수도 없다고 말한다.(35 페이지) ”완벽한 학술논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논문에서 제기된 문제는 학술적 공론장에서 공유되는 가운데 보완되며 완전성을 지향해 나아간다.“(36 페이지)

 

논문은 질문하고 그에 대한 답을 구하는 과정을 담고 있는 글이다.(42 페이지) 논문은 수학의 기본 계산법처럼 논리적인 형식화에 한정되는 활동이 아니라 열려 있는 창의적인 활동이다. 저자는 논문은 단순한 작문 실력만으로는 부족한 글이지만 작문 실력이 부족해도 써볼 수 있는 글이라 말한다.(43 페이지)

 

논문의 창의성은 나의 생각을 발산하는 것이 아니라 선행 연구의 논의들을 수렴하고 종합하며 한발 나아가는 데에서 찾을 수 있고 여기에 전통적으로 논증을 유지하기 위해 준수해온 규정과 형식들을 반영하면 논문은 구성될 수 있다.(43 페이지)

 

저자는 주제와 화제의 차이를 설명한다. 내용 구성 요소에서 화제가 A라면 주제는 AB(주장, 논점, 관점, 입장)이고 글의 내용에서 화제는 대상 A에 대한 정보라면 주제는 대상 A에 대한 주장, 논점, 관점, 입장이다. 글의 형식에서 화제는 설명문이고 주제는 논()문이다. 중요한 것은 대상 A가 아니라 대상 AB(주장, 논점, 관점, 입장)에 자신의 생각을 덧붙이는 것이다.

 

저자는 수집된 정보는 지식과 달리 언제든지 새로운 정보가 등장하면 대체될 수 있지만 지식은 수집된 정보를 판단하는 인식적 활동, 선택의 관점, 그런 관점을 설득할 수 있는 논리적 전략을 통해 구성된다고 말한다. 동일한 정보도 서로 다른 지식으로 구성될 수 있으며 정보가 다양하게 지식으로 매개될 때 정보 이상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53 페이지)

 

저자는 논문의 본질은 윤리성에 있다고 말한다. 논문이 정보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구성하는 것이고, 대상에 대한 정보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에 대한 의문을 논증하는 것이라면 논문의 윤리적 성격은 이미 전제된 것이다.(55 페이지) 중요한 것은 정보를 그대로 옮겨 적기보다 자신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비판한 후 자신의 표현으로 기술하는 것이다.

 

논문을 쓰는 첫 걸음은 주제 확정이다. 저자는 주제를 정할 때 필요한 질문을 제시한다. 내가 수행할 수 있는 주제인가, 주제가 해결 가능한 의문과 질문을 담고 있는가, 주제를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는가 등이다.

 

자신의 연구주제가 A를 이해하는 데 기여한다, 자신의 연구주제가 A에 대한 지식을 확장시킨다, A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수집, 정리한다, A에 대한 문제적 현상을 설명한다, A에 대한 논쟁거리를 다시 논의하게 한다, A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실험한다 등 중 하나에 해당하면 자신감을 가져도 좋다.(75, 76 페이지)

 

선행 연구 검토도 중요하다. 그것은 나의 연구 주제를 확정하는 일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98 페이지) 읽기 자체는 분석적 사고를 강화시켜주거나 창의적 능력을 발전시키지 못한다. 창의적 능력은 스스로가 선행 연구와 적극적으로 씨름하는 가운데 생겨날 수 있다. 유치한 질문이라도 자신의 질문을 만들고 던져봄으로써 선행 연구를 평가함과 동시에 자신의 문제의식을 구체화할 수 있다.(107 페이지)

 

선행 연구 검토는 개별적 논문 각각의 내용을 요약 정리하는 것에서 나아가 분석한 후 종합적 선행 논문들을 나의 논점의 맥락으로 끌어들이는 행동이다.(112 페이지) 논리적 연관 속에서 구체화되는 정보를 일정한 사유 형식을 통해 지식으로 구축하는 학술 논문에서 논문의 전체 계획을 보여주는 설계도인 서론은 논문 작성에서 가증 많은 시간이 할애되는 핵심적인 부분으로 실제 서론이 구성되면 논문의 반 이상을 썼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다.(126 페이지)

 

아무리 세밀하고 구체적인 서론을 계획했다 해도 본론을 구체적으로 서술하면서 예상치 못했던 논리적 틈새를 발견할 수 있다.(127 페이지) 서론은 주제로부터 확장된다. 주제의 형식은 A(연구대상)B(관점, 시각, 문제제기)이다.

 

흔히 논문은 주제 찾기, 연구계획서 쓰기, 초고 집필, 피드백 받아 수정하기 등의 순서로 집필된다고 말하지만 실제는 순차적 과정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위의 과정들이 피드백을 통해 순환적으로 반영되어 조금씩 진행된다, 초고를 집필하면서 연구주제와 연구방법을 재점검해야 하기도 하고 연구대상을 구체적으로 한정해야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목차의 항목을 재배치하기도 하고 어떤 항목은 삭제해야 하기도 한다. 초고 집필과 함께 서론과 목차의 내용을 다시 조정하는 일은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누구나 여러 번 겪을 수 있는 일이다.(161 페이지)

 

하늘이 놀라고 땅이 움직일 만큼 완벽한 논문은 이 세상에 없다. 어떤 논문이든 비판적으로 검토해야 할 부분이 있다. 비판을 통해 보완해야 할 내용을 함께 질문하고 성찰하며 탐구해나가는 것, 이것이 논문이다.(182 페이지) 인용은 편의에 따른, 단순한 내용 옮겨 적기가 아니라 엄격한 판단과 비판적 시각이 요구되는 행위이다.(184 페이지) 모든 인용에 대해 비판적인 자세를 취하고 원본의 출처를 검증하라.(184 페이지)

 

요약 인용이라 하여 원문의 표현을 그대로 옮겨 적을 수 있다고 이해해서는 안 된다. 타인의 글을 인용한 후 인용된 내용에 출처를 밝혔다 해도 유사한 혹은 동일한 표현과 어휘를 일정량 이상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 표절의 의혹에서 벗어날 수 없다.(199 페이지)

 

문장의 미덕은 간결하고 정확하면서도 쉬운 표현에서 찾을 수 있으며 논문의 문장 역시 이러한 미덕을 요구받는다.(219 페이지) 논문의 문장이 간결하고 쉽다는 것은 개념적 어휘나 논문의 내용이 쉽다는 것이 아니라 내용을 전달하는 수단이자 생각의 구조인 문장구조가 정확하게 정리되어 있다는 측면에서 이해되어야 한다.(220 페이지)

 

논문은 화려한 수사(修辭)를 통해 생각을 포장하는 글이 아니라 오히려 수사를 벗어내어 현상, 사실, 주장 등의 차이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글이다.(227 페이지) 저자가 제시하는 논문이 요구하는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해 필요한 사항은 이렇다.

 

1) 숫자가 등장하는 통계 내용은 조건과 함께 정확하게 제시한다. 2) 주장과 관련된 내용은 동사의 어미를 명확하게 마무리한다. 3) 주어와 목적어처럼 문장의 내용 전달에 필요한 요소는 생략해서는 안 된다. 4) 주어와 서술어는 구체적으로 기술해야 한다. 5) 문장 간 연관관계가 정확하게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 6) ‘-, -거나, ()’ 등의 등위 접속사로 문장을 연결할 경우 연결되는 두 부분이 동일하게 연결되어야 한다. 7) 두 줄 이상의 긴 문장은 피하고 한 문장에는 하나의 내용을 담아 기술한다. 8) 내용 전달을 방해하는 불필요하고 어려운 표현은 정리한다. 9) 단정적이거나 과장된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 10) 사물 주어와 의인화된 표현을 피한다 등이다.

 

저자는 논문은 성찰의 경험을 제공한다는 의미에서만 인문학적 정신의 구현일 수 있다고 말한다.(248 페이지) 저자는 여전히 논문을 쓰고 있지만 자신 역시 오류 투성이의 부끄러운 논문을 쓴 적이 있다고 말한다. 자신에게 논문은 평생 진행 중인 텍스트라 말하는 저자의 글을 접하며 논문을 쓰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그래도 써야 할 글이 논문이라 생각한다.

 

논리적 사고, 논리적 쓰기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느꼈다. 논문이 아닌 글쓰기에도 저자의 조언들은 참고할 부분들이 많다. 논문의 문장이 간결하고 쉽다는 것은 개념적 어휘나 논문의 내용이 쉽다는 것이 아니라 내용을 전달하는 수단이자 생각의 구조인 문장구조가 정확하게 정리되어 있다는 측면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말, 중요한 것은 정보를 그대로 옮겨 적기보다 자신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비판한 후 자신의 표현으로 기술하는 것이라는 말.

 

논문은 질문하고 그에 대한 답을 구하는 과정을 담고 있는 글이라는 말, 논문의 창의성은 나의 생각을 발산하는 것이 아니라 선행 연구의 논의들을 수렴하고 종합하며 한발 나아가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는 말 등을 더할 수 있겠다. 인용 방법에 대한 지침도 유용했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논문 쓰기에 대한 책이 굳이 아니어도 다른 좋은 글쓰기 지침서들을 찾아 읽어야겠다. 물론 쉽고 부드럽게 제시된 논문 쓰기 지침서를 찾아보고 싶다. 저자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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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제어(獺祭魚)란 수달이 고기를 잡아 제사를 지내듯 늘어놓는다는 의미의 말이다.

비유적으로는 글을 짓는 사람이 많은 참고서적을 좌우에 어수선하게 늘어놓는 것을 뜻한다.

종묘(宗廟)의 소목제(昭穆制)를 보고 달제어란 말을 생각하게 된다. 불경(不敬)일지도 모르겠다.
소목제(昭穆制)는 신위(神位) 및 묘실(廟室)을 배치하는 순서에 대한 규정이다.

소목(昭穆)에서 소(昭)는 원래 존경하다, 밝다는 뜻이었고, 목(穆)은 순종하다, 어둡다는 뜻이었다. 소는 좌(左)의 의미, 목은 우(右)의 의미이다.

왜 밝음과 어두움으로 대비되는 단어를 사용했을까?

중앙의 시조를 중심으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후왕들의 신주를 받아들여 정전이나 영녕전에 배치하는 것이 달제어란 단어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나의 경우 문화해설 공부에서 달제어라 할 현상이 나타난다. 능이든 종묘든 궁이든 공부할 때 그런 제도들의 뿌리가 되는 중국의 제도나 의례에 관한 규정들을 번역, 설명한 책들을 참고하는(늘어놓는) 것이다.

신병주 교수의 ‘조선왕실의 왕릉조성‘, 이현진 교수의 ‘조선후기 종묘 전례 연구‘, 한국고전번역원 기획의 ‘종묘의궤 1, 2‘, 이현진, 강문식의 ‘종묘와 사직‘, 임석재 교수의 ‘예(禮)로 지은 경복궁‘, 근원 김용준의 ‘조선시대 회화와 화가들‘ 등을 늘어놓고 있는 내 모습이 바로 달제어라 할 수 있다.

학식도 미천(微賤)하고 영민하지도 못한 내가 쉽고 재미있는 이야기 스타일의 책보다 이런 책들을 선호하는 것은 그 책들이 근본(根本) 또는 시원(始原)에 관한 책이기 때문이다.

그런 책들을 공부하지 않고 대중적인 책들을 공부하는 것은 순서가 잘못되었다. 사정을 잘 모르거나 급할 때는 대중적인 책들을 공부하는 것이 맞지만 어느 정도 익숙하고 적응된 상태라면 논문들이나 논문을 수정, 보완한 책들을 찾아 읽을 필요가 있다.

언급한 ‘조선후기 종묘전례 연구‘도 연구자 이현진(李賢珍)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 수정, 보완서이다.(이 분은 후에 ‘종묘와 사직‘이라는 비교적 쉬운 책을 썼다.)

‘조선 후기 종묘전례 연구‘에는 한문이 참 많이 나온다. ‘종묘(宗廟)‘식으로 한글과 한자를 병기한 것이 아니라 宗廟식으로 쓴 많은 한자들이 불편을 가중시킨다.

翼室, 移祔, 祧遷, 追諡, 享祀, 獻議, 殿謁, 褒贈, 虞主, 練主, 祥主, 親盡, 遞遷, 禫祭...

그건 그렇고 중도에 포기하고 싶어 두 차례나 지도교수를 찾았었다는 저자는 학위논문을 마치고 나서야 비로소 전공을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말을 한다.

나를 포함해 지금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이현진 교수처럼 후에 선택을 잘 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면 참 좋겠다.

* 어제 대화중 미처 제시하지 못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역사는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후대의 관점이나 가치관의 변화, 새로운 사료의 발견 등에 따라 변하는 생물이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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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탁본(拓本)과 살청(殺靑) 가운데 하나를 골라야 하기에 시름하는 사이 김포 장릉(章陵)에 가기 위해 탄 소요산역 6시 4분 출발 전철은 의정부를 지나고 있다.

덜 깬 머리를 달래기 위해 음악을 들으면서 시를 골랐다.

권현형 시인의 ‘포옹의 방식‘에 실린 시편들 가운데 하나를 골라 생각을 덧붙여야 한다.

‘고통의 탁본‘은 ˝사진은, 슬픈 노래는, 연애는 산 자의 혼을/ 희고 검게 때로는 푸르게 탁본한다˝는 구절이 마음을 붙잡는 시이다.

‘살청, 푸른빛을 얻다‘는 ˝무연하게 깜박이는 흰 빛을 말하는 것이라면/ 부칠 수 없었던 내 뜨거운 문장들도 부디 살청이었길˝이란 구절이 생각을 이끄는 시이다.

탁본(비석, 기물, 기와 등에 새겨진 글씨나 무늬를 종이 위에 떠내는 것)은 탁본이고 살청(대나무를 불에 쬐어 그 푸른 빛을 없애는 것, 사서나 기록이나 서적을 달리 이르는 말)은 살청이다.

대칭적인 탁본과 살청에 대해서는 잠시 못잔 새벽 잠을 보충하고 나면 말할 수 있을까? 장릉을 순례하고 나면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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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이 존대어 시(명칭이 정확한지 모르지만)를 쓰는 이유는 무얼까? 누군가에게 물어보려다가 적당하지 않다는 생각에 그만 두고 내가 가진 시집들을 찾아보았다.

존대어 시란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로 시작하는 한용운의 ‘님의 침묵‘과 같은 시를 말한다.

물으려다 그만 두었지만 그런 마음을 가졌던 것은 유종인 시인의 입상(立像)이란 시를 보고서이다.

‘님의 침묵‘을 보고서는 그런 궁금증을 갖지 않았고 유종인 시인의 ‘입상‘을 보고 그런 생각을 갖는 것은 이상한 일일까?

˝아, 참 헷갈려도 좋은 다면체(多面體)구나, 요정을/ 버리고 절간으로 돌아든 마음이 그래도 여간 요염하/ 지 않았습니다˝ 이 부분이 ‘입상‘의 마지막 부분이다.

요정이란 백석 시인의 연인이었던 김영한 여사의 대원각을 말하고 절이란 길상사를 말한다. 시인이 말한 입상은 설법전 앞에 서 있는 이채로운 입상을 말한다.

권현형 시인의 ‘포옹의 방식‘에도 그런 시가 하나 있다.˝서울에 함박눈이 내린다는 소식/ 우주 밖의 일인 듯 아득해집니다/ 저는 지금 고대 왕조의 수도에 와 있습니다˝로 시작하는 시.

˝다른 사람을 쳐다보지만 그 뒤에/ 가려진 당신을 보고 있습니다/ 부처는 지워지고 부처 손톱이 자라듯/ 나무가 성장통을 겪으며 자라고 있습니다/ 나무 뒤에, 뒤에, 우리는 아프게 서 있습니다˝로 끝나는 시.

‘역광‘이란 제목의 시. 그럴 줄 알았으면 지난 해(5월) 용산도서관에서 시 수업을 들을 때 물었으면 좋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지만 사실 나는 내가 들은 강의의 시인이 권현형 시인이란 사실은 알았던 반면(누가 강의하는지도 모르고 수업을 듣는 사람이 있는가? 묻는 소리가 들려올 것 같다.) 내가 그 시인의 시집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기억하지 못했다.

시집 속에서 낯익은 시들이 몇 편 보여 이름을 확인하니 그 시인이었다. 이 분의 시들 가운데는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시들이 많다.

무엇보다 이 분의 시 강의 스타일이 마음에 들었다. 이론을 잘 활용하는 분이다.

내가 가진 ‘포옹의 방식‘ 외의 ‘중독성 슬픔‘, ‘밥이나 먹자, 꽃아‘ 등 나머지 두 시집도 제목만으로도 호기심이 생긴다.

그런 시집을 알게 되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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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없는 구원 신 앞의 철학‘은 김영민 교수의 책이다. 내가 이 책을 읽은 것은 20년 전이다.

‘서양철학사의 구조와 과학‘과 함께 그의 초기 저서를 대표하는 이 책에 이런 구절이 있다.

˝인간성과 그 자리의 한계를 적절하게 직면하고 나에게 주어지는 모든 경험에 정직하기 위해 애쓰며 합의(合意)에의 방식과 그 공평을 소중히 여기는 철학적 탐색의 지난한 여정을 버리고 삼박한 계시와 전수의 단답(單答)을 원하는 자는 떠나라. 예수를 참지 못하고 나름대로 답해 버린 유다가 떠났듯이.˝(29 페이지)

이 글을 다시 읽으며 나는 지금껏 내가 내놓은 또는 치른 진술과 표현들이 뜸들이는 과정도 없이 너무 성급하게 차린 못난 답안들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한다.

그런 가운데 하이젠베르크가 한 말도 다시 찾아보게 된다. ˝역사는 (우리가) 어떤 이론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 이론이 일관성이 있다거나 명확하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 이론을 더 다듬고 그 진위여부를 가리고자 하는 일에 참여해보겠다는 희망 때문이라는 사실을 가르쳐준다.˝(‘인간, 입자, 자연에 대한 단상‘ 16 페이지)

하이젠베르크는 바로 이런 점이 우리가 활동하고자 하는 소망이고 노력의 결과를 얻고자 하는 우리의 바람이라 말했다.

그에 의하면 우리는 이것 때문에 과학의 길을 혼자 더듬어 가는 것이다.

사실 완전한 이론을 취함으로써 할 것(덧붙이거나 고칠 것)은 없다. 오류를 지적하고 바로잡는 과정을 통해서만이 새 이론을 만들 수 있다.

어떤 점이 김영민 교수가 경계한 것이고 어떤 점이 하이젠베르크가 말한 긍정적인 저술(표현)인지를 잘 헤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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