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사 시인수업 6
조동범 지음 / 모악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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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韓屋) 도서관에서 시인의 시 창작 강의를 듣는 호사(豪奢)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37일 시작된 청운문학도서관에서의 강의로 59일까지 매주 수요일(1517)에 진행된다.

 

시 창작 강의를 듣고 있지만 나는 시를 이해하려는 것일 뿐이다. 물론 후에 시간이 되면 아니 마음에 여유가 들면 시를 쓰는 모험을 감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강사인 유종인 시인께서는 수사법(修辭法)보다 사물이나 현상을 새롭게 보는 자세와 시를 대하는 마음가짐에 초점을 두고 강의한다.

 

유종인 시인은 필요한 수사를 두 개 정도로 한정한다. 은유와 활유 또는 물활론(物活論)이. 사이비(似而非)란 표현이 눈에 띈다. (시인의 의도를 잘못 파악한 것인지 모르지만) 기존의 바탕이나 현상에서 출발하되 남과 다르게 보는 눈으로부터 새로운 사유가 펼쳐지는 것을 시인이 사이비(似而非) 즉 비슷하되 다른 것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조동범 시인의 묘사(描寫)’를 통해 다음의 것들을 배울 수 있다. <'소가 들판에서 풀을 뜯어 먹고 있다'는 서경(敍景)적 표현을 '몸통을 잃어버린 소가 풀의 어둠을 뜯어 먹고 있다', '머리 잘린 소의 더러운 혀는 풀의 뿌리를 천천히 더듬기 시작한다' 같은 비가시적 이미지인 심상(心象)적 표현으로 바꿀 수 있다.

 

심상적 구조의 문장과 이미지는 서경적 구조와 완전히 유리된 것이 아니며 서경적 구조를 기본으로 하는 경우도 많(61 페이지)(현상을) 심상적 구조로 파악하게 되면 서경적 구조로 파악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양상의 이미지를 제시할 수 있다.>(60 페이지)는 글이다.

 

완전히 유리된 것이 아니며란 말과 전혀 다른이란 말로부터 나는 사이비란 말, 더 나아가 청출어람(靑出於藍), ”얼음은 물이 얼어서 된 것이지만<빙수위지(氷水爲之), 물보다 더 차다(寒於水)>“는 말(신영복 지음 담론’ 116 페이지)을 떠올린다.

 

유종인 시인의 강의는 일상적 단어를 찾아 의미를 확장시키는 것이 특별히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조동범 시인의 '묘사'는 다른 시 창작 강의와 달리 유익하게 읽힌다. 이 책을 읽고 모악 출판사의 시리즈물인 엄경희 평론가의 '은유', 구모룡 평론가의 '제유', 유성호 평론가의 '직유', 권혁웅 평론가의 '환유', 정끝별 평론가의 '패러디'를 읽을 생각이다.

 

얼마 전 사둔 나희덕 시인의 '한 접시의 시' 도 읽어야겠다. 봄이 되면 특히 많이 생각나는 조용미 시인이 시 창작 책을 쓴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올 봄 하릴없어 옥매 두 그루 심었다는 시인이다.

 

유종인 시인은 어휘력을 기를 것을 주문한다. 어휘를 피상적으로 알지 말고 익히라는 의미이다. 특히 순 우리말을 익히라는 것이다. 그리고 시집을 적극적으로 읽으라고 말한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메모하듯 쓰라고 말한다.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기만 해도,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기만 해도,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노을이 질 때 걸음을 멈추기만 해도, 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음식을 오래 씹기만 해도, 촛불 한 자루 밝혀 놓기만 해도, 솔숲 지나는 바람소리에 귀 기울이기만 해도, 갓난아이와 눈을 맞추기만 해도,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걷기만 해도, 섬과 섬 사이를 두 눈으로 이어주기만 해도, 그믐달의 어두운 부분을 바라보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라는 이문재 시인의 '오래된 기도'를 예로 들며 그렇듯 교과서적인 언어의 의미를 새롭게 확장시키는 것이 시라고 말한다.

 

시인은 우리에게 숙제를 내주신다. 자신의 기도는 어떤 것들인지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시인은 시란 의미의 파생(派生: 어떤 사물의 주체로부터 갈리어 나와 생김)이고 일견 무관해 보이는 것들을 연결짓는 것이고 무수히 많은 관계성에 주목하는 것이라 말한다.

 

시인은 영감(靈感)이란 결국 내가 일으키는 것이라 말한다. 시인에 의하면 시는 의미의 확장 놀이이다. 여기서 랑그와 파롤이란 말을 생각해 본다. 신영복 선생님은 시란 랑그가 아니라 파롤이란 말을 한다.(‘담론’ 26 페이지)

 

소쉬르에 의하면 랑그는 수많은 경험을 통해 뇌 속에 자리 잡은 사회적 형태의 약속 체계이며 파롤은 개인적이며 순간적이고 개별적 언어이다. 이문재 시인이 한 것은 인간보다 능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어떠한 절대적 존재에게 비는 것 또는 그런 의식을 의미하는 기도란 단어를 파롤(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 것,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는 것,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는 것,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 노을이 질 때 걸음을 멈추는 것 등..)로 만든 것이다.

 

여담이지만 시경(詩經)‘은 고대 중국에서 여론 조사나 동태 파악 차원에서 사회 분위기를 파악하기 위해 모아놓은 시를 편집한 책이다.(신정근 지음 동양고전이 뭐길래?‘ 38 페이지) 이를 보며 내가 생각한 것은 점령(占領)이란 말이다.

 

()나라의 천자가 각 읍국(邑國: 고대 도시국가)의 점인(占人: 점치는 사람들)을 남치해간 뒤 점을 독점하고 그들 읍국들에게 점의 결과를 알려주는 정책을 통해 영도력을 발휘한 것이다. 점령은 점으로 영도한다는 의미이다.(강병국 지음 주역독해상경(上經) 10 페이지)

 

시경(詩經)과 주역(周易) 모두 정치사회적 의미를 갖는 책이라는 의미이다.(신영복 선생님의 마지막 강의인 담론이 주요 논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 시와 주역이다.)

 

각설하고 시에서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는 묘사(描寫)는 이미지를 통해 지배적인 인상을 드러내며 감각화된 세계를 보여준다.(11 페이지) 또한 묘사를 파악하는 것은 시의 구성 원리를 파악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17 페이지)

 

시적 언술은 묘사와 진술로 이루어지지만 묘사된 세계를 통해 시적 감각이 극대화된다.(19 페이지) 미적 인식을 제시하는 시적 상황을 지배적 정황이라 한다.(20, 21 페이지) 묘사는 지배적 정황이 됨으로써 비로소 시적 감각을 갖는다.(21 페이지)

 

묘사는 구체적 이미지에 초점을 맞추고 설명은 개괄적 행위나 모습을 제시한다. ‘개 한마리가 도로 위에 죽어 있다.’는 문장은 설명이다. 반면 도로 위에 납작하게 누워 있는 개 한 마리. 터진 배를 펼쳐놓고도 개의 머리는 건너려고 했던 길의 저편을 향하고 있다.’는 묘사이다.(23 페이지)

 

묘사는 서경적 구조, 심상적 구조, 서사적 구조 등으로 나뉜다.(33 페이지) 서경적 구조는 가시적 세계를 재현하는 방법론이다.(33 페이지) 심상적 구조는 비가시적인 이미지를 통해 시적 정황을 구축하는 방법론이다.(34 페이지) 심상적 장면은 서경적 구조만으로는 형언하기 힘든 시인의 내면을 제시한다.(38 페이지)

 

저자는 우리가 바라보는 모든 사물을 조금만 다른 시선으로 파악한다면 그것은 평범한 사물에서 지배적 인상을 제시하는 시적 대상으로 바뀌게 될 것이라 말한다.(43 페이지) 서경은 사실적 장면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서경적 구조가 사실적 장면임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곧 익숙한 관계로 이루어진 상투적 장면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46 페이지) 심상적 구조는 시인의 시적 개성을 발휘하기 적합하며 주관적인 묘사를 통해 낯설게 하기를 수행한다.(57 페이지)

 

심상적 구조는 가시적인 물리 공간에서 감지한 것이 아니라 심리라는 비가시적 공간에서 감지한 것이다.(57 페이지) 거칠게 표현하자면 심상적 구조는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인 이미지이다.(59 페이지)

 

주변의 모든 정황을 심상적으로 파악하려는 강박에 빠질 필요는 없다. 서경적 구조와 심상적 구조가 혼재되어 나타날 수 있는 것처럼 주변의 사물들 역시 서경적 장면과 심상적 장면이 섞여 있을 수 있다.(67 페이지) 각각의 장면들이 지배적 정황으로 기능할 수 있느냐의 문제와 더불어 그것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느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67 페이지)

 

영상조립시점은 어울리지 않는 낯선 정황들을 돌연히 내세우되 그 안에 일관된 정서와 감각을 부여하는 창작 방법론이다.(74 페이지)

 

서경적 구조는 가시권 사물과 비가시적 사물이 혼재될 경우 자연스럽지 않을 경우가 있지만 영상조립시점은 마음에 떠오르는 것들을 함께 묶어 재구성한 것이므로 가시권 사물과 비가시권 사물이 섞여 있을 수 있다.(74, 75 페이지) 두 개 이상의 조각난 영상이 조립되는 영상조립시점은 조각의 합이 전혀 다른 감각을 소환하기도 한다.(75 페이지)

 

영상조립시점을 구성할 때의 관건은 정황들이 일관된 하나의 흐름을 형성할 수 있느냐 없느냐이다. 파편화된 이미지가 조각나 있기만 하고 일관된 감각과 정서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영상조립시점은 실패하고 만다.(80 페이지)

 

시에서 이미지는 없어서는 안 될,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맞닥뜨린 이러한(이미지가 무의식과 의식을 지배하는, 이마골로기의) 세계 속에서 시는 어떠한 이미지를 응시해야 하는가?(100 페이지)

 

시가 이미지의 산물이라는 점은 명백하다. 물론 시를 구성하는 원리와 요소는 무수히 많지만 그중에서 이미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압도적이다.(101 페이지) 시인들은 자신의 경험과 상상력이 그 어떤 시적 이미지를 통해 드러나기를 희망한다. 이미지를 통해 시인들의 경험과 상상력은 실재의 국면으로 재현되어 하나의 시적 세계를 구축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이미지는 실재하는 상상력이며 동사에 구체적으로 재현된 시적 경험이다.(101 페이지)

 

이미지는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며 이미지 자체가 되기도 한다.(102 페이지) 이미지를 해현한다는 것은 단지 눈에 보이는 장면만을 제시하는 것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이미지는 그것만으로 하나의 시적 의미를 만들어내기도 하는데 시에서 묘사가 곧바로 의미로 전이되는 경우가 그러하다.(102 페이지)

 

바슐라르는 의미들이 너무 분할된다면 그것은 말장난으로 전락할 수도 있고 단 하나의 의미 속에 갇힌다면 교조주의로 빠질 수 있다는 말을 했다.(104, 105 페이지) 저자는 다층적인 의미 구조에 기대기보다 감각이 지나치게 극대화된 시적 이미지에 경도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지적한다.(105 페이지)

 

상당수의 작품이 다채로움을 잃은 채 화려한 감각과 언어라는 시적 경향이 지나치게 몰입하는 태도를 비판한다.(106 페이지) 심상화된 세계는 서경적 세계와 달리 주관적 언술 양상을 띠기 때문에 시인 자신만이 볼 수 있는 주관화된 이미지의 양상을 띠게 된다.(107 페이지)

 

심상적 구조는 서경적 구조와 달리 사실적 이미지나 진술이 전달할 수 없는 내면의 미묘한 울림과 파동을 효과적으로 제시할 수 있기 때문에 환상적 세계를 통해 표현되는 시인 내면의 복잡다단한 감각을 적절하게 수용할 수 있다.(107 페이지) 분절되고 파편화되기만 하고 의미 없는 감각만으로 채워질 때 문제는 발생한다.(108 페이지)

 

조동범 시인의 묘사는 자주 들여다보며 숙독할 책이다. 시를 이해하는 과정이 쓰는 행위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바람직한 모습을 연출할 것을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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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두천 전철역에 내려 버스가 오기를 기다렸다. 귀찮은 비가 내리고 있었고 여러 사람들 사이에서 우산을 쓰고 계신 수녀님 한 분이 보였다. 버스는 기다린 지 한 5분쯤 되어 왔다. 수녀님 옆자리에 앉았다. 가장 안쪽 그러니까 끝자리였다. 버스는 군인들이 서서 우리의 시야를 가릴 만큼 좁고 낮았다.

 

'전곡 성당 소속이신가요?' 묻자 수녀님은 '옥계리 수도원 소속입니다'란 답을 하셨다. 옥계리(玉溪里)는 연천군 군남면의 한 마을이고 수녀원은 그곳의 한 풍경이다.

 

연천에서 일할 때 수녀원 앞 도로를 여러 차례 지나쳤던 기억, 그러나 태풍에 넘어간 나무를 치우기 위해 안으로 들어가 본 한 차례의 오랜 기억이 있다. 40대 중반쯤 되셨을까? 수녀님은 내게 전곡 터미널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물으셨다.

 

전곡에서 옥계리 가는 버스를 타신 적이 몇 차례 있었지만 전철역에 내려 전곡까지 가시는 것은 처음이라 하셨다. 20분 정도가 걸린다고 답했다. 매시 정각에 출발하는 옥계리행 버스 시간에 맞춰 갈 수 있는지가 수녀님의 관심의 전부였다.

 

정상적으로 가면 10분 정도가 남는 상황이었다. 터미널에 내려 3분 정도 연천쪽으로 걸어야 옥계리행 버스를 탈 수 있고. 목적지에서 일어서려 하자 수녀님은 누가 벨좀 눌러 주세요란 말을 하셨다. 정말 내 가까운 곳 좌우에 벨은 보이지 않았다.

 

수녀님께 정중히 고개 숙이는 인사를 했다. 수도자(修道者)에 대한 존경, 연민 등이 어우러진 인사였다. ‘수녀님은 제가 내리는 곳에서 두 정거장 더 가셔서 내리시면 됩니다.’란 말을 하며 버스에서 내렸다. 수녀님의 말씀은 분명 친절이었다. 어머니의 마음씀 같은.

 

어머니께서 전곡 성당에 다니신다는 내 말 때문일까? 먼저 말 건 친절에 대한 보응일까? 진지하고 정성스런 내 표정과 말 때문일까? 사하촌(寺下村)이 있듯 수하촌(修下村)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조용미 시인은 사이프러스가 우뚝 서 있는 언덕과 돌로 견고하게 쌓아/ 올린 긴 벽 사이에서 풍경화의 소실점을 알려 주듯/ 수도사가 나타났다는 말을 했다.(‘매듭중에서) 나는 수녀님과 만들어낸 풍경을 보고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수녀님께서 내게 따뜻함을 전해 주시기 위해 나타나셨다고 해야 할까? 위대한 포기(great renunciation)란 말이 있다. 고타마 싯다르타의 출가를 그렇게 표현한다.

 

수녀님은 어떤 것을 포기하시고 또는 포기하시기 위해 수도자가 되셨을까? 잃음(포기)을 다른 큰 얻음으로 환원해 볼 수 있을까? 오래 건강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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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 -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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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談論)’은 신영복 선생님(이하 저자)(성공회대에서의) 마지막 강의(를 책으로 묶은 것)이다. 저자는 서삼독(書三讀)을 주장한다. 텍스트를 읽고 필자를 읽고 독자 자신을 읽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아울러 모든 텍스트는 언제나 다시 읽히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을 한다.

 

교사와 학생의 대칭 관계(13 페이지)를 주장하는 저자는 강의라는 프레임을 깨뜨리고 우연의 점들을 여기 저기 자유롭게 찍어 갈 것이라 말한다. 대신 여러분들이 그 선을 이어 점을 만들고 장()을 만들어 여러분의 지도(知圖)를 완성하고 여러분이 발 딛고 선 땅속의 차가운 지하수를 길어 올리기를 바란다고 말한다.(22 페이지)

 

인연들이 모여 운명이 된다고 말하는 저자이다.(15 페이지) 첫 시간에 시()를 논하는 것은 우리의 인식틀이 문사철(文史鐵)에 과도하게 갇혀 있기 때문이다.(25, 26 페이지) 저자는 시를 랑그가 아닌 파롤이라 말한다.(랑그, 파롤에 대해 모호하게 알고 있던 사람은 이 강의를 통해 의미를 확실히 파악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왜 파롤인가? 개인의 언어, 남다른 은유(隱喩)를 말하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상투성의 지양(止揚)이다. 시서화(詩書畵)는 보다 높은 차원의 인식틀이라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37 페이지) 현실과 이상의 갈등이 인생의 영원한 주제라 말(42 페이지)하는 저자는 이론과 실천은 함께 간다고 설명한다.(44 페이지)

 

저자는 냉정한 자기비판의 의미를 강조한다. 그것은 일견 비정한 듯 하지만 자기를 새롭게 재구성함으로써 서바이벌의 가능성을 훨씬 높여 준다는 것이다.(48 페이지) 이 부분에서 나는 군자표변(君子豹變)을 읽었다. 저자는 생명이란 방랑하는 예술가(방랑하는 예술가처럼 자기 생성, 즉 자기가 자신을 만들어 가는 능력이 있다는 의미)라는 말을 한 마투라나를 언급하며 그것은 기계론, 환원주의, 고전주의에 대한 창조적 배반으로 동양적 사유에는 인과론이나 환원론이 없다고 설명한다.(51 페이지)

 

추상화 능력과 상상력이 필요하다. 전자는 문제의 핵심을 정확하게 짚어내는 것이고 후자는 사소한 문제 속에 담긴 엄청난 의미를 읽어내는 것이다.(52 페이지) 무왕불복(無往不復)이란 말이 알게 하듯 고전은 오래된 미래이다.(58 페이지)

 

나는 주역(周易)’을 점서로도 과학으로도 읽지 않는 저자는 주역 독법에 주목한다.(61 페이지) 주역은 패턴(을 보여주는 책)이다. 정착하며 농사를 짓는 반복 패턴의 사회인 농경사회에서 나온 것이다. 유목사회는 계속 이동하기 때문에 과거의 경험이 의미가 없다. 저자는 자신도 감옥에 가지 않았다면 주역을 읽지 않았을 것이라 말한다.(62 페이지)

 

저자는 위(), (), (), ()의 네 개념으로 주역을 읽는다. 양효가 어디에 있든 늘 양효로서 운동하지 않는 것이 위()를 설명할 때 중요하다. 자기 자리에 있어야(得位해야) 하는 것이다.(63 페이지) 양효, 음효 자체보다 그것들이 처해 있는 자리와의 관계성을 중시하는 것이다. ()는 바로 옆에 있는 효와 상응 관계를 보는 것이다.(65 페이지) ()은 초효(初爻)4, 2효와 5, 3효와 6효의 음양 상응을 보는 것이다.(65 페이지) ()은 하괘의 중과 상괘의 중을 중시하는 독법이다.(66 페이지)

 

주역은 효() 자리, 효와 효, 소성괘와 대성괘, 대성괘와 대성괘 등 중층적인 관계를 읽는 것이다.(69 페이지) 주역은 64, 384효이다. 그것만으로 매우 복잡하다. 여기에 동효(動爻), 변효(變爻)도 있다. 그것까지 고려한다면 4,096개의 효가 된다. 주역은 그 무수한 관련 속에서 그 의미를 읽어야 하는 것이다.(69 페이지)

 

저자는 개인주의적 사고, 불변의 진리, 배타적 정체성 등 근대적 인식론에 갇혀 있던 나에게 감옥에서 손에 든 주역은 충격이고 반성이었다고 말한다.(69, 70 페이지) 저자는 역이불역(易以不易) 불역이대역(不易以大易)을 언급한다. 퇴계와 다산의 독법이 다르다. 퇴계는 변하면서도 변하지 않는다. 바로 그 변하지 않는 것이 참다운 역(大易)“이라 했고 다산은 변하지 않는 것도 크게() 보면 변한다()”고 해석했다.(74 페이지)

 

철기시대인 춘추시대는 주나라의 종법(宗法) 질서가 붕괴된다. 종법 질서는 천자(天子)의 맏아들은 천자가 되고 둘째 아들은 제후(諸侯)가 되는 제도이다. 제후의 맏아들은 제후가 되고 둘째 아들은 대부(大夫)가 된다. 유가학파는 패권 경영에 반대하고 제후국 연방제라는 주나라 모델을 지지한다. 이것이 화이부동(和而不同)이다.(78 페이지) 저자는 우리의 최후의 그리고 최고의 선택은 화화(和化) 패러다임이라 말한다.(88 페이지)

 

저자는 시제(時制)와 처지를 고려하지 않는 비판은 처음부터 부정적 결론을 염두에 두는 비방이라 말한다.(94 페이지) 저자는 사상의 진보성과 민주성은 단순하지 않다고 말하며, 그리고 여러분의 생각 속에도 여러 가지 충돌하는 쌍들이 혼재해 있을 것이라 말하며 공자와 논어의 경우 어떤 것을 호출하고 어떤 독법으로 읽을 것인가 하는 것이 우리의 몫이라 결론짓는다.(95 페이지)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텍스트의 끊임없는 재구성(103 페이지), 사회적 의미(114 페이지), 사람이 최고의 교본이라는 것(116 페이지), 필자는 죽고 독자는 꾸준히 탄생한다는 말(131 페이지), 산다는 것은 사람과의 만남이고 만남이 곧 연대라는 말(137 페이지), 노동은 생명의 존재형식이라는 말(147 페이지), 시대를 역사적으로 바라봄으로써 시대가 갇혀 있던 문맥을 선명하게 보는 것(153 페이지) 등이다.

 

묵자(墨子)’에는 무감어수(無監於水), 감어인(監於人)이란 말이 있다. 믈에 비추어 보지 말고 사람에 비추어 보라는 말이다. 물에 비추어 보면 외모만 보게 되지만 사람에 비추어 보면 인간적 품성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155 페이지)

 

묵자 사상의 핵심은 겸애(兼愛)이다. 차별 없이 사랑하는 것이다. 밥상을 함께 하는 것을 겸상이라 하듯 차별 없이 사랑하는 것을 겸애라 한다.(163 페이지) 저자는 묵자의 반전, 평화 사상을 언급하며 나쁜 평화 없듯 좋은 전쟁이 없다고 말한다.(165 페이지) 노자가 개선장군을,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돌아온 사람이라는 이유로 상례(喪禮)로써 맞이해야 한다고 했다면 전쟁에 관한 한 묵자 만큼 불가함과 흉포함을 소상하게 밝힌 사람은 없다.(167 페이지)

 

묵자는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학파이다.(168 페이지) 한비자는 권모술수의 달인 같은 평판을 받고 있지만 교사불여졸성(巧詐不呂拙誠)의 고사를 생각하게 한다. 교묘한 거짓을 졸렬한 성실에 미치지 못한다는 말이다.(188, 189 페이지)

 

한비자(韓非子)’에는 진정성이 묻어나는 예화가 많다.(190 페이지) 세계는 분절되어 있지 않다. 분절되어 있는 것은 우리의 인식틀이다. 결정론과 환원론은 단순 무식한 틀이다.(196 페이지) 저자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글들이 차분해서 놀랐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음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것은 가족들이 보는 (편지) 글이기에 고통스럽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검열을 거쳐야 했기에 무너지는 모습을 (국가에) 보이지 않으려는 자존심의 결과이다.(224, 225 페이지) 저자는 자기 변화는 최종적으로 인간관계로서 완성된다고 말한다.(239 페이지) 기술을 익히고 언어와 사고를 바꾼다고 해서 변화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이다.

 

저자는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세계와 자기를 함께 깨닫는 것이라며 불편한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함으로써 생명의 위상을 새롭게 바꾸어 가도록 하자고 말한다.(253 페이지) 저자는 조카 단종을 유배해 죽이고 사육신으로 대표되는 많은 신하들을 처단하고 집권한 세조의 정치 과정을 윤리적 관점에서 평가하는 것에 신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건국 초기의 산적한 과제들을 강력한 왕권이 아니면 헤쳐 나가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세조는 태종보다도 훨씬 더 비윤리적인 집권을 했다고 설명한다.(389 페이지) 의아하다.

 

저자는 마지막 글인 희망의 안어 석과불식(碩果不食)’을 이야기한다. 이 말이 20년 감옥 생활을 견디게 한 힘이다. 저자는 산지박(山地剝)괘의 효사인 석과불식을 이야기하며 사십불혹에 새로운 해석을 가한다. 의혹이 없어졌다는 의미가 아니라 미혹(迷惑), 환상 등을 갖지 않는 것이라 말한다.(420, 421 페이지)

 

저자는 자신이 자살하지 않은 것은 햇볕 때문이었고 살아간 이유는 하루하루의 깨달음과 공부였다고 말한다.(424, 425 페이지) 저자는 독방에서 만나는, 길어야 두 시간이고 가장 클 때가 신문지 크기인 햇볕을 무릎 위에 받고 있을 때의 따스함은 살아 있음의 어떤 절정이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자기(自己)의 이유(理由)는 우리가 지켜야 할 자부심이라 말한다. 그것을 가지고 있는 한 아무리 멀고 힘든 여정이라 해도 결코 좌절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에 의하면 자기의 이유를 줄이면 자유(自由)라는 말이 된다.(426 페이지) 저자는 제한된 시간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했다고 말한다. 그런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소 어렵게 느껴진 면도 있다.

 

물론 이는 앞에서 말한 이유 때문이기도 하고 내 내공이 부족한 탓이기도 하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리뷰를 쓰지는 않았지만 읽었기에 대부분 건너 뛰었다. 저자가 주역과 시를 강의 주제로 선정한 이유가 참 긍정할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주역은 관계론, 시는 이성의 과잉에 대한 해결 방식으로 제시된 주제이다. 이 두 주제는 내 주제로 오래 유지될 것이다. 타계 2주기(2016115)를 넘긴 선생님의 명복을 늦게나마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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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필 때 보자는 헛된 약속 같은 것이 없”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봄입니다./ “..꽃필 때 보자는 헛된 약속 같은 것이 없”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봄..............이지요?

편지로 띄울 글에 담을 시를 고르며 위의 둘을 놓고 잠시 고민. 내 시도 아닌 다른 이의 시인데 이래도 되는가?

주역점이라도?

아직 봄은 완연하지 않다. 신영복 선생님의 ‘담론’을 다시 읽는다. 간첩 조작 사건인 통혁당 사건으로 1968년부터 1988년까지 20년의 억울한 옥살이를 한 선생님.

이 분이 자살하지 않은 것은 햇볕 때문이었고 살아간 이유는 하루하루의 깨달음과 공부였다.(‘담론’ 424, 425 페이지)

선생님은 겨울 독방에서 만나는, 길어야 두 시간이고 가장 클 때가 신문지 크기인 햇볕을 무릎 위에 받고 있을 때의 따스함은 살아 있음의 어떤 절정이었다고 말한다.

석과불식(碩果不食)은 선생님이 가장 아낀 희망의 언어이다. 씨로 쓸 과일은 먹지 않는다는 의미를 가진.

‘주역(周易)’ 산지박(山地剝) 괘의 가장 위의 양효(陽爻: 상구上九)의 효사(爻辭)이다.

빼앗김(박탈당함)을 의미하는 박(剝)괘는 주역 64 괘 중 가장 암울한 상황.(강병국 지음 ‘주역독해 상경’ 391 페이지)

나도 주역에서 내 언어를 설정했다. 수뢰둔(水雷屯) 괘의 첫 번째 효사(초구: 初九) 중 하나인 반환(盤桓) 이거정(利居貞).

때를 기다리며 힘을 기름을 의미하는 수뢰둔 괘가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반석이 굳고 튼튼함을 의미하는 반환(盤桓)과, 정(貞)함에 머무는 것이 이로운 것이라는 의미의 이거정(利居貞)은 좋다.
지수사(地水師) 괘를 설명하며 ‘남산의주 유동 박시봉방’에서 백석(白石) 시인이 말한 갈매나무(“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를 굳고 정(貞)한 것으로 설명(이지형 지음 ‘주역, 나를 흔들다’ 47 페이지)한 논자가 있지만 수뢰둔 괘의 이거정도 좋다.

반환(盤桓) 이거정(利居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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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워하지 않기질투하지 않기를 화두(話頭)로 하던 K 교수의 근황이 궁금하다. 그리워하지 않기도, 질투하지 않기도 알고<旣知하고>도 모른 체 하기일 것이다. 내 화두는 기다리지 않기슬퍼하지 않기’.

 

모두 알고도 모른 체 할 수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이다. 기다리지 않기는 그리워하지 않기의 다른 말이다. 그럼 질투와 슬픔의 관계는? 숙제!

 

주역(周易)에 지()의 인상적인 사용 사례가 있다. ‘건지대시(乾知大始)’ 곧 하늘은 큰 시작을 주관한다는 구절이다. ()에는 알다 외에 주재(主宰)하다/ 주관(主管)하다는 물론 사귀다, 병이 낫다 등의 다양한 의미가 있다.

 

알아야 주재하거나 주관할 수 있고, 알아가는 것이 사귀는 과정이고, 알아야 병을 다스릴 수 있다는 말이 가능하다. (), 참 유용한 글자이다. 그런데 알고도 모른 체 해야 할 때, 그리워하기/ 기다리기 하지 않아야 할 때가 있다. 슬프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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