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으로 읽는 옛집 -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왜 건축에 중독되었는가?
함성호 지음, 유동영 사진 / 열림원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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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성호의 철학으로 읽는 옛집은 건축에 큰 의미를 부여한 조선의 성리학자들에 대한 기록이다. 부제는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왜 건축에 중독되었는가?’이지만 책에 등장하는 성리학자들의 행동을 중독이라 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중독되었다고 말하려면 타지마할을 지은 인도 무굴 제국의 황제 샤자한을 들어야 할 것이다. 그는 건축을 하다가 국고를 탕진해 보다 못한 아들에게 강제 폐위를 당하기까지 했다.(104 페이지) 책에 등장하는 성리학자들이란 회재(晦齋) 이언적, 남명(南冥) 조식, 퇴계(退溪) 이황, 고산(孤山) 윤선도, 다산(茶山) 정약용, 사계(沙溪) 김장생, 우암(尤庵) 송시열, 명재(明齋) 윤증 등이다.

 

흥미로운 점은 많은 성리학자들이 집을 뜻하는 재(), () 등의 글자를 채택했다는 점이다. ‘철학으로 읽는 옛집의 저자는 시인이자 건축가이다. 현역 건축가로서의 경험과 안목이 작품 서술에 충분히 반영되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등장 인물들의 사상과 건축이 깊은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가령 조선 유학을 정주계(程朱系: 정호, 정이 형제 및 주희의 학설을 따르는 학파) 성리학 일변도로 만든 원흉으로 꼽히는 이언적은 용()자 형태의 집을 지었다. 이는 자생풍수(지형풍수)를 변용한 결과이다.(61 페이지)

 

지형 풍수는 자생 풍수이고 가택 풍수는 중국 풍수이다.(27 페이지) 이언적이 자생 풍수를 변용해 지은 집이란 향단(香壇)을 말한다. 이언적은 독락당(獨樂堂)도 지었는데 이는 정치적으로 좋지 않은 시기에 지은 집이고 향단은 복원되어 경상감사를 제수받고 금의환향하여 지은 집이다.(53 페이지)

 

이상한 것은 불우한 시기에 지은 독락당은 너무도 여유롭고 완완(緩緩: 느릿느릿함)한데 화려한 시절의 집은 지극히 폐쇄적이고 우울하다는 점이다. 저자에 의하면 향단은 전체적으로 용()자 형국의 집이다.(60 페이지) ()은 일()과 월()의 합성자이다. 그리고 둘을 나란히 쓰면 일() 풀러스 월() 즉 명당(明堂)의 그 명()자가 된다.(61 페이지)

 

()가 어떻고 기()가 어떻고 논하던 성리학자들이 아무리 정치 생명, 나아가 목숨을 보존하기 위한 것이라 해도 풍수(風水)에 의존한 것은 좋아 보이지 않는다. 물론 저자는 풍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풍수는 발복의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바람과 물을 얻는 방법이고 그것을 지킨다는 의미이다.

 

관건은 나무를 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가꾸고 보살핌으로써 좋은 수세(樹勢)를 얻듯 풍수지리의 의미도 단지 좋은 땅을 선택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좋은 땅을 자자손손 지켜나가는 데 있다.(49 페이지) 명당은 없다.(22 페이지)

 

저자가 우려하는 것은 풍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술법(術法)으로만 받아들이는 것이다.(49 페이지) 저자는 술법 풍수도 반대하지만 지세를 의생물화하는 형국론(形局論)도 반대한다.(79 페이지) 저자는 얼마나 많은 조선의 학자들이 학문적 바탕을 숨겨왔는지 전공자들이 더 잘 알 것이라 말한다.(93 페이지)

 

사상과 집을 이야기했지만 사상과 권력도 깊은 연관이 있다. 이런 구절을 보라. “()의 움직임만을 인정하는 율곡의 입장으로 볼 때 그의 제자들이 정치적 헤게모니를 쥐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현실적 감각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덕 수양의 문제를 탐구하는 퇴계의 제자들이 산림에 근거하여 공부에 전념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래서 선조 이후부터 율곡 문하의 서인은 거의 정국을 주도하는 집권 세력이 된다.”(173 페이지)

 

율곡은 기()의 움직임만을 인정하고 이황은 리()의 움직임만을 인정한다. 그러나 두 사람은 기에 의해서 이가 가려지는 것을 극복하고 리()의 순수성으로 돌아가자는 모토를 공유했다.(175 페이지) 서인(西人)은 이율곡의 기호학파에 학문적 기반을 둔 세력이고 남인(南人)은 이황의 영남학파에 학문적 기반을 둔 세력이다.(166 페이지)

 

그러면 남명 조식은 어떤가. 그는 지리산을 노장(老莊)적 세계를 상징하는 산으로 여겼다.(95 페이지) ‘철학으로 읽는 옛집의 미덕 가운데 하나는 유교와 불교의 관계를 알 수 있다는 점이다. , , , 문왕, 무왕, 주공, 공자, 맹자로 이어지는 도통론은 부처로부터 이심전심의 비법으로 마지막 혜능에까지 이어진 법통론에 강한 영향을 받은 결과이다.(27 페이지)

 

성리학은 선진(先秦) 유학이 가지고 있는 형이상학적인 단점을 보완하며 이루어졌고 아무리 성리학이 불교를 배척하며 이루어졌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불교와 도교가 정리해놓은 형이상학에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25 페이지)

 

윤선도의 호 고산(孤山)은 서울 시절 별서(別墅)를 둔 남양주 수석동이 홍수로 인해 범람하면 사방이 물에 잠기고 퇴매재산만이 물 위에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을 보고 지은, 호방함이거나 철없음의 소산이다.(145 페이지) 해옹(海翁)이란 호는 윤선도가 후에(철들었을 때) 보길도 부용동에 살며 유유자적하는 생활을 자위하기 위해 지은 또 다른 호다.(148 페이지)

 

지천명이라 했지만 퇴계의 경우는 어떤가. 그는 50이 넘어 주자(朱子)를 접했다.(115 페이지) 흥미로운 것은 우리에게 주자가 본격적으로 연구될 때 이미 중국에서는 비판받고 있을 때라는 사실이다.(115 페이지)

 

다산은 다산초당의 조경 원리를 주역(周易)‘에서 찾았다. 은자(隱者)의 길함을 표상하는 것이다.(201 페이지) 이괘(履卦)에 나오는 유인(幽人)이라야 정()하고 길()하다는 사()이다. 물론 다산초당은 다산이 직접 지은 집이 아니다. 다산의 외가 친척인 윤단이 초옥을 짓고 후학들을 가르치던 곳인데 후에 다산에게 내준 것이다.(다산초당으로 오르는 길 오른편의 묘가 윤단의 묘다.: 200 페이지)

 

철학으로 읽는 옛집은 사상과 집의 관계, 사상과 정치의 관계는 물론 사상 자체에 대해 숙고하게 하는 장점이 있는 책이다. 가령 성리학이 가진 기본적 정치 입장은 왕권신수설에 반()하는 것이라는 점이 그렇다.(209 페이지)

 

조선은 치열하게 당쟁했지만 (왕을 바꾸기보다) 왕을 내세워 자신들의 지배 체제를 공고히 하는 것이 더 주효하다는 대전제에는 암묵적으로 합의한 듯 하다(209 페이지)는 말을 보라. 이런 모습은 여야(與野)가 치열하게, 아니 진흙탕의 개처럼 싸우다가도 세비(歲費) 인상에 대해서는 일치하는 현 상황을 생각나게 한다.

 

영남학파는 퇴계의 학문에서 비롯되어 심경(心經)‘의례(儀禮)‘를 중시했고, 기호학파의 예학은 율곡과 구봉(송익필: 宋翼弼)에 의해 계도되었으며 소학(小學)‘주자가례(朱子家禮)‘를 바탕으로 했다.(209, 212 페이지)

 

()란 신의 계시를 받고 신을 섬기는 제사 의례 즉 무격신앙(巫覡信仰)에 가까운 개념이다. 그러나 이를 사상으로서 승화시킨 사람은 공자이다. 공자는 시시콜콜하게 예를 따진 사람이다.(216 페이지) 팔일무(八佾舞)란 것이 있다. 공자는 제후인 계손씨(季孫氏)가 천자의 춤인 팔일무를 춘 것을 질책했다. 공자는 계손씨를 보며 (천자가 아님에도 팔일무를 추었으니) 무엇을 차마 하지 못하겠느냐는 말을 했다.(조재모 지음 궁궐, 조선을 말하다‘ 33 페이지)

 

사계(沙溪) 김장생은 임이정(臨履亭)을 지었다. 이는 (두려워하고 조심하기를) 깊은 못에 임()하는 것처럼 하고 엷은 얼음을 밟는 것 같디 하라는 시경(詩經)‘의 여림종연(如臨淙淵) 여리박빙(如履薄氷)에서 따온 것이다.(230 페이지)

 

저자는 우암(尤庵)을 주자(朱子) 탈레반, 사계(沙溪) 예학의 사도(司徒) 바울이라 부른다.(233 페이지) 송시열이 어린 아이처럼 따랐던 스승은 오직 한 사람 주자(朱子)였다.(242, 243 페이지) 송시열은 사계 김장생과 그의 아들 김집으로부터 배웠다. 송시열은 공자가 다시 태어난다 해도 공자와 주희의 말이 다를 경우 주자의 말을 따르겠다고 밝혔다.(249 페이지)

 

윤선도와 더불어 송시열은 조선 시대를 통틀어 가장 심한 건축 중독자 중 한 명이었다.(257 페이지) 저자는 이황이 툇간을 내면서까지 지키려고 했던 검박(儉薄)한 생활 양식이 17세기에 들어서면서 무너진 것은 왕권에 비해 신하들의 권력이 커진 사회상을 반영한다고 본다.(257 페이지)

 

이언적이 회재(晦齋)를 주자(朱子)의 호인 회암(晦庵)에서 따온 것처럼 송시열은 주자의 호 회암에서 암()을 따와 우암(尤庵)이라 한 것은 유명하다.(271 페이지) 송시열(1607 1689)도 오래 살았지만 그의 정적인 윤증(尹拯: 1629 1724)도 오래 살았다. 윤증은 조선 후기 노론과 소론의 분립과정에서 소론의 영수로 활동했던 조선의 문인이다. 파격적이게도 윤증은 81세에 집을 지었다.(295 페이지)

 

송시열의 주자근본주의에 대항했던 젊은 학자들의 학문적 입장은 양명학(陽明學)이다. 이는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렸다.(299 페이지) 성리학에서 쓰이는 사문난적이란 교리를 어지럽히고 그 사상에 어긋나는 말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이 말을 가장 적극적으로 쓴 최초의 인물이 맹자이다. 그는 공자의 도가 아니라고 생각되는 모든 학설을 이단으로 여겨 철저하게 배격했고 공자와 다른 설을 말하는 자가 있으면 단호히 붓을 들어 탄핵했다.(300 페이지)

 

윤증의 사랑채의 당호는 리은시사(離隱時舍)이다.(318 페이지) ()나 당()이 아니라 사()를 쓴 것이다. 주역 중천건괘(重天乾卦) 구이(九二: 두번째 양효)는 현룡재전(見龍在田) 이견대인(利見大人)이다. 리은 즉 숨어 있던 곳에서 벗어나는 것이기에 현룡이고 땅 위에 있으므로 밭에 있다고 한 것이다.

 

()는 집이라는 의미, ()의 의미가 있는 글자이다. 깊이 생각하고 지은 이름임을 알 수 있다. 리은시사는 용이 숨어 있다가 세상에 나올 때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라 때를 기다려서 나온다는 의미이다.(322 페이지)

 

실사구시의 학풍과 양명학자들을 송시열의 칼날에서 비호한 절대 공로자는 윤증이다. 그는 주자학이나 양명학, 어느 것에도 치우치지 않고 서인이나 남인 할 것 없이 두루 교류하며 주자근본주의 시대에 다각적 추론의 장을 열어놓았던 윤증의 집은 비단 학문이나 정치에서뿐 아니라 민중의 삶에서도 그러했다.

 

흉년이 들면 마을에 공사를 일으켜 그 노임으로 쌀을 지급하고 추수 때는 나락을 길가에 두어 배고픈 마을 사람들이 가져가도 모른 체했다. 그런 윤씨 가문의 가풍 때문에 이 집안은 동학혁명 때도 한국전쟁 때도 아무런 피해가 없었다.(322, 323 페이지) 다 읽고 나니 통쾌한 느낌이 든다. 주자 탈레반 송시열이란 표현 때문이지만 그보다는 윤증의 학문과 삶이 보여준 모범적인 일치 때문일 것이다.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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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미뤘던 청소(淸掃)를 했다. 윤동주 시인의 말처럼 삼동(三冬)을 참아온과제를 전격 감행한 것이다. 먼지 쌓인 불필(不必)의 잡동산이(雜同散異)들을 증거인멸(證據湮滅)하듯 없앴다. 복사 해놓고 읽지 않은 자료들과 유효 기간을 넘긴 건강보조 식품들이 줄줄이 나왔다.

 

자료들이야 그러려니 할 수 있지만 비싼 돈 주고 산 식품들을 버리려니 마음이 아팠다. 청소는 정리(整理)를 포함한다. 정리(整理)는 정리(定離) 즉 헤어짐이기도 하다.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던 책들을 바로 찾을 수 있게 된 것이 정리(定離)의 결과이다.

 

이런 저런 짐들로 빼곡했던 책장 꼭대기를 치워 공간을 만들고 바닥에 쌓아 두었던 책들을 그 자리에 올렸다. 지난 겨울부터 이번 봄 사이에 필요해 찾다가 어디에 있는지 몰라 다시 산 책이 두 권이나 된다. 청소(淸掃)라는 글자는 쓸어 없앤다는 뜻의 소()이다. 그러니 비로 쓸고 물을 뿌림을 의미하는 소쇄(瀟灑)라 해도 좋다.

 

마음에 쌓인 먼지 같은 것들을 불사르는 것이니 다비(茶毘)라 해도 좋다.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지형에서 바람과 물을 얻고 지키는 것이 풍수(風水)라면 신외(身外)의 물()들을 청소해 표류하던 마음의 바람과 물을 바로 흐르도록 한 오늘의 청소는 마음의 풍수라 할 수 있다.

 

예전 나는 책상을 정리하지 않으면 책을 읽지 못할 정도였으나 그런 강박은 어느새 무신경으로 변했다. 그 무신경을 딛고 정리를 하게 된 것은 어제 들은 김진 목사님의 함석헌과 간디강의 덕인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은 일을 한다는, 아니 그런 존재가 사람이라는, 아니 미물(微物)도 노동한다는.

 

신영복 선생님은 달팽이도 공부한다는 말을 했다. “지난 여름 폭풍 속에서 세찬 비바람 견디며 열심히 세계를 인식하고 자신을 깨달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신영복 선생님에 의하면 공부는 모든 살아 있는 생명의 존재 형식이다.(‘담론’ 18 페이지)

 

그렇다. 공부와 노동이다. 덧붙일 것이 있을까? 모든 살아 있는 존재는 사랑한다는 말이리라. 공부와 노동, 그리고 사랑이 하나로 수렴하는 삶을 살아야 하리라. 아니 그런 삶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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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치고 힘들 때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을 듣게 된다. 두 곡 모두 좋지만 특히 1번의 경우 전곡을 들으면 슬픔마저 감미롭게 느껴진다. 함석헌 기념관에서 ‘간디와의 대화‘의 저자인 김진 목사님의 ‘함석헌과 간디‘ 강의(14시 - 16시)를 듣고 틈을 내 교보에 들러 바르텔로미 마돌의 ‘처음 읽는 베르그송‘을 샀다.

이 책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일 때 또는 황량하고 스산할 때 읽으려고 마음 먹고 있던 책이다. 그간 그런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고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는 법이라는 말을 할 상황도 아니다.

난감함이 같은 레벨이어서는 아니고 다산은 유배지에서 어떤 음악과 시에 심취했을까, 란 궁금증이 든다. 음악은 모르겠고 시에 관해서라면 다산은 다른 사람의 것에 의존할 필요 없이 자신의 것을 음미하지 않았을까?

다산은 주역의 괘사로 다산초당에서 산림에 묻혀 사는 기쁨을 이야기했다. 탄탄대로를 걸어가는 상으로 속세를 떠나 조용히 사는 사람의 정(貞)함을 지니면 길(吉)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나는 궁여지책이지만 아니 궁여지책이었던 다산을 보며 위로를 받는다. 자고 나면 컨디션도 좋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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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접시의 시 - 나희덕의 현대시 강의
나희덕 지음 / 창비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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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 대한 관심을 좋은 해석이나 창작 등으로 연결 짓는 것은 가장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 기성 평론가들이나 시인들의 해석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그런 차원에서 고른 책이 나희덕 시인의 한 접시의 시이다.

 

이 책은 나희덕 시인의 현대시 강의집이다. 한 접시의 시란 시를 음식에 비유한 말이다. 어떤 음식은 직접 그것을 만들어보도록 부추기듯 좋은 시는 직접 써보도록 하는 면이 있다. 저자는 모든 시에는 저마다의 입구와 출구가 있고 그것을 통과하는 방법이 조금씩 다르다고 생각한다.(5 페이지)

 

저자는 자신의 해석에 지나치게 매일 필요가 없는바 훨씬 독창적인 해석이나 창작을 기대한다고 말한다.(7 페이지) 책은 여섯 파트로 나뉘어 있다. 시적 언어와 상상력, 화자와 퍼소나, 구조와 리듬, 묘사와 이미지, 은유와 상징, 서정과 서사 등이다.

 

시에서 중요한 것으로 우선 거론할 것은 상상력이다. 상상력은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힘이다.(16, 17 페이지)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집중하는 힘이다. 가령 시적 발견을 위해서는 남들이 무심코 지나치는 것들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개성적인 방식으로 탐구하는 일이 필요합니다.”(19 페이지)란 글을 보라.

 

이 글은 시적 상상력은 막연한 공상이 아니라 대상에 대한 치밀한 관찰에서 시작됩니다.”(137 페이지) 같은 글과 같은 이야기이다. 저자에 의하면 제대로 본다는 것은 온몸의 감각을 동원해서 대상을 감지하고 거기에 자신의 생각을 앉히는 끈질긴 과정을 의미한다.(141 페이지)

 

한편 저자는 시를 쓰는 일은 자신의 안과 밖에서 들려오는 수많은 목소리들을 듣는 일에서 출발한다고 말한다.(115 페이지) 저자는 시를 만나기 위해서는 빈약한 발상을 언어로 다듬느라 책상 앞에서 끙끙거릴 것이 아니라 문밖으로 걸어 나가 세상에 살아 숨 쉬는 것들을 만나야 한다고 조언한다.(20 페이지)

 

시 속의 는 시인 자신이 아니라 작품 속에서 재창조된 이다.(53 페이지) 저자는 고형렬의 거미의 생에 가보았는가를 예시하며 여러분도 바람이 차가운 날, 유리창 밖 난간이나 나뭇가지 사이에서 흩날리는 거미줄과 거기 매달린 거미를 유심히 보며 그 거미가 여러분을 향해 무어라 말하고 있는지 조금이라도 알아들으려고 마음의 귀를 기울이라고 말한다.(75 페이지)

 

시쓰기란 불교 승려들이 화두를 오매불망 간직하고 골똘히 생각하는 것 같은 과정을 필요로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보아야 하고 깊이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발레리는 시와 산문을 이렇게 표현했다. 시는 춤 같고 산문은 보행 같다고. 시는 심미적 특성이나 행위 자체가 목적이고 산문은 대상이나 의미를 명료하게 전달하고 언어의 유용성을 강조한다.(87 페이지)

 

이는 저자가 말했듯 시와 산문을 리듬의 유무로 분류하는 것보다 설득력이 있다. 산문에서 리듬이 없는 것이 아니다.(87 페이지) 한편 보행과 달리 산책은 별 목적 없이 자유롭게 걷는 행위이다.(103 페이지)

 

서정시에 대해 저자는 하나의 순간 속에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모두 통합함으로써 영원한 현재를 창조하는 양식이라 말한다.(151 페이지) 좋은 비유는 만물에 대한 열린 마음과 감각이 깊이 체화될 때 나올 수 있는 것이다.(153 페이지)

 

시가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직설적으로 말하기보다 에둘러 말하기를 즐겨 하고 모순되는 진술들이 공존하기 때문이다.(157 페이지) 시에서 에둘러 말하기, 감추면서 드러내기의 대표적 방식이 은유와 상징이다. 이 수사(修辭)들러 인해 시가 어렵게 느껴지지만 반면 그럼으로써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고 의미가 쉽게 탕진되지 않는다.

 

상징은 집단적이고 원형적이고 은유는 개별적이고 독창적이다.(159 페이지) 은유나 환유를 통해 시인이 표현하려는 것은 AB 자체가 아니라 그 사이에서 끊임없이 유동하는 미묘한 의미들이다. 은유가 불러일으키는 연상 작용에 의해 A이기도 하고 B이기도 한 것, A도 아니고 B도 아닌 제3의 의미가 생성된다.(159 페이지)

 

은유는 의미의 동일성과 보편성을, 환유는 의미의 개별성과 특수성을 중시한다.(161 페이지) 물론 두 수사는 대립적이기까지 하지만 실제로 한 편의 시에서는 씨줄과 날줄처럼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원관념과 보조 관념이 너무 동떨어지면 연관성을 찾지 못해 은유의 해석이 불가능할 것이고 거리가 너무 가까우면 식상한 비유에 그칠 것이다.(161 페이지)

 

저자는 “3할은 알아듣게/ 아니 7할은 알아듣게 그렇게/ 말을 해 가다가 어딘가/ 얼른 눈치채지 못하게/ 살짝 묶어 두게라는 김춘수 시인의 말을 예로 든다. 저자에 의하면 이는 은유의 탄력성을 강조한 것이다.(161, 162 페이지)

 

세계를 좀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감각과 사유의 과정이 필요하다.(164 페이지) 저자는 몽상을 통해 이미지를 제대로 길어올리기 위해서는 과거의 사실보다 가치를 발견하라고 충고한 바슐라르의 말을 인용한다.(191 페이지)

 

한 접시의 시를 반복해 읽으면 시를 읽는 하나의 유용한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우리도 따라 읽고 언젠가 시를 쓰도록 하자. 우선 다른 여러 시론집들을 찾아 읽도록 하자. 섬세하며 설득력 있는 시 읽기의 모범 사례로 한 접시의 시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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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 정리되지 않은 거친 글

지난 화요일(3월 20일) 경기 여주(驪州)에 다녀왔다. 세종의 영릉(英陵)과 효종의 영릉(寧陵)을 찾은 뒤 원효 스님이 창건했다는 신륵사(神勒寺)를 둘러본 미니 일정이었다.

두 곳(능, 사찰) 모두에서 해설을 들었다. 왕릉과 사찰을 하나의 틀로 보려는 내게는 좋은 기회여서 귀기울였다.

능에서는 해설사가 풍수의 조산(祖山)과 안산(案山)을 반대로 설명해 설왕설래가 있었다.

사찰에서 우리는 원효 스님이 그렇게나 많은 사찰을 지었다는 것은 도저히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말을 주고 받았다.

돌아오는 카풀 차 안에서 황** 선생님이 곧 울산 외가에 다녀올 거라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오래 전 간절곶에서 5분 거리, 동해남부선이 지나는 울산 울주군 서생면 신암리에서 한 8개월 살았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8개월이란 지난 2006년 5월부터 2007년 1월까지를 말하고 내가 그곳에서 산 것은 일 때문이었다.

황선생님은 자신의 외가가 신암리와 바로 이웃한 곳이라는 말을 했다. 집에 와 얼마 전 사놓고 못 읽은 책에서 동해남부선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읽었다.

물(勿)자 형국의 땅에 관한 이야기이다. 한자어에서 물(勿)은 무엇인가를 가장 강하게 부정할 때(금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

풍수에서 물(勿)자 형국의 명당인 양동에 주산(主山)과 안산 사이를 흐르는 양동천을 따라 경주와 포항을 잇는 동해남부선 부설 계획이 세워진 1938년의 일이다.

그러지 않아도 좁은 마을이 철도 부설로 두 동강이 나게 되어 마을이 발칵 뒤집어졌다.

마을 사람들은 무작정 반대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물(勿)자 형국의 땅 아랫 부분을 기차가 지나가게 되면 획이 하나 그어지게 되는 것이고 결국 이는 혈(血)자가 됨으로써 마을에 큰 재앙이 닥칠 것이라는 논리를 제시했다.

결국 이 논리는 받아들여져 노선 변경을 이끌어냈다.(함성호 지음 ‘철학으로 읽는 옛집‘ 참고)

지형을 텍스트로 읽은 탁월한 안목이지만 다른 각도로도 볼 수 있다. 경상도 산골에 초하리가 있다. 하는 새우 하(鰕)자이다.

바다와 전혀 관계가 없는 그 마을이 새우 하자를 쓰는 초하리란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산의 모양이 새우 같아서이다.

관건은 무엇일까? 풍수든 주역이든 논리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 아닐지? 물론 자의적 논리로 현실을 왜곡하고 악용하는 사례가 있었다.
정치적 야심을 풍수로 치장한 사례가 빈번했던 조선이 생각난다.

회퇴변척(晦退辨斥; 남명 조식의 제자 정인홍이 회재 이언적과 퇴계 이황의 문묘 종사를 배척하기 위해 상소를 올린 사건)의 대상 중 하나였던 회재 이언적은 조선을 주자 중심의 성리학 국가로 만든 주 인물이다.

그는 용(用)자 모양의 집을 짓는 무리수를 두었다. 용(用)은 일(日)과 월(月)을 위아래로 배치한 글자이다. 일(日)과 월(月)을 나란히 쓰면 명당(明堂)이란 말의 그 명(明)자가 된다.

용(用)자 형국의 땅도 명당이다. 하지만 건물을 그런 형태로 짓는 것은 무리수가 아닐 수 없다.

이언적의 무리수는 정치적 좌절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궁여지책이었다.

하지만 그의 선택은 천리를 받들고 사람의 욕심을 극복하라는 대의명분과 달리 속으로는 결국 욕심을 따랐던 성리학자들을 비판한 이지(李摯)를 생각나게 한다.

주자를 따르겠다는 생각으로 그의 호인 회암(晦庵)의 회를 써 회재(晦齋)라는 호를 쓴 이언적의 학문적 성과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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