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터[633]번째 책이야기

감성 수묵 일러스트 수업 / 김희영

내가 몰랐던 책 책이야기 텍스터(www.texter.co.kr)
감성 수묵 일러스트 수업 / 김희영
먹과 붓으로 쓴 캘리그래피가 ‘감성 글씨’라면 수묵 일러스트는 ‘감성 그림’이다. 먹물 하나로 진하게 또는 여리게 농도를 조절하며 먹과 물감이 화선지에 번져가는 수묵 일러스트가 주는 따스한 감성과 특별한 노하우를 담았다. 여러 번 덧칠하기보다 한 번의 우연함으로 깊이를 더하는 수묵 일러스트만의 그윽하고 활달한 필선과 색채로 내 안의 감성을 깨워준다.

처음 수묵을 접하는 분들과 그림을 처음 그리는 분들, 또 캘리그래피만 쓰셨던 분들 모두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선 긋기에서부터 붓을 다루는 방법, 먹과 물감을 어떻게 담아서 그리는지 등을 세세하고 친절하게 담았다. 기본기를 익힌 후 상큼한 과일, 아름다운 꽃과 우직한 나무, 일상의 작은 소품, 귀엽고 사랑스러운 동물, 사계절의 풍경 등 아름다운 수묵 일러스트를 하나하나 따라 하다 보면 어느새 먹과 붓 그리고 내가 서로 교감하여 몰입한 순간의 행복을 맛볼 수 있다.
◆ 참가방법
  1. 텍스터홈페이지에 회원가입을 먼저 해주세요.
  2. 서평단 가입 게시판에 " 감성 수묵 일러스트 수업 서평단 신청합니다"라고 써주시고 간단한 서평단 가입의도를 적어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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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듣기 위해 탄 만원 전철. 나는 1호선 최북단 역인 소요산에서 탑승하기에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늘 앉아 간다.

한 역 지나 한 여성 분이 내 옆에 앉았다. 샴푸 향인지 향수 향인지를 나누어 주며 그녀는 화장을 하기 시작했다. 이십분 넘게 그리고 바르고 두드리는 정성스러움이 묻어나는 전철을 그녀는 만들고 있다.

옆에서 밑줄을 치며 책을 읽는 나는 순간 나도 화장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붉은 색, 검정 색, 파랑 색 등의 펜으로. 때로 메모도 하는 내 읽기는 아니 밑줄 치기는 책을 다시 볼 때 긴밀한 힘을 발휘한다.

중요한 부분만 다시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너무 많은 곳에 밑줄을 치기 시작했다.

중요한 곳이 그 만큼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습관적으로 치는 것이 아닌가도 싶다.

모르는 부분에는 다시 읽기 위해 붉은 색 줄을 치고 알고 있는 부분은 반가워 검정색 줄을 치고 감동한 부분에는 파랑 색 줄을 친다.

잘못된 주장이다 싶은 곳에는 체크를 하고 글쓰기에 활용할 부분에는 동그라미를 친다.

그러니 내 책은 낙서장 같다. 화장에서 눈, 볼, 입술, 이마, 턱 등 어디 하나 중요하지 않은 곳이 없듯 밑줄치기인 내 독서에서 중요하지 않은 곳은 없다.

내가 펜을 바꿔가며 책을 읽듯 옆의 그녀는 거울, 펜슬, 립스틱, 화운데이션 등을 바꿔가며 화장을 한다.

우리(!)는 랩탑 컴퓨터처럼 백팩을 활용하는 것도 닮았다. 내 백팩 위에는 책, 펜, 폰 등이 놓여 있고 그녀의 백팩에는 화장품과 도구들이 놓여 있다.

그러나 우리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나는 그녀의 몰입을 따라가지 못할 것 같다. 드디어 화장을 마친 그녀가 스마트폰을 들었다.

나와의 차이는 여기서도 드러난다. 나는 메모를 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쥐었다 놓았다 하며 책을 읽지만 그녀는 화장 후 스마트폰을 찾는 것이다.

그녀는 화장을 마친 뒤 곧바로 전철에서 내렸다. 화장하기 위해 전철을 탄 것이 아닐까?

책이 손에 잡히지 않아 순전히 전철을 탔던 내 과거가 생각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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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롱나무 꽃필 적엔 병산에 가라 - 시가 있는 역사문화 에세이
배국환 지음, 나우린 그림 / 나눔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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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관료 출신의 배국환이 쓴 배롱나무 꽃필 적엔 병산(屛山)에 가라는 문화유적이나 유물을 보고 생긴 시적 감흥을 글로 옮긴 자료집이다. 책은 3부로 구성되었다. ‘비극의 역사 현장’, ‘예술혼’, ‘자연, 사랑, 그리고..’ 등이다.

 

저자는 명성황후의 비극을 잊지 않기 위해 경복궁에 갈 때는 늘 건청궁(乾淸宮) 옥호루(玉壺樓)부터 간다고 한다. 역사의 수치를 잊지 않으려는 마음의 반영이다. 저자는 청령포라는 비극의 현장을 언급하며 문종에서 단종으로 이어진 적장자(嫡長子) 승계원칙이 비극의 단초가 되었다고 지적한다.(37 페이지)

 

문종이 아들을 살리고 싶었으면 동생인 수양대군에게 선위(禪位)하고 어린 아들의 훗날을 보장받는 것이 현명했을 것이라 말한다.

 

저자는 강화의 광성보(廣城堡)를 이야기하며 우리나라의 쇄국정책은 당시 국제정세에 어두운 지배층의 잘못된 상황인식과 기득권을 지키려는 욕심에서 비롯된 잘못된 선택이라 결론짓는다.(45 페이지)

 

우리나라는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 전쟁으로 인해 목조 건축물기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고려 시대에 만들어져 아직 남아 있는 것들이 부석사 무량수전, 수덕사 대웅전, 봉정사 극락전 등이다.(극락전이나 무량수전은 모두 아미타불을 주불로 모시는 법당이다.)

 

저자는 수덕사 대웅전을 말하며 수덕여관을 소개한다. 많은 여성들이 수덕사의 문을 두드리기 위해 머물렀던 사연 많은(슬픈) 곳이다. 100여년 전 많은 여성들이 해방구로 여기며 새 세상을 꿈꾸던 곳이 수덕여관이다.(이 이야기를 들으니 경복궁 영추문 앞 보안여관이 생각난다.)

 

저자는 예술혼편의 첫 순서로 세한도(歲寒圖)를 꼽는다.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야(歲寒然後 知松栢之後凋也) 즉 날씨가 추워진 후에 소나무와 잣나무가 다른 나무들보다 늦게 시들게 됨을 알게 된다는 뜻으로 논어 자한(子罕)편을 출처로 한다.

 

저자는 충남 예산의 추사 고택과 제주도 대정마을의 추사 적거지(謫居地)를 가끔 들른다고 말한다.(77 페이지) 영조의 부마집에 입양돼 창의궁에서 자란 추사 김정희는 서촌에 흘러들어온 서당 훈장 천수경이 결성한 문학동인 송석원 시사(詩社)와 인연을 맺어 송석원이라는 바위각자를 썼다.(2017614일 서울신문)

 

조선시대 영조가 등극하기 전에 기거했던 창의궁 터이기도 한 백송 터추사체로 잘 알려진 김정희가 충남 예산에서 태어난 이후 월성위의 봉사손(奉祀孫: 조상의 제사를 맡아 올리는 자손)으로 입양돼 4살부터 살았던 곳이기도 하다. 추사의 증조부인 김한신은 영조의 둘째 딸 화순옹주와 결혼해 월성위에 봉해졌고, 영조는 백송이 있던 이곳에 월성위궁을 내려줬다. 예전에는 인근 대로에 이곳이 창의궁 터였고 추사 김정희의 집터였음을 알리는 비석이 있었다는데 지금은 없다.

 

통의동 백송은 수명이 300년 넘었을 정도로 오래된 나무였다. ‘백송 터에 설치된 안내문에 따르면 통의동 백송은 우리나라 백송(白松) 중 가장 크고(높이 16m, 둘레 5m) 수형(樹形)이 가장 아름다워 1962123일 천연기념물 제4호로 지정됐다.

 

하지만 1990717일 태풍으로 넘어진 이후 고사돼 1993324일 문화재 지정이 해제됐고 같은 해 513일 벌목돼 지금은 밑동만 남아있다.(2017814M이코노미)

 

2015년 여름 한국을 방문한 기 소르망은 모나리자에 견줄 수 있는 달항아리의 미적 가치를 왜 활용하지 않는가, 라고 직설적으로 꼬집었다.(80, 81 페이지) 수화(樹話) 김환기는 달항아리 모습을 화폭에 옮겼다. 고유섭 선생은 무기교의 기교라 했고 최순우 선생은 잘 생긴 부잣집 맏며느리를 보는 것 간다고 했다.(83 페이지)

 

나는 달항아리를 보며 아볼리 비블로 디나니떼 소노르(Aboli bibelot d'inanite sonore)란 말을 떠올린다. 울림이 없는 사라진 골동품이란 말이다.

 

저자는 경주에 가면 거의 감은사지(感恩寺址)를 들른다고 한다. 한적한 멋 때문이다.(85 페이지) 우리나라 탑파(塔婆) 역사의 최고봉이었던 우현 고유섭(1905 1944) 선생은 탑이 목탑에서 전탑(塼塔: 벽돌 전), 석탑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감은사지 석탑은 목탑에서 석탑으로 바뀌는 과정의 시원(始原)이다.(90 페이지)

 

저자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반포일과 창제 과정을 알 수 있는 문자인 한글을 소개한다.(예술혼편 훈민정음해례본’) 이도다완(井戶茶碗)은 새미골 막사발의 일본식 표기이다.(116 페이지)

 

간송(澗松)은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40대 부호 중 한 사람이었다, 오늘날로 치면 1조원 가까운 재산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매년 기와집 150채에 해당하는 쌀을 소작료로 받아들였다.(138 페이지)

 

저자는 유홍준 교수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에서 한 말을 소개한다. 월출산, 도갑사, 월남사지, 무위사, 다산초당, 백련사, 칠량면의 옹기 마을, 사당리의 고려청자 가마터, 해남 대흥사의 일지암, 고산 윤선도 고택인 녹우당, 달마산 미황사와 땅 끝에 이르는 강진과 해남의 답사길을 남도 답사 1번지라 부른다는 내용이다.(147 페이지)

 

저자는 병산서원을 가장 한국적인 풍광으로 소개한다. 병산서원은 낙동강 상류의 산골짜기에 백사장을 앞뜰로 병산을 안산으로 삼아 자리잡은 풍산 류씨의 학당이다.(151 페이지) 임진왜란 시기에 영의정을 지낸 서애 유성룡(柳成龍)의 후학들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배움터인 병산서원은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끝까지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서원이다.(155 페이지)

 

백천동 곁에 두고 만폭동 들어가니/ 은 같은 무지개 옥 같은 용의 초리/ 섯돌며 뿜는 소리 십리에 잦았으니/ 들을 때는 우레더니 와서보니 눈이로다

 

정철이 관동별곡에서 금강산의 만폭동을 묘사한 부분이다.(221 페이지) 겸재(謙齋) 정선(鄭敾)도 금강산을 그렸음은 물론이다. 시대가 다르지만 두 사람의 인연은 더 찾아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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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와 밤을 새다 - 인생의 계단을 오를 때마다 힘이 되어 준 열 명의 그녀들
이화경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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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와 밤은 새다는 소설가 이화경에게 힘이 되어준 열 명의 여성들에 대한 기록이다. 제인 오스틴, 조르주 상드, 실비아 플라스, 프랑수아즈 사강, 버지니아 울프, 잉게보르크 바흐만, 로자 룩셈부르크, 수전 손택, 한나 아렌트, 시몬 드 보봐르 등이다.

 

저자는 이 열 명의 작가들을 여자 창힐(蒼頡)로 본다. 창힐은 문자를 처음 만들었다는 고대의 전설 속 인물로 네 개의 눈을 가진 존재였다. 그들은 환멸의 어두움으로 채색된 현재를 넘어서기 위해 찢어진 겹눈으로 미래를 투시했고, 이미 판가름 난 실패 속에서도 미래의 희망을 건지기 위해 복안(複眼)을 굴린 존재들이다.

 

제인 오스틴은 오만과 편견의 작가이다. 시집도 가지 않고 유산은 한 푼도 받지 못한 무일푼의 여자였던 제인 오스틴은 단독 서재도 없이 가족 공동의 번잡한 거실 한구석에 놓인 작은 테이블에서 소설을 쓴 작가이다.

 

그녀에게 글쓰기는 생계가 달린 문제였다. 하지만 그녀가 평생 쓴 장편 소설로 번 돈은 700파운드에 지나지 않았다. 결국 바느질 삯으로 생활비를 벌어야 했던 그녀는 가난한 작가로 생을 마감했다.

 

그녀는 자신의 글쓰기에 대해 수치심과 우월감을 함께 느꼈다. 그녀에게 글쓰기로 첫 사랑에 실패한 분노와 비통함을 다스릴 수 있었다. 그녀에게 창작은 수명을 단축시킨 열병이었다. 독신으로 42세에 삶을 마친 그녀는 오만과 편견을 나의 사랑하는 아이라 불렀다.

 

오스틴은 소설가는 자신의 생애라는 집을 허물어 그 벽돌로 소설이라는 다른 집을 짓는 사람이라는 밀란 쿤데라의 말에 잘 부합한 작가였다.

 

조르주 상드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란 좌우명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고통이 다가올 때마다 지나갈 것이다. 이것이 내 철학이다.”라며 침착하게 견뎠다. 그녀는 임종을 맞던 순간에 마치 소풍을 가듯 안녕, 안녕, 이제 곧 죽을 거야, 안녕, 안녕이라는 작별 인사를 남겼다.

 

조르주 상드는 문학인들이 모인 파티에서 금발에 방탕한 스물 세 살의 아도니스를 보고 단박에 자신의 뮤즈임을 알았다.(59 페이지) 상드는 많은 편지를 썼다. 쇼팽에게 결별을 선언할 때도 편지를 썼다. 쇼팽이 자신의 딸에게 눈독을 들였음을 뒤늦게 안 상드는 절교 편지를 보낸 뒤 처참한 심정으로 앓아누웠다.

 

상드는 좌파 혁명가 루이 불랑과 손잡고 무정부주의자 바쿠닌과 친교를 맺고 마르크스와도 교유했다. 플로베르 등 여러 인사들에게 편지를 썼다.

 

실비아 플라스(1932 1963)는 너무도 이른 봄날에 너무도 빨리 만개해버린 얼리 블루머(early bloomer)였다.10대에 이미 자신이 창작한 시 400여편을 갖고 있었던 그녀는 초년의 찬란한 성공이 생애 전체를 고통스럽게 하는 독이 되리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77 페이지)

 

그녀의 유일한 장편 소설은 벨 자(Bell Jar)’’이다. 벨 자는 종 모양의 유리 그릇을 의미한다. 실비아는 세상의 온갖 벨 자에 갇힌 여상의 참혹한 실체를 소설을 통해 적나라하게 까발렸다.(78 페이지)

 

저자는 실비아 플라스가 너무 낡은 시대에 너무 젊게 이 세상에 왔다는 세평에 대해 지금 이 세상도 여전히 너무 낡아 보인다는 말로 응수한다. 실비아는 인정받는 작가가 되고 싶은 열망으로 창작에 몰두해 시와 단편을 잡지사와 출판사에 산더미처럼 보내지만 끊임없이 반송되고 계속 거절당한다.

 

반면 남편 테드 휴즈는 첫 시집부터 평단의 주목을 받고 승승장구의 출세 가도를 달린다. 쉽게 상처받고 편집증적 기질마저 있는 실비아에게 작가로서의 성공을 거머쥔 남편의 존재는 비수처럼 그녀의 내면 깊숙이 후비고 들어와 상처를 입힌다.(88 페이지) 하지만 그녀는 남편에게 과도하게 집착한다. 그녀는 남편의 시적 대상인 상상 속 뮤즈에게마저 질투를 느끼며 괴로워한다.

 

그녀는 남편에게 의존하고 싶은 욕망과 의존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느낌 사이에서 수시로 흔들렸다.(90 페이지) 저자는 실비아의 자살은 엄마의 인형이자 남편의 그림자로밖에 살지 못했던 가짜 자아를 죽이고 새로운 자아로 재탄생하고 싶은 강렬한 욕구의 행위가 아니었을까, 란 말을 한다.(93 페이지)

 

프랑수아즈 사강은 열세 살에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을 읽고 자신의 작가로서의 소명을 인식했다. 그녀가 창작이라는 고독하고도 위대한 세계로 들어설 결심을 한 것은 지드, 랭보, 카뮈를 통해서였다. 프랑수아즈 쿠아레에서 프랑수아즈 사강으로 이름을 바꾼 것은 그녀가 프루스트의 사라진 알베르틴에 나오는 등장 인물의 이름을 보고서였다.(102 페이지)

 

사강은 프루스트를 통해 모든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20대에 교통사고로 인해 맞은 모르핀이 중독 증세를 일으킨 이후 평생 그녀는 즁추신경계를 흥분시키는 약물인 암페타민과 코카인에 절어 살았다.(116 페이지) 코카인 소지 혐의로 재판정에 선 그녀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항변했다.(116 페이지)

 

조앤 롤링은 쓸모 없고 게으르고 부도덕하고 국가 재정을 좀먹는 사회적 문제아라는 악의적인 눈길에 무너지지 않기 위해 글을 썼다. 울프는 한숨마저 얼어붙게 만드는 아파트의 방 대신 등불이 따뜻한 카페 구석에 처박혀, 커피 한 모금으로 한 시간을, 다음 한 모금으로 두 시간을 버텼고 흰 종이 위를 굶주린 들개처럼 쏘다니며 8만 개의 단어를 물어다 날랐다.(122 페이지) 첫 책으로 벌어들인 돈으로 그녀는 처음으로 방 세 칸에 정원이 딸린 자신만의 집을 샀다.

 

1929년 출간된 자기만의 방은 울프가 강연 요청을 받고 쓴 글이다. 이 글에서 울프는 여성이 픽션을 쓰고자 한다면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는 명료한 주장을 했다.(130 페이지) 무엇보다 대단한 울프도 한때는 단지 몇 파운드를 벌기 위해 밥벌이에 성실하게 복무한 사람이었다.(132 페이지)

 

헌책방에서 읽고 싶었던 책을 한 아름 사는 소박한 즐거움을 위해서, 빈둥거리면서 여행하기 위해서, 원 없이 글을 쓸 수 있는 원고지와 잉크를 맘껏 사기 위해서, 울프는 제 손으로 돈을 벌고 싶어 했다.(133 페이지)

 

울프는 이렇게 썼다. “나는 여러분에게 아무리 하찮고 방대한 주제라도 망설이지 않고 온갖 종류의 책을 써보라고 부탁하고 싶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행을 하고 빈둥거리기도 하고 세계의 미래와 과거를 사색하고 책을 보고 몽상에 잠기며 길모퉁이를 어슬렁거리고 상념의 낚싯줄을 강물에 깊이 드리울 수 있기에 충분한 돈을 스스로 소유하게 되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울프는 평생 책의 물결에 휩쓸려가고 책으로 비옥해지고 스스로를 책으로 가득 채워갔다. 울프는 케임브리지 대학과 옥스퍼드 대학에 다니는 잘난 남자 형제들에 대해 느껴야만 했던 열등감과 지적인 외로움을 마치 돌처럼 견뎌냈다.(142 페이지)

 

저자는 울프의 제이콥의 방을 정상과 광기 사이의 경계와 틈 사이에서 길항하고 대치하고 저항하는 전쟁터에서 거둔 훈장이라 평한다.(145 페이지)

 

잉게보르크 바흐만은 스물네 살에 마르틴 하이데거 실존주의 철학의 비판적 수용이란 논문으로 빈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155 페이지) 그녀는 이성, 논리, 법칙을 중시하는 사고방식은 개인적 자아의 정신을 억압하고 감성을 파멸시키는 도구이자 남성적 폭력이라 비판했다. 아울러 인간 존재의 총체적인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여성 특유의 감각성이라고 할 수 있는 제2의 이성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155, 156 페이지)

 

그녀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언어와의 갈등을 견지하는 것이었다.(156 페이지) 바흐만은 한때 환희이자 열망이었던 스위스 작가 막스 프리슈가 자신을 연구 대상으로 악용한 것을 알고 깊은 충격에 빠져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 의사들을 찾아 다녔고 그녀의 천재성을 누구보다 사랑했던 연인이자 비운의 시인이었던 파울 첼란의 투신 자살 소식을 듣는다.(161, 162 페이지)

 

저자는 어디선가 바람결을 타고 로자 룩셈부르크라는 이국적인 여성 혁명가의 이름이 들려왔다고 말한다.(176 페이지) 그녀는 러시아 혁명을 전체적으로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는 첫 번째 여자 마르크스주의자라는 칭송을 받았다.(179 페이지) 그녀는 노동자 계급이 자신의 조국이며 자유, 평등, 박애 앞에서 어떤 국경선도 인정하지 않았다.

 

로자는 다섯 살 때 골수 결핵에 걸렸다.(180 페이지) 일찍이 생의 비극성을 간파한 어린 로자는 저 멀리 어딘가에 있는 비의(秘儀)를 찾기 위해 독서에 몰입하기 시작했다.(180 페이지) 낭만주의 시나 읊조리던 순진한 문학소녀였던 로자는 펜을 칼처럼 휘두를 정치 행동가로 훌쩍 도약할 시점에 이르렀음을 알았다.(181, 182 페이지)

 

19세기 러시아 제국이 철권으로 폴란드를 지배하던 그 시절에 여중생 로자는 전제정치에 저항하며 투옥되고 교수형에 처해지는 폴란드의 여자 테러리스트들을 지켜보며 투쟁의 불씨를 가슴에 틔웠다.(181 페이지)

 

섬세함과 강인함, 연약함과 전투성, 이 양립할 수 없는 모순이 그녀의 글과 연설과 정치에 팽팽한 긴장감을 부여했다.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진정한 마르크스주의자가 된 그녀는 본격적으로 민족주의와 쇼비니즘을 격파할 국제주의자가 될 채비를 갖추었다.(186 페이지)

 

그녀는 사회개혁이냐 혁명이냐는 글에서 베른슈타인을 겨냥한 날카로움을 선보였다. 수정주의자와 개량주의자의 논리적 허점을 파고든 로자의 시퍼런 창끝은 예리하고 단호했다.(189 페이지)

 

논리적 엄격성을 유지하면서도 문학적 은유를 자유자재로 활용한 그녀의 글쓰기는 혁명의 망치질이었다.(191 페이지) 그녀는 철저하게 대중의 자발성을 신앙처럼 받들었다.(193 페이지)

 

수전 손택은 `스타일에 대하여`에서 우리의 겉모양새가 우리의 존재 방식이고 가면이 곧 얼굴이란 말을 했다. 저자는 이를 전하며 지식인들의 취향을 추종하거나 엘리트 비평가들의 비평가들의 판단에 충성을 바치지 말고 내 스타일인가 아닌가를 따져서 끌리는 대로 예술 작품과 에로틱한 사랑에 빠지면 된다고 말한다.(205 페이지) 스타일의 획일성이 문제이다.

 

그녀는 문화적 황무지에 살고 있다고 느끼며 마구잡이로 책을 탐독하다 시절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을 접하면서 애리조나 너머 유럽 문명의 진수를 맞보았으며 그 책을 인생의 중요한 책으로 여길 만큼 문학에 탐닉했다.

 

그녀는 작가란 회의적인 족속이며 누구보다 스스로를 더 의심하는 존재라고 여겼다. 그녀는 무엇보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전쟁, 야만, 폭력, 빈곤, 차별, 테러리즘에 가슴 미어질 듯한 고통과 슬픔을 느꼈다. 그녀는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지 않는 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런 고통을 가져온 원인에 연루되어 있지 않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그녀는 평생 징징 거리거나 응석을 부리지 않았다. 병이 늙은 육신을 유린할 때도 그녀는 명랑 할 것, 감정의 휘둘리지 말 것, 차분할 ,것 슬픔에 골짜기에 이르면 두 날개를 펼쳐라 등의 말로 스스로를 위무했다.

 

한나 아렌트는 지적인 아버지 파울 아렌트와 좌파 성향의 어머니 마르타 사이에서 태어났다. 암기력이 탁월하고 지적인 토론을 열망하던 10대 시절 한나는 칸트, 야스퍼스, 키에르케고르 등 수많은 철학자의 책을 섭렵하며 질풍노도의 세월을 보냈다.

 

아침에 책을 읽어야 하기 때문에 학교에 가지 못하겠다는 딸의 요구에 어머니는 아침 수업을 면제해 달라고 학교에 부탁하는 것을 꺼리지 않았다. 늦게 일어나 등교 준비로 부산을 떠는 대신 수도승처럼 커피 한잔을 마시는 느긋한 딸을 어머니는 너그럽게 이해했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유대인을 비난했다는 이유로 도중에 가방을 싸서 나와 버린 당돌하고 비타협적인 딸이 퇴학을 당해도 어머니는 딸의 입장을 이해하고 지지했다. 아렌트의 첫사랑은 철학이었다. 아렌트를 동해 하이데거는 평생의 역작인 존재와 시간의 영감을 받았으며 뜨겁게 사유할 수 있었다.

 

함께 있다가도 벼락처럼 떠나는 연인을 바라보면서 그녀는 고독과 슬픔에 잠겼다. 아렌트는 하이데거를 떠나 하이델베르크로 학교를 옮겨 칼 야스퍼스 밑에서 공부를 개진했다. 아렌트와 야스퍼스는 사제관계이자 정신적 동반자 관계를 평생 지속했다.

 

아렌트는 혁명적 실천가이자 프롤레타리아이며 사유를 종교로 삼은 블뤼허를 만나 평생 지란지교와 같은 부부관계를 맺었다. 세탁부의 가난한 아들이었던 블뤼허는 배달하면서 생긴 돈으로 책을 사고 일을 쉴 때마다 엄청나게 책을 읽었던 깊이 있는 독학자였다.

 

그는 하이데거나 첫 남편과 달리 그녀 마음의 어두운 그림자를 정확하게 이해하려고 배려했다. 블뤼허에게 자극을 받은 그녀는 전체주의의 기원’, ‘과거와 미래’, ‘사회 혁명론’ ‘폭력론’, ‘공화국의 위기같은 주요 저작을 왕성하게 저술했다.

 

악의 평범성이란 악이 평범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악한 일을 한 인간이 평범할 수 있다는 의미, 우리 안에 아이히만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 악을 행할 수 있는 인간의 가능성에 대해 숙고해야 한다는 의미이다.(244 페이지)

 

생각하기의 무능함, 생각의 무능함,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의 무능함(판단의 무능함)이 결합되면 전체주의와 홀로코스트가 부활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245 페이지)

 

1949년 보봐르가 발표한 2의 성은 교황청으로부터 포르노그래피란 혹평을 받았다. 친구 카뮈마저 고개를 흔들 정도였다. 초기 페미니즘적 비판과 마르크스주의적 역사 분석이 결합된 독창적인 이 책이 주장하는 것은 여성은 절대적 타자라는 것, 여성성은 구성된다는 것 등이다.(261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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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 1975)에게 부러움을 느낀 적이 있었던가. 그의 악의 평범성에 대한 자료를 찾다가 그의 생에 어머니(Martha Arendt - Beerwald: 1874 1948), 철학자 연인 칼 야스퍼스(Karl Jaspers: 1883 1969), 시인이자 마르크시스트 철학자 남편 하인리히 블뤼허(Heinrich Blücher: 1899 1970)가 큰 몫을 차지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진보적 성향의 어머니 마르타는 아침에 책을 읽어야 하기 때문에 학교에 가지 못하겠다는 딸을 위해 아침 수업을 받지 않게 해달라고 학교에 부탁하기까지 했던 분이다. 아렌트는 학생 시절 칸트나 야스퍼스 등의 책을 읽느라 학교의 오전 수업에 빠지곤 했다. 아렌트의 어머니는 그런 딸을 너그럽게 이해했다.

 

아렌트는 야스퍼스와 평생 사제관계겸 정신적 동반자 관계를 이어 나갔다. 아렌트는 혁명에 대하여의 첫 장에 존경과 우정과 그리고 사랑을 담아스승 야스퍼스 부부에게 바친다는 글을 썼다. 아렌트는 혁명적 프롤레타리아이자 사유를 종교로 삼았던 하인리히 블뤼허를 만나 평생 친구 같은 부부관계를 맺었다.

 

세탁부의 가난한 아들이었던 블뤼허는 배달 일을 해 번 돈으로 책을 사고 쉬는 날을 골라 엄청나게 책을 읽은 독학자였다. 그는 아렌트 마음의 어두운 그림자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배려했다. 아렌트는 블뤼허로부터 영감을 얻어 전체주의의 기원’, ‘사회 혁명론’ ‘폭력론등의 주요 저작들을 저술했다.

 

정신분석학자 엘리자베스 영-브륄(Elisabeth Young-Bruehl: 1946 - 2011)은 아렌트를 우정의 천재로 묘사했다. 브륄에 의하면 아렌트는 스승, 위대한 정신, 가족, 동료들과의 우정에 그치고 않고 이를 세계 사랑으로 승화시킨 철학자이다.

 

버지니아 울프가 여성이 픽션을 쓰고자 한다면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나는 아렌트의 사례를 보며 여성에게는 좋은 어머니, 동반자 같은 스승, 더 나아가 어두운 그림자까지 이해하려는 배려심 깊은 남편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 좋은 어머니란 개념은 정신분석학자 멜라니 클라인으로부터 영감을 얻은 개념이기도 하다. 정신분석을 활용하는 시()치료를 접하며 이제서야 나는 영화에 입문하게 되었다. 아렌트 같은 사례가 담긴 영화가 있을까? 이것이 요즘 내 화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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