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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속 인생을 묻다 - 찰리 채플린 한시
김태봉 지음 / 미문사 / 2018년 3월
평점 :
시(詩), 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공자(孔子)이다. 시를 통해 감흥을 일으킨다는 의미의 흥어시(興於詩)라는 말을 했고 시 삼백편은 생각에 삿됨이 없다는 의미의 사무사(思無邪)라는 말을 했다. 중문학자 김태봉 교수는 ‘한시 속 인생을 묻다’의 부제를 ‘찰리 채플린 한시‘라 설정했는데 그 이유는 우리는 너무 많이 생각하고 너무 적게 느낀다는 그의 말이 공자처럼 감성의 의미를 강조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시 속 인생을 묻다’의 키워드는 인생이란 말이다. 그러니 이는 다른 말로 사계(四季)를 노래한 선인들의 시들을 통해 희로애락의 감각들을 갈무리하려는 의도가 담긴 이름이라 할 수 있다.
한시는 우리보다 중국에서 수적으로나 질적으로 흥했다 할 수 있다. 한시를 잘 몰라도 도연명, 이백, 두보, 소동파 등의 이름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춘하추동으로 분류된 책에서 역시 우리가 많이 만나게 되는 시인은 두보, 이백, 도연명 등이다.
모두 중국 시인들인데 한용운, 이옥봉, 기대승, 이덕무, 정몽주, 황진이, 이규보, 이색(李穡), 변계량(卞季良), 강정일당, 김삿갓 등의 우리 시인들도 만날 수 있다. 눈에 띄는 사람은 설도(薛濤), 이색(李穡), 주희(朱熹) 등이다.
설도는 ‘동심초’의 주인공이고 이색은 성리학자여서 관심이 가고 주희 역시 그렇다. 황진이, 강정일당, 이옥봉, 설도 등의 여성 시인들의 시도 관심을 가지고 읽을 만하다. 신사임당이나 허난설헌, 매창 등의 시가 빠진 것이 아쉽다.
가장 관심을 끄는 사람은 강정일당이다. 여성이고 성리학자이고 조선 후기에 살았던 분이기에 우리와 많이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집안이 가난하였으나 남편에게 간곡히 성인지도(聖人之道)의 학문을 권면해 남편으로 하여금 학문에 뜻을 두게 했고 자신도 곁에서 삯바느질을 하며 남편의 글소리를 듣고 함께 공부한 분이다.(이은선 지음 ‘다른 유교 다른 기독교’ 30 페이지)
시문과 성리학에 두루 능했던 그의 시를 보자. 가을 매미 소리를 듣는다는 의미의 ‘청추선(聽秋蟬)’이다. ‘만목영추기(萬木迎秋氣)/ 선성난석양(蟬聲亂夕陽)/ 침음감물성(沈吟感物性)/ 임하독방황(林下獨彷徨)‘.. 뜻은 ’어느덧 나무마다 가을빛인데/ 석양에 어지러운 매미 소리들/ 제철이 다하는 게 슬퍼서인가/ 쓸쓸한 숲속을 혼자 헤매네‘이다.
책에 첫 편으로 실린 시는 이옥봉(李玉峰)의 안방의 춘청이란 의미의 춘정(春情)이다. 이옥봉은 조선 중기의 기녀 시인으로 명성이 명나라까지 알려졌다. 유약래하만(有約來何晩) 약속은 했지만 오는 게 어찌 이리 늦는지/ 정매욕사시(庭梅欲謝時) 뜰에 핀 매화 시들려고 하는 때가 되었네/ 홀문지상작(忽聞枝上鵲) 홀연히 가지 위에서 까치 소리 들리자/ 허화경중미(虛畵鏡中眉) 거울 보고 공연히 눈썹을 그려 보네.
사(謝)란 말이 의미심장하다. 이 단어는 사례한다는 의미도 있고 하직한다는 의미도 있다. 매화가 시들려고 하는 것을 사(謝)로 표현한 것이다. 시인은 약속을 했지만 늦게 오는 님을 기다리며 뜰을 바라본다. 그리고 거울을 보고 공연히 눈썹을 그린다. 공연히 그리는 것을 허화(虛畵)라 한 것이다.
만해 한용운 시인의 벚꽃 유감이란 시를 보자. ’지난 겨울은 눈이 꽃과 같더니/ 올봄은 꽃이 눈과 같구나/ 눈도 꽃도 모두 진짜가 아니거늘/ 내 마음 찢어지려 함을 어찌할 거나’란 시다. 구도자 같지 않은 모습일 수도 있다. 그리고 ‘님의 침묵’의 의연함과 거리가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본문의 말대로 공즉시색 색즉시공을 설법하는 승려이기에 시적 안목이 남다른 데가 있는 것으로 보는 것도 좋으리라. 그 만큼 섬세하고 감성적인 존재가 시인이 아닌가.
시를 수놓는 주요 모티브가 꽃임을 우리는 모르지 않는다. 매화, 벚꽃, 살구꽃, 해당화, 모란꽃, 연꽃, 석류꽃, 국화 등이 이 책에서 눈에 들어온다. 술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눈에 띄는 것은 다른 시인의 이름이 등장하는 시편들이다.
두보(杜甫)는 도연명과 사령운(謝靈運)을 이야기했고(38 페이지) 왕유(王維)도 도연명을 이야기했다.(203 페이지) 차이가 있다면 두보는 도(陶)라고 표현했고 왕유는 오류(五柳)라 했다는 점이다. 오류는 도연명의 호이다.
두보는 어떻게 하면 도연명과 사령운처럼 시를 잘 쓸 수 있는지 말했고 왕유는 오류 선생집 앞에서 술 마시고 취해 미친 듯 노래 불렀다는 이야기를 한 것이다. 왕유는 “하루하루 사람은 부질없이 늙어가는데/ 해마다 봄은 다시 돌아오네/ 한 동이 술 있는 걸 즐기면 되지/ 꽃 날리는 것을 애석해 할 필요는 없네”라 노래했다. 이 시에도 술 이야기가 나온다.
애석해 하는 시 가운데 가장 아픈 것은 두보의 시이다. 높은 곳에 올라‘의 의미를 지닌 ’등고(登高)‘에서 시인은 “..만 리 먼 곳 서글픈 가을에 항상 나그네 되어/ 한평생 병 많은 몸, 홀로 누대에 오르네/ 어려움과 고통에 귀밑머리 다 희어지고/ 늙고 쇠약한 몸이라 새로이 탁주마저 끊어야 한다네”라고 노래했다.(236 페이지)
평생 떠돌이 생활을 한 시인이 두보이다. 당나라 시인 두보는 “一片花飛減却春한 조각 꽃잎이 떨어져도 봄기운은 줄어드는데/ 風飄萬點正愁人바람이 만 점 꽃잎을 날리니 정말로 사람을 시름에 젖게 한다”는 시를 쓴 감성적인 사람이다.
이백의 시를 보자. ’여산 폭포를 바라보며’란 시이다. 원제는 ‘망여산폭포(望廬山瀑布)‘이다. “향로봉에 해 비치니, 자색 안개 피어올라/ 아득히 폭포 바라보니, 앞 내가 걸려 있구나/ 공중을 흐르다가 직각으로 삼천척을 내려 떨어지니/ 은하수가 하늘에서 떨어진 게로구나”란 시이다. 안개를 자색(紫色)으로 표현한 감각이 돋보인다. 본문 상으로는 자연(紫煙)이다.
이 시에 나오는 비류직하삼천척(飛流直下三千尺)이란 표현은 너무 유명하다. 이백은 시선(詩仙), 두보는 시성(詩聖)으로 불린다. 두 시인 모두 당나라 시인으로 이백이 11살 연상이었다.(이백: 701 ~ 762. 두보; 712 – 770) 위의 시에서 눈에 띄는 단어는 은하수이다. 두보의 시 ’세병마(洗兵馬)‘가 있다. 이 시에서 통영의 세병관이란 이름이 유래했다. ‘은하수를 끌어와 병장기를 씻는다.’는 구절이다.
이제 주희(朱熹)의 시를 보자. ‘매화(梅花)’란 시다. 개울가에 한매는 이미 피었을 텐데/ 벗은 매화 한 가지 꺾어 보내지 않는구려/ 하늘 끝인들 어찌 꽃이야 없겠냐만/ 무심한 그대 향해 술잔을 드네“란 구절이 눈길을 끈다. 성리학의 성인(聖人)으로서 보인 학문적 분위기와 어딘가 다르게 느껴진다.
이 시는 이 밖에 ”..내 사는 곳 근처 개울가의 복사꽃 활짝 피어 봄빛 어지러운데 당신은 잘 지내나요..“란 조용미 시인의 ‘봄, 양화소록(養花小錄)’을 생각하게 한다. 이리 저리 얽히고 설킨 삶과 인연을 생각한다. 난분분(亂粉粉) 즉 흩날리어 어지러운 세상사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저자의 선(選) 또는 편(編)의 미학을 생각하며 책을 읽었다. 두고 두고 펴볼 시들이 담긴 책이다.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