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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종로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갔다. 책이음 서비스를 이용하면 거주지 외의 도서관에서도 책을 빌릴 수 있다. 고르고 골라 10권을 데스크에 놓으니 직원이 다른 곳에서 서른 권을 빌려 더 빌릴 수 없다고 말했다. 대출 제한이 서른 권이라는 것을 몰랐다. 전곡 도서관에서 10권, 연천도서관에서 10권, 서울도서관에서 5권, 정독도서관에서 5권을 빌린 상태였다.

 

먼 길을 갔으니 그냥 돌아올 수 없어 전곡도서관에 전화해 내일 반납할 테니 하루 먼저 반납처리 해달라고 말해 종로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집에 돌아왔다. 갈 때는 여유가 있었지만 올 때는 무게 때문에 종로 5번 마을 버스를 타고 서대문 역에서 내려 전철을 타고 소요산역까지 와 버스 타고 집까지 왔다. 갈 때 경복궁역에서 내려 걸어간 것과 올 때 마을 버스를 타고 강북삼성병원을 거쳐 서대문역까지 이동한 것은 큰 차이는 없지만 많이 달라 보였다.

 

평소와 다르게 서점에 들르지 못한 것도 크게 느껴졌다. 그제 아침 조금 일찍 하는 것일뿐인데 책을 반납하러 전곡도서관에 가면서 아까운 마음이 드는 것을 느꼈다. 좋은 경험이었다. 책이 제자리에 꽂히지 않아 원하는 책을 포기(?)하고 대안으로 다른 책을 고르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재미 있었다. 나는 책 욕심이 많다. 지식욕이라 생각하지만 물질욕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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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움직이면 사고도 깊어진다.. 일본인 저술가 사이토 다카시가 한 말이다. 책 제목으로 써도 좋을 저 말은 ‘책 읽는 사람만이 닿을 수 있는 곳’이란 최근 책에 수록된 한 챕터의 이름이다. 여기서 생각하게 되는 것이 뇌과학연구소장 안토니오 다마지오의 말이다. 감정이 의사 결정이나 행동, 의식, 자아 인식 등에 아주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다.

 

최근 서울대 박물관 객원연구원인 김취정 박사로부터 창신(暢神)이란 말을 배웠다.(2021년 5월 13일, 20일, 22일 연천도서관 강의 및 답사 진행時) 이 분에 의하면 창신이란 옹색한 생각이 넓어지고 정신이 맑게 트이는 경험이다.

 

주목할 부분은 다음의 구절이다. “우리는 여행을 통해 일상에 갇혀 있던 눈과 귀와 가슴이 활짝 열리는 경험을 하게 되고, 이로부터 옹색한 생각이 넓어지고 정신이 맑게 트이는 창신(暢神)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좁은 생각으로는 삶도 온전히 누리기 어렵고, 학문을 함에 있어서도 진정한 발전을 이루기 어렵다. 갇힌 공간에서 책 속에 갇혀만 있어서는 제대로 된 연구 수행이 어렵다.”(2020년 11월 15일 대학신문 수록 김취정 박사 글 ‘창신의 즐거움’에서)

 

창(暢)은 화창하다는 의미로 많이 쓰이지만 통쾌하다, 통하다, 막힘이 없다, 펴다, 진술하다, 순조롭다 등으로도 쓰인다. 책과 여행이라는 양날개의 중요성을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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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택 교수의 ‘미적분의 쓸모’에 ‘어떤 등산로를 택하더라도 정상에 오르는 것은 매한가지인 것처럼 상태량은 현재의 상태에만 의존하며 과거에 어떤 경로를 지나왔는지와는 무관하게 결정된다. 얼음이 녹아서 된 따뜻한 물인지 뜨거운 물이 식어서 된 따뜻한 물인지(과거)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 나온다. 사라 알란의 말이 생각난다.

 

그녀는 ‘공자와 노자 그들은 물에서 무엇을 보았는가’에서 “자연 현상을 지배하는 원리들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인간의 본성을 지배하는 원리들을 이해하는 것과 같다.”는 말을 했다. 사라 알란이 세운 가설은 고대 중국 철학자들이 자연과 인간 현상에 같은 원리를 적용할 수 있다고 가정했다는 것이다. 맹자는 물이 아래로 흐르듯 인간의 본성도 선을 향한다고 말했다.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이 순리이듯 선을 향하는 인간의 마음도 자연스럽다는 말이다.

 

그러나 선을 지향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에 우리는 당위를 말하는 것이리라. 선하게 살아야 한다는 식으로. 나는 물이 아래로 흐르듯 인간의 본성도 선을 향한다는 말보다 물이 움직이듯 사람의 마음도 늘 무엇인가를 지향한다는 말이 더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정희성 시인은 ‘저문 강에 삽을 씻고‘에서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는 말을 했다. 그렇다. 흐르는 것은 또는 움직이는 것은 물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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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욱 교수의 '스피노자 vs 라이프니츠'에 의하면 라이프니츠는 성(姓)을 라이프뉘츠에서 라이프니츠로 바꾸었다. 뉘 대신 니를 택한 그는 뉘른베르크 대학의 교수 자리를 거절하고 뉘른베르크 연금술사 협회에 가입해 미래를 개척하는 길을 택했다. 라이프니츠로서는 뉘른베르크에서 나름의 전환점에 선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미적분을 두고 다투었던 뉴턴처럼 라이프니츠도 연금술에 큰 관심을 보였다는 점이다. 라이프니츠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된 인물은 토마지우스였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 전공자로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따르는 대부분의 종교와 달리 창조자와 피조물, 신과 자연의 분리를 주장하며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 그리스도교에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인물이다. '스피노자 vs 라이프니츠', 참 유익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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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를 프레너미로 분류한 책을 읽고 있다. 스피노자의 할머니는 가톨릭으로 허위 개종했다는 이유로 마녀로 몰려 화형당했다. 스피노자의 여동생은 스피노자를 상대로 파문(破門)당한 사람은 재산 상속자가 될 수 없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이 스피노자의 손을 들어주었지만 그는 아버지의 가업에 관심이 없었기에 상속을 포기하고 모든 재산을 여동생에게 넘겼다.

 

제국 로마의 박해를 받아 예루살렘을 떠나야 했던 유대인들 가운데 가톨릭으로 강제 개종해야 했던 사람들을 세파르디 유대인이라 한다. 스피노자는 자유인이었다. 그는 파문을 당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유대식 이름인 바루흐를 라틴식 이름인 베네딕투스(벤투)로 바꾸었다.(두 이름 모두 축복받은 사람이라는 의미다.) 스피노자는 조용함과 자유를 사랑하기에 교수직도 거절했다. 나는 무엇에 매료되어 벤투의 스케치북이라는 닉네임을 쓰는가? 내실을 기해야 한다는 의미로 스스로 하는 물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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