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도시 개경 금요일엔 역사책 13
박종진 지음, 한국역사연구회 기획 / 푸른역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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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開城)은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명당의 기본 요소인 사신사(四神砂)를 갖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신사란 풍수의 대상이 되는 땅의 동서남북에 있는 산을 말한다. 그런데 개성은 일찍부터 물과 관련된 지세 즉 구불구불 흐르지 않고 거의 일직선으로 흐르는 것으로 인해 수덕(水德)이 불순하다는 말을 들어 왔다. 개성 내부에서는 상대적으로 물이 귀했지만 비가 많이 오면 그 물이 한 방향으로 쏟아져 내려와 수해로 연결될 가능성이 컸다. 크게 보아 개성은 예성강과 임진강, 넓게는 한강을 끼고 있는 지역으로 우리 국토의 중심부에 해당하는 곳이며 오래전부터 중요하게 여겨지던 곳이다.

 

태조 왕건은 9186월 태봉의 철원 도성 포정전(布政殿)에서 즉위한 지 7개월 만인 9191월 개경으로 수도를 옮겼다. 수도를 옮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노동력 징발 등 경제적 부담도 크고 이전 수도에 터를 잡고 사는 세력의 반대도 많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태조는 건국 직후 반란이 이어지는 불안정한 정세 속에서 정치적 안정을 위해서 천도(遷都)를 단행했다. 적현(赤縣) 6개와 기현(畿縣) 7개로 구성됐던 개성부는 현종 9년인 1018년 지방 제도 개편에 따라 혁파되고 개성현 지역과 장단현 지역을 중심으로 특별구역이 재편성되었다. 그것을 경기(京畿)라 부르게 되면서 우리 역사에서 처음으로 제도적으로 경기라는 명칭이 등장했다.

 

이후 경기 영역은 몇 차례 개편이 있었지만 왕도를 지원하고 보유하기 위한 특별구역의 위상은 고려 말까지 계속 유지됐다. 경기는 고려 왕도인 개경을 유지하고 보위하기 위하여 개경 바깥에 설치한 특별 구역이다. ()은 천자의 도읍, ()는 천자가 직접 관할하는 도성 주변의 땅을 의미했다. 경기는 사방의 근본이기 때문에 다른 지역보다 무역을 가볍게 하고 왕의 교화도 먼저 시작해야 할 것으로 인식되었다. 실제 경기 지역은 수도 개경을 둘러싸고 있는 곳이어서 오히려 다른 지역보다 요역(徭役)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 조세 부담이 많은 곳이었다. 또 국가의 위급한 일이 생기면 경기 지역에서 군역 징발(徵發)을 먼저 했고 경기는 다급한 재정 수요를 해결하기 위해서 임시세인 과렴(科斂)이 자주 시행된 곳이기도 했다. 이렇게 경기는 다른 지역보다 부담이 많은 지역이었기 때문에 조세 감면과 구휼(救恤)이 자주 수행되는 곳이기도 했다.

 

개경 도성 밖 사방에 설정된 사교(四郊)는 도성과 경기에 속한 군현 경계까지의 공간으로 조선 시기 한양의 성저십리(城底十里)와 비슷한 공간이었다. 사교는 도성은 아니지만 도성의 배후지로서 역, , 왕릉, 제사 공간 등 중요한 시설이 설치된 곳이었고 도성 안에서 할 수 없는 의례를 하는 공간이었다. 또 사교는 왕이 사냥을 하거나 군사가 주둔하고 훈련하는 곳이기도 했다. 대표적인 제사 공간인 태묘는 나성 밖 동교에 있었다. 또 고려 때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원구단(圜丘壇)은 원나라 이후의 천단이 북경 남쪽에 있었던 것과 같이 남교에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조선 중기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원구가 회빈문 밖에 있었다고 한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또 동남쪽에 있었던 적전(籍田) 역시 의례 시설에 속한다. 이 외에 송악산 정상과 박연폭포 근처에 있던 신사(神祀), 개경 주변에 분포한 왕릉과 절이 위치한 곳 역시 사교의 범위에 포함할 수 있다. 성을 성곽이라 하는 것은 보통 성을 내성과 외성으로 쌓았기 때문이다. 내성을 성()이라 하고 외성을 곽()이라 한다. 고려 시기의 모든 길은 개경으로 통했다. 개경의 주요 길은 궁궐, 관청, 시전(市廛) 등 중요한 시설과 성곽의 성문을 연결했다.

 

왕조시대 궁궐은 도성의 핵심 공간이었다. 궁궐은 국왕의 정치 공간이자 생활공간이었고 또 의례 공간이기도 했다. 고려 시기 개경의 정궁 곧 본궐은 송악산 남쪽에 있었다. 고려 말 이후 전각은 사라지고 터만 남은 고려 본궐터인 만월대의 경관은 조선의 법궁이었던 경복궁과 사뭇 다르다. 북한의 개성에 있는 고려 궁궐터는 지금 가기도 어렵지만 그것 말고도 고려 궁궐에 대한 이해는 쉽지 않다. 우선 송악산 남쪽의 본궐은 이름도 없다. 원래 이름이 없었는지 아니면 본래는 이름이 있었는데 지금 전해지지 않는 이유는 정확히 모른다.

 

고려의 본궐은 고려 초기부터 전쟁과 화재 등으로 훼손되었다가 중건되는 일이 반복되었다. 제일 먼저 확인되는 궁궐의 피해는 거란의 2차 침입 때인 1011(현종 2) 1월로 현종은 거란의 침입으로 개경을 떠난 나주까지 내려갔다. 개경에 돌아와서 본 궁궐에 들어가지 못하고 이궁인 수창궁으로 들어갔던 현종은 이후 두 번 궁궐 공사를 했다. 강화 천도 직후까지 남아 있던 개경의 수창궁은 몽골과의 전쟁 기간에 파괴된 것으로 보인다. 연경궁은 본궐 동쪽 가까운 곳에 있던 이궁이었다. 본래 현종의 비 원성태후의 궁이었던 연경궁은 덕종 때 왕의 누이 연경궁장공주에게 지급되어 공주 궁으로 바뀌었다가 1098년 숙종이 태자를 세우고 첨사부를 설치한 이후 공주 궁에서 왕의 이궁이 되었다.

 

고려 시기에 태묘와 사직이 정비된 것은 성종대였다. 이때 유교의 정치 이념을 바탕으로 중앙정치제도를 정비했고 건국 이래 제대로 갖추지 못했던 태묘와 사직을 설치했으며 아울러 유교적 교육기관인 국자감을 설치했다. 태묘와 사직은 도성의 상징적인 제도였기 때문에 그 위치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정해진 격식이 있었다. [주례]에는 궁궐을 중심으로 태묘는 왼쪽에, 사직은 오른쪽에 위치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것은 태묘는 동쪽에, 사직은 서쪽에 위치해야 한다는 뜻이다. 고려 시기 수도인 개경에 설치된 대표적인 교육기관이 국자감이다.

 

국자감은 교육기관이지만 교육만 맡았던 것은 아니다. 국자감에서는 공자를 비롯한 유학의 성인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일과 과거의 첫 번째 시험인 국자감시를 주관했다. 그래서 국자감에는 그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조직, 시설, 관원이 배치되었다. 많은 사람이 모여 사는 도시에서 시장은 꼭 필요한 시설일 뿐 아니라 도시의 상징이기도 하다. 인구의 집중과 시장의 발달에서 도시가 발생했다고 보는 견해는 도시사의 고전이론이다. [주례] 고공기에 조정 곧 관청은 궁궐 앞에, 시장은 뒤에 둔다고 한 것은 시장이 아주 오래전부터 도성에 꼭 필요한 시설이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개경의 절은 풍수적으로 개경을 비보(裨補)하는 기능을 했다. 고려 태조는 개경으로 천도하면서 개경에 절과 탑을 세워 개경의 풍수를 보완하는 작업을 했다. 고려왕릉은 조선 건국 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서 시간이 지나면서 많이 훼손되었고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도굴 등으로 본 모습을 잃었다. 해방 후 북한에서 고려 왕릉을 정비하고 그중 일부는 발굴조사도 했다. 최근에는 개성에 있는 고려 왕릉 일부가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지만 주로 개성 주변에 있는 고려 왕릉은 여전히 우리에게 낯설다.

 

조선 건국 후 고려 왕릉에 대한 관심은 크지 않았다. 조선 태조 즉위교서에서 왕우를 귀의군으로 봉하여 왕씨의 제사를 받들게 했지만 태조 때에는 고려왕릉의 관리까지는 관심을 가지지 못했다. 조선 초 고려왕릉에 대한 관리는 부실했고 숭의전에 모신 태조, 현종, 문종, 원종을 제외한 다른 왕의 능들은 거의 방치되었다. 조선 초 고려왕릉에 대한 관리는 1476년 성종 7년에 완성한 [경국대전]에 규정되었다. 그 내용은 역대 시조 및 고려 태조 이하 4(태조, 현종, 문종, 원종)의 능침은 소재지의 수령이 매년 돌아보고 또 밭을 일구거나 나무 하는 것을 금()한다는 것이다.(141 페이지)

 

고려는 몽골과 전쟁 중이던 12327월 강화로 천도 했다가 12705월 개경으로 돌아왔다. 919년 고려의 수도가 된 이후 개경은 강도(江都)로 천도하기 전까지는 외적의 침입과 정변 등으로 궁궐 등 주요 시설이 훼손되기도 했지만 수도의 위상은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그렇지만 1232년 수도를 강도로 옮기면서 개경은 수도의 지위를 내어주었다. 고려 말 개경의 위상은 공민왕 이후 천도 논의가 등장하면서 흔들렸다.

 

고려 전기에는 정종(定宗)이 서경 천도를 주장했고 문종과 숙종 때는 남경을 건설했으며 인종 때에는 묘청이 중심이 되어서 서경 천도를 주장했다. 또 강도로 천도했다가 개경으로 환도한 이후에는 1290년 원나라의 반란 세력인 카다인이 침입했을 때 충렬왕이 잠시 강도로 피신한 것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천도 논의는 없었다. 고려 말에 대두된 천도 논의에는 개경의 지리적 위치가 외적의 침입에 취약하기 때문에 내륙으로 수도를 옮겨야 한다는 논리가 보이기도 하지만 천도론은 대체로 이전 시기와 마찬가지로 개경의 지덕이 쇠했다는 지기쇠왕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고 아울러 천도론이 등장하는 배경에는 불안정한 정국의 변화를 꾀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었다.

 

고려 말 천도 대상지로 주목된 곳으로는 철원, 연주(지금의 연천군), 강화, 충주, 기달산, 회암(경기도 양주 회암사지) 등 다양했지만 실제 왕이 움직인 곳은 남경 곧 한양(백악)뿐이었고 그것도 천도라기보다는 몇 달 정도 왕이 거처를 옮긴 정도였다. 공민왕 후반기 이후 궁궐 운영과 관련하여 주목되는 것은 수창궁과 화원이다. 고려 초부터 중요한 이궁 중 하나였던 수창궁은 몽골군과의 전쟁 중에 소실된 것으로 보인다. 1370(공민왕 19) 공민왕은 수창궁 터에 행차해 조영(造營)을 명령했는데 이때 훼손된 본궐의 강안전과 연경궁 대신 수창궁을 중건하여 사용하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수창궁은 공민왕 대에는 완공되지 못했고 1384년 윤 9월 낙성되어 그 후 중요한 궁궐로 기능했다. 수창궁에서 공양왕과 조선 태조가 즉위한 것은 고려 말 수창궁의 위상을 보여준다. 또 충혜왕 때부터 보이던 화원은 1373(공민왕 22) 628각전을 건설한 후 우왕 때 주요한 궁궐 공간이 되었다. 우왕 14년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개경을 압박하자 수세에 몰렸던 우왕과 최영이 머문 곳이 화원이었는데 그것은 당시 화원이 우왕에게 가장 중요한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개경의 태묘는 나성(羅城) 밖 부흥산 남동쪽에, 사직은 나성 안 오공산 남쪽에 있었다. 나성은 고려의 수도인 개경을 둘러싸고 있던 거대한 외성이다. 수도 방어와 도시 구획을 위해 쌓은 성곽이다. 나성을 기준으로 보면 태묘는 나성 밖, 사직은 나성 안에 있게 되어 그 위치가 자연스럽지 않게 보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태묘와 사직이 설치되었던 성종 때는 아직 나성이 축조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당시 태묘와 사직은 모두 도성인 황성 밖이었다. 또 사직은 궁궐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에, 태묘는 궁궐에서 상당히 먼 곳에 있게 되어 태묘와 사직의 위치는 궁궐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성이 많이 어그러진다. 그렇지만 개경 궁궐의 위치 역시 서쪽의 오공산과 동쪽의 부흥산의 중심이 아니라 북쪽에 치우쳐 있었다. 즉 아직 나성이 축성되기 이전에 동쪽의 부흥산 남쪽에 태묘를 설치하고 서쪽에 오공산 남쪽에 사직을 설치했는데 나중에 나성이 축성되면서 결과적으로 사직은 성안에, 태묘는 성 밖에 위치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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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쯔만이 들려주는 열역학 이야기 - 과학자들이 들려주는 과학이야기 44 과학자가 들려주는 과학 이야기 131
정완상 지음 / 자음과모음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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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겁고 차가운 정도를 나타낼 때 온도를 사용한다. 우리는 물이 어는 온도를 섭씨 0°C, 물이 끓는 온도를 섭씨 100°C로 하고 그 사이를 100 등분한 눈금을 섭씨 1°C로 하여 온도를 정의한다. 온도는 왜 달라지는 것일까? 물질을 구성하는 분자들의 움직임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분자란 물질을 이루는 것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알갱이를 말한다. 분자는 온도가 낮을 때는 느리게 움직이고 높을 때는 활발하게 움직인다. 이러한 분자들의 움직임이 얼마나 활동적인가를 나타내는 것이 바로 온도다. 온도가 높은 물질에서 온도가 낮은 물질로 이동하는 에너지를 열이라 한다.

 

이때 이동한 열의 양을 열량이라고 하며 단위로는 칼로리를 사용한다. 1cal의 열은 물 1g을 섭씨 1°C 올리는 데 필요한 열량을 말한다. 열량은 물질의 질량에 비례한다. 또한 열량은 온도 변화량에 비례한다. 철의 비열은 8분의 1이다. 같은 질량의 두 물체에 같은 열량을 공급해도 비열이 작을수록 온도 변화가 크다. 비열이 작은 물질에는 열을 잘 흡수하는 성질이 있다. 물보다 철이 열을 잘 흡수하여 분자들의 운동이 더 활발해지기 때문에 온도가 더 많이 올라가는 것이다.

 

다른 물질에 비해 비열이 큰 편에 속하는 물은 온도가 잘 변하지 않는다. 사람의 몸도 온도가 잘 변하지 않는데 그것은 우리 몸의 70%가 물이기 때문이다. 비열이 낮은 철이 주요한 구성 성분인 현무암은 그 만큼 풍화 특히 온도에 약한가? 그렇지 않다. 현무암은 철과 마그네슘이 풍부하여 비열이 상대적으로 낮지만, 이 특성 때문에 온도 변화에 따른 풍화에 특별히 더 취약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암석의 치밀한 구조와 화학적 성질 덕분에 물리적 풍화에 대한 저항력이 강한 편이다.

 

바닷가에서는 낮과 밤에 부는 바람의 방향이 서로 다르다. 낮에는 바다에서 육지로 해풍이 불고 밤에는 육지에서 바다로 육풍이 분다. 햇빛을 받는 낮 동안 물은 비열이 높아서 온도가 적게 높아지고 모래는 비열이 작아 온도가 크게 높아진다. 따라서 온도가 높은 모래쪽의 공기는 뜨거워져서 위로 올라가고 그 빈 곳 바다 쪽으로 공기들이 밀려들어오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해풍이다. 밤에는 비열이 큰 물은 온도가 조금 내려가고 비열이 작은 모래는 많이 내려간다. 이때는 바다 쪽 공기가 더 뜨거워 위로 올라가고 그 빈 곳을 모래쪽 공기들이 채우므로 육풍이 부는 것이다.

 

비열이 크다는 것은 온도 변화가 크지 않다는 것이다. 올라가는 것도 크게는 아니고 내려가도 크게는 아닌 것이다. 철사줄을 뜨겁게 가열하면 길이가 길어진다. 이는 철사줄에 열이 공급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열에 의해 물체의 길이가 늘어나는 것을 열팽창이라 한다. 왜 열팽창이 일어날까? 뜨거워지면 분자들의 운동이 활발해지기 때문이다. 뜨거울수록 분자들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기 때문에 분자로 이루어진 물질들이 길어지게 된다.

 

같은 열을 가열해도 잘 늘어나는 물질이 있고 그렇지 않은 물질이 있다. 이때 비례상수를 열팽창 계수라고 한다. 이 계수가 클수록 열팽창이 잘 되는 물질이다. 고체와 액체 중 액체가 더 잘 팽창한다. 아주 더운 날 자동차 기름탱크에 휘발유가 넘쳐 흘러나오는 것은 바로 액체인 휘발유가 고체인 기름 탱크보다 팽창이 크기 때문이다. 물은 섭씨 4°C 이상이 되면 팽창한다. 온도가 섭씨 4°C 이하로 내려가도 팽창한다. 물은 섭씨 4°C 때 부피가 제일 작고 섭씨 4°C보다 커지거나 작아지면 부피가 커진다. 부피가 작다는 것은 밀도가 크다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밀도라는 말이 나왔다. 밀도는 물질의 질량을 부피로 나눈 값이다. 부피가 작으면 밀도가 커진다. 즉 온도가 섭씨 4°C일 때 물의 밀도가 가장 크다. 온도가 큰 물질은 밀도가 작은 물질에서 가라앉는다. 4°C일 때 물의 밀도가 가장 크다. 즉 가장 무거운 물이 된다. 그러므로 온도가 섭씨 4°C인 물과 다른 온도의 물을 섞으면 온도가 섭씨 4°C인 물이 무거워 밑으로 가라앉게 되는 것이다.

 

공기의 온도가 내려가면 공기와 부딪히는 호수 물의 온도도 내려간다. 이때 공기와 가장 가까운 호수 표면의 수온이 먼저 내려간다. 이렇게 표면의 수온이 내려가 섭씨 4°C가 되면 무거워져서 호수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이런 식으로 물의 온도가 섭씨 4°C가 되면 아래로 가라앉아 결국 모든 물은 섭씨 4°C가 된다. 이후 호수 표면의 온도가 더 내려가면 얼음이 된다. 얼음은 섭씨 4°C의 물보다 가볍기 때문에 호수 표면 위에 뜨게 된다. 이렇게 호수 표면이 얼게 되면 얼음 아래의 물은 차가운 공기와 만나지 않게 되므로 원래의 온도인 섭씨 4°C를 유지할 수 있다. 그래서 호수 표면의 얼음 아래는 물의 온도가 섭씨 4°C로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열은 온도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이동한다. 열이 전달되는 방식에는 전도, 대류, 복사가 있다. 물체를 통해 열이 직접 전달되는 것이 열의 전도다. 열의 전도가 일어나려면 분자들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야 한다. 즉 열의 전도는 주로 고체 상태의 물질에서 이루어진다. 액체나 기체에서 열이 전달되는 것을 대류라 한다.

 

검은색은 태양에서 오는 빛을 잘 흡수하고 흰색은 잘 반사시킨다. 이런 이유에서 겨울에는 검검은색 옷을 많이 입고 여름에는 흰색 옷을 많이 입는 것이다. 고체는 부피가 일정하고 모양이 일정하다. 고체가 열에너지를 받게 되면 분자들의 운동이 활발해져 분자들 사이의 거리가 멀어진다. 이러한 상태를 액체라고 한다. 기체는 부피도 일정하지 않고 모양도 일정하지 않다. 1g을 증발시키기 위해서는 539cal의 열을 공급해주어야 한다. 기체는 열에너지를 받아서 달아나게 되므로 남아 있는 물질은 열에너지를 잃어버린 셈이 된다. 그래서 남아 있는 물질의 온도는 내려간다.

 

증발은 액체가 열을 공급받아 기체가 되는 과정이다. 반대로 기체가 열을 빼앗겨 액체가 되는 과정을 응축이라 부른다. 구름이나 안개가 만들어지는 것도 응축 현상이다. 더운 공기가 위로 올라가면 다른 공기 분자들과 충돌하여 열에너지를 잃고 차가워진다. 이때 차가워진 공기 속 수증기가 응축하여 액체인 물방울로 바뀌어 구름을 만든다. 응축 현상이 땅 근처에서 일어나면 안개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사실 알고 보면 안개와 구름은 같은 현상이다. 이산화탄소는 섭씨 영하 78°C에서 고체인 드라이아이스가 됩니다. 이것이 열을 받으면 액체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기체인 이산화탄소가 된다. 기체 이산화탄소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열역학 제1 법칙은 에너지 보존법칙이다. 물질이 받은 에너지는 다른 종류의 에너지로 바뀌지만 모든 에너지의 합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닥에 있는 돌멩이가 저절로 위로 올라가지 않는다. 이런 일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원리가 바로 에너지 보존법칙이다. 바닥에 있는 돌멩이는 정지해 있으므로 운동 에너지가 0이고 바닥을 기준선으로 하면 위치 에너지 역시 0이다. 그러므로 돌멩이가 가진 에너지의 총합은 0이 된다.

 

만일 이 물체가 저절로 위로 올라간다고 하면 바닥보다 위로 올라갔으므로 위치 에너지는 플러스가 된다. 그런데 전체 에너지가 0이었고 이것이 보존되니까 운동 에너지는 음수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운동 에너지는 속력의 제곱에 비례하므로 음수가 될 수 없다. 그래서 돌멩이가 저절로 위로 올라가는 일은 절대 없다. 에너지가 보존된다고 했는데 그럼 왜 물체를 밀면 물체가 조금 움직이다 멈출까?

 

물체를 밀면 물체는 운동 에너지를 가지게 된다. 하지만 물체는 바닥과의 마찰 때문에 운동 에너지를 잃어버리면서 속력이 줄어들고 마지막에는 속력이 0이 되어 멈추게 된다. 그럼 이때 물체의 에너지는 사라진 것일까? 그렇지 않다. 이때 사라진 운동 에너지는 다른 종류의 에너지로 바뀐 것이다. 물체와 바닥의 마찰에 의해 생긴 열에너지가 바로 그것이다. 이렇게 물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종류의 에너지 총합은 보존되고 다른 종류의 에너지로 바뀌는 것이다.

 

모터는 전기 에너지를 운동 에너지로 바꿔주고, 전등은 전기 에너지를 빛 에너지로, 전열기는 전기 에너지를 열 에너지로, 발전기는 운동 에너지를 전기 에너지로, 열기관은 열 에너지를 운동 에너지로 바꿔준다. 외부로부터 에너지의 공급 없이 물체가 저절로 움직이는 일은 없다.옛날 사람들은 외부 에너지의 도움 없이 저절로 움직이는 기관을 생각했다. 그것을 제1종 영구기관이라고 부른다. 물론 열역학 제1 법칙에 따르면 그런 기관은 만들 수 없다.

 

엔트로피는 무엇으로 변하다라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 엔트로피에서 나온 말이다. 엔트로피란 무질서한 정도로 나타내는 양이다. 즉 무질서할수록 엔트로피가 크다고 말한다. 위로 올라간 공은 저절로 아래로 떨어진다. 물체는 위에서 아래로는 저절로 움직이지만 아래에서 위로는 저절로 움직이지 않는다.

 

자연에서의 어떤 과정은 한 방향으로만 진행이 되고 그 반대 방향으로의 과정은 저절로 일어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열역학 제2 법칙이다. 열역학 제2 법칙은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법칙이다


엔트로피가 점점 커져 최대가 될 때까지 반응이 이루어진다. 모든 열기관은 자신이 받은 열을 모두 일로 바꿀 수 없다. 이때 열기 관이 받은 열 즉 열기관이 한 일의 비율을 열기관의 효율이라고 부른다. 효율이 100%인 열기관은 존재하지 않는다. 만일 그런 기관이 있다면 그것은 열역학 제2 법칙에 위배된다. 그런 기간은 제2종 영구기관이라 부른다. 물론 그런 연구기관을 만들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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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부터 지질공원해설사 일을 했다. 2019년 말 발생한 COVID 19 때문에 근무 초부터 여러 모로 어려웠다. 해설사가 되기 위해 받은 교육은 퀄리티나 퀀티티 면에서 많이 부족했고 근무 이후 받은 교육도 그와 별 다를 바가 없었다. 대부분 스스로 알아서 해야 했다. 몇 차례 현장 답사와 실내 교육을 받았지만 체계와 지속성 면에서 많이 아쉬운 일정이었다. 나의 경우 연천 해설사가 되기 전 3년의 서울 해설 경험이 있었고 비교적 과학책을 많이 읽어 나름의 자신감을 가졌다.

 

2022년 말부터 서울대학교 지구과학교육 전공/ 일본 모() 대학 이학부(理學部) 박사 출신의 교수님께 메일을 드려 질문을 드리고 답을 받은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해설사가 된 지 6년이 된 지금 어느 정도 안정(安定)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안정이 안일(安逸)이 되지 않도록 늘 경계한다. 올해는 최근 몇 년간 부진했던 읽기를 떨치고 많은 책을 읽고 있다. 아직 5월이 며칠 남았는데 현재까지 63권을 읽었다.(나는 서평을 쓴 것만 읽은 것으로 계산한다.) 4권 정도를 제외하고 전부 과학책이다.

 

해설사가 되기 전과 후에 차이가 있다면 주로 의거하는 것은 과학책이나 되기 전은 여러 분야를 읽었고 지금은 지구과학 분야에 집중한다는 점이다. 물론 그런 가운데서도 올해는 물리학 책도 많이 읽었다. 원래 책을 많이 읽었지만 더욱 그러하게 된 것은 20253월부터 더 칼럼니스트에 지구과학 글을 쓰게 되면서부터다. 특기할 만한 책은 많지만 전공과 관련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책이 두 권 있다. 존 맥피의 [이전 세계의 연대기], 헬렌 고든의 [깊은 시간으로부터].

 

제목만 보면 지구과학 책이라 짐작하기 어려운 이 책은 문인(文人)이 쓴 인상적인 지구과학 책이라는 공통점으로 묶을 수 있는 책이다. 인류의 역사나 지구의 기록된 역사를 아득히 초월하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거대한 지질학적 시간 규모를 뜻하는 깊은 시간이란 표현은 존 맥피의 표현이다. 그것을 헬렌 고든이 책 제목으로 쓴 것이다.

 

올해 초 한 지질학 교수님께 헬렌 고든의 [깊은 시간으로부터]에 나오는 구절에 대해 문의했다. 그 구절은 영국을 남동에서 북서로 잇는 선(이스트앵글리아에서 하일랜드 서부로 이어지는 대각선)을 따라서 이동한다면 쌓인 지 얼마 안 되는 이스트앵글리아의 제4기 퇴적층에서부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해서 런던 분지의 고제3기 점토, 노스다운스의 백악기 상부 백악, 코츠월드의 쥐라기 어란석, 페나인 산맥을 둘러싸고 있는 트라이아스기의 사암, 레이크 지방의 오르도비스기와 실루리아기 암석들, 그램피언스 산맥의 캄브리아기 노두를 거쳐서 하일랜드 북서부와 헤브리디스 제도에 있는 가장 오래된 암석들에 이른다.”는 글이다.

 

교수님을 통해 나는 저 글이 그 교수님의 대학원 시절 영어(지구과학 영어) 해석 시험 지문으로 나왔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렇게 많은 부분은 통한다. 나는 이 인상적인 구절을 접하며 육지가 아닌 바다에 대해 전하고 싶었다판구조론이 보는 해양은 끊임없이 생성되고 소멸하며 지구 내부와 물질을 순환시키는 거대한 판(Plate)의 경계이자 무대다우리는 이렇게 근원적인 개념으로 상상력을 펼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할 수 있게 하는 최선의 도구는 책이다. 책은 최고의 스승이다. 가령 AI가 놀라운 능력을 발휘해도 좋은 질문을 하려면 좋은 책을 많이 읽어야 하다.

 

지난 번 알라딘의 나도 서점 주인 코너에서 나는 한 번역가에게 좋은 지구과학 책 많이 번역해달라고 부탁했다. 번역이 번역가가 홀로 정하는 것이 아니지만 바람을 표현한 것이다. 독기견서 여우고인(讀旣見書 如遇故人), 독미견서 여봉양우(讀未見書 如逢良友)란 구절이 있다. 이미 읽었던 책을 다시 읽을 때는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옛 친구를 만난 것과 같이 반갑고 아직 읽지 않은 새로운 책을 읽을 때는 좋은 친구를 처음 사귀는 것과 같이 설레고 기쁘다는 말이다. 이런 구절을 음미하는 5월은 책 읽기 좋은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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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콧이 들려주는 남극 이야기 과학자가 들려주는 과학 이야기 23
좌용주 지음 / 자음과모음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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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에는 북극곰이 살고 남극에는 펭귄이 산다. 남극은 세계에서 가장 춥고 가장 높고 가장 거친 대륙이다. 전 세계 얼음의 90%가 남극에 있다. 남극대륙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수천 km나 떨어져 있는 우리와 아주 깊은 관계가 있다. 남극대륙은 지구의 기후와 해양 시스템에 커다란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좁은 의미에서 남극은 남극대륙만을 가리킨다. 하지만 남극이라는 독특한 환경은 대륙 주변에 차가운 바다를 떼어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 남극을 둘러싸고 있는 지구에서 가장 차가운 바다를 남빙양이라 부른다.

 

넓은 의미의 남극은 대륙과 그 주변의 남빙양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남빙양과 다른 바다들과의 울퉁불퉁한 경계 즉 남위 50°~ 60° 사이를 넘나드는 이곳을 남극수렴선이라 부른다. 남극대륙은 평균 고도가 약 2,300m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대륙이다. 남극대륙 땅은 얼음 아래 숨어 있다. 대륙의 많은 부분이 평균 2,160m 두께의 얼음에 눌려져 있다. 남극대륙이 높은 것은 땅이 높은 것이라기보다 땅 위에 쌓인 얼음이 높기 때문이다. 만약 이 얼음들이 모두 녹는다면 남극의 땅은 위로 솟아오를 테지만 언제 그런 날이 올지는 예측할 수 없다. 남극에는 3794m의 활화산인 에레버스산이 있다. 이 산 분화구에서는 액화된 금이 뿜어져 나온다.

 

에드워드 아드리안 윌슨(1872~1912)은 스콧의 남극 탐험에 수석 과학자 및 의사로 참여한 인물이다. 1912년 남극점에 도달했으나 식량 부족과 혹독한 기온 때문에 귀환 도중 사망했다. 남극점을 정복하고 돌아오던 길에 윌슨은 부지런히 암석 시료를 모았다. 13kg 정도 되었던 것 같다. 완전히 탈진하여 걸을 기운도 없던 때에도 윌슨은 그 시료들을 버리지 않았다. 이 숨진 대원들을 찾아낸 수색대에 의해 암석 시료들은 영국 자연사 박물관에 전해졌다.

 

윌슨이 수집한 시료들 가운데에는 고생대 페름기 식물인 글로솝테리스 화석이 있었다. 펭귄 루커리(Penguin Rookery)란 수천에서 수만 마리의 펭귄이 번식과 양육을 위해 함께 모여 생활하는 집단 서식지를 말한다. 허들링(huddling)이란 매서운 남극의 추위 속에서 알을 품고 새끼를 키우기 위해 모이며 체온 유지를 위해 서로 빽빽하게 모이는 것을 의미한다. 남극대륙이 지금처럼 눈과 얼음으로 덮이게 된 것은 남극대륙의 이동과 관계가 있다.

 

남극대륙이 곤드와나 랜드에서 떨어지기 전에는 기후가 따뜻해서 많은 동식물들이 살 수 있었다. 그러나 남극대륙이 서서히 남쪽으로 움직여가면서 조금씩 날씨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추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남극은 처음부터 얼음으로 덮여 있었던 것이 아니다. 오랜 옛날에는 남극에도 따뜻한 시절이 있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거의 대부분의 땅이 얼음으로 덮여버렸다.

 

남극대륙이 곤드와나 랜드에서 거의 떨어졌을 무렵 남극대륙 주변에는 차가운 바닷물의 흐름이 남극대륙을 둘러싸게 되었다. 바닷물의 흐름을 해류라 하는데 해류에는 따뜻한 흐름과 차가운 흐름이 있다. 남극 주위를 빙 둘러싸는 남극순환해류는 세계에서 제일 차가운 해류다. 남극순환해류가 적도로부터 남쪽으로 내려가는 따뜻한 해류를 막으면서 남극대륙은 고립되었고 날씨는 매우 추워졌다.

 

과학자들은 5000만 년 전부터 지금까지 남극대륙의 기온이 내려갔을 것으로 생각한다. 남극 대륙은 이렇게 지구에서 가장 추운 지방으로 남게 되었다. 남극대륙의 98% 정도가 눈과 얼음에 덮여 있다.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얼음의 두께는 평균 2160m이고 가장 두꺼운 곳은 4800m나 된다. 남극대륙의 얼음은 전 세계 얼음의 90%나 된다. 이 얼음을 모두 녹이면 세계의 바다 표면이 무려 70m 가량 올라가게 된다. 남극 대륙을 덮고 있는 두꺼운 얼음 덩어리를 빙상이라 부른다.

 

남극의 빙상은 지구에서 가장 큰 얼음 덩어리이다. 얼음의 면적만 해도 한반도의 약 60배에 가깝다. 남극을 동쪽과 서쪽으로 나누어보면 동남극의 빙상은 대부분 육지를 덮고 있고 서남극의 빙상은 바다를 덮고 있다. 남극 주변 바다에서 증발한 수증기가 눈이 되어 남극에 내린다. 이 눈은 솜털처럼 아주 가볍다. 밀도가 0.3g/cm³도 채 되지 않는다.

 

눈이 계속해서 쌓이면 먼저 내린 눈은 위에 쌓인 눈에 의해 점점 압축된다. 이런 과정이 계속되면 남극 표면의 눈은 어느새 만년설이라는 좀더 단단한 눈이 된다. 그리고 이 만년설도 점점 더 단단하게 굳어서 결국에는 얼음이 된다. 이 얼음을 빙하 얼음이라고 한다. 남극은 오랜 기간 동안 쌓인 눈으로 말미암아 거의 대부분의 땅이 얼음으로 덮였다. 이 두꺼운 얼음이 빙상을 이루는 것이다.

 

얼음은 고체처럼 보이지만 빙상에서 엄청난 압력을 받게 되면 꿈꾸는 액체처럼 흐른다. 이 사실은 남극의 얼음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빙상이 새로운 눈이 내려 두꺼워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중력 작용에 의해 바다를 향해 흐르기도 한다는 것이다. 세상은 마치 컨베이어 벨트 같이 움직인다. 바다에서 증발한 수증기가 눈이 되어 남극에 내리고 눈은 얼음이 되어 빙상이 된다. 빙상은 다시 흐르고 흘러서 언젠가는 바다로 되돌아간다.

 

빙상이 바다쪽으로 뻗게 되면 빙상의 아래는 땅이 아니라 바다와 접촉하게 된다. 두꺼운 얼음층이 바다 위에 떠 있게 되는데 이것을 빙붕이라 한다. 빙붕은 빙상에 붙어 있기도 하지만 때로는 깨져나가기도 한다. 이때 바다를 돌아다니는 커다란 얼음의 산인 빙산이 생기는 것이다. 빙붕이 깨져 빙산이 생기는 것은 지구의 기후변화와 관계가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현상이다.

 

남극대륙에만 얼음이 덮이는 것은 아니다. 겨울이 되면 남극 주변 바다가 얼게 된다. 그러면 바다가 얼음으로 덮이게 된다. 바다의 얼음을 해빙이라 한다. 남극대륙의 얼음은 눈이 쌓여 만들어진 것이다. 해빙은 소금기 있는 바닷물이 얼어 만들어진 것이다. 해빙은 비록 몇m 두께의 얼음에 불과하지만 바다와 대기 사이의 열교환을 감소시켜 남극은 더욱 차갑고 건조하게 만든다.

 

남극은 지구에서 가장 춥고 가장 바람이 센 대륙이다. 두꺼운 빙상으로 덮여 있지만 가장 건조한 지역 중 하나다. 남극대륙 지방의 대부분은 1년 동안 내리는 눈의 양을 물로 계산해서 50mm도 되지 않기 때문에 기후로 말하면 사막 기후라고 할 수 있다. 빙하는 얼음이 흘러가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정말로 흐르고 있다. 땅 위에 얼음이 두껍게 쌓이면 얼음의 아래쪽은 위에서부터 내려 누르는 엄청난 힘을 받게 된다. 이 힘 때문에 얼음의 아래쪽은 비교적 부드러운 성질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땅은 경사져 있기 때문에 얼음의 아래쪽은 낮은 곳으로 흐르려고 한다. 빙하는 이런 식으로 흘러간다.

 

빙상이 바다쪽으로 흐르게 되면 곳곳에 크고 작은 깨진 틈이 생긴다. 이 틈을 크랙 또는 크레바스라고 한다. 자동 오거(auger) 시료 채취기가 있다. 오거는 스크류 모양의 회전식 드릴 장치다. 빙상 위에 구멍을 내서 무엇을 할까?라고 생각했는데 단순히 구멍을 내는 것이 아니라 내려갔다 올라온 파이프에는 너무나도 투명하고 깨끗한 얼음기둥이 들어 있다. 이것을 얼음 시추 코어라고 한다.

 

남극 빙상의 얼음은 쌓인 눈이 아주 단단하게 된 곳이다. 재밌는 것은 남극에 내린 눈이 얼음이 되더라도 눈 속에 느슨하게 들어 있던 공기방울은 그대로 얼음에 갇혀버린다는 것이다. 남극의 얼음 속에는 많은 공기방울이 들어 있다. 과학자들은 이 공기방울을 이용하여 남극의 기후를 연구한다. 얼음 속에 공기 방울이 들어 있다. 그리고 그 공기는 눈 내리던 당시 지구의 공기를 대표한다. 그래서 얼음을 통해 과거 지구의 공기를 알아 낼 수 있는 것이다.

 

빙상에 공기방울이 갇히는 것과 용암에 공기방울이 갇히는 것은 차원이 같을까? 공기방울이 갇힌다는 물리적 차원은 같다. 하지만 그 메커니즘과 정보의 차원은 다르다. 빙하 얼음 속 공기방울은 대기 중에 있던 공기가 얼음이 얼어붙는 과정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고 갇힌 것이다. 이 기포는 수십만 년 전 지구의 대기 성분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타임캡슐이다. 용암 속 기포는 갇힌 것이 아니라 용암 내부에서 생성되어 팽창한 것이다.

 

이 기포의 양과 형태는 마그마의 점성과 화산폭발의 격렬함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다. 남극 빙상의 얼음 안에는 최근 지구 대기의 오염물질도 같이 들어 있다. 얼음 속에 갇혀 있는 공기 중에 그 오염물질이 포함되어 있다. 과학자들은 얼음에서 지구 대기의 오염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찾으려고 애쓰고 있다. 남극의 얼음 중에는 보통의 공기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은 재와 유황 성분도 들어 있다. 화산이 폭발할 때 나온 것들이다.

 

남극의 얼음에서 과거 지구 표면에서 폭발한 화산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이다. 남극에서 알 수 있는 지구 환경의 위기 사례로 오존층 파괴를 들 수 있다. 오존층은 지표에서 약 15km~ 50km 상공에 있다. 산소 원자 3개가 모여 만들어진 오존 분자가 있다. 이 오존이 태양에서 지구로 들어오는 강력하고 위험한 자외선을 막아준다. 오존층은 아주 얇다. 성층권에 퍼져있긴 해도 두께가 3mm에 불과하다.(이는 사람 무릎 연골 두께와 같다.)

 

지구 내부의 막대 자석은 지구의 진짜 극과 약 11.5° 기울어져 있다. 신기하게도 남극에는 석탄이 묻혀 있다. 나뭇잎 화석도 있다. 이는 과거 남극에 아주 따뜻한 기후가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남극이 따뜻했을 무렵 남극대륙은 바로 지금의 남극 자리에 있지 않았다. 과학자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대륙들의 이동 방향과 속도를 계산한다. 지구상에는 많지는 않지만 움직이지 않는 고정점이 있다. 이를 열점이라 한다.

 

남극 대륙은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1년에 고작 1cm 정도 움직인다. 남극 주변 대륙들은 좀 더 빠른 속도로 움직인다. 남극에 비가 내리지 않는 이유는 너무 춥기 때문이다. 비가 아니라 눈으로 내리지만 양이 그리 많지 않다. 눈의 양도 너무 적어서 남극은 사막으로 취급된다. 사막은 연간 강수량이 254mm보다 적은 곳을 말한다. 남극의 1년 강수량은 50mm 정도다. 사하라 사막보다 적다. 남극은 사막이어도 매우 춥기 때문에 증발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쌓인 눈이 증발로 없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오랜 기간 두꺼운 얼음이 형성되는 것이다. 남극의 춥고 건조한 환경은 드라이 밸리라는 특이한 지형을 만들어 놓았다. 이 드라이 밸리는 마치 화성의 환경과 비슷하다고 해서 거기서 화성탐사를 위한 바이킹 계획을 시험하기도 했다. 드라이 밸리에는 최소한 200만 년 동안 눈이 내리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극은 대부분 바다이기 때문에 남극보다 춥지 않다.

 

북극이 바다가 두껍게 얼어버린다 해도 얼음 아래의 물은 북극의 온도는 남극보다는 높게 유지하게 한다. 바닷물은 대개 마이너스 2도에서 언다. 남극은 두꺼운 대륙 빙상으로 덮여 있다. 남극의 평균 고도는 2300m이고 가장 높은 곳은 4000m나 된다. 100m 올라가면 기온이 1도씩 떨어진다. 그래서 남극대륙은 평균적으로 얼어붙은 해안보다 23도나 낮은 기온이 된다. 남극대륙은 세계에서 가장 차가운 해류인 남극 순환류에 둘러싸여 고립되어 있다. 남극 순환류는 적도로부터 남극대륙 쪽으로 흐르는 따뜻한 물을 차단시켜 남극을 더욱 차가운 곳으로 만든다.

 

남극은 두꺼운 빙상의 무게만큼 지구를 내리누르고 있다. 그런데 빙상이 전부 녹으면 남극의 땅은 서서히, 아주 서서히 육지로 솟아오를 것이다. 1만년에 500m 정도 솟아오를지 모른다. 남극에는 나무가 없다. 다만 남극 잔디를 포함해 두 종류의 꽃이 피는 식물이 남극 반도 지역에 있을 뿐이다.

 

꽃이라 해도 너무 작아 확대경으로 보아야만 보일 정도다. 남극에 있는 대부분의 식물은 이끼류나 선태식물이다. 이끼류는 햇빛이 비치는 바위 표면 바로 아래 틈새에서 생장한다. 북극에는 에스키모라 불리는 이누이트족이 살고 있다. 그들은 사냥을 하면서 살아가고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 북극의 원주민이다. 하지만 남극에는 원주민이 없다. 남극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연구를 위해 잠시 방문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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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날씨는 맑음 - 날씨의 장기 예측을 가능케 한 어느 기후학자 이야기
자가디시 슈클라 지음, 노승영 옮김 / 반비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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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출신의 세계적인 기후 역학자인 자가디시 슈클라(Jagadish Shukla; 1944 - )[내일 날씨는 맑음]‘10억 마리의 나비라는 의미의 [A billion butterflies]가 원제인 책이다. 브라만 출신인 저자의 어린 시절부터 미국 유학 시절, 세계적 석학(碩學)들과의 만남과 과업 수행 등이 실감나게 그려진 이 책의 원제에 담긴 의미는 두 가지이다. 1) 계절예측 가설(나비효과에 대한 과학적 반박), 2)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인류의 연대 등이다.

 

스스로 규모가 큰 대학이라 칭한 조지 메이슨 대학에서 지구온난화를 가르치는 저자는 해마다 첫 강의 시간에 밤이 되면 왜 추워지는지 아는 사람 손 들어보라는 말을 한다고 한다. 한 학생이 해가 져서 지구가 햇빛을 받지 못해 추워진다는 대답을 하자 저자는 불완전한 답이니 B를 주었다고 한다. 이 말에 학생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고 한다. 저자는 아마 독자인 당신들도 그럴 것이라 말한다. 물론 나는 복사 냉각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밤에 추운 것은 낮에는 태양이 지구 온도의 손실분을 상쇄시켜주지만 밤에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일화에 나오는 답에는 저자가 가르치는 지구 온난화와도 관련된 의미가 들어 있다. 즉 지구가 해로부터 받은 에너지를 복사 형태로 내보내는데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가 열을 가두어 지구온난화가 빚어지는 것이다. 저자는 몬순을 연구하는 과학자다. 몬순이란 계절에 따라 주기적으로 일정 방향으로 부는 바람을 말한다. 그런데 본문에 나오듯 몬순강우는 해마다 다르게 나타난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저자는 자신이 몬순을 연구하게 된 것은 몬순으로 인해 가뭄과 홍수가 반복되어 고통받는 고향 사람들을 보고서였다.

 

예측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자연현상인 몬순에 대해 저자는 날씨에 대한 이해는 원시적일지언정 날씨와의 관계는 친밀하고 깊고 유구하다고 설명한다. 우리가 날씨가 왜 그런 식으로 전개되는지를 알아내기 시작한 것은 지난 100년에 지나지 않는다. 책에는 유명 과학자들이 많이 나온다. 그 중 한 사람인 로버트 피츠로이는 다윈이 탄 비글호의 선장이었던 사람으로 최초로 날씨 예보를 했지만 부정확함에 비난을 받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인물이다.

 

저자의 지도 교수는 유명한 줄 차니와 에드워드 로렌즈였다. 폰 노이만의 컴퓨터가 완성되어 날씨를 길고 정확하게 예측하게 됨에 따라 여러 대학으로부터 교수 임용 제의를 받은 차니는 자신을 보스턴으로 유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에드워드 로렌즈를 임용하는 것이라 답했다. 로렌즈는 초기조건에 대한 민감한 의존도를 제시한 학자다. 그 유명한 나비 효과가 그것이다. 두 교수는 성향이 정반대였다. 차니는 모든 연구가 가능하다고 보았고 로렌즈는 김칫국 마시지 말라고 받아쳤다고 한다.

 

저자는 자신이 이제껏 본 선생 중에서 로렌즈가 의심의 여지없이 가장 훌륭하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한다. 모든 수업이 깨우침의 순간이었다고 말한다. 로렌즈는 말투가 단조로웠지만 모든 문장을 어찌나 유려하고 명징하게 구사하던지 공들여 다듬고 여러 번 연습한 대본을 보는 것 같았다고 한다. 저자는 날마다 교실을 나설 때마다 그날 배운 모든 것과 자신이 몰랐던 모든 것에 얼떨떨하고 어리벙벙했다고 말한다. 

 

놀라운 사실은 로렌즈의 워싱턴 DC 강연 제목에는 원래 나비라는 말이 들어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갈매기의 날갯짓 한 번이면 날씨의 경로를 영원히 바꾸기에 충분할 것이다라는 말이 원문이었다. 저자의 집 다이닝 룸에서 저자의 열세 살 난 딸 소니아가 로렌즈에게 카오스 이론에 대해 물었을 때 로렌즈는 다시 한 번 갈매기 날갯짓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그런데 갈매기가 나비로 바뀌었다. 거기에는 사연이 있다. 로렌즈의 동료 과학자이자 워싱턴 DC 학회를 조직한 필립 메릴리스의 눈에 화면에 투사된 결과가 나비 모양으로 보였다. 메릴리스는 로렌즈와 상의하지 않고 갈매기에서 나비로 제목을 바꿨다.

 

저자는 로렌즈 박사가 카오스와 예측 가능성에 대한 기념비적 논문을 발표한 지 40년 되는 2004417일 로렌즈와의 통화에서 1960년대 카오스 연구가 너무 비관적이지는 않았는지, 기상 예측에 대한 그의 전망이 너무 암울하지 않았는지 은근슬쩍 물었다고 한다. 로렌즈는 잠시 침묵하더니 저자의 말에 수긍했다고 한다. 저자는 그 유명한 마나베 슈쿠로 아래에서 연구도 했다. 마나베 슈쿠로는 기후 모델링을 만든 공로를 인정받아 2021년 노벨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한 일본 출신의 미국 기상학자이자 대기 과학자이다.

 

저자에 의하면 마나베는 무시무시한 천재다. 저자는 지식의 토대를 쌓으면 어느 과학자라도 자신감이 생길 것이라 말하지만 논문을 쓰려면 어느 주제를 고르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한다. 중요한 점은 독립적으로 생각하고 스스로 논문 주제를 찾아 흥미로운 연구를 추구하는 것이다. 즉 스스로 두 발로 서는 것이다. 기후 연구에서 문제는 비선형 관계다. 그것은 변수들이 서로 일정하거나 예측 가능하게 의존하지 않는 관계를 말한다. 가령 일을 많이 할수록 목적의식을 더 많이 느끼고 행복해지지만 문턱 값을 넘으면 행복이 급락하는 것과 같은 관계다.

 

저자에 의하면 방정식을 선형화하려면 변수들이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맞아떨어지도록 까다로운 수학 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저자는 몇 시간 앞을 예측하는 것이 아닌 계절을 예측하겠다는 큰 목표를 가졌다. 평균 기후를 결정하는 것은 몇 가지이다. 가장 큰 요인은 태양으로부터 받는 에너지, 지구에서 우주로 방출되는 에너지, 지구가 태양을 향해 또는 태양으로부터 기울어진 각도, 대기 중 기체의 조성 등이다. 지구의 자전 속도, 질량, 반지름 등은 더 중요한 요인이다.

 

높은 산, 메마른 사막, 넓은 바다 같은 지리적 특징도 평균 기후를 결정하는 데 한몫한다. 대기와 해양이 너그러운 분배자 역할을 맡아 더운 열대지방에서 추운 극지방으로 에너지를 끊임없이 이동시키기 때문에 적도 지방은 점점 뜨거워지지 않고 극지방은 점점 차가워지지 않는다. 기상학자는 대기의 과정과 현상을 관찰하고 설명하며 하루하루의 날씨를 예측하는 반면 기후학자는 전체 기후계(대기권, 생물권, 빙권, 수권)를 관찰하고 설명하며 미래 기후를 예측하고 전망하기에 기후 학자는 기상학자이지만 기상학자가 반드시 기후 학자인 것은 아니다.

 

저자는 열대 북대서양이 시원하면 브라질 북동부에 비가 내리고 열대 북대서양이 더우면 브라질 북동부가 가뭄에 시달린다는 아름다운 쌍극자 패턴을 발견했다. 저자는 바다에서 증발하는 물이 육지 강수의 원천이라는 통념이 수백 년간 이어졌지만 지표면 조건과 육지 증발이 연 평균 강수량의 무려 65%를 차지하므로 육지는 전지구적 물 순환의 필수 요소였다는 말을 한다. 알고 보니 육지는 날씨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만들어냈다. 이것이 이단에 가까운 발상이라고 저자는 말한다.(152 페이지)

 

저자는 나비효과에도 불구하고 바다와 육지의 경계 조건을 토대로 계절 예측을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한다. 결국 이는 지도교수인 에드워드 로렌즈의 이론에 반기를 드는 일이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어떤 상황에서는 나비효과의 예외가 있음을 지적하려는 것이었다. 저자의 이런 메시지가 담긴 강연을 들은 로렌즈는 "자네가 이런 연구를 하고 있는 줄 몰랐네. 아주 흥미로웠어." 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요즘은 기상위성 사진 덕에 날씨 예보를 비교적 정확하게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미래의 날씨는 예측하지 못한다. 다들 알다시피 일기예보는 복잡한 수학 모델에 의해 만들어지며 슈퍼컴퓨터가 수십억개의 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이 방정식들은 대기의 초기조건을 정확하게 기술할 것을 요구하지만 초기조건이 어떻게 미래 날씨로 이어지는지를 한 장의 사진만으로 알아낼 수는 없다. 저자는 핵심적인 말을 한다. 위성이 제공하는 실제 데이터에서는 초기조건 자체를 직접 얻을 수조차 없다. 지구에서 방출되는 복사만 측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바다와 육지가 기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모델들도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저자는 자연은 나름의 방법으로 과학자에게 겸손을 가르친다고 말한다. 이는 계절예측이 빗나간 뒤 한 말이다. 저자는 우리가 유일하게 아는 사실은 기후계의 많은 요소가 지금까지도 수수께끼라는 점이라고 말한다. 아직 할 일이 많은 것이다. 저자는 카를로스 노브레 이야기를 한다. 저자에 의하면 저자와 카를로스 노블레는 처음으로 육지를 현실적으로 다루는 정교한 모델을 만든 사람들이다. 이는 영국의 기상학자 출신의 NASA의 우주비행사 피어스 셀러스(Piers Sellers; 1955-2016)의 단순 생물권 모델 덕분이었다. 이는 지표면의 식생과 대기 사이의 에너지, , 탄소 교환을 물리적 생물학적으로 모형화한 지구 시스템 과학 최초의 현실적인 지표 모델을 말한다.

 

저자는 10억 마리 나비 실험을 거행했다. 한 마리 나비의 날갯짓을 바꾸듯 모델의 초기 조건을 미세하게 바꿔 한 계절에 대해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10억 마리 나비의 날갯짓을 바꾸듯 초기 조건을 극단적으로 바꾼 모델을 동일한 해수면 온도에서 실행하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의 대담한 추측은 삶에 대한 전반적 낙관주의와 자연이 그토록 많은 인류에게 그토록 잔인할 리 없다는 철학적 사상에 오로지 근거했다고 말한다.

 

정리하면 한 마리의 나비 날개짓(국소적 미시 혼돈)2주 뒤 특정 지역의 폭풍을 일으키거나 막을 수 있으나 10억 마리의 나비가 동시에 날개짓을 한다면 이들의 미시적인 무작위적 요동은 서로 상쇄되거나 거대한 통계적 평균(거시적 추세) 속에 흡수된다는 의미다. 슈클라의 관점에서 나비 효과는 예측을 완전히 가로막는 절대적 장벽이 아니라 거시적인 경계 조건의 지배하에서 발생하는 통계적 노이즈(Noise)의 위상을 지닌다. 슈클라의 체계 안에서 나비 효과는 소멸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지만 그 영향력은 단기 예보 영역에 묶인다.

 

저자의 논문은 '사이언스''카오스 한가운데에서의 예측 가능성(Predictability in the Midst of Chaos)'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다. 미국에서는 사람들이 계절예측에 하도 익숙해져서 그것이 있는지조차 모를 때가 많다. 국립 기상청은 3개월 단위로 기온과 강수량 전망을 발표하고 해양대기 청도 같은 기간에 대한 가뭄 전망을 내놓는다. 저자에 의하면 열대지방에서 지표면 공기를 밀어 올려 폭풍을 일으키는 물리적 역학적 과정과 온대 지방에서 폭풍을 일으키는 과정은 다르다. 우리의 기상 예측 능력이 열대지방과 온대 지방에서 다르게 나타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기후위기는 한편으로는 실존적 충격을 주었고 한편으로는 왜곡하고 부정하는 사람들을 만들었다. 저자는 신중한 편이어서 기후위기에 대한 충분한 자료가 축적되지 않은 상황에서 기후위기를 확정적으로 이야기하다가 혹 틀리기라도 하면 과학은 오류라는 역공을 마주할 것이라는 우려를 했다. 하지만 저자도 말했듯 기후위기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기후는 들어오는 태양에너지와 나가는 장파 복사의 균형에 의해 결정된다.

 

구름은 이 과정에서 이중의 역할을 한다. 태양 복사를 반사하여 지구를 냉각하기도 하고 지구 복사를 가두어 우주 공간으로 도망가지 못하게도 한다. 구름이 얼마나 높고 두꺼운지, 구름이 어디에 있는지에 따라 효과가 달라진다. 구름 안에 물이 얼마나 있는지, 물방울이 얼마나 큰지, 얼어서 결정이 된 물의 비율이 얼마인지 등 구름의 미시 물리학을 고려하면 더 복잡해진다. 이 모든 정보를 전 지구적 복합기후모델에 포함하는 것은 여전히 난제다.

 

저자가 언급한 부분에는 기후 위기의 실상을 왜곡하고 부정하며 과학자들을 공격하는 미국에 대한 부분도 포함되어 있다. 저자는 고향을 떠난 뒤로 보편 상수와 불편하는 물리법칙은 언제나 자신의 피난처였다고 말한다. 연구에 몸담은 기간 내내 카오스의 한가운데에서 예측 가능성을 찾은 것이 우연이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고 말한다.(325 페이지) 저자는 자신이 과학계에 몸담은 55년간 연구자들은 지구의 대기, 기후계, 날씨 패턴의 경이로운 면모를 거듭 거듭 발견했다고 말한다.

 

해수 온도가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지역에 극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 우리 발 아래서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육지가 우리 머리에 떨어지는 비의 양을 좌우한다는 것도 그중 하나라고 한다. 2024년 미국 기상학회 총회에서 자가디시 슈클라 지구 시스템 예측 가능성 상의 첫 시상이 진행되었다. 저자는 80세 생일을 맞고서도 계속 가르치는 이유가 긍정적이고 똑똑한 학생들 때문이라고 말한다. 대부분은 자신이 기후학자여서 미래를 비관하리라 예상하겠지만 자신은 학생들을 보면서 미래를 훨씬 낙관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과학에 대한 이해, 이산화탄소로 가득한 공기를 뿜어내는 일을 멈추게 할 수 있는 기술 등은 이루었었지만 과학에 귀 기울이고 기술을 받아들일 의지는 필요하다고 말한다. 우리의 발목을 잡는 것은 마지막 세번째 조건이며 정치체제에 기생하는 기업의 탐욕이 걸림돌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우리를 구하는 것은 미래 세대를 위한 책임을 몸소 받아들이고 행동을 선택하는 모든 사람이라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말하고 싶은 바는 바다에 관한 책들을 몇 권 읽은 나에게 자가디시 슈클라의 [내일 날씨는 맑음]은 육지로의 전환을 이루게 한 책이라는 점이다. 물론 자가디시 슈클라에게 영향을 준 마나베 슈큐로의 [기후의 과학]도 읽었기에 묘한 인연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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