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논어 - 철학자 주자와 정치가 다산, 공자의 가르침을 논하다
한형조 지음 / 김영사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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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한형조(1958-2024)는 박사 학위 논문을 바탕으로 쓴 [주희(朱熹)에서 정약용으로](1996)를 상재(桑梓)한 직후 정약용에서 주희로의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는 정약용에서 마침표를 찍는 것이 아니라 주희에게 다시 거슬러 올라가 조선 유학사 전체의 역동성과 드라마를 완성된 형태로 파악하고자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타계 후 1년이 지난 시점에 나온 유작(遺作)[두 개의 논어]에 단서가 있다. 이 책의 부제는 철학자 주자(朱子)와 정치가 다산(茶山) 공자의 가르침을 논하다.

 

저자는 얕고 잔잔한 남한강에 익숙했던 다산을 강진의 시퍼런 동해 물결이 압도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강진에 유배된 다산을 서술하는 말이다. 저자는 주자와 다산의 고전 해석을 추적하는 것은 신나는 모험이라고 말한다. 장면 하나하나마다 드라마틱한 대치(對峙)가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고 말한다. 다산은 개인의 도덕성에 근거를 둔 주자의 사상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안정된 시기에는 주자의 기획이 유효한지 모르나 난세에는 아니라고 보았다. 그런데 주희가 살았던 시대 역시 송나라가 금나라에 밀려 강남으로 쫓겨간 난세였다.

 

두 사람의 독법은 왜 그렇게 다른가? 그것은 죽간(竹簡)에 쓴 매체의 한계로 인해 대개 시간이 결여되어 있고 맥락이 불분명하고 질문과 대답이 모두 짧은 논어 자체로부터 비롯된 일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두 사상가가 가진 입장 및 현실을 보는 차이에서 비롯된 일이다. 저자는 다산의 절규로부터 타락한 도시를 질타하는 구약의 예언자 이사야의 목소리를 듣는다. 다산은 요순(堯舜) 시대의 순 임금이 무위(無爲)했다는 구절을, 그렇게 펼쳐진 이상적인 군주들의 정비된 통치질서를 찬탄한 감탄사일 뿐이라고 말한다. 두 개의 논어는 주자와 다산의 상반되는 논어 해석을 염두에 둔 말이다. 다산은 공자 사상에서 도덕은 有道의 한 날개일뿐 전체일 수 없다고 보며 그의 꿈을 정치적인 것이었다고 보았다.

 

저자는 두 사람의 대립을 명상 vs 활동으로 파악한다. 저자는 논어를 학(), (), (), ()의 네 가지 주제로 대별한다. 저자는 주자의 자연론적 정착은 이(), 다산의 유신론적 전회는 천()이라는 한 글자에 집약되어 있다고 말한다. 다산은 주자가 불교에 물들고 내적 명상에 골몰했다고 분석했다. 이는 이()란 유교 형이상학이 불교의 공()으로부터 배워 체계화한 것이라는 한 논자의 지적과도 통하는 말이다. 다산은 주자의 통찰과 성취를 존중하고 인정하면서도 논어를 읽는 눈, 그리고 공자가 창도하고자 한 유교의 근본원리와 세부적 설계를 읽는 눈에서 완전히 다른 안목과 비전을 가졌다. 다산은 주자학을 아예 불교라고까지 극언했다.(781 페이지)

 

다산은 덕을 내면화한 주자의 기획은 오랜 불교의 영향이며 유교의 본래 즉 공맹의 원 기획의 심각한 일탈이라고 말했다.(484 페이지) 다산이 의거한 방식이 보이지 않고 가려진 곳에 접근하려는 노력인 경학(經學)이다.(82 페이지) 주자가 불욕(不欲)위정자가 탐욕을 부리지 않는다면으로 읽었다면 다산은 백성들이 도적이 되기를 원치 않는다면으로 읽었다. 구자지불욕(苟子之不欲) 수상지불절(雖賞之不竊)이란 구절에서 구()는 진실로, ()는 비록을 의미한다.

 

주자는 진정 당신(공자에게 문의한 계강자; 季康子’)이 탐욕을 부리지 않는다면 그들(백성들)을 떠민다고 해도 도둑질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고 다산은 백성들이 도적이 되기를 원치 않는다면 정치를 바르게 하라(생산을 보장하고 각자 생업에 힘쓰게 하며 세금을 줄여주라)고 읽은 것이다. 저자는 이를 다산이 도덕(을 가르치는 구절)이 아닌 정치(를 잘하라는 구절)로 읽었다고 설명한다.(102 페이지)

 

저자는 공자의 도는 크게 둘로 갈라진다고 말한다. 소극적 준비와 적극적 기여, 정신의 평정과 사회적 기여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특히 다산은 이 둘의 결합과 연장을 강조한다.(224 페이지) 논어 안연(顏淵)편에 편언(片言)이란 말이 나온다. 주자는 이를 토막말을 의미하는 반언(半言)으로 읽었고 다산은 한쪽 편 말이라 읽었다.

 

주자는 유도(有道)한 세상을 만들겠다고 천하를 유랑한 공자와 그 일행이 한가한 소풍을 즐기고 있다고 보았다. 주자는 이 지점을 자신의 새로운 사유의 주축에 세웠다. 다산은 바로 이 점 때문에 주자학에 비판적 스텐스를 취했다. 유교의 이상이 주자와 만나 사회적 관계에서 자연에의 동참으로 일대 전회(轉回)를 하게 된 것이다. 다산은 소요(逍遙)는 공자의 정치적 열정과 어울리지 않고, 주자가 외치는 완전한 인간 즉 사욕이 없는 인간은 안회(顔回)의 극기복례에서나 있을 수 있는 경지라고 보았다.

 

저자는 주자학은 인간의 이기성과 고착, 자기중심성이 인간성 밖에 있다고 역설한다고 말한다. 즉 그것은 인간의 타고난 본성도 아니고 자연적 본성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 점에서도 주자학은 순자(荀子)를 내치고 맹자(孟子)에 틀을 잡았다. 주자학의 낙관주의는 명상과 정치를 연속으로 읽는다. 그런데 이것은 너무 순진한 생각이 아니냐는 비판이 늘 있어왔다. 조선에서 그 역할을 다산이 맡았다. 그의 비판은 신랄하고 전방위적이다.(262, 263 페이지)

 

공자는 기본적 품성 못지않게 문화적 도야가 그만큼 중요하다고 말한다. 충신(忠信)이 바탕(; )이라면 거기 호학(好學)이 문화(; )로 보완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문질빈빈 둘 중 하나도 결여될 수 없다.(301 페이지)

 

오거하류 이산상자(惡居下流而訕上者)란 말이 있다. 양화(陽貨) 편에 나오는 말로 "아랫자리에 있으면서 윗사람을 헐뜯는 자"를 뜻한다. 주자는 하류(下流)를 그냥 신분과 지위를 기준으로 잡아 아랫사람으로 해석했다. 다산은 하류를 덕성과 재능이 없는 이들을 가리킨다고 보았다. 이들은 천박한 삶을 누리며 무비판적 삶을 영위한다. 그들은 뛰어난 자, 덕을 갖춘 자들을 헐뜯는다. 그것은 일종의 질투다. 저자는 다산의 해석이 탁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인간의 심성을 족집게처럼 짚어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311 페이지)

 

주자학은 우주를 거대한 생명의 유기체로 본다. 그 중심에 인()이 있다. 저자에 의하면 주자는 내부를 향해 자연을 찾고 있고, 다산은 타자와 더불어 덕성을 구축한다. 그래서 저자는 주자를 명상, 다산을 정치로 대치시켰다고 한다.(346 페이지)

 

다산은 유교의 정신을 우주론적 자연론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 속에서 되찾고 싶어 한다. 그것이 비조(鼻祖) 공자를 축으로 내놓은 유교의 유구한 전통 아닌가. 그런데 주자와 송대 유학이 이 기본 원리를 왜곡, 변질시켜버렸다. 그렇게 유교가 무력해졌고 낯설어졌다. 하나의 이치가 인간과 우주를 통관(洞觀)하고 뒤섞음으로써 형이상학의 늪에 빠졌고 인간은 일상에서 무엇을 성취해 나가야 할지 모르게 되었다.(365 페이지)

 

주자는 공맹(孔孟) 유학에 함유된 천(), (), 상제(上帝), 귀신(鬼神) 등의 초월적 존재와 그 명령을 모두 이()로 통일하고 자연론적 사유의 틀을 구축했다 다산은 공맹 사유의 원형을 일상의 관계, 덕성의 구축이라는 테제에서 확인하고자 한다.(367 페이지) 다산은 주자가 말하는 자연의 천리(天理)는 아무 지각이 없어 말하려 해도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다산은 수도사가 아니라 정치가다. 그는 실학자답게 가정의 생계를 걱정하고 정치를 책임진 사람답게 경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고 경영에 눈을 뜬 사람이다.

 

주자는 안회가 철학자의 삶을 즐겼다고 말하고 다산은 그가 정치가의 도를 연마하고 있었다고 강조한다. 다산은 [논어] 전체를 정색하고 읽는 것이 큰 병폐임을 지적했다.

 

조지프 니덤은 이런 말을 했다. 주자학이 깨달았던 것은 도덕적인 것이 근본적으로 자연 안에 심겨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자연으로부터 생겼는데 일종의 진화 과정에 의해서 그리고 올바른 조건이 존재했다고 우리가 말할 수 있을 때 나타났다. 그렇다면 주자학은 진화론적 유물론과 유기체 철학의 세계관에 아주 가깝게 근접했던 셈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주자학은 도가(道家)로부터 더 많은 것을 빌렸던 듯 하다.

 

다산은 주자학을 비판할 수 있었다. 이는 후발의 장점이고 주자는 대답할 수 없다. 그를 대신해 다산의 창견(創見)을 본다면 어떻게 반론할 것인가?(495 페이지) 저자는 고전을 읽는 데 두 가지 함정이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자신의 선입견과 인상으로 고전을 재단하는 독단, 다른 하나는 고전의 산만함이나 모호함 앞에서 길을 잃는 지리다. 지리는 지리멸렬(支離滅裂)의 지리로 보인다.

 

조선 후기 노론과 정치적으로 대치하던 소론과 남인 계열에서 주자학의 교조(敎條)를 회의(懷疑)하는 학자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이들이 주자의 고전학에 대한 반발로 새로운 주석을 내놓았다. 백호 윤휴의 독창, 서계 박세당의 사색, 하곡 정제두의 양명학이 그것이다. 그리고 다산이 있다. 그는 주자학을 향해 거의 전쟁을 선포하시다시피 했다. 주자학이 터하고 있던 사서(四書)에서 육경(六經) 체제로 복귀할 것을, 그리하여 이를테면 주자의 명상에서 유가의 행동으로 돌아설 것을 촉구했다. 육경이란 시경(詩經), 서경(書經), 악경(樂經), 주역(周易), 예기(禮記), 춘추(春秋) 등이다.

 

저자는 [논어]의 주인공인 공자를 제외하고 [두 개의 논어]라고 제목을 정한 것은 공자는 두 사람의 해석을 통해 드러날 뿐이기에 그런 것이라 말한다. 저자는 자신의 작업이 고전이 말해주는 바를 따라가는 것일뿐 자신의 독창은 아니라고 말한다.

 

주자학자들은 공자가 자신은 태어나면서 모든 것을 안 사람이 아니라 했음에도 그 분은 태어나면서 모든 것을 알고 완전히 행동하시는 분으로 공자의 회고는 인생 길을 힘겹게 살아가야 할 후학들을 위한 가설적 배려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논어]에서 마음에 드는 구절을 고르라면 생이지지(生而知之), 학이지지(學而知之) 곤이지지(困而知之). 나면서부터 아는 것, 스승이나 책을 통해 배워서 아는 것, 고난과 역경에 처해 아는 것이다. 물론 고난이나 역경에 처해서도 배우지 않음을 의미하는 곤이불학(困而不學)도 있다.

 

저자는 주자가 폭탄선언을 한다고 말한다. 공자의 지학(志學), 이립(而立), 불혹(不惑), 지천명(知天命), 이순(耳順),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는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면서부터 모든 것을 터득한 사람으로 후인들을 위한 단계를 대략 설정해준 것이라는 의미다.(597 페이지)

 

공자는 사()가 아닌 학()에서 출발하라고 가르쳤다. 생각이 아닌 배움에서 출발하라는 말이다. 공자는 스스로 옛것의 전달자를 자처했다. 술이부작(述而不作)이 그것이다. 개인적으로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어 허망해진다는 학이불사즉망(學而不思則罔)과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독단에 빠져 위태롭다는 사이불학즉태(思而不學則殆)란 말을 좋아한다.

 

주자는 덕()을 인간 내부에 장착된 본성이라 보았고 다산은 행동을 통해 쌓이는 공적이라 보았다. 주자는 인의예지가 그 본성이라 설득했고 다산은 이것들은 유덕(有德)한 행동의 결과라고 주장했다. 저자는 정말 달라도 너무 다르다고 말한다. 어떻게 같은 책, 같은 글자를 두고 엇갈리다 못해 이렇게 서로 부딪히는 해석들이 존재할 수 있는가? 묻는다. 과연 누가 공자를 더 리얼하게 보여주고 유학 정신에 더 가까이 가 있는가? 아니면 둘 다 기실은 서로 가까우며 병존함에 아무런 해됨이 없는가?라고 말한다.

 

다산의 윤리학은 주자보다 더 험준하다. 나날의 전쟁터 앞에 서 있는 듯할 것이다. 주자는 천도(天道)의 자연성을 회복한다는 점에서 훨씬 평탄하다. 다만 기질과 물욕으로 인한 일탈에 유의하고 자신을 잘 보존해 나가면 될 것이다. 다산은 그렇지 않다. 인간 속에 상반되는 욕구들이 주도권을 갖고 다툰다. 흡사 천사와 악마가 인간 내부에서 끊임없이 싸우는 것으로 윤리적 정황을 소묘했다. 주자가 천리(天理)를 말하고 다산이 천명(天命)의 본연을 강조할 때 이 서로 다른 윤리학의 방향이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다. 저자는 공자의 역정을 궁리의 심화로 읽은 주자보다 다산의 해석이 아무래도 실상에 더 근접해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한다.(600 페이지)

 

다산은 공자가 말한 이순(耳順)을 일러 바깥의 마음에 어떤 내적 동요도 일으키지 않는 상태로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다산은 주자와 달리 하느님(‘; ‘, ’상제; 上帝‘)을 믿었다고 말한다. 다산이 말하는 하늘은 관찰자이고 감독자다. 이는 인격신을 말한다. 다산은 유교의 몰락은 천()이 이()로 치환되면서 시작되었다고 보았다.(608 페이지) 물론 다산이 본 하늘은 질투하거나 변덕을 부리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전혀 인격적이지 않다. ()는 본래 옥()의 결이나 무늬를 가리켰다. 주자는 우주를 수축과 응축, 분화와 생명의 쉼 없는 폭죽으로 읽었다.

 

자연은 창조의 과정이고 생명의 약동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어디선가 수많은 생명이 태어나고 성장하며 살아가다 사라진다. 우주는 흡사 대장간의 풀무를 닮았다. 이 특성을 주자는 [주역]에서 빌려온 원형이정(元亨利貞) 즉 생명의 탄생, 성장, 원숙, 저장으로 특화했다. 이는 곡식의 생장과 결실 그리고 이와 연관된 계절에 비견되었다.(631 페이지)

 

사람들은 여전히 미심쩍어할 것이다. 주자의 이야기를 더 따라가 보자. 질문은 두 개다. 1) 만일 인간의 본질이 이토록 선하다면 사람들의 악()은 어디서 연유하는 것인가? 2) 인간은 무슨 노력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 이 둘은 서로 연관되어 있다. 악은 어디서 생기는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것은 신체의 구성(’기품; 氣稟‘)에서 온다. 인간의 물질은 서로 다르다. 이 물질은 신체적, 정신적 나아가 영적 특질을 포함한다. 각자의 유전적 구성이 다르기 때문에 본성인 인의예지는 일정한 제약과 왜곡을 피할 수 없다. 즉 그 본성을 온전히 구현하는 것은 요순 같은 예외적 성인 뿐이다. 이 제약의 지도는 천차만별이다.

 

누구는 인()에 치우쳐 인정에 눈물이 많고 누구는 의()의 성분이 많아 정의에 단호한 성격일 수도 있다. 이 차이를 주자학은 기의 청탁수박(淸濁粹駁)으로 정식화했다. ()가 맑은 사람들은 지적 센스가 뛰어나고 탁한 사람은 우둔하다. 기가 순수한 사람은 법 없이도 살 사람이고 잡박(雜駁)한 사람에게는 도덕적 센스는 기대할 수 없다. 기의 순수성과 민감성 그리고 견고성이 그려내는 지도는 사람마다 뚜렷한 차이가 있다. 인간의 노력은 이들 편중(偏重)과 그로 인한 일탈(逸脫)을 교정하고 되돌려 본래의 본성을 회복해나가는 일과 다름없다.(634 페이지)

 

저자는 주자학이 말하는 인간 본성의 전체가 선하다는 것은 과도한 주장이 아닌가? 라고 묻는다. 저자는 인간은 타인과 공동체 전체를 희생하더라도 개인의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무서운 동물이 아닌가?라고 묻는다.

 

저자는 신의 죽음과 부활을 둘러싼 오랜 격론은 서양의 것만이 아니라고 말한다. 동양에서도 양상은 달랐지만 똑같은 문제를 안고 격한 쟁론이 벌어졌다. 서양의 근대가 합리주의와 과학이 점차 신의 지위를 탈환해나갔다면 동양의 근대는 이미 12세기 주자에 의해 완성된 형태로 등장했다고 할 수 있다. 그 도저한 합리주의에 대한 신학적 반동이 18세기에 일어났고 그 운동의 불씨를 제공한 것이 서학이라 불리는 서양의 종교였다.(655 페이지)

 

불씨만 있었다면 불은 붙지 않았을 것이다. 풍부한 기름은 동양의 오랜 고전적 전통이 마련했다. 다산은 사서삼경이라는 고전을 정제함으로써 공맹유학이라는 원시 유가를 재발견해나갔다. 그 중심에 그의 유신론적 신앙이 자리 잡고 있다.

 

저자는 미안한데 주자의 주석은 혼란스럽다. 다산에 기울어서가 아니라는 말로 다산(茶山)에 대한 경도(傾度)를 고백한다.(678 페이지) 다산은 공자의 평생 학습을 꿰고 있는 중심 원리는 천리(天理)가 아니라 충서(忠恕)라고 말한다. 유교를 한 글자로 집약한다면 그 또한 리()가 아니라 서()여야 한다.(690 페이지)

 

다산은 조선조 후기 정치의 문란과 난맥 그리고 그것을 고쳐 나갈 의지 부족이 무위(無爲)의 정치를 내건 무책임과 무기력에 있다고 극언했다.(822, 823 페이지) 다산이 경세 3부작이라 불리는 [목민심서]의 관료 매뉴얼, [경세유표]의 국가 시스템, [흠흠신서]의 형률 재정비라는 실학적 작업과 더불어 아니 그보다 경학이라 불리는 고전 해석에 더 집중적으로 매달린 이유를 여기서도 읽을 수 있다. 그런데 공자는 왜 순임금이 무위로 다스렸다고 말했을까? 다산은 이것이 찬탄의 과장법이라며 이를 잊지 말라고 신신당부(申申當付)한다.(826 페이지)

 

요순(堯舜)은 유교 정치의 이상을 상징한다. 그것이 실제였는지 상상이었는지에 대해 분분한 논란이 있지만 다산은 이 기록의 실제성을 의심하지 않았다. 나아가 이 정치의 실제 현장을 힘써 파고들었다. 다산은 그 정치가 그야말로 물샐 틈 없는 정치적 행동과 정책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 했다. 요순의 정치는 그저 사람 좋은 내맡김, 온유한 성품으로 이룩한 한가한 유토피아가 아님을 그토록 알리고 싶어 했다. ? 조선의 정치 풍토를 바꾸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다산은 흑산도에 있는 형님에게 요순의 정치를 발견해나가는 기쁨과 감격을 편지에 담아 보냈다.(829, 830 페이지)

 

다산은 고전 학습하고 일상의 몸가짐을 닦는 학자와는 다른 지평의 정치적 자질과 태도를 주문하고 있는 듯하다. 다산은 교육이 정치의 최종적 목표이지만 그 전에 생업과 부()가 우선되어야 함을 역설했다.

 

다산은 [주역]의 한 구절을 인용한다. “악인을 보더라도, 허물이 없다(’견악인; 見惡人‘ ’무구; 无咎‘)"가 그것이다. 다산의 이 인식은 조선조 유학의 정치학적 인식을 일거에 뒤흔드는 뇌관을 끌어안고 있다. 저자는 조선 후기 당파와 지목, 예송과 사람 사이의 은원을 보건대 그리고 엄격한 자의적 군자 소인론을 보건대, 그리하여 실무적 에너지가 명분 속에서 소모되고 소비되어 버린 안타까운 역사에 비추어 보면 다산의 인식은 대서특필할 필요가 있는 것이었고 지금도 참고해야 할 소중한 자산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888 페이지)

 

결어(結語)에서 저자는 [논어]는 하나가 아니라고 말한다. 불교는 티베트에는 승려 수만큼의 불교가 있다고 하고 [성경]은 아버지의 집에는 수많은 방이 있다(요한복음 142)고 말한다. 유교에도 주석가만큼의 [논어]가 있을 것인데 그럼에도 특히 조선의 오랜 해석의 권위는 주지하다시피 주자가 독점해왔다고 말한다. 다산의 [논어]는 주자와의 비교 혹은 대결 없이는 그 의미가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다고 말한다.(897 페이지)

 

이 부분에서 AI에게 질문을 던졌다. ”한형조 교수는 [두 개의 논어]에서 주자와 다산의 논어 해석을 소개한다. 주자와 다산은 논어 해석에서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이를 구조주의에서 말하는 이원적 대립(binary opposition)으로 읽어도 좋은가.“ 그러자 AI주자와 다산의 [논어] 해석 차이는 본질적이고 격렬하지만 이를 구조주의의 이원적 대립으로 규정하는 것은 지양해야 합니다. 구조주의적 이분법은 대상들을 정태적이고 절대적인 모순으로 환원하기 쉽기 때문입니다.“란 말을 한다.

 

그래서 두 사람을 변증법에서 말하는 비적대적 모순 관계로 읽어도 좋은가.“라고 물으니 AI한형조 교수의 유작 [두 개의 논어]에서 주자와 다산은 각각 내면과 개인의 수양(주자)과 사회적 실천과 관계(다산)를 강조하며 근본적인 대결 구도를 보입니다. 두 거장의 이러한 차이를 변증법적 관점의 비적대적 모순(Non-antagonistic Contradiction)으로 읽는 것은 철학적으로 타당하며 유용한 접근입니다.“란 말을 한다.

 

다시 말하지만 저자는 주자와 다산을 명상 vs 활동으로 읽는다. 나는 비슷한 말이지만 관조(觀照) vs 역행(力行)으로 읽는다. 당연히 나는 다산에 기울었다는 저자처럼 다산의 독법과 모색에 공감한다. 이제 이정우 교수의 [인간의 얼굴](1999년 출간)에 들어있는 제3도덕적 주체의 탄생 다산의 인간 존재론을 제대로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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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수호신, 성층권 오존
시마자키 다쓰오 지음, 한명수 옮김 / 전파과학사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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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층 대기 물리학 전공인 시마자키 다쓰오(島岐達夫)의 책이다. 저자는 남극의 오존홀을 보았다, 그 아래를 지나면 피부가 타는 느낌이 든다, 오존홀이 확대되어 지구 전체를 덮어버리면 어떻게 되는가?와 같은 잘못된 보도를 접하고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 책에는 흥미 있는 인물이 한 명 나온다. 바로 스위스의 물리학자인 오귀스트 피카르(Auguste Piccard: 1884-1962)이다. 1931년 피카르는 인류 최초로 성층권을 탐험한 선구자다. 피카르는 압력이 아주 낮은 성층권을 탐사하는 데 쓰인 기술을 압력이 극단적으로 높은 심해를 탐사하는데 활용했다. 그가 만든 현대적 심해 잠수정인 배씨스케이프(Bathyscaphe)가 그것이다.

 

성층권의 오존을 모두 모아 상온, 상압 상태로 압축하면 두께가 약 3mm 정도에 불과하다. 대기 전체를 마찬가지로 하면 수 킬로미터가 되므로 오존은 전체 대기의 100만분의 1 이하의 아주 소량이다. 하지만 오존은 320nm보다 짧은 파장의 자외선을 강하게 흡수하기 때문에 태양 자외선 중 이 짧은 파장의 빛이 지상에 전혀 도달하지 못하도록 막아주고 있다.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공기 전체를 대기라고 한다. 대기의 약 75%는 대류권에, 25%는 성층권에 존재하며 성층권 위쪽에는 겨우 0.02%만이 분포한다.

 

11km까지의 대기에서는 상하 대류 운동으로 인해 고도가 높아짐에 따라 기온이 감소한다. 이 영역을 대류권이라 부른다. 구름의 발생, /저기압의 발달 등 각종 기상 현상은 모두 이 대류권에서 일어난다. 11km에서 50km까지의 영역에서는 오존이 태양 자외선을 흡수하면서 대기가 데워지기 때문에 기온이 다시 상승한다. 이 영역에서는 더운 공기가 찬 공기 위에 얹혀 있기 때문에 대기는 열적으로 안정되며 층을 이루고 있어 성층권이라 부른다. 성층권에서는 기온이 상승하지만 11km를 지나도 잠시 동안은 기온이 상승하지 않고 등온 상태가 계속되는 일이 있다. 이런 이유로 처음에는 성층권을 등온층이라 불렀다.

 

기온이 감소하다가 증가하기 시작하는 높이는 대류권과 성층권의 경계인 대류권계면이다. 대류권계면은 약 50km의 성층권계면에서 끝나며 그 위에서는 오존이 줄어들기 때문에 가열이 감소해 온도가 다시 하강한다. 이 영역을 열권(熱圈)이라 부른다. 지구는 태양이나 다른 행성과 같은 시기 즉 46억 년 전에 원시태양성운을 이루던 가스와 먼지가 응집해 형성되었다. 그러나 그때 생긴 대기 성분은 고온으로 인해 입자의 자유 속도가 커져 우주 공간으로 날아가거나 강대한 태양풍에 날려 거의 대부분 사라진 것으로 생각된다.

 

그 뒤에 지구 대기는 주로 지하에서 분출된 화산가스로 이루어졌다. 주성분은 이산화탄소, 질소 분자, 수소 분자, 수증기였다. 메테인, 암모니아, 황화수소, 일산화탄소, 염화수소 등도 함유되어 있었다. 이 가운데 수소가스는 아주 가벼워 우주 공간으로 빠져나갔고 수증기는 온도가 내려감에 따라 액화되어 땅속에서 스며 나온 물과 함께 해양을 형성했다. 그 속에 이산화탄소가 많이 녹아들었다.

 

화산가스 등으로 지구 대기가 형성된 시기와 초신성 폭발로 죽어간 거대 별 내부에서 합성된 후 성간 먼지와 가스 구름에 섞여 있다가 지구가 형성될 때 모여든 철, 니켈 같은 무거운 원소들이 지구 핵 쪽으로 가라앉은 시기는 거의 동시다. 지구 형성 과정에서 중력에 의한 밀도 차이에 따라 층상 구조화가 일어났다. , 니켈 등 무거운 원소들은 지구 중심부로 가라앉았고 산소, 규소, 마그네슘, 알루미늄 등은 지각과 맨틀을 이루었고 수소, 헬륨 등 가벼운 원소들은 지구 대기를 이루었다.

 

산소, 규소, 알루미늄, 마그네슘 등은 별에서 만들어진 후 지각이나 맨틀을 이루다가 화산분출로 대기권, 수권, 암석권을 순환하며 판구조 운동에 의해 맨틀 속으로 가라앉거나 지각 변동을 통해 새로운 암석으로 재탄생하는 기나긴 순환 과정을 거친다. 성층권 오존은 태양 자외선에 의해 생성된다. 그러므로 자외선이 강한 저위도나 여름철에 더 많이 생성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실제 관측 결과는 정반대다. 특히 겨울철에 고위도 지역에서는 하루 종일 태양광이 비치지 않는데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오존량이 관측된다.

 

고위도에서 오존이 많은 원인은 무엇인가? 이는 운동에 의해 오존이 저위도로부터 고위도로 운반되기 때문이다. 공기가 운동하는 모양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공기와 함께 운동하는 물질을 찾아내 그 이동 경로를 추적하면 된다. 이 목적에 사용되는 물질을 추적자(tracer)라고 부른다. 인간 활동으로 공기 중에 방출되는 프레온 가스는 발생 원인이 명확하고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일이 없는 데다가 화학적으로 매우 안정되어 지면이나 다른 물질에 부착되어 소멸하는 일도 없기에 추적자로서 이상적이다.

 

오존 자체가 하부 성층권이나 대류권에서 추적자 역할을 한다. 수증기도 추적자다. 1883827일 인도네시아의 크라카타우섬에서 일어난 화산 분화로 역사상 최대 규모의 사건으로 분출된 분진은 32km까지 치솟았다. 이후 몇 주 지나 25km 부근까지 내려온 분진은 오랜 기간 동안 그 고도에 머물렀으며 강한 돌풍을 타고 지구를 몇 바퀴 도는 것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남북 방향의 운동도 더해지면서 이 분진 때문에 일몰 때와 같은 붉은 태양이 관측되었다. 몇 년 동안 지구의 평균기온이 0.5°C나 낮아졌다.

 

이산화탄소는 지표면의 열을 가두어 상공으로 열이 올라가는 것을 막는 방패 역할을 한다. 성층권 입장에서는 아래층에서 올라오는 열을 공급받지 못해 부족해지고 결국 온도가 떨어지게 된다. 성층권은 고도가 높아질수록 온도가 상승한다. 그 이유는 오존 때문이다. 오존이 태양으로부터 쏟아지는 자외선을 흡수하면서 막대한 열에너지를 방출하기 때문이다. 성층권에서는 이런 이유로 공기가 열적(熱的)으로 안정되어 있어 상하 방향의 공기 혼합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대류권에서 올라온 프레온 등의 물질은 대류권계면의 벽에 가로막혀 성층권으로 침투할 수 없다. 그러나 적도 지방에서는 강한 지면 가열로 생기는 상승기류의 일부가 대류권계면을 통과해 상층권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104 페이지) 성층권이 대류하지 않는 것은 오존층 때문이다. 농산물을 더 많이 수확하려면 비료가 많이 필요하다. 그러나 질소를 포함한 화학비료를 대량으로 사용하면 증가한 질소산화물이 촉매로 작용해 성층권 오존이 감소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오존층이 형성되(어 유해 자외선이 차단되)고서야 육상 식물이 번성할 수 있었다. 광합성은 바닷속 플랑크톤과 같은 조류에서도 일어나므로 오존층이 형성되지 않아 육상 생물이 발달하지 못하던 시기에도 해양 조류(藻類)로부터 산소 분자가 발생했을 것이다. 초기 지구의 대기는 지하 깊은 곳에서 분출된 화산가스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 속에 오존이 없었다는 점은 명백하다. 오존 생성에 바탕이 되는 산소 분자도 화산가스에는 함유되어 있지 않았다. 산소는 식물의 광합성 과정에서 엽록소가 태양의 가시광선을 흡수해 물과 이산화탄소로부터 탄수화물을 만들 때 부산물로 만들어진다.

 

오존은 산소 원자 세 개로 이루어진 물질이다. 오존층은 주로 성층권에 있다. 오존 생성에 필요한 강한 자외선과 산소의 양 때문이다. 오존 생성에 자외선이 필수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태양으로부터 오는 강한 자외선이 산소 분자를 강제로 쪼개 산소 원자 두 개를 만든다. 이렇게 떨어져 나와 불안정해진 산소 원자가 주변의 산소 분자와 결합해 오존이 된다.

 

성층권은 안정된 대기층이라는 의미다. 성층권 에어로졸은 지구로 들어오는 태양 복사 에너지를 우주로 반사해 온도를 떨어뜨린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증가로 인해 지표에서 올라오는 열이 대부분 대류권에 갇힘으로써 성층권으로 전달되는 복사 에너지가 감소해 성층권은 온도가 떨어진다.

 

남극의 겨울에는 태양이 전혀 비치지 않기 때문에 오존홀 관측은 주로 달빛을 이용해 이루어진다. 남극 오존홀의 정식 이름은 남극의 봄 기간 동안 성층권 오존의 이상적인 감소이며 오존이 아주 없어져 구멍이 뚫려 있거나 1년 중 오존이 계속 감소하는 것은 아니다. 오존홀이란 지구 대기 중 성층권에 있는 오존층의 오존 농도가 급격히 감소하여 마치 구멍이 난 것처럼 보이는 현상을 지칭한다.

 

감소한 오존은 긴 시간에 걸쳐서이지만 회복된다. 오존파괴물질 사용을 자제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성층권 오존 문제는 자연과학 문제를 넘어 정치, 경제, 사회, 윤리 문제까지 아우르는 복합적 사안이다. 인간이 물질적 욕망 나아가 생활의 풍요로움과 편리함만을 추구하며 지구환경 파괴를 돌아보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이제 허용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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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은 어디까지 설명할 수 있는가 - 현대 물리학의 존재론적 질문들에 대한 도발적인 답변
자비네 호젠펠더 지음, 배지은 옮김 / 해나무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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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이론 물리학자 자비네 호젠펠더의 책이다. 원제는 [실존적인 물리학(Existential Physics)]. 책은 다루는 분야(다중우주, 빅뱅, 만물의 이론 등)로 인해 어러운데다가 저자 자신도 상세하고 친절한 설명과는 거리가 있는 학자이고 연구자다. 인내하며 읽으면 얻을 수 있는 것들이 꽤 있는 책이다. 본문 내용이 어렵게 느껴지더라도 에필로그를 통해서는 잔잔한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을 불가지론자이자 비종교인이되 종교적 신념에는 반대하지 않는다고 설명하는 저자는 자신의 책은 현재 물리학이 제기하는 거대한 물음에 대해 다룬 책이라고 말한다. 가령 지금 이 순간이 과거와 다른지, 각각의 기본 입자에 우주가 깃들어 있는지, 자연 법칙이 우리의 판단을 결정하는지 같은 의문은 다루는 책이라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저자는 자연에 기반한 증거를 바탕으로 수립된 이론만 고수할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이 말은 과학이 발전하면 내용이 바뀔 수도 있음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특수상대성 이론에서 상대성이란 절대적인 정지 상태가 없다는 뜻이라고 설명하는 것으로 포문을 연 저자는 시간의 흐름은 보편적이지 않다고 결론 낸다. 저자는 양자역학이 관련되기 이전에 당시 알려져 있던 자연 법칙은 결정론적이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물리학자들은 자기가 쓰는 수학이 실재에 관해 실재보다 더 많은 것을 드러낸다고 생각하는 오류를 자주 범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과학의 목적이란 세상을 유용하게 서술할 방법을 찾는 것이라 말한다. 설명은 단순할수록 더 유용하다고 말하는 저자는 과학 이론은 우리가 세상에 관해 하는 이야기를 대폭 단순화한다고 결론 낸다.

 

저자는 흥미로운 말을 한다. 창조주 가설은 설명력을 정량화할 수 없다. 이 가설로는 아무것도 계산할 수 없다. 그렇다고 틀렸다는 건 아니지만 확실히 비과학적이다라고. 덧붙여 저자는 6000년 전에 이 세상 모든 것이 제 자리에 있도록 창조되었다는 말은 틀릴 것도 없고 쓸모도 없다고 말한다. 이 가설은 정량적으로 대단히 복잡해서 초기 조건으로 어마어마한 양의 데이터를 집어넣어야 한다.(58, 59 페이지)

 

우리는 가능한 한 많은 데이터를 취하고 거기에서 단순한 설명을 찾는다. 계산할 수 있는 데이터 안에 패턴이 많을수록 설명은 좋아진다. 저자는 초기 우주에 관한 모든 가설은 순수한 추정일 뿐으로 이러한 가설들은 수학이라는 언어로 쓰인 현대판 창조 설화라고 말한다. 여기에는 증거가 없을뿐더러 그 중 옳은 가설을 가려내려는 논쟁을 잠재울 수 있는 증거가 무엇인지 그 자체를 생각해내기도 어렵다고 말한다.(73, 74 페이지)

 

저자는 우주는 오직 제한된, 축복받은 시간 틀 안에서만 생명을 지원해줄 뿐이고 마침 우리는 그 틀 안에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아주 인상적인 말을 한다. 자연 법칙은 갑자기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만일 휙휙 바뀐다면 애초에 그것을 법칙이라고 부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미다.

 

저자는 의식이 있는 존재가 만들어지려면 입자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할까?라고 묻는다. 저자는 전체는 부분들의 합일 뿐이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말한다. 저자는 자신을 대단히 수학적인 사람이라 소개하며 개인적으로 수학을 일상생활의 언어로 번역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고 설명한다.

 

저자에 의하면 추상적 수학의 직관적 언어로 설명할 때 뭐가 문제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바로 양자역학이다.(174 페이지) 저자는 양자역학의 기이함은 대부분 양자역학을 일상의 언어로 억지로 설명하려는 데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독자들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양자역학에 대해서는 정확한 비유 같은 것은 없다. 그 비유가 정확하다면 더 이상 비유가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에 의하면 양자역학에서는 모든 것을 파동 함수로 서술한다.(176 페이지) 양자역학에서 결과 측정이 불확실한 것은 초기 조건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양자역학 자체가 그냥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에 의하면 혼돈 법칙도 실은 결정론적이다. 다만 초기 조건에 대단히 민감하게 의존하기 때문에 예측하기가 어려울 뿐이다. 양자 사건은 근본적으로 무작위적이며 그 어떤 것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

 

저자는 자유의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자유의지는 그 자체로 일관성이 없는 아이디어다. 의지가 자유로우려면 다른 무엇도 그 의지의 원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 뇌의 신피질에는 자연 법칙을 능가할 수 있게 해주는 마법의 용액 같은 것은 없다. 우리가 하는 일이라고는 제한된 정보 안에서 내릴 수 있는 최선의 결정이 무엇인지 가늠하는 것이 전부다.

 

결정은 우리 진화의 결과이며 자연 법칙 이상의 무언가를 요구하지 않는다. 저자는 자유의지가 있든 없든 우리는 지금 여기에 있고 그러므로 우리는 중요하다고 말한다. 또한 자유의지가 없어도 도덕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자신에게 가장 아름답고 가장 강력하고 가장 통합적인 원리를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최소 작용의 원리를 꼽을 것이라고 말한다.

 

최소작용의 원리란 자연계의 모든 물리적 현상이 항상 가장 효율적이고 작용이 최소화되는 경로를 따른다는 법칙이다. 자연 상수들이 왜 지금의 값인지를 알아내려는 시도는 물론 관측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평행우주를 끌어들이는 이론들도 모두 과학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냥 수학이라는 허울을 뒤집어쓰고 과학으로 변장한 종교라고 말한다.

 

저자는 적어도 과학자라면 자신들이 속한 분야의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가끔 우리가 내놓을 수 있는 과학적인 답이 그건 우리도 몰라요밖에 없을 때도 있다고 말하는 저자 다. 저자는 여전히 진행 중인 지식 발견 과정에서 종교와 과학은 앞으로도 한참 더 공존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한다. 과학 자체로는 한계가 있고 인간은 과학이 끝나는 지점에서 다른 방식의 설명을 갈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참으로 인상적인 말을 한다. 우리가 안고 있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먼 길을 꽤 잘 걸어왔다. 우리는 지구 위에서 진화를 직접 떠안은 최초의 종이다. 우리는 더 이상 자연환경에 의해 선택되지 않는다. 그 대신 우리의 필요에 맞게 환경을 바꾼다. 물론 이것을 잘해 나가고 있는지는 다른 문제다. 지구의 기후를 살기 좋은 범위로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걸 보면 우리가 복잡계인 동시에 일부는 혼돈계인 계를 정확히 인지하는 능력이 과연 있는지 심각한 의심이 든다.

 

어쩌면 기후처럼 다면적인 비선형성 계를 이해하기에는 우리 뇌가 역부족이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그렇다면 종국에는 과학 지식을 사용해 서식지 통제를 더 월등히 해낼 수 있는 종이 인간의 자리를 대체하리라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 모든 것은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 저자는 과학만이 유일한 뉴스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에게 과학은 직업이기 전에 영감이라 말한다. 과학은 세상을 이해하고 진정한 새로움을 발견하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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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에게 물리학, 지구과학에서 전자와, 전자의 에너지 상태는 중요한가?라고 물으니 두 분야에서 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지구과학에서는 광물 동정(同定)과 원소 분석에서 유용하며 오로라 현상 분석, 대기화학 등에서도 그렇다고 한다. 두 학문은 모두 미시세계의 전자 행동을 통해 거시 세계의 현상들을 명쾌하게 풀어내는 학문이라고 한다.

 

볼프강 파울리의 배타원리와 전자 오비탈에 대해 알게 해주는 책을 추천해달라고 하니 1. [스핀](이강영 지음), 2. [양자역학 이야기](팀 제임스 지음), 3. [우리집 강아지에게 양자역학 가르치기](채드 오젤 지음) 등을 추천한다. 사이토 가쓰히로의 [한 권으로 읽는 원자, 소립자, 양자의 세계]는 전자와 전자의 에너지 상태, 오비탈 등에 대해 말하는 책인가?라고 물으니 그렇다고 한다.

 

오비탈은 원자핵 주위에서 전자가 발견될 확률을 공간으로 나타낸 함수나 모형을 뜻한다. 과거에는 전자가 태양계 행성처럼 정해진 궤도를 돈다고 생각했지만 현대 양자역학에서는 전자가 워낙 빠르고 작아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다고 본다. 따라서 전자가 나타날 수 있는 '확률적인 구름' 모양의 공간을 오비탈이라고 한다.

 

지질학과 전자, 지질학과 오비탈은 관계가 있는가?라고 물으니 매우 깊은 관계가 있다고 한다. 전자는 물리, 화학, 지구과학, 생물 중 어떤 학문과 가장 관계가 큰가?라고 물으니 물리학이 가장 높고 화학은 높고 생물학은 보통이고 지질학은 낮다고 한다.(매우 관계가 깊다고 하면서 가장 낮다는 것이 부조화스러워 보인다.) 인공지능은 전자는 지질학이나 지구과학에서 지구 자기장 형성, 광물 분석 등과 관계되지만 직접적인 연구 대상은 아니라고 한다.

 

나는 그럼에도 전자, 오비탈, 파울리의 배타원리 등에 대해 관심이 많다. 현무암은 왜 검은가?라는 질문에 철이 많아서라고 답할 수 있지만 결국 전자의 에너지 상태 때문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현무암은 철이 많아서 검다고 말하는 것은 지질학적 설명이고 현무암 속 철 화합물들이 가시광선 영역의 빛을 거의 흡수하기 때문이라는 것은 물리학의 설명이라고 인공지능은 답한다. 그런데 숲해설사들은 나뭇잎이 초록색인 것은 광합성에 필요하지 않은 초록빛을 반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런 식이라면 지질해설사들도 물리학 차원의 설명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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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도시 개경 금요일엔 역사책 13
박종진 지음, 한국역사연구회 기획 / 푸른역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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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開城)은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명당의 기본 요소인 사신사(四神砂)를 갖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신사란 풍수의 대상이 되는 땅의 동서남북에 있는 산을 말한다. 그런데 개성은 일찍부터 물과 관련된 지세 즉 구불구불 흐르지 않고 거의 일직선으로 흐르는 것으로 인해 수덕(水德)이 불순하다는 말을 들어 왔다. 개성 내부에서는 상대적으로 물이 귀했지만 비가 많이 오면 그 물이 한 방향으로 쏟아져 내려와 수해로 연결될 가능성이 컸다. 크게 보아 개성은 예성강과 임진강, 넓게는 한강을 끼고 있는 지역으로 우리 국토의 중심부에 해당하는 곳이며 오래전부터 중요하게 여겨지던 곳이다.

 

태조 왕건은 9186월 태봉의 철원 도성 포정전(布政殿)에서 즉위한 지 7개월 만인 9191월 개경으로 수도를 옮겼다. 수도를 옮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노동력 징발 등 경제적 부담도 크고 이전 수도에 터를 잡고 사는 세력의 반대도 많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태조는 건국 직후 반란이 이어지는 불안정한 정세 속에서 정치적 안정을 위해서 천도(遷都)를 단행했다. 적현(赤縣) 6개와 기현(畿縣) 7개로 구성됐던 개성부는 현종 9년인 1018년 지방 제도 개편에 따라 혁파되고 개성현 지역과 장단현 지역을 중심으로 특별구역이 재편성되었다. 그것을 경기(京畿)라 부르게 되면서 우리 역사에서 처음으로 제도적으로 경기라는 명칭이 등장했다.

 

이후 경기 영역은 몇 차례 개편이 있었지만 왕도를 지원하고 보유하기 위한 특별구역의 위상은 고려 말까지 계속 유지됐다. 경기는 고려 왕도인 개경을 유지하고 보위하기 위하여 개경 바깥에 설치한 특별 구역이다. ()은 천자의 도읍, ()는 천자가 직접 관할하는 도성 주변의 땅을 의미했다. 경기는 사방의 근본이기 때문에 다른 지역보다 무역을 가볍게 하고 왕의 교화도 먼저 시작해야 할 것으로 인식되었다. 실제 경기 지역은 수도 개경을 둘러싸고 있는 곳이어서 오히려 다른 지역보다 요역(徭役)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 조세 부담이 많은 곳이었다. 또 국가의 위급한 일이 생기면 경기 지역에서 군역 징발(徵發)을 먼저 했고 경기는 다급한 재정 수요를 해결하기 위해서 임시세인 과렴(科斂)이 자주 시행된 곳이기도 했다. 이렇게 경기는 다른 지역보다 부담이 많은 지역이었기 때문에 조세 감면과 구휼(救恤)이 자주 수행되는 곳이기도 했다.

 

개경 도성 밖 사방에 설정된 사교(四郊)는 도성과 경기에 속한 군현 경계까지의 공간으로 조선 시기 한양의 성저십리(城底十里)와 비슷한 공간이었다. 사교는 도성은 아니지만 도성의 배후지로서 역, , 왕릉, 제사 공간 등 중요한 시설이 설치된 곳이었고 도성 안에서 할 수 없는 의례를 하는 공간이었다. 또 사교는 왕이 사냥을 하거나 군사가 주둔하고 훈련하는 곳이기도 했다. 대표적인 제사 공간인 태묘는 나성 밖 동교에 있었다. 또 고려 때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원구단(圜丘壇)은 원나라 이후의 천단이 북경 남쪽에 있었던 것과 같이 남교에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조선 중기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원구가 회빈문 밖에 있었다고 한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또 동남쪽에 있었던 적전(籍田) 역시 의례 시설에 속한다. 이 외에 송악산 정상과 박연폭포 근처에 있던 신사(神祀), 개경 주변에 분포한 왕릉과 절이 위치한 곳 역시 사교의 범위에 포함할 수 있다. 성을 성곽이라 하는 것은 보통 성을 내성과 외성으로 쌓았기 때문이다. 내성을 성()이라 하고 외성을 곽()이라 한다. 고려 시기의 모든 길은 개경으로 통했다. 개경의 주요 길은 궁궐, 관청, 시전(市廛) 등 중요한 시설과 성곽의 성문을 연결했다.

 

왕조시대 궁궐은 도성의 핵심 공간이었다. 궁궐은 국왕의 정치 공간이자 생활공간이었고 또 의례 공간이기도 했다. 고려 시기 개경의 정궁 곧 본궐은 송악산 남쪽에 있었다. 고려 말 이후 전각은 사라지고 터만 남은 고려 본궐터인 만월대의 경관은 조선의 법궁이었던 경복궁과 사뭇 다르다. 북한의 개성에 있는 고려 궁궐터는 지금 가기도 어렵지만 그것 말고도 고려 궁궐에 대한 이해는 쉽지 않다. 우선 송악산 남쪽의 본궐은 이름도 없다. 원래 이름이 없었는지 아니면 본래는 이름이 있었는데 지금 전해지지 않는 이유는 정확히 모른다.

 

고려의 본궐은 고려 초기부터 전쟁과 화재 등으로 훼손되었다가 중건되는 일이 반복되었다. 제일 먼저 확인되는 궁궐의 피해는 거란의 2차 침입 때인 1011(현종 2) 1월로 현종은 거란의 침입으로 개경을 떠난 나주까지 내려갔다. 개경에 돌아와서 본 궁궐에 들어가지 못하고 이궁인 수창궁으로 들어갔던 현종은 이후 두 번 궁궐 공사를 했다. 강화 천도 직후까지 남아 있던 개경의 수창궁은 몽골과의 전쟁 기간에 파괴된 것으로 보인다. 연경궁은 본궐 동쪽 가까운 곳에 있던 이궁이었다. 본래 현종의 비 원성태후의 궁이었던 연경궁은 덕종 때 왕의 누이 연경궁장공주에게 지급되어 공주 궁으로 바뀌었다가 1098년 숙종이 태자를 세우고 첨사부를 설치한 이후 공주 궁에서 왕의 이궁이 되었다.

 

고려 시기에 태묘와 사직이 정비된 것은 성종대였다. 이때 유교의 정치 이념을 바탕으로 중앙정치제도를 정비했고 건국 이래 제대로 갖추지 못했던 태묘와 사직을 설치했으며 아울러 유교적 교육기관인 국자감을 설치했다. 태묘와 사직은 도성의 상징적인 제도였기 때문에 그 위치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정해진 격식이 있었다. [주례]에는 궁궐을 중심으로 태묘는 왼쪽에, 사직은 오른쪽에 위치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것은 태묘는 동쪽에, 사직은 서쪽에 위치해야 한다는 뜻이다. 고려 시기 수도인 개경에 설치된 대표적인 교육기관이 국자감이다.

 

국자감은 교육기관이지만 교육만 맡았던 것은 아니다. 국자감에서는 공자를 비롯한 유학의 성인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일과 과거의 첫 번째 시험인 국자감시를 주관했다. 그래서 국자감에는 그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조직, 시설, 관원이 배치되었다. 많은 사람이 모여 사는 도시에서 시장은 꼭 필요한 시설일 뿐 아니라 도시의 상징이기도 하다. 인구의 집중과 시장의 발달에서 도시가 발생했다고 보는 견해는 도시사의 고전이론이다. [주례] 고공기에 조정 곧 관청은 궁궐 앞에, 시장은 뒤에 둔다고 한 것은 시장이 아주 오래전부터 도성에 꼭 필요한 시설이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개경의 절은 풍수적으로 개경을 비보(裨補)하는 기능을 했다. 고려 태조는 개경으로 천도하면서 개경에 절과 탑을 세워 개경의 풍수를 보완하는 작업을 했다. 고려왕릉은 조선 건국 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서 시간이 지나면서 많이 훼손되었고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도굴 등으로 본 모습을 잃었다. 해방 후 북한에서 고려 왕릉을 정비하고 그중 일부는 발굴조사도 했다. 최근에는 개성에 있는 고려 왕릉 일부가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지만 주로 개성 주변에 있는 고려 왕릉은 여전히 우리에게 낯설다.

 

조선 건국 후 고려 왕릉에 대한 관심은 크지 않았다. 조선 태조 즉위교서에서 왕우를 귀의군으로 봉하여 왕씨의 제사를 받들게 했지만 태조 때에는 고려왕릉의 관리까지는 관심을 가지지 못했다. 조선 초 고려왕릉에 대한 관리는 부실했고 숭의전에 모신 태조, 현종, 문종, 원종을 제외한 다른 왕의 능들은 거의 방치되었다. 조선 초 고려왕릉에 대한 관리는 1476년 성종 7년에 완성한 [경국대전]에 규정되었다. 그 내용은 역대 시조 및 고려 태조 이하 4(태조, 현종, 문종, 원종)의 능침은 소재지의 수령이 매년 돌아보고 또 밭을 일구거나 나무 하는 것을 금()한다는 것이다.(141 페이지)

 

고려는 몽골과 전쟁 중이던 12327월 강화로 천도 했다가 12705월 개경으로 돌아왔다. 919년 고려의 수도가 된 이후 개경은 강도(江都)로 천도하기 전까지는 외적의 침입과 정변 등으로 궁궐 등 주요 시설이 훼손되기도 했지만 수도의 위상은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그렇지만 1232년 수도를 강도로 옮기면서 개경은 수도의 지위를 내어주었다. 고려 말 개경의 위상은 공민왕 이후 천도 논의가 등장하면서 흔들렸다.

 

고려 전기에는 정종(定宗)이 서경 천도를 주장했고 문종과 숙종 때는 남경을 건설했으며 인종 때에는 묘청이 중심이 되어서 서경 천도를 주장했다. 또 강도로 천도했다가 개경으로 환도한 이후에는 1290년 원나라의 반란 세력인 카다인이 침입했을 때 충렬왕이 잠시 강도로 피신한 것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천도 논의는 없었다. 고려 말에 대두된 천도 논의에는 개경의 지리적 위치가 외적의 침입에 취약하기 때문에 내륙으로 수도를 옮겨야 한다는 논리가 보이기도 하지만 천도론은 대체로 이전 시기와 마찬가지로 개경의 지덕이 쇠했다는 지기쇠왕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고 아울러 천도론이 등장하는 배경에는 불안정한 정국의 변화를 꾀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었다.

 

고려 말 천도 대상지로 주목된 곳으로는 철원, 연주(지금의 연천군), 강화, 충주, 기달산, 회암(경기도 양주 회암사지) 등 다양했지만 실제 왕이 움직인 곳은 남경 곧 한양(백악)뿐이었고 그것도 천도라기보다는 몇 달 정도 왕이 거처를 옮긴 정도였다. 공민왕 후반기 이후 궁궐 운영과 관련하여 주목되는 것은 수창궁과 화원이다. 고려 초부터 중요한 이궁 중 하나였던 수창궁은 몽골군과의 전쟁 중에 소실된 것으로 보인다. 1370(공민왕 19) 공민왕은 수창궁 터에 행차해 조영(造營)을 명령했는데 이때 훼손된 본궐의 강안전과 연경궁 대신 수창궁을 중건하여 사용하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수창궁은 공민왕 대에는 완공되지 못했고 1384년 윤 9월 낙성되어 그 후 중요한 궁궐로 기능했다. 수창궁에서 공양왕과 조선 태조가 즉위한 것은 고려 말 수창궁의 위상을 보여준다. 또 충혜왕 때부터 보이던 화원은 1373(공민왕 22) 628각전을 건설한 후 우왕 때 주요한 궁궐 공간이 되었다. 우왕 14년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개경을 압박하자 수세에 몰렸던 우왕과 최영이 머문 곳이 화원이었는데 그것은 당시 화원이 우왕에게 가장 중요한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개경의 태묘는 나성(羅城) 밖 부흥산 남동쪽에, 사직은 나성 안 오공산 남쪽에 있었다. 나성은 고려의 수도인 개경을 둘러싸고 있던 거대한 외성이다. 수도 방어와 도시 구획을 위해 쌓은 성곽이다. 나성을 기준으로 보면 태묘는 나성 밖, 사직은 나성 안에 있게 되어 그 위치가 자연스럽지 않게 보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태묘와 사직이 설치되었던 성종 때는 아직 나성이 축조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당시 태묘와 사직은 모두 도성인 황성 밖이었다. 또 사직은 궁궐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에, 태묘는 궁궐에서 상당히 먼 곳에 있게 되어 태묘와 사직의 위치는 궁궐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성이 많이 어그러진다. 그렇지만 개경 궁궐의 위치 역시 서쪽의 오공산과 동쪽의 부흥산의 중심이 아니라 북쪽에 치우쳐 있었다. 즉 아직 나성이 축성되기 이전에 동쪽의 부흥산 남쪽에 태묘를 설치하고 서쪽에 오공산 남쪽에 사직을 설치했는데 나중에 나성이 축성되면서 결과적으로 사직은 성안에, 태묘는 성 밖에 위치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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