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한 대형 서점 집계에 의하면 독자들이 비문학 책들을 거의 읽지 않는다고 한다. 정서, 공감 등의 키워드로 말할 수 있는 소설, 시 등이 아닌 지식 분야는 유튜브에서 알거나 AI에게 물어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AI는 지식 양과 정확도 등에서 놀랍다. 하지만 충실한 답 또는 소재를 얻으려면 단편적이어서는 안 되고 거듭 묻고 답에 따라 생각을 바꿔 의미 있는 질문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AI만으로는 안 되고 책을 통독해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 나도 책의 메인 스트림에서도 소재를 얻지만 예상하지 않은 부분, 곁가지에서 의미 있는 글감이나 생각거리를 얻곤 한다. AI와 함께 책이어야 할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AI; 질문자님의 생각에 깊이 공감하며, AI 시대에 책을 '통독(처음부터 끝까지 전체를 읽음)'해야 하는 이유를 정확히 짚어내셨다고 생각합니다. 지식의 단편적인 습득을 넘어 깊이 있는 사고를 하려면 말씀하신 대로 AI와 책의 상호작용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질문자님의 의견을 뒷받침하는 핵심 근거와 AI 시대에 책 읽기가 왜 더 중요해지는지 구조적으로 정리해 드립니다.

 

1. 질문의 수준이 답의 수준을 결정합니다.

AI의 한계: AI는 사용자가 입력한 프롬프트(질문)의 범위 안에서만 최적의 답을 도출합니다.

 

통독의 역할: 책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면 저자의 방대한 논리 구조와 맥락을 흡수하게 됩니다.

 

상호 작용: 이 맥락을 이해해야만 단편적인 질문을 넘어 AI에게 '거듭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사고체계가 형성됩니다.

 

2. '곁가지'에서 발견하는 뜻밖의 발견 (세렌디피티)

AI의 한계: AI는 목적 지향적입니다. 가장 확률이 높고 정제된 정보만을 지름길로 안내하므로 예측 불가능한 발견이 어렵습니다.

 

통독의 역할: 저자가 본문 옆에 곁들인 에피소드, 각주, 혹은 메인 스트림에서 벗어난 문제 제기 등에서 생각지 못한 글감과 영감이 나옵니다.

 

상호 작용: 우연히 책에서 만난 곁가지 지식이 AI의 정교한 데이터 분석력과 결합할 때 세상에 없던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탄생합니다.

 

3. 정보(Information)와 지혜(Wisdom)의 차이

AI의 영역: 유튜브와 AI는 파편화된 '정보''지식'을 빠르게 전달하는 데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책의 영역: 비문학 책은 저자가 수년 동안 연구하고 고민한 끝에 정립한 하나의 '세계관'이자 '지혜'의 집약체입니다.

 

상호 작용: 책을 통해 벼려진 비판적 사고 능력이 있어야만, AI가 내놓는 수많은 답변 중에서 거짓을 걸러내고 진정한 가치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AI 시대의 독서는 지식을 외우기 위함이 아니라 AI를 제대로 부리기 위한 '생각의 근육'을 키우기 위함"이라는 질문자님의 시각은 매우 미래지향적이고 타당합니다. AI를 최고의 파트너로 활용하는 사람들은 결국 책을 통해 깊은 사유 능력을 길러낸 독자들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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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은 살아 있다 - 청소년을 위한 46억 년 지구 과학 이야기
다케우치 히토시 지음, 원종관 옮김 / 전파과학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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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양 중앙부에는 거의 남북 방향의 큰 해저 산맥이 있다. 이를 대서양 중앙 해령이라 부른다. 이는 전 대양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단 1개의 거대한 해령 시스템이다. 수많은 지엽적인 해령들이 흩어져 있는 태평양과 달리 대서양은 하나의 거대한 수중 산맥이 바다 한가운데를 S자 모양으로 관통하며 동서 분할을 이루고 있다. 대서양 중앙 해령을 이루는 부분은 대서양의 너비인 약 6km의 거의 3분의 12km에 달한다. 중앙 해령은 그 양측에 있는 깊이 5m 정도의 해저에서 3000m의 높이로 치솟아 있다.

 

1850년대 미국의 해양학자 매튜 폰테인 모리(Matthew Fontaine Maury)가 대서양 횡단 해저 케이블 설치를 위한 탐사 자료를 분석하여 바닷속 산맥의 존재를 처음으로 추론했고 1872~1876년 영국의 탐사선 'HMS 챌린저호(HMS Challenger)'의 과학 탐사를 통해 대서양 한가운데에 거대한 해저 능선이 뻗어 있다는 사실이 공식 확인되었다.

 

1920년대 독일의 메테오(Meteor) 탐험대가 음파 탐지기를 이용해 해령이, 단절되지 않은 거대한 산맥임을 밝혀냈다. 1953년 마리 샤프(Marie Tharp)와 브루스 히젠(Bruce Heezen)이 해저 지형과 지진대 데이터를 정밀 매핑하여 해령 중앙에 '열곡'이 존재함을 밝혀내 판구조론과 해저 확장설을 입증하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다. 대서양 중앙 해령은 아이슬란드 섬을 꿰뚫고 있다. 아이슬란드에는 중앙 지구(地溝)라 불리는 유명한 열목이 있다. 열목(裂目; rift)은 열곡(裂谷)의 의미로 보인다.

 

열하분출(Fissure eruption)이 중심분출(Central eruption)로 전환되기도 한다. 이것의 핵심 메커니즘은 마그마 통로의 국지화(Localization)와 열적 집중(Thermal focusing)이다. 초기에는 긴 균열을 따라 동시 분출하던 마그마가 시간이 지나면서 에너지가 가장 강한 특정 지점으로만 흐름이 집중되며 하나의 독립된 화구(Venting pipe)를 형성하게 된다. 마그마 방의 높은 압력으로 인해 지각에 긴 균열이 생기면 마그마가 선형(Line)을 이루며 동시에 뿜어져 나온다.

 

분출이 시작된 후 마그마 방 내부의 초기 과잉 압력이 급격히 감소하고 가스가 빠져나가면서 균열 전체를 밀어 올리던 추진력이 약해진다. 추진력이 약해지면 마그마의 유량이 줄어든다. 유량이 줄어든 구역에서는 차가운 주변 암석과의 접촉으로 인해 마그마의 온도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마그마가 굳으며 균열의 대부분이 서서히 막히게 된다. 균열의 모든 곳이 동시에 막히는 것은 아니다. 상대적으로 폭이 조금 더 넓거나 마그마 공급 속도가 빨랐던 특정 지점은 마그마가 계속 흐르면서 주변 암석을 지속적으로 가열한다.

 

이로 인해 해당 지점은 냉각되지 않고 오히려 주변 암석을 녹이며 통로를 넓히게 된다. 결과적으로 모든 마그마의 흐름이 이 몇 개의 통로(Point)로만 집중되는 국지화 현상이 일어난다. 선형의 균열 중에서 살아남은 특정 지점들은 점차 원통형의 마그마 통로(Conduit)로 발달한다. 마그마가 이 집중된 통로를 통해 지속적으로 수직 분출하면서 화산재와 용암이 통로 주변에 겹겹이 쌓이게 되고, 최종적으로 우리가 흔히 아는 원추형 형태의 중심분출 화산을 형성하게 된다.

 

정리하면 열하분출이 중심분출로 바뀌는 메커니즘은 균열 전체의 압력 감소와 냉각으로 인해 대부분의 통로가 막히고 열적으로 가장 유리한 특정 지점으로만 마그마의 유량이 집중(국지화)되는 과정이다.

 

대서양의 중앙지구는 대서양 중앙 해령의 협곡이 육지에 연장된 부분이다. 아이슬란드에서의 제 4기의 화산활동 및 지진의 대부분은 이 중앙 지구에 집중된다. 중앙 지구 바닥에는 아이슬란드 말로 기아(gia)라고 불리는 수직 열목이 발달되어 있다. 이 열목은 지구를 이루는 단층과 나란하다. 중앙 지구에 있는 그 주향에 직각인 방향의 장력이 작용하는 것으로 믿고 있으며 중앙 지구의 너비가 1000년간 1km3.5m의 비율로 넓어졌다는 것이 알려졌다.

 

태평양과 달리 대서양에는 불의 고리가 없다. 결정적인 이유는 대서양의 가장자리에 판이 소멸하는 섭입대(해구)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대서양 가장자리에 섭입대(해구)가 없는 근본적인 이유는 대서양은 탄생한 지 약 18,000만 년에서 2억 년밖에 되지 않은 지질학적으로 매우 젊은 대양이기 때문이다.

 

섭입대(Subduction zone)는 한 판이 다른 판 밑으로 파고들어 소멸하는 경계로,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지진과 폭발적인 화산 활동을 일으키는 핵심 공장 역할을 한다. 섭입대는 두껍고 단단한 암석판 두 개가 정면으로 맞부딪히며 파고드는 곳이기 때문에 지구상에서 가장 거대한 마찰력이 발생한다. 내려가는 해양판과 위에 있는 대륙판이 맞물려 엄청난 에너지가 축적된다. 판이 지하 깊숙이 뚫고 들어가기 때문에 얕은 곳(천발 지진)뿐만 아니라 지하 300~700km 깊은 곳(심발 지진)까지 판이 부서지며 연속적인 지진대를 형성한다. 섭입대가 없는 대서양 해령은 얕은 지진만 일어난다.

 

섭입대 화산의 진짜 원인은 해양판이 머금고 간 물(Water)에 있다. 해양판이 가라앉을 때 바닷물과 반응했던 해저 퇴적물과 함수광물이 지하 깊은 곳까지 함께 끌려 들어간다. 지하 약 100km 깊이에 도달하면 엄청난 압력과 열에 의해 이 광물 속에서 물이 짜여 나온다. 이 물이 상부 맨틀의 암석과 섞이면 암석이 녹기 시작하는 온도가 뚝 떨어진다. 이로 인해 맨틀이 녹아 마그마가 형성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마그마는 물(수증기)과 가스 함량이 매우 높아 엄청난 압력을 품고 있다. 지표면으로 뚫고 나올 때 마치 흔든 샴페인처럼 콰쾅 하고 폭발적인 분출을 일으키며, 이 화산들이 바다 위에 줄을 지어 일본 열도 같은 호상열도나 안데스산맥 같은 거대한 화산호를 만든다.

 

물은 판과 판이 부딪히고 긁히며 지구상에서 가장 깊고 강한 초대형 지진을 일으키는 방아쇠 역할을 한다. 맨틀에 투입되어 마그마를 만들고 가스 압력을 높여 대규모 폭발을 일으키는 화산 가속기이기도 하다. 섭입대가 촘촘히 둘러싼 태평양은 지진과 화산이 끊이지 않는 '불의 고리'가 되었고 섭입대가 없이 판이 부드럽게 찢어지기만 하는 대서양은 변두리가 매우 조용하고 안전한 곳이다.

 

저자는 지구의 지각은 유체라고 하기보다 탄성적인 고체라고 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얼음의 유체성은 얼음 알맹이와 알맹이 사이에 있는 염분을 함유하는 물의 막에서 기인한다. 암염(巖鹽; rock salt)도 고체로서 유체의 성질을 띤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용기 역시 고체가 액체와 같은 성질을 나타내는 사례 중 하나다. 스칸디나비아 반도가 솟아오른 것은 반도를 덮고 있던 빙하가 녹았기 때문이다. 변환 단층은 맨틀 대류와 판의 이동속도 차이에서 생기는 현상이다. 지구 자기장의 방향이 오늘날과 반대 방향으로 된 것을 지구 자기장의 반전이라 부른다.

 

지자기의 역전을 읽어내는 첨단 기구를 SQUID(superconducting quantum interference device)라 한다. 초전도 양자 간섭 장치라 한다. 1964년 발명되었다. SQUID 발명 이전 과학자들은 비정적 자력계, 스피너 자력계, 플 럭스 게이트 자력계 등으로 자기장을 읽었다. 해저는 자기 테이프와 같다. 대양 한가운데서 분출한 용암이 굳을 때 당시 지구 자기장 방향이 지구의 암석에 고스란히 기록된다는 뜻이다.

 

저자는 현대 지구과학은 이은 자국이 없는 직물과 같아서 한쪽에서 얻은 성과는 즉시 다른 쪽으로 옮겨간다는 말을 한다. 화성암의 잔류자기, 해저 퇴적물의 잔류자기, 해양 지역에서의 지자기 이상은 지구과학의 3위 일체라고 불린다.(160 페이지) 아직 2억 년이 되지 않은 대서양 해저는 확장되고 있다고 한다. 대서양에는 두 개(소앤틸리스, 스코샤)의 공식 섭입대와 하나(지브롤터)의 잠재적 섭입대가 있다.

 

이는 13~15개의 섭입대를 가진 태평양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숫자다. 이 차이는 해양 지각의 나이와 그로 인한 밀도와 두께의 차이로 인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섭입대의 숫자가 적으면 해양 확장이 어려워진다. 섭입대가 별로 없는 대서양이 계속 확장할 수 있는 것은 지구 반대편 태평양에 섭 입대가 충분해 그만큼의 면적을 받아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확장이라는 말을 쓸 수 있는 것이다. 대서양은 판의 이동 속도가 아주 느린 바다다. 그러나 아무리 느려도 발산형 경계라면 해령이 생긴다.

 

일반 단층은 지각 내부의 응력으로 인해 암석이 부러져 어긋난 구간을 말한다. 변환 단층은 두 판이 서로 스쳐 지나가는 판의 경계 자체를 의미한다. 동일한 해령 축에서 멀어지는 판이라도 회전 적도에 가까운 부분은 빠르게 이동하고 회전 극에 가까운 부분은 느리게 이동한다. 일직선이던 해령 구조가 위도별 속도 차이(가속도 차이)를 견디지 못하고 뚝뚝 끊어 가로로 찢어진다.

 

이 찢어진 틈을 경계로 양옆 지각이 서로 다른 속도로 지나감에 따라 변환 단층이 만들어진다. 해저 확장 과정에서 생성된 지자기 줄무늬가 변환 단층을 경계로 어긋나 있는 현상은 판이 양옆으로 이동했다는 강력한 증거다. 판 구조론에서의 판의 운동은 평면 위의 직선 운동이 아니라 구체 위에서 특정 회전축(Euler pole)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3차원 운동이다. 하나의 판의 내부에서도 위치에 따라 이동속도의 차이가 난다.

 

하지만 판 전체가 하나의 단단한 회전체로 움직이기 때문에 쉽게 갈라지지 않는다. 동해 생성 배경은 맨틀 대류가 풀지 못한 수수께끼다. 일반적으로 바다는 해령에서 생긴다. 그러나 동해는 다른 판이 땅속으로 들어가며 대륙 가장자리를 찢어 넓게 펼친 곳에 만들어진 바다다. 대륙판 밑으로 파고드는 태평양 판이 무거워 해구의 위치가 바다 쪽으로 밀려나는 것을 해구 후퇴(trench retreat)라고 한다.

 

맨틀 대류는 부분적으로 특정 부위를 따뜻하게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식히는 역할을 한다. 대류에서는 끌어 올려지는 한편 그것과 같은 부피의 물질이 지구 내부로 다시 흘러 들어가 지구 표면에서는 축적이 일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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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보이는 세상 : 화학 편 - 원자 결합부터 화학 변화까지 계산 없이 쏙쏙 이해하는 화학 아는 만큼 보이는 세상
사마키 다케오 지음, 최윤영 옮김, 이준호 감수 / 유노책주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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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물질이라고 하면 폭발물이나 독극물과 같은 무서운 이미지가 떠오르겠지만 인간을 포함해 공기, , 음식, 의복, 건축물, , 암석 등 주위의 온갖 사물을 이루고 있는 물질 역시 화학물질이다. 물질을 이루는 원자의 결합 방식이 바뀌어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물질이 만들어지는 변화를 화학변화라 한다.

 

얼음에 가해진 열이 물 분자 사이의 결합을 끊으면 성질이 바뀌는 것과 감람암에 물이 닿으면 사문암이 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전자는 물리적 변화이고 후자는 화학적 변화다. 김은 눈에 보이고 수증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수증기와 달리 액체다. 수증기가 공기 중으로 나왔을 때 작은 물방울로 변한 것이 우리가 보는 김이다. 수증기는 무색투명해서 분자도 보이지 않는다. 1500배 정도 배율의 성능 좋은 광학 현미경으로도 이 물 분자를 볼 수 없다.

 

수증기는 100°C에서 더 나아가 200°C, 300°C를 넘는 고온의 상태가 되기도 한다. 이런 수증기를 과열(過熱) 수증기라 한다. 과열 수증기에 성냥을 가져다 대면 불이 붙고 종이도 태울 수 있다. 수증기에 젖는 것이 아니라 수증기에 타는 것이다. 물의 경우 고체보다 액체가 더 가벼운 이유는 물 분자의 결합 방식에 있다.

 

물 분자는 한 개의 산소 원자의 두 개의 수소 원자가 결합해 만들어진다. 여기서 두 수소 원자는 일정 각도(104.5°)를 이루는 꺾은 선 모양을 하고 있다. 물 분자의 수소 원자와 주변의 다른 물 분자의 산소 원자는 양전하와 음전하로 서로를 끌어당긴다. 이 결합을 수소 결합이라고 한다. 수소 결합은 일반 분자 간의 끌어당김보다 강력하다. 이를 다르게 표현하면 물 분자는 분자 내의 전기적 치우침이 큰 분자라고 할 수 있다.

 

수소 결합으로 만들어진 결정은 육각형 모양으로 배열되어 있다. 얼음은 수소결합 때문 틈새가 커진 경우다. 물이 녹아 액체가 되면 상당수의 수소 결합이 끊어지고 물 분자가 무질서하게 움직인다. 수소 결합이 사라지면 물 분자 사이의 틈이 메워져 밀도가 커진다. 얼음의 결합각은 109.5°이고 물의 결합각은 104.5°이다.

 

물은 유리도 녹인다. 근육 조직의 약 72% 정도가 수분이다. 남성은 60%가 물로 이루어졌고 여성은 55%가 물로 이루어졌다. 보통 남성이 여성보다 더 활력 있어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근육이 많아 신체에 더 많은 수분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물은 영양분이나 산소를 운반하고 신체에 필요한 다양한 화학반응을 일으킨다. 체온이나 삼투압을 조절하고 위생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므로 생존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기에 인류는 정착 생활을 시작한 뒤에도 깨끗한 물이 있는 곳에 모여 살았다. 물을 다른 말로 디하이드로젠 모노옥사이드라 한다. 수소 두개, 산소 하나라는 뜻이다. 대류권은 다른 대기권과 비교했을 때 고도에 따른 온도 변화가 유독 심하다. 성층권에서는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따뜻해지고 지표면에 가까워질수록 온도가 내려간다. 산소는 생물의 호흡이나 물체 연소에 꼭 필요한 기체다. 물에 어느 정도 녹기 때문에 물고기 등의 수중 생물이 물속에서 생활할 수 있는 것이다.

 

질소는 다른 물질과 반응하기 어려운 성질을 가지고 있다. 산소에 노출된 식품은 변질되기 쉬우므로 식품을 담은 용기 안에 질소를 충전해 이를 막기도 한다. 아르곤은 다른 물질과 반응하지 않는 기체다. 그래서 공기 중에 조용히 존재하다가 1894년이 되어서야 발견되었다. 반응성이 거의 없기 때문에 게으름뱅이를 뜻하는 그리스어 Argos에서 이름을 따왔다.

 

흥미로운 사실은 공기가 희박해져도 공기의 성분 조성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지구상에서 공기의 성분비는 거의 모든 곳에서 동일하다. 지상의 건조한 공기는 약 78%가 질소, 21%가 산소로 전체 공기의 99%가 이 두 가지 기체로 이루어져 있다. 이 밖에 아르곤 0.9%, 이산화탄소 0.04% 등이 포함된다. 이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장소나 계절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난다.

 

침팬지 등이 도구를 사용하는 동물이지만 도구를 만들기 위한 도구를 만드는 동물은 인간 외에는 없다. 인간이 구석기를 만들기 위해 격지를 활용한 것도 도구를 위한 도구의 사용예이다. 불로 조리를 하기 위해 그릇을 만든 것도 도구를 위한 도구를 만든 것이다. 이렇게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달리 불을 사용한다. 언제부터, 어떻게 불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는지는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화산 폭발이나 낙뢰로 화재가 일어났을 때 얻은 불씨를 이용해 생활하는 데 불을 활용하기 시작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처음에 인류는 자연적으로 발생한 불씨만을 허용했을 것이나 점차 스스로 불을 피울 수 있게 되었다. 가스통 바슐라르는 인간은 사물(나무)의 심장 속에 숨겨진 열정과 사랑을 끌어내려는 에로틱한 몽상 때문에 불을 만들어내게 되었다고 말한다. 바슐라르는 막스 뮐러의 말을 인용하여 불은 두 나뭇 조각에서 태어난 자식이라는 말을 했다.

 

불은 자신을 낳아준 부모라는 나무를 태우는 존재다. 이는 불이 가진 모순을 드러내는 말이다. 인류는 불을 다룰 수 있었기에 화학 변화도 일으킬 수 있었다. 근대화학의 아버지인 라 부아지에는 칼 빌헬름 셀레와 조지프 프리스틀리가 독자적으로 발견한 지중해 기체를 산소라 명명했고 물질이 연소하는 이유가 가연성 물질과 산소의 화학 변화 때문임을 밝혔다. 화학에서는 라부아지에의 이론에 설명을 추가해 물질이 열과 빛을 내며 격렬하게 산소와 반응하는 현상을 연소(燃燒)라 정의한다.

 

석유난로는 등유를 넣어 사용한다. 등유의 인화점이 상온보다 높아 심지 부분만 연소되기 때문이다. 휘발유는 절대 안 된다. 휘발유는 인화점이 낮아서 불을 붙이면 심지뿐 아니라 휘발유 본체가 연소하기 때문이다. 금속은 다른 물질에 비해 유독 전기가 잘 통한다. 사실 금속에서 광택이 나는 이유와 전기가 잘 통하는 이유는 서로 같다. 금속만의 독특한 원자 결합 방식 때문이다.

 

금속 원자들은 다른 금속 원자와 결합할 때 자신들의 가장 바깥에 있는 전자를 공유한다. 이 과정에서 외부로 내놓인 전자들은 일종의 구름 형태로 존재하며 원자 사이를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이를 전자 구름이라고 부른다. 전자들은 이 전자 구름 속에서 서로 결합하고 덕분에 금속 원자들은 재료를 형성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금속의 결합 방식을 금속 결합이라고 한다. 이때 전기로 이루어진 전자들이 전자 구름으로 이루어진 금속의 표면과 내부를 자유롭게 돌아다님으로써 금속 전체에 전기가 잘 통하게 된다.

 

전자 구름은 가시광선을 받으면 흡수했다가 다시 내보내는 방식으로 빛을 반사한다. 이는 금속에서 광택이 나는 이유이다. 원소명은 상당히 애매하게 사용되고 있다. 산소라고 했을 때 그것이 원소의 산소를 가리키는지, 오존과 구별되는 홑원소 물질의 산소인지, 산소 분자인지,산소 원자를 말하는 것인지 문맥을 보며 추측할 수밖에 없다.

 

스테인레스는 철에 크로뮴과 니켈을 더해 만든 합금이다. 스테인레스가 녹이 슬지 않는 이유는 매우 치밀한 산화 피막 즉 녹으로 보호되어 있기 때문이다. 토기는 주로 입자가 아주 미세하고 무른 흙인 점토로 만든다. 점토는 물을 넣고 반죽하면 적당한 끈기가 생겨 다양한 형태로 만들 수 있다. 이를 불에 구우면 전과 달리 매우 딱딱해진다.

 

점토는 암석이 침식되거나 풍화되면서 만들어진 퇴적물이다. 점토를 구성하는 물질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이산화규소이다. 이는 다이아몬드와 같은 무기 고분자로 한 덩어리가 하나의 분자로 구성된다. 이는 원자들이 공유 결합으로 수없이 많이 연결되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메소포타미아는 나무가 잘 자라지 않는 곳이라 집을 짓는 데 목재를 사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햇볕에 말린 벽돌로 담장과 건물을 세우며 도시를 형성했다. 그러나 흙 벽들은 비바람을 맞으면 흙으로 되돌아가버린다는 단점이 있었다. 메소포타미아와는 달리 인더스 문명에서는 구운 벽돌을 사용했다. 이를 소성(燒成) 벽돌이라고 한다. 당시 인더스강을 중심으로 광범위한 지역에서 단단한 소성 벽돌 문명이 확산한 것으로 추정한다. 이들은 소성 벽돌을 이용해 집을 만들었고 집집마다 우물, 부엌, 빨래터를 두었다.

 

생활 하수를 배출할 수 있는 하수도 또한 소성 벽돌을 이용해 만들었다. 소성 벽돌을 이용해 매우 치밀하게 도시 전반을 건설한 것이다. 인더스 문명은 기원전 1700년경에 멸망한다. 그 이후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소성 벽돌을 이용한 도시 건설이 주된 원인으로 보인다. 소성 벽돌을 만들기 위해서는 불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과도하게 산림을 벌채하면서 주위의 자연환경이 무너졌고 인더스강이 대홍수를 일으킨 것이 아닌가 추측한다.

 

고대 로마의 나폴리 근교 지역에는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시멘트가 존재했다. 바로 화산재다. 고대 로마인들이 화산재를 굳혀 만든 콘크리트를 로마 콘크리트라 부른다. 로마 콘크리트를 이용해 만든 대표적 건물이 바로 판테온 신전이다. 일부 신전의 지붕은 지은 지 2000년이 지났는데 여전히 견고하다.

 

판테온 신전은 층마다 다른 시멘트가 사용돼 쉽게 파손되지 않는다. 위로 올라갈수록 콘크리트의 무게와 밀도를 줄인 것이다. 이를 밀도 점층공법이라 한다. 이것이 고대 로마제국의 멸망으로 끊긴 기술이다. 판테온 신전은 현재도 남아있는 세계 최대의 무근(無筋) 즉 철근이 들어 있지 않은 콘크리트 구조물이다.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은 천연 대리암으로만 지워진 건물이다.

 

유리는 수소와 결합한 상태여서 추가로 산소와 만난다고 하더라도 더는 산화되지 않는다. 유리는 황산, 염산, 질산 같은 산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 화학약품을 유리병에 넣어 보관하는 이유이다. 유리는 고무나 나무 조각과 같이 전기가 흐르지 않는 절연체이기도 하다. 유리는 고온에 노출되면 일정 온도에서 액화하지 않고 점차 부드러워져 마침내 유동성을 갖는다. 그래서 유리는 딱딱하지만 매우 점성이 높은 일종의 액체라고도 볼 수 있다.

 

가스는 원래 별다른 냄새가 나지 않는다. 가정에서 사용하는 가스는 냄새가 나는 미량의 기체를 섞어 가스 노출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도록 했다. 불꽃놀이는 금속이 불에서 얻은 열에너지를 빛 에너지로 바꿔 방출하는 과정을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이다. 불꽃 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금속도 있다. 이것은 전자가 고에너지 상태에서 저에너지 상태로 돌아갈 때 가시광선이 아닌 빛을 내기 때문에 우리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니트로 글리세린은 니트로 셀룰로우스와 마찬가지로 화약으로 이용하기가 어려워 현대에는 주로 심장약의 재료로 활용한다. 결국 흑색 화약은 새로운 화약이 발명되었음에도 오랜 시간 동안 계속 사용되었다. 보르도액이라는 농약이 있다. 프랑스 보르도는 프랑스에서 포도가 잘 재배되는 한 지역의 이름이다. 이 지방에서는 포도를 자주 도둑맞았다. 그래서 황산구리와 석회를 섞은 혼합액을 포도에 살포해 도난을 방지하고자 했다.

 

그러자 포도나무에 발생하는 포도 녹음병의 발병률이 상당히 줄어들었다. 사람들은 황산구리와 석회 혼합액을 사용함으로써 녹은 병의 발생을 막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이 농약을 마을 이름을 따서 보르도액이라 불렀다. 즉 농약은 포도 도둑을 쫓아내려 다 탄생한 것이다.(포도 도둑을 막으려다가 탄생한 것이 농약이 아니라 살균제라는 말이 있다.)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 이후 미국과 세계가 개발도상국의 말라리아 퇴치를 원조가 중단되자 개발도상국에서 말라리아로 사망한 사람이 수백만 명이나 되었다는 사실도 있다. DDT가 말라리아를 죽이는 데 큰 몫을 한 것이다. 처음 발명되었을 때 꿈의 물질로 알려졌으나 현재는 오존층을 파괴하는 환경 오염 물질로 낙인찍힌 것이 프레온이다. 반면 대체 프레온은 온실효과가 강하다. 현재는 이소부탄이라는 탄소와 수소가 결합한 물질을 사용한다. 다만 이소부탄은 불을 붙이면 연소해 불편하다. 냉장고, 에어컨 등에는 여전히 대체 프레온을 사용한다.

 

이는 석면(石綿; Asbestos)의 사례를 닮았다. 석면은 과거에 신이 내린 선물, 기적의 물질(Miracle Mineral) 또는 꿈의 소재로 불리며 전 세계 산업계의 엄청난 찬사를 받았다. 석면은 현재 인체에 명백히 유해한 1급 발암물질로 지정되었다.

 

천연 염료 가운데 쪽이나 꼭두서니는 고대 이집트에서 미라 염색에 사용되었다. 페루, 멕시코 등의 선인장에 기생하는 곤충인 연지벌레 암컷의 체내에 존재하는 붉은 색소로 만든 염료가 코치닐이다. 마야문명과 잉카 문명 때부터 립스틱으로, 천을 염색하는 용도로 사용했다. 페루 등 남미에서는 현재도 선인장을 재배해 이를 먹이로 하는 연지벌레를 대량 사육한다. 음료수 라벨에 코치닐 추출물, 카민(Carmine), 식품첨가물 분류 코드 ‘E120으로 표기되어 있다면 이 성분이 들어간 것이다. 연지(胭脂) 벌레를 cochineal insect라 한다.

 

아닐린은 모브(mauve)를 탄생시킨 매트릭스이자 핵심 원료다. 인디고()에서 아닐린(방향족 아민 화합물로 투명한 기름 같은 액체)을 발견했고 아닐린으로 모브(부드러운 연보라색)를 창조했다. 물론 지금은 모브를 염색에 사용하지 않는다. 염료는 섬유와 끈끈하게 잘 얽히며 쉽게 떨어지지 않아야 한다. 섬유 분자의 틈새에 색소 분자가 들어가 화학적으로 결합해 단단히 부착되어야 한다. 염색 견뢰도(Color Fastness)는 염색된 섬유나 가죽 제품이 세탁, 햇빛, 마찰 등 외부 자극을 받았을 때 원래의 색을 얼마나 잘 유지하는가를 나타내는 저항성(품질 표준)이다.

 

안료는 물과 기름에 녹지 않고 염료는 녹는다. 고대인들은 산화철 분말에 짐승의 기름 등을 섞어 사용했다. 산화철 분말은 지금도 적색 안료로 사용된다. 수지(樹脂)에는 천연과 합성 두 가지가 있다. 플라스틱은 합성 수지다. 수지란 나무껍질에 상처를 내면 분비되는 끈적끈적한 액체가 굳은 것으로 가장 유명한 것이 송진(松津)이다. 플라스틱은 가소성(可塑性) 또는 소성(塑性)을 의미한다. 소성이란 물질에 가해지는 압력이 강해 탄성을 잃은 상태 즉 변형된 채로 있는 성질을 말한다.

 

플라스틱은 인위적으로 만든 물건이어서 먹이로 삼는 미생물이 없어 자연 분해가 어렵다. 생분해성 플라스틱은 일반 플라스틱과 제품성은 동일하지만 사용 후 미생물의 작용을 통해 물과 이산화탄소로 분해된다. 생분해성 플라스틱은 환경 오염을 줄일 수 있는 훌륭한 기술이지만 별도의 수거 및 전문 퇴비화 시스템이 함께 갖춰져야만 효과를 내는 미완의 대안이다.

 

원유를 채굴하면 가장 먼저 분별 증류를 한다. 분별 증류란 두 개 이상의 물질이 섞여 있는 용액에서 끓는 점의 차이를 이용해 성분을 나누는 방법이다. 분별 증류를 이용하면 휘발유, 액화 석유 가스, 나프타, 등유, 경유 등을 얻을 수 있다. 원유에 포함된 나프타, 등유, 경유 등의 끓는점이 다른 이유는 각 성분을 구성하는 탄화수소 분자의 크기(탄소 개수)와 무게가 다르기 때문이다. 탄화수소 분자가 무겁다(분자량이 크다)는 말과 탄소와 수소의 양(개수)이 많다는 말은 동의어다. 탄화수소 양이 많으면 끓는점이 높다.

 

원유에서 이들을 뽑아낸 후 얻어지는 점성유를 중질유라 한다. 중질유는 선박 연료로 사용된다. 이를 한 번 더 분별 증류하면 끈끈한 고체 상태의 아스팔트가 된다. 경질유는 끓는점이 비교적 낮고(대략 200이하), 탄소 개수가 적어 비중이 작고 끈적임 없이 투명하게 흐르는 기름들이다. 석유가스, 휘발유, 항공유 및 등유, 석유 나프타 등은 경질유다. 경유는 중간유다. 윤활유, 아스팔트, 벙커C(선박용 연료) 등은 중질유다. 경질유가 비싸고 고급이다. 중질유와 경질유 가운데 경질유가 먼저 나온다. 끓는점이 낮아 먼저 분리되는 경질유가 더 비싼 이유는 현대 산업에서 수요가 압도적으로 높은 고부가가치 제품을 훨씬 많이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대형 화물선이나 화력발전소는 하루에 소비하는 연료의 양이 상상을 초월한다. 중질유는 원유를 정제하고 남은 찌꺼기 기반이라 휘발유나 경유에 비해 가격이 매우 싸다. 대형 산업에서는 연료비가 곧 사업의 성패를 가르기 때문에 환경 규제를 만족하는 선에서 가장 단가가 낮은 중질유를 쓰는 것이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방법이다. 중질유는 상온에서 조청처럼 끈적거리고 불순물이 많아 승용차 같은 소형 정밀 엔진에 넣으면 노즐이 바로 막히고 엔진이 터진다. 중질유는 가벼운 경질유에 비해 탄소 원자가 빽빽하게 뭉쳐 있는 무거운 구조여서 부피당 발열량(에너지 밀도)이 매우 높아 한 번 불이 붙으면 엄청나게 강하고 지속적인 열을 내뿜는다. 수만 톤의 화물을 싣고 태평양을 건너야 하는 대형 선박이나 끊임없이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해야 하는 화력발전소에 필요한 지치지 않는 강력한 뚝배기 같은 화력을 제공하기에 완벽한 연료다. 벙커C유라는 이름은 선박의 연료 창고(Bunker)에 들어가는 가장 무거운 C등급 중유라는 뜻이다. C유란 점도가 높다는 의미다. A유는 점도가 낮다는 의미다. B유는 중간 점도라는 의미다.

 

석유 생성 가설에는 생물 기원설과 비생물 기원설이 있다. 석유 속 헤모글로빈 고리 모양의 분자 때문에 생물 유래설이 유력하다. 비생물 기원설은 지구가 만들어질 당시 내부에 갇힌 탄화수소가 열과 압력으로 변한다는 주장이다. 과거 생물이 존재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는 장소에서도 유전(油田)이 발견되기 때문에 비생물 기원설도 완전히 부정할 수 없다. 원유가 비생물 기원(무기원설) 기름이라면 화석 연료라는 표현은 과학적으로 틀린 말이 된다. 이 경우 지하 광물 자원 또는 탄화수소 연료라고 해야 할 것이다.

 

현재 과학이 목표로 하는 것은 녹색 화학이다. 녹색 화학이란 유해물질 배출을 최소화 하고 폐기물의 발생량을 줄이며 에너지와 자원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며 사고 예방을 위한 근본적인 방법을 생각하고 환경오염 예방을 위한 실시간 분석을 진행하는 등의 다섯 가지 목표를 추구하는 화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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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아의 향기 - 신화 역사 그리고 지구 이지북과학총서 5
좌용주 지음 / 이지북 / 2005년 11월
평점 :
품절


아틀란티스 전설은 그리스의 현인(賢人)인 솔론이 이집트의 사이스 신관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플라톤이 기록한 것이다. 티탄족의 거인 아틀라스에서 섬 아틀란티스와 대양(大洋) 아틀란틱 오션 즉 대서양이란 이름이 유래했다. 그리스 산토리니 섬이 아틀란티스의 모델일 가능성이 높다. 산토리니 폭발은 인류역사상 가장 거대했던 재난 중 하나인 기원전 17세기의 미노스 분화를 말한다. 마그마가 상승할 때 생기는 커다란 압력이 지진을 일으키는 경우(화산성 지진)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지진을 일으키는 경우는 1) 마그마 통로의 암반 파괴, 2) 화산 가스의 급격한 팽창, 3) 마그마 방의 팽창으로 인한 지반 균열, 4) 마그마 분출 후 함몰 등이다. 일으키지 않는 경우는 1) 통로가 열려 있는 경우, 2) 점성이 낮은 경우다. 산토리니 화산분출 과정도 지진, 폭발, 칼데라, 쓰나미 현상을 차례로 동반했을 것이다. 쓰나미는 화산섬이 폭발하고 그 중심부가 가라앉아 칼데라가 생길 때 바닷물이 칼데라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사방에서 모여들고 공간을 메우고 넘쳐난 물이 다시 주변으로 퍼져나가 해안에 다다라 커다란 높이의 해일로 변하는 것이다.

 

데우칼리온의 홍수 이야기에는 재미있는 부분이 하나 있다. 홍수를 일으키려던 제우스가 자기가 가진 물이 모자라 동생인 포세이돈에게 도움을 청하자 포세이돈이 바닷물을 역류시키고 해 일을 일으켜 거의 모든 땅을 물에 잠기게 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바로 쓰나미를 연상하게 하는 부분이다. 서기 79년 로마제국의 도시 폼페이는 지하로 그 흔적을 감췄다. 신의 분노인가? 역사의 심판인가? 입으로만 전해지던 폼페이의 멸망은 화산이 가져온 재앙이었다.

 

79824일 베수비오는 불을 뿜었다. 이는 엄청난 재앙의 시작이었다. 재와 돌덩이가 순식간에 폼페이를 덮어버렸다. 하지만 폼페이 사람들은 속수무책이었다. 열광적으로 숭배하던 여신 이시스도 이 재앙 앞에서는 아무런 힘이 되지 못했다. 그렇게 폼페이는 묻혔다. 이 재앙으로 3,400명에 가까운 사람이 죽었다. 베수비오가 폭발할 당시 화산 분출 기둥의 높이는 무려 32km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20시간 정도에 걸쳐 4km³에 이르는 화산재가 분출되었다.

 

폼페이에 비해 (베수비오에서 서쪽으로 7km 정도 떨어진 도시) 헤르클라네움에 쌓인 재가 매우 두터운 것도 이 도시가 베수비오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베수비오 화산과 폼페이 유적지 사이의 실제 직선거리는 약 10km. 괴테는 폼페이에 대해 세상에 수많은 재앙이 있었지만 이토록 후세에 많은 즐거움을 가져다준 재앙은 드물 것이라고 말했다. 괴테가 그렇게 말한 것은 파괴적인 화산재가 도시를 순식간에 뒤덮어 산소와 빛을 차단하면서 로마 시대의 건물, 벽화, 공공시설이 부패하지 않고 완벽하게 보존되었고, 단순히 왕족의 유적이 아니라 활기 넘치던 상업 거리, 빵집, 목욕탕 등 고대인들의 생생한 삶의 현장을 후세가 직접 들여다볼 수 있었고 미술과 건축 등 인류의 역사적·고고학적 연구에 헤아릴 수 없이 큰 가치와 기쁨을 주었기 때문이다.

 

베수비오 화산에서 폼페이까지의 거리(10km)와 베수비오 화산에서 헤르클라네움까지의 거리(7km)가 달라 생긴 차이점은 이렇다. 1) 폼페이는 화산재와 부석(浮石)이 비처럼 내려 서서히 묻혔고, 헤르클라네움은 초고온의 화산 진흙(화산쇄설류)이 들이닥쳐 순식간에 굳었다. 2) 폼페이는 공기가 통해 목재가 썩었고, 헤르클라네움은 진흙이 공기를 완벽히 차단하고 열로 탄화시켜 목재 가구, 가옥, 가죽 등이 그대로 보존되었다.(화산 분출 당시의 바람 방향과 지형적 위치 때문에 두 도시의 상황이 완전히 뒤바뀔 가능성도 충분히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3) 폼페이는 썩어 없어진 육체 자리에 석고를 부은 석고 인간이 남았고, 헤르클라네움은 초고온에 살이 즉시 증발해 생생한 뼈(골격)만 남았다. 4) 폼페이는 퇴적층이 얕아 도시 전체(넓음)가 발굴되었고 헤르클라네움은 20m가 넘는 단단한 바위층과 현대 도시 아래 묻혀 있어 일부(좁음)만 발굴되었다.

 

괴테는 화성론과 수성론 사이에서 수성론을 지지했다. 반면 [종의 기원]의 저자 찰스 다윈은 수성론을 매우 경멸했다. 수성론과 화성론의 차이는 지구 표면의 모든 암석과 지형이 형성된 근본적인 원인이 물(바다)인가 불(지하의 열)인가의 차이다. 괴테는 토양이 암석의 풍화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더욱이 그는 어떤 암석으로부터 토양이 만들어지느냐에 따라 토양의 성질이 다르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는 토양의 성질에 따라 경작하기에 적당한 땅을 판단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178732일 괴테는 나폴리에 머물고 있었다. 괴테는 그때 처음으로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는 활화산 베수비오에 올랐다. 그리고 며칠 후 전에 뿜어져 나온 용암 덩어리를 밟고서 분화구를 들여다보았다. 연기가 더 높이 치솟자 괴테는 불안한 마음의 발길을 돌렸다. 괴테는 발견한 용암 덩어리들의 대부분을 잘 알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탈리아로 가기 이전 이미 괴테는 여러 곳에서 용암을 본 듯하다. 36일 괴테는 다시 베수비오에 올랐다. 하지만 그날은 베수비오에서 연기와 함께 돌, 화산재가 분출되던 날이었다.

 

괴테는 머리 위로 돌멩이가 쏟아지는 것도 무릅쓰고 분화구 봉우리까지 올랐다. 저자는 괴테의 지질학적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그가 수성론에 약점을 충분히 간파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수성론을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가 분명히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대자율(帶磁率) 측정을 이야기한다. 대자율이란 외부의 자기장에 대해 물질이 자성을 띠는 정도를 말한다.

 

대자율은 모든 화강암에서 동일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화강암에는 매우 강하게 자성을 띠는 자철석 같은 광물이 포함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광물이 많으면 대자율이 높게 나타나고 적으면 낮게 나타난다. 그리고 이런 광물의 양은 화강암마다 다르다. 경주 주변의 화강암 산지는 세 종류 이상의 다른 화강암들로 이루어져 있다. 화강섬록암, 흑운모 화강암, 남산 화강암이다. 이 화강암들은 육안으로 관찰할 수 있는 특징에서나 대자율에서도 확실하게 구별된다.

 

이미 상식이 되어버린 지구의 구조는 지표에서 지구 중심을 향하여 지각, 맨틀, 핵의 순서로 되어 있다. 지각이 제일 가볍고 핵이 제일 무거우며 맨틀은 그 중간이다. 육지가 높은 것은 가볍고 두꺼운 지각이 무거운 맨틀 위에 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은 19세기 중엽에 이미 밝혀졌고 베게너 시대에 들어와 보편화되었다. 이런 설명을 아이소스타시(지각평형설)이라고 부른다.

 

베게너는 지각 평형 가설을 중요시하였다. 가벼운 지각이 맨틀 아래로 침강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과거 대서양을 차지했던 육지가 그대로 가라앉아 그 장소에 바다가 생긴다는 것은 모순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육교설과 대륙 이동설 사이에 치열한 한판 승부가 시작된 것이다. 알프스나 히말라야 같은 높은 산맥들은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 하나의 의문은 이 산맥의 높은 봉우리는 바다에서 퇴적된 물질들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어떻게 바다의 물질이 높이 솟아 대산맥을 이루게 된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해 20세기 초반에는 지향사 조산론 또는 지구 수축설이 유일한 설명이었다. 지향사 조산론이란 지향사 즉 땅의 움푹 패인 장소에 두꺼운 물질이 쌓이고 그것이 나중에 솟아올라 높은 산을 만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지향사는 뜨거웠던 지구가 수축될 때의 횡압력 때문에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베게너는 이런 생각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했다. 지구가 수축할 정도로 냉각되었다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베게너는 이러한 산맥의 형성은 대륙의 이동으로 쉽게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동하는 대륙끼리 서로 만나 충돌하게 되면 그 경계부는 높이 솟아올라 산맥이 형성된다. 알프스와 히말라야는 바로 그런 예다. 실제로 히말라야 산맥은 과거 남극대륙 부근에 위치하던 인도 대륙이 약 7천만년 사이에 7km 이상 북상하여 아시아 대륙과 충돌한 결과다. 충돌과정에서 두 대륙 사이에 있던 바다의 퇴적물질이 솟아올랐다. 히말라야 최고봉인 에베레스트에 나타나는 노란색의 석회암층은 이렇게 솟아오르는 것 자체를 나타낸다.

 

인도 대륙은 지금도 아시아 대륙을 들어 올리고 있다. 히말라야는 언젠가 지금보다 더 높아질 수 있다. 만일 산 정상부의 침식 속도보다 융기 속도가 더 빠르다면 말이다. 해리 헤스(1906-1969)는 해저 확장설(Seafloor Spreading)과 판 구조론(Plate Tectonics)의 기틀을 마련한 미국의 지구과학자다. 헤스가 주장한 해저확장설은 과학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흥미로운 지질학 이야기라는 의미에서 지오포이트리(Geopoetry)라고 불렸다.

 

저자는 많은 과학자들이 그래왔듯 지구과학 분야에 종사하는 과학자들도 전 지구에서 일어나는 자연 현상을 어떻게 하면 더욱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에 자신의 인생을 투자한다고 말한다. 과학의 근본은 자연 현상을 제대로 관찰하는 일에서 시작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리고 그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을 뒷받침해주는 증거를 찾아간다. 그러면 그 증거에 의해 검증된 가설들은 비로소 과학 이론으로 자리 잡는다. 해저 확장성을 발표하면서 헤스는 독자들에게 매우 재미있는 부탁을 했다. 이것을 과학 이론이라기보다 지오포이트리 정도로 이해해 달라라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그 스스로도 자신의 가설에 대해 완전한 확신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

 

로버트 디츠도 해저확장설을 발표했다. 해리 헤스도 해저확장설을 발표했으니 공동 발견 사례에 해당한다. 그들은 서로 다른 경로로 연구를 진행하여 같은 이론을 완성했기 때문에 (헤스가 약간 앞서 발표했으나 이론의 뼈대와 핵심 개념은 공유됨) 과학사에서는 이 두 사람을 해저확장설의 공동 주창자로 인정하고 있다. 해령을 중심으로 양쪽 지각의 자기적 성질이 대칭인 이유는 해저확장설과 지구 자기장 역전 현상 때문이다.

 

해령을 중심으로 지각의 자기적 성질이 대칭으로 변한다. 해령에서 멀어질수록 자기의 극이 정상-역전-정상-역전식으로 계속 반복된다. 지구 자기의 띠 모양은 마치 데칼코마니의 모습과 같다. 프레드 바인, 드러몬드 매슈즈 외에도 캐나다의 로렌스 몰리 역시 같은 아이디어를 발표했다. 지금 이 아이디어(바인-매슈즈-몰리 가설; Vine-Matthews-Morley hypothesis)는 해양 지각의 확장에 대한 가장 강력한 증거 중 하나였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은 이 아이디어를 칵테일 파티에서의 농담 정도로 여겼다.

 

해저에서 발견된 띠 모양의 지구 자기의 역전 모습은 더 이상 수수께끼가 아니다. 지금 우리는 과거 2억년 동안 200번 이상이나 지구 자기의 역전이 있었다고 알고 있다. 그리고 해양 지각의 나이는 해령에서 멀어질수록 오래 되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지구의 바다는 오래되었어도 해양 지각의 윤회는 항상 새로운 지각을 바다 밑에 남겨놓은 것이다. 2억 년보다 오래된 해양 지각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지각이 확장하여 해구에서 소멸되기 때문이다.

 

해저는 마치 컨베이어 벨트 같고 대륙은 그 위에 실려 움직이는 짐과 같다. 판구조론(plate tectonics)에서 구조론(tectonics)이란 목수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tekton에서 따온 말이다. 목수(지구)가 널빤지(지판)를 가지고 집을 짓는 행위(구조론)를 판구조론이라 부른다. 하나의 판에서 대륙 지각이 우세하면 대륙판, 해양 지각이 우세하면 해양판이라고 하여 구별한다. 맨틀대류는 왜 일어날까? 대륙 지각과 해양 지각 아래의 맨틀은 온도가 서로 다르다. 같은 깊이라도 해양 지각 아래에서 온도가 더 높고 대륙 지각 아래에서 온도가 더 낮다.

 

대류의 기본은 온도 차이에 의한 열대류다. 맨틀의 대류 운동이 생겨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지구는 과거 46억 년 동안 내부에서 막대한 양의 에너지를 생산해왔다. 지구 내부에는 방사성 붕괴를 하는 원소들이 있고 이 원소들이 만들어내는 열 에너지가 축적되어 있다. 지구의 내부 에너지가 어느 정도 소비되지 못하면 지구 내부는 상당 부분 녹아버릴 것이다. 그런데 지구 내부에서 녹은 부분은 외핵 뿐인데다 46억 년 동안 지구는 적절히 내부 에너지를 소비시켜왔다.

 

지구 내부에 에너지를 소비시키는 방법은 무엇일까?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화산 폭발 때와 같이 뜨거운 열을 지표로 내보내는 것이다. 그러나 그 정도로는 지구 내부에서 만들어진 에너지를 충분히 소비시킬 수 없다. 가장 좋은 방법은 내부의 열 에너지를 다른 에너지 원소로 바꿔 소비하는 것이다. 즉 맨틀이 대류를 하게 되면 지구 내부의 열에너지가 운동에너지로 바뀌어 많은 양이 소비될 수 있다.

 

같은 깊이라도 해양 지각 아래에서 맨틀의 온도가 더 높고 대륙 지각 아래에서 온도가 더 낮은 이유는 1) 지각의 두께(대륙지각이 훨씬 두껍다), 2) 방사성 동위원소의 분포, 3) 맨틀 대류의 위치 때문이다. 해양 지각 아래의 맨틀은 깊은 곳의 뜨거운 마그마와 맨틀 물질이 계속 위로 공급되어 온도가 높고 대륙 지각 아래의 맨틀은 식은 해양판이 파고들거나 두꺼운 대륙 뿌리가 열을 막아 온도가 낮다. 수천만 년 동안 바닷물에 의해 차갑게 식고 무거워진 해양판이 파고드는(섭입하는) 곳은 주로 대륙판 아래다. 식은 해양판이 대륙판 아래로 파고드는(섭입하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두 판 사이의 밀도(두께와 암석 성분) 차이 때문이다.

 

해령에서 갓 태어난 뜨거운 해양판은 밀도가 낮아 맨틀 위에 잘 떠 있지만 해령에서 멀어지며 수천만년 동안 식어갈수록 판이 수축하고 두꺼워지면서 밀도가 점점 더 커진다. 두꺼운 대륙 뿌리가 열을 막아 온도가 낮다는 것은 오래된 대륙판 아래에 형성된 단단한 암석층이 지구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열(맨틀 대류의 열)을 차단하는 두꺼운 단열재 역할을 하여 그 구역의 온도가 올라가지 못하게 막고 있다는 뜻이다.

 

해양판 아래의 암석층은 대륙 뿌리에 비해 두께가 너무 얇고 시간적으로 너무 젊으며 무엇보다 구조적으로 끊임없이 움직이고 교체된다. 일본이 위치한 판의 경계는 보통 침강 경계라고 부르는 곳이다. 태평양 판과 필리핀 판(해양 판)이 유라시아 판(대륙 판) 아래로 침강해 들어가는 장소다. 판이 다른 판 아래로 기어 들어갈 때 그곳에서는 판 사이의 마찰로 인해 지진이 발생한다. 그리고 기어 내려간 판이나 맨틀 물질이 녹게 되어 마그마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마그마는 지표를 분출하여 화산이 된다.

 

일본 열도는 기어 내려가는 태평양 판이나 필리핀 판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대륙판인 유라시아 판 위에 놓여 있다. 태평양 판이나 필리핀 판 위에 일본이 있다면 일본 열도는 언젠가 가라앉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어떤 경우에도 대륙 판은 해양 판 아래로 침강하지 않는다. 판의 운동에 의하지 않고서 일본을 가라앉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일본 열도 아래에도 지각은 존재한다. 가벼운 지각이 무거운 맨틀 아래로 가라앉을 수 없다. 정확히는 일본 열도의 서남쪽 지역(교토, 오사카, 규슈 등)이 유라시아 판(또는 그 세부 판인 아무르 판) 위에 얹혀 있다.

 

샌프란시스코의 반듯한 오렌지 밭에 어느 날 이상이 생겼다. 나무의 배열이 어긋난 것이다. 커다란 오렌지 밭이 거의 남북 방향으로 가로질러 왼쪽 나무의 배열과 오른쪽 나무의 배열이 어긋난 것이다. 누가 그랬을까? 아무래도 사람이 한 것 같지는 않다. 오렌지 나무의 배열을 바꿔놓은 것은 바로 단층이라는 지질 현상의 결과였다. 나무가 옮겨진 것이 아니라 나무가 심어진 땅이 움직인 것이다. 실제 이 단층의 연장은 그 길이가 1,000km 이상이다. 남동쪽으로는 캘리포니아 만으로, 북서쪽으로는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태평양으로 연결되어 있다.

 

샌안드레아스 단층으로 불리는 이 단층이 단 한 번의 땅의 움직임으로 생긴 것은 아니다. 샌안드레아스 단층은 계속 움직였으며 단층이 움직일 때마다 캘리포니아에는 지진이 발생했다. 최근에 일어난 샌프란시스코 지진과 로스앤젤레스 지진은 바로 이 단층의 움직임에 의한 자연재해였다. 단층에 의한 땅의 이동은 샌안드레스 단층이 오른쪽에서는 정남쪽으로, 왼쪽에서는 서북쪽으로 움직인다. 1년에 수 센티미터 정도 움직이는 것에 불과하지만 순간적으로 움직임의 에너지가 크게 방출될 때가 있다. 이때 지진이 발생한다.

 

샌안드레아스 단층의 운동이 커다란 피해를 가져오면서 이 단층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지구의 육지에 샌안드레아스 단층만큼 길게 연장되어 있는 단층은 드물다. 과연 샌안드레아스 단층의 비밀은 무엇일까? 이 수수께끼는 1965년 캐나다의 지질학자 윌슨에 의해 풀렸다. 우선 윌슨은 샌안드레아스 단층이 보통 육지에서 발견되는 단층과는 양상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육지의 보통 단층은 단층선을 경계로 두 땅의 이동 방향이 항상 반대다. 그리고 단층의 움직임이 많아질수록 이동하는 땅의 뒤쪽에는 공간이 생긴다.

 

샌안드레아스 같은 긴 단층이 멀리 이동할수록 뒤쪽 공간은 더 넓어지게 되는데 하지만 캘리포니아에서는 이 공간을 찾을 수 없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중의 하나로 윌슨이 생각한 기발하고 독창적인 모델은 단층 뒤에 공간이 새로 생겨난 지각에 의해 보충된다는 것이었다. 지각이 새로 생겨난 곳은 바다의 해령이다. 만일 샌안드레야스 단층의 뒷면에 해령이 존재한다면 샌안드레아스 모델은 증명되는 것이다.

 

윌슨은 샌안드레아스 단층의 전체 연장선을 추적하였다. 남쪽 캘리포니아 만에서 육지로 올라온 이 단층은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태평양으로 사라졌다. 캘리포니아 만의 해저와 태평양에 과연 해령이 존재할까? 계속된 조사에서 윌슨은 캘리포니아 만과 태평양에서 해령을 발견해내었다. 샌안드레아스 단층은 해령과 해령 사이에 만들어진 단층이었던 것이다. 해령에서 갈라져 나온 단층은 먼 거리를 이동하여 다시 해령과 만나는, 다른 표현으로 해령으로 바뀌는 것이었다. 윌슨은 이러한 단층을 바뀌는 단층이란 뜻의 변환 단층이라 불렀다.

 

변환 단층의 발견은 판구조론을 이론으로서 완성시키는 매우 중요한 과학적 업적이 되었다. 변환 단층의 대부분은 해저에 존재한다. 변환 단층은 해령과 해령 사이에 위치하는 단층이고 해령은 해양 지각이 만들어지는 바닷속에 있기 때문이다. 샌안드레아스 단층은 그 단층의 연장이 육지를 통과하는 매우 드문 경우다. 해령에서 생겨난 해양 지각은 해령을 축으로 하여 양쪽으로 이동한다. 그런데 지각의 이동은 지구의 면 다시 말해 구면에서의 운동이다. 구면에서의 이동은 평면에서 이동과는 다르다.

 

구면에서의 이동은 이동의 중심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양쪽으로 이동하는 해양 지각들은 이 중심에서 항상 같은 거리에 있지 않다. 그렇게 되면 이동 속도의 차이가 생긴다. 이 차이는 해양 지각을 해령의 수직 방향으로 조각조각 찢어버리게 된다. 조각난 해양 지각들의 경계가 되는 곳이 변환 단층이다. 자세히 살펴본 이 변환 단층이 해령과 해령을 잇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육지에서의 일반적인 단층과 변환 단층이 다른 가장 두드러진 점은 운동의 방향이다.

 

일반적인 단층의 경우 땅의 이동은 항상 서로 반대 방향이다. 그러나 변환 단층의 경우에는 땅의 이동이 반대인 경우는 해령과 해령 사이일뿐 해령을 벗어나면 땅의 이동은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샌안드레아스 단층은 변환 단층이다. 그리고 그것이 이동하면서 커다란 에너지를 방출할 때 캘리포니아에는 지진이 발생한다. 지진에 의해 발생 발생하는 파동은 세 가지다. P, S, 표면파다. P파와 S파는 지구 내부를 통과하는 파동이며 표면파는 지구 표면을 따라 전파해가는 파동이다.

 

지진파 중에서 지구 내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것은 P파와 S파다. P파와 S파는 성질이 다르다. P파는 S파보다 빠르게 전파된다. P파는 고체와 액체 모두를 통과하고 S파는 고체는 통과하지만 액체는 통과하지 못한다. 만약 지구 내부에 액체로 된 부분이 있다면 S파는 기록되지 않게 된다. 이러한 지진파의 전파 모습으로 지구의 구조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외핵이 액체로 되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다. P파는 모든 물질을 통과하긴 하지만 항상 전파 속도가 일정한 것은 아니다.

 

고체를 통과할 때의 속도가 액체를 통과할 때보다 빠르다. 그리고 지구 내부의 물질이 온도가 낮은 경우에 P파의 속도는 빨라지고 온도가 높은 경우에는 느려진다. 이 성질을 이용하여 지구 내부에 차가운 부분과 뜨거운 부분을 알게 되었다. 지하의 같은 깊이에서도 온도가 다른 지역에 존재한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그리고 그 모습이 3차원적으로 그려지게 되었다.

 

20세기 후반에 들어 지구 표층부의 운동은 판구조론으로 잘 설명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는 많다. 맨틀로 기어들어간 판은 어디까지 내려갈 것인가? 분명 판이 내려간다는 것은 알고 있는 사실이다. 적어도 670km의 깊이까지는 지진이 발생하고 있다. 이 정도의 깊이까지 지진이 발생한다는 것은 그 깊이에서도 판과 맨틀 사이에 마찰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깊은 땅속은 어떨까? 670km보다 깊은 곳에서 발생한 지진은 아직 기록된 적이 없다.(이 책이 나온 2005년 이후인 2015년 일본에서 드물게 751km로 기록되었다.)

 

지하 670km 부근까지 기어들어간 판의 운명을 살피다가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지하 670km의 깊이에서 주변 맨틀보다 차가운 판은 어느 정도의 무게가 될 때까지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무게가 되었을 때 그것들은 점차 맨틀 아래로 낙하한다. 그리고 낙하하는 판은 맨틀과 핵의 경계까지 내려간다. 판의 잔해들이 지하 670km 깊이에 머무르고 있는 것은 우물 속에 던진 두레박이 가라앉는 현상과 비슷하다. 두레박을 우물 속에 던지면 처음에 두레박은 물위에 떠 있다. 그러다가 물이 채워져 무거워지면 두레박은 물속으로 가라앉는다.

 

낙하하는 판의 잔해들은 이윽고 맨틀과 핵의 경계 바닥에 쿵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그러면 주변의 뜨거운 맨틀 물질은 반동적으로 상승하기 시작한다. 맨틀 물질의 상승은 맨틀과 핵의 온도 차이 때문에 생기기도 한다. 뜨거운 핵이 그 위에 놓인 맨틀을 가열시키면 맨틀 물질의 상승류가 생겨난다. 핵의 경제에서 생긴 상승류는 어디까지 올라갈까? 지표까지 상승한다. 무려 3000km에 가까운 거리를 올라가는 것이다. 이렇게 차가운 판이 낙하하고 뜨거운 맨틀이 상승하는 현상을 플룸이라고 한다. 차가운 판의 낙하를 차가운 플룸, 뜨거운 맨틀의 상승을 뜨거운 플룸이라 한다.

 

지진파 토모그래피 관측에 의하면 지구 내부의 맨틀에는 차가운 부분과 뜨거운 부분이 있다. 차가운 부분은 차가운 플룸이 낙하하는 장소이고 뜨거운 부분은 뜨거운 플룸이 상승하는 장소다. 지구 내부의 역동적인 모습을 플룸으로 설명하는 이론을 플룸 구조론이라 한다. 플룸 구조론은 판구조론이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을 잘 보충해준다. 지구 표층의 운동은 판 구조론이, 더 깊은 지구 내부의 운동은 플룸 구조론이 지배하고 있다. 판이 움직인다는 사실은 증명했으나 상부 맨틀의 대류만으로는 거대한 판을 움직이는 전체적인 힘의 근원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었다.

 

이에 지구 내부 전체를 관통하는 거대한 열대류(차가운 플룸의 하강과 뜨거운 플룸의 상승) 세계를 보여줌으로써 지구 전체의 물질 순환과 판을 움직이는 에너지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거대한 대륙이 뭉쳐 있으면 지하의 열이 방출되지 않고 축적된다.(지질학에서는 이를 대륙 단열 효과 또는 담요 효과라 부른다.) 이로 인해 대륙 아래에서 거대한 뜨거운 플룸(수퍼 플룸)이 생성되어 솟구치면서 대륙을 밀어 올리고 찢어뜨렸음을 알게 되었다. 해양 지각은 두께가 약 6~7km로 얇고 차가운 바닷물과 맞닿아 있어 열을 잘 방출한다.

 

반면 대륙 지각은 두께가 약 30~70km에 이르며 수십억년 동안 굳은 안정된 암석권(craton)을 가지고 있어 열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는 거대한 담요 역할을 한다. 대륙들이 한곳으로 모여 초대륙을 이루면 지구 내부를 식혀주던 차가운 해양 판의 하강(섭입)이 대륙 내부가 아닌 초대륙의 가장자리에서만 발생한다. 결과적으로 초대륙 바로 아래의 맨틀은 차가운 판의 공급이 끊겨 온도가 계속 올라간다. 대륙 지각에는 우라늄, 토륨, 칼륨 같은 방사성 원소가 해양 지각보다 훨씬 풍부하다.

 

대륙 지각을 이루는 화강암은 마그마 분화작용의 최종 선물이다. 방사성 원소들은 고체에 끼지 못하고 액체 상태의 마그마를 따라 끝까지 이동하다가 결국 대륙 지각을 형성하는 화강암 속에 집중적으로 갇히게 된다. 방사성 원소들은 원자 크기가 크거나 전하량이 커서 주변의 단단한 고체 광물결정 구조에 쉽게 들어가지 못한다. 암석이 녹아 마그마가 되면 원자 배열이 느슨해져 큰 원소들도 여유있게 들어갈 수 있다. 결과적으로 암석이 녹을 때 이들 방사성 원소는 마지막까지 있다가 화강암에 들어가 대륙 지각을 구성하는 것이다.

 

이 원소들이 붕괴하며 내는 열이 대륙 아래에 고스란히 쌓이게 된다. 초대륙 아래 맨틀의 온도가 주변 보다 약 50도씨에서 100도씨 이상 상승하면 변화가 생긴다. 뜨거워진 맨틀 물질은 부력을 받아 위로 솟구치는 거대한 열기둥(플룸)을 형성한다. 열 때문에 초대륙 중심부가 부풀어 오르며 장력이 발생하고 지각이 찢어지는 열곡대가 생긴다. 찢어진 틈 사이로 엄청난 양의 마그마가 분출하면서 새로운 바다가 생기고 뭉쳐있던 대륙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게 된다. 지구 역사는 약 3억년에서 5억년을 주기로 대륙이 모였다가(열 축적) 다시 흩어지는(열 방출) 초대륙 주기를 반복해 왔다.

 

대륙의 열축적 현상은 이 순환을 이끄는 핵심 동력이다. 우리는 지금 간빙기에 살고 있다. 과거 지구에 빙하기가 있었다는 사실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1. 빙하에 의한 지형, 2. 빙하가 할퀸 자국, 3. 빙하가 운반한 물질 등을 찾는 것이다. 원래의 장소로부터 먼 거리를 이동해 온 돌을 미아석(迷兒石) 또는 표이석(漂移石)이라 한다. 이 돌들은 크기가 매우 크다. 주변에 그 돌과 비슷한 돌이 없다.

 

내린 눈이 쌓이고 치밀하게 굳어 얼음이 되고 이것이 두껍게 덮이면 빙하가 된다. 빙하는 경사진 땅 위에 덮여 있다. 그래서 빙하가 전진할 때 경사의 아래로 흐른다. 이때 빙하는 땅의 암석을 파내려가며 할퀸 자국을 만들고 부서진 암석들은 빙하의 아랫면에서 쓸려 내려간다. 부서지는 암석은 작은 파편에서 집채만한 돌덩이까지 크기가 다양하다. 미아석은 이렇게 운반된다. 빙하가 녹으면 미아석은 그 자리에 그냥 남는 것이다.

 

밀란코비치는 빙하기의 원인이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지구의 운동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지구의 운동이 항상 일정하지는 않다. 태양의 주위를 공전하는 궤도의 거리는 항상 바뀌고 지구의 축은 21.5도와 24.5도 사이에서 변화한다. 현재 지축은 23.5도 기울어져 있다. 지구는 세차 운동이라는 팽이 운동도 한다. 이 현상들 때문에 지구가 태양으로부터 받아들이는 에너지의 양의 차이가 생긴다. 이것이 빙하기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겨울이 너무 추워져서 빙하기가 오는 것이 아니라 지구의 여름이 덥지 않아서 빙하기가 온다. 여름이 충분히 덥지 않아 내린 눈이 녹지 않으면 얼음이 계속 불어나 빙하기가 찾아오는 것이다. 남아프리카 동쪽에는 줄루 랜드라고 불리는 줄루족의 영토가 있다. 그 땅에는 빙하의 흔적이 남아 있다. 줄루랜드는 빙하의 흔적을 간직한 채 3억년의 세월을 견뎌온 땅이다. 3억년 전 줄루랜드는 남극 대륙 가까이에 빙하로 덮여 있었다. 빙하는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며 많은 흔적을 그 땅에 남겨놓았다.

 

세월이 흘러 빙하가 물러나 그 땅은 다시 하늘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3억 년 동안 그 땅에도 새로운 땅이 생겨났고 아프리카는 북쪽으로 이동했다. 그동안 남아메리카는 아프리카에서 떨어져 나갔다. 빙하가 운반한 암석의 파편은 매우 재미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 대개 오각형으로 생겼고 모서리도 매우 날카롭다. 암석들이 빙하의 아랫면에서 부서져 움직일 때 큰 힘을 견디다 못해 모서리가 예리하게 잘려져 나간 것이다. 이 크고 작은 파편들은 먼 거리까지 이동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빙하가 물러가자 빙하로 운반된 파편들은 그 자리에 남게 되었다.

 

여러 가지 파편들은 하나로 뭉쳐 암석이 되었다. 이것을 빙하 퇴적암이라 부른다. 지구가 뜨거웠을 당시 지구를 구성하고 있던 물질들 중 가벼운 것은 떠오르고 무거운 것은 가라앉는 소위 밀도 차이에 의한 중력분리가 일어났다. 그 결과 무거운 핵이 지구의 중심에 자리하고, 가벼운 지각이 지구의 표면에 자리하고, 중간 것이 맨틀을 이루게 되었다. [가이아의 향기]'신화, 역사, 그리고 지구'라는 부제처럼 인문과 자연이 잘 어우러진 의미있는 책이다. 보고 배우기에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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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땅과 사람의 과학 -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는 우리 과학 이야기
김연희 지음 / 이음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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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희의 [하늘과 땅과 사람의 과학]은 우리 전통의 3()인 천지인(天地人) 즉 하늘, , 사람이라는 이슈에 담긴 과학을 분석한 책이다. 서두부터 흥미로운 개념을 만나게 된다. 치윤법(置閏法)이 그것이다. 이는 윤달을 끼워 넣는 것을 말한다. 재이론(災異論)은 재이를 하늘이 집권자에게 보내는 경고로 해석하는 것을 말한다. 아라가야 고분에 남두육성이 그려져 있다. 남두육성은 천구의 남쪽에 위치할뿐 우리나라에서도 여름에 남쪽 밤하늘에 있는 것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북반구에서 남십자성은 보이지 않는다. 조공(朝貢) 책봉(冊封) 관계에서 조공의 조는 제후국의 국왕 또는 대행자가 중국 황제에게 인사를 올리는 일을 의미했고 공은 공물을 바치는 일을 뜻했다. 조공책봉 관계란 제후국이 황제국에게 조공을 바치고 황제국이 제후국의 통치권을 인정해주는 외교체제를 의미한다.

 

고려시대로 넘어오면서 중국과의 교류를 도모했으나 의도하지 않은 변수들이 발생해 추세 유지가 쉽지 않았다. 918년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고 936년 후삼국을 통합했을 무렵 중국 대륙이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려사]는 군주의 통치 기록인 본기(本紀), 신하들의 전기인 열전(列傳), 제도와 문화를 담은 지(), 연표(年表)로 구성된다. [고려사]는 고려시대에 편찬된 책이 아니라 조선시대에 편찬된 책이다. [고려사]는 조선 태종 대에 편찬이 시작되어 문종 대까지 무려 57년에 걸쳐 완성되었고 이는 조선인에 의해 고려의 역사가 서술되었음을 의미했다. 이는 서술의 관점과 공정성 측면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

 

정삭(正朔)은 한 해의 시작과 한 달의 첫날인 초하루를 의미하는 말이다. 정삭을 준수하는 것은 조공 책봉 관계를 확인하는 상징적 실천이었다. 관상수시(觀象授時)는 하늘의 별자리와 움직임을 관측하여 백성에게 농사에 필요한 절기와 시간을 알려주던 고대 동아시아의 통치기법을 의미한다. 동아시아에서 황제는 하늘의 움직임 즉 천체의 운동을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시간 체계를 정한 뒤 역서를 만들어 배포하는 일을 중요한 책무로 여겼다. 이처럼 관상 수시의 이념은 유교적 통치질서 속에서 더욱 체계화되었다.

 

관상의 주체는 천자인 황제다. 조선은 형식적으로 명나라의 제후 국이었지만 나름대로 왕천하자(王天下者) 즉 천명을 받아 나라를 열었다는 독자적인 왕도 정치사상을 견지했다. 천자국 중국의 제후국이면서도 스스로는 독립적으로 천명을 받은 나라라고 여겼다는 뜻이다. 이러한 이유로 조선왕조 특히 세종은 독자적인 관상수시 이념을 전개하며 천문학 활동을 적극 발전시켰다. 중국이 관상수시 이념을 실행하기 위해 흠천감(欽天監)을 운영했다면 조선은 서운관(瑞雲觀)을 두었다. 서운관은 세조 12년인 1446년 관상감(觀象監)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관상감이란 관상수시에서 나온 말이다.

 

일부 유학자들은 황제국이 아닌 제후국 조선이 천문학 활동을 하고 그 결과물인 역서(曆書)를 간행해 배포하는 일을 그릇된 것으로 보기도 했다. 조선의 국왕은 명나라의 제후로서 천자나 황제를 자처할 수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선왕조는 스스로 천명을 받았다고 믿었고 더 나아가 이를 드러내고자 했다. 이러한 인식은 세종대에 만들어진 최초의 한글 시가인 [용비어천가]에 뚜렷이 나타난다. 세종은 조선왕조가 왕천하자가 세운 나라임을 강력히 표명하며 그에 걸맞은 가장 중요한 의미를 수행하겠다고 선언했다 그 핵심 가운데 하나가 천문학 활동을 바탕으로 한 관상수시였다.

 

조선은 스스로 천명을 받은 왕조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천문학 활동을 수행했고 자체 역서를 꾸준히 가능했다. 그러나 황제국이 아니었던 만큼 이 활동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65 페이지)

 

세종의 관상수시(觀象授時)와 강무(講武)는 유교적 왕도정치의 핵심인 천명(天命)을 완수하기 위한 표리일체(表裏一體)의 행위로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본문에 혼효중성(昏曉中星)이란 말이 나온다. 이는 해가 질 무렵(황혼)과 해가 뜰 무렵(새벽)에 남쪽 하늘의 자오선을 지나는 별자리를 의미한다.

 

혼효중성을 고쳐야 할 만큼 고구려의 구본 천문도와 조선의 실정은 맞지 않았다. 고구려의 천문도는 평양(북위 약 39) 중심이었으나 조선의 실정에 맞춘 천문관측은 한양(북위 약 37.5)을 기준으로 이루어졌다. 위도가 다르면 남중하는 별자리의 위치와 시간이 달라지므로 수정이 불가피했다.

 

왕조가 바뀔 때 역법을 새로 제정했다. 이에는 정치적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형식적인 개정(차이 없음)과 관측 기술과 수학의 발전에 따른 근본적인 계산법의 혁신(차이 큼)이 공존했다. 왕조 시대의 일월식 예측은 단순한 별자리 관측이 아니었다. 그것은 반란을 막고 국가 예산 낭비를 방지하며 외교적 자립을 이루고 농업 경제를 지탱하는 최고의 국가 통치 수단이었다.

 

청나라는 조선의 시헌력 도입 노력을 저지하거나 방해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조선 학자들의 유학은 허용했다. 이는 겉보기에는 모순적이지만 전통적인 동아시아의 조공-책봉 체제라는 정치적 문맥에서 보면 매우 정교하게 계산된 통치 전략이었다. 청나라가 조선의 자체적인 달력 제작(시헌력 계산법 독자 개발)은 견제하면서도 북경으로의 천문학 유학을 허용한 실질적인 이유는 독자적인 중심이 되지 말고 청나라가 구축한 중심(천자) 체제 안에서만 움직이라는 철저한 길들이기 방식이었다.

 

책에 반가운 이름이 나온다. 1795년 정조가 관상감 최고 책임자에게 새로운 택일서 제작을 지시했는데 책임자란 바로 서유방(徐有防)이란 인물이다. 1795년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기념해 진행된 을묘년 화성원행시 행렬의 가장 맨 앞에 섰던 경기감사다.

 

고대 및 전통사회의 천체 연구를 점성이나 제의 해석 같은 영역으로만 볼 수는 없다. 그들이 수행한 정밀한 천문 관측과 운행 예측을 위한 수학적 노력은 비록 오늘날과 다른 이론과 체계를 바탕으로 했더라도 자연을 체계적 질서로 이해하고 예측하려 한 지속적인 지적 활동이기 때문이다. 지도는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분명한 의도를 가진 매체라 할 수 있다. 물론 길을 찾아가는 것을 목적으로 한 실용성을 부각시킨 지도도 그려졌다.

 

지도에는 인류 문명의 역사는 물론 인류가 세계를 이해하고자 했던 근원적인 궁금증 그리고 장소에 대한 인식론의 변화 과정이 담겨 있다. 더 나아가 오늘날의 지도를 갖기 전까지 땅에 대한 인류의 상상력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펼쳐졌는지도 나름대로 추측해볼 수 있다. 양택 풍수는 명당에 사는 사람이 직접 생기를 받는 구조인 반면 음택 풍수는 생기를 받은 유골이 자손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음택 풍수는 현대적 관점에서 비합리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양택 풍수는 지역 공동체의 안정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산수분합(山水分合) 논리란 산과 물을 대칭적이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음양의 구조로 이해해 서로 분리하지 않고 인식한 것을 말한다. 인지의(印地儀)는 원근측정기로 세조가 직접 고안했다. 세조는 인지의를 이용해 아버지 세종의 영릉(英陵)에서 측량한 기록을 남겼다. 인지의는 원근측정기, 나침반은 방위측정기, 기리고차는 거리측정기, 규형은 높이측정기다.(98 페이지)

 

조선왕조는 건국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민심을 안정시키기 위해 지도를 제작했다. 건국 이후 조선은 고려 시대보다 영토를 확장했고 이 지역에 대한 정보를 새로 수정해야 했다. 특히 압록강 상류의 사군(四軍), 두만강 하류의 육진(六鎭)은 국방상 요지였기에 이에 대한 정보의 필요성은 더욱 컸다.(111 페이지) 조선이 취한 사대정책(事大政策)은 국가주도로 제작된 16세기의 세계지도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일대로 지도 범위가 축소된 것이다.(113 페이지)

 

조선의 지도 제작은 성리학적 이념의 강화와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 구축이라는 국가사회적 환경에 따라 변화되었다. 국제적으로 화이관(華夷觀)이 강화되었고 주변국에 대한 관심은 건국 초보다 줄어들었다. 반면 국내 지역에 관한 관심이 높아져 이를 반영한 지도들이 제작되었다. 지도의 도입은 곧 땅은 둥글다라는 개념의 도입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천원지방의 개념이 확고했던 조선에서 이를 전적으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다. 서양의 지식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이는 극히 일부였다. 당시 조선에 유입된 서양지리 지식에 대해 대부분은 판단을 유보하거나 오히려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여지전도(輿墬全圖)의 지()는 지()의 옛 글자다. 견딜 감, 수레 여를 쓰는 감여(堪輿)는 만물을 포용하여 싣고 있는 수레라는 뜻으로 하늘과 땅을 의미한다. 풍수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한편 혼천설(渾天說)의 혼()은 둥글다는 의미다. 혼천(渾天)은 둥근 하늘이다. 혼천은 하늘의 운행 방식을, 천원(天圓)은 하늘의 생김새를 나타낸다.

 

두 번의 전란을 겪은 조선은 지도의 개인 소유를 금지했던 전기와 달리 사대부를 중심으로 지도 소유도 허용했다. 정교한 지도를 제작할 수 있게 된 것은 국방에 대한 관심이 전례 없이 고조된 17세기의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었다. 새로 조성되거나 복구된 성곽이나 산성 등 각종 군사시설을 그려놓은 군사용 지도가 여럿 제작되었다. 이중환의 [택리지]는 조선 후기 지리지의 백미(白眉). 여지(輿地)는 땅의 정보를 의미한다.

 

고산자 김정호가 전국을 답사하고 백두산을 오르내리며 지도를 제작했다는 설은 근거가 희박하다고 한다. 전국 답사설은 전통적 지도 제작법과 근대적 측량 기반 제작법을 구분하지 못한 데서 나온 오해일 수 있다. 실제로 전통 사회에서 국토 전체를 실측해 전국 지도를 완성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더구나 국가의 대대적 지원을 받지 못한 개인이 전국을 홀로 답사하며 [대동여지도] 같은 정밀 지도를 제작한다는 것은 더욱 어렵다. 김정호는 이런 한계를 알고 있었기에 당대까지 축적된 조선 지도학의 성과를 종합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가 [대동여지도]를 제작할 무렵 조선의 지도 제작 전통은 매우 두터웠고 특히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비롯한 각종 지리서가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173 페이지) [대동여지도]의 형식상 가장 큰 장점은 탁월한 휴대성이다. 이는 이용자 관점에서 지도를 설계하겠다는 발상의 전환에서 비롯되었다. 필사본 지도와 달리 대동여지도는 목판 인쇄본으로 제작되어 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기획했으며 각층이 이어지도록 구성했다. 나아가 이를 순서대로 맞추면 조선 전도가 되도록 고안되었다.

 

[대동여지도]는 산맥 중심의 지형 인식을 강하게 드러낸다. 무엇보다 모든 산맥의 시작점을 백두산에서 이어지게 그린 점이 눈에 띈다. 조선시대 국가 주도 제작 지도 가운데 군사적 목적을 지닌 것이 많았다는 구절이 눈에 띈다. 외적의 침입을 막아 국토를 수호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었기에 지형 지세를 파악하고 적절한 장소의 군사시설을 설치하기 위한 지도는 필수적이었다. 이런 용도의 지도를 관방 지도라 하며 이는 곧 군사 지도다.(138 페이지)

 

고산자 김정호가 국가 기밀 누설 죄로 흥선대원군에 의해 옥에 갇혀 죽었다는 말이 있다. 이런 이야기는 1925108, 9일 동아일보에 실린 '고산자를 회함'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토대로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173 페이지) 국가 기밀을 누설했다는 죄목으로 고산자를 처벌했다면 군사 지도도 제작하지 않아야 말이 된다. 군사 지도야말로 가장 민감한 내용을 담은 정보이기 때문이다.

 

고려 후기 사회의 의약 생활을 이해하는 데 독보적인 기록은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이다. 퇴계 이황은 주희 이후 주자학의 최고 대가로 평가받는 대학자로 주희의 자연관과 자연 과학 분야에 대해서도 관심이 적지 않았다. 그는 혼천의를 제작해 그 이치를 따졌고 상수학의 깊은 내용도 일일이 공부했다. 성리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면 어려운 공부를 마다하지 않았으며 천문학과 수학 역시 깊은 수준에서 이해했다.(231 페이지)

 

이황은 건강 유지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는 [활인심방]이라는 양생술 책을 필사해 몸소 실천했다. 의학과 의술, 병에 대한 이황의 태도는 단지 자신의 삶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그가 조선 최고의 유학자로 인정받고 제자들이 그를 추종하며 학문을 계승했을 뿐 아니라 1599년에 간행된 그의 문집이 널리 읽히게 되면서 [퇴계집]에 남긴 병과 의학에 관한 수많은 언행과 실천이 후대 사대부에게 귀감이 되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그것은 그가 살아 있을 때 직접 필적으로 남긴 사람을 살리려는 마음 즉 활인심이라는 한마디로 요약된다.

 

유배당하기 전 정약용은 어떤 병을 앓았을까? 그가 냉혹한 자연조건 즉 절반 이상이 죽는 두 창이나 홍역 같은 역병을 큰 피해 없이 극복했다는 점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두창은 누구나 앓는다고 해서 조선 초에 백세창이라고도 불렸을 만큼 전염력이 컸다. 정약용 역시 2살 되던 해인 1763년에 두창을 알았다. 다행히 병을 무사히 치러냈으며 얼굴이 얽는 후유증도 남지 않았다. 오른쪽 눈썹 위에 자국이 남아 눈썹이 셋으로 나뉜 것처럼 보였고 이에 따라 7세 때인 1768년에 삼미자(三眉子)라는 호를 사용하게 되었다.

 

다산은 몽수(蒙叟) 이헌길(李獻吉)의 치료 덕분에 홍역에서 죽을 뻔 했다가 살아났다. 감사의 마음을 담아 [몽수전]을 지어 그의 행적을 찬양했으며 그의 마진학(痲疹學)을 확장하여 [마과회통(麻科會通)]을 썼다. 마진(痲疹)은 홍진(紅疹) 또는 홍역이라 불린다. 정약용이 1798년 앓은 여질(沴疾)은 오늘날의 인플루엔자로 추정된다.

 

흑산도에 유배된 형 정약전은 동생이 건강을 돌아보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일에 대한 연구에만 몰두하는 것을 꾸짖으며 당장 연구를 중단하고 수양에 힘쓸 것을 권했다. 특히 온몸을 펴고 뻗치며 구부리고 호흡을 가다듬는 도인술을 권했다. 하지만 정약용은 도인술이 분명 유익하다는 점을 잘 알지만 자신은 게으르고 산만하여 소용이 없다고 답했다. 고요히 앉아 마음을 맑게 하려 하면 세상의 온갖 잡생각이 천 갈래 만 갈래로 어지럽게 일어나 오히려 무엇 하나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지경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그는 저술할 때 마음이 더 집중되고 안정된다고 했다. 정약용의 몸과 마음을 지탱해준 원천은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매일 규칙적으로 행한 연구였다.

 

정약용의 삶에서 정조를 빼놓을 수 없다. 다산이 1797년 완성한 [마과회통(麻科會通)]1790년 한양에서 마진이 유행하자 민간에 처방집에 관한 의견을 물은 정조에 대한 답이라 할 수 있다. 1790년은 정조가 경술년 각과를 시행한 해로 다산은 이에 역시 응했다.

 

노년의 정약용을 힘들게 한 것은 조정에서 그를 정치가로 부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사람들은 의약으로만 그를 찾고 그의 의술만을 칭송했다. 심지어 10년 후 조정이 그를 두 번째로 부른 것도 그가 그토록 고려하던 승지 같은 인간이 아니라 의학 동참 부호군인 무관으로서였다.의약은 정약용에게 양면적인 존재였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병을 다스려주고 세상의 칭송을 받도록 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고질병을 완전히 치료하지도 못했고 심지어 그에게 원치 않는 명성을 씌어준 것이기도 했다. 결국 의약은 그의 인생에서 신체적으로는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정치적으로는 부담이 되는 이른바 계륵(鷄肋) 같은 존재였다.

 

정약용은 나이가 들면서 의약에 매달리기보다 벗어나려고 했다. 고칠 수 없는 병은 천명에 순응하는 자세로 받아들이려 했고 정치적인 역경 역시 운명이라니 여기며 미련을 두지 않으려 했다. 그의 마지막 선택은 더 이상 세상의 부름에 연연하지 않고 자연과 학문 속에서 조용히 삶을 마무리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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