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위헌스가 들려주는 파동 이야기 과학자가 들려주는 과학 이야기 16
정완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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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동(波動)이란 어느 한 지점의 진동(振動)이 옆으로 퍼지는 현상을 의미한다. 한 점을 중심으로 방향을 바꾸어 왔다 갔다 하는 운동을 진동이라 한다. 파동에서 진동을 전달하는 물질을 매질(媒質)이라 한다. 줄에 생긴 파동의 모양일 경우 줄이 가장 높이 올라간 지점을 마루라 하고 가장 아래로 내려간 지점을 골이라고 한다. 마루와 마루 사이의 거리를 파장(波長)이라 한다. 원래 위치에서 마루까지의 거리를 파동의 진폭(振幅)이라 한다. 파동의 진행 방향과 매질의 진행 방향이 수직인 파동을 횡파(橫波)라고 한다.


벽에 줄을 매달고 살살 흔들면 파장이 긴 파동이 만들어진다. 반대로 벽에 줄을 매달고 세게 흔들면 파장이 짧은 파동이 만들어진다. 줄을 살살 흔들 때보다는 세게 흔들 때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 에너지는 파동에 전달되어 파동의 에너지가 된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다. 파장이 짧을수록 파동의 에너지는 크다. 파장과 진동수는 반비례 이므로 다음과 같이 말할 수도 있다. 진동수가 클수록 파장의 에너지는 크다.


소리는 공기 분자의 진동이 옆으로 전달되는 파동이다. 그래서 소리를 음파(音波)라고 한다. 그런데 소리는 줄을 흔들 때 생기는 파동과 다른 모양이다. 사람은 모든 진동수의 소리를 들을 수 없다.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소리의 진동수는 20hz에서 2만hz 사이다. 그러므로 진동수가 20hz보다 작은 소리는 들을 수 없는데 이것을 초저파라고 한다. 하지만 코끼리는 이런 소리를 낼 수 있고 들을 수 있다. 2만 헤르츠보다 큰 진동수를 가진 소리는 사람이 들을 수 없다. 이를 초음파라고 한다.


초음파를 들을 수 있는 동물로는 박쥐나 돌고래 등이 있다. 소리의 매질이 공기 분자이므로 공기 분자의 진동이 옆으로 전달되는 속도가 바로 소리의 속도다. 그러므로 분자들이 빠를수록 전달이 빨리 이루어지므로 소리의 속도가 크다. 공기 분자는 온도가 높을수록 빨리 움직인다. 그러므로 소리도 온도가 낮을 때보다 높을 때가 빠르다. 겨울보다 여름에 소리가 빨리 전달된다. 온도가 0도일 때 소리의 속도는 331.5m/s이고 1도씩 올라갈 때마다 소리의 속도는 0.6m/s씩 빨라진다.


공기가 없으면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소리를 전달할 매질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달에서는 아무리 크게 떠들어도 소리가 전달되지 않는다. 수리의 매질은 공기뿐일까? 그렇지 않다. 소리는 기체, 액체, 고체 모두를 지나갈 수 있다. 고체는 액체나 기체보다 단단하다. 파동은 단단한 매질에서 빠르게 진행하므로 공기는 고체를 통과할 때 빨라진다. 예를 들어 소리의 속도는 물속에서는 1500m/s가 되고 철 속에서는 6천m/s가 된다.


호이겐스 원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파동이 전파될 때 파면(波面) 위에 모든 점에서 각각의 점을 새로운 파면으로 하는 이차적인 구면파가 나타나고 이와 같은 구면파에 공통으로 접하는 면이 다음 순간에 새로운 파면을 이룬다. 파동은 장애물을 만나면 반사되어 새로운 파면을 만든다. 이때 파동의 속도나 파장은 달라지지 않는다. 파동은 장애물에 부딪힌 각도와 같은 각도로 반사되어 나아가는 성질이 있다.


소리의 반사를 메아리라고 한다. 우리가 산에 올라가서 반대쪽 산을 향해 소리를 지르면 우리가 지른 소리가 산에 반사되어 우리의 귀로 들어오는 것이 메아리다. 단단한 벽과 부딪힌 소리는 세기가 많이 줄어들지 않지만 부드러운 벽과 부딪힌 소리는 벽에 소리가 많이 흡수되어 반사된 소리의 세기가 크게 줄어든다.


파동이 다른 매질을 지나갈 때 꺾이는 현상을 파동의 굴절(屈折)이라고 한다. 이것은 매질이 달라질 때 파동의 속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파동은 매질이 단단할수록 빠르다고 했다. 그러므로 매질이 부드러운 곳에서 단단한 곳으로 지나가는 파동은 다음과 같이 꺾이게 된다. 이때 파장의 진동수는 변하지 않지만 파장은 달라진다. 소리도 굴절할까? 물론이다.


소리의 굴절은 온도와 관계있다. 낮에는 지면의 공기가 뜨겁고 위쪽 공기는 차가워지므로 지면에서 소리의 속도는 빠르고 위쪽에서 느리다. 그러면 위로 굴절된다. 낮에는 소리가 위로 올라간다. 밤에는 지면에 있는 공기가 차갑고 위쪽이 더우므로 소리가 아래쪽은 느리고 위쪽은 빨라져 아래로 굴절된다. 그러므로 낮 말은 위에 떠 있는 새가 잘 듣고 밤 말은 땅바닥을 기어 다니는 쥐가 잘 듣는다는 속담이 나온 것이다.


소리도 파동이므로 간섭을 일으킨다. 그러므로 두 개의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가 보강 간섭을 일으켜 더 크게 들릴 수도 있고 소멸 간섭을 일으켜 잘 안 들릴 수도 있다. 담 너머에서 이야기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아도 말소리는 들린다. 두 개의 틈이 생기면 틈을 통해 들어온 물이 독 뒤쪽으로도 전달된다. 이렇게 파동이 진행 도중 장애물을 만나거나 좁은 틈을 지날 때 장애물의 윗 뒷부분까지 전달되는 현상을 파동의 회절(回折)이라고 한다.


정상파(定常波)는 무엇인가. 서 있는 파동이라는 뜻이다. 즉 정상파는 움직이지 않고 제자리에 서서 진동하는 파동이다. 파동이 양쪽 끝 사이를 계속 왕복하면서 줄을 묶은 양쪽 고정점에서 입사파와 반사파가 간섭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차에서 내는 사이렌 소리는 정지에 있는 차에서 내는 소리보다 높은 음으로 들린다. 그러니까 진동수가 더 크게 우리 귀에 들리는 거다.


반대로 우리로부터 멀어지는 차에서 나는 사이렌 소리는 정지해 있는 차에서 나는 사이렌 소리보다 더 낮은 음으로 들린다. 즉 진동수가 낮은 음으로 들리는 것이다. 이렇게 움직이는 물체에서 나오는 소리가 다르게 들리는 현상을 도플러 현상이 일어난다. 고유한 호수 중앙에서 파동이 만들어졌다고 가정하자. 이 파동의 주기가 10초라고 하자. 물속에 정지해 있는 관찰자는 마루가 오고 10초 후에 다음 마루가 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이 관측자가 첫 번째 마루를 경험하자마자 타원 쪽으로 헤엄쳐간다고 해보자. 그럼 이 관측자가 두 번째 마루를 경험하는 시간은 10초보다 적게 걸린다. 그러므로 이 관찰자에게는 파도의 주기가 짧아진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므로 진동수가 커진 것으로 관측된다. 관측자가 파동의 파원(波源) 쪽으로 가까이 가면 파동의 진동수가 커지게 된다. 이 파동의 소리가 높은 음으로 들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소리가 나는 곳으로 아주 빠르게 뛰어가면 원래 소리보다 더 높은 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옛날 어느 방앗간에 밀가루 부대를 나르는 늙은 나 귀가 있었다. 늙은 나귀는 오랫동안 참을성 있게 힘든 일을 열심히 해왔다. 하지만 요즘은 몸이 말을 듣지 않아 일을 하는 날보다는 아파 쉬는 날이 더 많다. 늙은 나귀는 음악을 아주 좋아해서 주변의 모든 사물을 악기로 만들어 연주하곤 했다. 방앗간의 다른 동물들은 늙은 나귀의 연기를 돕는 것을 좋아했다.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 그 사람은 바로 방앗간 주인이었다.


그는 늙을 나귀가 일보다 연주를 좋아하여 다른 동물들에게 악기 연주를 가르쳐주는 것을 오래 전부터 마음에 들어가지 않았다. 어느 날 방앗간 주인이 늙은 나귀를 불렀다. 무슨 일이시죠? 주인님? 늙은 나귀가 물었다. 이 쓸모없는 나귀 녀석, 일은 안하고 만날 북이나 두들기고 이젠 내 가죽을 벗겨 북이나 만들어야겠다. 주인은 매우 화를 내며 말했다. 주인은 곧장 늙은 나귀를 창고에 가두었다.


그날 이후 늙은 나귀는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다. 늙은 나귀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늙은 나귀는 창고 안에서 소리쳐 보았지만 아무도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스르륵 소리를 내면서 창고 문이 열렸다. 나귀에게 악기 연주를 배우고 있던 젊은 나귀였다. 어서 도망치세요. 주인이 내일 당신을 도살장에 팔아넘긴대요. 젊은 나귀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 젊은 나귀의 도움으로 늙은 나귀는 창고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하지? 벌써 겨울이 되려고 들판에는 으스스 찬바람이 불었지만 나귀는 갈 곳이 없었다. 태어나면서부터 방앗간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나귀는 길을 따라 터벅터벅 걸어갔다. 이젠 좀 쉬었다 가야지. 나귀는 느티나무 아래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저건 뭐지? 여기는 느티나무에 붙어 있는 종이 쪽지를 발견했다. 그것은 브레멘에서 동물 음악회가 열린다는 것이었다.


그래, 내 꿈은 원래 음악가였어. 밴드를 만들어 저 대회에 참가하는 거야. 나귀는 두 손을 불끈 쥐었다. 그리고 신이 나서 걸어갔다. 브레멘 음악대회에 참가한다는 생각을 하니까 갑자기 힘이 솟아나는 것 같았다. 언덕을 몇 고비 넘었을 때 나귀는 길가에 쭈그리고 앉은 늙은 원숭이를 만났다. 이봐, 어째서 이런 곳에 혼자 앉아 있는 거야. 나귀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나이 많은 원숭이는 울먹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를 기르던 주인에게 쫓겨난 신세가 되고 말았다네. 무슨 잘못을 했는데? 나는 줄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어. 야, 그거 재미있겠는걸. 나귀는 흥미롭다는 듯이 귀를 기울였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줄이야. 하루 종일 기계에서 나오는 줄을 뽑아 적당한 크기로 잘라 포장하는 일이었어. 줄은 두꺼운 것도 있고 가느다란 것도 있는데 늙으니까 눈이 침침해져서 가느다란 줄이 잘 보이질 않는 거야. 그래서 규격보다 길거나 짧게 줄을 자르게 되니까 주인이 필요 없다고 내쫓더군.


원숭이가 울먹거렸다. 나귀는 원숭이가 불쌍해서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거 참 안됐군. 그럼, 나와 함께 브레멘에 가서 동물 밴드를 만들어 보는 건 어때? 그런데 나는 악기를 다룰 줄 몰라. 공장에서 가지고 온 줄이 있지? 나귀는 원숭이의 주머니를 흘깃 바라보면서 말했다. 물론이지. 원숭이는 주머니에서 굵기가 서로 다른 여섯 개의 줄을 꺼냈다. 줄의 길이는 모두 같았다. 좋아, 악기를 만들어 줄게. 나귀는 자신 있는 표정으로 말했다. 나귀는 속이 뻥 뚫린 나무통에 여섯 개의 줄을 차례대로 묶었다.


이게 바로 기타라는 악기야. 너는 이 악기를 연주하면 돼. 나귀가 원숭이에게 기타를 건네며 말했다. 어떻게 연주하지? 원숭이는 생전 처음 보는 악기가 신기해 물었다. 줄을 퉁기면 돼. 나귀는 웃으며 말했다. 원숭이는 맨 윗줄을 퉁겼다. 낮은 음이 울려 퍼졌다. 정말 소리가 나는군. 신기해. 줄에서 정상파(定常波)가 만들어지기 때문이야. 그 정상파의 진동수와 같은 진동수를 공기가 진동을 하여 그 진동수의 음이 나오는 거야.


나귀가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원숭이는 갑자기 다른 다섯 개의 줄을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나머지 줄은 왜 매달아 놨지? 맨 윗줄부터 아래로 내려갈수록 줄의 굵기가 가늘어지지. 줄의 굵기에 따라 음이 달라지거든. 어떻게 달라지지? 줄이 가늘수록 높은 음이 만들어져. 원숭이는 6개의 줄을 차례로 튕겼다. 점점 높은 음이 울려 퍼졌다. 원숭이는 무척 신기해하는 표정이었다.


한참 여섯 줄을 퉁기던 원숭이가 말했다. 그런데 나오는 음이 미, 라, 레, 솔, 시, 미뿐이야. 그럼 도, 파는 어떻게 만들지? 같은 굵기의 줄이라도 길이가 짧아지면 더 높은 음이 만들어져. 맨 윗줄의 세 번째 칸을 왼손으로 꽉 누르고 퉁겨봐. 원숭이는 나귀가 시키는 대로 했다. 파 음이 울려 퍼졌다. 파가 나왔어. 원숭이는 신이 났다. 그리고 다른 줄도 왼손으로 눌러 줄의 길이를 짧게 만들었다.


점점 높은 음이 만들어졌다. 이젠 됐어. 너는 이제부터 이 악기를 다루면 돼. 나귀가 말했다. 그럼, 나도 동물 밴드가 된 거야? 원숭이는 뛸 듯이 기뻐했다. 이렇게 하여 나귀와 원숭이는 함께 브레멘을 향해 길을 떠났다.


이윽고 작은 다리에 이르렀을 때 나귀와 원숭이는 한 나이 많은 타조를 만났다. 타조는 오른쪽 다리를 절룩거리며 걷고 있었다. 타조야, 어째서 이런 외딴곳에 혼자 있는 거니? 원숭이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중간 생략) 나귀, 원숭이, 타조 등은 애니 뮤즈라는 그룹 이름을 만들었다. 애니멀의 애니와 뮤즈를 합한 말이다. 애니 뮤즈는 브레맨 음악제에서 대상을 받았다.


정완상의 ‘하위언스가 들려주는 파동 이야기’는 쉬운 설명으로 소리와 파동의 신비함을 전달한 책이다. 최근 저자는 ‘세상에서 가장 쉬운 과학’ 시리즈(전 20권)를 냈다. 과학자가 들려주는 과학 이야기보다 본격적인 책이다. 저자의 약진이 눈부시다. 계속 읽어야 할 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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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맥피 지음, 김정은 옮김 / 글항아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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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 고든의 [깊은 시간으로부터]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영국을 남동에서 북서로 여행하는 것은 시간을 거슬러 여행을 하는 것이라는 표현이다. 이에 대해 한 지구과학자에게 문의하자 그 분은 고든의 글은 당신이 20년 전 대학원 시절에 영어로 시험을 본 내용이라 말한다. 고든의 책 제목인 깊은 시간(deep time)은 영문학자 존 맥피(John Mcphee)가 처음 쓴 말로 가늠할 수 없이 긴 지질학적 시간을 뜻한다. 이른 다른 말로 지질현상은 반복된다(geology repeats itself)라고 한다. 


맥피는 영문학을 전공한 사람이 암석에 관한 글을 쓰게 된 것은 분지(盆地)와 산맥(山脈)의 한 단락이 답이 될 것이라 말했다. 1931년생인 맥피는 1978년 지질학자들과 미국 횡단 여행을 했다. 맥피의 책에 이런 구절이 있다. “지질학자들은 겉으로 드러난 지형적 특성을 의미할 때는 terrain(지형)이라 하고 수 킬로미터 깊이의 땅덩어리를 가리킬 때는 terrane(‘암층; 巖層’)이라 한다.” 두 단어는 내가 영어 네이티브 스피커가 아니어서인지 모르나 구별하기 쉽지 않다. 이는 지질에 대한 실질적인 어려움은 아니다. 그럼에도 험난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나처럼 두 철자 사이의 애매함만 곱씹었다는 맥피는 terrain은 지형이고 terrane은 3차원의 거대한 땅덩어리라 말한다.


이런 내용도 있다. 달에 반응하는 것은 바다만이 아니다. 하루 두 번, 단단한 땅도 무려 30센티미터나 위아래로 움직인다. 놀랍다. 지구에는 탄소 말고도 대량으로 산화될 수 있는 것이 또 있다. 바로 철이다. 연한 녹색을 띠는 산화제 1철은 어디에나 흔하며 지각을 구성하는 암석의 무려 5%를 차지한다. 그리고 산화제 1철이 산소를 받아들이면 붉은색을 띠는 산화제 2철이 된다. 맥피는 피아노 줄이 지구 맨틀과 정확히 같은 점성을 가졌다고 말한다.(73 페이지) 인간과 암석에 두루 관계하는 카슘, 마그네슘에 대해 최근 이야기한 바 있는 나에게 이런 서술이 눈에 띈다. "석회암(limestone)은 탄산칼슘이다. 백운암(dolomite)은 탄산칼슘의 마그네슘이 추가된 것이다. 둘 다 탄산염 암석으로 알려져 있다."


맥피는 지질학자들도 그림을 전체적으로 보지 못한다고 말한다.(94 페이지) 본문에 제임스 허턴 이야기가 나온다. 그림을 전체적으로 본 사람이라 할 수 있다. 허턴은 버릭쇼에 있는 그의 농장에서 보리를 키우다가 강물이 흙을 바다로 운반하는 것을 보고 서서히 일어나는 파괴를 감지했다. 문득 그는 만약 강물이 충분히 오랫동안 저런 작용을 했다면 농사를 지을 땅은 없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다면 세상에는 새로운 흙의 공급원이 분명히 있어야 했다. 그 새로운 흙은 고지대에서 내려왔을 것이고 비와 서리에 산이 조금씩 줄어들면서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거력, 큰 자갈, 잔 자갈, 모래, 실트, 진흙으로 크기가 점점 작아지면서 산마루에서 바다까지 나뭇가지 모양으로 펼쳐진 수계를 따라 내려갔을 것이다.. 


강 특히 홍수가 난 강은 계속 그것들을 실어 나르고 결국 깊고 고요한 물속에 내려놓았을 것이다. 그런 깊은 물에 켜켜이 쌓인 실트와 모래와 자갈은 어느 정도의 두께가 되면 열과 압력에 의해 단단히 다져지고 서로 엉기고 경화되고 석화된다. 암석이 되는 것이다. 허턴은 오래된 대륙들은 다 없어져 가고 있고 바다 밑바닥에서는 새로운 대륙들이 형성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고지대에는 해양생물이 화석이 있었다. 그런 생물은 홍수로 그곳에 올라가게 된 것이 아니었다. 뭔가가 암석을 바다 밑바닥에서 밀어 올렸고 우그러뜨려 산맥을 만들었다. 


제임스 허턴은 지질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인물이다. 맥피의 책은 900여 페이지의 이른바 벽돌 책이다. 체계가 없고 산만하지만 문학인 특유의 수사적 표현이 빛나는 자유분방한 책이다. 그는 자신의 책은 지질학을 주제별로 분류한 목록이 아니라 서서히 풀어나가는 이야기를 하고자 쓴 ‘방대하고 포괄적인’ 책이라 말한다.(11 페이지) “여행, 짧은 주제 글, 회상, 간단한 전기, 인간과 암석에 관한 이야기들로 구성“된 책이다. 


움직이는 것은 판이다. 판은 모두 움직인다. 방향이 다 다르고 속도도 제각각이다. 판이 분리되는 곳에는 대양이 형성된다. 판이 충돌하는 곳에는 산맥이 만들어진다. 바다가 넓어지고 두 판이 서로 멀어지면 그 가운데에는 새로운 해저가 나타난다. 새로운 해저는 이동하는 판의 뒷자락 끝을 따라 계속 형성된다. 움직이는 판의 앞쪽에 위치한 오래된 해저는 깊숙한 해구 속으로 밀려들어간다. 저자는 지질학자 1/8이 판구조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지질학] 기사를 인용한다. 


주어진 어느 순간에 두 지질학자가 머릿속에 맴도는 모든 가설과 학설을 정확히 똑같은 수준으로 받아들이는 경우는 없다는 말도 본문에 있다. 늘 다양한 단계로 받아들이고 있는 여러 생각이 있다. 그것이 과학의 작동 방식이다. 생각이 받아들여지는 범위도 다양하다. 확고하게 받아들여지는 것도 있고 형성 과정에 있거나 뜬금없이 한밤중에 떠오르는 생각처럼 말 그대로 설익은 단계의 생각도 있다. 모든 과학이 추측과 관련이 있지만 지질학만큼 추측이 많은 과학도 별로 없을 것이다.(192 페이지) 


전체를 꿰뚫는 이런 서술도 있다. ”땅의 생김새는 기본적으로 물의 영향을 받는다. 물은 경관을 따라 흐르고 계곡을 파내고 빙하처럼 제멋대로 땅을 밀고 지나간다. 이런 물의 작용은 외적인 것이다. 그러나 땅의 생김새는 내부에 있는 암석 자체의 영향을 받고 심지어 암석에 의해 조절되기도 한다. 용해도는 말할 것도 없고 연속적인 지층의 상대적인 강도, 습곡과 단층 같은 주어진 암석의 구조에도 영향을 받는다.“(261 페이지) 


지구의 역사가 암석에 쓰여 있을 수 있지만 그 역사가 지질도와 일치하지는 않는다. 지질도는 현재 그 지역의 최상층을 보여주지만 훨씬 더 아래에는 무엇이 있고 그 위로는 무엇이 사라졌는지 잘 나타나지 않는다. 광물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플린트, 처트, 벽옥은 모두 옥수에서 만들어진다. 옥수는 석영의 변종이다.(267 페이지) 침식과 퇴적은 구불구불하게 흐르는 강에서 일어나는 전형적인 현상이다. 이런 강은 한쪽 면이 깎여나가는 동안 그 반대쪽 면에서는 퇴적이 일어난다. 사암 속에 이암 덩어리가 들어 있는 곳은 침식이 심하게 일어나면서 강둑 위에 있는 진흙 모양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이런 말을 들어보라. ”(판구조론자들은) 거기에 약간 갇혀 있는 것 같아요. 뭔가 판구조론에 잘 들어맞지 않으면 그들은 어떤 이유를 찾겠죠. 뭔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거나 뭔가 섭입되었거나 지표 아래에 아직 발견되지 않은 뭔가가 있다고 말할 거예요. 그렇게 끼워 맞추는 거죠... 내가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판구조론이 절대적인 복음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점이예요... 너무 과하게 적용되고 있어요. 지질학적으로 세세한 것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요. 지질학적으로 세세한 것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요. 끔찍할 정도로 잘못 활용되고 있어요. 사실을 왜곡하고 세상을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있어요... 판구조론은 실용적인 과학이 아니예요. 대단히 흥미롭고 재미있지만 석유를 찾는 방법은 아니예요. 일종의 도피처 같은 거예요. 생각하고 싶지 않을 때 하는 일인 거죠.“(312 페이지) 


이런 구절도 있다. ”판구조론 혁명이 일어나기 전부터 있었던 지질학의 오랜 난문제들 가운데 일부는 판구조론이 나온 이후에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554 페이지) 가령 콜로라도 고원을 융기시켜서 강물에 깊게 파인 협곡이 되게 만든 것은 무엇이었을까? 범람 현무암은 무엇으로 설명될 수 있을까?...참고할 거리다. 맥피는 지질학자를 피부과 의사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지질학자는 대체로 지구의 가장 바깥쪽 2퍼센트를 연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맥피와 동행한 지질학자 엘드리지 무어스는 지구 전체가 판구조와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섭입하는 판에서 일어나는 지진을 무려 650km 지하 범위까지 판독할 수 있고 이제 지진파의 자료는 차가운 해양지각판의 조각이 핵과 맨틀 사이의 경계까지 내려갈지 모른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643 페이지)


나는 판구조론을 인정한다. 그러나 큰 그림과 별개로 원소, 광물, 암석, 지층 등에 관심이 많이 간다. 우리나라의 한 대학 연구팀이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JWST)을 이용해 아기별 주변 원반에서 규산염(silicate)이 결정화되는 과정을 세계 최초로 관측, 혜성 등 태양계 구성 물질의 탄생 비밀을 풀어낸 것도 그 중 하나다. 이 내용을 풀어 쓰고 싶다. 인간과 자연의 공진화 내지 순환도 관심거리다. 암석과 식물의 관계도 그렇다. 나는 지질학이 원소에서 광물, 암석, 지층, 판구조론 등까지 작은 것에서 큰 것까지 두루 다루는 학문이라 생각한다. 


[우주는 어디에서 왔을까]의 저자 크릭스 페리, 게라인트 루이스가 자신들의 책을 인간 지식의 양극단인 양자(量子)와 우주를 다루는 책으로 소개한 것이 기억난다. 지질학이 다루는 가장 작은 것인 원소와 가장 큰 것인 지구 자체는 물리학의 작은 단위인 양자와 가장 큰 단위인 우주 사이에 있다. 어쩌면 지질도 양자적 개념과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 


지층이 어긋나거나 뒤틀린 다른 지역과 달리 오롯히 수평층인 그랜드 캐니언에 대한 맥피의 언급도 새겨들을 만하다. 맥피는 와이오밍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곳에서 자란 지질학자는 모든 시대의 세세한 이야기를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유는 그곳에는 지구 역사의 모든 시대가 다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와이오밍의 지질학적 특성은 무엇보다 다방면으로 박식한 사람을 만들어내는 경향이 있을 것이다.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와이오밍주는 석유, 가스, 광물 자원을 찾는 지질학자들과 복잡한 지질 구조에 매료된 연구 지질학자들을 끌어들여 왔다. 화석부터 광물, 산맥부터 분지, 습곡과 단층, 화성암부터 퇴적암, 광산부터 유전, 지열 지대부터 빙하 지형, 그리고 무엇보다 풍부한 노두까지, 지질학 분야에서 경력을 쌓고자 하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 와이오밍은 지질학자에게는 지상 낙원과도 같은 곳이다.” 


산들은 항상 허물어진다. 솟아오르고 있는 동안에도 당연히 허물어지고 있다. 침식과 조산운동이 경쟁을 벌일 때 침식은 결코 지는 법이 없다. 그러나 비교적 짧게, 산이 솟아오르는 속도가 파괴되는 속도보다 훨씬 우세한 시기가 있다.(443 페이지) 


흥미로운 표현이 있다. 사무실 지질학자, 실험실 지질학자라 불리는 블랙박스 지질학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진지한 학문을 피하려는 동료들의 도피 수단이 야외조사라고 믿는다고 한다. 맥피는 블랙박스 지질학자들이 야외지질학자들보다 표를 더 많이 얻는 경향을 우려한다. 이런 구절이 있다. “산맥 하나하나의 구조를 알기 위해서는 퇴적층의 역사를 자세히 알아야 해요. 퇴적층의 역사를 자세히 알려면 층서학을 알아야 해요. 나는 층서학이 죽었다는 것을 최근에 알았어요. 많은 학교에서 이제 더는 층서학을 가르치지 않아요. 내가 보기에 이것은 알파벳도 모르면서 소설을 쓰는 거예요. 이제 지질학 논문들은 층서학에 대한 지식 없이 산맥의 구조들을 연구하는 해골들의 무덤이예요.”(549 페이지) 


앞서 언급한 헬렌 고든의 책에는 층서학이 지루한 학문이라는 말이 나온다. 맥피는 가장 잘 확인된 경로에서조차 모든 것이 순조롭게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565 페이지) 클링커 이야기를 들어보자. 석탄 덩어리가 번개나 자연 발화에 의해 연소되면 그 위에 놓인 암석이 붉게 변하는데 그것을 클링커라 한다. 클링커가 있다는 것은 석탄이 있다는 의미다.(577 페이지) 참고거리다. 용암이 얕은 물과 만나 급히 식을 때 생성되는 것도 클링커라고 알고 있어도 좋다. 공통점은 거칠고 시커멓다는 점이다. 


최근 한 지질 전문가가 탄성 반발에 대해 알아보라는 조언을 했다. 나는 이것을 별이 연료를 다 소진해 중력에 굴복해 수축하다가 더 이상 압축되지 않는 핵에 의해 튕겨져 나오는 현상(초신성)과 비교하고 싶다. 탄성 반발은 1906년 샌프란시스코 지진 후 H. F 라이드가 제안한 지진 발생 원리다. 지진 공백 구간(seismic gap)이란 말이 있다. 일본의 지진학자 이마무라 아키쓰네가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이 일어난 1906년 만든 말이다.(833 페이지) 


순조롭지 않은 이런 문장도 있다. “산을 이루고 있는 것은 그 산을 만든 것이 아니다. 화산은 예외로 하고. 산이 지구의 어떤 힘에 의해 솟아오를 때 그 산을 이루고 있는 것은 마침 우연히 그곳에 있는 것들이다. 만약 천매암 지대와 습곡된 변성퇴적암이 우연히 그곳에 있었다면 산의 일부가 될 것이다.”(626 페이지) 저반(底盤) 이야기도 나온다. 저반(batholith)은 지질학자들이 거대한 마그마가 만드는 화성을 가리키기 위해 고안해낸 용어다.(637 페이지) 표면의 넓이가 100제곱킬로미터 이상인 암체(巖體)를 저반이라 한다.([성경, 바위, 시간]에는 이상하게도 102제곱킬로미터 이상이라 나온다.) 


이전 단편적으로 접한 오피올라이트에 대한 글도 있다. 오피올라이트는 대양의 암석권이 형성되는 과정을 자세히 설명할 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는 오래전에 사라진 판의 충돌에 대한 기록을 간직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오피올라이트는 대륙이 해체되었다가 재건되는 동안 사라진 바다를 소환했고 사라진 판을 짐작하게 했다. 오늘날 대서양의 자리에 있던 대양 또는 대양들이 캄브리아기 - 데본기에 북쪽에서부터 사라지고 오늘날 우랄산맥 자리에 있던 바다가 페름기에 사라지면서 판게아가 완성되었다.(711 페이지) 오피올라이트는 격렬한 기원 논쟁의 대상이다.(719 페이지) 


1971년 미국 지질자원연구소의 R. G 콜먼은 해양지각이 해구(海溝)로 밀려들어가거나 대륙 아래로 파고드는 곳에서 잘려나간 해양지각의 윗부분이 대륙의 가장자리에 올라온 것을 오피올라이트라 제안했다. 그는 이것을 압등(押登; obduction)이라 불렀다.(720 페이지) 반론도 있다. 1976년 존스 홉킨스대학교의 데이비드 엘리엇은 콜먼이 제안한 구조 변화가 너무 과격해 암석이 견디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오피올라이트가 산산조각이 나서 지상에 올라오지도 못할 것이라 판단했다. 


오만의 무스카트는 감람암 절벽 위에 놓여 있다. 지구에서 유일하게 맨틀 암석으로 만들어진 수도다.(801 페이지) 무지진 이동(aseismic slip)이란 개념도 있다.(863 페이지) 느린 구조적 포행(匍行)을 말한다. 맥피와 동행한 엘드리지 무어스는 단층은 우물이 생기기 좋은 곳이란 말을 했다. 각력(角礫)질이고 구멍이 아주 많은 곳이다. 대수(帶水)층의 양쪽 끝이 잘리면 물이 단층으로 흘러들어온다. 이 사람은 판구조론, 오피올라이트 전문가였다. 


지구 물리학자들은 시생대 초기에 우라늄, 칼륨, 토륨이 붕괴되면서 생산된 열량을 계산했다. 그들에 의하면 오늘날 지구가 만들어내는 것보다 서너 배 더 많은 열이 발생했을 것이다. 가장 오래된 암석들은 시생대 지각의 부스러기들이고 고립되어 있기 때문에 지구 전체의 맥락에서 고려할 수 없다. 지각을 구성하는 암석의 역사와 맨틀의 기원을 추적할 때 특별히 유용한 동위원소는 사마륨, 네오디뮴이다. 사마륨은 방사성 붕괴를 일으켜서 정해진 비율로 네오디뮴이 되기 때문에 두 원소는 루비듐과 스트론튬, 우라늄과 납처럼 정밀한 시계와 같은 역할을 한다. 


사마륨, 네오디뮴 연대는 정확(accuracy)하긴 하지만 정밀(precision)하지는 않다. 정확성과 정밀성은 다르다. 처음에는 이 차이가 갈라진 머리카락 한 올보다 작아 보일 수도 있다. 이를테면 조지 워싱턴이 47세를 전후로 20년 사이에 마지막 지출 내역서를 제출했다고 말한다면 정확하긴 하지만 전혀 정밀하지 않다. 만약 산타클로스가 할로윈 새벽 12시 26분 9초에 굴뚝을 내려왔다고 말한다면 정밀하긴 하지만 정확성은 거의 없는 이야기일 것이다. 


 정밀하다는 것은 실험 기술이 좋다는 의미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아주 정밀하면서 전혀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 정확도(accuracy)는 측정값이 참값이나 허용된 값에 얼마나 가까운지를 의미하며, 정밀도(precision)는 반복된 측정값들이 서로 얼마나 가까운지(일관성)를 의미한다. 측정값은 정확하지 않으면서 정밀할 수 있고(일관되지만 틀림), 정밀하지 않으면서 정확할 수도 있다(평균적으로 맞지만 일관성 없음). 이상적인 것은 정확성의 범위를 좁히고 동시에 정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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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시간으로부터 - 발아래에 새겨진 수백만 년에 대하여
헬렌 고든 지음, 김정은 옮김 / 까치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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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헬렌 고든의 책이다. 저자는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언어에 대해서 생각하며 보내는 사람들이 주로 모이는 문학 출판계에 종사하는 자신에게 지질학은 한눈에 봐도 매력적인 분야였다고 말한다. 책 제목인 [깊은 시간으로부터]란 말은 지질학자들의 시간에서 온 말이다. 이 말을 처음 쓴 사람은 작가 존 맥피다. 맥피는 지질학에는 정말로 인문학적인 면이 적지 않은 것 같았다고 말했다. 영국 국립 자연사 박물관의 한 보고서에 의하면 깊은 시간은 생명의 기원과 다양화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한 토대이며 지질학, 물리학, 천체물리학을 이해하기 위한 결정적 개념이다. 저자에 의하면 깊은 시간이란 더 거대하고 더 이상한 규모의 시간을 의미한다. 인간의 시간이 초, 분, 시, 년으로 측정된다면 깊은 시간은 수만 년, 수백만 년, 수억 년의 시간을 다룬다. 


저자는 깊은 시간 속에서 산다는 것은 조금 다른 곳을 장기적인 시각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깊은 시간 속에서는 지난주, 작년, 지난 10년 동안 일어난 일만이 아니라 100만 년 전, 5천만 년 전, 5억 년 전에 일어난 일도 중요하다. 우리가 바로 지금 이 특별한 순간에 특별한 장소에 있는 이유는 그런 오랜 시간에 걸쳐 일어난 사건들의 연속으로 설명된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당신이 만약 백악 위에 서 있다면 한때 바다였던 곳에서 있는 셈이라 말한다. 저자는 지질학 입문서들을 읽었고, 퇴적 학자 층서학자, 고생물학자들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발굴지와 노출된 절벽면을 조사하는 답사에 참여했고 주변과 발 아래에 있는 암석에 쓰여 있는 깊은 시간의 역사를 배웠다고 말한다. 그러니 [깊은 시간으로부터]는 배움과 대화, 탐사를 거쳐나온 책이다.


지질학자들은 암석층을 읽는 법을 배우고 그것을 통해서 과거의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법을 익힌다. 각각의 층은 이전에 있었던 하나의 세계를 나타낸다. 그 세계는 수천 년 또는 수백만 년 동안 이어지다가 사라지고 그 위로 다른 암석층이 덮인다. 저자에 의하면 퇴적암은 암석의 작은 조각이나 생물의 잔해가 주로 물속에서 쌓이거나 바닷물의 증발과 같은 화학적 과정을 거쳐서 형성되는 암석이다. 17세기 덴마크의 의사 스테노는 새로운 퇴적물의 층이 점점 두껍게 쌓이려면 그것이 쌓일 수 있는 단단한 층이 이미 존재해야 한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더 오래된 퇴적암층일수록 더 새로운 층의 아래에 놓인다는 것이다. 


고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지질학이 인간 사고의 가장 독특하고 변혁적인 기여를 한다고 말했다. 본문에 흥미로운 내용이 있다. 지질학은 물리학에서 파생된 부정확한 학문에 불과하다고 간주되었다는 내용이다. 과학의 텃세 서열에 따르면 이론 물리학자는 실험물리학자를 무시하고, 실험물리학자는 지질학자를 무시하고, 지질학자는 지리학자를 무시한다. 하지만 지질학은 본질적으로 역사적 차원이 있다는 면에서 순수 물리학이나 화학, 생물학과 구분된다. 지질학적 기록은 필연적으로 복잡하고 불완전해서 그 기록을 해독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역사에 적용되는 것과 비슷한 해석학적 추론이 필요하다. 


지질학은 회색 자료를 해석할 재주가 필요한 학문이다. 불완전하거나 사라졌거나 단편적인 자료의 조각들을 맞춰서 한 편의 이야기를 자아내는 능력, 상상력을 발휘해서 반쯤 있는 그림을 완성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다른 누군가의 말처럼 지질학자는 기본적으로 셜록홈즈 같다. 깊은 시간에서는 모든 것이 일시적이다. 뼈는 바위가 되고, 모래는 산이 되고, 대양은 도시가 된다. 현재 우리는 간빙기에 살고 있고 그린란드의 빙상은 지표면의 상당 부분을 하얗게 덮고 있던 지난 빙기의 잔존물이다. 당시 북반구에는 두께가 킬로미터 단위에 달하는 빙하가 넓게 펼쳐져 있었다. 불과 1만 년 전까지만 해도 얼음으로 덮여 있던 캐나다, 스코틀랜드, 스칸디나비아를 포함한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이제 얼음이 녹아서 사라졌지만 그린란드에는 아직 남아 있다. 


얼음 코어는 과거의 대기와 직접 접촉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제공한다. 공기, 물처럼 덧없어 보이는 것들이 그렇게 오랫동안 보존된다는 것이 어딘가 환상적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만일 그 얼음 코어가 녹으면 50만 년 전에 내린 눈이 녹은 물을 마실 수도 있고 그 얼음 속 기포에서 방금 방출된 50만 년 된 공기를 들이킬 수도 있다. 


지질학자들에게 메카가 있다면 단연 시카 포인트일 것이다. 바위 투성이의 작은 곶인 시카 포인트는 에든버러에서 동쪽으로 63km쯤 떨어진 스코틀랜드 동부 해안을 따라 넓게 자리 잡은 베릭셔 카운티의 한 절벽 아래에 있다. 1788년 제임스 허턴이 밝힌 부정합과 관련된 곳이다. 허턴은 지구의 계속적인 형성에 대한 설명은 없고 파괴에 대한 설명만 있는 과학적 통설을 접했다. 창조가 단 한 번 뿐이라는 성경의 가르침도 접했다. 만일 성경이 옳다면 모든 산은 닳아 없어져야 하고 결국에는 땅도 모두 사라져야 맞다. 그러나 허턴은 회복 과정이 있음을 확신하기 시작했다. 허턴은 도대체 어떤 힘이 풍화된 자갈과 모래알갱이들을 새로운 바위로 변모시킬 수 있었을까? 물속에서 형성된 그 암석들은 어떻게 솟아올라서 새로운 땅이 될 수 있었을까? 궁리했다.


허턴은 열(熱)에서 답을 찾았다. 허턴은 침식과 퇴적 과정이 매우 느린 과정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제임스 허턴은 인간의 사고를 얕은 시간의 세계에서 깊은 시간의 세계로 넘어가도록 도왔다. 그의 연구는 태양계의 중심에 지구가 아니라 태양이 있다고 주장한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 갈릴레이, 요하네스 케플러의 연구 만큼이나 근본적이고 중대했다. 그러나 그의 위대한 학설은 그의 생전에는 전혀 널리 읽히지도 않았고 이해되지도 않았다. 그 이유는 그의 난해하고 산만한 문체 탓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누구보다도 더 허턴을 열렬히 추종하는 플레이페어조차 허턴의 글의 장황함과 모호함을 못내 안타까워했다. 


현재 지구에 작동하는 과정들이 지구의 역사를 설명할 수 있다는 허턴의 생각은 라이엘을 통해서 동일과정설이라고 알려지게 되었고 지질학도들 사이에서는 현재는 과거의 열쇠라는 말로 요약되어 대대로 전해져왔다. 현재 동일과정설과 격변설 모두 어느 정도 옳은 것으로 밝혀졌다. 오늘날 대부분의 지질학자들은 두 학설을 결합하여 깊은 시간의 세계를 보여주는 그림을 내놓는다. 그 그림에서는 천천히 꾸준하게 일어나는 연속적인 변화 과정 속에 한 지역이나 지구 전체의 재앙을 일으키는 대이변들이 간간이 한 번씩 끼어든다. 


저자는 우리의 손바닥 아래에는 약 3천만 년의 시간이 사라져 있었다고 말한다. 실루리아기에서 데본기로 세상이 바뀌던 그 시기에는 어떤 바위도 놓이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면 그곳에 놓여 있던 바위가 풍화되어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깊은 시간이라는 장부에는 보존되어 있는 것보다 소실된 것이 더 많다. 저자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한다. 다이아몬드 업계에 4C가 것이 있다면 운석 경매인에게는 4S가 있다는 것이다. 4C는 cut(연마), color(색깔), clarity(투명도), carat(중량)이다. 4S는 size(크기), shape(형태), science(과학), story(이야기)다. 저자는 암석은 시간이 만든 기록이라 말한다. 연대를 결정하기 위해서 방사성 붕괴를 활용할 수는 있지만 시간의 경과를 보여주는 유형의 증거는 암석뿐이라는 말을 인용한다. 


저자는 암석 1cm는 1, 000년의 시간을 나타낸다고 말한다. 암석은 지구의 역사책이다. 하지만 그 책은 많은 페이지들이 사라지고, 훼손되고, 뒤집히고 순서가 바뀌어 있다. 만약 그 책을 읽는 법을 배울 수 있다면 다시 말해 암석 유형의 변화를 고대의 기후 사건과 연결할 수 있다면 지구의 역사를 재구성하여 궁극적으로 지질 연대표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지질 시대의 단위는 지구 전체에서 동시에 일어난 사건을 토대로 구분된다. 그런 사건들은 세상의 변화를 일으키고 암석과 얼음에 기록을 남긴다. 플라이스토세와 홀로세가 나뉘던 시기에 일어난 지구 온난화 사건은 그린란드의 얼음 코어 속에, 공기 조성에 갑작스러운 변화로 기록되어 있다. 


페름기와 트라이아스기가 나뉘던 시기는 기온이 상승하고 정체된 대양이 산성화되고 재앙 수준의 화산활동이 일어난 시기였다. 이 시기에 이르러 대멸종 사건으로 인해서 해양에서는 10종 중 무려 9종의 생물이 멸종했고, 육상에서는 10종 중 7종이 사라졌다. 지구상에서 생명이 종말을 맞을 뻔 했다. 이 사건은 탄소 동위원소 비율의 변화, 화산재층, 화석 기록의 급격한 감소를 통해서 입증된다. 각각의 단위에는 고유 색깔이 있다. 지질 연대표의 맨 아래에서 오른쪽에 있는 명왕누대는 지구 표면이 액체 상태의 암석으로 덮여있던 신비스러운 시대로 색깔은 청보라색이 도는 붉은색이다. 이 표의 초기 부분, 생명이 주로 대양에 존재하던 시절인 캄브리아기, 오르도비스기, 실루리아기는 회녹색과 연한 청록색 계열이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홀로세를 위해서 지질학자들이 고른 색은 별 특색 없는 분홍색과 갈색이 도는 베이지색이다. 


지질 연대표의 맨 꼭대기에는 떨어진 반창고의 색깔, 칼라민 로션의 색깔, 씹다 뱉은 풍선껌의 색깔이 반듯하게 놓여 있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마리 퀴리, 아인슈타인, 모차르트, 버지니아 울프, 코페르니쿠스, 붓다가 모두 거기에 있다. 그리고 그 얇은 띠 아래에 있는 다른 모든 세계는 우리가 결코 직접 겪을 수 없고 오로지 흔적을 통해서만 단편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그 세계는 우리가 나타나기 전에 있었던 사라진 세계들이다.


판구조론이 확립되자 지질학은 꽤 그럴듯한 과학이 되었다. 당시까지 지질학은 관찰 위주였고 본질적으로 별개로 보이는 사실들을 수집하는 활동이었다. 판구조론은 지질학의 거대 이론이 되었다. 생물학의 다윈주의, 물리학의 양자역학과 마찬가지였다. 오늘날 지구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판구조론의 발판 위에 확립되었다. 판구조론에 따르면 지구의 표면에는 맨틀의 최상부와 지각으로 이루어진 두께 125km의 거대한 판들이 모자이크처럼 맞물려서 움직이고 있다. 이 판들은 약 7개의 큰 판과 약 8개의 더 작은 판으로 구성된다. 판들은 마치 컨베이어 벨트 위에 있는 것처럼 뜨겁고 무른 암석 위를 미끄러지듯이 움직여서 지구 전체를 돌아다니고 그 위에 얹힌 대륙과 해양도 함께 운반한다. 판의 경계가 만나는 곳에서는 두 판이 서로 벌어지기도 하고 한판이 다른 판 아래로 파고들기도 하고 슬로 모션으로 일어나는 자동차 사고처럼 두 판이 충돌하기도 한다. 


판이 부딪히면 땅이 구겨진 보닛처럼 휘어지면서 높고 낮은 산맥이 만들어진다. 때로는 한 판이 다른 판의 아래를 파고들어 빨갛고 뜨거운 맨틀로 내려가고 맨 틀에서는 암석이 녹아서 재활용된다. 판과 판 사이의 이런 상호작용은 땅의 형태에서부터 시간의 흐름에 따라 땅이 변하는 방식, 화산이 폭발하고 지진이 일어나는 이유, 지구상의 동식물 분포에 이르기까지 우리 세계가 왜 이런지를 설명해준다. 많은 판의 경계는 물속에 있고 지표면에서 뚜렷한 흔적을 볼 수 있는 장소는 매우 드물다. 그런 장소 중 한 곳이 북아메리카판과 태평양판이 만나는 샌앤드레이어스 단층이다. 밤낮 없이, 천천히 깊은 시간에 걸쳐서 일어나는 판의 움직임은 단층을 통해서 슬며시 그 모습을 드러낸다. 


단층은 땅속 깊은 곳에 있는 암석에 응력과 변형이 축적될 때 만들어진다. 암석은 움직이는 판으로부터 엄청난 압력을 받아 휘어지기 시작하다가 어느 날 단층 파열이 일어나면 격렬하게 부서진다. 우리는 이것을 지진이라고 부른다. 샌앤드레이어스 단층에 항상 지진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은 이 특별한 판의 경계 근처에서 살아가면서 감수해야 하는 결과 중 하나다. GPS 덕분에 우리는 이제 판의 경계에서뿐 아니라 판의 내부에서도 암석의 변형이 실제로 일어난다는 사실을 안다. 일부 과학자들은 판의 충돌로 인해 암석들이 부서지면서 방출된 중요한 영양소들이 캄브리아기 대폭발 같은 생물 진화의 주요 순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약 5억 4천만 년 전 캄브리아기 대폭발이 일어났을 때에는 오늘날과 같은 생명체의 조상들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세인트루이스 대학교의 오브리 저클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판 구조가 필요하다는 점이 더 분명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만약 맨틀과 지각 사이에서 물질을 재활용할 방법이 없다면 탄소, 질소, 인, 산소처럼 생명의 중요한 원소들이 암석에 갇힌 채로 그대로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판구조라는 컨베이어 벨트는 탄소를 많이 포함한 암석을 맨틀 속으로 끌어당겨 녹임으로써 해로운 이산화탄소가 대기 중에 쌓이는 것을 방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판 구조의 도움으로 우리가 숨을 쉬는 셈이다.(111 페이지) 


1800년대 초 윌리엄 스미스는 최초의 지질도를 만들었다. 암석의 연대와 쌓인 방식 등을 기록했다.(135 페이지) 스미스의 지도는 산업혁명 동안 영국의 과학과 경제 발전에 도움을 주었다. 그 지도는 공장의 동력이 될 석탄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 암석과 점토를 어디에서 캐낼 수 있는지를 알려주었다. 또한 납과 주석, 구리 광산이 있을 만한 곳, 수로와 철도를 가장 쉽게 놓을 수 있는 자리는 어디인지도 나와 있었다. 사암, 석회암 등은 연암(軟巖)이고 화강암, 현무암 등은 경암(硬巖)이다. 방해석은 변성암인 대리암 만큼 단단하지만 연암 지질학에 속한다. 오늘날 백악(白堊)이 발견되는 지역의 물에는 코콜리스(cocolith)라고 하는 '현미경으로만 볼 수 있는 크기의 유기체 잔해'가 가득하다.


백악은 영국 남부 해안에서 영국 해협 아래로 내려갔다가 또다른 해안 절벽으로 다시 나타난다. 프랑스인들은 코트달바르트(설화석고 해안)라고 하고 영국인들은 별로 입에 올리지 않는 이 하얀 절벽은 모네, 피카소, 르누아르의 그림 속에 많이 남아 있다.(142 페이지) 본문에 나오는 여러 암석 가운데 백악과 플린트에 대해 더 알고 싶다. 캄피 플레그레이(Campi Flegrei)는 불타는 들판이란 의미의 말로 칼데라를 지칭한다. 화산이 분화한 뒤 분화구가 무너져 내리면서 만들어진 거대 그릇 형태의 지형이다. 복합 화산이 분출이 일어나는 위치가 화산 꼭대기인지 옆면인지를 알 수 있다면 칼데라에서는 대단히 다양한 위치에서 분출이 일어날 수 있다.(156 페이지) 


화산이란 지표면 아래의 끊임없는 교란이 격렬한 방식으로 지표에 표출되는 것이다. 이런 판구조의 움직임이 캄피 플레그레이를 만들었다. 깊은 시간의 판구조 운동 과정이 인간의 시간 속에서 폭발하고 있는 것이다.(157 페이지) 화산 연구는 크게 두 가지 범주로 나뉜다. 하나는 오늘날 지표면에서 활동하고 분출하는 현대의 화산을 연구하는 것이다. 이 화산들은 관찰과 측정이 가능하다. 다른 하나는 과거의 깊은 시간 동안 지구의 어디에서 어떻게 화산이 폭발했는지 알기 위해서 암석 기록을 조사하는 것이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화산학 더 일반적으로는 지질학에 변화가 일어났다. 거의 순수하게 관찰 위주의 과학이었던 지질학은 그 무렵 수학적 규칙을 찾고 모형을 만드는 더 정량적인 학문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분출은 지구의 지각이 늘어나고 파열될 때 일어난다. 마그마는 지표 쪽으로 이동하고 마그마가 들어갈 공간이 생기려면 지각은 팽창해야 한다. 고무줄을 상상해보자. 고무줄은 어느 정도까지는 잡아당길 수 있지만 어떤 한도를 넘으면 끊어진다. 지각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지각이 끊어지면 분출이 발생할 것이다.(168 페이지) 화산재는 보기에는 밀가루 같지만 기본적으로 암석이기 때문에 잘 털어지지 않는다. 게다가 기계나 전기 장치 속으로도 들어가고 화산재가 많을 때에는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숨도 쉴 수 없다. 용암은 일반적으로 느리게 움직인다. 물론 예외는 있다. 따라서 우리는 뛰어서 도망갈 수 있고 심지어 걸어서도 용암을 피할 수 있다. 


아이슬란드에서는 지역사회의 노력으로 용암류가 마을과 항구를 피해서 흐르도록 유도할 수 있었다. 반면 화산쇄설류가 특정 방향으로 흐르도록 유도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화산쇄설류는 섭씨 200~700도의 뜨거운 기체와 암석 입자가 시속 96km에 달하는 속도로 움직이는 그야말로 매우 위험한 흐름이다. 이보다 암석이 조금 더 적고 기체가 조금 더 많으면 화쇄난류라고 부른다. 무르고 짙은 색을 띠는 라임 레지스의 절벽은 쥐라기에 형성된 블루 리아스라는 지층의 일부이다. 연한 회색의 갈비뼈 같은 석회암층과 두툼한 청회색 셰일 덩어리가 번갈아가며 쌓여 있는 절벽은 조악한 화질의 초음파 영상처럼 보였다. 서로 다른 두 층이 쌓였다는 것은 이 쥐라기의 바다가 탁한 진흙탕(셰일층)에서 맑고 따뜻한 얕은 바다(석회암층)로 바뀌었음을 보여준다. 


생물체가 죽으면 그 몸은 해체되고 다른 생명체나 부패 과정에 의해 분해된다. 그러나 아주 드물게는 화석화가 일어나고 몸의 일부분인 껍데기나 뼈 같은 단단한 부위가 광물로 치환된다.유기물은 무기물로 바뀌고 뼈는 암석이 된다. 극히 일부의 생명체만이 화석이 된다. 그 확률은 엄청나게 희박하다. 한 종이 대략 200-500만 년 동안 지속된다고 가정하면 현생누대 5억 년간 나타났다가 사라진 후생동물은 약 10억 종에 달한다. 그 중에서 기재되고 명명된 것은 30만 종에 불과하다. 1000분의 1이 안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동물은 몸이 연해서 화석화될 가능성이 낮고 어떤 동물은 단순히 수 자체가 적었다. 육상의 고지대에서는 침식이 잘 일어나기 때문에 한때 그곳에 살았던 동식물의 흔적이 잘 남지 않는다. 


심해저에 기록된 것은 섭입에 의해서 지워진다. 하나의 생물이 화석이 되고 그 화석이 인간의 눈에 띄기 위해서는 통계적으로 있음직하지 않은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나야 한다. 우선 몸이 온전한 상태로 죽어야 한다. 유난히 강한 폭풍처럼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서 충분히 두꺼운 퇴적층에 그 온전한 몸이 빨리 덮여야 하고 그 퇴적층이 암석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퇴적암에 지하 깊은 곳의 열과 압력이 가해져서 심한 변형이 일어나서도 안 된다. 그런 다음 지표로 올라와서 그 생물이 죽고 수백만 년쯤 흐른 뒤에 다시 빛을 보아야 한다. 이 마지막 단계는 화석 채집가들이 자주 출몰할 가능성이 있는 곳에서 일어나야 하고 깊은 시간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좁디좁은 구간 동안에 벌어져야 한다.(194, 195 페이지) 화석은 깊은 시간 속에 살았던 과거의 생물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증거, 과거의 정경을 가장 잘 떠오르게 하는 증거이다. 


과거의 풍경을 암석을 통해서 추론해야 하는 곳에서 화석은 즉각적으로 만지고 조사하고 경험할 수 있는 실체이다. 저자는 화석 기록이 예전에 우리 행성에 살았던 생물의 세세한 모습을 극히 일부만 보여주듯이 역사적 기록도 극히 불완전하다고 말한다.(200 페이지) 캄브리아기 대폭발을 공부하던 한 연구자는 "나는 데본기를 보면서 이 시기에 식물에서 또 다른 대폭발이 진행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세상이 어떤 모습이었는지에 대해서 우리에게 아무런 개념도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 시기에 세상은 매우 단순한 식물이 있던 곳에서 거대한 숲이 있는 곳으로 바뀌고 있었다."고 말했다. 


지구 역사에서 데본기는 이 세상이 처음으로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계와 비슷한 모습으로 보이기 시작한 시기다. 이 시기에는 처음에는 식물이, 그다음에는 동물이 물에서 뭍으로 대규모 이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헐벗은 채였던 바위에는 초록이 드넓게 덧입혀졌고 오래전에 사라진 늪과 해안의 부드러운 진흙에는 최초의 발자국들이 찍혔다. 공룡 뼈와 달리 식물 화석은 3차원적으로 보존되는 경우가 드물다. 대개 탄소로 이루어진 섬세한 검은색 선으로 된 식물 화석은 암석 속에 납작하게 눌려 있어서 암석에서 분리하기가 불가능하다. 


공룡 멸망에 대한 가설 중 공룡이 운석 충돌 이전부터 쇠퇴하고 있었다는 내용도 있다. 과학자들의 지적에 따르면 백악기 말에 해수면의 높이가 낮아지면서 생긴 서식지의 변화 때문에 공룡 집단 사이에 다양성이 부족해졌을 가능성이 있다. 동물 집단은 다양성이 낮을수록 열정이 더 취약해진다.(241, 242 페이지) 대리암 석판과 기둥을 통해서 우리는 수만 년의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 밝은 색의 광맥은 원래는 석회암이었던 암석의 틈새로 특이한 광물을 잔뜩 머금은 뜨거운 열수가 스며든 자리이다. 대리암의 기질 속에 들어 있는 각양각색의 결정들은 그 암석의 어두운 지하의 열과 압력 속에서 서서히 형성되고 변성되면서 수천 년을 보냈다는 증거이다. 암석에 새겨진 깊은 시간 내 친필 서명인 셈이다.(270 페이지) 


존 에릭 로빈슨(John Eric Robinson; 1929- 2025)는 도시지질학(Urban Geology)의 개척자이다. 화성암인 화강암의 조리에 들어가는 기본 재료는 장석, 석영, 운모이다. 런던의 도로 연석(緣石)은 대부분 화강암으로 만들어진다. 그러나 장식용으로 쓰기 위해 광을 내면 화강암은 갖가지 색을 띤다. 워털루 옆 바닥의 콘월(Cornwall) 화강암은 오트밀 색이, 블랙 프라이어스 다리 북단에 있는 빅토리아 여왕의 동상 좌대를 이루는 에버딘셔의 피터헤드(Peterhead) 화강암은 1970년대 요리 책에 실린 아스픽처럼 짙은 빨간색과 연어 색이 돈다.


캄피 플레이그레이 칼데라를 만든 화산분출 사건인 캄파니아절 응회암 대분출로 인해서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이 지역 고유의 암석인 피페르노가 만들어졌다. 밝은 회색의 화산재가 압축되어 형성된 피페르노 속에는 스코리아(화산에서 튀어나온 현무암질 용암) 또는 피아메라고 알려진 검고 납작한 조각들이 섞여 있다. 단단하고 무거운 피페르노는 가끔은 건물의 외장재로 쓰여서 나폴리의 제수누오보 성당의 으스스하고 요새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웅장한 정문이나 장식용으로 이용된다. 이 돌은 때로 어떤 방향으로 잘렸는지에 따라서 작고 검은 불꽃들처럼 건물 표면에서 깜빡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유기체에 의한 지층의 교란을 의미하는 생물 교란(bioturbation)이라는 말은 흥미롭다. 생물이라는 단어와 섭동(攝動)의 영어 표현인 퍼터베이션(perturbation)을 통합한 단어로 보인다. 저자는 인류세 개념은 인간을 다시 세상의 중심에 가져다 놓는 것이라 말한다. 수백 년 동안 우리의 자리라고 믿은 바로 그 자리로 말이다. 그리고 그 대가가 비록 환경 재앙이라고 해도 우리는 어느 정도는 그런 생각에 끌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297 페이지) 그러나 나는 중심이 뭐 그렇게 대단한가? 묻고 싶다. 더욱 부정적인 중심임에랴. 


본문에 나오는 생명의 대폭발로 유명한 캄브리아기는 생명이 보이는 시기를 의미하는 현생누대(顯生累代)의 첫 시기다. 물론 이는 화석이 남았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저자는 영국을 남동에서 북서로 잇는 즉 이스트앵글리아에서 하일랜드 서부로 이어지는 대각선을 따라서 이동한다면 쌓인 지 얼마 안 되는 이스트앵글리아의 제4기 퇴적층에서부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해서 런던 분지의 고제3기 점토, 노스다운스의 백악기 상부 백악, 코츠월드의 쥐라기 어란석, 페나인 산맥을 둘러싸고 있는 트라이아스기의 사암, 레이크 지방의 오르도비스기와 실루리아기 암석들, 그램피언스 산맥의 캄브리아기 노두를 거쳐서 하일랜드 북서부와 헤브리디스 제도에 있는 가장 오래된 암석들에 이른다고 말한다.(327 페이지) 


[깊은 시간으로부터]는 문학인인 저자가 여러 “대단히 박식하고 너그러운” 전문가들이 시간을 내어 유익한 안내를 해주어서 나온 책이지만 지질학 비전공자가 쓴 책임을 감안하면 놀랍다. 다만 마지막 문장에 언급한 영국을 남동에서 북서로 잇는 대각선 경로에 대해 더 상세하게 풀어주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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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질서와 질서 사이에서 - 한 복잡계 물리학자의 이야기
조르조 파리시 지음, 김현주 옮김, 김범준 감수 / 사이언스북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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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 물리학자 조르주 파리시의 책이다. 저자는 2021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다.(마나베 슈쿠로, 클라우스 하셀만과 공동 수상이다.) 1948년생이니 68세대라 할 수 있다. 책 제목은 ‘질서와 무질서 사이에서‘다. 부제는 ’한 복잡계 물리학자의 이야기‘다. 저자는 지금껏 아무도 답을 찾지 못했다는 사실이 두려움을 주지는 않으며 결국 이전에 아무도 하지 않은 과업을 상상하거나 해결하려 직접 뛰어드는 것이 우리 일이 될 것이라 말한다. 물론 잠긴 문을 여느라 평생을 보낼 수는 없다. 저자의 연구는 다수의 행위자가 상호 작용하는 계의 특성을 파악하는 것이다. 때로 그 대상은 전자, 원자, 스핀, 분자가 될 수 있다. 


많아지면 달라진다(more is different)란 말이 있다. 관건은 미시적 규칙과 거시적 행동 사이의 관계를 파악하는 것이다. 저자는 찌르레기들이 멀리서도 잘 보이는 저녁 시간에 공중 군무를 추는 것은 밤을 보낼 적당한 잠자리가 있다는 그들만의 신호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말한다. 찌르레기들은 겨울을 날 장소에 11월 초에 도착해 이듬해 3월 초에 떠난다.(16 페이지) 찌르레기의 행동에 관한 연구는 분명 생물학자의 영역이지만 개체의 3차원 움직임을 정량적으로 연구하는 것은 물리학자들만 할 수 있는 분석을 필요로 한다. 놀라운 점은 새 떼 가장자리의 밀도가 중심부보다 30 퍼센트 이상 높다는 사실이다. 고립을 피하기 위한 조치일 수 있다. 그래야 사냥당할 위험이 작아진다. 중심의 새들은 가장자리의 새들로부터 이미 보호를 받고 있기에 굳이 가까이 있을 필요가 없다.


저자는 시(詩)에서도 그렇지만 과학에서도 마찬가지로 완성된 결과물에는 창작 과정에서의 노고와 의혹, 망설임은 흔적도 남지 않는다고 말한다. 저자는 가장 가까이 있는 새들 간의 간격은 무리에 따라 매우 다를 수 있다고 말한다. 생물학은 현재 대변혁의 시기를 맞고 있다. 데이터의 양이 계속 증가함에 따라 정량적 방법의 사용이 가능해졌을 뿐만 아니라 꼭 필요한 요소가 되었다. 이러한 방법은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사용될 수 있으며 어떤 내용인지에 따라 상당히 다른 방법이 이용된다. 특히 동물행동학에서 동물의 행태를 연구할 때 수학의 비중이 과도하게 높으면 부정적인 반응이 일어나기 쉽다. 실제로 동물행동학자들은 어떤 행태의 원인을 찾을 때 정량적 방식을 활용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여러 설명 중 하나일 뿐 동물행동 연구의 핵심을 건드리지는 못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수많은 과학 분야의 기본 정신이 세월이 흐르면서 변화했다. 이러한 변화는 어떤 방법론이 과학적이고 중요하며 어떤 방법론이 실제 질문에 답할 수 없으므로 거부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열띤 토론에서 발생한다.


관련해서 양자역학의 창시자 막스 플랑크의 냉소적인 발언을 곱씹어볼 만하다. 그는 과학에서 새로운 진실은 반대 자들을 설득하고 계몽해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그들이 죽고 새로운 개념에 친숙해지는 신세대가 형성되면서 승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저자는 자신은 플랑크보다는 낙관적이라 말한다. 선의가 있고 인내심만 있다면 대부분 공통된 결론에 도달하거나 적어도 일치하지 않는 지점을 밝힐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자신이 어린 학생이던 시절 이론물리학은 논 풀루스 울트라(무상의 존재)로 여겨졌다고 말한다. 저자는 우리는 이제 모두 쿼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안다고 말한다. 쿼크는 접착제 역할을 하는 글루온을 통해 결합되어 있고 양성자와 중성자의 구성 요소이며 쿼크의 특성을 계산하는 양자 색역학이란 이론도 있다. 


저자는 아이디어는 가끔은 부메랑 같아서 처음에는 한 방향으로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다른 곳으로 향할 때가 많다고 말한다. 흥미롭고 비범한 결과를 얻으려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영역에서 응용될 수 있다. 상태를 변화시키기 위해 우리가 계에 공급해야 하는 열의 양을 잠열(潛熱)이라 한다. 실온에서 자기(磁氣)를 띠는 계인 자석은 온도가 증가하면 자성을 잃는다. 전문적으로 표현하면 자석이 강자성(强磁性)에서 상자성(常磁性)으로 전이되는 것이다. 강자성은 외부 자기장이 없는 상태에서도 물질이 자기를 띠는 것을 말하고 상자성은 외부 자기장이 있을 때에는 자기를 띠지만 없을 때에는 자기를 잃는 물질의 성질이다. 거시적 자기장은 계의 입자 하나 하나에 존재하는 스핀이라는 수많은 자기장이 종합되어 나온 것이다. 자석 내 스핀들 사이에 존재하는 상호 작용으로 인해 스핀들이 동일한 방향을 향하게 된다. 작은 화살표들은 수가 아무리 많아도 일제히 같은 방향을 향한다. 자성체에서도 온도 상승으로 상전이가 일어난다. 실제로 자석에 공급되는 열이 스핀의 운동을 증가시키고 그에 따라 스핀이 방향을 바꿀 수 있게 된다. 이때 스핀들은 무질서해지고 정렬 상태를 잃는 성향을 보인다. 거시적 자기장을 생성하는 스핀의 정렬 상태는 온도 상승으로 계속 혼란스러워지다가 결국 완전히 무질서해진다.


보통 물리계는 하나의 상태에만 놓인다. 예를 들어 특정 온도와 압력에서 물은 액체이거나 고체 혹은 기체다. 특별한 경우에는 계가 두 가지 상태 또는 상에 놓일 수 있다. 섭씨 백도에서 물은 액체상과 기체상에 동시에 놓일 수 있다. 또한 물이 동시에 고체, 액체, 기체 상태의 압력과 온도 값도 하나 존재한다. 그 유명한 물의 3중점(triple point)으로 괜히 유명한 게 아니다. 일반적으로 계는 하나의 상에 놓인다. 반면 낮은 온도의 무질서계는 동시에 매우 다양한 상에 놓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질서 맺음 변수가 함수가 된다는 즉 무한한 값의 집합이 된다는 뜻이다. 이를 파악한 것은 물리학에서 진정한 일보 전진이었다. 


합성 모형의 구축과 그 해 덕분에 우리는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던 현상을 알아낼 수 있었다. 우리는 무질서의 세계로 향하는 문을 활짝 열었다. 물리학적 해석에서 시작해 수학으로 해석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렇게 수학으로 증명하기까지 20년 넘는 세월이 흘렀고 프란체스코 게라를 비롯한 협력자들의 연구가 문제의 열쇠를 찾는 핵심이 되었다. 증명에 사용된 문구가 단순하다는 점이 정말 놀라웠는데 돌이켜보면 모든 길이 명확했던 것 같다. 스핀 유리와 마찬가지로 실제 유리도 무질서계다. 무질서한 이유는 유리가 규소만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다양한 크기와 유형을 지닌 수많은 분자로 이루어진 불순물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정이 되려면 규칙적인 구조가 필요하므로 불순물을 많이 함유한 유리는 결정이 아니다. 앞에서 본 것처럼 스핀 유리라고 하는 금속 합금의 무질서는 합금 내부에 있는 철 원자들의 배치가 무작위적이기 때문이다. 금속이 액체 상태일 때 철 원자들은 합금속에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지만 냉각될수록 점점 움직일 수 없게 되고 임의의 위치에 갇히게 된다. 


우리가 실제 과정을 구체적으로 파악해보려 노력중인 지금으로서는 이 전부가 지독하게 복잡하게 보인다. 하지만 언젠가 연구가 끝나면 간단한 것으로 밝혀질 수 있다. 책으로 물리학 이론이나 수학 정리를 공부할 때에는 모든 것이 명확해 보인다. 결과를 얻기 위해 필요했던 복잡한 작업과 고군분투는 깨끗이 생략되고 결과만 보여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해결해야 또 다른 흥미로운 문제는 스핀 유리 모형 같은 도식적 모형을 더 현실적인 모형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예컨대 스핀 사이에 작용하는 힘을 스핀 사이의 거리를 염두에 두며 최대한 상세하게 설명하는 모형을 만드는 것이다. 상전이는 분명한 공간적 위치가 주어진 많은 구성요소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 일어난다. 이전에 논의된 간략화한 모형에서는 고려되지 않는 내용이다. 


유리나 왁스와 같은 무질서계의 경우 평형 상태에 도달하기까지 소요되는 시간이 대체로 아주 길다. 수년 혹은 수세기가 걸릴 수도 있다. 평형 상태에 도달하는 시간이 아주 긴 것은 강도를 높이기 위해 산업기술이 사용된 우리 집 창문 유리도 마찬가지다. 실제 세상은 무질서하고 현실에서 일어나는 많은 현상들은 서로 상호작용하는 수많은 구성요소를 통해 설명할 수 있다. 구성요소 사이의 상호작용은 간단한 규칙의 형태로 표시할 수 있지만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지는 전체가 보여주는 집단행동의 결과는 정말 예측하기 어렵다. 기본적 행위자는 스핀이나 원자, 분자, 신경세포, 일반 세포이지만 웹사이트나 주식 중개인, 주식과 채권, 사람, 동물, 생태계 구성요소 등도 포함된다. 


모든 기본적 행위자 간의 상호작용에서 무질서계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무질서는 어떤 기본적 행위자가 다른 행위자들과 다른 방식으로 행동한다는 사실에서 온다. 역방향으로 정렬하는 스핀도 있고 대다수의 원자와 다르게 움직이는 원자도 있으며 다른 사람이 사는 주식을 파는 금융투자자도 있고 저녁 식사에 초대받았지만 누군가 다른 손님에게 반감을 품고 멀리 떨어져 있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자연을 조사하는 아주 강력한 수단 즉 현상을 단순화하는 방법을 처음으로 찾은 사람은 갈릴레오 갈릴레이였다. 그는 마찰을 완전히 무시하는 이론을 세웠는데 마찰이 없는 세상에서 우리는 걸을 수도 먹을 수도 없다. 현대 물리학을 열어젖힌 갈릴레오의 세상은 현실 세계와는 완전히 다르다. 이후 수 세기가 지나면서 현실을 더욱 충실하게 설명하기 위해 다른 요소들이 추가되었고 지금은 현실과 매우 근접한 수준에 이르렀다. 


인간은 물리 현상을 본질적인 것으로 전환시키는 능력에서 출발해 지난 수세기 동안 물리학을 발전시켰다. 이제 물리학은 갈릴레오가 제외할 수밖에 없었던 복잡성과 무질서를 다시 모형에 도입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고 풍요로워졌다. 예술이나 다른 많은 인간 활동과 마찬가지로 과학에서도 처음에는 직관으로 시작하고 확실성은 나중에 얻게 된다. 직관은 상당히 중요하다. 우리가 사용하는 직관이라는 도구는 형식 논리보다 훨씬 뛰어나고 과학적 진보의 기초가 된 직관적 추론을 조사하는 일은 정말 흥미롭다. 동일한 역사적 시기에 서로 다른 학문 사이에서 이미지나 개념을 전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은유가 그러하다. 


통계학(statistics)은 국가(state)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시작된 과학이다. 19세기의 여러 경제학자와 사회학자 특히 벨기에의 아돌프 케틀레 같은 학자들이 통계학과 확률 계산에 매우 중요한 공헌을 했다. 한편 19세기 후반에는 제임스 클라크 맥스웰과 루트비히 볼츠만이 집단행동을 파악하기 위한 목적으로 완전히 독립된 방식으로 물리학에 확률과 통계학을 도입했다. 비슷한 시기에 찰스 다윈의 자연선택 메커니즘이 공식화되었는데 유전 형질이 무작위로 변화하고 그 형질이 선택되면 후손에게 전달된다는 식으로 요약할 수 있다. 다윈에게 진화론의 핵심은 서로 다른 다양한 가능성 중에 선택이라는 개념이었다. 저자는 문화가 DNA로 전달된다는 생각은 진화 이론의 기본 원리와 충돌한다고 지적한다. 


참이 아닌 가정으로 출발하면 참이 아닌 결론에 도달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가정이 잘못되었으나 잘 감춰져 있어 구분하기 쉽지않고 그 결과 역시 거짓이나 정리의 귀결인지라 참인 것처럼 과시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누구나 아이디어가 어디에서 출발했는지는 알지만 어디에 도착할지는 모를 때가 있다는 말을 한다. 저자는 아이디어라는 것은 예상할 수 없어 놀랍고 절대로 사소하지 않은 생각이라고 생각한다. 말을 통해 생각을 형식화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말은 강한 힘을 지니고 있고 단어들은 서로 연결되어 서로를 끌어당긴다. 기본적으로 수학의 알고리듬과 같은 기능을 갖는 것이다. 알고리듬이 거의 혼자서 수학 추론을 이끌어가는 것처럼 말에도 생명력이 있어 다른 말을 끌어내 우리로 하여금 추론을 하고 형식적 논리를 사용하게 해준다. 아마 생각을 의식적으로 언어로 형식화하는 작업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을 기억하는데도 유용할 것이다. 우리가 말을 통해 생각을 형식화하지 않는다면 기억하기 훨씬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비언어적 사고가 언어적 사고보다 선행되어야 한다. 생각이 역사적으로 언어보다 훨씬 더 오래된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상할 것도 없다. 인간의 언어는 수만 년의 역사가 있는데 인간이 언어가 생기기 전에 생각하지 않았으리라 믿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나는 이 부분에서 저자의 견해에 반대한다. 언어가 없으면 생각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물리학에도 직관이 있다. 갈릴레오가 대표 사례다. 그는 천상계와 지상계가 유사하며 양쪽에 같은 법칙을 사용할 수 있다는 위대한 직관이 있었다. 물리적 직관은 이후에도 근본적인 역할을 했고 특히 20세기 초 양자역학이 탄생하는 시기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양자역학은 물리학의 대모험 중 하나였고 충분히 1930년까지 플랑크나 아인슈타인, 보어,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폴 디랙, 파울리, 페르미 등 저명한 과학자들이 참가했다. 당시 물리학자들이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 상당히 많이 관찰되었다. 누가 봐도 이상하고 모순되는 현상이었다. 예를 들어 흑체복사가 그렇다. 과학자들이 무능해서가 아니라 당시까지 발견되지 않았던 양자역학을 통해서만 설명 가능한 현상들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의 논리적 귀결은 무엇이었을까? 양자역학을 발명하고 그에 대한 타당한 설명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역사는 완전히 다른 길을 따라 갔다. 아직 밝혀내지 못한 부분이 존재하나 다음 논문에서 밝혀내겠다는 전형적인 방식을 따라 잘 알려지지 않은 구성요소 중 일부가 실제로는 고전 역학과 양립할 수 없는 기괴한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가정함으로써 고전 모형에서 양자 현상을 설명하려는 시도가 다양하게 이루어졌다. 1900년 플랑크의 논문 이후 모순된 기여가 많이 있었고 그 중 일부는 솔직히 말해 잘못된 것이었다. 아무튼 그 연구들은 고전 역학에서 양자 현상을 정당화하려는 불가능한 시도였기 때문이다. 


플랑크는 흑체복사를 설명하기 위해 빛이 고전 물리학의 일반 원리와 전혀 양립되지 않는 정확히 양자적 특성을 가진 진동자와 상호작용한다고 가정했다. 그러나 그는 고전 물리학과의 호환성이 존재하지 않는 자신만의 길을 향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인상적인 점은 플랑크가 제시한 설명 가운데 일부가 어떻게 정확할 수 있었는지였다. 그의 물리적 직관은 매우 강력했다. 고전역학의 관습에 머물러 있으면서 양자 현상을 어느 정도 설명했고 고전 역학과 실제 관찰된 현상간의 모순은 점점 더 커져갔다. 결국 모순이 너무 많아지면서 새로운 양자역학의 여러 측면을 예감하게 했다. 예를 들어 1913년에 나온 보어의 이론에서는 수소 원자 주위를 도는 단 하나의 전자가 특정 조건을 충족하는 한정된 궤도에만 있다고 가정하면 수소가 방출하는 빛의 스펙트럼 선을 간단하게 계산할 수 있었다. 


이 가설은 고전역학의 지지를 받지는 못했지만 10년 후 새로운 역학의 출현이 시급하다는 인식이 부상했을 때 양자역학 구축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다. 엄청나게 고민한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진전을 이루는 데 사소한 정보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있다. 가령 아인슈타인은 1907년 중력을 가지고 이 궁리, 저 궁리를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직관이 떠올랐다고 한다. 자유낙하를 할 때 중력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우리 주위의 중력이 사라지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중력은 기준 좌표계에 따라 달라지고 기준 좌표계를 적절하게 선택하면 적어도 국소적으로라도 중력을 없앨 수 있다고 말이다. 아인슈타인은 아마도 이러한 관찰에서 출발해 당대의 가장 심오하고 가장 앞선 물리학 이론인 일반 상대성 이론을 구축할 수 있었다.


아인슈타인이 이러한 직관을 갖게 된 것은 이상한 일화 때문이었다고 전해진다. 진짜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사실이 아니라 해도 적절한 일화인 것 같다. 한 도장공이 아인슈타인의 집을 칠하다가 3층 발판 위에 의자를 놓고 앉아서 작업을 했다. 어느 날 도장공이 몸을 너무 많이 내밀었다가 균형을 잃고 의자에 앉은 채로 떨어졌는데 다행히 뼈만 조금 부러졌다. 며칠 후 아인슈타인이 이웃과 이야기하다가 이런 의문이 들었다. 불쌍한 도장공이 떨어지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이웃은 제가 이야기를 해봤는데 떨어지는 동안 의자에 기대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고 중력이 없어진 것 같았대요라고 대답했다. 이때 아인슈타인은 도장공의 느낌을 포착했고 곧바로 일반 상대성 이론을 형식화하러 달려갔다. 중력 이론의 기원이 항상 추락하는 그 무엇 즉 뉴턴에게는 사과, 아인슈타인에게는 도장공과 관련이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저자의 친구인 아우렐리오 그릴로는 물리학자가 되기란 고되고 힘들지만 일하는 것보다야 훨씬 낫지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고 한다. 그러나 보통 과학자는 항상 먹고사는 문제를 안고 있고 과학도 기본적으로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용된다.(153 페이지) 저자는 수학을 잘 모르고 과학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도 어려운 과학의 아름다움을 이해하게 할 수 있다고 말한다.(160 페이지) 이 책에서 내 수준에서 흥미롭게 다가온 것은 물의 삼중점 이야기, 유리 이야기, 아인슈타인과 도장공 이야기 등이다. 수학을 잘 모르고 과학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도 어려운 과학의 아름다움을 이해하게 할 수 있다는 말이 힘을 준다. 동시에 부담도 된다. 공부를 해야 한다. 지나친 앞서감인지 모르나 물의 삼중점 즉 고체, 액체, 기체가 공존하는 상태와 기독교의 삼위일체를 같은 맥락으로 볼 여지도 있을까?란 생각을 한다. 러셀 스테나드가 파동-입자 이중성을 논하며 신이며 인간인 예수를 설명한 것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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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물리학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 이 세상을 이해하는 가장 정확한 관점
    짐 알칼릴리 지음, 김성훈 옮김 / 윌북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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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짐 알칼릴리의 ‘어떻게 물리학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는 제한된 경험이지만 내가 읽은 어떤 물리학 책들보다 인상적인 책으로 꼽을 만하다. 저자는 이라크인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이론물리학자다. 저자는 물리학 만큼 광범위한 척도를 다루는 과학은 없다고 말한다. 가령 물리학은 전자현미경을 통해 직경이 수천만 분의 1mm에 지나지 않는 개별 원자도 볼 수 있고, 거대한 망원경을 통해 465억년 광년 떨어진 관측 가능한 우주의 가장 먼 가장자리까지 볼 수 있다. 물론 길이의 척도만이 아니라 물리학이 다루는 찰나의 순간에서 영겁의 시간에 이르는 시간의 척도 또한 광범위하기 그지 없다. 


      이해가 안 된다고 포기할 필요는 없다, 어떤 주제에 대해 심오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헌신적으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그 지식을 얻은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한('과학의 기쁨' 참고) 바 있는 저자는 이번 책을 통해 모든 물질을 이루는 세 가지 소립자와 현대 물리학의 세 가지 기둥을 논했다. 세 가지 소립자란 업 쿼크, 다운 쿼크, 전자를 말한다.(나머지는 모두 세부 사항이다.) 현대 물리학의 세 가지 기둥이란 상대성이론, 양자역학, 열역학이다. 저자에 의하면 시간과 공간은 캔버스이고, 물질과 에너지는 우주를 구성하는 재료다. 


      저자는 지구과학과 관련해서도 상당히 흥미로운 물리학 내용을 논한다. 중력장 이야기이다. 중력장이 강할수록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이 때문에 지구의 핵 즉 지구의 중력 우물(gravitational well) 깊은 곳에서는 지구 표면보다 시간이 살짝 느리게 흐르는 이상한 현상이 생긴다. 우리 지구가 존재한 후로 45억년의 세월 동안 이런 시간 차이가 축적되어 왔다. 그래서 지구의 핵은 지각보다 2년 반 정도 더 젊다. 지구의 역사가 60년 지날 때마다 지구의 핵은 지각보다 나이를 1초씩 덜 먹는다. 이 수치는 일반상대성이론에서 나온 공식을 이용해 계산한 것이다.(54 페이지) 이것을 실험적으로 확인할 방법은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이 공식에 대한 믿음이 워낙 두텁기 때문에 물리학자 중 그 진실성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지구에 구멍을 뚫고 들어가 그 중심부에 도달하면 더 이상 중력의 영향을 느낄 수 없다. 그곳에서는 지구가 모든 방향에서 동일한 힘으로 끌어당겨서 자신의 무게를 느낄 수 없다. 


      하지만 중력이 시간에 미치는 영향은 지구 중심의 중력 때문이 아니라(그곳에서는 중력이 0이다.) 그곳의 중력 퍼텐셜 때문에 생긴다. 중력 퍼텐셜이란 그 장소로부터 한 물체를 지구의 중력에서 완전히 벗어난 곳으로 끌어내는 데 필요한 에너지의 양을 말한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에 의하면 물질과 에너지가 중력장을 만든다. 시공간이란 이 중력장의 구조적 특성에 지나지 않는다. 시공간 안에 무엇인가가 들어 있지 않으면 중력장이 존재하지 않고 따라서 시간이나 공간도 존재하지 않는다. 물질의 존재만으로 창조되는 중력장은 시간과 공간 안에서 중력이 영향을 미치는 영역 이상의 존재다. 시공간 자체다. 


      아인슈타인에 의하면 시공간은 장의 구조적 특성이다. 중력장은 휘어지고 늘어나고 물결칠 수 있다. 장(field)이란 어떤 형태의 에너지나 영향력을 담은 공간이다. 자기장은 공간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다. 느슨하게 말해 에너지는 둘로 나뉜다. 쓸모 있는 에너지와 쓸모 없는 에너지다. 아인슈타인의 질량 에너지 등가 이론에 의하면 질량은 얼어 있는 에너지라 할 수 있다. 광속의 제곱은 대단히 큰 수이기 때문에 아주 작은 질량이라도 막대한 양의 에너지로의 변환이 가능하고 역으로 막대한 양의 에너지를 투입해도 아주 작은 질량만을 얻을 수 있다. 이런 시각도 새롭다. 역으로 말하는 것을 처음 접한다. 


      물리학의 개념을 관계적으로 보는 법을 배울 수 있다는 점이 이 책의 장점이다. 우선 음파(音波) 이야기를 보자. 음파의 속도는 진동하는 공기 분자가 음파를 얼마나 빨리 전송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차가 속도를 올려본들 음파가 더 빨리 도달하지는 않는다. 대신 음파가 압축되면서 파장이 짧아져 음높이가 올라간다. 이것이 도플러 효과로 잘 알려진 현상이다. 차가 멀어질 때는 음파가 점점 더 먼 곳에서 방출되기 때문에 우리(관찰자)에게 도달하는 음파의 길이도 늘어나서 음높이가 낮아진다. 차가 속도를 올려본들 음파가 더 빨리 도달하지는 않는 대신 음파가 압축되면서 파장이 짧아져 음높이가 올라간다는 설명은 어디에서도 듣기 어려운 설명이다. 


      이런 예는 또 있다. 빛의 파장 이야기다. 빅뱅 이후 37만 8000년 후에 마이크로파 우주배경복사가 기원했다. 공간이 팽창하면서 충분히 냉각된 덕분에 양전하를 띤 양성자(수소 원자핵)와 알파입자(헬륨 원자핵)가 전자를 포획해서 수소와 헬륨 원자를 이룰 수 있었다. 그 전에는 전자의 에너지가 너무 넘쳐서 양성자와 알파입자에 달라붙지 못했다. 그래서 중성의 원자를 형성하지 못했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빛의 입자인 광자가 이런 전하를 띤 입자들과 부딪혀 상호작용하는 바람에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었고 공간 전체가 안개 속에서 뿌옇게 빛나는 것 같았다. 


      우주가 충분히 냉각되어 원자가 형성되자 공간이 투명해지면서 광자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그 후 이 빛은 모든 방향으로 우주를 가로지르며 움직였다. 최초의 빛은 공간이 팽창하면서 에너지를 계속 잃어왔지만 속도는 느려지지 않았다. 빛은 언제나 일정 속도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대신 빛은 자신이 통과하는 공간이 팽창하는 바람에 파장이 늘어났다. 그래서 수십억 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더 이상 전자기 스펙트럼의 가시광선 영역에 들어가지 못하고 마이크로파의 형태로 존재한다. 천문학자들은 이 마이크로파 복사를 측정해서 이것이 절대 영도(-273.15도씨)보다 약 3도씨 높은 우주 깊은 곳의 온도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공간이 팽창하면 그 공간을 지나는 빛의 파장도 함께 늘어난다. 


      설명이 길었지만 빛이 에너지를 잃는다고 속도가 줄지는 않고 대신 공간이 팽창함에 따라 파장이 길어진다는 내용이 도출(설명)된 점이 획기적이라 할 만하다. 그 이전에 마이크로파 우주배경복사 이야기가 배치된 것을 알 수 있다. 정리하면 차가 속도를 올려본들 음파가 더 빨리 도달하지는 않는 대신 음파가 압축되면서 파장이 짧아져 음높이가 올라가고, 빛이 에너지를 잃는다고 속도가 줄지는 않고 대신 공간이 팽창함에 따라 파장이 길어진다. 


      마이크로파 우주배경복사는 빅뱅 이후 37만 8000만년이 지난 시점에 생긴 것이다. 정리하면 전자의 에너지가 너무 넘쳐서 양성자와 알파입자에 달라붙지 못해 중성의 원자를 형성하지 못하는 바람에 빛의 입자인 광자가 이런 전하를 띤 입자들과 부딪혀 상호작용하게 됨으로써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었고 공간 전체가 안개 속에서 뿌옇게 빛나는 것 같다가 우주가 충분히 냉각되어 원자가 형성되자 공간이 투명해지면서 광자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이다. 그 후 이 빛은 모든 방향으로 우주를 가로지르며 움직였다. 


      빅뱅이 있고 몇 분 후에는 양성자의 융합으로 헬륨과 소량의 리튬이 만들어질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됐다. 우주가 거기서 더 냉각되자 가벼운 원소가 융합해서 더 무거운 원자핵을 만들 수 있는 문턱값 아래로 온도와 압력이 떨어졌다. 핵융합이 일어나려면 융합하는 원자핵이 양전하간의 반발력을 극복할 수 있을 정도로 에너지가 강해야 하는데 물질의 밀도와 온도가 어느 아래로 떨어지면 그런 강한 에너지가 나오지 않는다. 재결합의 시대가 지나고 잠시 후에 원자들이 중력의 영향으로 뭉치기 시작했다. 여기서는 암흑물질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리하여 원시가스 구름 즉 원시 은하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 안에 있던 밀도가 더 높은 가스 덩어리는 중력에 의해 훨씬 극적으로 뭉쳐졌다. 그 과정에서 핵융합 과정이 다시 시작될 수 있을 정도로 가스가 가열됐다. 


      이렇게 항성이 점화되었고 그 안에서 일어난 핵반응으로 탄소, 산소, 질소 외에 오늘날 지구에 존재하는 다른 많은 새로운 원소가 만들어졌다. 항성 내부의 조건이 뜨겁고 극단적일수록 핵합성 과정도 더 높은 단계까지 일어나 은, 금, 납, 우라늄 같이 더 무거운 원소가 형성될 수 있었다. 항성이 삶의 마지막 격렬한 순간에 가야만 그 내부가 더 무거운 원소를 만드는 데 필요한 온도와 밀도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단계에 가면 항성의 내부는 고밀도로 압축되고 그와 동시에 바깥층은 격하게 떨어져 나간다. 


      빛은 어떻고 전자는 어떤가. 빛은 파동과 입자의 성질을 모두 지니고 있다.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또 그것을 탐구하기 위해 어떤 실험을 하느냐에 따라 성질이 다르게 드러난다. 이중적 속성을 갖는 것은 빛뿐이 아니다. 전자 같은 물질의 입자도 파동의 속성을 나타낼 수 있다. 전자가 동시에 입자이면서 파동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입자 같은 속성을 검증하려는 실험을 하면 실제로 입자처럼 운동하고, 파동 같은 속성을 갖는지 검증하는 실험을 하면 파동처럼 운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의미다. 다만 전자의 파동 같은 속성과 입자 같은 속성을 동시에 보여줄 수 있는 실험은 불가능하다. 


      양자역학은 이런 실험의 결과를 올바르게 예측해 주지만 전자의 본질이 무엇인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그저 전자의 본질을 입증하기 위해 어떤 실험을 수행했을 때 무엇을 보게 될 것인지만 말해줄 뿐이다. 저자는 물리학 교과서에 나와 있는 바와 달리 양자역학의 형식주의는 전자가 동시에 정확한 위치와 정확한 속도를 가질 수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다만 우리가 양쪽 성질을 동시에 알 수 없다고만 말하고 있다. 흔히 오해하는 부분이 또 있다. 인간의 의식이 양자역학에서 분명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의식이 양자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거나 심지어 우리가 측정할 때 비로소 그 대상이 존재하게 된다는 등의 주장이다. 


      저자에 의하면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우리 우주에는 양자수준의 기본 구성요소에 이르는 모든 것이 지구의 생명이 탄생하기 전부터 존재해왔다. 인간이 등장해서 측정을 통해 실재하게 해줄 때까지 존재와 비존재 사이에 어중간한 상태 상태에서 기다리고 있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파동함수는 공간 속 하나 이상의 지점에서 값을 갖는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우리가 전자를 측정하지 않을 때 전자 자체가 물리 공간에 퍼져 있다고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양자역학은 우리가 바라보지 않았을 때 전자가 어떻게 운동하는지 말해주지 않는다. 우리가 바라보았을 때 무엇을 보게 될지만을 말해준다. 인상적인 말은 전자의 파동 같은 속성과 입자 같은 속성을 동시에 보여줄 수 있는 실험은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양자역학은 이런 실험의 결과를 올바르게 예측해 주지만 전자의 본질이 무엇인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그저 전자의 본질을 입증하기 위해 어떤 실험을 수행했을 때 무엇을 보게 될 것인지만 말해줄 뿐이다. 우리에게 연속적인 것으로 익숙한 많은 물리적 속성이 아원자 척도까지 들어가 보면 사실은 불연속적이다. 원자에 묶여 있는 전자들은 불연속적인 특정 에너지 값들만 가질 수 있다. 이 불연속적인 값 사이의 에너지는 절대 가질 수 없다는 점에서 양자화되어 있다. 이런 특성이 없었다면 전자가 핵 주변 궤도를 도는 동안 계속해서 에너지가 새어 나갔을 것이다. 그러면 원자가 불안정해져서 생명을 비롯한 복잡한 물질도 존재할 수 없었다. 양자역학 이전의 19세기 전자기론을 그대로 따른다면 음전하를 띤 전자는 양전하를 띤 원자핵을 향해 나선을 그리며 추락해야 한다. 하지만 전자의 에너지 상태가 양자화된 덕분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어떤 양자 규칙은 전자가 어느 에너지 상태를 차지하고 원자 안에서 어떻게 배열될지도 정해준다. 이렇듯 양자역학 규칙들은 원자들이 어떻게 결합해서 분자를 이루는지도 규정하기 때문에 양자역학이야말로 모든 화학의 토대로 할 수 있다. 전자는 올바른 양의 에너지를 방출하거나 흡수함으로써 에너지 상태 사이를 뛰어넘을 수 있다. 두 상태 사이의 에너지 차이와 정확히 같은 값의 전자기 에너지 양자(광자)를 방출함으로써 더 낮은 상태로 뛰어 내려올 수 있다. 마찬가지로 적절한 에너지를 가진 광자를 흡수함으로써 높은 에너지 상태로 뛰어올라갈 수도 있다. 여기서 알게 되는 사실은 전자가 고전역학의 전자기론과 달리 양자역학적 의미에서 특정 궤도만을 가짐에 따라 우리의 오늘이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를 항성의 저(低) 엔트로피 관점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항성은 열적평형에 도달한 계가 아니기 때문에 저(低) 엔트로피의 저장소이다. 그래서 그 안에서 일어나는 열핵융합(수소가 헬륨으로 변함) 반응이 열과 빛의 형태로 과잉 에너지를 분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물리학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실재를 가장 심오하고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이라 말한다.(192 페이지) 


      이제 앞에서 말한 암흑물질에 대해 이런 말을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발견한 것을 모두 합쳐도 겨우 우주의 5%를 구성하는 데 그친다. 나머지 95%는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가 차지한다. 전자기력 영향을 받지 않고 빛을 내지도 않고 중력을 통하지 않고는 보통 물질과 상호작용하지도 않는다.” 암흑물질이 없었다면 대부분의 은하가 애초에 형성될 수 없었다. 한편 중력을 거슬러 우주를 점점 더 빨리 늘어나게 하는 수수께끼의 척력을 암흑에너지라 한다. 


      저자는 물리학자와 공학자를 비교한다. 두 학문 사이의 경계는 희미하지만 차이는 명백하다. 물리학자는 자연의 작동 방식을 지배하는 밑바탕 원리를 드러내기 위해 “어째서”, “어떻게?”라는 질문을 던지는 반면 공학자는 대개 이런 데는 큰 관심이 없고 자신이 이해하고 있는 바를 실제로 활용해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에 관심을 쏟는다. 가령 기초 물리학 분야에서 나온 지식이 없었다면 나올 수 없었다는 GPS는 어떤가. 위성에 탑재하는 원자시계는 대단히 정교한데도 중력의 효과로 매일 4/100,000초씩 빨라진다. 따라서 그보다 느린 지상의 시계와 맞추려면 일부러 시간을 늦춰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위성시계의 시간이 빨라지면서 우리의 GPS 위치가 매일 10km 넘게 어긋나게 된다. 


      이것이 제대로 작동하는 이유는 공학자들이 원자 진동의 양자적 속성을 고려하며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설명하는 시간 흐름의 속도에 맞추어 상대론적으로 보정(補正)하기 때문이다. 물리학과 공학이 만나 세상을 바꾸어놓은 기술적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저자는 판구조론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물론 상대성이론, 양자역학, 빅뱅이론, 다윈의 진화론, 질병의 세균 유래설 등과 함께다. 즉 이들은 모두 엄격한 검증을 거쳐 최선의 설명으로 등장한 가장 성공적인 과학이론들이다. 


      저자에 의하면 성공적인 이론은 세상을 설명할 힘이 있고 뒷받침하는 증거가 있고 검증 가능한 예측을 내놓을 수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반증가능성에 열려 있다. 오늘날 기초물리학 분야에는 실험을 통하지 않고 머리로만 생각해낸 사변적인 이론들이 많다. 끈이론, 고리양자중력, 블랙홀 엔트로피, 다중우주이론 등이다. 이런 것들은 적어도 현재로서는 실험적 검증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전 세계 수천 명의 이론물리학자들이 이런 주제로 맹렬하게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저자는 이런 어둠 속의 과학자들에게 너무 냉혹하게 구는 것은 과학이론 역사에 대한 몰이해와 상상력 결핍을 방증한다고 말한다.(286 페이지) 


      가령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을 만들었을 때 그것이 후에 정교한 GPS를 만드는 데 사용될 줄 몰랐다. 맥스웰의 경우 전기장과 자기장에 관한 방정식들을 만들고 거기에서 빛의 파동 방정식을 이끌어내리라고는 다른 사람들은 물론이고 자신도 (꿈에도) 몰랐다. 스마트폰은 여러 경이로운 기술을 집약한 결정체로 양자역학의 선구자들이 내놓은 추상적인 추측이 없었다면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저자는 물리학 지식은 아직 설명되지 않은 거대한 바다에 둘러싸인 섬과 같다고 말한다. 저자 개인의 두 가지 점이 반갑게 다가왔다는 점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는 실증주의에 대한 생각이다. 실증주의는 일부 현상을 더 잘 이해하고 새로운 기술을 발전시키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진정한 이해를 도와주지는 않기에 과학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실재론의 관점을 갖는다. 이는 닐스 보어의 입장과 상반되는 부분이다. 실재론이란 인식 대상이 주관과 독립해서 객관적으로 존재한다고 믿는 견해를 말한다. 보어는 물리학은 자연의 본질이나 현상의 정수가 아닌 자연에 대한 우리의 견해 즉 경험 측면에만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하나는 대중과학 서적에 매번 등장하는 흔한 비교나 비유는 피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이는 글을 쓰는 사람이 두루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이다. 개인적인 이야기이지만 책을 빌려 읽던 중 반드시 소장하고 시간 날 때마다 펼쳐 보아야 할 책이라는 생각에 책을 주문했다. 저자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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