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심연 - 깊은 바다에 숨겨진 생물들, 지구, 인간에 관하여
헬렌 스케일스 지음, 조은영 옮김 / 시공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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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 스케일스(Helen Scales) 박사는 심해를 탐사하고 연구하는 해양생물학자다. BBC 라디오 등에서 해양 관련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캠브리지 대학교에서 해양생물학 및 과학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스케일스는 펠리컨호라는 선박을 이용해 항해한 뒤 원격조종 무인잠수정(ROV)을 이용해 심해를 탐사했다. 스케일스는 지금은 명실상부한 심해 탐사의 황금기라 말한다. 그에 의하면 심해 연구는 지구상에서 생명에 대한 개념 자체를 바꾸고 가능한 것의 법칙을 다시 쓰고 있다.

헬렌 스케일스는 해저 채굴 산업이 망가지기 쉬운 심해 생태계를 쓸어버리고 언젠가는 지구의 가장 큰 생태 발자국을 보란 듯이 남길 것이라 우려 한다. 저자는 심해는 너무 특별하고 소중해서 함부로 손 대지 말아야 하는 장소라고 말한다. 책의 원제는 [The Brilliant Abyss]이고 번역본의 제목도 [찬란한 심연]이다. 책은 전체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탐험, 2부 의존, 3부 착취, 4부 보존이다.

바다의 평균 수심은 4000m 남짓이다. 수심 1000m 아래에서는 아예 빛이 들지 않는다. 저자는 지질에 대해서도 상세히 설명한다. 가령 지각판을, 지구의 가장 바깥쪽 단단한 지각층이 이루는 거대한 직소 퍼즐 조각이 그 아래의 점성이 있는 맨틀 위를 미끄러지듯 이동하는 것이라 설명(28 페이지)하는 것은 그 한 예이다. 2019년에 업데이트된 해저 지질도에 의하면 심해에는 과거에 추정한 것보다 30%나 많은 진흙이 깔려 있다. 이 퇴적물은 육지에서 강물에 씻기고 빙하에 뜯기고 바람에 쓸려 침식된 바위 부스러기, 해수면에서 쏟아져 내려 바다 밑바닥에 자리 잡은 미세한 플랑크톤의 사체가 뒤섞인 것이다.(29 페이지)

심해의 해저면, 심해 평원, 해산, 해저 협곡, 해구 그리고 그 위의 물로 이루어진 방대한 지역이 지구에서 가장 큰 단일 생활권을 구성한다. 지구 생물권의 95% 이상이 심해로 이루어졌다. 해산은 열점과 관계가 깊다. 심해의 생물 다양성은 우리에게 익숙한 얕은 바다는 물론이고 육상 생물과 견줄 정도로 풍부하다. 심해는 시끄러운 곳이다. 해군의 수중 음파탐사기와 해저에서 석유와 천연가스를 찾는 지진파탐사의 굉음이 들린다.(72 페이지) 해저 지도화를 위해 이용하는 ping 신호도 소음을 낸다.

심해에는 발광 동물이 많다. 넓은 바다에서 찍은 영상에 식별할 수 있는 동물만 35만 마리 이상이 나오는데 빛을 만드는 것과 만들지 않는 것의 두 집단으로 나뉜다.(110 페이지) 몸속에서 발광성 화학물질을 혼합하거나 아예 몸 안에 발광 세균이 살게 해서 빛을 내는 것은 광활하고 굶주린 심해의 중층수에서 살아남기 위해 진화한 중요한 기술이다. 심해의 어둠에 사는 물고기는 시력이 극도로 진화해 생물 발광을 감지할 수 있다. 다양한 빛의 파장에 적응한 수십 개의 광색소가 망막을 채운 덕분에 민감해진 눈으로 다른 동물의 희미한 섬광을 보는 것은 물론이고 색깔까지 구분할 수 있다.(113 페이지)

심해의 동물은 태양이 없는 암흑의 영역에서 살면서 빛을 만들뿐 아니라 심해보다 어두운 그림자로 숨는 법까지 마련하는 등 극도로 진화한 존재들이다. 열수구는 지구 전역에서 지각판 가장자리를 따라 연속해서 이어진 중앙 해령에서 형성된다. 해저 화산이 해구를 따라 호를 그리며 배열된 섭입대는 물론이고 지각판 한복판에 자리 잡은 해산의 사면과 정상부에서도 형성된다. 이 화산지대의 마그마 굄이 맨틀에서 해양 지각으로 밀어 올려지면 바닷물이 해저면의 균열을 통해 마그마 굄의 깊이에 따라 최대 4800m 아래까지 스며든다.

그 물이, 엄청나게 뜨거운 용융 암석에 도달하면 물은 과가열(過加熱)된 후 떠올라 지각 깊숙이 생긴 균열을 통해 위쪽으로 흐른다. 위로 올라오는 도중에 물은 주위 암석과 반응해 용해된 광물과 금속을 끌고 간다. 그 바람에 화학 조성이 크게 달라지면서 이 순환하는 바닷물은 열수 유체가 되고 위로 솟구쳐 올라 마침내 해저면에서 폭발적으로 분출한다. 일반적으로 열수구에서는 수백 도에 이르는 액체를 방출한다. 다만 심해의 엄청난 압력 때문에 물이 끓어올라 기체가 되지는 않는다.(119 페이지)

열수구에서 배출된 물이 차가운 바닷물과 충돌하면 녹아 있던 광물과 금속 일부가 석출(析出; precipitation)되어 고체화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첨탑과 굴뚝을 생성한다. 빠르게는 하루에 30cm씩 쌓인다. 석출이란 액체에 녹아 있던 용질이 온도가 낮아지거나 용매가 증발함에 따라 더 이상 녹지 못하고 고체가 되어 결정 형태로 분리되어 나오는 것을 말한다. 견딜 수 없을 만큼 뜨겁고 강산성이고 유독한 화학물질이 나오고 수압이 극한으로 높은 열수구에 생명체가 번성하고 있다.

이들은 화학합성을 한다. 화학합성은 열수구에서 쏟아지는 메테인과 황화수소를 이용해 생존하는 각종 미생물이 수용하는 과정이다. 폼페이 벌레의 경우를 보자. 해저의 지옥불에 맞서는 폼페이 벌레의 저항력은 유전자에 새겨진 분자 변형에 그 단서가 숨어 있다. 폼페이 벌레는 열 충격 단백질을 생산한다. 이 단백질 덕분에 높은 열에도 세포가 기능을 유지하고 필수 분자가 열에 망가지지 않는다. 이 벌레는 가공할 압력에도 붕괴되지 않는 초강력 콜라겐 분자와 산소 수치가 아주 낮은 곳에서도 산소를 흡수하는 헤모글로빈을 만든다.

열수구에서 화학합성을 하는 생명체를 발견하면서 지구는 물론이고 지구 밖 생명체의 존재에 대한 사고 혁명이 일어났다. 생명체란 해가 비치는 온화한 표면 세계에 제한된 존재가 아니었고 이는 다른 행성에서 생명체가 진화했을 가능성의 기대감을 불러왔다. 열수구의 유독한 어둠 속에서도 생명체가 잘 살고 있다면 이 은하나 다른 은하 어딘가에서도 얼마든지 생명체가 있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136 페이지)

현재로서 고도가 낮은 봉우리를 탐지하는 유일한 기술은 음파탐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잠수함과 전함을 탐지하기 위해 처음 개발된 기술을 과학자들이 변형해서 해저 조사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해상에 자리 잡은 장비가 아래로 소리를 쏘아 보내고 그 음파가 단단한 표면에 부딪혀 돌아오는 소리를 탐지한 후 이를 3차원으로 해석해서 해저의 지형적 특징을 식별한다. 이처럼 솟아오른 땅덩어리가 언덕인지 산인지를 두고 논쟁이 벌어진다.

육지에서는 산의 높이를 규정하는 보편적 정의가 없다. 역사적으로 육지에서 산의 최소 높이는 300m-600m로 누군가에게는 높은 언덕이 누군가에게는 작은 산이 된다. 반면 물속에서는 1,000m가 해산의 최소 높이였다. 하지만 점차 많은 해산이 조사되고 연구되면서 높이를 제한하는 지질학적, 생태학적 정당성이 의미를 잃었다. 높이 100m 이상의 낮은 해산도 높은 산봉우리 못지않은 중요한 해저 생태계를 수용하고 있었다.(153 페이지)

해산은 끝내 지각판 가장자리로 끌려 들어갈 운명이다. 1년에 5cm라는 아주 느린 속도로 이동하는 무빙워크 위에 서 있는 것과 같다. 산은 무빙워크 끝에서 물러서는 대신 섭입대에서 깊은 해구로 질질 끌려 내려가 지구의 맨틀로 이동한다.(167 페이지) 바다의 광대한 부피와 쉼 없는 움직임, 그리고 열을 흡수하는 물의 뛰어난 성질 덕분에 지구와 태양의 균형 있는 상호작용이 유지된다. 대기의 온실가스 층이 대책 없이 두꺼워지는 지금 끝없이 내리쬐는 태양 복사선은 열을 받아줄 만한 물이 없다면 금세 지구를 견딜 수 없이 뜨겁게 만들 것이다.(184 페이지)

심해와, 심해가 주는 모든 것에 대한 감사는 약 45억년 전 생명이 기원한 순간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살아있는 세포가 심해, 구체적으로 열수구 안에서 맨 처음 나타났다는 것이 현재의 유력한 가설이다. 이는 영국의 지질학자 마이클 러셀(Muchael J. Russell)의 개념이다. 열수구를 생명이 기원한 장소로 보는 이론의 핵심 전제는 열수구 유체가 알칼리성을 띠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오늘날 모든 세포의 에너지 생성의 필수 조건인 양성자 기울기를 조정하는 데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는 닉 레인의 [바이탈 퀘스천]이라는 책을 통해 살펴보아야 할 부분이다.

심해는 세포가 처음 생성되고 나머지 지구의 생명을 접종한 뒤에 일어난 일에 대해서도 단서를 제공한다. 최초의 생명이 점화되고 20억 년 동안 세상에는 단세포 생물인 세균과 고세균 밖에 없었다. 생명의 진화에서 다음으로 중요한 단계인 복잡한 세포의 진화 즉 진핵 생물의 탄생 역시 아마 심해에서 이루어졌을 것이다.(198 페이지) 심해의 조건에 완벽하게 적응한 나머지 수면 밖에서는 살아남지 못하는 세균들도 있다는 사실도 놀랍다.

저자는 바다 생태계를 자원 창고로만 보아 어떻게 해서든 개발하고 추출해 돈을 벌려는 편협한 시야는 그 과정에서 잃는 다른 모든 것을 보지 못한다고 말한다.(233 페이지) 수십 년간 심해 저인망 어업은 남극을 제외한 모든 대륙의 대륙붕 가장자리까지 확장되어 실로 전 세계에 발자취를 남겼다. 유럽연합은 수심 800m 아래에서 저인망 어업을 금지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그 법이 시행된 것은 2017년부터다. 만약 그 금지법이 성공적으로 유지되고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제한이 이루어진다면 상대적으로 미미한 경제 이익을 위해 살아 있는 지구를 난도질하는 산업이 저지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236, 237 페이지)

이 내용은 3부 착취의 주요 부분이다. 저인망은 바다 밑바닥까지 그물을 내려 배로 끌며 물고기를 싹쓸이하는 어업 방식이다. 저자는 많은 물고기들을 내버려두는 것을 미개발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마치 그 동물들의 유일한 목적이 인간에게 효용을 주는 일인 듯 생각하는 말이라고 설명한다.(247 페이지) 이제 심해는 인간의 일상에서 버려진 플라스틱을 비롯한 여러 쓰레기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다. 심해는 고의든 실수든 엄청난 양의 기름이 쏟아지는 곳이기도 하다.

저자는 바다에 무언가를 버린다는 것은 영원히 잊고 싶다는 표현이라고 말한다.(259 페이지) 심해를 쓰레기장으로 사용하는 것이 값싸고 손쉬운 방법일지는 모르나 결코 안전하다고 볼 수 없다. 비교적 최근에는 가축의 사체가 심해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세계적으로 저렴한 고기의 수요가 늘고 지역 도축장에 대한 문화적 요구조건이 까다로워지면서 매년 20억 마리 이상의 살아 있는 가축이 배에 실려 바다를 건넌다. 그러다가 사고가 발생한다.(260 페이지)

심해의 일부는 미처리 하수의 형태로 폐수를 과도하게 받아왔다. 더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지만 비교적 최근까지도 하수와 오니(汚泥)를 싣고 와서 앞바다에 버리는 폐기물 처리 시스템이 실제로 운영되었다. 바다는 화학무기의 처리장이기도 하다. 저자는 20세기 중반의 군수품이 핵폐기물과 함께 여전히 심해에 흩어져 있고 누구도 그 영향력의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264 페이지)

지난 몇 십 년 동안 과학자와 소수의 민간기업으로 이루어진 연구팀이 수 톤이나 되는 철을 바다에 버렸다. 쓸모가 없어서 버렸다기보다는 이 세상에 너무 많이 있는 어떤 물질을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바다에 철을 쏟아 부으면 플랑크톤의 번식을 촉발해 생물펌프를 자극하고 더 많은 탄소를 심해로 끌어내려 수백, 수천 년 동안 대기에서 격리시킨다는 원리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이론에 불과하다.(266 페이지)

"나에게 선 박 한 척의 철을 달라. 그러면 빙하기를 선물하겠다"고 말한 사람도 있다. 저자는 인위적으로 심해에 탄소를 주입하는 것은 문제 해결이 아니라 그저 잠시 눈앞에서만 치우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규모가 훨씬 크고 위험하다는 차이만 있을 뿐 화학무기, 핵폐기물, 그 밖의 사람들이 처분하려는 다른 것들과 다를 바 없다고 말한다.(269 페이지) 심해에 탄소를 주입하면 해양 산성화가 가속화된다. 그러면 생물 종 다양성이 감소하고 생태계가 파괴된다.

저자는 생명은 심연의 단괴(團塊) 지대에서 풍부하며 심해 채굴이 종과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고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한다.(290 페이지) 채굴 기계가 해저에서 천둥처럼 울부짖으며 일으키는 진흙 구름은 그것을 분산시킬 강한 해류가 흐르지 않는 심해저 물속에서 한참을 머무를 것이다. 산호나 해면처럼 도망가지 못하는 섬세한 동물들은 그 구름에 붙잡힌 채 숨이 막히고 질식해 죽을 것이다.(291, 292 페이지)

열수구 채굴은 근본적으로 지구에서 생명의 기원에 대한 관점을 바꾼 생태계까지 파괴할 위험이 있다.(299 페이지) 수많은 심해 전문가는 해저 채굴이 기후 위기를 악화할 것이라고 조언한다. 채굴 활동으로 인해 수백만 년 동안 진화하며 탄소 순환에 필수적인 요소가 된 미생물 군집이 교란되면 심연의 탄소를 저장하는 일에 지장이 생길 수 있다. 열수구 채굴이 해저에서 메테인을 제거하는 화학합성 미생물을 어떤 식으로 건드릴지 알 수 없다. 메테인이 대기에 방출되면 이산화탄소보다 25배는 더 강력한 온실가스가 된다.

채굴로 파헤쳐진 열수구가 얼마나 많은 메테인을 내뱉을지 역시 아직 답을 알 수 없다. 새로운 사실은 화석연료를 포기하고 온실가스 배출을 막으려면 엄청난 양의 금속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풍력발전용 터빈, 태양전지판, 전기자동차와 트럭용 배터리가 모두 금속 원소의 혼합으로 만들어지며 경우에 따라 필요한 양이 다르다. 이렇게 화석연료의 필요는 금속의 필요로 대체되겠지만 딥 그린 메탈스와 기타 채굴 기업의 주장대로 그 금속이 반드시 심해저에서 와야 하는지는 따져볼 문제다.(315 페이지)

현재 사용되는 충전식 배터리는 대부분 코발트를 대량으로 사용한다. 전기자동차 한 대에 사용되는 배터리 전극에 약 9kg의 코발트가 들어간다. 이 말 많은 금속이 심해에 존재한다.(320 페이지) 저자는 자동차 배터리, 풍력 터빈, 그 밖에 당장 세계가 필요로 하는 만큼만 캐내고 멈추겠다는 사람들의 주장에 대해 얼핏 훌륭한 발상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이제 충분하니 그만 하라는 말을 누가 할 것인가?라고 묻는다. 광산이 본격적으로 가동하고 돈이 들어오고 주주들이 이익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회사가 생산을 멈추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라고 묻는다.

심해는 마지막 변경 지대이자 최후의 미개척지다. 저자는 자원이 바닥나면 새로운 미개척지를 찾아가서 씨가 마를 때까지 가져다 쓰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라고 말한다.(330 페이지) 어떻게 심해를 효과적으로 보존할 수 있을까? 이런 야심에 가장 가까운 선례가 남극 조약이다. 남극 조약은 평화와 과학을 위해 남극대륙의 동토를 자연보호지역으로 선언한 국제 협약이다. 심해처럼 남극에도 토착 인구는 없으며 많은 나라가 원유와 가스, 광물을 포함해 매장된 자원에 눈독을 내리고 있다.

하지만 냉전 충돌 중에도 최소 12개의 나라는 영토 주장을 포기하고 모든 군사 활동과 채굴을 금지한다는 조약에 합의할 수 있었다. 저자는 심해는 단호하고 무조건적인 보호가 필요하며 심해 어업과 채굴에 관여한 국가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만약 독자가 그런 나라에 살고 있다면 심해 추출 사업에서 손을 떼도록 정부를 압박할 수 있다고 말한다.(333 페이지) 심해에서 우리가 꿈꿀 수 있는 것들은 절대 바닥나지 않을 것이다.

언제까지나 보이지 않고 발 들이지 못할 장소, 끝내 놓쳐버릴 찰나의 순간 누구도 짐작할 수 없고 인간의 시야에서 한사코 벗어난 민첩한 생물까지 정녕 저것들을 지키고 싶다면 온 힘을 기울여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해야만 한다.(340, 341 페이지) 이것이 [찬란한 심연]의 마지막 문장이자 결론이다. 제목 그대로 심해는 정말 찬란한 곳이다. 상상을 뛰어넘는 경이롭고 신비한 곳이다.

모든 것을 받아주는 바다, 생태균형자인 바다를 우리가 그간 너무 파헤치고 이용하고 쓰레기장처럼 취급해왔다. 우리가 보내는 시간에도 차원이 있다. 어떤 전문가는 시간을, 빠르게 변하는 파도의 시간, 파도의 시간에 비해 느린 해류의 시간, 장기지속의 해구의 시간으로 구분했다. 지질학적 시간처럼 아주 아주 느리게 움직이는 조용한 해구의 시간이란 말을 들으며 해구는 평온하고 조용한 곳이라고만 생각했었다. 상황은 너무나 다르다. 저자의 문제의식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바다에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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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미가 들려주는 핵분열, 핵융합 이야기 과학자가 들려주는 과학 이야기 38
송은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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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과학 원리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고중숙 교수의 [내 머리로 이해하는 E=mc²]을 읽은 것으로부터 시작된 관심이다. 이 책을 읽은 것은 25년전인 2001년이었다. 당시는 E=mc²를 이해하고자 읽다가 관련이 큰 핵에 대해서까지 관심이 이어진 것이다. 며칠 전 읽은 서균열 교수의 [인문핵]을 통해 많은 부분을 이해했다. 그러나 그 책에서 다루어지지 않은 내용을 찾아 송은영 저자의 [페르미가 들려주는 핵분열, 핵융합 이야기]를 읽게 되었다.

 

핵반응은 화학반응보다 평균적으로 1000만 배나 많은 에너지를 내놓는다. 방사성 원소란 방사선을 내놓는 원소를 말한다. 라듐, 우라늄, 토륨 등이 대표적인 원소다. 방사성 원소는 각각의 특성에 따라 알파 방사선, 베타 방사선, 감마 방사선을 내놓는다. 알파 방사선은 베타 방사선 보다 7000배 이상 무겁다. 전기까지 띠고 있어서 공기 중의 여러 입자와 반응해 적지 않은 에너지를 잃어버린다. 그러니 멀리 나아가려고 해도 나아갈 수 없다. 알파 방사선이 공기 중에서 비행하는 거리는 수 센티미터 정도이다. 그래서 알파 방사선은 종이 한 장으로도 차단이 가능하다. 알파 방사선이 그다지 해를 끼치지 못하는 이유다.

 

그러나 알파 방사선이 음식물이나 호흡기를 통해서 인체로 들어오면 사정은 달라진다. 인체에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다. 베타 방사선은 알파 방사선보다 가볍고 전기도 약하다. 그래서 공기 중의 입자와도 알파 방사선만큼 반응하지 않는다. 그래서 종이 정도는 거뜬히 뚫고 수 미터까지 날아간다. 베타 방사선도 알루미늄판은 뚫고 지나가지 못한다. 하지만 베타 방사선도 과다하게 쪼이면 위험하다. 감마 방사선은 알파 방사선이나 베타 방사선과 달리 질량도 없고 전기도 띠지 않는다. 그래서 웬만한 물체는 거침없이 뚫고 지나간다. 방사선이 두려운 것은 바로 감마 방사선의 강력한 투과력 때문이다. 그러나 감마 방사선도 두꺼운 콘크리트 벽 앞에서는 무릎을 꿇는다.

 

라듐과 우라늄은 알파 방사선을, 토륨은 베타 방사선을 내놓는다. 감마 방사선만을 따로 내놓는 방사성 원소는 없다. 감마 방사선은 알파 방사선과 베타 방사선이 나오면 뒤따라서 나온다. 방사성 원소는 막대한 에너지를 내놓지만 한 두 번의 단발적인 현상으로 그쳐서는 폭발적인 에너지를 창출해내기 어렵다. 방사성 원소의 에너지가 쓸모 있는 위력을 발휘하려면 붕괴 반응이 연이어 이어져야 한다. 이를테면 연쇄반응이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연쇄반응은 중성자를 발견하고 나서부터 가능해졌다. 중성자는 1932년 영국의 물리학자 채드윅이 발견했다. 그는 이 공로를 인정받아 1935년에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핵은 전기적으로 중성이 아니라 양성이다. 양성자는 양성이기 때문에 전기적으로 양성인 핵에 다가서지 못하고 전자는 핵에 꽉 붙들려서 벗어나지 못한다. 중성자는 중성이기 때문에 양전하이든 음전하이든 상관없다. 중성자가 발견되기 이전에는 감히 꿈꿀 수조차 없었던 핵 속으로의 진입이 마침내 성공을 거두게 된 것이다.

 

리제 마이트너는 중성자로 우라늄을 때렸더니 우라늄보다 원자번호가 거의 절반밖에 안 되는 56번의 바륨이 생겨났다고 말했다. 하나의 중성자가 입사(入射)해서 그 많은 결합을 깨고 핵을 두 동강 내버린다는 것은 믿어지기 힘든 상황이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핵 속에 입자가 많이 들어 있어 그만큼 불안정하다는 뜻일 수도 있다. 닐스 보어는 핵은 딱딱한 고체가 아니라 말랑말랑하게 방울진 액체처럼 되어 있다는 모형을 제안했다.

 

우라늄 235가 어떤 원자로 쪼개어져야 한다는 공식은 없다. 분할은 무작위적이다. 어떤 원소가 생길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범위는 있다. 너무 가볍거나 무거운 원소가 생길 확률은 거의 없다. 대부분 질량수가 90~100, 135 ~145 범위의 두 원소로 쪼개어진다. 우라늄 235(양성자+중성자; 235; 질량수)가 핵분열해서 내놓는 대표적인 원소는 바륨과 크립톤, 크세논과 스트론튬, 텔루르와 지르코늄이다. 중성자와 우라늄 핵이 만나서 이루어지는 연쇄반응과 핵분열은 원자력 에너지와 원자폭탄으로 무르 익어서 현실화된다.

 

아인슈타인 이전에는 누구나 에너지와 질량이 전혀 별개의 것이라고 믿었다. 아인슈타인은 질량과 에너지는 같으나 단지 형태만 다르다고 주장했다. 페르미는 중성자와 원소 사이에 파라핀을 놓고 중성자로 원소를 때리는 실험을 했다. 그러자 방사선이 엄청나게 나오는 것이었다. 방사선 수치가 열 배는 보통이었고 심지어는 100배까지도 증가했다. 방사성 수치가 높아졌다는 것은 핵반응이 더욱 빈번히 일어났다는 뜻이다. 이것은 연쇄반응이 가능해졌다는 의미다.

 

파라핀에는 수소가 듬뿍 들어있다. 수소에는 양성자가 하나 들어 있다. 중성자는 들어 있지 않다. 양성자와 중성자는 질량이 비슷하다. 양성자와 중성자의 질량이 비슷하니 수소는 중성자와 질량이 비슷할 것이다. 수소와 중성자는 질량이 비슷하니 파라핀 속 수소와 중성자가 충돌하면 어떻게 될까? 중성자는 많은 에너지를 잃을 것이다. 에너지를 적지 않게 잃어버렸으니 속도가 현저히 느려진다. 속도가 느려졌으니 수소 주위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다. 머무는 시간이 길수록 접촉할 수 있는 확률은 그만큼 높아진다.

 

중성자와 수소가 만날 수 있는 시간이 길어진다는 뜻이다. 중성자와 수소의 반응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그러니 더 많은 방사선이 나올 수밖에 없다. 방사선이 많이 나오는 것은 중성자의 속도가 느려졌기 때문이다. 속도가 느린 것을 저속이라고 한다. 속도가 느려진 중성자를 저속 중성자라고 부른다. 저속 중성자는 핵반응의 확률을 대폭적으로 높여준다. 연쇄반응이 일어나는 확률을 급속도로 향상시켜준다는 말이다. 이로써 핵에너지를 마음껏 꺼내어 쓸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렸다.

 

페르미는 핵반응 실험 준비에 들어갔다. 연쇄반응의 조건을 살피는 과정을 한 단계 한 단계 차근차근 조정해 나갔다. 어떤 물질이 중성자를 얼마나 흡수하는지, 물질의 순도에 따라 중성자 흡수율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우라늄을 얼마나 쌓아야 적당한지를 세심하게 살폈다. 그러고는 순도 높은 우라늄과 흑연을 벽돌처럼 높이 쌓여 올렸다. 흑연은 중성자의 속도를 늦추기 위한 것이었다. 중성자의 속도를 늦춰주는 물질을 감속재라고 한다. 원자폭탄은 제어봉이 필요 없다.

 

연쇄반응이 급격히 이루어져야 무시무시한 핵폭탄이 된다. 그러나 원자력 발전은 그래서는 안 된다. 원자력 발전의 목적은 핵발전소를 일순간에 흔적도 없이 날려 보내는 것이 아니라 핵 에너지를 끌어내서 유용하게 사용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페르미는 우라늄 238이 중성자와 만나면 더 무거운 미지의 새로운 원소가 탄생할 것이라 보았다. 중성자가 우라늄 핵에 더해져서 우라늄보다 원자번호가 높은 원소가 탄생한 것이다. 이것이 플루토늄 239(양성자 94+중성자 145).

 

우라늄 238은 핵분열을 하지 못해 핵에너지를 내지 하지만 핵에너지를 내보내는 물질을 새롭게 만든다. 우라늄 238의 반감기는 45억년이다. 우라늄 235에 중성자를 충돌시키면 핵분열 하고 우라늄 238에 중성자를 충돌시키면 중성자를 흡수해 플루토늄 239가 된다.

 

우라늄 235는 중성자 수가 143개로 홀수다. 핵자(양성자와 중성자)들은 짝을 이룰 때 더 안정적인데, 우라늄 235는 짝이 맞지 않아 기본적으로 에너지가 높은 상태다. 우라늄 235가 중성자를 하나 더 흡수하면 우라늄 236이 되면서 중성자 수가 짝수가 된다. 이때 짝을 이루면서 발생하는 '짝짓기 에너지(Pairing Energy)'가 매우 크다. 이 넘치는 에너지가 핵 전체를 심하게 흔들어놓고(임계 변형) 결국 핵이 두 개로 쪼개지는 핵분열이 일어난다.

 

우라늄 238은 중성자 수가 146개로 이미 짝수다. 구조적으로 우라늄 235보다 훨씬 안정적이다. 우라늄 238이 중성자를 흡수해 우라늄 239가 되면 중성자 수가 홀수가 된다. 이때는 우라늄 235의 경우와 반대로 에너지가 크게 방출되지 않으며 핵을 쪼갤 만큼의 충격이 발생하지 않는다. 그 결과 핵이 깨지는 대신 중성자를 품고(포획) 있다가, 두 번의 베타 붕괴를 거쳐 원자번호가 92(우라늄)에서 94번인 플루토늄 239로 변한다.

 

핵분열을 하면서 사라지는 우라늄 235보다 중성자를 흡수해 새롭게 생기는 플루토늄 239가 더 많아진다. 이런 경우를 증식(增殖)이라 한다. 세분하면 우라늄 238에 중성자가 더해지면 넵투늄 239(양성자 93+중성자 146)이 된다. 넵투늄 239가 베타 붕괴를 한다.(베타 붕괴는 질량수는 변하지 않고 원자번호는 하나 증가한다.) 그 결과 플루토늄 239가 된다.

 

중성자가 양성자보다 많은 상태에서 중성자가 양성자로 바뀌며 핵이 더욱 안정적인 상태로 붕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음의 베타 붕괴는 중성자가 양성자로 바뀌어 원자번호가 하나 증가하고 중성자는 하나 감소한다. 양성자는 하나 증가하여 전체 질량수는 변하지 않는다. 양의 베타 붕괴는 양성자가 중성자로 변환되어 원자번호가 하나 감소하고 중성자는 하나 증가하고 양성자는 하나 감소한다.

 

플루토늄은 원자폭탄의 개발에 또 하나의 새로운 이정표를 찍었다. 우라늄 235의 분리와 같은 동위원소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도 핵 원료를 얻을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기 때문이다. 연쇄반응을 일으키는 데 필요한 최소 양이 임계질량이다.

 

우리는 아인슈타인 하면 원자폭탄을 떠올리지만 그는 원자폭탄 제조에 실질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원자폭탄을 탄생시키는 데 내가 한 일은 미국이 독일보다 앞서서 핵무기를 개발해야 한다고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편지를 쓴 것뿐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이런 행동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무척이나 후회스러워 했다. 아인슈타인의 E=mc² 공식만으로 원자폭탄을 만들 수 없다. 사람들의 논리라면 중성자를 발견한 채드윅도 원자폭탄 개발에 몫을 했다. 핵분열을 발견한 마이트너도 그렇다.

 

원자폭탄을 제조하려면 구체적이고도 복잡한 여러 가지 과학기술이 필요하다. 우라늄 광석에서 우라늄 235를 뽑아내서 농축시키는 일, 증식로 속의 여러 핵물질 가운데서 플루토늄을 추출해내는 일. 원자폭탄의 임계 질량을 정확히 산출해내는 일, 원자폭탄 내부에 폭약을 꼼꼼히 설치하는 일 등등 수많은 어려움을 해결해야 한다.

 

핵발전소에서 나오는 핵폐기물은 기체, 액체, 고체로 다양하다. 원소 중에서 가장 가벼운 수소는 핵융합을 일으키는 데 가장 적당하다. 우라늄은 238이 대부분을 차지하듯 수소도 경수소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수소의 99.985 퍼센트가 경수소(프로튬)이고 나머지는 중수소(듀테륨). 삼중수소(트리튬)는 자연 상태에서는 존재하지 않고 인공적으로만 만들 수 있다. 가장 바람직한 핵융합은 삼중수소(트리튬)와 중수소(듀테륨)가 합쳐져 헬륨을 만드는 핵반응이다. T-D 반응이라 한다. 아인슈타인의 E=mc²는 핵분열에서 나오는 에너지뿐만이 아니라 핵융합에서 나오는 에너지도 명쾌하게 설명해준다. 핵분열보다 에너지 생산율이 높은 것이 핵융합이다.

 

우라늄 235 1kg이 핵분열하면서 내놓는 에너지는 200억 킬로 칼로리다. 수소 1kg이 핵융합하면서 내놓는 에너지는 1,500억 킬로 칼로리다.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려면 1억도에 가까운 온도가 필요하다. 핵융합 반응은 탄소 배출이 없는 친환경 에너지원으로 소량의 방사성 폐기물은 발생한다. 핵융합 반응의 원료는 수소 즉 물이다. 넘치는 양이다. 수소는 석탄, 석유에 비해 압도적으로 싸다. 수소는 방사성 원소가 아니다. 핵융합 반응에서 나오는 질량결손이 태양열과 태양빛의 원인이다. 핵융합 반응은 핵분열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온도 때문이다.

 

물리학에서 공부할 것은 많다. 올해 읽은 짐 알칼랄리의 [어떻게 물리학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에서는 E=mc²을 통해 아원자세계에서 핵분열을 이해하고 원자핵 에너지를 해방시킬 수 있었다(106 페이지)는 말이 나온다. 색다른 표현이다. 이 책은 물리학 일반에 대한 이야기를 모은 책이다. 언제라도 저명한 외국 물리학자의 핵융합, 핵분열 이야기 책이 출간되면 읽을 생각이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핵융합의 본령이라 할 별의 핵융합 이야기에 집중할 생각이다. 송은영 저자의 책에도 핵을 둘러싼 사회적 책임 부분이 나온다. 바다에 핵 폐기물을 버리는 문제를 다룬 책도 찾아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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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균렬 교수의 인문핵 - 인문학으로 본 원자핵 철수와영희 생각의 근육 3
서균렬 지음 / 철수와영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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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露兒)라는 호를 쓰는 서균렬(徐鈞烈) 교수의 [인문핵]이란 책이다. 서울대학교 원자핵공학과를 졸업한 후 대우 원자력과 한국원자력연구소를 거쳐 국비 유학시험에 단독 합격해 MIT에서 핵 기계공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한 분이다. '인문학으로 본 원자핵'이라는 부제답게 이제는 원자핵을 인문의 시선으로 보자고 주장하는 책이다. 가난했지만 교육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인문적 성향의 공학자가 된 저자는 보통은 사람들이 공학이나 과학 등이 건조하고 딱딱한 학문이라고 생각하지만 공부를 할수록 그렇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한다. 굳이 인문 핵이라는 말을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인문학이라는 책임감 있는 이야기와 함께 어린 시절부터 대학 시절을 거쳐 교수 시절 등 여러 과정을 담백하게 고백한 책이어서 진솔하고 무게감 있게 느껴진다. 개인적으로는 책을 통해 전자와 중성자에 대해 새로운 사실들을 많이 알았다. 맨해튼 사업의 총지휘자인 오펜하이머가 즐겨 읽던 책이 산스크리트 성전인 [바가바드 기타]였다. 이 책에 등장하는 전쟁의 신의 이름이 트리니티이다. 당시 코드명이 트리니티였다. 기독교의 삼위일체가 아니다.

 

MIT로 유학을 가면서 "내가 핵을 만들겠다. 그 전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 땅을 밟지 않겠다"고 독하게 마음 먹었던 저자는 웨스팅하우스에서 일하면서 핵발전소야말로 위험한 물건이라는 사실을 깨닫았다고 말한다. "핵은 내 안에 있구나. 바로 나구나"라는 깨달음도 얻었다고 한다. 이 책을 원활하게 읽으려면 원자, 원자핵(양성자+중성자), 전자 등에 대해 알아야 한다.

 

길지만 상술해본다. 원자 한가운데에는 양전하를 띠는 양성자와, 양전하와 음전하를 모두 가진 중성인 중성자가 강력하게 결합되어 있다. 양성자와 중성자를 핵자(核子)라고 부른다. 양성자가 전자보다 많으면 양이온, 전자가 양성자보다 많으면 음이온이라고 한다. 내파(內破; implosion) 공학이란 플루토늄을 압축하는 기술이다. 핵무기 개발은 핵물리를 넘어선 핵공학의 영역이다. 이론만으로는 생산물을 얻기가 어렵다.

 

천연 우라늄 1000개 중 오직 7개만이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우라늄 235. 993개는 연료로 쓰기 힘든 우라늄 238이다. 하지만 원자로에서 플루토늄 239로 바뀌면 연료로 쓸 수 있다. 우라늄이 쪼개지면 세슘이나 스트론튬 같은 물질이 새로 생긴다. 전리(電離)란 전자를 떼어낸 것이라는 뜻이다. 원자의 바깥을 돌고 있던 음전하의 전자가 떨어져 나오면 원자는 음양의 균형을 잃고 양전하를 띠게 된다. 우라늄이 원자로에서 핵분열할 때 전자가 매우 많이 튀어나온다.

 

원자로는 물로 가득 차 있다. 열을 식히기 위해서이다. 물은 방사선을 막아주는 역할도 한다. 전자는 진공이나 수중이나 상관없이 광속으로 움직인다. 정작 빛은 물속에서 속도가 조금 느려진다. 전자가 수중에서는 빛보다 더 빠르다. 이때 전자기파가 나온다. 이때 수중에 푸른빛이 보인다. 이를 체렌코프 현상이라 한다. 핵무기 기술은 굉장히 오래되었다. 원료가 되는 물질만 구하면 만드는 일은 어렵지 않다. 심지어 요즘은 핵물질을 인터넷으로 거래한다. 물론 핵탄두를 만들 정도의 양은 아니다. 이론적으로는 4KG 가량의 핵물질을 확보하면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

 

원리는 간단하다. 유체역학이란 핵폭탄을 초강력의 무기로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학문이다. 원자탄에서 내폭이 일어나면 자몽 만한 플루토늄 덩어리가 압력을 받아 자두 만큼 작아진다. 이때 핵분열을 시작할 수 있도록 중성자를 쏘면 된다. 플루토늄 덩어리의 형태와 구조에 대한 분석 결과 30만 기압 정도의 압력을 가하면 자두만한 크기로 줄어든다. 이때의 질량이 바로 임계 질량 즉 핵분열을 할 수 있는 최소 질량이다. 30만 기압이란 6톤의 무게를 가진 코끼리 50만 마리가 1000분의 1초 동안 한치의 오차도 없이 입체각 360°로 위에서 동시에 누를 경우에 만들어지는 기압이다.

 

핵무기와 원자로는 원리가 같다. 핵분열로 에너지를 얻는 것이기 때문이다. 원자는 원자핵과 전자로 나뉜다. 원자는 핵과 전자로 이루어진 구름 상태다. 특히 원자 가운데에 아주 작은 핵은 모든 물질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원자의 표피를 이루는 전자는 바깥 물질을 밀어내는 힘을 가진다. 만일 그런 것이 없으면 물질과 물질이 겹친다. 우리가 신체를 통해 외부 세계를 감각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런 밀어내는 힘 덕분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핵이라는 말은 원자력이라고도 한다. 핵발전소 원자로나 핵무기를 만드는 물질을 가리킨다. 우라늄, 플루토늄, 토륨이 해당한다. 이들을 핵연료 물질이라고 한다. 이들이 핵분열을 하며 막대한 에너지를 생성한다. 그러면서 인체에 치명적인 해를 끼치는 방사성 물질을 뿜어낸다. 리제 마이트너가 핵분열 현상을 발견했다. 우라늄이나 플루토늄처럼 질량이 큰 물질의 원자핵에 중성자가 충돌하면서 둘로 쪼개지는 현상을 말한다. 이 과정에서 엄청난 에너지가 발생한다.

 

탄소나 수소처럼 안정된 물질의 핵은 중성자를 쏴 충돌 시켜도 쪼개지지 않는다. 모두 핵을 가지고 있지만 핵개발의 원료가 되지는 않는다. 단 여기에는 이를 조절할 장치가 필요하다. 무기라면 폭발력을 최대치로 만들 장치가 필요하고 발전기라면 안정성을 담보할 장치가 필요하다. 원자력 발전은 필연적으로 폐기물을 남긴다. 현재 기술로는 이 핵폐기물을 안전하게 저장할 수 없다. 저자는 바로 이런 이유로 연구 개발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동안 핵발전소를 짓는 데 돈을 쓰고 인력을 썼다면 이제는 안전을 위해 그만한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핵분열이 아닌 핵융합으로 에너지를 얻는다. 핵분열이 원자핵이 쪼개지는 것이라면 핵융합은 두 개의 원자핵이 합쳐지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에너지를 이용하는 것이 핵융합 발전이다. 태양이 열을 내는 방식과 유사해서 인공 태양이라 불린다. 중수소는 양성자 하나와 중성자 한 개로 이루어졌고, 3중수소는 양성자 하나와 중성자 두 개로 이루어졌다. 핵이 만들어지면서 우리가 원소라고 부르는 '세상을 이루는 물질들'이 만들어졌다. 그 첫 번째가 수소다. 수소의 구조는 매우 간단하다.

 

수소 원자는 양성자 1개로 이루어진 원자핵과 전자 1개가 결합한 상태다. 원자의 빈 공간은 매우 크다. 원자핵과 전자 사이에 어마어마한 공간이 있다. 잠실구장 한가운데 떨어뜨린 공이 원자핵이라면 그 주위를 빙 둘러싼 관중들이 전자에 해당한다. 왜 관중이 아니라 관중들일까? 그 이유는 위치를 특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고정되어 있는 게 아니기에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 전자는 확률로 존재한다. 위치를 특정할 수 없고 다만 그 흔적을 구름처럼 모호하게 표시할 수 있다고 해서 전자 구름이라 한다.

 

핵은 물성을 유지하는 최소 단위다. 핵을 쪼개면 고유성질이 사라진다. 핵분열이라는 용어는 생물학에서 먼저 나왔다. 생물학에서의 분열은 세포핵 분열이고 핵공학에서의 분열은 원자핵분열이다. 생물학의 분열은 division이라 하고 핵공학에서의 분열은 fission이라 한다. 원자 주위의 전자는 도무지 어디에서 어떻게 존재하는지 알 수 없다. 위치를 알려면 빛을 쏘아야 하는데 빛 입자가 전자를 때리는 순간 그 충격으로 전자는 어디론가 가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전자는 확률적으로만 존재한다.

 

세슘이나 스트론튬처럼 인체와 자연계에 치명적인 물질들은 모두 인위적인 핵분열을 통해 만들어진 것들이다. 인간은 인위적으로 핵분열을 일으킬 수는 있지만 그 부산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는 모른다. 천연 우라늄에는 우라늄 234, 235, 238의 세 종류가 있다. 이들을 동위 원소라 부른다. 양성자수는 같고 중성자 수가 다르다. 핵분열 과정은 연속적이다. 하나의 원자핵 안에 양성자와 중성자가 강하게 결합되어 있다가 인위적 힘에 의해 깨지면서 중성자가 흘러나온다. 그 중성자는 또 다른 핵을 건드린다. 핵은 또 깨진다... 이런 식이다.

 

이때 세슘, 스트론튬, 제논, 크립톤 같은 방사성 물질이 나온다. 최초의 분열에 이르는 시간이 1억분의 1초에 불과하다. 이 찰나의 순간에 엄청난 에너지가 발생한다. 우라늄 1g이 핵분열할 때 나오는 에너지는 석탄 3톤이 내는 에너지외 맞먹는다. 핵분열을 조절하면서 그 열로 물을 끓이면 하나의 도시가 사용할 전기를 생산할 수 있고 한꺼번에 터뜨리면 그 도시를 파괴하게 되는 것이다. 플루토늄은 자연 상태에서는 존재하지 않고 원자로에서 사용하고 남은 연료봉을 추출해서 만든다.

 

히로시마에 떨어진 폭탄은 농축 우라늄 폭탄이었고 나가사키에 떨어진 폭탄은 플루토늄 폭탄이었다. 우라늄과 플루토늄은 화학적 성질이 다르다. 플루토늄은 질산 등을 이용해서 빼낸다. 농축 우라늄은 물리적으로 추려낸 것이고 플루토늄은 화학적으로 추려낸 것이다. 다만 플루토늄에는 유효기간이 있다. 핵분열이 잘 되는 플루토늄은 239. 이것이 중성자에 노출되면 금세 240이 되어버린다. 짝수가 되면 안정성이 높아져서 잘 안 쪼개진다. 그래서 플루토늄은 만든 후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을 넘기지 않아야 한다.

 

플루토늄이든 우라늄이든 핵발전의 연료로 쓰인다. 이론상으로는 핵발전소에서 핵폭탄을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세계 핵 강대국들이 자신들 이외의 나라들이 플루토늄을 어떻게 처리하는지에 민감하다. 플루토늄을 함부로 처리하지 못하게 한다. 핵 확산을 막는다는 취지로 맺은 핵 비확산 조약(NPT)이 바로 그것이다. 쓰고 남은 우라늄을 재처리하면 핵무기를 만드는 플루토늄이 된다. 핵폐기물을 땅에 묻는 데에 엄청난 돈이 들어간다. 분열을 하면 우라늄 235의 원자핵이 중성자와 충돌하면서 두 개로 쪼개진다.

 

바륨, 크립톤, 스트론튬, 제논, 플루토늄 등의 물질로 변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납이나 철처럼 더 이상 핵이 깨지지 않는 상태로 변한다. 그 기간이 엄청나게 오래 걸려서 플루토늄 239는 반감기가 24000년쯤 된다. 계산해보니 24만 년이 지나야 붕괴를 멈춘다. 저자는 독일이 유대인(과학자들)을 박해 했기 때문에 그들이 미국으로 망명해 핵을 미국에서 먼저 만들게 되었다고 말한다. 인종주의가 결국 자신들의 목을 조른 셈이 된 것이다.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 레오 실라르드, 한스 베테, 에드워드 텔러, 존 폰 노이만, 오토 프리슈, 유진 위그너, 제임스 프랑크 등이다.

 

맨해튼 사업에는 대학, 연구소, 군대를 비롯하여 연인원 13만 명과 20억 달러가 투입됐다. 28개월의 노력을 거쳐 미국은 세계 최초로 핵폭탄 개발에 성공했다. 맨해튼 사업을 주도한 오펜하이머는 전쟁을 끝낸 위대한 과학자라는 칭송과 함께 인류를 절멸시킬 위협적인 무기를 만든 사람이라는 비난을 한 몸에 받았다. 스스로도 후회를 많이 했다. 루스벨트 사후에 대통령직을 이어받은 트루만에게 자기 손에 피를 묻혔다며 핵개발을 그만두자고 했다. 하지만 승리에 도취된 미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트루먼은 그를 미국 원자력위원회에서 물러나게 한다. 오펜하이머는 소련의 첩자라는 누명을 쓰고 청문회에서 심문까지 당하는 수고를 겪는다.

 

지금은 원자폭탄을 만드는 방식이 다양해졌다. 맨해튼 사업 당시 미국 전체 수요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전기를 썼다. 자연에는 거의 없는 우라늄 235를 만들기 위해 전기가 많이 들어간다. 우라늄은 농축기와 전기가 필요하고 플루토늄은 원자로가 필요하다. 지금은 거의 플루토늄으로 핵무기를 만든다. 그동안 원전에서 확보한 것이 많기 때문이다. 요즘은 여기에 수소 등을 넣어 폭발력을 늘리고 있다. 크기는 작아지고 파괴력은 더 커지는 추세다. 

 

방사선은 방사성 물질이 뿜어내는 에너지이다. 불완전한 상태의 원자핵이 안정화되는 과정에서 나오는 입자와 빛을 말한다. 원자핵이 쪼개지는 핵분열이 일어나면서 방출되는 물질들이 바로 방사선이다. 알파선은 양성자와 중성자가 쌍으로 묶여 있는 구조 즉 헬륨이다. 베타선은 방출된 전자다. 중성자선은 파괴력이 훨씬 세다. 우주가 생긴 이래 방사성 물질은 계속 있었다. 그런데 인간이 핵을 이용하면서부터 양이 급증했다. 자연 상태의 방사선은 핵발전소나 핵무기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인간 스스로 자기는 물론 지구 생태계를 위협하는 물질을 대책 없이 쌓아두고 있는 셈이다.

 

삼중수소는 양성자 하나와 중성자 두 개로 이루어진 물질이다. 중성자 하나가 전자를 방출(베타선) 하면서 양성자로 바뀐다. 그러면서 헬륨(양성자 2+중성자 2)이라는 안정적인 물질로 바뀐다. 지구의 위성인 달에 풍부한 물질이다. 지구에서 3중수소는 물의 형태로 존재한다. 온실 기체는 화석연료를 태울 때 발생한다. 물질이 타는 것은 산화 작용이다. 산소와 결합하면서 전자를 잃는 현상이다. 이 과정에서 열이 발생한다.

 

그 열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탄소와 산소의 외곽을 돌고 있는 전자들이 서로 합치면서 자리를 바꾼다. 그러면서 질량이 달라지고 여기서 에너지가 발생한다. 탄소화합물에 묶여 있던 전자들이 더 안정적인 이산화탄소와 물을 구성하기 위해 위치를 바꾼다. 산소는 전자를 강하게 끌어당긴다. 탄소와 산소가 결합할 때 탄소의 전자들이 공유 결합을 형성하며 더 낮은 에너지 상태로 이동한다. 이때 공유 결합 에너지의 차이만큼 열과 빛의 형태로 방출된다. 핵분열 자체는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키지 않는다.

 

다만 핵발전이라고 해서 이산화탄소와 무관한 것은 아니다. 우라늄 235의 비율을 높이는 농축과정처럼 핵연료를 만들 때 전기가 엄청나게 들어간다. 화석연료를 이용한 발전시설로 만든 전기를 써야 하기 때문이다. 핵폐기물을 관리하는 데도 전기가 소모된다. 핵폭탄과 핵발전소 중 핵폭탄이 먼저다. 어찌 보면 핵발전소는 핵폭탄으로 대량살상의 문을 연 것에 대한 속죄라고도 할 수 있다.

 

엔리코 페르미는 우라늄 핵이 쪼개질 때 탄소를 두면 중성자 속도가 적당하게 낮아진다는 것을 알아냈다. 자동차로 치면 제동장치인 셈이다. 그래서 핵발전소 원자료에 탄소로 만든 제어봉을 집어넣는다. 폭탄에는 이런 장치가 없다. 조절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중성자 속도를 늦추는데 물을 쓰는 경수로와 달리 흑연을 쓰는 곳도 있다. 물은 고온에서 끓어버린다. 흑연 감속로는 그럴 염려가 없다.

 

전기는 인류에게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문명을 선사했다. 전기는 어디에서 왔는가? 광물에서 왔다. 석탄, 석유가 그렇고 우라늄도 돌에서 온 것이다. 우라늄은 자연에 존재하는 돌에서 채굴한다. 광물은 돌을 구성하는 기본 단위다. 제어봉은 핵분열에서 불쏘시개 역할을 하는 중성자를 흡수하는 역할을 한다. 핵폭탄은 우라늄이나 플루토늄을 원료로 만든다. 구체적으로는 우라늄 235, 플루토늄 239. 우라늄의 원자번호는 92, 플루토늄의 원자번호는 94번이다.

 

핵폭탄을 만들 때 플루토늄을 쓰는 이유는 우라늄 235를 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235만 얻는 유일한 방법은 기체로 만들어서 원심분리기에서 마구 돌리는 방법뿐이다. 그러면 무거운 238은 바깥으로 뛰쳐나가고 상대적으로 가벼운 235가 남는다. 이를 수천 번 반복해서 235의 비율을 높인 것이 농축 우라늄이다. 우라늄 235의 핵은 양성자 92개와 중성자 143개가 묶여 있다.

 

중성자가 홀수여서 두 개씩 짝을 지어보면 하나가 남는다. 이런 핵은 불안정해서 쉽게 쪼개진다. 수소 폭탄의 원리는 핵융합이다. 두 개의 수소 핵이 붙어서 헬륨이 되면서 엄청난 에너지가 발생한다. 수소 원자를 융합시키려면 1억도의 온도가 필요하다. 지금 태양 중심부 온도가 1500만 도이니 6배가 넘는 어마어마한 고온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도 방법을 찾는 데 성공했다. 원자폭탄을 터뜨려서 열을 생성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수소 원자끼리 결합하면서 질량이 바뀌고 바로 여기서 또 한번 E=mc²이 등장한다.

 

방사성 물질은 인체에만 치명적인 것이 아니다. 사고 수습 당시 투입된 로봇이 몇 초 만에 작동을 멈췄다. 전자회로가 전부 망가져버린다. 방사선은 전하를 띠고 있다. 당연히 합선이 된다. 저자는 스리마일(1979), 체르노빌(1986), 후쿠시마(2011) 핵발전소 사고에 대해 상세히 설명한다. 핵폐수 이야기를 해보자. 저자에 의하면 핵폐수는 세계 바다 생태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이다. 오염 농도가 묽어지니까, 희석되니까 괜찮을 것이라고 말한다. 정말 무책임한 말이다.

 

바다가 아무리 넓다고 해도 지구 안에 있다. 서로 돌고 돈다. 해류를 타고 오염물질이 세계 바다로 퍼진다. 그러는 동안 완전히 걸러지지 않은 핵 오염물질들이 해저로 가라앉을 것이다. 바다 생태계가 오염된다. 먹이사슬을 타고 우리 인간의 식탁 위로 올라온다. 그럴 일이 없다고 누가 단정할 수 있을까. 저자는 현재 진행중인 심각한 사안도 마치 오래전에 지나간 일처럼 인식하는 것을 우려한다. 후쿠시마 원전 이야기를 하면 아직도 후쿠시마야, 그만 하지 등의 반응이 나온다고 한다. 사람들이 지겨워 한다.

 

저자가 말하는 인문핵이란 핵을 인문학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핵을 이용하되 목적과 맥락을 생각하자는 것이다. 일단 핵 폐수가 발생했을 때 가장 좋은 방법은 가두는 것이다.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일본은 그 반대로 한다. 예전 스리마일 섬 원전 사고 때 미국도 강에 다 쏟아 버리려고 했다. 사고 후 2천 톤 정도 되는 핵 폐수가 발생했는데 주민 반대로 방류는 못했다. 그래서 증발시키고 남은 물질을 보관하는 방법을 썼다. 이 방식이 대기중 방사선 농도를 크게 높이지 않을 수 있어 한때 후쿠시마 쪽에서 검토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왜 굳이 바다에 버렸는지 아직도 의문이다.

 

한국, 중국, 일본은 적어도 핵에 관해서는 하나로 묶여 있다. 지리적으로 그렇다. 그래서 삼국이 지속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그동안은 한국이나 중국이 환태평양 조산대에 자리한 일본 쪽보다는 지진이나 지진 해일 위험이 덜하다고 여겨져 왔다. 그런데 최근 아시아 각 지역에서 이상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중국, 한국, 일본이 속한 유라시아 판이 꿈틀거리고 있다. 우리나라만 해도 경주, 포항 등지에서 계속 지진이 발생한다. 202411일 발생한 일본 이시카와현 노토반도 지진으로 해서 지반이 올라와 육지가 됐다. 해안선이 200m나 밀려났다.

 

저자는 비용 생각하느라 안전은 뒷전인 현실을 안타까워 한다. 경수로, 중수로는 가압경수로, 가압 중수로란 말이다. 가압이라는 압력을 가한다는 뜻이다. 물의 끓는 점을 높이기 위해 가압한다. 가압기로 150 기압을 가해 370도까지 물이 끊지 않게 조절한다. 중수에 있는 수소는 이미 중수소 상태라 중성자가 붙지 않는다. 자연 상태의 물에서 중수는 5만 개 중 하나밖에 없다. 그러나 이것도 농축을 해야 한다. 그럼에도 굳이 중수로를 선택하는 데는 천연 우라늄을 농축과정 없이 그대로 쓴다는 장점 때문이다.

 

핵분열 과정에서 얻어지는 플루토늄이 중수로에서 더 많이 나온다. 중수는 감속재다. 정전 사고는 가장 위험하다. 냉각수 등을 공급할 펌프가 멈추면 최악의 경우 후쿠시마 핵발전소처럼 원자로가 녹아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지금 우리가 북한의 위협을 걱정하지만 우리 내부적으로 쌓인 핵물질도 만만치 않다고 말한다. 안전성 확보가 시급하다는 것이다. 지금 보관중인 핵물질에 문제가 생기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

 

저자는 언론에서 최첨단 기술인 것으로 포장하는 사안에 대해 역으로 말하면 그것은 아직 검증이 되지 않았다는 뜻이라고 말한다. 북한의 핵 개발은 일찌감치 시작되었다. 한동안 지지부진했다. 그러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면서 망명 과학자들이 북한에 오면서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핵개발에는 돈이 많이 든다. 우라늄 농축, 플루토늄 처리가 필수 과정이고 고강도 알루미늄 제작이나 원심분리기 제작에도 돈이 무척 많이 든다.

 

핵실험을 하는데도 돈이 든다. 회당 1000억원 쯤 된다. 저자는 물리학적 관점으로 보면 이제는 핵이 아니라 쿼크의 시대라고 한다. 인류가 핵을 발견하고 양성자와 중성자를 알게 되면서 이들이 만들어내는 엄청난 에너지를 사용했다. 저자는 오늘 우리가 숨 쉬는 대기에는 체르노빌의 세슘, 후쿠시마의 플루토늄이 섞여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인문학이 없는 과학은 언제든 괴물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80년 전 마법의 항아리에서 빠져나온 원자핵을 인문 핵의 이름으로 다스려야 할 때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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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화학으로 세상을 읽는다 나는 세상을 읽는다
크리스 우드포드 지음, 이재경 옮김 / 반니출판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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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과학에 대한 생각을 1 초도 하지 않고 수십 년을 보낼 수 있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과학을 이용하지 않고서는 단 1 나노 초도 살아남을 수 없다. 이렇게 말하는 저자 크리스 우드포드의 [나는 화학으로 세상을 읽는다]비전문가들도 쉽게 읽도록쓴 화학책이다. 물질의 거동은 물질 내부에서 원자들과 분자들이 요동하고 뭉치는 방식에 달려 있다. 물질과 물질을 다르게 만드는 것은 안에 있는 원자들만이 아니다. 원자들의 결합 방식에 따라서도 물질이 갈린다. 대표적인 예가 지구에서 가장 풍부하고 가장 필수적인 물질인 물이다.

 

원자가 금과은 같은 화학 원소의 기본단위인 것처럼 분자는 더 복잡한 물질의 기본 구성 요소다. 둘 이상의 원자를 붙이면 분자가 된다. 수소 원자 두 개와 산소 원자 하나가 결합하면 물 분자 한 개가 얻어진다. 수십억조 개의 물 분자를 손가락 끝에 담아 올리면 그것이 작은 물방울 하나다. 수증기는 같은 질량의 물보다 공간을 1600배 더 차지한다. 이것이 전기 포트의 물을 몇 초만 오래 끓여도 주방이 세탁소처럼 수증기로 자욱해지는 이유다.

 

수백 가지 화학반응을 관찰하다 보면 결국 기본 원소들이 언제나 간단한 정수비로 결합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1;1, 2;1, 3;2 등등. 1803년 영국 화학자 존 돌턴이 그 일을 해냈다. 화학 원소들을 체계적으로 배열하면 2차원의 격자형 재료표가 만들어진다. 이를 주기율표라고 한다. 주기율표는 우리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화학 성분의 전체 목록이다. 저자는 동위원소를 불안정한 흥분 형태로 존재하는 원소로 설명한다. 이들은 어떻게든 더 안정된 상태가 되려고 난리를 치고 그러기 위해 원치 않거나 필요치 않은 소립자들을 밖으로 내던진다.(21 페이지)

 

원자 내부는 대부분 비어 있고 원자의 질량은 대부분 원자핵에 몰려 있다. 상대적으로 너무도 가벼운 전자들은 원자핵 주위를 빙빙 돌며 흐릿한 공허의 구름을 형성한다. 철은 원자들이 위치 이동을 꺼리지 않기 때문에 모양을 잡을 때 구부러진다. 반면 유리는 원자들이 전체 구조를 허물지 않고는 새 장소로 이동하지 못해 산산이 부서진다. 철은 전기를 잘 유도한다. 원자들이 밀집한 구조에서는 각 원자의 외곽을 도는 전자들이 서로 맞물려 전체 구조를 아우르며 앞뒤로 출렁이는 일종의 흐릿한 바다를 형성해서 전기를 이편에서 저편으로 운반하기 때문이다. 철을 충분히 가열하면 벌겋게 달아오른다. 원자들이 열에너지를 흡수해서 붉은 빛의 형태로 내놓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물은 접착력보다 응집력이 훨씬 강하다. 이것이 빗방울이 퍼지거나 흩어지지 않고 잎사귀 위에 진주처럼 영롱하게 맺힐 수 있는 이유다. 비 오는 날 창문을 두들기는 비를 바라본 적이 있는가? 마치 유리에 보이지 않는 수로들이 있는 것처럼 물방울들이 창에 또렷한 줄무늬를 그리며 흘러내린다. 이것도 물의 응집력 때문이다. 새로 떨어지는 방울은 유리의 아직 젖지 않은 부분보다 이미 떨어져 있는 방울들과 합체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물은 끼리끼리 뭉치는데 명수지만 다른 곳에 달라붙는데는 영 무능하다. 그래서 물을 제대로 퍼지게 하고 물건을 완전히 적시게 하기 위해서는 세제(계면활성제)를 사용해야 한다.

 

물은 상대적으로 밀도가 높고 무거운 물질이라 금방 비키거나 물러서지 않는다. 물은 비압축성이다. 즉 더 작은 공간에 욱여넣을 수 없다. 이론상 눈과 얼음은 전혀 미끄럽지 않아야 한다. 얼음도 고체이고 발바닥도 고체다. 타이어와 아스팔트처럼 두 가지 고체가 접촉하면 대개는 더 이상의 운동을 막기에 충분한 마찰이 발생한다. 그런데 왜 얼음은 미끄러울까? 일반적인 설명은 이렇다.

 

물체를 쥐어짜면 물체의 온도가 올라가는 것이 과학의 통칙이다. 자동차 타이어에 바람을 열심히 넣다 보면 에어 펌프가 뜨거워지는 것은 그런 이유다. 따라서 이론적으로는 사람이 얼음 위에 서면 얼음 표층에 짓눌려 온도가 올라가서 녹는다. 즉 고체 발과 그 아래의 고체 얼음 사이에 윤활유로 작용하는 수층이 생긴다. 얼음을 지친다는 건 사실 얼음을 지치는 게 아니다. 얼음이 아니라 얼음 표면에 얇게 깔린 해빙수를 타고 미끄러지는 것이다. 이 이론을 강도 높게 적용한 것이 스케이팅과 컬링 같은 겨울 스포츠다. 스케이트는 몸의 압력을 날카로운 블레이드에 집중시켜 발 아래의 얼음을 매우 효과적으로 녹이고 그걸 타고 고속으로 미끄러진다. 하지만 이때 미량의 물만 살짝 녹았다가 바로 다시 얼어붙는다. 아이스링크 전체가 호수로 변할 일은 없다.

 

이것이 과거에 과학자들이 설명하던 방식이다.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리처드 파인만 같은 유명 학자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하지만 과학이란 현재진행형이다. 이제 우리는 얼음이 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한 물체임을 알게 된다. 얼음이 미끄러운 진짜 이유는 스케이트가 빙판을 짓누르는 압력과 하등 관계가 없다. 스케이트의 압력 따위는 얼음을 녹여 윤활 수층을 만들 만큼 크지 않다. 완벽한 설명은 아직 없지만 현재 가장 설득력 있는 이론은 얼음에는 액체와 유사한 코팅이 내장되어 있으며 이 코팅은 온도가 올라갈수록 크기가 커진다는 것이다. 얼음은 미끄럽다. 왜냐하면 얼음을 미끄러우니까. 이것이 물의 기본 성질이다. 우리가 그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든 말든.

 

저자는 유리는 훨씬 교활하다고 말한다. 유리의 용도는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비결정형 고체, 반고체, 냉동 액체다. 혼돈스러운 액체와 질서 있는 고체의 중간쯤에 해당되는 일종의 무작위적이고 임시방편적인 구조를 가졌기 때문이다. 고체가 되려는 거친 시도는 있었으나 고체처럼 원자들이 규칙적으로 배열된 결정 구조에는 이르지 못했다는 뜻이다. 물을 극도로 빨리 냉각시키면 비결정질 얼음이 생긴다. 일상에서는 접하기 어렵지만 대 우주에는 흔하다. 일종의 우주 서리다. 혜성이 대부분 이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주에 비결정질 얼음이 많은 이유는 별 사이 공간의 극한 환경 때문이다. 우주는 매우 밀도가 낮아 분자들이 규칙적으로 배열될 에너지를 갖지 못한다.

 

엄밀히 말해 유리가 고체와 액체의 중간쯤에 해당하는 물질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유리가 고체가 되는 과정에 있거나 언젠가는 완전히 굳어질 물질이라는 뜻은 아니다. 유리는 이미 굳을 만큼 굳은 상태다. 유리를 깨면 파편이 불규칙한 모양임을 알 수 있다. 유리가 비결정형 고체라는 의미이다. 유리는 투명하다. 그것은 빛이 유리를 통과한다는 사실로 증명된다. 그럼 빛은 어째서 금속 같은 다른 고체는 통과하지 못하면서 유리는 통과할까? 물질의 투명성과 불투명성은 빛이 그것을 통과하려 할 때 그것이 빛에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달려 있다.

 

금속은 광자라고 부르는 입자 뿐만 아니라 X선처럼 빛과 비슷한 것까지 모두 흡수한다. 금속의 원자들은 자유전자들의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이것이 광자를 쉽게 흡수했다가 쉽게 분출하는 요인이 된다. 광자를 공처럼 잡아서 왔던 방향으로 다시 던져버린다. 알루미늄과 은처럼 반짝이는 금속은 모든 종류의 광자들을 몽땅 잡아서 다시 던진다. 그들이 거울의 훌륭한 대용이 될 수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구리나 금처럼 유색 금속은 일부 광자는 흡수하고 나머지는 반사하거나 전송한다. 유리는 어떻게 다를까? 모든 것은 내부의 문제다. 유리의 전자들은 괴상한 비정형 구조의 원자들을 흐트러지지 않게 붙들고 있느라 바빠서 가시광선의 광자들을 금속처럼 착착 포착하지 못한다. 그래서 광자들 대부분 유리의 한편으로 들어와 반대편으로 빠져나가고 유리 원자들은 그걸 알아채지 못한다.

 

하지만 자외선은 이야기가 다르다. 빛의 반사, 산란, 투과, 흡수 등은 원자 안의 전자가 담당한다. 빛을 산란 시키는 것과 반사 시키는 것은 다르다. 빛을 모두 흡수하는 물체는 검게 보인다. 어떤 물체가 빛을 반사하면 흡수하지 않고 반사해내는 파장의 빛이 우리 눈에 보인다. 모든 빛을 산란시키는 물체는 하얗게 보인다. 어떤 물체가 빛을 산란시키면 산란되는 파장에 따라 다양한 색으로 나타난다.

 

광변색 유리는 누가 발명했을까? 1962년 코닝사의 화학자 윌리엄 아미스테드와 도널드 스투키가 특허를 낸 초창기 제품은 실제 유리를 사용했다. 오늘날의 광변색 렌즈는 은이나 유리를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나프토피란(naphthopyrans)이라는 복잡한 플라스틱에 기반한다. 이 플라스틱은 자외선을 받으면 가역적으로 자신의 구조를 바꾼다. 즉 실내에서는 상대적으로 빛을 적게 흡수하는 형태를 취하고 실외에서는 가시광선을 많이 흡수하는 형태를 취해 렌즈를 어둡게 만든다. 많은 분자가 한꺼번에 빛을 많이 흡수해서 창문에 블라인드를 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빛을 차단한다. 자외선이 없어지면 이 분자들은 곧 원래 형태로 돌아와 우리 눈앞에 블라인드를 활짝 연다.

 

광탄성(光彈性)은 물체에 외력을 가한 뒤 편광을 통과시키면 그 물체가 어떻게 힘을 받았는지 말해주는 줄무늬가 형성되는 현상이다. 소성(塑性) 재료는 탄성(彈性) 재료와 달리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는다. 소성 재료에 계속 힘을 가하면 변형되다가 결국은 뚝 부러지고 만다. 흥미롭게도 금속도 엘라스틱하다. 물론 심하게 힘을 받으면 금속에도 영구적 변형 소성 변형이 일어난다. 진동이 있다는 것은 탄성이 있다는 것이다. 유리에도 탄성이 있다.

 

북극해의 얼음 바다를 항해하는 데 오히려 목선이 더 적합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광퇴화는 플라스틱을 환경에서 분해하는 유용한 방법이다. 부식(腐蝕)도 녹과 비슷하다. 다만 금속이 아니라 나무를 갉아먹는 생물학적 골칫거리다. 물은 비열이 높다. 물이 열을 흡수하는 힘의 원천은 압도적인 분자수에 있다. 물 분자는 매우 가벼운 원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물 1kg에는 같은 양의 다른 물질보다 더 많은 분자가 있다. 물에 빽빽이 들어찬 분자들 덕분에 물은 놀라운 열 유지 능력을 가진다. 철의 비열 용량은 물의 약 9분의 1이다. 철이나 강철 1kg의 온도가 10°C 내려갈 때 내놓는 열에너지는 물 1리터가 같은 정도로 식을 때 발생하는 열에너지의 9분의 1에 불과하다.

 

 

파이프 안을 쉽게 흘러 다니는 물의 특성도 열을 붙들고 늘어지는 특성만큼이나 중요하다. 만일 물이 더 걸쭉한 즉 점성이 더 강한 액체여서 줄줄 흐르지 않고 진득하게 흐른다면 우리가 지금처럼 물을 많이 사용하지 못했을 것이다. 물이 시럽의 속도로 움직이면 샤워하고 변기 물을 내리고 설거지하고 옷을 세탁하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상상해보라. 이를 보며 생각하는 것은 용암과의 대비다. 용암이 흘러 강을 채울 때 온도, 유속, 색상 등에서 다양한 대비(contrasts)를 만들어 낸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청소는 보이지 않는 먼지를 재배치하는 것에 불과할 때가 많다. 더구나 깨끗한 집안 너머 더러운 지구가 있다. 집안을 청소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강력 표백제와 세제를 강과 바다에 뿌리고 물고기를 떼죽음으로 몰고 해양생태계를 파괴하고 수십년 지속될 오염물질을 야기한다면 우리 주방과 욕심만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이 크게 의미가 있을까? 지구가 더러운데 우리 집이 깨끗하면 얼마나 깨끗할까?(132 페이지)

 

왜 옷은 때가 탈까? 우리가 입고 신고 걸치는 것들이 우리의 체온 유지를 위해 설계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미세 섬유가 너무 빡빡하게 엉켜 있으면 먼지를 빨아들이는 부작용이 난다. 뭔가가 달라붙을 표면적이 어마어마하게 늘어난다. 섬유가 워낙 작아서 때와 땀이 원자 단위로 자연스럽게 달라붙는다.

 

물 분자는 비대칭이다. 물 분자는 수소 분자 두 개가 산소 원자 하나에 붙어서 삼각형을 이룬다. 수소 끝은 약한 양전하를 띄고 산소 끝은 약한 음전하를 띈다. 물 분자는 이렇게 자석처럼 두 개의 상반된 극을 가진 까닭에 극성 분자라 불린다. 자석처럼 때 같은 곳에 달라붙어서 때를 있던 곳에서 떼어낸다.

물은 사실 만능 용매와 거리가 멀다. 모든 곳에 달라붙지는 않기 때문이다. 즉 모든 종류의 때를 빼주지는 않는다. 물 분자는 다른 것들보다 자기들끼리 잘 달라붙는다. 이것이 물이 방울 지고 유리창에 줄무늬를 만들고 연못 수면에 소금쟁이가 떠 있을 막을 형성하는 이유다. 물이 뭔가를 제대로 적시려면 물의 이 표면장력부터 깨져야 한다.

 

 

세제가 옷은 깨끗하게 빨아 주지만 지구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도움은커녕 세탁 세제에 거의 모든 성분에 환경 파괴물질이 있다. 이는 검증된 사실이다. 계면활성제는 수생 생물에게 직접적 독이 되고 인산염은 담수의 산소 수준을 감소시켜 생물을 질식시키고 용해제는 인간과 수생생물 모두에게 유해하다. 세제는 내분비 결합물질 다시 말해 강에 서식하는 물고기의 최대 80%의 성분을 바꿀 수 있는 성전환 화학물질이다. 수생 생물은 곤충, 조류, 인간을 포함하는 거대 생태계의 일부라는 것을 생각하면 강과 바다가 오염될 경우 문제가 거기서 그치지 않을 게 분명하다. 우리가 물에 푼 독은 조만간 우리에게 다시 돌아오게 돼 있다. 그렇다면 해법은 용기의 성분표를 보는 것을 생활화하는 것이다. 화학에 대해 생각하자 되도록 순하고 환경친화적인 세제를 골라 쓰는 습관이 필요하다.

 

아무리 연료탱크에 휘발유가 넘쳐나도 주위에 공기가 없으면 자동차는 아무 데도 가지 못한다. 그럼 자동차는 정확히 얼마만큼의 공기를 필요로 할까? 스포츠카의 경우 1분에 약 6,000리터의 공기를 흡입한다. 만약 자동차를 쉬지 않고 8시간 동안 운전한다면 자동차는 올림픽 규격에 수영장을 채우고도 남을 공기를 마시는 셈이다. 우리는 공기를 심하게 당연시하는 경향이 있다. 지구상 어디를 가든 공기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자동차의 근본적인 문제는 휘발유에 갇혀 있는 에너지의 단 15%만이 실제로 도로를 달리는 데 쓰인다는 것이다. 나머지는 실린더의 열 손실, 기어의 마찰, 엔진이 내는 소리, 차의 전기설비로 가는 동력 등 다양한 정도로 낭비된다. 만약 자동차가 100% 효율적이라서 휘발유에 내장된 에너지가 남김없이 도로를 내달리는 운동에너지로 전환된다면 같은 양의 연료로 적어도 5배에서 10배는 더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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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물고기]의 저자 닐 슈빈은 동료들과 함께 북극에서 탐사를 하던 중 37,500만년 전에 물고기가 뭍으로 진출한 과정을 강력하게 보여주는 화석 하나를 발견했다. 저자에 의하면 [내 안의 물고기]는 고생물학자로서 주로 물고기 연구로 경력을 쌓은 닐 슈빈이 시카고 대학 의대에서 인간 해부학 강의를 맡게 됨에 따라 인간과 물고기 사이의 심오한 연결고리를 탐구하게 된 결과 나온 책이다


저자는 매년 여름이면 북극권에서도 북쪽인 지역을 찾아가 눈과 진눈깨비 속에서 절벽의 암석들을 깨트리며 시간을 보냈다. 저자 일행이 틱타알릭 화석을 발견한 곳은 북위 80도 정도 되는 캐나다 엘스미어섬이다. 닐 슈빈 일행이 찾아다닌 곳은 펜실베니아주, 그린란드, 앨스미어섬이다. 이 책은 2009년 출간과 거의 동시에 읽었으나 서평을 작성하지는 못한 책이다. 17년이 지난 시점에 책을 다시 읽는 것은 북극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


넓은 영역인 북극권 안에 북극해가 있고 북극해의 중심에 북극점이 존재한다고 보면 된다. 북극점은 북위 90도이고 북극해는 북위 70~60도 사이에 있고 북극권은 북위 6633분 이상 지역을 말한다. 북극권은 지구의 자전축 및 기하학적 특성에 따라 정의된 지리적 경계이다. 북극해에 접해 있어 북극 5개국으로 불리는 연안국은 캐나다, 덴마크령 그린란드, 노르웨이, 러시아, 미국 등이고 북극해에 접해 있지 않은 북극권 국가는 스웨덴, 핀란드, 아이슬란드 등 세 나라다


닐 슈빈이 캐나다 북극권에서 틱타알릭 화석을 발견한 것은 고생대 데본기의 북극권이 기후가 온화했음을 증거한다. 당시 북극 기후가 온화하고 따뜻했던 이유는 주로 높은 이산화탄소 농도로 인해 온실 효과가 강력했고 따뜻한 해류가 북극해로 유입되었기 때문이다. 겨울이면 영하 40도까지 떨어지곤 하는 북극의 어느 지역 암석들에는 아마존 열대 삼각지와 비슷한 고대 삼각주의 잔재가 남아 있다. 따뜻하고 습한 지방에서만 번성하는 식물과 물고기 화석들이 발견된 것이다


온도에 적응한 생물들의 화석이 지금은 극한의 고도나 위도에서 발견된다는 사실을 보면 우리 지구가 얼마나 큰 변화를 겪어왔는지 알 수 있다. 산맥은 솟아났다 꺼지고 기온은 더워졌다가 추워지고 대륙은 마구 돌아다녔다. 지구 변화에 방대한 시간표와 독특한 방식을 이해하면 우리는 그 정보를 활용하여 앞으로의 화석 발굴 활동을 잘 설계할 수 있다.(30 페이지


화석 보존에 이상적인 암석은 석회암, 사암, 실트암, 셰일 같은 퇴적암이다. 화석은 적절한 연대의, 적절한 종류(퇴적암)의, 노출이 잘된 암석을 찾으면 발견할 수 있다. 이상적인 발굴 장소는 표토나 식생이 거의 없어야 하고 인간의 활동으로 인한 교란도 적어야 한다. 그러니 중요한 발견들의 상당수가 사막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은 그리 놀랄 만한 사실이 아니다. 고비사막, 사하라 사막, 유타주의 사막지대, 그린란드 같은 북극 사막지대가 그런 장소들이다.(31 페이지)


그린란드는 이름과 달리 사막으로 분류된다. 사막은 모래가 많은 지역이 아니라 강수량이 매우 적은 지역을 의미한다. 그린란드는 강수량이 아주 적고 전체 영토의 약 80% 이상이 거대한 빙상으로 덮여 있어 식물이 자랄 수 없으며, 얼음이 없는 해안 지대도 대부분 영구동토층(Permafrost)이기에 사막으로 분류된다. 캐나다 엘스미어 섬은 북극 사막이자 극지 사막으로 분류된다. 저자에 의하면 북극에는 나무도, 먼지도, 도시도 없다. 이는 시간이 많이 지났기에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는 부분이다. 다만 전혀 없지 않고 거리를 판별할 나무, 집이 없다는 의미이고 그렇기에 원근감을 잃게 된다는 말이 가능할 것이다


어떻든 그랬기에 적절한 연대와 유형의 암석들이 잘 노출되어 있을 가능성이 충분했다.(35 페이지) 닐 슈빈 일행은 6년 동안 네 차례에 걸쳐 엘스미어어 섬을 탐사한 후에야 바늘을 발견했다. 바늘이란 북극에서 새 화석을 찾는 것은 건초더미에서 바늘을 찾아낼 확률보다 낮다는 말에서 나온 말이다


북극의 여름철에는 태양이 24시간 동안 지평선 아래로 지지 않는다. 이 현상을 백야 또는 한밤중의 태양이라고 부른다. 북극에서는 매년 기온이 영하 40° 아래로 떨어지지만 여름이면 태양이 거의 지지 않아 영상 12도까지 올라간다. 이처럼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면 암석과 화석 표면이 부스러진다. 겨울이면 차가워져서 수축했다가 여름이면 데워져서 팽창하기 때문이다. 북극의 여름에 해가 지지 않고 겨울에 해가 거의 뜨지 않는(극야) 이유는 여름(북반구 기준)에는 북극이 태양 쪽으로 기울어지고 겨울(북반구 기준)에는 북극이 태양 반대 방향으로 기울어지기 때문이다


고생물학자들에게 틱타알릭은 한층 심오한 수확을 안겨주는 존재다. 이 물고기는 어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틱타알릭에는 우리 인간의 일부가 포함되어 있다. 애초에 닐 슈빈이 북극으로 간 이유도 그런 관련성을 찾기 위해서였다. 틱타알릭 화석을 통해 내 몸을 이해할 수 있다는 확신은 어디서 오는 걸까? 틱타알릭의 목을 생각해 보자. 틱타알릭 이전의 모든 물고기들은 두개골과 어깨가 일련의 뼈들로 연결되어 있어서 몸통을 돌리면 반드시 목도 함께 돌아갔다


그러나 틱타알릭은 다르다. 틱타알릭의 머리는 어깨와 떨어져 자유롭게 움직인다. 이런 구조는 양서류, 파충류, 조류, 인간이 공유하는 특징이다. 틱타알릭 같은 물고기가 작은 뼈 몇 개를 잃음으로써 이런 전체적인 변화가 시작되었다.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37500만년 전 물고기 속에서 인체 일부의 기원을 목격했다. 우리는 손목을 가진 물고기를 찾아냈다


저자는 우리의 과거 역사를 알게 되면 인류가 현생 생물들 중에서 특별하고 독특한 존재라는 사실이 무효가 될까?라고 묻는다. 답은 물론 아니다이다. 오히려 인류의 먼 기원을 알면 알수록 우리 존재가 얼마나 놀라운지 감탄하게 된다. 인류의 특별한 재능은 고대 물고기나 여타 생물들이 진화시켰던 기본 부품들로부터 솟아났다. 흔한 부속들을 가지고서 너무나 독특한 구성을 만들어낸 셈이다. 인간은 다른 생명체와 분리된 존재가 아니다. 뼈 속속들이 다른 모든 생명체의 일부이다. 인간의 유전자 또한 마찬가지다


물고기 지느러미가 육상 동물의 팔다리로 전이한 현상을 어떻게 말해야 할까? 답은 이렇다. 그 위대한 진화의 전환은 새로운 DNA의 탄생에서 비롯된 게 아니었다. 상어 지느러미의 발생에 관여했던 오래된 유전자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사용됨으로써 손, 발가락을 지닌 팔다리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것이 전환의 핵심이다. 오늘날 북극에서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업들이 벌어지고 있다. 석유, 가스, 광물 등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면서 북극 탐사 사업이 발굴을 시작했을 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정신없이 진행되고 있다


틱타알릭 채굴장 주변은 전형적인 극지방 풍경이다. 강이 거대한 빙하를 6.5km 상류로부터 실어 나르고 계곡에는 북극여우와 늑대와 사향소가 살고 한여름에도 눈 덮인 땅이 여기저기 남아 있다. 그리고 춥다. 하지만 슈빈과 동료들이 드러내고 있는 세계는 열대의 세계이다. 따뜻한 물에 사는 물고기와 식물의 세상이다. 북극의 바위 속에 열대의 화석이 들어 있다는 사실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전 지구적 기후변화와 대륙 이동이다. 물론 답은 둘 모두다


현재의 기후는 375백만 년 전과 완전히 다르고 엘스미어섬의 바위들은 한때 적도에 아주 가깝게 있었다.(311, 312 페이지) 37500만 년 전 데본기에 캐나다 엘즈미어섬이 열대 환경이었다는 사실은 전 지구적인 온화한 기후 증거일 뿐 대륙 이동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데본기 전체가 현재보다 훨씬 따뜻했던 온실(Greenhouse) 시기였으며, 당시 북극 지역조차 열대 기후를 유지할 정도로 따뜻했다면, 굳이 대륙이 적도 부근에 있었음을 가정하지 않아도 열대 생물 화석이 발견될 수 있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 고지자기학적 위치(위도)보다 대기 중 CO농도나 해류 변화가 기후를 더 지배했다는 가설을 세운다면 대륙 이동의 필요성을 낮출 수 있다. 하지만 지질학적 주류 학계에서는 이를 대륙 이동의 강력한 증거로 간주한다. 그 근거는 1) 데본기 당시 암석에서 측정된 자성을 분석하면 엘스미어섬을 포함한 로렌시아 대륙(Laurentia)의 위치가 적도 또는 저위도에 있었음이 지질학적으로 확정되었다. 산호, 타부라테 등 엘스미어섬에서 발견되는 데본기 화석은 전형적인 적도 근처의 얕은 바다인 열대-아열대 탄산염 플랫폼(Tropical-Subtropical Carbonate Platform) 환경에서만 생존 가능한 종들이다


열대-아열대 탄산염 플랫폼은 따뜻하고 맑은 바다에서 산호나 미생물 같은 생물들이 만들어낸 거대한 석회암 덩어리 지형을 말한다이들이 극지방에서 산출되었다는 것은 당시 이 땅이 저위도에 있었음을 시사한다. 2) 데본기는 판게아 초대륙이 형성되기 전 로라시아 대륙과 다른 대륙들이 이동하여 결합하던 시기다. 37,500만 년 전 엘스미어섬은 열대 환경인 유라메리카 대륙(Euramerica)의 일부였다.


데본기 후기인 37,500만 년 전에 현재의 북극 지역(: 노르웨이 스발바르)에 최초의 숲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는 당시 북극 지역에 나무가 자랄 수 있는 따뜻하고 습한 환경이었음을 시사한다. 당시에도 극지방은 6개월간의 낮, 6개월간의 밤의 주기를 가졌기 때문에 여름에는 매우 따뜻하고 습했으나 겨울에는 식물이 성장을 멈추거나 휴면하는 온대 환경이었다. 북극 지방이 당시 기준으로 상당히 따뜻하고 습한 기후였던 것은 사실이나 완전한 열대 기후라기보다는 온대 또는 따뜻한 온대 기후에 가까웠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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