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은 어디까지 설명할 수 있는가 - 현대 물리학의 존재론적 질문들에 대한 도발적인 답변
자비네 호젠펠더 지음, 배지은 옮김 / 해나무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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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이론 물리학자 자비네 호젠펠더의 책이다. 원제는 [실존적인 물리학(Existential Physics)]. 책은 다루는 분야(다중우주, 빅뱅, 만물의 이론 등)로 인해 어러운데다가 저자 자신도 상세하고 친절한 설명과는 거리가 있는 학자이고 연구자다. 인내하며 읽으면 얻을 수 있는 것들이 꽤 있는 책이다. 본문 내용이 어렵게 느껴지더라도 에필로그를 통해서는 잔잔한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을 불가지론자이자 비종교인이되 종교적 신념에는 반대하지 않는다고 설명하는 저자는 자신의 책은 현재 물리학이 제기하는 거대한 물음에 대해 다룬 책이라고 말한다. 가령 지금 이 순간이 과거와 다른지, 각각의 기본 입자에 우주가 깃들어 있는지, 자연 법칙이 우리의 판단을 결정하는지 같은 의문은 다루는 책이라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저자는 자연에 기반한 증거를 바탕으로 수립된 이론만 고수할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이 말은 과학이 발전하면 내용이 바뀔 수도 있음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특수상대성 이론에서 상대성이란 절대적인 정지 상태가 없다는 뜻이라고 설명하는 것으로 포문을 연 저자는 시간의 흐름은 보편적이지 않다고 결론 낸다. 저자는 양자역학이 관련되기 이전에 당시 알려져 있던 자연 법칙은 결정론적이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물리학자들은 자기가 쓰는 수학이 실재에 관해 실재보다 더 많은 것을 드러낸다고 생각하는 오류를 자주 범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과학의 목적이란 세상을 유용하게 서술할 방법을 찾는 것이라 말한다. 설명은 단순할수록 더 유용하다고 말하는 저자는 과학 이론은 우리가 세상에 관해 하는 이야기를 대폭 단순화한다고 결론 낸다.

 

저자는 흥미로운 말을 한다. 창조주 가설은 설명력을 정량화할 수 없다. 이 가설로는 아무것도 계산할 수 없다. 그렇다고 틀렸다는 건 아니지만 확실히 비과학적이다라고. 덧붙여 저자는 6000년 전에 이 세상 모든 것이 제 자리에 있도록 창조되었다는 말은 틀릴 것도 없고 쓸모도 없다고 말한다. 이 가설은 정량적으로 대단히 복잡해서 초기 조건으로 어마어마한 양의 데이터를 집어넣어야 한다.(58, 59 페이지)

 

우리는 가능한 한 많은 데이터를 취하고 거기에서 단순한 설명을 찾는다. 계산할 수 있는 데이터 안에 패턴이 많을수록 설명은 좋아진다. 저자는 초기 우주에 관한 모든 가설은 순수한 추정일 뿐으로 이러한 가설들은 수학이라는 언어로 쓰인 현대판 창조 설화라고 말한다. 여기에는 증거가 없을뿐더러 그 중 옳은 가설을 가려내려는 논쟁을 잠재울 수 있는 증거가 무엇인지 그 자체를 생각해내기도 어렵다고 말한다.(73, 74 페이지)

 

저자는 우주는 오직 제한된, 축복받은 시간 틀 안에서만 생명을 지원해줄 뿐이고 마침 우리는 그 틀 안에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아주 인상적인 말을 한다. 자연 법칙은 갑자기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만일 휙휙 바뀐다면 애초에 그것을 법칙이라고 부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미다.

 

저자는 의식이 있는 존재가 만들어지려면 입자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할까?라고 묻는다. 저자는 전체는 부분들의 합일 뿐이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말한다. 저자는 자신을 대단히 수학적인 사람이라 소개하며 개인적으로 수학을 일상생활의 언어로 번역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고 설명한다.

 

저자에 의하면 추상적 수학의 직관적 언어로 설명할 때 뭐가 문제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바로 양자역학이다.(174 페이지) 저자는 양자역학의 기이함은 대부분 양자역학을 일상의 언어로 억지로 설명하려는 데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독자들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양자역학에 대해서는 정확한 비유 같은 것은 없다. 그 비유가 정확하다면 더 이상 비유가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에 의하면 양자역학에서는 모든 것을 파동 함수로 서술한다.(176 페이지) 양자역학에서 결과 측정이 불확실한 것은 초기 조건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양자역학 자체가 그냥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에 의하면 혼돈 법칙도 실은 결정론적이다. 다만 초기 조건에 대단히 민감하게 의존하기 때문에 예측하기가 어려울 뿐이다. 양자 사건은 근본적으로 무작위적이며 그 어떤 것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

 

저자는 자유의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자유의지는 그 자체로 일관성이 없는 아이디어다. 의지가 자유로우려면 다른 무엇도 그 의지의 원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 뇌의 신피질에는 자연 법칙을 능가할 수 있게 해주는 마법의 용액 같은 것은 없다. 우리가 하는 일이라고는 제한된 정보 안에서 내릴 수 있는 최선의 결정이 무엇인지 가늠하는 것이 전부다.

 

결정은 우리 진화의 결과이며 자연 법칙 이상의 무언가를 요구하지 않는다. 저자는 자유의지가 있든 없든 우리는 지금 여기에 있고 그러므로 우리는 중요하다고 말한다. 또한 자유의지가 없어도 도덕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자신에게 가장 아름답고 가장 강력하고 가장 통합적인 원리를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최소 작용의 원리를 꼽을 것이라고 말한다.

 

최소작용의 원리란 자연계의 모든 물리적 현상이 항상 가장 효율적이고 작용이 최소화되는 경로를 따른다는 법칙이다. 자연 상수들이 왜 지금의 값인지를 알아내려는 시도는 물론 관측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평행우주를 끌어들이는 이론들도 모두 과학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냥 수학이라는 허울을 뒤집어쓰고 과학으로 변장한 종교라고 말한다.

 

저자는 적어도 과학자라면 자신들이 속한 분야의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가끔 우리가 내놓을 수 있는 과학적인 답이 그건 우리도 몰라요밖에 없을 때도 있다고 말하는 저자 다. 저자는 여전히 진행 중인 지식 발견 과정에서 종교와 과학은 앞으로도 한참 더 공존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한다. 과학 자체로는 한계가 있고 인간은 과학이 끝나는 지점에서 다른 방식의 설명을 갈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참으로 인상적인 말을 한다. 우리가 안고 있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먼 길을 꽤 잘 걸어왔다. 우리는 지구 위에서 진화를 직접 떠안은 최초의 종이다. 우리는 더 이상 자연환경에 의해 선택되지 않는다. 그 대신 우리의 필요에 맞게 환경을 바꾼다. 물론 이것을 잘해 나가고 있는지는 다른 문제다. 지구의 기후를 살기 좋은 범위로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걸 보면 우리가 복잡계인 동시에 일부는 혼돈계인 계를 정확히 인지하는 능력이 과연 있는지 심각한 의심이 든다.

 

어쩌면 기후처럼 다면적인 비선형성 계를 이해하기에는 우리 뇌가 역부족이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그렇다면 종국에는 과학 지식을 사용해 서식지 통제를 더 월등히 해낼 수 있는 종이 인간의 자리를 대체하리라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 모든 것은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 저자는 과학만이 유일한 뉴스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에게 과학은 직업이기 전에 영감이라 말한다. 과학은 세상을 이해하고 진정한 새로움을 발견하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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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에게 물리학, 지구과학에서 전자와, 전자의 에너지 상태는 중요한가?라고 물으니 두 분야에서 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지구과학에서는 광물 동정(同定)과 원소 분석에서 유용하며 오로라 현상 분석, 대기화학 등에서도 그렇다고 한다. 두 학문은 모두 미시세계의 전자 행동을 통해 거시 세계의 현상들을 명쾌하게 풀어내는 학문이라고 한다.

 

볼프강 파울리의 배타원리와 전자 오비탈에 대해 알게 해주는 책을 추천해달라고 하니 1. [스핀](이강영 지음), 2. [양자역학 이야기](팀 제임스 지음), 3. [우리집 강아지에게 양자역학 가르치기](채드 오젤 지음) 등을 추천한다. 사이토 가쓰히로의 [한 권으로 읽는 원자, 소립자, 양자의 세계]는 전자와 전자의 에너지 상태, 오비탈 등에 대해 말하는 책인가?라고 물으니 그렇다고 한다.

 

오비탈은 원자핵 주위에서 전자가 발견될 확률을 공간으로 나타낸 함수나 모형을 뜻한다. 과거에는 전자가 태양계 행성처럼 정해진 궤도를 돈다고 생각했지만 현대 양자역학에서는 전자가 워낙 빠르고 작아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다고 본다. 따라서 전자가 나타날 수 있는 '확률적인 구름' 모양의 공간을 오비탈이라고 한다.

 

지질학과 전자, 지질학과 오비탈은 관계가 있는가?라고 물으니 매우 깊은 관계가 있다고 한다. 전자는 물리, 화학, 지구과학, 생물 중 어떤 학문과 가장 관계가 큰가?라고 물으니 물리학이 가장 높고 화학은 높고 생물학은 보통이고 지질학은 낮다고 한다.(매우 관계가 깊다고 하면서 가장 낮다는 것이 부조화스러워 보인다.) 인공지능은 전자는 지질학이나 지구과학에서 지구 자기장 형성, 광물 분석 등과 관계되지만 직접적인 연구 대상은 아니라고 한다.

 

나는 그럼에도 전자, 오비탈, 파울리의 배타원리 등에 대해 관심이 많다. 현무암은 왜 검은가?라는 질문에 철이 많아서라고 답할 수 있지만 결국 전자의 에너지 상태 때문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현무암은 철이 많아서 검다고 말하는 것은 지질학적 설명이고 현무암 속 철 화합물들이 가시광선 영역의 빛을 거의 흡수하기 때문이라는 것은 물리학의 설명이라고 인공지능은 답한다. 그런데 숲해설사들은 나뭇잎이 초록색인 것은 광합성에 필요하지 않은 초록빛을 반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런 식이라면 지질해설사들도 물리학 차원의 설명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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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도시 개경 금요일엔 역사책 13
박종진 지음, 한국역사연구회 기획 / 푸른역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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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開城)은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명당의 기본 요소인 사신사(四神砂)를 갖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신사란 풍수의 대상이 되는 땅의 동서남북에 있는 산을 말한다. 그런데 개성은 일찍부터 물과 관련된 지세 즉 구불구불 흐르지 않고 거의 일직선으로 흐르는 것으로 인해 수덕(水德)이 불순하다는 말을 들어 왔다. 개성 내부에서는 상대적으로 물이 귀했지만 비가 많이 오면 그 물이 한 방향으로 쏟아져 내려와 수해로 연결될 가능성이 컸다. 크게 보아 개성은 예성강과 임진강, 넓게는 한강을 끼고 있는 지역으로 우리 국토의 중심부에 해당하는 곳이며 오래전부터 중요하게 여겨지던 곳이다.

 

태조 왕건은 9186월 태봉의 철원 도성 포정전(布政殿)에서 즉위한 지 7개월 만인 9191월 개경으로 수도를 옮겼다. 수도를 옮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노동력 징발 등 경제적 부담도 크고 이전 수도에 터를 잡고 사는 세력의 반대도 많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태조는 건국 직후 반란이 이어지는 불안정한 정세 속에서 정치적 안정을 위해서 천도(遷都)를 단행했다. 적현(赤縣) 6개와 기현(畿縣) 7개로 구성됐던 개성부는 현종 9년인 1018년 지방 제도 개편에 따라 혁파되고 개성현 지역과 장단현 지역을 중심으로 특별구역이 재편성되었다. 그것을 경기(京畿)라 부르게 되면서 우리 역사에서 처음으로 제도적으로 경기라는 명칭이 등장했다.

 

이후 경기 영역은 몇 차례 개편이 있었지만 왕도를 지원하고 보유하기 위한 특별구역의 위상은 고려 말까지 계속 유지됐다. 경기는 고려 왕도인 개경을 유지하고 보위하기 위하여 개경 바깥에 설치한 특별 구역이다. ()은 천자의 도읍, ()는 천자가 직접 관할하는 도성 주변의 땅을 의미했다. 경기는 사방의 근본이기 때문에 다른 지역보다 무역을 가볍게 하고 왕의 교화도 먼저 시작해야 할 것으로 인식되었다. 실제 경기 지역은 수도 개경을 둘러싸고 있는 곳이어서 오히려 다른 지역보다 요역(徭役)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 조세 부담이 많은 곳이었다. 또 국가의 위급한 일이 생기면 경기 지역에서 군역 징발(徵發)을 먼저 했고 경기는 다급한 재정 수요를 해결하기 위해서 임시세인 과렴(科斂)이 자주 시행된 곳이기도 했다. 이렇게 경기는 다른 지역보다 부담이 많은 지역이었기 때문에 조세 감면과 구휼(救恤)이 자주 수행되는 곳이기도 했다.

 

개경 도성 밖 사방에 설정된 사교(四郊)는 도성과 경기에 속한 군현 경계까지의 공간으로 조선 시기 한양의 성저십리(城底十里)와 비슷한 공간이었다. 사교는 도성은 아니지만 도성의 배후지로서 역, , 왕릉, 제사 공간 등 중요한 시설이 설치된 곳이었고 도성 안에서 할 수 없는 의례를 하는 공간이었다. 또 사교는 왕이 사냥을 하거나 군사가 주둔하고 훈련하는 곳이기도 했다. 대표적인 제사 공간인 태묘는 나성 밖 동교에 있었다. 또 고려 때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원구단(圜丘壇)은 원나라 이후의 천단이 북경 남쪽에 있었던 것과 같이 남교에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조선 중기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원구가 회빈문 밖에 있었다고 한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또 동남쪽에 있었던 적전(籍田) 역시 의례 시설에 속한다. 이 외에 송악산 정상과 박연폭포 근처에 있던 신사(神祀), 개경 주변에 분포한 왕릉과 절이 위치한 곳 역시 사교의 범위에 포함할 수 있다. 성을 성곽이라 하는 것은 보통 성을 내성과 외성으로 쌓았기 때문이다. 내성을 성()이라 하고 외성을 곽()이라 한다. 고려 시기의 모든 길은 개경으로 통했다. 개경의 주요 길은 궁궐, 관청, 시전(市廛) 등 중요한 시설과 성곽의 성문을 연결했다.

 

왕조시대 궁궐은 도성의 핵심 공간이었다. 궁궐은 국왕의 정치 공간이자 생활공간이었고 또 의례 공간이기도 했다. 고려 시기 개경의 정궁 곧 본궐은 송악산 남쪽에 있었다. 고려 말 이후 전각은 사라지고 터만 남은 고려 본궐터인 만월대의 경관은 조선의 법궁이었던 경복궁과 사뭇 다르다. 북한의 개성에 있는 고려 궁궐터는 지금 가기도 어렵지만 그것 말고도 고려 궁궐에 대한 이해는 쉽지 않다. 우선 송악산 남쪽의 본궐은 이름도 없다. 원래 이름이 없었는지 아니면 본래는 이름이 있었는데 지금 전해지지 않는 이유는 정확히 모른다.

 

고려의 본궐은 고려 초기부터 전쟁과 화재 등으로 훼손되었다가 중건되는 일이 반복되었다. 제일 먼저 확인되는 궁궐의 피해는 거란의 2차 침입 때인 1011(현종 2) 1월로 현종은 거란의 침입으로 개경을 떠난 나주까지 내려갔다. 개경에 돌아와서 본 궁궐에 들어가지 못하고 이궁인 수창궁으로 들어갔던 현종은 이후 두 번 궁궐 공사를 했다. 강화 천도 직후까지 남아 있던 개경의 수창궁은 몽골과의 전쟁 기간에 파괴된 것으로 보인다. 연경궁은 본궐 동쪽 가까운 곳에 있던 이궁이었다. 본래 현종의 비 원성태후의 궁이었던 연경궁은 덕종 때 왕의 누이 연경궁장공주에게 지급되어 공주 궁으로 바뀌었다가 1098년 숙종이 태자를 세우고 첨사부를 설치한 이후 공주 궁에서 왕의 이궁이 되었다.

 

고려 시기에 태묘와 사직이 정비된 것은 성종대였다. 이때 유교의 정치 이념을 바탕으로 중앙정치제도를 정비했고 건국 이래 제대로 갖추지 못했던 태묘와 사직을 설치했으며 아울러 유교적 교육기관인 국자감을 설치했다. 태묘와 사직은 도성의 상징적인 제도였기 때문에 그 위치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정해진 격식이 있었다. [주례]에는 궁궐을 중심으로 태묘는 왼쪽에, 사직은 오른쪽에 위치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것은 태묘는 동쪽에, 사직은 서쪽에 위치해야 한다는 뜻이다. 고려 시기 수도인 개경에 설치된 대표적인 교육기관이 국자감이다.

 

국자감은 교육기관이지만 교육만 맡았던 것은 아니다. 국자감에서는 공자를 비롯한 유학의 성인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일과 과거의 첫 번째 시험인 국자감시를 주관했다. 그래서 국자감에는 그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조직, 시설, 관원이 배치되었다. 많은 사람이 모여 사는 도시에서 시장은 꼭 필요한 시설일 뿐 아니라 도시의 상징이기도 하다. 인구의 집중과 시장의 발달에서 도시가 발생했다고 보는 견해는 도시사의 고전이론이다. [주례] 고공기에 조정 곧 관청은 궁궐 앞에, 시장은 뒤에 둔다고 한 것은 시장이 아주 오래전부터 도성에 꼭 필요한 시설이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개경의 절은 풍수적으로 개경을 비보(裨補)하는 기능을 했다. 고려 태조는 개경으로 천도하면서 개경에 절과 탑을 세워 개경의 풍수를 보완하는 작업을 했다. 고려왕릉은 조선 건국 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서 시간이 지나면서 많이 훼손되었고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도굴 등으로 본 모습을 잃었다. 해방 후 북한에서 고려 왕릉을 정비하고 그중 일부는 발굴조사도 했다. 최근에는 개성에 있는 고려 왕릉 일부가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지만 주로 개성 주변에 있는 고려 왕릉은 여전히 우리에게 낯설다.

 

조선 건국 후 고려 왕릉에 대한 관심은 크지 않았다. 조선 태조 즉위교서에서 왕우를 귀의군으로 봉하여 왕씨의 제사를 받들게 했지만 태조 때에는 고려왕릉의 관리까지는 관심을 가지지 못했다. 조선 초 고려왕릉에 대한 관리는 부실했고 숭의전에 모신 태조, 현종, 문종, 원종을 제외한 다른 왕의 능들은 거의 방치되었다. 조선 초 고려왕릉에 대한 관리는 1476년 성종 7년에 완성한 [경국대전]에 규정되었다. 그 내용은 역대 시조 및 고려 태조 이하 4(태조, 현종, 문종, 원종)의 능침은 소재지의 수령이 매년 돌아보고 또 밭을 일구거나 나무 하는 것을 금()한다는 것이다.(141 페이지)

 

고려는 몽골과 전쟁 중이던 12327월 강화로 천도 했다가 12705월 개경으로 돌아왔다. 919년 고려의 수도가 된 이후 개경은 강도(江都)로 천도하기 전까지는 외적의 침입과 정변 등으로 궁궐 등 주요 시설이 훼손되기도 했지만 수도의 위상은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그렇지만 1232년 수도를 강도로 옮기면서 개경은 수도의 지위를 내어주었다. 고려 말 개경의 위상은 공민왕 이후 천도 논의가 등장하면서 흔들렸다.

 

고려 전기에는 정종(定宗)이 서경 천도를 주장했고 문종과 숙종 때는 남경을 건설했으며 인종 때에는 묘청이 중심이 되어서 서경 천도를 주장했다. 또 강도로 천도했다가 개경으로 환도한 이후에는 1290년 원나라의 반란 세력인 카다인이 침입했을 때 충렬왕이 잠시 강도로 피신한 것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천도 논의는 없었다. 고려 말에 대두된 천도 논의에는 개경의 지리적 위치가 외적의 침입에 취약하기 때문에 내륙으로 수도를 옮겨야 한다는 논리가 보이기도 하지만 천도론은 대체로 이전 시기와 마찬가지로 개경의 지덕이 쇠했다는 지기쇠왕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고 아울러 천도론이 등장하는 배경에는 불안정한 정국의 변화를 꾀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었다.

 

고려 말 천도 대상지로 주목된 곳으로는 철원, 연주(지금의 연천군), 강화, 충주, 기달산, 회암(경기도 양주 회암사지) 등 다양했지만 실제 왕이 움직인 곳은 남경 곧 한양(백악)뿐이었고 그것도 천도라기보다는 몇 달 정도 왕이 거처를 옮긴 정도였다. 공민왕 후반기 이후 궁궐 운영과 관련하여 주목되는 것은 수창궁과 화원이다. 고려 초부터 중요한 이궁 중 하나였던 수창궁은 몽골군과의 전쟁 중에 소실된 것으로 보인다. 1370(공민왕 19) 공민왕은 수창궁 터에 행차해 조영(造營)을 명령했는데 이때 훼손된 본궐의 강안전과 연경궁 대신 수창궁을 중건하여 사용하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수창궁은 공민왕 대에는 완공되지 못했고 1384년 윤 9월 낙성되어 그 후 중요한 궁궐로 기능했다. 수창궁에서 공양왕과 조선 태조가 즉위한 것은 고려 말 수창궁의 위상을 보여준다. 또 충혜왕 때부터 보이던 화원은 1373(공민왕 22) 628각전을 건설한 후 우왕 때 주요한 궁궐 공간이 되었다. 우왕 14년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개경을 압박하자 수세에 몰렸던 우왕과 최영이 머문 곳이 화원이었는데 그것은 당시 화원이 우왕에게 가장 중요한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개경의 태묘는 나성(羅城) 밖 부흥산 남동쪽에, 사직은 나성 안 오공산 남쪽에 있었다. 나성은 고려의 수도인 개경을 둘러싸고 있던 거대한 외성이다. 수도 방어와 도시 구획을 위해 쌓은 성곽이다. 나성을 기준으로 보면 태묘는 나성 밖, 사직은 나성 안에 있게 되어 그 위치가 자연스럽지 않게 보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태묘와 사직이 설치되었던 성종 때는 아직 나성이 축조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당시 태묘와 사직은 모두 도성인 황성 밖이었다. 또 사직은 궁궐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에, 태묘는 궁궐에서 상당히 먼 곳에 있게 되어 태묘와 사직의 위치는 궁궐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성이 많이 어그러진다. 그렇지만 개경 궁궐의 위치 역시 서쪽의 오공산과 동쪽의 부흥산의 중심이 아니라 북쪽에 치우쳐 있었다. 즉 아직 나성이 축성되기 이전에 동쪽의 부흥산 남쪽에 태묘를 설치하고 서쪽에 오공산 남쪽에 사직을 설치했는데 나중에 나성이 축성되면서 결과적으로 사직은 성안에, 태묘는 성 밖에 위치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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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쯔만이 들려주는 열역학 이야기 - 과학자들이 들려주는 과학이야기 44 과학자가 들려주는 과학 이야기 131
정완상 지음 / 자음과모음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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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겁고 차가운 정도를 나타낼 때 온도를 사용한다. 우리는 물이 어는 온도를 섭씨 0°C, 물이 끓는 온도를 섭씨 100°C로 하고 그 사이를 100 등분한 눈금을 섭씨 1°C로 하여 온도를 정의한다. 온도는 왜 달라지는 것일까? 물질을 구성하는 분자들의 움직임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분자란 물질을 이루는 것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알갱이를 말한다. 분자는 온도가 낮을 때는 느리게 움직이고 높을 때는 활발하게 움직인다. 이러한 분자들의 움직임이 얼마나 활동적인가를 나타내는 것이 바로 온도다. 온도가 높은 물질에서 온도가 낮은 물질로 이동하는 에너지를 열이라 한다.

 

이때 이동한 열의 양을 열량이라고 하며 단위로는 칼로리를 사용한다. 1cal의 열은 물 1g을 섭씨 1°C 올리는 데 필요한 열량을 말한다. 열량은 물질의 질량에 비례한다. 또한 열량은 온도 변화량에 비례한다. 철의 비열은 8분의 1이다. 같은 질량의 두 물체에 같은 열량을 공급해도 비열이 작을수록 온도 변화가 크다. 비열이 작은 물질에는 열을 잘 흡수하는 성질이 있다. 물보다 철이 열을 잘 흡수하여 분자들의 운동이 더 활발해지기 때문에 온도가 더 많이 올라가는 것이다.

 

다른 물질에 비해 비열이 큰 편에 속하는 물은 온도가 잘 변하지 않는다. 사람의 몸도 온도가 잘 변하지 않는데 그것은 우리 몸의 70%가 물이기 때문이다. 비열이 낮은 철이 주요한 구성 성분인 현무암은 그 만큼 풍화 특히 온도에 약한가? 그렇지 않다. 현무암은 철과 마그네슘이 풍부하여 비열이 상대적으로 낮지만, 이 특성 때문에 온도 변화에 따른 풍화에 특별히 더 취약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암석의 치밀한 구조와 화학적 성질 덕분에 물리적 풍화에 대한 저항력이 강한 편이다.

 

바닷가에서는 낮과 밤에 부는 바람의 방향이 서로 다르다. 낮에는 바다에서 육지로 해풍이 불고 밤에는 육지에서 바다로 육풍이 분다. 햇빛을 받는 낮 동안 물은 비열이 높아서 온도가 적게 높아지고 모래는 비열이 작아 온도가 크게 높아진다. 따라서 온도가 높은 모래쪽의 공기는 뜨거워져서 위로 올라가고 그 빈 곳 바다 쪽으로 공기들이 밀려들어오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해풍이다. 밤에는 비열이 큰 물은 온도가 조금 내려가고 비열이 작은 모래는 많이 내려간다. 이때는 바다 쪽 공기가 더 뜨거워 위로 올라가고 그 빈 곳을 모래쪽 공기들이 채우므로 육풍이 부는 것이다.

 

비열이 크다는 것은 온도 변화가 크지 않다는 것이다. 올라가는 것도 크게는 아니고 내려가도 크게는 아닌 것이다. 철사줄을 뜨겁게 가열하면 길이가 길어진다. 이는 철사줄에 열이 공급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열에 의해 물체의 길이가 늘어나는 것을 열팽창이라 한다. 왜 열팽창이 일어날까? 뜨거워지면 분자들의 운동이 활발해지기 때문이다. 뜨거울수록 분자들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기 때문에 분자로 이루어진 물질들이 길어지게 된다.

 

같은 열을 가열해도 잘 늘어나는 물질이 있고 그렇지 않은 물질이 있다. 이때 비례상수를 열팽창 계수라고 한다. 이 계수가 클수록 열팽창이 잘 되는 물질이다. 고체와 액체 중 액체가 더 잘 팽창한다. 아주 더운 날 자동차 기름탱크에 휘발유가 넘쳐 흘러나오는 것은 바로 액체인 휘발유가 고체인 기름 탱크보다 팽창이 크기 때문이다. 물은 섭씨 4°C 이상이 되면 팽창한다. 온도가 섭씨 4°C 이하로 내려가도 팽창한다. 물은 섭씨 4°C 때 부피가 제일 작고 섭씨 4°C보다 커지거나 작아지면 부피가 커진다. 부피가 작다는 것은 밀도가 크다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밀도라는 말이 나왔다. 밀도는 물질의 질량을 부피로 나눈 값이다. 부피가 작으면 밀도가 커진다. 즉 온도가 섭씨 4°C일 때 물의 밀도가 가장 크다. 온도가 큰 물질은 밀도가 작은 물질에서 가라앉는다. 4°C일 때 물의 밀도가 가장 크다. 즉 가장 무거운 물이 된다. 그러므로 온도가 섭씨 4°C인 물과 다른 온도의 물을 섞으면 온도가 섭씨 4°C인 물이 무거워 밑으로 가라앉게 되는 것이다.

 

공기의 온도가 내려가면 공기와 부딪히는 호수 물의 온도도 내려간다. 이때 공기와 가장 가까운 호수 표면의 수온이 먼저 내려간다. 이렇게 표면의 수온이 내려가 섭씨 4°C가 되면 무거워져서 호수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이런 식으로 물의 온도가 섭씨 4°C가 되면 아래로 가라앉아 결국 모든 물은 섭씨 4°C가 된다. 이후 호수 표면의 온도가 더 내려가면 얼음이 된다. 얼음은 섭씨 4°C의 물보다 가볍기 때문에 호수 표면 위에 뜨게 된다. 이렇게 호수 표면이 얼게 되면 얼음 아래의 물은 차가운 공기와 만나지 않게 되므로 원래의 온도인 섭씨 4°C를 유지할 수 있다. 그래서 호수 표면의 얼음 아래는 물의 온도가 섭씨 4°C로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열은 온도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이동한다. 열이 전달되는 방식에는 전도, 대류, 복사가 있다. 물체를 통해 열이 직접 전달되는 것이 열의 전도다. 열의 전도가 일어나려면 분자들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야 한다. 즉 열의 전도는 주로 고체 상태의 물질에서 이루어진다. 액체나 기체에서 열이 전달되는 것을 대류라 한다.

 

검은색은 태양에서 오는 빛을 잘 흡수하고 흰색은 잘 반사시킨다. 이런 이유에서 겨울에는 검검은색 옷을 많이 입고 여름에는 흰색 옷을 많이 입는 것이다. 고체는 부피가 일정하고 모양이 일정하다. 고체가 열에너지를 받게 되면 분자들의 운동이 활발해져 분자들 사이의 거리가 멀어진다. 이러한 상태를 액체라고 한다. 기체는 부피도 일정하지 않고 모양도 일정하지 않다. 1g을 증발시키기 위해서는 539cal의 열을 공급해주어야 한다. 기체는 열에너지를 받아서 달아나게 되므로 남아 있는 물질은 열에너지를 잃어버린 셈이 된다. 그래서 남아 있는 물질의 온도는 내려간다.

 

증발은 액체가 열을 공급받아 기체가 되는 과정이다. 반대로 기체가 열을 빼앗겨 액체가 되는 과정을 응축이라 부른다. 구름이나 안개가 만들어지는 것도 응축 현상이다. 더운 공기가 위로 올라가면 다른 공기 분자들과 충돌하여 열에너지를 잃고 차가워진다. 이때 차가워진 공기 속 수증기가 응축하여 액체인 물방울로 바뀌어 구름을 만든다. 응축 현상이 땅 근처에서 일어나면 안개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사실 알고 보면 안개와 구름은 같은 현상이다. 이산화탄소는 섭씨 영하 78°C에서 고체인 드라이아이스가 됩니다. 이것이 열을 받으면 액체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기체인 이산화탄소가 된다. 기체 이산화탄소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열역학 제1 법칙은 에너지 보존법칙이다. 물질이 받은 에너지는 다른 종류의 에너지로 바뀌지만 모든 에너지의 합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닥에 있는 돌멩이가 저절로 위로 올라가지 않는다. 이런 일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원리가 바로 에너지 보존법칙이다. 바닥에 있는 돌멩이는 정지해 있으므로 운동 에너지가 0이고 바닥을 기준선으로 하면 위치 에너지 역시 0이다. 그러므로 돌멩이가 가진 에너지의 총합은 0이 된다.

 

만일 이 물체가 저절로 위로 올라간다고 하면 바닥보다 위로 올라갔으므로 위치 에너지는 플러스가 된다. 그런데 전체 에너지가 0이었고 이것이 보존되니까 운동 에너지는 음수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운동 에너지는 속력의 제곱에 비례하므로 음수가 될 수 없다. 그래서 돌멩이가 저절로 위로 올라가는 일은 절대 없다. 에너지가 보존된다고 했는데 그럼 왜 물체를 밀면 물체가 조금 움직이다 멈출까?

 

물체를 밀면 물체는 운동 에너지를 가지게 된다. 하지만 물체는 바닥과의 마찰 때문에 운동 에너지를 잃어버리면서 속력이 줄어들고 마지막에는 속력이 0이 되어 멈추게 된다. 그럼 이때 물체의 에너지는 사라진 것일까? 그렇지 않다. 이때 사라진 운동 에너지는 다른 종류의 에너지로 바뀐 것이다. 물체와 바닥의 마찰에 의해 생긴 열에너지가 바로 그것이다. 이렇게 물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종류의 에너지 총합은 보존되고 다른 종류의 에너지로 바뀌는 것이다.

 

모터는 전기 에너지를 운동 에너지로 바꿔주고, 전등은 전기 에너지를 빛 에너지로, 전열기는 전기 에너지를 열 에너지로, 발전기는 운동 에너지를 전기 에너지로, 열기관은 열 에너지를 운동 에너지로 바꿔준다. 외부로부터 에너지의 공급 없이 물체가 저절로 움직이는 일은 없다.옛날 사람들은 외부 에너지의 도움 없이 저절로 움직이는 기관을 생각했다. 그것을 제1종 영구기관이라고 부른다. 물론 열역학 제1 법칙에 따르면 그런 기관은 만들 수 없다.

 

엔트로피는 무엇으로 변하다라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 엔트로피에서 나온 말이다. 엔트로피란 무질서한 정도로 나타내는 양이다. 즉 무질서할수록 엔트로피가 크다고 말한다. 위로 올라간 공은 저절로 아래로 떨어진다. 물체는 위에서 아래로는 저절로 움직이지만 아래에서 위로는 저절로 움직이지 않는다.

 

자연에서의 어떤 과정은 한 방향으로만 진행이 되고 그 반대 방향으로의 과정은 저절로 일어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열역학 제2 법칙이다. 열역학 제2 법칙은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법칙이다


엔트로피가 점점 커져 최대가 될 때까지 반응이 이루어진다. 모든 열기관은 자신이 받은 열을 모두 일로 바꿀 수 없다. 이때 열기 관이 받은 열 즉 열기관이 한 일의 비율을 열기관의 효율이라고 부른다. 효율이 100%인 열기관은 존재하지 않는다. 만일 그런 기관이 있다면 그것은 열역학 제2 법칙에 위배된다. 그런 기간은 제2종 영구기관이라 부른다. 물론 그런 연구기관을 만들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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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부터 지질공원해설사 일을 했다. 2019년 말 발생한 COVID 19 때문에 근무 초부터 여러 모로 어려웠다. 해설사가 되기 위해 받은 교육은 퀄리티나 퀀티티 면에서 많이 부족했고 근무 이후 받은 교육도 그와 별 다를 바가 없었다. 대부분 스스로 알아서 해야 했다. 몇 차례 현장 답사와 실내 교육을 받았지만 체계와 지속성 면에서 많이 아쉬운 일정이었다. 나의 경우 연천 해설사가 되기 전 3년의 서울 해설 경험이 있었고 비교적 과학책을 많이 읽어 나름의 자신감을 가졌다.

 

2022년 말부터 서울대학교 지구과학교육 전공/ 일본 모() 대학 이학부(理學部) 박사 출신의 교수님께 메일을 드려 질문을 드리고 답을 받은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해설사가 된 지 6년이 된 지금 어느 정도 안정(安定)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안정이 안일(安逸)이 되지 않도록 늘 경계한다. 올해는 최근 몇 년간 부진했던 읽기를 떨치고 많은 책을 읽고 있다. 아직 5월이 며칠 남았는데 현재까지 63권을 읽었다.(나는 서평을 쓴 것만 읽은 것으로 계산한다.) 4권 정도를 제외하고 전부 과학책이다.

 

해설사가 되기 전과 후에 차이가 있다면 주로 의거하는 것은 과학책이나 되기 전은 여러 분야를 읽었고 지금은 지구과학 분야에 집중한다는 점이다. 물론 그런 가운데서도 올해는 물리학 책도 많이 읽었다. 원래 책을 많이 읽었지만 더욱 그러하게 된 것은 20253월부터 더 칼럼니스트에 지구과학 글을 쓰게 되면서부터다. 특기할 만한 책은 많지만 전공과 관련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책이 두 권 있다. 존 맥피의 [이전 세계의 연대기], 헬렌 고든의 [깊은 시간으로부터].

 

제목만 보면 지구과학 책이라 짐작하기 어려운 이 책은 문인(文人)이 쓴 인상적인 지구과학 책이라는 공통점으로 묶을 수 있는 책이다. 인류의 역사나 지구의 기록된 역사를 아득히 초월하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거대한 지질학적 시간 규모를 뜻하는 깊은 시간이란 표현은 존 맥피의 표현이다. 그것을 헬렌 고든이 책 제목으로 쓴 것이다.

 

올해 초 한 지질학 교수님께 헬렌 고든의 [깊은 시간으로부터]에 나오는 구절에 대해 문의했다. 그 구절은 영국을 남동에서 북서로 잇는 선(이스트앵글리아에서 하일랜드 서부로 이어지는 대각선)을 따라서 이동한다면 쌓인 지 얼마 안 되는 이스트앵글리아의 제4기 퇴적층에서부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해서 런던 분지의 고제3기 점토, 노스다운스의 백악기 상부 백악, 코츠월드의 쥐라기 어란석, 페나인 산맥을 둘러싸고 있는 트라이아스기의 사암, 레이크 지방의 오르도비스기와 실루리아기 암석들, 그램피언스 산맥의 캄브리아기 노두를 거쳐서 하일랜드 북서부와 헤브리디스 제도에 있는 가장 오래된 암석들에 이른다.”는 글이다.

 

교수님을 통해 나는 저 글이 그 교수님의 대학원 시절 영어(지구과학 영어) 해석 시험 지문으로 나왔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렇게 많은 부분은 통한다. 나는 이 인상적인 구절을 접하며 육지가 아닌 바다에 대해 전하고 싶었다판구조론이 보는 해양은 끊임없이 생성되고 소멸하며 지구 내부와 물질을 순환시키는 거대한 판(Plate)의 경계이자 무대다우리는 이렇게 근원적인 개념으로 상상력을 펼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할 수 있게 하는 최선의 도구는 책이다. 책은 최고의 스승이다. 가령 AI가 놀라운 능력을 발휘해도 좋은 질문을 하려면 좋은 책을 많이 읽어야 하다.

 

지난 번 알라딘의 나도 서점 주인 코너에서 나는 한 번역가에게 좋은 지구과학 책 많이 번역해달라고 부탁했다. 번역이 번역가가 홀로 정하는 것이 아니지만 바람을 표현한 것이다. 독기견서 여우고인(讀旣見書 如遇故人), 독미견서 여봉양우(讀未見書 如逢良友)란 구절이 있다. 이미 읽었던 책을 다시 읽을 때는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옛 친구를 만난 것과 같이 반갑고 아직 읽지 않은 새로운 책을 읽을 때는 좋은 친구를 처음 사귀는 것과 같이 설레고 기쁘다는 말이다. 이런 구절을 음미하는 5월은 책 읽기 좋은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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