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모해도 괜찮아, 쿠바니까
김광일 지음 / 이담북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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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여행을 다녀와서 내는 여행기 가운데 쿠바가 유독 많은 것 같습니다. 아마도 쿠바에 대한 묘한 환상 같은 것이 있어 쿠바를 다녀오는 분들이 적지 않은 것 같기도 합니다. 제 경우는 여행사 상품으로 남미를 다녀오는 길에 쿠바에서 2박을 하는 일정으로 아바나를 중심으로 쿠바를 구경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의 제 느낌은 과거로 여행하는 느낌에 더하여 갑자기 불어 닥친 개방의 물결에 정체성이 흔들리는 듯한 느낌도 없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무모해도 괜찮아, 쿠바니까>는 CBS 노컷뉴스의 김광일 기자가 2주나 밀린 연차를 몰아 다녀온 쿠바에서 겪은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휴가를 처음 떠날 때는 철저하게 혼자이고 싶었다지만, 시작부터 끝까지 혼자였던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혼자이고 싶을 때는 차라리 산사에 들던지 아니면 남해의 낙도로 들어가는 편이 훨씬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해외를 여행하는 한국 사람들 가운데 혼자서 고독한 여행을 즐기는 사람은 별로 없다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와 함께 하지 않으면 불안해지기 때문이라는데, 그럴거면 출발할 때 마음에 맞는 친구와 함께 여행을 떠나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떻든 저자는 쿠바에서 보낸 2주일의 휴가는 아바나, 플라야 히론, 트리니다드, 산타 클라라, 바라데로 등을 찾았는데,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서 떠난 여행이 아니라 일단 떠나고 보는, 현지에 도착해서 사정에 맞게 일정을 잡는, 그야말로 무계획이 계획인 여행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렇게 가는 여행이 진짜 여행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쿠바 사람들 속에 스며들어 그들의 삶을 제대로 느껴보았다는 이야기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여행을 떠난 시점도 적절해보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더위에 지쳐 일정을 잡지 못하고, 잡은 일정마저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경우도 있어 보여서 말입니다.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생기는 기시감은 아마도 이제훈 배우와 류준열 배우가 출연한 여행예능 <트래블러>에서 본 풍경을 뒤따라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체 게바라의 행적에 대하여 그리 후한 편은 아닙니다만, 기왕에 일찍부터 체 게바라의 삶에 공감해오셨다고 한다면 쿠바에서의 체 게바라의 행적을 뒤쫓아보는 것도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도 아니면 스페인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한 독립운동의 흔적을 뒤쫓아보는 것도 좋지 않았을까요?

물론 휴가를 떠나기 전까지 출입처를 전전하면서 쌓인 피로를 풀기 위한 여행이었기에 먹고, 마시고, 느리게 가는 시간 속에 몸을 맡기고 싶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오래 전에 미국에서 같이 근무하던 친구는 여름만 되면 북쪽에 있는 리조트에 가서 세끼 밥만 먹고 머릿속을 비우고 온다고 했습니다. 낮에는 나무 그늘에 누워 시원한 바람을 느끼고 밤에는 하늘에 뜬 별을 바라보는 것 이외에 책을 읽거나 생각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을 같이 풀어놓는 휴식시간이 휴가에서 돌아와 바쁘게 돌아가는 삶에 큰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하긴 긴장감을 풀어내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무엇이 최고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쿠바에서 돌아온 뒷이야기가 없었던 것이 조금 아쉬운 책읽기였습니다.

중견급 기자라서 어련히 알아서 챙겼을 것으로 믿습니다만, 읽다보면 책 읽는 흐름이 흔들리는 곳이 더러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쿠바 여행 일정을 마치고 공항을 거쳐 출국할 예정(69쪽)’이라는 대목은 굳이 ‘공항을 거쳐’가 들어갈 이유는 없어 보입니다. 여러 차례 등장하는 ‘두런두런 앉아 이야기하다’는 대목도 어색합니다. 결정적인 것은 제가 옮겨 적기가 무엇합니다만 순화된 표현을 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대목(81, 179쪽)도 있었습니다.

쿠바는 빠르게 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순박한 쿠바사람들을 경험하고 오는 여행자들도 없지 않지만 사회주의 특유의 사고에 당혹하는 경우도 없지 않은 듯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무모해도 괜찮은 여행은 없습니다. 무모한 도전은 사고를 부를 수 있기 때문에 안전은 철저하게 챙겨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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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 - 21세기 여행 사랑법
후칭팡 지음, 이점숙 옮김 / 북노마드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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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날 때는 여행과 관련된 산문집을 하나 챙겨갈 때가 많습니다. 여행 중에 여행에 관한 글을 읽다보면 쉽게 공감이 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홍콩에 주로 거주하면서 문필활동을 하는 후칭팡의 <여행자>는 얼마 전에 발트연안 국가들을 여행하면서 들고 갔는데, 읽을 짬을 내지 못해 도로 가져온 책입니다. 결론을 먼저 말씀드리면 여행 중에 읽었더라면 조금 실망했을 것 같습니다. 이야기가 두서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야기가 주제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흘러가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43꼭지의 글을 1장 여행, 2장 이국(異國), 3장 시선, 4장 경계, 5장 종점이라는 소주제로 구분해놓았는데, 어떤 글들은 소주제에 부합되나 싶은 것도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을 제시하면서도 구체적인 설명을 생략해서 궁금증만 키운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여행자는 우쭐하지만 곧 ‘어떻게 훈제연어를 가지고 여행할 수 있는지’ 뿐만 아니라 ‘어떻게 팩스와 같은 첨단 제품을 사용하지 않을 수 있는지’를 배워야만 했다.(221쪽)”라고 했는데, 기왕이면 그 답을 알려주었더라면 좋았을 것입니다. 훈제연어를 가지고 여행하는 방법은 훈제연어를 진공포장하면 냉장보관하지 않더라도 며칠을 가지고 다닐 수가 있습니다.

‘여행의 종점은 죽음이다’라는 제목의 글은 여자승객이 비행기여행 중에 심장발작을 일으켜 죽음을 맞는 상황을 겪은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승객이 죽음을 맞기까지 심폐소생술을 시행했다는 이야기가 없는 것은 무언가 잘못된 것 아닌가 싶습니다. 비행기가 착륙을 준비하는데 화장실에 들어간 승객이 나오지 않아 화장실 문을 열고 쓰러진 승객을 통로바닥에 끌어낸 것은 잘한 일인데, 심장박동이 있는지 확인하고 바로 누군가는 심폐소생술을 했어야 합니다. 기내에 의사가 탑승하고 있는지 방송하는 것보다 심폐소생술이 먼저가 되었어야 합니다. 결국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결정적인 시간을 방치한 채로 비행기가 착륙한 다음 병원으로 실어가 보았자 이미 주검이 된 후일 것입니다. 이런 경우는 아주 드문 경우인데도 불구하고 ‘여행의 종점은 죽음이다’라고 일반화한 제목을 달아놓은 것도 아니지 싶습니다.

‘새해 여행’이라는 제목의 글에서는 새해에 떠나는 여행이 여러 모로 불편하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새해가 되면(어쩌면 설날일 수도 있겠습니다) 박물관, 미술관, 극장, 백화점, 식당, 카페 등등이 모두 문을 닫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런 상황은 새해에 의미가 큰 아시아권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설날에 남미를 여행한 적이 있습니다만, 특별하게 불편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또 조만간 연말에 출발해서 새해 첫날 돌아오는 여행을 앞두고 있기는 합니다만, 새해 첫날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서 작가의 이야기에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홍콩의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는 여행객의 국적에 따라서 심사관의 대우가 달라진다는 이야기는 흥미로웠습니다. 미국 증권사에서 일하는 동료 몇 사람이 마카오를 경유하여 홍콩의 출입국 사무소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홍콩 거류증과 신분증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니, 아마도 미국 증권사의 홍콩지사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인 모양입니다. 미국 사람이 출입국 심사대를 통과하는 데는 1초도 걸리지 않았고, 프랑스 사람은 2초, 싱가포르 사람과 타이완 사람 역시 무사히 통과했다는 것입니다. 걸린 시간은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문제는 인도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야기가 갑자기 ‘인도 국적을 가진 동료가 세관을 통과하지 못했다(171쪽)’라고 적었습니다. 출입국심사대를 통과하고 수하물을 찾은 다음에 세관신고를 하기 마련입니다. 세관신고를 하지 않는 나라도 있습니다. 세관문제는 관세만 물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도 사람이 왜 입국이 거부되었는지에 대한 구체적 설명이 없어서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국적에 따라서 출입국사무소의 담당관의 시각이 다르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제가 겪은 일도 언제 소개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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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 마시고 마시고 - 베이징 메이트의 낮 따라 밤 따라 마시러 떠나는 여행
몽림.안정은 지음 / 이담북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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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책을 만났습니다. 내용도 재미있을 뿐 더러 편집도 독특합니다. 일단 내용은 ‘베이징 메이트의 낮 따라 밤 따라 마시러 떠나는 여행’이라는 부제처럼 낮과 밤에 각각 어울리는 무언가를 마실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처럼  낮 시간에는 주로 커피나 음료를 파는 카페를, 밤 시간에는 주로 주류나 음식을 파는 주점이나 식당을 소개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주제에 따라서 책을 읽는 방향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어디가 앞이고 어디가 뒤인지도 분명치 않지만, 일단 두 명의 저자의 서문이 있는 쪽을 앞이라 하는 것이 옳을 듯합니다.

저자들도 독특합니다. 몽림이라는 분은 여성인데 디자인을 공부하고 광고업계에서 아트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는데, 어느날 갑자기 베이징으로 직장을 옮기는 선택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안정은이라는 분은 남성인데 베이징에 있는 제일기획 중국법인에서 브랜드 플래너로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두 분이 광고업계에서 일하고 계시는 공통점 말고는 사뭇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몽림씨가 바람을 잡아서 책을 기획하고 베이징 사정을 잘 아는 안정은씨를 끌어들여 작업을 같이 하게 된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책을 읽은 이들을 베이징으로 초대하기 위하여 기본적으로 필요한 사항, 즉 북경 여행 전 알아두어야 할 정보를 소개한데 이어, 베이징 시내의 개략적 지리와 그 특성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한눈에 보는 랜드마크 특징’을 앞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북경의 낮에 반하다”라는 큰 제목 아래, 낮 시간에 가볼만한 카페들을 ‘낭만 가득 분위기 좋은 카페’, ‘색다른 경험을 즐기는 테마 카페’, ‘디저트와 식사를 겸비한 카페’ 등으로 나누어 소개하고, 덤으로 북경의 공원 두 곳, 차오양 공원과 퇀지에후 공원을 소개합니다.

광고하시는 분들답게 소개하려는 카페의 특징을 소개하는 너절하지 않고 간략하게, 그리고 카페의 안팎 분위기를 잘 파악할 수 있도록 사진도 넉넉하게 준비했습니다. 어쩌면 카페에 찾아왔던 분들의 초상권을 충분히 고려한 각도에서 사진을 찍었던 것 같습니다. 때로는 손님은 물론 점원까지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서 카페 주인의 협조 아래 특별한 시간에 사진을 찍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앞에서부터 소개하기로 한 카페에 관한 내용이 끝나면 갑자기 활자가 거꾸로 서 있는 쪽이 등장하면서 당황하게 됩니다만, 이때는 책을 덮어 뒷면부터 열어서 읽기 시작하면 됩니다. 책의 앞면이 낮을 의미하듯 하얀 바탕에 역시 하얀 벽을 가진 카페의 바깥 풍경을 담은 사진을 올린 것과는 달리 책의 뒷면은 밤을 의미하듯 까망 바탕에 불을 밝힌 카운터에 손님들이 늘어앉아 모습을 창밖에서 찍은 사진을 담았습니다.

책장을 열면 “북경의 밤에 취하다”라는 큰 제목 아래, ‘시원한 맥주를 마실 수 있는 곳’, ‘즐길 거리가 가득한 취향 저격 칵테일 바’, ‘예술 감각이 돋보이는 공간’, ‘조금은 특별한 밤을 보내고 싶다면’ 등의 작은 제목에 어울리는 주점이나 식당들을 소개한 다음에는 ‘장소에 따라 가보는 지도 맵’을 덤으로 넣었습니다. 읽는 중에 ‘술은 하루를 마무리하는 가장 좋은 방법(酒是結束一天的最好方式)이라는 문구를 붙인 가게가 있다는 소개말에 격하게 공감하였다는 말씀을 덧붙입니.

사실 저는 10여년 전에 회사일로 베이징에 딱 한 가보았습니다만, 그때도 직원과 현지 가이드의 도움으로 이동하고 밥 먹고, 술도 먹고 그랬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이 책 한권만 들고 베이징을 간다면 책에서 소개하는 곳을 하나도 찾아가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젊은이들은 다른 것 같습니다. 세상 어디에 내놓아도 가야 할 곳을 제대로 찾아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요즈음 젊은이들은 역사적 장소보다는 이야기가 있는 장소, 특히 무엇을, 왜 먹는가에 방점을 찍는 여행을 즐기는 경향이 생긴 것 같습니다. 그래서 특별한 장소에서 특별한 무엇을 먹기 위하여 일본을 방문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최근에 한일관계가 경색되면서 일본을 여행하는 것이 찜찜한 시점에 맞추어 베이징의 먹거리 명소를 소개한 것은 시의적절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먹거리 여행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 읽어볼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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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간호사로 살아보기 - 누군가에겐 또 하나의 꿈이 될 미국 간호사 도전기
김선호 지음 / 이담북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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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떠나 외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이담북스의 기획시리즈의 하나입니다. <뉴욕에서 간호사로 살아보기>를 쓴 김선호교수님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미국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꿈을 품었다고 합니다. 꿈을 이루기 위하여 국내에서 간호대학을 졸업하고, 병원에서 일하기 전에 미국 간호사 자격증(NCLEX-RN)을 취득했다고 합니다. 서울대학교 병원의 외과계 중환자실에서 2년을 근무하다가 미국 뉴욕에 있는 자코비 메디컬센터의 준중환자실에서 근무를 시작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고등학교 시절에 막연하게 꿈꾸었던 미국 간호사의 꿈을 현실화하게 된 것은 한국에서 간호사로 살아가는 삶이 행복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얼마 전에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었던 태움 문화와 관련된 것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뉴욕에서 간호사로 살아보기>는 에이전트의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미국에 건너가 취업에 성공하여 병원에서 근무를 하기 시작하는 엄청난 일을 혼자서 해치웠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야말로 이담북스의 기획의도에 잘 맞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부모 챤스’는 전혀 사용하지 않은 것 같아보여서 더 대견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저자의 따르면 미국의 병원에서 일하는 한국 간호사 선생님들이 많다고 합니다. 40년쯤 되었을까요? 우리나라 간호사들이 미국으로 가서 취업하는 열풍이 불었던 적이 있습니다. 외숙모께서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그 열풍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외삼촌께서도 잘되던 약국을 정리하고 온가족 모두 미국으로 터전을 옮겼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오셨습니다. 그야말로 ‘컴백홈’이었지요. 미국에서는 약사라는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직장을 구할 수 없었던 것도 이유였고, 미국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것도 듣던 것과는 다른 점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고, 또 미국에서 직장을 구할 생각을 하고 계셨으니 영어라던가 직업관련 업무에도 숙련도를 충분히 가졌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사실 저도 젊어서 온가족을 이끌고 미국에 공부를 하러 가면서 엄청 긴장을 했던 바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먼저 가 계시던 선배들의 도움으로 집도 구하고, 운전면허도 따고, 차도 사는 등, 쉽게 정착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받은 도움에 대하여 감사를 드렸더니 다들 그렇게 한다면서 다음에 오는 사람들이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된다고들 하셨습니다. 그때 느꼈던 점은 의과대학을 졸업하신 분들에게는 대부분 익숙할 족보가 없더라는 것입니다. 해서 새로 오시는 분들이 미리 알면 좋을 사항들을 정리하여 두었다가 전하게 되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제가 일하던 연구실에 일본에서 온 친구가 있었는데, 그들 사이에서는 “미네소타에서 정착하는 방법”이라는 책자가 이미 만들어져 전해지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곳에 새로 오는 사람들이 당면할 모든 상황에 대하여 구체적인 대응방안이 깨알같이 적혀있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놀라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뉴욕에서 간호사로 살아보기>는 미국에서 간호사로 일해볼 꿈을 가진 젊은이들에게는 좋은 참고서가 될 것 같습니다.

다만 일하는 병원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사건들은 그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임상사례에 불과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굳이 뉴욕이었어야 할까 싶기도 했는데, “나에게 뉴욕은 시계의 중심이었다. 이십대 후반에 시작한 이곳에서의 도전은 낯설고 힘들었지만, 내 가능성이 국경의 한계를 넘게 했고, 인종을 초월한 확장된 인간관계를 만들어 줬을 뿐 아니라, 내가 한국인이라는 애국심과 함께 만인은 평등하다는 인류애까지 갖게 해주었다.(17쪽)”라고 적은 소회는 약간 지나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박사과정을 이수하면서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기도 한데, 이런 과정에 끝나면 다시 뉴욕으로 돌아갈 계획을 가지고 계신 듯합니다. 꿈을 꿈에 머물게 하지 않고 현실로 가져오는 용감한 도전정신에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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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오이디푸스 부엉이총서 3
장-조제프 구 지음, 정지은 옮김 / 비(도서출판b)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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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오이디푸스 왕에 관한 이야기를 읽다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이 적지 않습니다. 오이디푸스신화는 잘 알려진 내용입니다. 오이디푸스는 테베의 라이오스 왕과 이오카스테 왕비 사이에서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델포이의 신전에서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동침할 것’이란 신탁을 얻게 된 라이오스 왕은 부하를 시켜 오이디푸스를 죽이도록 합니다. 부하는 어린 오이디푸스를 차마 죽일 수 없어 다리를 묶어 나무에 매달아놓았고, 지나가는 목동이 그를 발견하여 코린토스의 폴뤼보스 왕에게 바쳐 양자가 됩니다. 하지만 신이 결정해놓은 운명을 피해갈 수는 없어서 아버지 라이오스 왕을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하여 두 딸과 두 아들을 얻게 되고, 결국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본인이 두 눈을 찌른 다음 세상을 떠돌다가 아테네에서 숨진다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라이오스의 패륜적 행동에 노한 신이 태어날 아들에게 죽임을 당할 운명을 지어놓았던 것인데, 오이디푸스마저도 아버지를 죽인 패륜의 죄를 감당해야 했는가 하는 점입니다. 어려서 쫓겨난 오이디푸스는 코린토스에서 성장한 뒤에 자신이 아버지를 죽일 운명이라는 것을 알게되자 코린토스를 떠났던 것입니다. 즉 자신에게 메인 운명을 거부하려 한 것입니다. 그 바람에 실부 라이오스를 죽이는 운명의 실을 따라간 셈이 되었을 뿐입니다.

어머니 이오카스테와의 결혼도 상당히 작위적인 듯합니다. 테베에 등장한 스핑스크를 제거하는 영웅과 결혼하여 왕국을 맡긴다는 전제가 옳은가 하는 것입니다. 테베가 라이오스왕의 죽음을 알고 있었는지는 차치하과, 아무리 왕위가 좋다지만, 이오카스테와 오이디푸스의 나이 차를 고려한다면 과연 그런 결혼을 선택할 수 있을까요?

이런 의문에 대한 시원한 답을 얻지 못하고 있던 참에 읽게 된 <철학자 오이디푸스>에서 미끼가 될 만한 해석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프랑스 철학자 조제프 구는 오이디푸스 신화에 대한 철학적 해석을 재검토하고 프로이트가 제기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대하여 해석을 새롭게 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먼저 오이디푸스가 이아손, 페르세우스, 벨레로폰 등 다른 그리스 신화의 젊은 영웅들이 신의 도움으로 부여받은 과제를 해결하는 것과는 달리 신의 도움을 청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문제 해결방식 역시 자신의 지적 능력을 사용하여 해결하는 차이를 보였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이디푸스에 이르러 인간은 신의 권위로부터 독립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라는 해석입니다. 그런 오이디푸스에게 신은 패륜의 죄를 뒤집어 씌운 것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사실 그리스 신화를 보면 신들이 저지르는 온갖 패륜은 모두 신의 이름으로 용서가 되는 내로남불이 아닐 수 없습니다.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역시 신화의 핵심을 잘못 해석하여 세운 이론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겠습니다. 자신을 찾아온 환자들의 병력을 청취하다가 환자의 증상을 이 신화에 꿰어 맞춘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저자가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서양이 오이디푸스적이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하는 것을 보면 동양적 시각으로는 이해가 어려운 것이 틀리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합니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서 펼치는 설명이 상당히 위태로운 기획이라고 전제합니다. 먼저 오이디푸스 신화는 전형적인 신화의 양식에서 벗어난 변칙이며, 단순하게 신화 생성의 기제만을 설명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위계승이 그리스 신화의 일반적인 양태와 다른 것은 인도유럽어권의 시원적 분할의 틀 안에서 설명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나아가 그리스 이성을 창설하기에 이른 것이라고까지 합니다. 결국 ‘오이디푸스는 철학자의 형상, 즉 인간과 나의 원근법을 창시하기 위해 신성한 수수께끼를 거부한 원형적 형상이다’라는 결론을 이끌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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