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학의 역사에 나타난 이데올로기와 합리성 대우학술총서 신간 - 과학/기술(번역) 598
조르주 깡귀엠 지음, 여인석 옮김 / 아카넷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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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문학에 대한 우리사회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학 분야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고 있는 의학지식의 양에 눌리는 탓인지 인문학에 대한 작은 관심의 촛불조차도 켜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한국 의학의 이러한 모습을 콕 짚어 요약한 내용을 조루주 깡귀엠의 <생명과학의 역사에 나타난 이데올로기와 합리성>을 소개하는 글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오늘날 현대 의학은 묘한 역설에 빠져 있다. 그것은 현대 의학의 자기규정이나 미래에 대한 전망이 분명히 특정한 철학적 입장 위에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학은 철학과는 무관한 학문처럼 생각하는 역설이며, 또한 현대 의학의 발전은 오늘 진리로 여겨지던 사실이 내일은 다른 것으로 대치되는 지극히 역사적인 과정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나 오늘의 진리를 불변의 진리로 절대화하는 오류에 쉽게 빠져드는 역설이다.”

생명을 다루는 학문으로서의 의학이라면 그 안에서 생명에 대한 깊은 고뇌가 기술발전에 선행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기술발전이 눈부신 속도로 선도하고 있는 까닭에 미처 생명에 대하여 고뇌할 시간을 내지 못하고 허덕이는 우리의 자화상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근세에 이르기 전까지만 해도 동서양의 의학 수준이라는 것이 그만그만하였던 것이고, 오히려 동양의학이 보다 합리적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 것 같습니다. 심오한 동양철학에 기반을 둔 한의학이 질병을 치료하는데 있어 통합적 접근을 하고 있어 우수한 측면이 크다고 보는 한의학계의 주장도 있습니다만(http://blog.joinsmsn.com/yang412/12460282) 과연 동양의학의 발전을 위한 철학적 고뇌의 산물이 얼마나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서양의학이 현대의학으로 발전해오면서 관련이 있는 과학분야에서 이룩한 성과들을 의학에 녹여넣는 작업들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과학과 의학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그 본질을 대한 깊은 철학적 사유가 있었다는 점은 흔히 간과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조루주 깡귀엠은 철학을 전공한 다음에 의학을 전공하고 철학분야에서 활동한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과학과 철학, 의학과 철학의 관계를 깊이 천착하였는데, 당시 프랑스가 임상의학을 중심으로 하여 유럽의학을 선도하는 위치에 있었던 것도 요인이 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프랑스의 의학철학은 의학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사유와 의학의 생성과 변천과정에 대한 역사적 성찰이 결합하여 깊이 있는 반성을 하였고, 생기론을 중요한 요소로 하여 실증주의적 전통을 이어오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생명과학의 역사에 나타난 이데올로기와 합리성>은 깡귀엠이 발표한 글들을 책으로 묶은 것으로 제1부에서는 19세기 과학과 의학의 이데올로기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제2부에서는 19, 20세기 생물학적 합리성을 성취해온 과정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데올로기’라는 단어에 다소 민감해지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브리태니커사전에 따르면 “이데올로기(Ideologie)란 이론과 실천의 양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사회·정치 철학의 한 형태로, 세계를 설명하고 변화시키는 것을 뒷받침하는 관념체계"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혁명기에 철학자 A. L. C. 데스튀트 드 트라시가 주장한 '관념의 과학'의 약칭으로 처음 소개하였다고 합니다. 관념의 과학은 인간정신에서 편견을 몰아내고 이성을 복권함으로써 인간에 봉사하고 구원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조루주 깡귀엠이 중요하게 생각한 ‘과학적 이데올로기란 무엇인가?’ 제1부의 글을 여는 첫문장으로 던진 질문에 대하여 깡귀엠은 데스튀트 드 트라시를 인용하여 “이데올로기란 관념의 생성에 대한 과학으로 그 목표는 관념들을 자연현상과 같이 다루는 것이며, 살아있는 유기체이자 감각을 가진 인간이 자연환경과 맺는 관계를 표현하는 것(42쪽)”이라 정리하였다. 이데올로기란 원래 인간이 현실에 대한 관념을 획득하는 자연과학을 의미했으나, 마르크스에 의하여 현실에 대한 진정한 관계를 알지 못하게 된 어떤 상황에서 유래된 모든 관념의 체계를 의미한다는 개념으로 확대되었다는 것입니다. 깡귀엠은 과학적 이데올로기는 계급에 대한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같이 허위의식은 아니며 허위과학도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하고 있습니다.

깡귀엠은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존 브라운의 <의학원론>에 담긴 한계를 설명하면서 의학적 이데올로기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 또한 당시 주목을 받던 병리학, 생리학, 약리학 그리고 미생물학 분야의 성과들도 정리하고 있습니다. 특히 클로드 베르나르가 생리학을 과학적 의학의 토대를 이루는 기초과학으로 옹호하고 입증하려는 노력을 의학적 이데올로기라고 부르는 편이 나을 것 같다고 적고 있습니다. 또한 마장디가 소개한 실험의학의 의의를 소개하고 있는데, 생리학 분야를 비롯하여 약리학분야에서의 실험의학이 결과적으로는 서양의학이 현대의학으로 발돋움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제2부의 주제가 되고 있는 ‘합리성’은 이데올로기의 상대개념으로 깡귀엠이 제시하고 있는 개념입니다. 깡귀엠에 따르면, 생명과학에서의 과학적 이데올로기가 생명체의 외부에서 부과되는 외적 규범이고, 그 합리성은 생명체 자체가 스스로에게 부과하는 내적인 규범으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깡귀엠이 제2부를 18세기에서 19세기에 걸쳐 쌓여진 생물학적 조절개념을 인용하고 있는 것은 ‘합리성’이라는 화두를 논의하기 위함이라 생각됩니다.

근세에 이르기까지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의료계의 노력은 통상적으로 ‘써보니까 듣더라’하는 임상경험에 근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통의학이 아직도 전승되어오는 의학서에 기록되어 있는 치료법을 중심으로 운용되고 있고, 일부에서 새로운 처방을 개발하여 임상시험을 거쳐 실용화하려는 노력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반면 현대의학에서는 질병이 일어나는 기전을 추구하고 밝혀진 기전을 바탕으로 하여 치료법을 개발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초기에는 천연물질에서 추출한 약제가 사용되기도 하였지만, 곧 이를 바탕으로 합성하기도 하며, 이제는 질병을 유발하는 유전자를 건강한 유전자로 바꾸어 넣는 치료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치료법을 개발해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치료제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작용하는가 하는 확인하는 유효성시험이나, 개발된 치료제가 치료효과는 물론 독성을 가지고 있어 부작용을 나타낼 가능성까지 검증하는 안전성시험 등 동물실험과 임상시험 등을 통하여 철저하게 검증하게 됩니다. 깡귀엠은 의학의 영역에서의 과학적 접근 방식을 ‘의학적 합리성’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학적 합리성을 추구하는 정신이야말로 서양의학을 오늘날의 현대의학으로 변모시키는데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는 것을 깡귀엠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학적 합리성은 근대 서양의학의 가장 큰 특징을 이룬다. 르네상스 이후 새롭게 발달한 해부학적 지신을 임상적 지식과 결합한 파리임상의학파, 병리학을 생리학에서 연역하려 한 클로드 베르나르의 기획, 그리고 병원성 세균의 발견과 이를 죽이는 항생제의 개발로 완결되는 병인설과 치료의 패러다임은 근대 이후 서양에서 확립된 의학적 합리성의 대표적인 사례이다.(194쪽)”

깡귀엠이 과학적 이데올로기론을 내세운 배경에 대하여, “과학적 이데올로기론은 어찌 보면 과학의 담론을 손쉽게 이데올로기로 환원시키려는 ‘부유한 사회의 약화되거나 빈곤한 마르크스주의’인 사회구성주의로수터 과학적 담론을 지키기 위한 시도(192)”로 설명하신 여인석교수님의 후기에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제2부의 말미에서 언급된 생명체가 환경과 맺는 관계에 대하여 보다 발전된 논지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생명은 물질의 행동이다 (…) 그것은 기존 질서의 유지를 토대로 한다.(157쪽)”는 슈뢰딩거를 인용한 부분과, “생명이 생명체를 구성하는 요소 전체를 붙잡아두는 단순한 관계라고 생각하는 것은 실은 생명에 대한 거짓된 개념을 만드는 것이다. 그와는 반대로 생명은 요소들을 움직이고 운반하는 동력이다.(158쪽)”라는 퀴비에의 말을 보다 상세하게 풀어 설명을 해주었더라면 하는 점에서 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현대의학이 발전의 토대를 갖추게 된 프랑스 의학계에서 의학철학이 어떻게 기여했는지를 조금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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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2011-11-28 2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넷신문 <라포르시안>에서 댓글 이벤트를 하고 있습니다. 좋은 댓글 달아주신 한 분께 이 책을 드립니다.
http://www.rapportian.com/n_news/news/view.html?no=2637
 
이블플랜 - 당신의 가치를 높이는 40가지 발칙한 계획
휴 매클라우드 지음, 김미희 옮김 / 호미하우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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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중앙일보 인터넷 커뮤니티에 블로그를 만들어 운용해온 것이 만 7년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먼저 시작하신 분들보다는 다소 늦었지만 나름대로는 비교적 일찍 시작한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블 플랜>의 저자 휴 매클라우드가 블로그를 만들어 운용해온 것이 10년이 넘었다고 하니 그는 분명 새로운 사조를 일찍 읽는 얼리 어댑터(early adapter), 즉 선각자임에 분명합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의 10대 블로그로 선정될 정도로 독창적이고 대중의 시선을 끄는 내용을 담고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 무엇이 무엇이었는지를 요약해서 정리한 책이 <이블 플랜>입니다.

당연히 블로그를 통해서 구현했던 영감들이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자가 블로그를 통해서 정리해온 생각들을 처음 책으로 엮었던 <Ignore everybody>가 세상의 주목을 받았던 것처럼 <이블 플랜> 역시 SNS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 것으로 생각됩니다. 저자는 세상을 살아내는 일이 답답하다 느껴져 무언가 해야 할 절실한 상황에서 도움이 될 40개의 팁을 <이블 플랜>에 담고 있습니다. anff론 블로그를 통해서 구현한 것들이 중심이 되고 있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으로 바꾸어 생각해도 훌륭할 것들입니다.

저자는 그것을 ‘발칙한 계획’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당연히 그 발칙한 계획들이 계획단계에서 그친다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일입니다. 그리고 ‘발칙하다’고 한 것처럼 남들과는 분명 차별되는 그 무엇이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트윗이나 페이스북의 열풍에 밀려 블로그가 심각하게 위축되어가고 있다고들 합니다. 제 경우도 블로그를 개설하고 만 3년에 백만명 방문을 기록하고서 이후 4년 동안 5백만명이 방문하는 파워블로그(http://blog.joinsmsn.com/yang412)로 성장했지만, 최근에는 절반도 되지 않는 수준으로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습니다. 블로그 커뮤니티를 주관하는 주체가 운영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전환한 것이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만, 블로그를 운영하는 저 역시 활동을 축소하고 있는 것이 상승작용을 한 것이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미국인들이 운영하는 블로그는 대체적으로 전문성을 갖추고 방문객들에게 특화된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블로그가 많지 않다는 지적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최근 블로그의 영향력이 빠르게 위축되고 있는 것이라고 보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블로그는 분명 트윗이나 페이스북이 담아낼 수 없는 장점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제 생각이 저자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저자가 <이블 플랜>에 담은 40개의 팁이 모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만, 특히 제 경험상 크게 공감한 점들을 집중적으로 짚어보기로 하겠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믿음을 줄 수 있다면 시장은 무한하다.”라는 휴 선언(26쪽)은 저 역시 2008년 제2차 광우병파동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실감했던 부분입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파워블로그로 영향력이 클 블로거들이 대가를 받고 특정제품에 우호적인 홍보성 포스팅을 올려 그를 믿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피해를 입히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해서 블로그 커뮤니티 전체에 대한 신뢰를 떨어트리고 있는 것도 블로그 퇴조현상에 기여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저자가 “우리는 인생의 의미를 찾으러 이 세상에 왔다.”고 적은 부분은 제 큰 아이가 중학교 2학년때 학교수업에 흥미를 잃고 있을 때 “네가 세상에 태어난 것은 세상에서 네가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네가 해야 할 몫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 충분히 준비해야 할 것이고, 공부도 중요한 준비물이다.”라고 해주었던 말하고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당신만의 ‘글로벌 마이크로브랜드’라는 말은 방문객의 시선을 붙잡아 맬 특화된 컨텐츠를 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파워블로그로 관심을 끄는 블로그 역시 평범하지 않는 이슈를 다루고 있습니다.

“모든 이에게 당신의 재능을 기부하라”는 38번째 이슈에 크게 공감하면서 최근에 소홀하고 있음을 자책하게 됩니다. 블로그를 만들었던 초기에는 이벤트를 통해서 조그만 선물도 자주 하고 온라인에서 만나는 분들과 오프라인에서도 관계를 맺고 만나게 되었습니다만, 언젠가부터 교류가 시들해지고 있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특히 제 전공을 살려 건강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고 응급상황에서는 도움이 될 조언도 해드렸던 역할이 이제는 아주 미약해진 이유는 아마도 블로그 커뮤니티 안에서 소통하는 노력이 줄어든 탓이라 생각합니다.

저자는 광고회사의 카피라이터로 일하는 자신의 전공을 제대로 살려 카툰과 함께 사랑과 일, 미래와 성공에 관한 촌철살인의 글을 올려 수백만 건의 다운로드를 기록할 정도로 폭발적인 주목을 받았다고 합니다. 사실 카툰이나 광고카피 같은 짧은 문구는 미국사회의 문화적 배경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어야 그 감동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이블 플랜>에 담고 있는 저자의 카툰이나 경구가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어떻게 전달이 될지 궁금합니다만, 본문에 담긴 블로그를 매체로 한 인생에 대한 저자의 철학은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작성된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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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도 10도 - 종교가 전쟁이 되는 곳
엘리자 그리즈월드 지음, 유지훈 옮김 / 시공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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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종교가 전쟁이 되는 곳’이라는 부제가 없었더라면 <위도 10°>의 의미가 무엇일까 궁금한 채로 책을 읽기 시작하였을 것입니다. 위도 10도 특히 적도에서 북위 10도에 이르는 1,126킬로미터에 걸치는 지역은 유독 종교갈등이 심각한 나라들이 많이 분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역마다 역사적 배경이나 종교갈등을 일으키는 직접적 원인에서 다소 차이가 있다는 것도 엘리자 그리즈월드의 <위도 10°>를 읽고서 알 수 있었습니다.

뉴 아메리카 재단(New American Foundation)의 선임 연구원인 엘리자 그리즈월드는 미국 복음주의 교단의 수장인 프랭클린 그래이엄 목사를 동행하여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 수단, 소말리아, 아시아의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그리고 필리핀 등 이슬람과 개신교의 갈등이 심각한 지역을 직접 방문하여 취재하여 갈등의 원인과 현황 그리고 앞으로의 전망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취재결에 따르면, 이 지역들에서 일어나고 있는 종교적 갈등은 영토문제, 물과 석유와 같은 자원을 둘러싼 이해의 충돌 그리고 상대종교의 공격적인 포교에 자극을 받아 대응차원의 포교가 진행되면서 충돌하는 경우 등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지역에서 종교적 갈등의 뿌리는 수백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오랜 역사를 가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적도에서 북위 10도에 이르는 지역에는 전 세계 13억 무슬림의 절반이 살고 있고, 20억 기독교의 60%가 살고 있는 만큼 역학구도 상 충돌이 촉발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습니다. 이슬람과 기독교가 타 종교에 대하여 공격적인 경향이 있다고 이해하고 있었습니다만, 이슬람교의 경전에는 다른 종교와 평화롭게 지내라는 구절이 있고, 기독교와 유대교는 같은 성서를 가진 종교로 좋은 관계를 가질 수 있었으면, 중세 에스파냐에서는 이슬람교와 기독교 그리고 유대교가 사이좋게 지낸 바 있었으며, 로마제국 역시 자신의 종교를 인정하는 타 종교에 관대하게 수용하였으며, 불교를 믿었던 제국의 아소카 황제 역시 타 종교를 관용한 바 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시대에 기독교가 박해를 받았던 것은 로마의 종교를 이교로 규정하여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유대교와 갈등을 빚었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유대교가 관련되었다는 성서적 해석으로 인하여 유대교를 박해하기 시작하면서 였다고 합니다. 최근들어서 강화되고 있는 민족의 정체성이 종교와 깊은 연관을 맺게 되면서 지역내 종교간의 갈등이 심각해지는 경향을 띄게 되었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세계는 왜 싸우는가?>의 저자 김영미PD님은 인간의 힘으로 통제가 불가능한 기후변화는 사람들로 하여금 종교에 의지하게 만들기 때문에 적도를 중심으로 한 지역이 특히 종교의존적일 수밖에 없는 것은 기후변화로 인하여 삶이 척박한 탓도 있다고 보았습니다. 또한 저자가 복음주의자인 프랭클린 그레이엄과 동행하여 취재를 진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무슬림과 기독교 어느 편으로도 편향되지 않은 중간자적인 입장에서 인터뷰 당사자들의 주장을 담아내고 있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서문을 통하여 “나는 무엇보다도 종교적 신념으로 살아가는 지역주민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31쪽)”고 하였습니다. 저자가 분쟁지역을 돌아보면서 취재한 결과를 읽으면서 이 지역 거주하는 주민들이 자신의 종교를 쉽게 바꾸려 들지 않는 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에서 이슬람교나 기독교 모두 선교활동을 강화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기독교의 경우 유럽과 미국의 선교사들에 의하여 주도되던 선교활동에 우리나라에서 파송되는 선교사의 비중이 크게 늘고 있고, 그런 까닭에 선교지역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사태가 빈번해지는 경향이 있어 외교당국이 개입하여 선교활동에 각별한 주의를 당부하는 사태까지 불러오게 된 것 같습니다.

저자는 분쟁지역의 종교갈등을 역사적 배경으로부터 인종적 요인, 환경적 요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자료를 섭렵하여 인용하고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나이지리아편에서는 이 지역의 종교 지도자들이 공존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띕니다. 특히 “사람아, 우리가 한 남녀에서 너희 모두를 창조했고, 서로의 차이를 알 수 있도록 인종과 부족을 나누었노라”는 내용의 쿠란의 사실서(49:13)를 인용하거나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라는 사도행전(17:26)을 인용하고 있어 좋은 결과로 마무리되기를 기원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중세 유럽국가가 주도한 십자군전쟁에 까지 거슬러가지 않더라도 지난 세기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지경영의 후유증이 이 지역에서 종교갈등의 원인으로 남겨져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복음주의파들의 선교활동 강화가 맥을 이어가고 있다고 보이는 것입니다.

<위도 10°>를 통하여 아프리카와 아시아 지역에서 고조되고 있는 종교갈등의 원인과 현황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지역의 선교에 우리나라에서 파송되는 선교사들의 비중이 늘러 무시하지 못할 정도의 수준에 도달했다는 점에서 특히 피해를 보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으면 하는 바람을 세워보았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습니다만, 저의 동서도 이 지역 가운데 한 곳에서 선교사로 사역하다가 소천하게 되어 가족들 뿐 아니라 주변사람들이 많이 아쉬워했던 기억도 새롭습니다. 이슬람국가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계시거나 준비하고 계신 분들은 꼭 한 번 읽으시면 현지의 분위기를 이해하시는데 크게 도움이 될 책이라 생각합니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작성된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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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같은 사원 만들기 - 전 직원이 리더십을 발휘하는 디즈니의 사원교육법
후쿠시마 분지로 지음, (주)KR2 경영연구소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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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테마파크는 미 플로리다주에 디즈니랜드를 설치하면서 시작해서 LA에 디즈니월드 그리고 파리, 동경 홍콩 등에도 개설하여 플로리다에까지 가지 않더라도 디즈니랜드의 독특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습니다. 제 경우는 디즈니랜드를 방문할 기회는 아직 만들지 못했습니다만, 2002년 가을 추수감사절 연휴를 이용해서 LA에 있는 디즈니월드를 찾아 그 분위기를 가족들과 함께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장같은 사원만들기>는 도쿄디즈니랜드에서 근무한 후쿠시마 분지로씨가 일본 디즈니랜드의 독특한 조작문화를 통한 조직관리기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Build the ultimate staff even with 90% part-timers'라는 원제목에 담은 저자의 집필의도를 잘 살린 <사장같은 사원만들기>입니다만, 이 책을 통해서 우리는 요즈음 우리사회에서 유행이 되고 있는 조직문화에 적응하는 방식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미국 내에 있는 디즈니 테마파크의 운영실태가 도쿄 디즈니랜드와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을 것 같습니마난, 저자의 설명대로라면 도쿄디즈니랜드는 분면 미국의 디즈니랜드와는 분명 커다란 차이가 있을 것 같습니다. 즉, 미국식 테마파크 운영방식이 일본문화와 접목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일본 디즈니랜드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경험적으로 느낀 부분이 있기 때문에 조금은 단정적으로 이야기 할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동경디즈니랜드에 근무하는 모든 직원은 기본적으로 도쿄 디즈니랜드를 찾는 방문객, 즉 게스트가 최우선이 되는 시스템에 녹아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디즈니월드를 방문했을 때 느낀 소감으로는 디즈니월드의 직원들은 그렇지 못하더라는 점을 절감하는 상황을 만났더라는 말씀을 드리려 합니다. 당시 제 아이들이 8살 4살 이었는데, 디즈니 캐릭터를 만나게 되자 조금은 흥분된 상태였습니다. 그 캐릭터와 사진을 찍고 싶다고 해서 게스트와 같이 사진을 찍고 있는 캐릭터역할을 하는 직원, 아르바이트인지 정직원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에게 우리 아이들과 사진을 같이 찍어 달라 부탁을 했지만 백인아이들과만 사진을 찍으면서 우리아이들을 교묘하게 외면하는 디즈니월드의 직원들의 행동을 보면서 분통을 터트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기 때문입니다. 디즈니월드의 캐스트가 보였던 행동은 저자가 주장하는 동경디즈니랜드의 캐스트가 보인 감동적인 고객졸도 서비스와는 비교할 수 없는 치졸한 행동이었다는 점을 오랜 세월이 지난 이제 와서야 밝히게 됩니다.

후쿠시마 분지로씨가 설명하고 있는 도쿄 디즈니랜드의 스태프들이, 심지어는 90%가 아르바이트 직원임에도 불구하고 고객서비스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는 <사장같은 사원만들기>는 분명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배워야 할 점이 많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새로 들어오는 직원들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선배 스태프들이 취하는 자세 역시 본받을 점이 많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우리 사회의 많은 직장들이 다면평가체계를 도입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면평가를 시행하는 조직에서 일하고 있는 중견 사원들이 후배들을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 참고할 수 있는 점이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우리는 흔히 연배 차이가 많이 나는 까마득한 선배들보다 바로 1년 먼저 입사한 선배가 더 무섭다는 이야기를 흔히 하는 것 같습니다. 사수-부사수의 관계라고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만, 직속선배가 무서운 것은 조직에서 살아남는데 필요한 절대적인 노하우를 전수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가장 큰 이유가 될 것 같습니다.

저도 콘택트렌즈를 착용해보았습니다만, 콘택트렌즈를 떨어트리게 되면 찾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경 디즈니랜드의 캐스트들은 오후와 밤근무조가 자발적으로 모두 참여하여 게스트가 잃어버린 콘택트렌즈를 결국은 찾아내고 마는 근성을 보여준 사건을 읽으면서 참으로 무섭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한 열정이 있었기 때문에 얼마 전 쓰나미로 원전이 파괴되는 엄청난 지진이 일어난 순간 그 영향을 받은 동경디즈니랜드를 찾은 관람객들은 스태프들의 일사분란한 대응으로 혼란을 겪지 않고도 대형지진에 잘 대처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정리를 해보면, <사장같은 사원만들기>는 조직생활을 하는 직장인이라면 실감할 수 있는 무엇을 챙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책의 두께도 얇아 눈길을 끌기가 쉽지 않은 책입니다만, 책두께에 비하면 분명 얻어 챙길 것이 많은 그런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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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한의학 - 알기 쉽게 다가오는 한의학의 지혜
이상곤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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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에는 한의학에 관한 책을 소개합니다. 한방 안이비인후과를 전공했다는 이상곤박사님이 쓰신 <낮은 한의학>입니다. 한의학에 대한 관심은 많지만 한의학을 깊이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상세하게 언급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의료계와 한의계의 갈등이 첨예한 시기라서 조심스럽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낮은 한의학>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 가운데 의료계의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 있다고 보아 같이 논의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상곤박사는 한의학을 감싸고 있는 신비적 아우라를 걷어내 그 뿌리를 보여주고 싶어 글을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작고 분명한 목표에 예리한 솜씨를 보이는 현대의학보다, 몸의 지혜를 전체적인 관점에서 접근해가는 한의학적 가치를 드러내는데 일조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도 적었습니다. 그런 집필의도를 살리기 위하여 한의학적 사유의 본질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일화에 인문학적 깊이를 더하려 했다고 합니다.

완독을 한 느낌을 일단 정리해 보면, 이상곤박사님의 주장대로 한의학이 의학으로서 자리매김을 해오기까지 수많은 임상사례의 성공과 실패를 바탕으로 발전해왔기 때문에 한의학은 아직 정교하지는 않았지만, 그 옛날의 수준으로 본다면 나름대로는 과학적 접근이었다는 평가를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의학이 관념적이고 추상적이며 검증되지 않은 비과학적 술수라고 치부되는 시각에 억울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신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의학 이론 가운데는 요즈음의 판단기준으로 볼 때 비과학적인 것들도 일부 있는 것 같습니다.)

이상곤박사님이 집필의도를 제대로 살리기 위하여 인용하고 있는 자료의 방대함에 먼저 경의를 표합니다. 동서양의 고금문헌을 섭렵하고 이들을 적절하게 인용하여 매끄러운 논리로 연결하여 독자로 하여금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습니다. 또한 한의학 뿐 아니라 현대의학의 이론까지도 인용하여 환자의 병증을 설명하는데 있어 공통분모를 찾으려는 노력에 놀라게 됩니다.

우리나라 한의과대학에서는 현대의학의 영역이라 할 수 있는 기초의학과 임상의학의 이론을 공부하는데 상당한 시간을 배정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상곤박사님이 <낮은 한의학> 곳곳에서 현대의학의 이론을 인용하여 환자 사례의 병증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 이해되는 점이기도 합니다.

“소의는 병을 고치고 중의는 인간을 고치며 대의는 사회를 고친다(小醫 治病 中醫 治人 大醫 治國)”는 옛말이 있습니다만, 환자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병을 잘 고치는 의사만나기를 가장 원할 것 같습니다. 명의는 운도 따라줘야 하겠지만, 당연히 많은 공부와 다양한 사례를 경험함으로써 정확한 진단을 내리고 그에 합당한 치료방법을 적용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의과대학을 졸업하고서도 전문의과정을 수련하는데 많은 시간을 들이고 있는 이유입니다.

그렇습니다. 한의과대학에서 공부하는 정도의 짧은 현대의학의 지식수준으로 환자의 병증을 논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상곤박사가 곳곳에서 인용하고 있는 현대의학의 이론들이 때로는 무리하다 싶게 해석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간단한 예를 들면, 조선 성종대왕께서 붕어하시는 과정을 보면, 성종 25년 12월 22일 “이질로 편찮은 데다 부종을 앓았다.”는 병세가 처음 기록되었는데, 의관 송흠은 ‘성상의 몸이 매우 야위셨고 맥이 급하게 뛰며, 허리 밑에 종기가 있고 호흡이 불규칙적이고 입술이 건조하다’고 보고했다고 합니다.

성종께서는 소갈병(당뇨)을 앓았는데 특별하게 손도 써보지 못하고 24일 붕어하셨다는 것입니다. 성종대왕의 병증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붕어하신 것은 지병인 당뇨에 생기기 쉬운 종기에서 빠르게 증식한 황색포도상구균이 어느 시점에 혈관으로 침입하여 패혈증으로 발전한 것으로 보입니다. 패혈증으로 발전하면 강력한 항생제를 무기로 하고 있는 현대의학으로도 아직 구명할 확률이 크지 않은 형편입니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종기는 “억울한 일을 당해 마음이 상하거나 소갈이 오래되면 반드시 옹저나 정창이 생긴다.(112쪽)”고 하였고, 난경에 따르면 ‘신수(腎水; 신장의 혈액이라 설명함)가 부족해서 생기는데 신수가 고갈되면 혈장이 줄고 혈구만 남아 피부 밑에 쌓여 응고된 것이 적취(종기)’라는 되어 있는데, 이상곤박사는 ‘서양의학의 설명과 대동소이하다’(86쪽)고 적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대의학에서 설명하는 종기는 피부를 깨끗하게 관리하지 않아 모공의 입구가 막히게 되면 세균이 증식하면서 화농성 염증을 일으켜 생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황색포도상구균이 가장 흔한 원인균입니다. 종기를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여 종기에서 증식하던 세균이 혈관으로 침입하게 되면 패혈증으로 발전하여 사망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저자는 세종대왕께서 고통을 받으셨다는 풍질이 현대의학에서 사용하는 강직성 척추염이라고 단정하고, 세종대왕의 병증 모두를 강직성 척추염으로 설명하려 들고 있습니다. 강직성 척추염은 일종의 면역체계의 이상으로 생기는 면역관련 질환으로 다양한 증상을 나타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상곤박사가 강직성척추염의 근막증후군으로 설명하고 있는 세종대왕의 통증은 섬유근통증후군의 가능성도 충분히 고려할 필요가 있으며, 세종대왕의 시력이 감퇴되어 실명에 이르게 된 것을 강직성척추염의 후유증으로 설명하는 것보다 당뇨병의 합병증으로 많이 나타나는 당뇨병성 망막증으로 설명하는 것이 적절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 문헌으로 기록되어 있는 과거인물의 질병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자료가 제한적이라서 쉽지 않다는 것을 참고하셔야 할 듯합니다.

그밖에도 오줌이 독성을 가지고 있다(88쪽), 부신에서 성호르몬이 분비된다(93쪽), 말라리아의 치사율이 소아를 제외하면 별로 높지 않았다(98쪽), 생물이 적당한 영양분과 온도와 습도를 제공할 때만 바이러스의 서식지가 된다(161쪽), 젖꼭지가 젖을 만드는 기관이다(195쪽), 비장이 위장과 더불어 소화계의 부부이다(204쪽), 현대의학의 관점에서 보는 면역이 체온을 높이는 방식과 점액을 분비하여 방어하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211쪽), 등등 곳곳에서 현대의학의 이론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듯한 인용을 보게 되는데 이를 읽은 독자들이 왜곡된 의학지식을 기억하게 될까 우려되는 점입니다.

독일의사 요한 아담 쿨무스가 지은 <해부학도감>을 최초로 번역하여 <해체신서>라는 이름으로 일본에 소개한 일본의 의사들이 한의학을 연마하였기 때문에 일본의 근대화에 한의사가 기여했다고 설명한 부분도 적절해보이지 않습니다. 일본의사들이 처음 일본의 전통의학을 공부한 것을 옳을 것입니다. 하지만 네덜란드에서 들어온 서양의학을 접하고서 그 우수성에 착안하여 일본에서 활용할 목적으로 서양의학을 다시 공부하였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번역도 가능하였을 것이고, 그때쯤에는 전통의학을 버렸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뿐만 아니라 유네스코 자문위원들이 “동의보감은 독창적이면서 아직도 여러 방면에서 서양의학보다 우수하다고 인정받고 있다.(223쪽)”고 인용 것도 지나친 감이 없지 않습니다. 동의보감의 우수성을 강조하려는 뜻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만, 정도를 넘어 곡학아세(曲學阿世)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혹이 들게 됩니다.

저자는 연전에 유행하여 방역당국을 긴장하게 만들었던 신종플루에 관해서도 치료제로 각광받고 있는 타미플루가 한약재 대회향으로 만들어졌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대회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회향에 함유된 시킴산이라는 성분을 토대로 하여 합성된 것이라고 해야 옳을 것 같습니다. 이상곤박사는 무서운 신종플루가 유행한다면 (타미플루가) 전 국민의 5퍼센트에도 돌아가기 어렵고, 내성이나 부작용이 걱정되는 상황이며, 신종플루 백신도 사후약방문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균형을 추구하는 한의학적 지혜를 우선 빌려볼 것을 권하고 있는데, 이처럼 대담한 보건의료정책을 권할 수 있는 용기는 지나친 것 아닐까요?

솔직하게 말씀드려 한의학의 이론을 집대성한 장중경이 6할의 일가친척을 전염병으로 잃은 뒤, 전염병관리방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상한론>을 완성했다고 합니다만, 전통의학에서 천연두, 콜레라 등과 같은 전염병을 사전에 예방하거나 치료방법을 정립해두었다면,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전염병으로 엄청난 숫자의 백성들이 죽음을 당하고서야 물러났다는 역사적 기록은 과연 무엇이란 말입니까? 대체적으로 보면 자연면역을 획득한 사람들이 늘어 전염병의 확산이 스스로 수그러들 때까지 환자들을 고립시키는 수동적 대응방식으로 전염병의 확산을 필사적으로 막았다는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만, 전통의학의 묘방이 전염병환자 발생을 차단하거나 확산을 차단했다는 기록을 읽은 기억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정리를 해보면, 이상곤박사는 <낮은 한의학>에서 여러 차례 한의학의 우수성과 현대의학의 한계를 강조하면서 상호보완이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현대과학은 위대하다. 그러나 결코 완전하지 않다. 앞으로도 보완해야 할 것도 많고, 새로 밝혀낼 여지도 많은 것이다. 그러므로 서양의학에 대한 과신과 맹신은 어리석은 일이다. 한의학이 근대 이후 서양의학이 여러 분야에서 이룬 성과를 받아 안으면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것처럼, 질병과 그 원인 자체를 도려내는 데 몰두하는 서양의학은 전체의 균형을 생각하며 종합적인 효과를 노리는 한의학의 논리에서 분명 배울 것이 있을 것이다.(130쪽)”라고 적은 것은 인간을 종합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는 한의학을 중심으로 하여 현대의학에서 발전시켜온 이론을 접목하는 것이 좋겠다는 주장으로 이해됩니다.

사실 현대의학의 뿌리가 된 서양의학도 근대 이전에는 동양의 전통의학과 비교해서 크게 다른 것도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병리학을 필두로 하여 약리학, 생리학 등 기초의학이 물리학, 화학 등과 같은 과학분야가 발전하면서 이룬 성과들을 받아들여 과학화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에 오늘날의 현대의학이 성립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배경을 이해한다면 이상곤박사가 <낮은 한의학>에서 주장하는 요지가 적절하고 타당한 것인지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관심있는 독자들의 판단을 기대합니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작성된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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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2011-11-21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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