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펜하우어 & 니체 : 철학자가 눈물을 흘릴 때 지식인마을 37
김선희 지음 / 김영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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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학의 뿌리를 찾아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철학의 뿌리와 이어지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영국의 지성 AC 그레일링은 “‘철학’은 말 그래도 ‘지혜에 대한 사랑’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했지만, ‘탐구’나 ‘탐구와 반성’이라고 정의하고 이러한 표현의 범위를 최대로 넓혀 세계와 그 안에서 인간이 경험하는 것을 이해하려는 노력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써야 더 좋고 정확할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철학한다는 것이 바로 사유를 통하여 물음을 던지는 일이자 던져진 물음에 답을 구하는 일’이며 철학적 탐구의 목적은 지식과 진리, 현실, 이성, 의미, 가치에 대한 통찰을 얻는데 있다고 합니다.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그리고 인문학의 주제와 방법이 뚜렷하고 구분되기 전에는 철학이 거의 모든 교양인이 갖춰야 할 기본적인 덕목이었으며, 요즈음과 같은 실험적 방법론이 구체적으로 확립되지 않은 탓에 인간의 이성과 관찰만으로도 충분히 질문과 답변이 가능할 것이라고 믿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노병사는 당연히 철학적 사유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며, 그리스 시대의 의사들은 자신이 진료하고 있는 환자들을 관찰하여 얻게 되는 질병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질병이 생기는 원인이 무엇인가 질문을 던졌고, 사유를 통하여 해답과 치료법을 구하고자 했을 것입니다. 서양의학에서 해부학이 발전하면서 임상증상에 따라서 해부소견에 차이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고, 이러한 관찰은 자연스럽게 임상증상에 따라 질병을 분류하고 해부소견과 연관을 맺으려는 노력으로 이어졌는데, 이러한 흐름 자체가 사유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사유의 방법론이 발전하면서 서양철학은 17세기에 자연과학을, 18세기에는 심리학을, 그리고 19세기에는 사회학과 언어학을 낳았으며 20세기 인지과학이 발전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철학의 특성인 ‘질문하고 답을 구하는 탐구활동’이 결실을 맺어 올바로 질문하고 올바로 대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을 때 이러한 탐구는 철학으로부터 독립하여 한 분야의 학문으로 독자적인 위치를 확보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미분화되어 빠르게 성장해온 각 분야의 학문이 최근에는 그동안의 성과를 서로 공유하여 시너지를 내거나 한계에 부딪힌 문제해결방식을 찾아내는 등, 학문발전에 있어 통섭이라는 국면의 대전환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그리고 인문학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것입니다. 학문에 있어 일종의 적분화가 일어나고 있다하겠습니다.

의학의 특성 상 이런 움직임이 가장 빠르게 나타나는 분야라 하겠습니다. 질병과 관련한 사회현상을 추구하기 위하여 사회과학적 방법을 차용하고 그 결과를 해석함에 있어서도 사회과학적 시각이 꼭 필요하다 이야기입니다. 또한 최근 대두되고 있는 다양한 생명윤리에 관한 이슈를 정리하기 위하여 체계화되고 있는 생명윤리학이 “의학기술이 계속발전하면서 생명윤리학의 주제가 철학과 의학, 법학, 사회학, 공공정책, 교육 및 관련 분야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에게 갈수록 현실적으로 중요한 문제가 되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AC 그레일링 지음, ‘새 인문학 사전’).

이러한 사조는 우울증과 같이 마음에 원인을 둔 질병의 본질을 추구하는 마음의 철학, 인간의 사고체계를 추구하는 신경철학 등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는 다시 철학적 상담을 통하여 현대인의 마음에 생긴 병을 치료하고자 하는 철학상담치료로 발전시키려는 시도로 이어지고 있는데 그 씨앗을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철학적 사유에서 찾고 있는 노력을 김선희교수님의 <철학자가 눈물을 흘릴 때>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강원대학교에서 철학을 강의하시는 김교수님께서 우리의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이 매일 울고 있으면서 자신이 울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살다가 어느 날 통곡하고 있는 자신을 보고 당혹스러워 한다는 것을 깨닫고 치료학문으로서의 철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현대인의 보이지 않는 눈물은 삶이라는 수레바퀴에 끼어 살아가는 고통에 기인하는 것으로, 철학을 통하여 삶에 따르는 고통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게 되었는데, 최근에 ‘한국철학상담치료학회’를 창립하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김교수님이 독일철학에서 해답을 얻고자 한 것은 의학철학에 대하여 많은 연구성과를 쌓아왔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가 염세주의자로 인식하고 있는 쇼펜하우어와 허무주의자로 알고 있는 니체를 들어 현대인의 눈물을 치료하는 바탕을 세우려는 시도가 옳은 선택일까 싶었습니다. 특히 냉철한 마음으로 현상을 직관하고 사유를 통하여 문제의 답을 추구하는 철학자가 눈물을 흘린다는 상황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저자는 먼저 쇼펜하우어의 삶을 조명하여 그의 철학적 바탕에 깔려 있는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을 깨닫게 하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방문한 툴롱의 병기창에서 쇠사슬에 묶인 채 노역하고 있는 6천명의 노예의 비참한 모습이 그의 생애를 통하여 인간의 고통에 대하여 천착하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와의 약속 때문에 뒤늦게 시작한 철학공부를 통하여 쇼펜하우어는 고통에 대한 물음을 통하여 ‘고통의 해석학’을 고통의 치료에 대한 사유를 통하여 ‘치료의 해석학’으로 정리되었는데, 인간에 대한 그의 깊은 애정은 쇼펜하우어는 사상의 중심개념으로 자리하고 있는 동고(同苦; Mitleid)에 담겨 있다고 하겠습니다.

“동고는 고통을 함께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함께할 대상으로서의 고통은 자신의 고통이 아니라 타자의 고통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동고란 자신과 타인을 구분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고통에 함께하는 것을 뜻한다고 해석”되는 것입니다.(51쪽). 쇼펜하우어가 고통치료의 도구로 인식한 것들로는 예술과 정관에 의한 이념의 인식이었지만, 이 방법들이 고통치료에 순간적인 도움밖에 주지 못한다는 한계를 깨닫게 되었고, 궁극적으로 금욕 혹은 고행이라고 번역되는 아스케시스(Askesis)가 답이 된다고 보았습니다. 고통을 해소하는 방안을 찾기보다는 금욕 혹은 고행을 통하여 고통 자체를 느끼고 이를 뛰어넘는 해탈의 지경에 이르는 것이야 말로 바른 길이라는 것입니다. “고통에 의한 고통의 정화를 통하여 평온과 열락과 숭고에 안주한다. 결국 이와 같은 고통에 의한 고통 극복이라는 도식을 우리는 삶을 살아감으러써 삶을 완성한다는 도식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112쪽)”

쇼펜하우어를 이은 니체는 최초의 심리학자라고 불리는 것처럼 심리학이 철학으로부터 독립하여 하나의 학문으로 자리매김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는데, 그는 예술과 철학이 우리의 삶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예술이나 철학이 추상적이고 우연한, 사소한 사건이 아니라 삶에 치명적인 독이 될 수도 있고 약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따라서 예술이나 철학은 우리가 가볍게 스치고 지나갈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꼼꼼히 그것의 정체를 살펴보아야 할 대상이다.(128쪽)”

그는 삶이 치유를 필요로 할 때, 이에 상응하는 예술과 철학이 펼치는 처방전에서 답을 구하게 되었는데, 치유의 대상을 두 종류의 고통받는 자로 보았습니다. 즉, 삶의 충일로 고통받는 자와 삶의 빈곤으로 고통받는 자입니다. 니이체는 삶의 빈곤으로 고통받는 자들이 원하는 예술과 철학은 도취와 경련과 마비를 가져오는 것들이며 이런 류의 예술과 철학의 전범이 바그너와 쇼펜하우어라고 비판하면서 진정한 예술과 철학은 삶의 충일이 창조되는 것으로 건강한 자의 예술이고 건강한 삶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같은 사안을 두고 쇼펜하우어는 치료적 시각으로 예술과 철학의 역할을 보았고 니이체는 예방의 시각에서 예술과 철학을 본 것이 아닐까요?

한국철학상담치료학회에서 사용하는 철학 프락시스는 인간의 삶에 대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하여 철학이 기여할 수 있는 무엇을 찾기 위한 구체적 실천방안을 찾는 것이라고 한다면 임상철학이라는 개념을 적용하는데 있어, 지금까지 환자를 대상으로 해왔던 의학에 질병을 사전에 예방하는 영역으로까지 개념을 넓히고 있는 의학과 연계하는 것이 목표를 보다 구체화하고 쉽게 도달하도록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분야에 대한 의료인들의 관심을 촉구하는 이유는 의학이 도달하고 있는 곳에 타 학문이 이르는 것보다는 의학에서 타학문을 쫓는 것이 더 쉬울 수도 있겠다싶어서입니다.

끝으로 눈물을 흘리는 철학자를 이해하게 되었다는 말씀을 드리면서 <철학자가 눈물을 흘릴 때>라는 제목이 혹시 스탠퍼드대학교 정신과의 어빈 얄롬교수의 <니체가 눈물을 흘릴 때>의 영향을 받은 것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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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2011-12-05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넷신문 <라포르시안>에서 댓글 이벤트를 하고 있습니다. 좋은 댓글 달아주신 한 분께 이 책을 드립니다.
http://www.rapportian.com/n_news/news/view.html?no=2763
 
오해투성이의 위험한 이야기 - 식품첨가물, 유전자재조합, 광우병부터 전자파까지
고지마 마사미 지음, 박선희 옮김 / 푸른길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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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일반인들은 방송과 신문과 같은 대중매체를 통하여 다양한 정보를 얻게 됩니다. 최근에는 인터넷에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만, 정보의 양도 많지만 정보의 질적 수준에서 다양하기 때문에 정확한 정보를 걸러내기가 쉽지 않은 단점이 지적되기 때문에 역시 대중매체에 대한 의존도가 여전한 것 같습니다.

최근에 언론매체를 통하여 전해지는 정보도 다양한 요인에 의하여 흐려지거나 심지어는 왜곡될 수도 있기 때문에 독자들이 이를 걸러내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이상훈 지음, 기자 편집된 진실을 말하다; http://blog.joinsmsn.com/yang412/12413144)

<오해투성이의 ‘위험한 이야기’>는 일본 대중매체를 통하여 전해지는 정보들, 특히 위험성(risk)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기사일수록 특히 조심해서 접근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노골적으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쓴 고지마 마사미 기자는 환경, 건강 그리고 먹을거리를 주로 다루는 생활가정부 소속 전문가로, 자신의 기자생활을 통하여 경험했던 다양한 사건을 통하여 스스로로 정확하지 기사를 썼던 점까지도 고백 인용하면서, 정보를 전달하는 기자들이 흔히 간과하기 쉬운 점들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식품첨가물, 유전자 재조합식품, 전자파 유해론, 의약품부작용 그리고 광우병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사례들을 인용하고, 기사가 흔히 범하는 왜곡의 유형과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이유는 기자가 다루는 사건에 포함되는 전문적인 내용을 파악하고 있는 깊이는 일반인과 비교하여 별 차이가 없다는 점이라는 것입니다. 조금은 반복되고 정제되지 않은 느낌을 줍니다만, 기자나 일반인들은 놀랍도록 균일화된 사고의 틀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신토불이’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는 국내산 혹는 재래종이 안전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 같은 것입니다. 소비자들의 이러한 막연한 불안감을 교묘하게 자극하는 상술을 이용하는 집단이 있고, 기자가 이들의 선전술에 놀아나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위험성을 이용하여 비즈니스를 하는 경우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제가 오랫동안 주목하여 자료를 모으고 있는 광우병관련해서 2008년 우리나라의 광우병 파동이 일었을 때 국내에서 주로 인용되었던 것은 일본은 국내산 소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일본에서 ‘도축되는 소’ 모두에 대하여 광우병검사를 실시하는 ‘전수조사 제도’를 적용하고 있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정보가 널리 유포된 바 있습니다. 하지만 그 배경에는 일본축산업계의 입김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광우병 문제에 있어서 일본농업신문이 항상 소의 전두조사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을 강조하는 것도, 일본 축산업체의 기대에 부응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일 것이다(63쪽)”

저자는 광우병검사의 맹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즉 소가 광우병에 노출되는 단계를 회장말단의 림프조직에 변형 프리온이 쌓이기 시작하여 내장신경을 따라 척수를 거쳐 뇌에 이르게 되는데 뇌에 축적되어 스폰지모양으로 변화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광우병검사에서 확인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전수조사를 하더라도 변형 프리온이 뇌에서 검출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기 전에는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도축되어 식용으로 유통된다는 것입니다(107쪽). 다만, 특정위험물질을 제거하기 때문에 광우병에 노출될 위험이 전혀 없다고 전제하는 것입니다. 바꿔서 말하면 뇌에서 변형 프리온이 검출되는 소라고 하더라도 특정위험물질을 제거하면 안전하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일본에서 그동안 광우병 대책과 관련하여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사용한 세금이 4,000억엔, 식품업계의 손실이 6,000억엔, 도합 1조엔의 금액이 소비되었다고 합니다(232쪽). 우리 돈으로는 10조원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전수조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적지 않은 돈이 들었을 것입니다. 특정위험물질을 완벽하게 제거하는 것으로 광우병 위험을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면, 광우병관리에 추가 투입되는 재정을 절약하여 절대적으로 시급한 다른 분야에서 사용하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근거가 미약한 위험이 증폭되는 구조도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안전을 강조하는 것보다 위험을 강조하는 편이 독자들의 관심을 쉽게 끌어들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미디어는 안전하다는 전문가들보다는 위험하다는 주장을 하는 소수의 전문가들의 주장을 인용하여 기사를 만드는 선택을 한다는 것입니다. 안팔리는 기사보다는 다소 왜곡되었더라도 팔리는 기사를 선택하는 것이 미디어의 속성이라는 것입니다. 마치 소수의 주장이 정의처럼 포장하는 방식으로 가면 효과는 더 극적일 수 있습니다. 선의 혹은 정의감으로 무장하고 있는 기자일수록 편견에 사로잡히는 우를 범할 수 있기에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예방의학에서 사용하는 예방(prevention)과 환경 분야 등에서 사용하는 사전예방(precaution)을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잘 못이라고 합니다. 세상에 어떤 일에도 제로(0) 리스크는 달성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리스크를 제로에 가까운 수준으로 통제하기 위하여 천문학적 규모의 자금이 필요하게 되어있습니다. 여기에서 적용하는 것이 비용 대비 효과의 정도를 참고하여 리스크 통제수준을 결정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전문가일수록 미심쩍은데는 없는지 더 면밀하게 살펴야 한답니다. 예를 들면, 최근에 인간광우병이 언급되면서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의인성 CJD에 관하여 다양한 전문가들이 의견을 개진하였는데, 그 가운데는 수의학을 전공한 분도 있었다는 것입니다(http://blog.joinsmsn.com/yang412/12468865). 수의학은 동물의 질병에 관한 학문인데, 인간의 질병에 대하여 전문가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질병에 대하여 혹은 보건의료정책에 대한 의견을 내놓는 것이 옳은 일이라는 생각을 본인이나 인터뷰를 진행한 기자가 했다면 그 매체의 독자들을 우습게 안 처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고지마 마사미 기자는 <기자 편집된 진실을 말하다>를 쓴 이상훈기자보다 훨씬 강경한 목소리로 왜곡된 정보를 생산하여 유포하는 기자들의 행태를 고발하고 있습니다. 제가 읽기에는 우리나라의 언론계 사정 역시 일본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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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우리를 만드는 다문화 교안 - 학교 현장, 단체, 가정 다문화 교육 가이드 어울누리 실용교육 3
이현정 지음 / 이담북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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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인기를 끌고 있는 주말드라마에는 세칭 다문화자녀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동남아국가에 체류한 적이 있던 큰아들에게 어느 날 갑자기 다 큰 아들이 등장하면서 조그만 파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아들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던 큰아들로서는 진행 중인 연애과정에 미치는 영향을 제외하더라도 아들로 인하여 벌어지는 상황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모습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변에서 한눈에 봐도 남다른 외모로 인하여 놀림을 받게 되는 아이가 보이는 발작적인 반응을 보면서 처음부터 알고 적절한 대응방식을 공부하였더라면 좋은 결과로 남을 수 있겠구나 싶습니다.

이런 사례 말고도 어느새 우리사회에는 적지 않은 숫자의 타문화권 출신인 사람들이 들어와 있습니다. 큰 주류는 국제결혼을 통하여 내국인으로 편입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내국인들이 외면하는 3D업종에서 근무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산업연수생 등 다양한 명목으로 국내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들, 중국에서 거주하고 있는 동포들이 다양한 경로를 통하여 국내에서 일자리를 찾는 경우, 그리고 북한에서 탈출하여 국내에 들어오게 된 탈북자들이 대종을 이루고 있습니다.

2011년 현재 다문화적 배경을 가진 우리 국민의 비율은 전 국민의 2.5% 이상이며 이 비율은 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로 인하여 불거지기 시작한 사회현상에 주목하고, 다문화 사회의 연착륙을 위하여 다양한 사회활동을 해 오신 이현정님은 그간의 경험을 통하여 우리사회가 다문화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노정되는 다양한 문제점들이 앞으로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을 깨닫고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적극적인 대책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저자의 현장경험을 정리하여 학교와 기타 교육장에서 다문화 이해수업에 도움이 될 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미래의 우리를 만드는 다문화 교안>를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다문화의 빠른 정착과 발전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자라나는 세대의 교육이라고 믿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1부에서 특히 다문화 자녀들과 접촉이 많은 학생을 포함하여 일반인들이 꼭 알아야 하는 우리사회의 다문화 현상과 다문화적 배경을 지닌 국민들에 대하여 잘못된 인식이 자리잡게 된 배경으로부터 앞으로 어떻게 변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 등을 인용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중립적 시간이 돋보이는 점은 다문화적 배경을 가진 국민들에 대하여 무조건적인 시혜를 제공하는 식의 접근이 가지고 올 수 있는 문제점도 지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들에 대하여 다각적인 방향에서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설명입니다. 또한 이들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범죄사건들에 대하여도 단호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습니다.

사실 사회구성원의 다문화현상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유럽 및 북미, 대양주의 국가들에서 먼저 일어났던 현상이며, 우리나라 국민들 역시 이런 나라로 많이 이주하던 시절이 있었고, 당시 이주민들이 처한 상황은 요즈음 우리나라에 이주해온 다른 나라사람들이 처한 상황과 흡사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영국, 프랑스 그리고 독일 등 아프리카와 중동지역 국가들로부터 이주민이 늘어 다문화현상이 심화되던 국가들에서 다양한 다문화정책을 시행하였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하고 말았다는 선언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최근 들어 악화되고 있는 유럽국가들의 경제사정으로 인한 실업율의 증가가 이들 탓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는 점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고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아마도 문화적 충돌을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장치마련에 실패한 것이 원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정이 나쁜 국가에서는 이들 이주민들을 적대적으로 대하는 정도를 뛰어넘어 범죄의 대상으로 삼는 사례들이 늘고 있어 사회불안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도 강 건너 불구경하는 식으로 뒷짐 지고 있을 상황은 아니라고 보입니다.

2부에서는 다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국민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특히 교육부문에서 시작해야 할 변화로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3부에서는 앞서 예를 든 것처럼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우리국민들이 겪은 상황, 혹은 처한 상황을 예로 들어 우리사회에 이주해온 타국민들의 입장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부록에는 다문화배경의 국민들을 교육시키는데 필요한 교안을 비롯한 접근방안을 예로 들어 두었습니다.

조금 아쉬웠던 것은 첨주를 각주가 아니라 양면의 중안에 배치함으로써 가독성에 다소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또한 강조하려는 의도로 보입니다만, 반복되는 문장이 읽는 호흡을 거칠게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결혼을 통하여 우리나라에 정착하는 타국 여성들이 생략된 채로 임신과 출산 육아로 이어지면서 우리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는 배려가 전혀 없다는 지적이 반복적으로 기술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작성된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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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
이미지프레스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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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유행하고 있다는 버킷리스트를 제가 준비한다고 하면, 아마도 ‘좋은 사진 찍기’를 꼭 윗 순위에 넣을 것 같습니다. 관심은 많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감을 잡지 못하고 그저 셔터만 눌러대 왔다는 것입니다. 요즈음에야 디지털카메라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직성이 풀릴 때까지 셔터를 눌러서 찍은 사진들을 나중에 살펴보고 좋은 사진을 고르는데, 그야말로 가뭄에 콩나듯 건진다는 것입니다.(당연히 제 눈의 안경으로 고르는 편이라는 것입니다.) 신혼여행을 떠나면서 두 대의 카메라에 36컷 컬러필름을 열통인가를 준비해가서 2박3일에 모두 찍어왔다는 것입니다.

다큐멘터리 웹진 이미지프레스를 중심으로 활동하시는 이상염님, 임재천님, 강제욱님, 노순택님 등 네분이 ‘나의 아름다운 클래식 카메라’라는 주제로 클래식 카메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와 그 카메라가 함께한 취재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는 이분들이 찍은 프로다운 사진들을 감상하는 즐거움 뿐 아니라 사진촬영과 관련된 뒷이야기 그리고 쉽게 접할 수 없는 클래식 카메라에 얽힌 이야기를 잘 버무려 내고 있어 읽는 재미와 보는 재미가 시너지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다만 이야기의 경계가 애매해서 글을 쓰신 분의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 헷갈리는 점이 있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글을 쓰신 분들이 네 분이나 되는 것처럼 취재여행기로부터 카메라와 관련이 있는 분의 인터뷰 그리고 네분이 카메라와 인연을 맺게 된 이야기들이 섞여 다양한 읽을거리를 만들고 있습니다.

비운의 코비카 카메라를 위로하는 글을 읽으면서 제 소유의 카메라로 처음 샀던 카메라가 삼성이 미놀타와 합작하여 만들었던 삼성 미놀타 반자동 카메라로 오랫동안 추억을 담아오다가 미국에 공부하러 갔을 때 슬라이드자료를 카피할 목적으로 미놀타 카메라를 적지 않은 비용으로 구입했고 이 카메라로 미국생활을 많이 담았구나 하는 추억이 떠오릅니다. 그런데 이 카메라는 저온에서 작동을 하지 않는 불편함이 있어서 크리스마스 야경을 찍으러 갔다가 실패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클래식 카메라와 함께하는 여행의 첫 번째 이야기가 제 고향 군산에서 시작하고 있어 반가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군산은 일본 강점기동안 곡창 호남지역에서 나는 쌀을 일본으로 실어 나르는 항구로서 번영을 누리던 곳이었는데 해방과 함께 급속하게 쇠락의 길을 걸어온 탓에 아직도 당시의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어 옛날 풍경을 찾는 분들의 발길을 끌어당기는 묘한 매력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쇠락한 모습의 ‘째보선창’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이 느껴지는데 째보선창은 경암천이 금강으로 흘러드는 지형적 특징을 나타내는 이름입니다. 월명공원 아래 있는 월명터널에서 청량한 느낌을 얻었다고 하셨는데, 이 터널이 6.25동란 당시 퇴각하던 북한군이 양민들을 학살하여 처박아두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 비극의 장소로 알고 있습니다.

저자들의 사진은 당연히 프로다움을 절로 느낄 수 있습니다만, 더욱 놀라운 것은 저자들의 글 역시 참 아름답고 유려하다는 점입니다. “세상에 변치 않는 것들이 있을까? 시간과 공간도 절대적이지 않으면, 하물며 질량도 에너지로 변화한다. 오직 우주에서 변치 않는 것이 있다면 ‘빛의 속도’일 것이다. 태양에서 출발한 빛이 고색창연한 부하라의 흙벽돌 건축물에 부딪혀, 내 렌즈 안으로 들어온 순간부터 공간과 시간은 고정되고 만다.(88쪽)” 이상엽님의 우즈베키스탄 부하라의 취재여행기입니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이 분들이 클래식 카메라를 사랑하는 이유라면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우아한 자태와 완벽한 기능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는 클래식 카메라들은 20세기 기계공학과 광학기술이 빚어낸, 인류가 만든 가장 아름다운 공업 예술품으로, 디지털 카메라시대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장인의 숨결이 느껴지기 때문이라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에 설명한 비운의 국산 카메라 1호를 설명하다가 갑자기 이라크전쟁을 인요하고 전투병과의 참전을 결정한 정부의 결정을 ‘탄식을 넘어 분노를 자아내는 사건’으로 규정한 부분(251쪽)을 비롯하여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독일을 분할한 소련과 연합군이 취한 전쟁 뒤처리과정에서 칼 자이스의 카메라 생산설비를 뜯어 우크라이나로 실어갔다가 되돌린 사건과 칼 자이스 임원진이 소련군 점령지에서 카메라 기술자를 탈출시켜 슈투트가르트와 오버코헨에 정착시켜 공장을 새로 건립하는 과정은 미국이 뒤에서 사주했다는 식으로 설명하고 있는 부분 등은 아닌 밤에 홍두깨 같은 느낌이 들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우아한 사진과 아름다운 설명을 읽던 흐름이 갑작스럽게 무너지는 사족이 아니었나 싶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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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인문학 사전 - 다음 세상의 교양을 위한
A. C. 그레일링 지음, 윤길순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다음 국어사전을 보면, “사전(辭典)이란, 어떤 범위 안에서 쓰이는 낱말을 모아서 일정한 순서로 배열하여 싣고 그 각각의 발음, 의미, 어원, 용법 따위를 해설한 책.”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굳이 사전(辭典)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본 이유는 영국인들의 대중적 사랑을 받고 있다는 철학자 그레일링이 쓴 책 <ideas that matter; ‘중요한 생각들’이라고 친절하게 번역을 해두신 bladestorm님께 감사드립니다>를 번역하여 소개하면서 <새 인문학 사전>이라는 우리말 제목을 참 제대로 골랐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최근에 예스24 덕분에 인문학에 눈을 뜨게 되면서 ‘인문학이란 무엇인가?’하는 의문이 들던 참이었기 때문에 출판사의 리뷰를 요약하여, “복잡한 세상을 여행하기 위한 안내서” - 유럽의 대표 지성, 그레일링이 새로 그려낸 인문학 지도, ‘인문학 공부를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한 21세기 교양 안내서’라는 소제목을 붙인 것도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류지성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수세기 동안 살아남은 개념들을 1차로 선별, 그 가운데 새로운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철학과 정치, 사회, 문화, 과학 전반의 개념 77가지를 엄선하여 수록했다. 용어 해설은 물론, 탄생 배경과 역사적 변천사, 철학적 해석은 물론, 현실 세계에서 활용되고 해석되는 방식까지 상세하게 설명하여 지금껏 인류의 생각을 주도해온 핵심 개념어들의 흐름과 가치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는 출판사의 친절한 설명이 이 책의 성격을 제대로 나타낸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77가지나 되는 다양한 분야의 이슈들이 인문학에서 다루어질 수 있다는 저자의 아이디어가 제게는 인문학 분야의 이슈를 백화점식으로 나열한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만, 저자는 백과사전이 아니라 출발선에 세워놓은 것이라 주장하고 있습니다. 

<새 인문학 사전>에서 다루고 있는 77가지의 주제 가운데는 그동안 제가 공부해온 자연과학을 비롯하여 관심을 두었던 사회과학분야 등을 망라하고 있어 낯익은 것들도 참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즈음 제가 다루고 있는 의학과 인문학이라는 화두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열쇠가 될 수 있겠다 싶습니다. 저자가 인용한 “첫발을 떼기가 어렵지 거리는 아무것도 아니지요.”라는 데팡 후작부인의 말이 제게도 보약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자의 머리말에서 제가 주목한 점이 바로 “과학이 갈수록 전문화하고 복잡해지면서 대중은 갈수록 과학과 소원해졌고, 따라서 갈수록 과학의 의미와 이용, 전망, 가능성, 그리고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위험을 놓고 나누는 식견있는 대화에 참여할 수 없게 되었다.(5쪽)”는 저자의 탄식입니다. 이어 저자는 “인문학을 공부한 이들이 과학을 바라보는 태도 또한 과학도들만큼 풍부하거나 이해가 빠르지 않아서 더 높은 식견과 통찰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물론 과학계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철학 사상과 정치사상, 사회사상의 개념에 주의를 기울여 하는 일을 좀 더 폭넓게 이해할 수 있도록 늘 노력해야 할 것이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모든 학문이 하나의 뿌리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아는 고대의 학자들은 철학자이면서도 수학자, 과학자, 천문학자였다고 하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학문이 가지를 치면서 떨어져 나온 뿌리가 어디였는지 잊어버린 것은 물론이고 바로 이웃으로 향하고 있는 가지가 하는 역할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게 된 것이 현재의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높은 담벼락으로 나뉜 학문의 경계를 허물어 서로가 지금까지 쌓아올린 성과를 통합함으로써 시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제안이 나오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라 하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우리 사회가 인문학의 중요성에 눈을 뜨자는 운동은 참으로 시의적절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저자가 다루고 있는 77가지의 이슈가운데 제가 관심을 가지고 뒤쫓고 있는 화두에 관한 글을 읽으면서 새롭게 깨닫게 된 몇 가지를 소개하겠습니다. ‘우아하게 죽을 권리를 허하라’는 제목으로 된 안락사에 관한 글을 읽다가 “소극적 안락사와 적극적 안락사가 겉보기에 달라 도덕적으로도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둘 사이에는 도덕적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다.(76쪽)”는 저자의 주장에 놀랐습니다. 소극적 안락사는 허용되어야 하겠으나 적극적 안락사는 불가하다는 입장인 제 생각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싶어서입니다. 저자의 생각이 꼭 이치에 맞는다고 보아야 하는 의문으로 하더라도 생각을 뒤집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습니다.

‘그는 왜 사라지지 않는가’라는 제목으로 된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저자의 견해에서 오늘날 우리사회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설명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경계해야 할 점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또한 언론의 자유와 관련해서 “표현의 자유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인정해야 하듯이,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권리에 제약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이유를 설명할 때 사람들은 흔히 불이 나지도 않았는데 붐비는 극장에서 누군가 ‘불이야!’하고 소리치는 경우를 든다.(235쪽)”는 저자의 견해 역시 현재의 우리사회가 기억해야 할 점이라 생각합니다.

어떤 이슈는 간단하게, 또 어떤 이슈는 장황해보일 정도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기준이 어디에 있는지는 밝히지 않았으니 쉽게 이해되는 것은 아닙니다. 말미에 든 철학에 관한 이야기가 인상적입니다. “‘철학’은 말 그래도 ‘지혜에 대한 사랑’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했지만, ‘탐구’나 ‘탐구와 반성’이라고 정의하고 이러한 표현의 범위를 최대한 넓혀 세계와 그 안에서 인간이 경험하는 것을 이해하려는 노력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써야 더 좋고 더 정확할 것이다.(507쪽)”

정리해보면 인문학에 막 발을 들여놓은 저로서는 좋은 네비게이션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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