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자동차기업에 부품 수출하기
조병휘 지음 / 한국학술정보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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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9번째로 무역 1조 달러를 달성했습니다. 이들 국가들은 중국과 한국을 제외하고는 1인당 국민소득이 4만 달러가 넘는다고 하니 무역1조 달러 달성이 가지는 의미가 크다 하겠습니다. 지난 해 무역흑자는 333억 달러였다고 하는데, 무역흑자에 기여한 상품은 전통적인 선진국형 고부가가치 제품군인 석유제품(63.9%), 철강제품(35.2%), 일반기계(28.0%), 자동차(27.9%), 선박(15.1%) 등의 제품군이었다고 합니다.

 

내놓을만한 자원이 없는 우리나라로서는 무역에 크게 의존하는 산업구조를 지향해왔습니다. 따라서 각 경제블록과의 자유무역협정의 체결은 무역을 활성화하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미국 및 유럽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면서 자동차분야가 가장 크게 혜택을 얻을 것이라고들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지는 자동차가 미국이나 유럽 등으로 수출되는 과정에서 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라는 예측입니다. 우리나라의 주력 자동차기업은 자유무역협정 체결이전부터 미국을 비롯하여 동유럽 등에 현지공장을 건설해왔습니다. 수출의 현지화에서 얻는 이익을 고려하여 결정된 일이라 생각합니다. 현지공장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수출한 부품을 중심으로 하여 완성차를 조립하여 시장에 내놓기 때문에 완성차 수출에 버금가는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완성차 한 대에 들어가는 부품은 2만여 종류가 된다고 합니다. 따라서 완성차의 수출규모가 늘어나게 되면 관련 부품산업도 같이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자동차 부품의 수출규모가 완성차 수출규모의 절반을 넘어서게 되었다는 뉴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보니, 과거 우리나라의 수출은 빛좋은 개살구라고 한탄을 하던 시절이 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일본에서 수입한 기계류로 만든 부품을 사용하거나 많은 부품소재를 일본으로부터 수입해서 조립한 다음 수출을 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수출이 늘어남에 따라 일본으로부터 수입이 같이 늘어나기 때문에 대일 무역역조가 더욱 심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부품과 소재의 국산화가 우리나라 산업계가 오랫동안 염원해왔던 화두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2010년 수출관련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의 부품 수출이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에 육박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어 정부와 업계에서 그동안 노력해온 결과라고 생각됩니다.

 

<글로벌 자동차기업에 부품수출하기>는 오랫동안 KOTRA에 몸담아왔던 조병휘교수님께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부품소재 수출품목이 된 자동차부품의 수출에 관한 이야기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특히 유럽지역에서 근무하면서 자동차부품의 수출을 지원하는 업무를 담당해왔기 때문에 관련 산업계는 많은 도움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또한 부품수출에 관심이 있는 다른 분야에서도 충분히 참고할 가치가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얼마전 KOTRA에서 기획하여 수집한 해외시장의 동향을 <2012 한국을 뒤집을 14가지 트렌드; http://blog.joinsmsn.com/yang412/12475620>라는 제목의 책으로 묶어내서 관심있는 독자들이 정보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한 책을 보면서 그동안 KOTRA가 해온 역할을 인상깊게 느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코끼리의 다리만 만진 셈이었습니다. <글로벌 자동차기업에 부품수출하기>에서는 KOTRA가 특히 중소기업의 수출을 지원하기 위한 업무를 어떻게 하고 있는가를 실감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관심이 있는 분을 위해서 저자가 서문에 요약한 책의 구성을 인용한다면, 모두 4개의 장으로 구성된 책은 1장에서 우리나라의 부품소재수출의 현주소를 살펴보고, 자동차기업의 아웃소싱확대경향, 공급사슬관리동향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2장과 3장에서는 글로벌 자동차기업에서 부품을 공급받는 과정을 실무중심으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하면, 2장에서는 글로벌 자동차회사에 부품을 공급하기 위한 예비공급업체로 등록하는 절차를 정리하고 있고, 3장에서는 글로벌 완성차기업의 부품구매 프로세스별로 대응전략을 다루고 있습니다. 4장에서는 정부의 각종지원제도를 소개하고 있어 특히 부품생산업체가 참고할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내용은 저자가 프랑크푸르트에서 근무하면서 오펠 벤츠와 같은 독일기업, 영국의 포드유럽과 재규어, 프랑스의 뿌조, 미국의 GM과 같은 글로벌 완성차업계와 우리나라의 자동차부품생산업체를 연결하는 미팅을 주관하는 등의 활동을 통하여 얻는 현장경험을 이 책에 잘 녹여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관련 데이터 및 관련 문건, 우리나라 부품생산업체에서 겪은 뒷이야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읽을거리를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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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변경 지대 - 과학과 비과학의 경계에서 과학의 본질을 탐구한다
마이클 셔머 지음, 김희봉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5년 2월
평점 :
절판


‘과학과 비과학의 경계에서 과학의 본질을 탐구한다’는 부제를 단 <과학의 변경지대>에서 미국의 대표적인 회의론(Skeptic) 학자 마이클 셔머교수는 과학과 비과학, 과학과 의사과학을 구분하는 방법을 다루고 있습니다.

 

지리학적으로는 산 혹은 강과 같은 지표상에 존재하는 것들을 도움을 받아 어느 정도 경계선을 그을 수 있습니다.(과학이 발달한 요즘은 GPS의 도움으로 보다 정확하게 선을 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식의 세계는 가장자리가 모호할 수 있어서 항상 명료한 경계선을 그릴 수 없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입니다. 어제까지 과학적으로 인정받았던 사실이 새로 나온 증거에 의하여 전면 부정되는 사례가 다반사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경계가 모호한 경우에는 퍼지논리(1)를 적용하면 경계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셔머교수는 주장하고 있습니다.

 

셔머교수가 경계탐지장치라고 부르는 검증시스템은 ‘어떤 과학적 주장'의 타당성을 판단할 때 유용한 열 가지의 질문을 사용한다고 하는데, 대표적인 것을 들어보면, 주장하는 사람이 얼마나 신뢰성이 있는가?, 다른 사람에 의하여 입증된 바 있는가?,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와 어떻게 맞아 들어가며, 어떻게 작동하는가? 대안을 제시하는가 아니면 기존 설명을 반박만 하는가? 등이 있습니다. 그의 기준에 따르면 태양중심설, 진화론, 양자역학, 대폭발 우주론, 판구조론 등은 정상과학으로 분류되며, 창조론, 원격투시, 점성술, 프로이트 정신분석이론, 기억회복 등은 비과학으로 분류됩니다. 한편 초끈이론, 의식이론, 최면, 척추지압, 침술 등은 정상과학과 비과학의 경계에 걸쳐있는 변경지대과학이라고 합니다(2).

 

셔머교수는 전작 <왜 사람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 http://blog.joinsmsn.com/yang412/9606250>에서 그가 사이비과학 혹은 미신으로 치부하고 있는 임사체험, 외계인, 마녀사냥 등을 비롯하여 진화론과 창조론, 2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 벌어졌던 홀로코스트의 진위문제 등을 냉철하게 비판한 바 있습니다. 인간이 이성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것들을 믿는 이유를 그는 진화론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인간은 우연하고 불확실한 것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패턴을 추적하고 인과관계를 찾을 수 있도록 진화한 것인데, 불행하게도 인간의 뇌가 의미있는 패턴 이외에 덤으로 찾아낸 의미없는 패턴도 믿게 된다는 것입니다. 과학적 사고방식의 역사가 아직 짧은 탓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상한 것을 믿게 만드는 사고의 오류 25가지를 설명하여 이를 경계하고 있습니다.

 

<과학의 변경지대>는 세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 변경지대의 과학」에서는 과학적 진리를 찾아내는 기준으로 사용하는 ‘지식필터’를 비롯하여 변경지대과학에서 많이 사용되는 ‘만물이론’을 설명하고, 과거 변경지대과학에 속했던 유전학이 정상과학인 유전공학으로 발전하게 되는 과정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2부 변경지대의 사람들」에서는 생존당시 과학계의 변경지대 사람으로 분류되었던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 진화론의 다윈과 월리스, 정신분석학의 프로이트, 그리고 우리시대의 과학자 세이건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들이 살던 시대의 사회적 배경을 살펴 과학적, 문화적 이동이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는지 뒤쫓고 있습니다. 「3부 변경지대의 역시」에서는 역사과학의 일종인 우주론, 역사지질학, 고생물학, 고고학 등에서 채택하는 과학적 방법을 설명하고 있으며, 진화론의 창시에 관하여 다윈과 월리스의 관계를 분석하고 있습니다.

 

셔머교수의 지식필터에 관하여 조금 상세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셔머교수는 “주어진 아이디어의 진위를 판별하는 정신 모듈을 지식필터라고 하면, 지식필터는 새로운 사실과 생각을 경험에 비추어 판단한다.(61쪽)”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특히 의학이나 과학 영역에서의 대표적인 지식필터는 전문가동료들에 의한 심사제도(peer review system)이라 할 것입니다. 새로운 학설을 담은 논문을 학술지 등에 발표하려면 관련 분야의 전문가가 익명으로 심사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오류가 제거되고 잘못된 추론이 드러나며 부적절한 결론이 걸러지게 됩니다. 하지만 최근 인터넷의 발달은 이렇게 엄격하게 적용돼왔던 지식필터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은 채로 엄청난 속도로 확산되는 상황을 맞고 있습니다.

 

셔머교수는 특히 의학분야에서 드러나고 있는 문제의 심각성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일부를 인용해보면, “제도권의 의학 논쟁이 지식필터를 안개처럼 흐려놓는다면, 대체의학의 주장들은 지식필터를 모호한 구름으로 감싼다. 대체의학운동의 중심지를 보고 싶다면, 홀 라이크 엑스포(Whole Life EXPO)에 가보라. 에이즈와 암에서부터 대머리와 발기불능까지 모든 병을 고친다는 치료법이 여기에 다 있다. 마사지, 척추지압, 오라 해독, 동종요법, 최면, 약초, 향기요법, 산소요법, 전생퇴행, 심지어 후생을 미리보는 치료법도 있다.(65쪽)” 등입니다.

 

셔머교수는 “내가 이제까지 조사해 본 모든 대체의학은 완전히 헛소리였다. 그러나 의료체계의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들과 시한부 인생이라는 선고를 받은 사람들이 이런 현혹적인 제안에 매달리는 것을 나는 이해한다.(67쪽)”고 단호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근거중심의학(Evidence Based Medicine; EBM)이 부상하고 있습니다. 의료계에서도 근거가 미약한 대체의학 치료법에 환자들이 피해를 받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이해시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를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1부에서 의학과 관련된 재미있는 주제가 있습니다. 바로 ‘3장 신만이 할 수 있다’는 제목으로 된 인간복제에 관한 내용입니다. 저 역시 인간복제는 윤리적 문제가 제기되는 등 민감한 부분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복제를 통하여 생명을 얻은 인간은 세포 제공자와 쌍둥이인가 하는 문제를 두고, 셔머교수는 “유전체가 완전히 동일하다고 해도, 우발적으로 일어나는 모든 이력이 같아야 동일한 개성이 보장된다.(113쪽)”고 잘라 말하고 있습니다. 동일한 일란성 쌍둥이의 경우에도 성장환경의 차이에 따라서 유사한 점도 있지만 분명 차이를 보인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생명의 탄생과 죽음이 신의 영역이라는 전통적 사고와 맞물려 인간의 복제 역시 신의 영역을 침입하는 것이라는 주장에 대하여 과학은 과학일 뿐이므로 과학자들에게 맡기라는 셔머교수의 주장은 충분히 타당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학의 변경지대>에는 다윈과 월리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다루고 있습니다. 셔머교수가 월리스에 대하여 깊이 연구해왔기 때문인지 월리스의 영성주의에 대한 비판과 진화론에서 다윈과 월리스의 관계 등에 관한 내용은 다소 생소한 정보라는 느낌이 듭니다. 당시 유럽에서는 박물학이 인기가 있었는데, 다양한 생물종의 표본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고 합니다. 가난했던 월리스도 아마존과 말레이 지역으로 채집여행을 떠나 학문적 기반을 쌓게 되었다고 하는데, 월리스는 말레이에서 채집을 하면서 연구를 계속하여 “모든 종은 기존의 밀접한 관련이 있는 종들과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면서 나타난다.(380쪽)”는 결론을 <새로운 종의 형성을 조절하는 법칙에 관하여>에 담아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진화론의 핵심이 되는 내용이라 하겠습니다. 이로서 진화론의 핵심이론은 누가 먼저인가 하는 논쟁이 일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과학분야는 1947년 수학자 요한 폰 노이만의 제로섬 모형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분야라는 것입니다. 제로섬게임은 한 쪽이 승자가 되면 다른 쪽은 패자가 된다는 개념입니다. 하지만 과학은 상호의존적이며 때로는 협력적이고 항상 사회적일 수밖에 없는 특수성이 있습니다. 물론 미분의 발명을 두고 뉴턴과 라이프니츠의 분쟁에서는 서로 상대방을 깍아내리는 것이 이득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만, 다윈과 월리스의 경우는 제로섬 모형을 거부하고 협력적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서로에게 유리한 국면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셔머교수는 다윈과 월리스가 윈-윈게임을 하게 되는 과정을 많은 자료를 가지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제로섬게임을 통하여 진력을 쏟아 붓기보다는 플러스게임을 통하여 아낀 힘을 다른 영역에 사용하는 현명함을 배울 수 있겠다 싶습니다.

 

의학을 포함한 과학영역에서 새로 나오는 엄청난 정보에 더하여 사이비과학이 쏟아내는 정보는 과학적 소양을 갖춘 사람들까지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특히 근거가 미약한 대체의학이 범람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우리가 더욱 과학을 더 많이 그리고 더 잘 알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의 지식필터가 사실여부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도록 갈고 닦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마이클 셔머교수의 <과학의 변경지대>는 우리의 지식필터가 보다 정교하게 작동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으로 생각합니다.


주:

(1) 1960년대 중반에 로프티 자데(Lofti Zadeh)가 처음으로 기술한 퍼지논리는 퍼지 집합의 개념에 바탕한 수학의 논리 형태로서 퍼지집합의 구성요소는 확률이나 참의 정도로, 즉 0에서 1 사이에 분포하는 연속적인 값들로 표현된다. 퍼지논리 시스템에서는 사건 발생 가능성을 다양한 참 또는 거짓의 정도(즉, 일어날 것이다, 필시 일어날 것이다, 일어날 수 있다,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등등)로 나눔으로써 사건의 결과를 확률로 나타낼 수 있다.(다음백과사전)

(2) 변경지대과학은 원저의 제목이기도 한 <The Borderlands of science>를 과학 중심의 시각으로 옮긴 것으로 보이는데, 중립적 시각에서 본다면 ‘회색지대과학’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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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2012-01-02 2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넷신문 <라포르시안>에서 댓글 이벤트를 하고 있습니다. 다음 주소의 포스팅에 좋은 댓글을 달아주신 한 분께 이 책을 보내드립니다.

http://www.rapportian.com/n_news/news/view.html?no=3251
 
낯익은 세상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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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들어 한파가 몰려오고, 원자력발전소가 가동을 멈추면서 블랙아웃이라나 전력수급에 비상이 예고되고 있는 가운데 송년을 맞은 도시의 밤은 울긋불긋 현란하기만 합니다. 금년에는 보릿고개를 어떻게 넘기느냐고 걱정하던 소리가 사라진 것이 불과 얼마되지 않은 듯한데, 기억력의 한계란 참 오묘한 것 같습니다. 기억을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빨리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기도 합니다.

 

황석영작가님의 신작 <낯익은 세상>은 우리의 기억의 편리함을 꼬집는 듯합니다. 작가께서 말미에 이야기의 무대가 되고 있는 꽃섬이 난지도임을 에둘러 말씀하시고 있습니다만, 난지도가 충남 당진에 수욕장이 있는 섬인줄 아는 젊은이들이 더 많을 수도 있는 세상입니다.

 

난지도는 지금의 월드컵경기장 근처 한강에 있던 섬이었는데 1977년 제방을 쌓아 연결된 다음 1993까지 서울시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매립하여 그 높이가 90m나 되었는데, 쓰레기 매립이 중단된 다음 시민공원으로 조성되어 지금의 하늘공원과 노을공원으로 변신하였습니다. 아직도 가스를 포집하는 시설을 작동하고 있지만 숲이 그럴듯하게 우거지고 뱀이 서식할 정도가 되었으니 당시 난지도에서 생활하시던 분들이 보면 상전벽해가 따로 없다할 것입니다. 난지도에 화재가 발생했던 시기를 고려한다면 시계바늘을 대충 30년 쯤 되돌려야 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주인공 딱부리와 어머니는 도시의 달동네에서도 밀려나 꽃섬으로 흘러드는데 소년티를 갓 벗은 딱부리의 눈을 통해서 난지도의 삶이 어땠는지 가늠은 해볼 수도 있겠습니까만 그들의 절절한 삶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보면 제가 난지도를 찾았던 것이 1981년 가을쯤인가 그랬으니 30년 전이 되는 것 같습니다. <낯익은 세상>에서 나오는 꽃섬의 이야기가 펼쳐지던 무렵이 아닐까 싶습니다. 근무하던 병원의 원목신부님과 함께 주민진료에 나섰던 것인데 그분들이 살던 곳을 둘러볼 기회도 있었습니다. 작가님께서 그리는 것처럼 파리가 들끓고 피곤한 몸을 눕히기조차 어려운 그런 곳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황석영작가님이 그리는 꽃섬은 도시에서 나오는 쓰레기더미에서 재활용이 가능한 물건들을 수집해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입니다. 하지만 작가님은 딱부리를 중심으로 한 소년들의 세계, 그리고 딱부리와 땜통의 눈을 통해서 꽃섬의 옛날을 다시 불러내는 것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옛날이야기를 잊지않기를 바라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황석영작가님이 들려주시는 꽃섬의 옛날이야기는 모처럼 찾아온 큰고모님이 들려주시던 옛날이야기처럼 술술 읽혀질 뿐 아니라 장면들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합니다. 아무래도 우리가 살았던 그 때의 이야기, 즉 제목처럼 낯익슨 세상이라서 그런가 봅니다.

 

땜통의 때묻지 않은 심성이 매개하여 등장하는 김서방네 작은 아이가 인도하는 그 옛날의 꽃섬은 “무성한 억새의 마른 잎들이 얼굴에 스치더니 갑자기 캄캄해졌다가 부옇게 밝아왔는데, (…) 주위는 대낮처럼 밝거나 또렷하지는 않고 마치 달밤처럼 은은했다. 오른쪽으로 강이 흐르고 있었고 건너편 들판 머리에는 병풍 같은 산들이 오르내리며 빙 둘러져 있었다. 뒤로는 높다란 언덕이 강물 가까이 늠름하게 절벽처럼 솟았는데, 앞으로는 모래밭 포구와 얕은 야산들이 보이고 들판에는 수수가 한들거리고 있었다.(135쪽)”는 것입니다. 그 옛날 우리네 시골 어디서라도 볼 수 있었던 풍경이기도 합니다. 아니 지금도 도심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만날 수 있는 친근한 우리산하의 표정이기도합니다.

 

지금은 도시의 밝은 불빛에 멀리 쫓겨가 눈에 띄지 않는다고들 합니다. 동네마실 가셨던 할아버님께서 한잔하시고 돌아오시다 마주친 도깨비들과 씨름을 하셨다는 고모님 이야기에 등장하는 허깨비들은 친근한 이웃이기도 했습니다. “우리 동네는 언제나 너희 곁에 함께 있는 곳이다. 너희들이 있어야 우리가 있게 되고 너희들이 없어지면 우리도 없어지는 거야.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오리 한 마리, 산과 강에 이르기까지 함께 살고 너와 똑같단다.(207쪽)”라는 김서방네 할아버지 말씀처럼 옛날 사람들이 있어 지금 우리가 있는 것이지만, 또 우리가 있어 기억해야 옛날 사람들이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이겠지요. “망할 것들아 여기 니들만 사는 둘 알아? 니덜 사람새끼 다 없어져도 세상은 그대루야(218쪽)”는 버드낭구할미의 경고를 새기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어쩌면 김서방네 가족같은 존재가 있어 해마다 농사를 지어 갈무리해둔 풀꽃의 씨앗들을 이듬해 다시 뿌리기 때문에 쓰레기로 뒤덮여 죽음의 땅처럼 되었던 난지도가 지금 다시 살아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어제 다녀온 월드컵공원에서는 그 옛날 쓰레기섬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이유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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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혜옹주 - 그의 애환과 복식
김영숙.박윤미 지음 / 이담북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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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년들어 고종황제의 막내딸 덕혜옹주에 관한 책들이 출간되어 눈길을 끌었습니다만, 이담북스에서 보내온 <덕혜옹주 그의 애환과 복식>을 읽게 된 것은 매우 특별하였습니다. 패션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편입니다만, 전통문화에는 다소의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왕실의 복식에 관한 아주 구체적이고 상세한 설명을 곁들인 도록을 통하여 우리 전통의복의 다양함과 아름다움을 새삼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문화재 전문위원이신 김영숙님과 박윤미님의 공동작업을 통하여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두분이 모녀 사이라고 하시니, 대를 이어 전공을 이어가는 모습도 보기에 참 좋은 것 같습니다. 책은 먼저 덕혜옹주의 삶을 간략하게 살펴보고서 덕혜옹주의 유품으로 남겨진 복식을 세밀하게 조사 분석한 자료를 다양한 사진자료와 함께 보여주고 있습니다.

 

덕혜옹주의 유품은 일본 정부가 막후에서 주도한 정략으로 대마도 번주의 아들 소 타케유키(宗武志)와의 불행한 결혼이 파경으로 마무리된 다음, 조선왕실에서 보냈던 혼례품을 비롯하여 옹주와 딸 정혜의 한복과 생활품들이 왕실로 돌려보내졌고, 영친왕부부가 이를 도쿠가와 요시치카(德川義親, 1886-1976) 선생이 학장으로 있던 문화학원에 기증하여 복식박물관이 소장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덕혜옹주는 고종황제와 복녕당 양귀인 사이에 태어난 막내딸로 1912년 태어났지만 12살 어린나이로 일본에 볼모로 잡혀가 열아홉살에 일본 대마도주의 후예인 소 다케유키백작과 결혼하였는데, 일본의 패전 이후 정신분열증이 발병하여 정신병원에 입원하였으며, 겹쳐서 외동딸(정혜)이 실종되는 사건 등 한·일 양국의 불행한 역사의 희생자였다고 하겠습니다. 1962년 국내로 돌아와 창덕궁 낙선재에서 생활하다 1989년에 한 많은 생을 마쳤다.

 

옹주가 일본에 볼모로 잡혀가기 전 우리나라에서 생활할 때는 언론에서 일상을 보도하는 등 국민의 관심을 받았는데, 음악을 좋아해 동요를 작시하는 등 문학적 소양이 뛰어났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저자들은 옹주가 지은 동시에 곡을 붙인 동요의 악보를 소개하는 등 그녀의 문학작품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비>라는 제목의 시를 보면, ‘모락 모락 모락 모락 검은 연기가 / 하늘 궁전에 피어 오르면 / 하늘의 하느님이 눈이 매워서 / 눈물을 뚝뚝 흘리시네“라고 적고 있습니다.

 

저자들은 그밖에도 적지 않은 분량의 사진을 싣고 있습니다. 막 소녀티가 사라질 무렵의 사진을 보면 티없이 맑은 모습에 황실의 근엄한 자태가 배어있어 마치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열연한 앤공주의 모습이 연상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제가 복식에 대하여 아는 바가 없어 당의, 대란치마, 스란치마 등 복식에 관한 용어부터가 생경하게 느껴집니다만, 황실의 전통복식은 우아하고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은 일본의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유물입니다만, 형식이나 제작기법, 치수 등에 관한 상세한 자료를 확보하여 도판으로 제작하여 세상에 내놓은 것은 두 저자의 땀의 결정판이라 하겠습니다만, 참 잘된 일이라 생각합니다. 안팎에서, 전체와 부분을, 심지어는 접사를 통해서 원단의 직조형태는 물론 원단에 새겨진 무늬까지도 별도로 자료화하고 있습니다.

 

이로서 황실전통복식을 정확하게 재현할 수 있고 그 맥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고 하겠습니다. 당연히 전통복식을 공부하는 분들에게는 귀중한 공부자료가 될 것이며, 우리 전통문화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도 좋은 읽을거리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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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함께 가요, 케냐 어울누리 생활현장 5
손주형.손세민.손지민 지음 / 이담북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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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전 공부하기 위해 미국에서 살 기회가 있었습니다. 내심으로는 3년 정도 기한을 정했기 때문에 가족이 모두 가기로 했습니다. 일본에서 공부할 계획을 바꾼 것이라서 몇 년 동안 조금씩 준비하던 일본어공부를 접고 본격적으로 영어 말하기를 배우기 시작하는 것으로 준비를 하게 되었습니다.

 

살게 되는 미네소타주는 미국에서도 제일 추운 지방이기도 했습니다. 먼저 공부하고 계신 선배님과 연락이 되어 정착에 필요한 제반사항을 부탁할 수 있어 느긋한 마음으로 현지에 도착했습니다. 사실 미국에서 제일 필요한 것은 차량과 운전면허였습니다. 당창 출퇴근에 필요한 차량은 렌터카를 빌리고 운전면허시험을 준비하는데, 족보가 몇 개 표시된 면허국 배포자료가 전부였습니다. 다행히 상식선에서 답을 할 수 있는 문제가 출제되었기 때문에 필기시험에 합격을 하고 주행시험을 보러 갔습니다. 주행시험에서 중요한 평행주차는 한국에서 별로 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선배님의 차를 빌어 몇 차례 연습을 하고서 시험을 보았습니다. 시험을 볼 때 주의사항을 잘 기억한 덕분에 주행시험도 합격을 했습니다. 그리고 자동차를 비롯한 생필품은 현지에서 살고 계신 백목사님의 친절하신 도움으로 구입하여 순조롭게 정착을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서는 미국에 건너오는 한국사람들이 미리 준비해야 할 요점을 정리한 목록을 만들었는데, 정작 놀랐던 것은 제가 일하던 실험실에 일본에서 젊은 친구가 건너와 동참했을 때였습니다. 선생님께서 이 친구 정착을 도와주라는 말씀도 계셔서 면허취득을 비롯해서 길 안내 등등 몇 가지를 살펴주었는데, 어느날 이 친구가 들여다보고 있는 두툼한 서류묶음을 건너보게 된 것입니다. 제목은 “How to survive in Minnesota"입니다. 즉 ‘미네소타에서 살아남는 방법’ 정도로 번역되는 일본어 자료집인데 먼저 온 일본인 선배들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낯선 장소에 살기 위해서 가게 되면 무엇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막막할 수밖에 없을텐데 이럴 때 참고할만한 자료가 있다면 누구나 힘이 날 것입니다. <아빠 함께 가요, 케냐>는 바로 이런 책입니다. 생각지도 못한 아프리카 케냐에서 근무하게 된 손주형님이 가족과 함께 케냐에서 일년을 생활하면서 경험한 것들 가운데 다음에 케냐에서 살게 될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핵심사항을 잘 요약한 안내서라고 하겠습니다. 살 집 구하기, 아이들 학교입학하기, 차량과 가구 구입하기, 아이들이 아팠을 때, 그리고 케냐에 살면서 아프리카 구경하기, 아이들의 학교생활, 그리고 마지막으로 귀국준비 등으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읽다보니 제가 미네소타에서 살면서 당했던 일들이 고스란히 생각날 정도로 비슷하다는 생각입니다.

 

읽다보니 저도 이런 책을 쓸 수도 있었겠다 싶어졌습니다만, 손주형님이 저와 다른 점이 있다면 케냐에서의 생활을 책으로 묶어보겠다는 생각을 사전에 가지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시시콜콜한 것까지도 사진으로 찍어 읽는 사람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한 점이라던가, 두딸 세민과 지민이의 일기를 같이 소개하여 아이들의 시선으로 보는 케냐는 어땠는지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니 요즘에는 아이들과 삶을 공유하려는 부모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중3아들, 아내와 함께 보름동안 유럽을 돌아본 <세상의 놀이터; http://blog.joinsmsn.com/yang412/12456452>가 있었고, 두 자녀와 영국에서 9년을 생활한 엄마의 일기 <부엌창문으로 영국을 보다; http://blog.joinsmsn.com/yang412/12446558> 아들과 둘이서 유럽의 미술관을 돌아본 아빠의 이야기 <아빠의 자격; http://blog.joinsmsn.com/yang412/12327788> 등입니다.

 

읽다보니 우리 가족이 미네소타에서 겪었던 일들이 고스란이 생각나는 장면을 만나면 웃음이 절로 나곤 합니다. 예를 들면, 첫 번째 슬립오버 파티(친구들을 초대해 밤을 지내는 행사로 아이들 끼리는 중요한 행사입니다)를 다녀온 세민이가 영어를 알아들을 수 없어 엄청 짜증을 냈다고 합니다. 제 큰아이 역시 학교생활을 시작한 초반에 학교에서 돌아와 짜증을 내는 날이 있어 물어보면 점심시간에 두 종류의 급식을 선택할 수 있는데, 영어가 안돼서 먹고 싶은 메뉴를 제대로 찾아먹지 못한 날이었던 것입니다. 영어가 부족한 학생들을 따로 모아 영어공부를 시키는 ESL수업을 비교적 빨리 마치고나서부터는 그런 불평이 사라졌던 것 같습니다.

 

병원에 데리고 가는 것도 쉽지 않은 문제였습니다. 언젠가 <시코>라는 미국의 의료체계를 고발하는 영화가 주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만, 저를 초청해주신 선생님께서 기본적인 의료보험이 커버되는 수준의 주급을 주셨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치과문제로 병원을 찾은 이외에는 병원에 갈 일이 별로 없었는데, 당시만해도 의약분업이 시행되기 이전이라서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 필요한 의약품을 넉넉하게 준비해갔기 때문에 간단한 증상에는 가지고 간 약을 먹이곤 했기 때문입니다.

 

토이마켓을 소개하는 장면에서는 굿윌이라는 가게가 생각났습니다. 굿윌은 주로 돌아가신 분들이 생전에 쓰시던 의복 등 물품을 기증받아 아주 싼 가격으로 파는 가게입니다. 수입을 자선사업에 사용한다고 들었습니다. 간혹 명품도 만날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어 찾아가 보았습니다만, 아무래도 저보다 사정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좋은 물건을 만날 기회를 주는 것이 옳겠다는 생각과 아무래도 세상을 떠난 분들이 사용하던 물품이라는 선입관 때문에 찾기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손주형님의 가족이 같이 쓴 <아빠 함께가요, 케냐>는 두 가지 면을 주목하게 만드는 책입니다. 으뜸은 누구나 미지의 나라로 생각할 아프리카 케냐에서 정착해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꼭 케냐가 아니더라도 가족여행을 할 기회가 계신 분들이라면 가족여행의 소중한 기억을 책으로 남기려면 어떤 준비가 필요한 지 참고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작성된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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