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 열린책들 세계문학 2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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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바가 다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모교수가 일간신문으로부터 의뢰받은 ‘희랍인 조르바’의 독후감을 의뢰받았는데, “책을 읽다가 느닷없이 다가온 '자유'라는 조르바식 질문에 견디다 못해” 학교에 사직서를 냈다는 것입니다. 학교 측으로부터 사표가 수리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조르바를 처음 만난 것은 대학에 막 들어간 1970년대입니다. 음악다방이 유행을 타던 시절이라서 학교근처 음악다방에 가면 듣고 싶은 음악을 적어 DJ에게 보내면 골라서(?) 틀어주곤 했습니다. 밤늦게 들르게 되면 DJ Box에 쥬스 한잔 넣어주곤 하던 친구덕분에 그 다방에 가면 듣고싶은 음악을 언제나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 희랍인 조르바 OST를 만나 제가 신청하던 음악목록의 윗자리를 차지하곤 했습니다.

 

<조르바의 춤; Zorba's dance>에서 부즈키(Bouzouki)라고 하는 그리스의 전통 악기가 이끌어가는 선율은 처음에는 느리게 시작해서 점점 빨라지면서 절정을 향해 치닫다가 제풀에 지쳐 풀썩 쓰러지는 듯한 마무리는 한창 피가 끓던 시절과 잘 어울렸던 것 같습니다. 이 곡은 그리스 작곡가 미키스 데오도라키스의 작품인데, 그의 또다른 작품으로 멜리나 메르쿠리가 주연한 영화 <죽어도 좋아; Phaedra>와 함께 19070년대 학창시절을 같이 했던 음악이기도 합니다.

 

그리고는 TV 명화극장에서 만난 희랍인 조르바(Zorba The Greek)입니다. 미할리스 카코지아니스감독의 1964년 작품으로 이제는 고인이 된 앤소니 퀸이 조르바 역을 맡고 앨런 베이츠가 버질 역을, 이렌느 파파스가 미망인 역을 그리고 릴라 케드로바가 마담 오스탕스 역을 맡았습니다. 하도 오래 전에 보았기 때문에 영화에 대한 기억은 별로 남아 있지 않습니다만, 조르바가 춤을 추는 장면만 어렴풋하게 남아 있습니다. 음악은 여전히 기억에 남아 있구요. 그리고 보면 청각기억이 시각기억보다 훨씬 더 오래 가는 모양입니다. 지난 3월 26일 EBS 명화극장에서 다시 방영되었다고 해서 찾아보려 하고 있습니다.

 

드디어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만났습니다. 음악으로 만난 이래 무려 40년 만입니다. 학창시절 읽으려다가 결국은 끝내지 못한 것이 아쉽다는 아내의 부탁으로 사게 되어 같이 읽게 되었습니다. 단숨에 읽어냈기 때문에 번역을 하신 이윤기교수님이 행간에 심은 원작의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 것 같아 조만간 다시 읽을 예정입니다.

 

<희랍인 조르바>를 이해하려면 그리스의 근대역사를 이해해야 할 것 같습니다. 1453년부터 오트만제국의 지배를 받기 시작한 그리스는 무려 400년에 가까운 세월을 제국의 탄압에 시달리게 되는데 18세기 후반 프랑스혁명이후 유럽에 몰아친 민족주의의 영향으로 독립항쟁이 시작되어 영국, 프랑스,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드디어 1830년 3월 독립왕국을 수립하게 됩니다. 하지만 독립 이후에도 이들 국가의 내정간섭이 심했고, 심지어 1878년에는 오토만제국의 지배로 남아있던 사이프러스가 영국에 넘어가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소설 곳곳에 녹아들어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갈탄광산을 운영하기 위하여 크레타 섬으로 가던 중에 조르바를 만나게 되고 그의 도움을 받아 채광과 벌목을 하게 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소설에서는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상적인 삶에 지친 나는 카프카스에서 탄압받고 있는 동포를 구하기 위해서 떠나는 친구의 동행요구를 거절한 것이 늘 짐으로 남아있습니다. 결국은 “책벌레 족속들과는 거리가 먼 노동자, 농부 같은 단순한 사람들과 새 생활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15쪽)”는 결심을 실행에 옮겨 작가의 고향이기도 한 크레타 해안에 폐광이 된 갈탄광의 운영권을 빌리게 된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내가 크레타로 떠나는 배를 기다리다가 조르바를 만나게 된 것은 필연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도 “여행하시오? 어디로? 하느님의 섭리만 믿고 가시오?”라고 묻고는 “날 데려가시겠소?”라는 조르바의 요구에 “왜요?”라고 답한 나에게 “왜요! 왜요! … <왜요>가 없으면 아무 짓도 못하는 건가요? 가령, 하고 싶어서 한다면 안됩니까? 자 날 데려가쇼. … (17쪽)”라고 욱박지르는 조르바가 마음에 들어 동행하게 되고, 크레타섬에서는 탄광의 현장관리에서부터 인허가와 관련된 것, 자재구매 등등 모든 일을 조르바에 의지하게 되는 것을 보면 두 사람의 만남은 필연이라는 설명이외에 이해가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작가는 “조르바는 내가 오랫동안 찾아 다녔으나 만날 수 없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는 살아있는 가슴과 커다랗고 푸짐한 언어를 쏟아 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 이직 모태(母胎)인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였다.(22쪽)”고 적고 있습니다. 그리고 조르바는 내게 “당신은 내가 인간이라는 것, (…) 즉 자유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희랍인 조르바>에서 저는 일제강점시기에 우리 사회의 단면을 읽었습니다. 만주로 독립운동을 떠나는 행동파와 이도저도 못하고 눌러앉아 현실에 안주하는 나약한 지식인. 떠나지도 못하면서 자유로운 삶을 무한 동경하는... 그리고 압제에 눌려 살다보니 왜곡되는 기층국민들의 일상생활.. 그곳에는 정신이 타락하고 폭력성이 슬며시 자리 잡게 되는 것입니다. 조르바는 그것을 내 안에 들어있는 또 다른 나, 악마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 악마를 죽이는 일, 그것이 바로 자유로운 삶을 얻는 길이고, 나는 붓다의 가르침에서 그것을 찾으려 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보기에 붓다의 철학으로 살아가는 공동사회를 만들겠다는 꿈을 꾸는 나는 목표가 뚜렷하지 않은 이상주의자인 것 같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은 암흑세계이고 환상적이고 유동적이며 꿈이 짜낸 빛의 천으로 빛나는 미래의 세계를 보여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면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런 내가 거침없이 살아온 조르바식 자유에 매료되는 것이 당연할지 모릅니다.

 

리뷰가 너무 길어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작가가 풀어놓은 크레타섬의 풍광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은 저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던 것 같습니다. “언덕 위로 올라 사위를 내려다보았다. 화강암과 단단한 석회암의 풍경이 펼쳐졌다. 짙은 콩나무, 올리브나무, 무화과와 포도넝쿨도 시야에 들어왔다. 어두운 계곡으로는 오렌지나무 숲, 레몬나무와 모과나무가 보였으며, 해변 가까이로는 채소밭도 보였다. 바다가 펼쳐지는 남쪽으로는 아프리카에서 달려온 듯한 파도가 크레타 섬의 해안을 물어뜯고 있었다. 가까이 있는 모래섬들은 막 솟아오르는 아침 햇살에 장밋빛으로 반짝거렸다.(49쪽)” 언젠가는 가보고 싶은 곳 그리스입니다만 정말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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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침 一針 - 달아난 마음을 되돌리는 고전의 바늘 끝
정민 지음 / 김영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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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열렸던 예스24 파워문화블로거 네트워크데이에 참석했을 때 받은 책입니다. 한양대학교 국문과 정민교수님께서 쓰신 책인데 ‘달아난 마음을 되돌리는 고전의 바늘’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는 만큼 살아가면서 경구로 삼을만한 글모음이겠다 싶었습니다.

 

어수선한 세상에 서로에게 치명상을 줄 수 있는 말만 골라서 주고받다 보면 싸움이 왜 시작되었던지 조차 잊고 열중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바로 이런 상황을 정교수님은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혀는 칼이 되고, 말은 독침이 되어 여기저기서 날아와 박힌다. 정신도 덩달아 몽롱하다.” 이럴 때는? 그렇습니다. 바로 “이럴 때 정문일침(頂門一針)이 필요하다. 그 한 바늘 끝에 막혔던 혈도가 풀린다. 달아났던 마음이 화들짝 돌아온다.(4쪽)”고 답을 주셨습니다.

 

상황파악이 안되어 말이 헷갈리는 사람을 보면 넌지시 한 마디를 던져 상황을 깨닫게 해주는 경우를 일컬어 ‘일침(一針)을 놓는다’고 합니다. 이런 경우 말이 길어지면 자칫 꼬이기 십상이라 오히려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 수도 있어 전하고자 하는 뜻을 함축한 짧은 말이 좋을 수 있습니다. 저자는 그런 이유로 4자성어 형태로 압축한 일침을 만들어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읽으면 따끔함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의도를 나타내셨는데, 막상 읽어보면 그야말로 촌철살인(寸鐵殺人)의 경지에 이르고 있다 싶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한문교육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는 사이 선조의 한문학의 전통을 잇는 분들이 점차 줄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자취를 접할 기회가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이 즈음에 정교수님의 일침(一針)은 우리 사회에 따끔한 자극이 될 것 같습니다.

 

저자는 오랜 한문학 연구를 통하여 마음에 품어둔 글들 가운데 가려 뽑은 100개의 글을 25개씩 묶어 1부 <마음의 표정> 2부 <공부의 칼끝> 3부 <진창의 탄식> 4부 <통치의 묘방>이라는 이름으로 나누었습니다. 스스로의 마음에 이는 생각을 다스려 세상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새겨야 할 선인들의 지혜를 적절하게 배치했다고 보입니다.

 

그 첫 번째 글 <일기일회(一期一會)>로 하신 것은 좋은 기회는 평생 한번 온다고 새길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자는 우리가 살고 있는 매순간은 최초의 순간이기 때문에 모든 만남은 첫 만남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여야 하겠다는 뜻을 담아 첫 번째 글로 정한 것 아닐까 싶습니다. 이어지는 <심한신왕(心閒神旺)>편에서는 마음이 한가로우면 정신작용이 활발해져서 건강한 생각이 샘솟듯 솟아난다고 적었는데, 일없는 사람은 마음만 바쁘면 공연한 일을 벌인다고 꼬집으신 부분이 일침(一針)이 되었습니다. 정신없이 바쁘다가 한가해진 틈을 즐기고 있는 저를 꼬드긴 친구에게 넘어가 봉사활동을 하는 동아리를 만들었던 것이 벌써 35년이 넘는 세월을 이어오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허정무위(虛靜無爲)>처럼 옛 성현의 글을 이어 소개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옛글을 풀어내고 저자의 생각을 버무려 읽는 사람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글을 읽으면서 돋보기를 들이대는 제 습관은 여기서도 의문점을 발견합니다. 금년 봄은 기온이 늦게 올라가는 바람에 봄꽃이 늦었습니다만 꽃이 피면서 기온이 급상승하는 바람에 일찍 지고 말아 섭섭하신 분들이 적지 않았을 것입니다. 금년 같은 봄날과 인생을 비유해서 ‘인생의 봄날은 쉬 지나간다’고 새긴 <점수청정(點水蜻蜓)>입니다. 두보의 ‘곡강(曲江)’이란 시에 나오는 글입니다. 아름다운 봄날의 풍광을 그리는 시에서 꽃은 만발하고 잠자리는 잔잔한 수면 위로 꽁지를 구부려 점을 찍고 날아간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물속에서 유충상태로 지내다가 성충으로 우화하는 잠자리는 5천종이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데, 종류별로 다양하여 4∼11월 사이에 성충으로 우화하여 활동하나 대부분은 6∼10월에 많이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성충이 되어 짝짓기를 한 다음에 수면에 알을 낳는 것이기 때문에 꽃피는 봄날 보다는 한여름에 알낳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도연명의 귀거래사에서 따온 <작비금시(昨非今是)>의 의미를 그대로 읽으면 ‘어제가 잘못이고 오늘이 옳다’가 되는데 ‘지난 잘못을 걷고 옳은 지금을 간다’로 풀어냈습니다. 이는 스스로를 끊임없이 살펴서 잘못을 과감하게 걷어내어 바른 길로 인도해야 한다는 것으로 읽힙니다. 스스로를 파멸로 이끄는 길은 밝고 넓어 보이지만 언젠가는 그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래 전에 방송을 통하여 타인의 약점을 캐고 이를 저급한 말로 비유하는 것으로 순간의 인기를 얻어냈던 방송인이 그때 뱉었던 말들이 독침이 되어 설자리를 잃게 되는 위기를 맞았다고 합니다. 같이 방송활동을 하는 자식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선처해달라고 했다는데, 자식가진 부모가 언행에 더욱 조심해야 한다는 만고의 진리를 몰랐던 것인지 아니면 현재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꼼수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 또한 뿌린 씨앗대로 거두게 되는 것 아닐까요?

 

‘말해야 할 때와 침묵해야 할 때’를 이른 <어묵찬금(語嘿囋噤)>편에서 저자는 인조 때 문신 신흠(申欽)의 글 “마땅히 말해야 할 때 침묵하는 것은 잘못이다(當語而嘿者非也)(73쪽)”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읽은 <1,100만명을 어떻게 죽일까?; http://blog.joinsmsn.com/yang412/12625273>는 투표에 적극 참여하여 시민들을 잘못된 길로 안내하는 정치인이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보다는 히틀러가 노란색 별을 달고 수용소로 끌고가 가스실로 몰아넣는 동안 침묵했던 수많은 사람들은 이제 평생 떼어버릴 수 없는 배지를 달고 마음을 옥죄는 고통 속에서 살아왔음을 지적하는 부분이 더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바로 우리가 맞고 있는 현실 때문입니다. 살아가는 것이 너무 힘들어 국경을 넘은 탈북동포들이 중국공안에 붙들려 북한으로 송환되면 수용소에 갇혀 비참하게 살게 되거나 심하면 죽음을 맞게 된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 당국에 탈북동포들에게 난민지위를 인정하도록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동포들이 맞고 있는 죽음의 위기상황에 침묵하거나 심지어는 외면하시는 분들이 있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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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크! 체크리스트 - 완벽한 사람은 마지막 2분이 다르다
아툴 가완디 지음, 박산호 옮김, 김재진 감수 / 21세기북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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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현대의학의 비과학성’이라는 구체적인 제목의 글을 달고 의료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책을 읽고서 한편 놀라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한 적이 있습니다. <의사들이 해주지 않는 이야기; http://blog.joinsmsn.com/yang412/12617144>라는 제목의 이 책은 마치 의사들이 쉬쉬하고 있는 비밀을 캐내어 의사들의 뻔뻔함을 고발하는 분위기를 잡고 있지만, 내용은 의학전문잡지에 발표되고 있는 각종 논문들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의학적 타당성이 없다는 내용을 담은 논문을 주로 인용하면서 그 반대되는 주장을 담은 논문은 아예 있는지 없는지 언급하지 않고 있어 저자가 의학에 대한 편향된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문제는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저자의 주장에 따라 현대의학을 거부하는 사태가 오지 않을까 우려된다는 점입니다. 워낙이 광범위한 영역에서 자료를 모으고 있어 저의 관심영역이 아니면 진위여부의 확인이 어려웠습니다.

 

현대의학이 빠른 속도로 다양한 방향으로 발전하다 보니 진료에 참여하는 전문가들 역시 다양할 수밖에 없고, 이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경우 소정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물론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는 속담처럼 전문가라는 사람도 범할 수 있는 실수라는 영역도 포함해서 말입니다. 하지만 의료라는 영역은 인간의 생명을 다루고 있는 만큼 어떠한 경우에도 최선의 결과가 도출되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이 작용하는 분야이기도 합니다.

 

제가 하고 있는 업무는 의료현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진료행위가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이 되도록 하는데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어제는 모 상급병원에서 새로 부임한 스태프들을 위한 업무교육에서 제가 하고 있는 업무를 소개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런 교육시간에는 보통 제가 발표할 시간에 맞추어 도착해서는 제 몫의 강의가 끝나면 떠나는 것이 일반입니다만, 이날은 모든 교육프로그램에 저도 참여해서 같이 들었습니다. 그 가운데 유독 저의 관심을 끌었던 주제가 바로 “Critical Pathway(CP로 줄입니다)”였습니다. 아직 그 의미를 제대로 담을 수 있는 적절한 우리말이 없어 그대로 적습니다.

 

CP는 건설/공학분야에서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여러 가지 공정으로 편성된 작업현장에서 최단 경로로 제품을 완성하는 경로를 택해 산업의 효율성을 개선하기 위해 도입된 시스템입니다. 의료분야에 적용된 것은 1985년 미국 보스턴의 New England Medical Center에서 효율적인 의료를 제공하고 의료의 질을 유지하려는 목적으로 진료에 도입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보니 제가 하고 있는 의료에서의 적정성평가 역시 산업현장에서 나온 개념이 의료분야에 적용하여 이제는 성공적으로 운용되고 있는 것과 흡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CP는 환자진료에 관련된 모든 분야에서 일하는 의료인이 참여한 가운데 개발하여 환자의 진료가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만든 진료절차의 틀입니다. 흔히는 규격화된 진료행태를 만드는 것 아니냐는 문제제기도 있으나, 진료과정에서 나타나는 변이가 CP의 틀 안에서 해결되지 않는 경우 별도의 대응을 하도록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습니다.

 

<체크! 체크리스트>는 바로 의료현장에서 피할 수 있는 실수를 예방할 수 있도록 사전에 정한 체크리스트에 따라서 확인하고 또 확인함으로서 환자의 안전을 지키자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저자는 의료현장에서 실수가 일어나는 원인은 의료분야에서 축적되어온 지식의 양이 방대해지고 내용 자체도 복잡해지고 있어 개인이 관리할 수 있는 수용한계를 넘어서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발생할 수 있는 실수를 예방하기 위한 전략적 접근방식이 바로 체크리스트에 기반한 교차체크방식이라는 것입니다.

 

저자인 아툴 가완디는 하버드대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일반외과 조교수로 근무하고 있는데, 의료계가 당면하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정리한 글을 통하여 의료계와 일반인의 관심을 얻은 바 있습니다. 이미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 http://blog.joins.com/yang412/8944844>, <닥터, 좋은 의사를 말하다; http://blog.joinsmsn.com/yang412/10272224>를 통하여 그의 솔직한 글솜씨에 반해온 탓인지는 몰라도 <체크! 체크리스트> 역시 공감되는 바가 참으로 많았습니다.

 

“왜 전문가도 실수하는가”라는 제목으로 된 1장을 요약하는 다음 글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초전문가 시대, 즉 한정된 분야에서 최고가 될 때까지 연습에 연습을 거듭한 일류 전문가들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고도의 지식과 전문 기술을 보유한 전문가들조차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실수를 피할 수 없다. 복잡하고 전문화된 현대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이미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버렸다.” 공감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이며, ‘그래도 전문가인데 설마?’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저자는 항공계, 건축업계에서 체크 리스트를 도입하여 성공한 체크리스트 운용사례 등을 인용하여 우리에게는 생소하고 저항감마저 생기는 체크리스트라고 하는 사전예방체계의 효용성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WHO의 요청에 따라서 수술 후 환자에서 발생하는 후유증을 줄이기 위한 체크리스트를 직접 개발하여 전 세계의 다양한 수준의 병원 8곳에서 시범운용한 결과를 2009년 1월 뉴잉글랜드 의학저널에 발표한 바 있고, 이 책을 통해서 핵심내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체크리스트를 통하여 수술 후 후유증을 줄였고, 수술에 참여하는 팀원들의 팀워크를 개선하였음을 확인하였다고 합니다. 체크리스트는 환자의 안전확보에 중요한 요소들을 중심으로 구성되는데, 예를 들면, “시기적절한 항생제 투여, 제대로 작동되는 맥박산소측정기 사용, 기도 내 튜브를 삽입할 때 필요한 공식적인 위험평가 완료, 환자의 신원과 수술절차의 구두확인, 심각한 출혈이 발생한 환자를 위한 정맥주사 라인의 적절한 삽입, 마지막으로 수술이 끝났을 때 스펀지들이 모두 제자리에 있는지 확인하는 절차들이 제대로 행해지고 있는지 추적하는 것(196쪽)” 등입니다.

 

시범사업이 끝날 무렵 참여했던 직원들의 80%는 체크리스트가 사용하기 쉽고, 실시하는데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으며, 치료의 안전성이 향상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수술에 참여하는 의료팀 안에서 의사소통의 수준이 향상되어 팀워크가 좋아졌다고 했으며, 수술후 합병증이 36%, 수술후 환자사망률이 47% 감소한 결과를 얻기도 했다고 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만든 체크리스트 가운데 수술할 때 절개를 하기 1시간 이내에 적절한 항생제를 투여했는가를 목록에 넣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띄었습니다. 제가 맡고 있는 업무 가운데 <수술의 예방적 항생제 사용 평가>라는 업무가 바로 이 부분입니다. 수술을 담당하는 외과선생님들은 수술부위에 염증이 생기는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하여 항생제를 충분히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술의 예방적 항생제 사용이라는 개념은 피부를 절개하고 수술을 진행하는 경우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수술과정에서 상처를 감염시키는 병원균을 처리하기 위하여 수술부위를 절개하기 1시간 이내에(즉 항생제를 투여하고 1시간 이내에 절개를 해야 한다는 개념입니다.) 적절한 항생제를 투여하여 수술시간동안 혈중 항생제농도가 최고치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방적 항생제를 사용하면 수술이 끝난 다음 24시간 이내에 항생제 사용을 끊어도 수술부위에 감염이 일어나지 않더라는 연구결과들이 축적되어 만들어진 평가기법입니다. 하지만 감염위험에 대하여 심각하게 생각하시는 외과선생님들은 항생제에 의존하는 경향을 쉽게 버리지 못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수술하는 환자에서 예방적으로 항생제를 사용하고 수술 후에는 일찍 항생제 사용을 중단하는 외과선생님들이 빠르게 늘고 있어 다행입니다.

 

의료계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사상가 도널드 버윅은 ‘의료행위란 자동차와 같다’고 말하곤 하는데 자동차든 의료행위든 훌륭한 구성요소를 갖추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의학계는 최고의 약, 최고의 장비, 최고의 전문가와 같은 최고의 구성 요소들을 갖추는데 집착하면서 이 요소들이 서로 잘 맞을 수 있도록 만드는 데는 별 관심을 쏟지 않는다.(249쪽)”고 따끔하게 꼬집고 있습니다. “시스템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일류 부품만 갖추었다고 해서 시스템이 훌륭해지는 것이 아님을 즉각 알아차릴 겁니다.”라고 한 버윅의 조언은 의료계에 꼭 맞는 조언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의료팀을 도와주기 위하여 만들어져야 할 체크리스트가 오히려 의료팀을 방해하는 경직된 명령처럼 운영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효율적이면서도 간단한 절차가 되도록 하고, 상황의 변화에 따라서 수시로 검토하여 개선하는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입니다.

 

‘완벽한 사람은 마지막 2분이 다르다’는 제목을 둔 저자의 조언에 귀를 기울여보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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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2012-04-23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넷신문 <라포르시안>에서 SNS를 통한 댓글 이벤트를 통하여 도서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다음 주소의 포스팅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www.rapportian.com/n_news/news/view.html?no=5318
 
1,100만 명을 어떻게 죽일까? -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진실이 중요한 이유
앤디 앤드루스 지음, 이은정 옮김 / 에이미팩토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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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제국에 의해서 자행된 학살의 피해자가 1,100만이나 된다는 끔찍한 사실을 다시 새기는 순간 왜 그런 일이 일어나게 되었는지 확인해고 싶어졌습니다. 사실 ‘폰더씨’ 시리즈를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 책의 저자 앤디 앤드루스를 잘 모른다는 고백을 먼저 해야 하겠습니다.

 

<How do you kill 11 million people?>이라고 된 영어 제목을 보면 ‘내가 그렇게 엄청난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고?’하는 생각이 들면서 소름이 돋게 됩니다. 권두에 있는 작가의 말을 읽으면서 제가 알고자 했던 것과는 다른 내용일 수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국도 우리나라와 크게 다를 게 없듯이 다양한 분야에서 잘나가는 사람들을 정치판으로 끌어들이려는 경향이 있는 모양입니다. 저자는 다양한 형태의 정치모임에서 이야기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아왔는데 아마 공화당이나 민주당 모두였던 같습니다. 하지만 스스로를 네편 내편이 아닌 우리 편이라 생각한다는 저자의 주장을 우리나라의 시각에서 보면 ‘사꾸라’라고 불릴만하단 생각이 듭니다. 책을 읽고나서는 정치판의 그런 요구를 받아온 저자가 미국식 정치현실의 문제를 독자들에게 깨우치기 위해서 쓴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였습니다.

 

그 근거로 무려 1억 명의 미국인들은 투표에 참여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당과 공화당사람들이 국민의 대표로 선출되어 미국을 움직이고 있는 것이 과연 옳다고 할 수 있는가를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25년간 미국 대선에서 1,000만표 이상의 차이로 당선된 대통령은 하나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1억명을 향하여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독일 제3제국의 히틀러가 1,100만명을 학살하는 과정에서 힘을 쥔 자가 횡포를 부릴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지 않고 눈감았던 ‘우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점을 인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유태인만이 홀로코스트에서 피해를 입었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저자는 1,100만명의 피해자 가운데 500만명은 유태인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3제국은 처음부터 유태인을 학살하겠다고 공언하고 그들을 수용소로 끌고 갔던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소련을 팔아 유태인을 보호해주겠다는 감언이설로 속여 수용소로 끌고 갔고, 시간이 흘러 수용소의 비밀이 어느 정도 알려진 다음에도 이런 상황을 애써 외면하려는 사람들의 암묵적인 인정아래 끔찍한 일이 계속될 수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히틀러의 제3제국이 저지른 만행을 중심으로 상황을 외면한 자들을 겨냥하고 있습니다만, 그밖에도 캄보디아, 소련, 북한, 멕시코, 파키스탄, 발트 공화국 등 세계 각지에서 일어난 자국 정부에 의하여 죽임을 당한 사람들의 엄청난 숫자를 인용하고 있기도 합니다. 저자는 1,100만명을 죽이는 방법은 바로 ‘그들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고 일갈하고 있는 것입니다. 히틀러는 측근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란 생각이란 걸 안해. 그러니까 뻥을 크게 치라고. 쉽고 간단하게 말해. 계속 말하는거야.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사람들은 그걸 믿는단 말이지.(53쪽)” 그런 거짓말이 통해서 학살이 시작되고 이들을 말릴 수 있는 상황을 넘어섰다고 생각한 일반 시민들이 눈을 감게 되는 순간 학살은 광란의 극을 향하여 치닫게 된 것입니다.

 

저자는 미국 의회를 채우고 있는 545명의 상, 하원 의원들이 모든 법을 만들고 예산을 계획하며 모든 정책을 만들어 전 국민들에게 강제하는 것이 민주주의 실상이라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아주 효과적으로 거짓말을 하면 그것은 정치가 되어 범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을 선출할 때, 그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그의 ‘행위’를 면밀히 보는 것이 일반 대중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힘이라는 것입니다. 일반 대중이 가지고 있는 힘을 모두 발휘하여 제대로 행사해야만 제대로 대표를 선출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물론 저자의 주장이 모두 옳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주 옛날 그리스에서처럼 모든 국민이 의사결정에 참여하던 직접 민주주의가 가능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직접 민주주의는 사실상 실시가 불가능한 현실이고, 또한 일반 국민의 생각이 한 방향으로 일치할 수는 없기 때문에 가장 많은 시민의 지지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모여 의사결정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양한 견해가 표출되어 대표성을 얻기 위하여 노력하는 과정이 선거이고 이 과정에서 자신의 견해를 대변할 사람이 없다고 판단하여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시민 또한 자신의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저자의 주장이 모두 옳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자신의 의견과 같이하는 대표에게 투표함으로써 시민 전체의 의견이 어떻다는 것을 분명하게 할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책 말미에 붙인 옮긴이의 글이 시사하고 있는 편향성입니다. 저자는 6.25동란기간 남한정부에 의하여 학살된 민간인을 다룬 더 타임스의 기사를 비롯하여 김구, 조봉암 등 정치인사 암살 및 숙청, 여순반란사건을 포함한 수많은 학살, 제주 4.3항쟁, 4.19민주화혁명 등등 남한정부가 저지른 학살을 지적하면서 “대한민국에서는 비단 히틀러만이 아니라 히틀러 II, 히틀러 III들이 연달아 정권을 장악했고, 그들의 범죄는 종잇장처럼 얄팍한 처벌로 합리화됐고, 그들과 그 조력자들은 여전히 천지를 활보한다.(111쪽)”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사회는 과거 권위주의 정권과의 오랜 민주화투쟁을 벌였고 그 결과 투표에 의한 정권교체라는 세계가 놀랄만한 민주화의 진정을 이뤄낸 나라입니다. 뿐만 아니라 민주화세력도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없으면 권력을 내놓아야 한다는 준엄함을 보인 대단한 국민이라는 사실을 외면하고 국민을 가르치려 드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이미 끝난 총선과정에서 여야 모두 국민이 이해할 수 없는 행보를 보였다는 것을 국민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잘못을 바로 잡는 노력을 보이는 쪽이 연말 대선에서 국민의 지지를 얻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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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영화포스터 커버 특별판)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옮긴이는 ‘수많은 독자들이 나에게 책을 다 읽자마자 다시 처음부터 읽었다고 말했다.’는 저자의 말을 전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저 역시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주인공 앤서니 앱스터가 전하는 삶의 족적 어디에 이야기의 결말에 대한 힌트가 숨어있었는지 확인해봐야 할 것 같아서입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의 스토리를 끌고 가는 토니(어쩌면 주인공 앤서니는 제가 이렇게 부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주인공이 친근해서라기보다는 적기 편하다는 이유로 이렇게 부르겠습니다.)가 적고 있는 일종의 자서전입니다. 저 자신도 저의 삶의 기록을 정리해보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어 관심이 가는 대목입니다.

 

책은 간단하게 1부와 2부로 나뉘어 있습니다. 1부에서는 토니가 고등학교에 다닐 무렵부터 대학에 들어가고 여자친구를 만나고 헤어지고 그리고 결혼을 하고 또 이혼을 하고 이제는 나이 들어 은퇴생활을 하게 될 때까지 삶의 흐름을 술회하고 있습니다. 눈에 띄는 대목은 젊었을 적에 같이 어울리던 4명의 친구들, 특히 에이드리언에 대한 토니의 설명은 마치 데미안을 떠올리게 합니다. 감성이 풍부한 싱클레어가 진정한 삶에 대해 고민하고 올바르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데미안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듯이 에이드리언은 토니에게 있어 데미안 같은 존재로 서술되고 있습니다.

 

네 명의 친구들의 성장기를 그리는 장면에서는 저자의 심오한 인문학적 사색의 깊이를 읽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T.S. 엘리엇이 말하는 인생의 총체, ‘탄생, 성교, 그리고 죽음’의 의미를 설명해보라는 영어교사 필 딕슨선생의 질문에 에이드리언은 “사랑과 죽음, 즉 죽음의 원칙과 충돌하는 에로스의 원칙”이라고 답변합니다. 그런가하면 역사의 조 헌트선생이 던지는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토니는 “역사는 승자들의 거짓말입니다.(33쪽)”라고 답변하는데, 그는 자신에 주어진 세월을 살아낸 다음에는 “역사는 살아남은 자, 대부분 승자도 패자도 아닌 이들의 회고에 더 가깝다는 것(101쪽)”을 깨닫게 됩니다.

 

이처럼 저자가 1부의 이야기를 풀어놓으면서 2부 마무리에서 드러나는 사실과 연관된 힌트를 곳곳에 숨겨놓고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 읽을 때 그런 연관성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제가 아무래도 부족함이 많은 독자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저 처음 읽을 때는 저도 이들 나이에는 저랬는데 공감하는 대목이 적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이제 과거를 되돌아보는 나이가 된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토니의 친구 세 사람은 서로의 결속을 다지는 상징으로 손목시계의 앞면을 손목 안쪽으로 돌려서 차고 다녔는데, 그것이 허세였던 것 같다고 회고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같은 모양으로 시계를 차고 다녔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다른 친구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보이기 위한 허세였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2부는 젊었을 적 사귀었던 여자친구 베로니카의 어머니가 죽은 다음 토니에게 500파운드와 친구 에이드리언의 유품 일기장을 남겼다는 변호사의 편지를 받으면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젊어서 사귀던 여자친구와 성격차이로 헤어질 수도 있는 문제이겠지만 그녀의 어머니가 현금과 유물을 상속하도록 유언을 남긴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1부에서 헤어진 베로니카가 친구 에이드리언과 사귀게 되었다는 편지를 받았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고, 그리고 나서 에이드리언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는 것은 밝히고 있기 때문에 베로니카의 어머니의 유산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깨닫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베로니카 어머니가 남긴 유물은 친구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이었는데, 이 일기장은 베로니카가 이미 가져간 상태입니다. 토니는 에이드리언이 남긴 글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일기장을 돌려받기 위하여 연락을 끊고 지내던 베로니카와 다시 만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베로니카, 에이드리언, 그리고 토니 사이에 얽히고설킨 과거사가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저자가 독자에게 전하려는 메시지를 이해하는데 토머스 키다의 <생각의 오류; http://blog.joinsmsn.com/yang412/2081937>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키다는 우리가 사고와 기억의 오류를 범하는 이유 혹은 유형을, “1. 통계수치보다 입에서 나온 이야기가 더 솔깃하다. 2. 내 생각에 의문을 품기보다 확신하려 든다. 3. 세상에는 운과 우연으로 이루어지는 일도 있음을 간과한다. 4. 나를 둘러싼 세계를 잘못 인식하곤 한다. 5. 지나치게 단순화해 생각한다. 6. 인간의 기억은 이따금 부정확하다.”의 6가지 유형으로 분류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신이 인간에게 내린 선물이 기억이라고 한다면 그 기억을 잊을 수 있는 능력을 덤으로 주신 것은 기억과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프리미엄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그 프리미엄을 자신에게 편리하게 활용한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토니 역시 젊어서 에이드리언과 베로니카에게 저지른 엄청나고 어리석은 실수를 베로니카를 다시 만나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의 일부를 얻고서야 깨닫게 된다는 것인데,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저자가 독자에게 전하려는 마지막 힌트를 저는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토니는 자신이 보낸 편지 한 장이 친구와 옛 여자친구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히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던 것인지, 아니면 기억의 바닥보다 더 깊이 파묻어버리고 잊혀지기를 원했지만, 스스로에게는 언젠가는 수면위로 떠오를 것이라 예감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그런 이유로 저자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라고 정한 것이기도 하구요. 저자는 그런 해석이 가능한 힌트를 “뇌는 이따금씩 파편적인 기억을 던질 테고, 심지어는 기억의 묵은 폐쇄회로를 터주기까지 할 것이다. 그런 일이 요새 내게 일어나고 있으니 경악할 노릇이다.(194쪽)”에 묻어두지 않았을까요?

 

과거에 깊은 생각 없이 던진 말 혹은 글이 부메랑이 되어 발목 잡힌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가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과 행동을 조신하게 하라는 선조님들의 말씀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젊었을 때의 시선으로 보면 한평생이 정말 긴 것처럼 느껴지지만 막상 세월이 지나고 보니 그렇게 짧을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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