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유혹의 시절 - 범우비평세계문학선 454-1
한스 카롯사 지음, 홍경호 옮김 / 범우사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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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박완서선생님이 작고하시기 직전에 내신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http://blog.joinsmsn.com/yang412/12798700>를 읽었습니다. 일상의 삶에서 얻은 생각은 ‘내 생애의 밑줄’에, 그리고 책을 읽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은 ‘책들의 오솔길’에 그리고 먼저 가신 분들을 생각하며 애닮은 마음은 ‘그리움을 위하여’에 나누어 담고 있습니다. 출판사에서 ‘시대의 이야기꾼’이라는 별호를 드린 것처럼,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눈으로 읽으면서도 마치 혀끝에서 미끄러져 내리는 듯한 글을 읽으면 저도 모르게 ‘나는 언제쯤이나 이런 글을 써보려나’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이곳저곳에 글을 쓰면서 선생님의 일상을 인용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선생님의 산문 ‘내 생애의 밑줄’에서 재미있는 일화를 읽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읽던 페이지에는 반드시 표시가 될 만한 것을 끼워놓지, 접지 않을 뿐 아니라 읽다가 기억해두고 싶은 좋은 문장을 발견했다고 해도 밑줄이라는 걸 쳐본 적은, 절대로라도 해도 좋을 만큼 없었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 수년 전 본격적으로 독후감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책에 밑줄을 치는 대신 포스트잇을 붙여 표시해 두었다가 독후감을 쓸 때 그곳을 다시 챙겨 읽는 버릇을 들였습니다. 하지만 오래 전에는 책을 읽다가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들을 여백을 따라서 적어두곤 했습니다. 특히 대학에 갓 입학했을 무렵에는 아무래도 이런저런 생각들이 넘쳐났던지 제법 여백을 채우는 메모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바로 그때 읽었던 책을 [북소리]에서 소개하려합니다. 바로 의사이면서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독일 문학계를 풍미한 시인이자 소설가인 한스 카로사 박사의 <아름다운 유혹의 시절>입니다. 박완서 선생님의 산문 ‘내 생애의 밑줄’ 덕분에 잊고 있었던, 아니 어쩌면 제 기억의 심연에 가라앉아 오랫동안 제 삶에 영향을 미쳐왔을 <아름다운 유혹의 시절>에 대한 기억이 떠오른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글이 여러분들의 기억에 담아 두었던 오래 전에 읽은 책을 떠올릴 수 있기를 기대하는 생각도 가지고 있습니다.

 

요즈음 젊은이들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제 나이쯤 되는 분들에게 청춘시절에 읽은 책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이 무어냐고 물으면 상당히 많은 분들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꼽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야기 전체는 기억이 나지 않더라도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싸운다. 알은 곧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라는 데미안이 남긴 구절은 기억하실 것입니다. 헤세는 <데미안>에서 감수성이 풍부한 주인공 싱클레어가 소년기에서 청년기를 거쳐 어른으로 자라가는 과정에서 만난 친구 데미안과 함께 삶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하고 올바르게 살아가려 노력하는 모습이 세밀하고 지적인 문장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물론 저도 <데미안>에 심취했던 시절이 있습니다만, 저의 추억의 앨범에 더 진하게 남아있는 책은 <아름다운 유혹의 시절>입니다. 어쩌면 한스 카로사 박사가 의과대학에 입학할 무렵부터 시작해서 의학을 공부하는 과정을 담고 있어 더욱 실감이 났고, 제 자신이 주인공에 투사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북소리]에서 이 작품을 소개하기 위하여 고향집에 갈 때 마다 책장을 뒤졌지만, 어디로 사라졌는지 찾을 수 없어 새로 구입을 해야 했습니다. 70년대 초반에 이 책을 출간했던 범우사에서는 2004년 2월에 다시 출간한 것 같습니다. 어떻든 그때는 단숨에 읽어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만, 나이가 든 탓인지 새로 읽는 책은 읽는 호흡이 꽤나 더뎠습니다.

 

책이야기를 하기 전에 한스 카로사(Hans Carossa, 1878~1956)박사를 먼저 소개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는 남부 바이에른 튈츠에서 태어났습니다. 의사인 부친의 영향을 받아 뮌헨, 라이프치히, 부르츠부르크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1903년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습니다. 개업을 하여 환자진료를 하면서 시, 수필, 소설 등을 발표하였는데, <유년시절>, <젊은이의 변모>, <의사 기온>, <젊은 의사의 수기>, <루마니아 일기>, <두 개의 세계>, <이탈리아 여행>등을 남겼고, 1931년에 고트프리트 켈러상을 1938년에는 괴테상을 수상하였습니다.

 

그는 작품 속에 자신의 삶을 녹여냈는데, 특히 <아름다운 유혹의 시절>은 “자신의 지나간 생애를 그린 이 작품에서 그는 고향을 떠나 수줍고 순박스러운 젊은이로서 대도시 뮌헨에 도착해서 의학을 공부하는 날로부터 시작해서 그 시절 그와 스쳐 지나간 여러 여인들과의 사랑과 좌절을 그렸으며, 고명한 여러 교수님과 그들의 강의에서 얻은 새롭고 외경에 찬 학문의 세계, 그리고 그가 밤을 새워 읽었던 고전과 당대의 명저와 시인들의 사상, 거기서 얻은 정신적인 자양분이 이 젊은이의 영혼에 투영되어 마침내는 질서와 사랑이 평형을 이루는 좌표를 구해내게 되는 과정을 차원 높은 관조자의 입장으로 보여주고 있다.(6쪽)”고 번역을 하신 홍경호교수님은 적고 있습니다.

 

한스 카로사는 같은 시대에 활동한 헤르만 헤세나 토마스 만이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대립적으로 다룬 것과는 달리 괴테의 전통을 충실하게 지켜 하찮아 보이는 일상 속에서 세계가 지닌 영원한 법칙이나 신성을 찾아내고자 했다는 평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제 경우는 학창시절 여러 동아리를 기웃거리다가 졸업을 하고 말았습니다만, 당시에도 문학, 음악, 그림, 연극 등 다양한 분야의 동아리활동을 통하여 의학 이외의 영역에서도 타고난 재능을 발휘하는 분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런데 의과대학에 입학할 무렵 카로사 박사는 이미 저명한 시인의 인정을 받을 정도로 시재를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문학에 관심이 많은 동무들과 어울리며 재능을 꽃 피워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본업인 의학공부도 열심히 해야 했습니다. 독일대학은 입학은 쉽지만 졸업하기가 만만치 않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특히 구두시험을 통과하기 위하여 진땀을 흘려야 했다는 고백도 숨기지 않습니다.

 

구술시험하니 저도 역시 옛날 추억 한 자락을 적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기초의학 과목 가운데 제일 어려운 공부는 바로 병리학이었습니다. 재시험에 걸리게 되면 주임교수님 앞에서 보는 구술시험을 통과해야 진급이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그 구술시험이라는 것이 교수님께서 재시험대상자의 숫자만큼 문제를 적은 쪽지를 담은 잠자리채에서 하나 꺼내서 답변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정답이 아니면 그 자리에서 낙제가 결정된대서 지옥에라도 들어가는 분위기였던 것입니다. 한 문제로 한 젊은이의 1년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사실 아는 문제도 주임교수님 앞에 서면 머릿속이 하얗게 변한다는 선배님들의 공포스러운 체험담이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2개 학기에 병리학을 공부하는동안 각각 두 번씩 치른 육안, 현미경 그리고 필기시험을 모두 한번에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재시험 대상자를 고르는 시험에서는 운좋게 통과할 수 있어 끔찍한 구술시험을 치루기 위하여 주임교수님을 독대하는 상황은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피를 말렸던 병리학과 무슨 인연이 끈질겼던지 결국은 병리학을 전공하게 되었으니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전에 털어놓았던 해부학시험 이야기에 이어서 병리학까지도 공부가 시원치 못해서 숨겨야 하는 부끄러운 학창생활을 [북소리]를 통해서 고백하게 되는 것도 팔자소관인 듯합니다.

 

청춘시절 사랑을 빼놓으면 그야말로 앙꼬없는 찐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카로사박사 역시 ‘만남’이라는 제목에서 우연히 만난 프랑스 처녀와의 기이한 만남을 적고 있습니다. 친척 자매를 방문한 자리가 어색하게 파한 다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베일을 쓴 여인과의 우연하게 만났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필연적으로 만나야 할 운명이었다고 말하는 부분은 요즘의 생각으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 만남에 대하여 저자는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반점이 있는 그 베일 속에서 내게 눈길을 보낸 그 여인은 아름다운 시체, 해부학 강의 첫 시간 이후로 그 감지 못하던 눈이 도저히 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던 그 여성의 얼굴과 너무나 닮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80쪽)” 사실 한밤중에 호젓한 길에서 마주친 여인이 해부학실습실에서 만나는 여성과 흡사하다는 느낌이 들었다면 거의 혼비백산 도망치고 말았을 것 같은데 박사는 지나치게 담담했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숙명인 것만 같았던 그녀와의 만남도 결국은 이별로 마무리가 되고 말았다는데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우리네 속설이 독일에서도 통하는 것 아닐까요?

 

사실 이 작품 가운데 제 기억 속에서 가장 뚜렷하게 남아 있는 부분은 바로 ‘도보여행’이라는 제목으로 된 마지막 글입니다. 요즘에도 걸어서 국토순례하는 젊은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박사님은 요즘 젊은이들처럼 고난을 즐기려는 목적보다는 자연을 즐기기 위하여 일부러 걸어서 여행을 한 것이니 부럽기만 합니다.

 

지난 해 자전거로 유럽을 여행한 친구를 만났습니다. 흔히 외국여행을 가면 비행기나 기차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그곳의 유명한 관광상품을 구경하고 역시 교통편을 이용해서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식이 됩니다. 이런 여행을 하다보면 그곳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생활을 경험할 수 없는 아쉬움이 남게 됩니다. 한 장소에서 오래 머물면서 그들과 친구가 되어 같이 생활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데 그렇게 늘어진 여행을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 친구는 자전거여행을 다녀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마을과 마을 사이에 펼쳐진 자연을 직접 보고 느끼고, 가는 길에 만나는 사람들과 친해질 기회도 생기더라는 이야기입니다. 그 친구의 여행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카로사박사는 한술 더 떠서 방학을 이용해서 도보여행을 다녀왔는데, 당시 혜성같이 등단한 여류시인이 살고 있는 마을까지 도나우강을 따라서 걸어가는 여행입니다. 그리고 시인의 집에 머물면서 그 가족들의 일상에 동참하고서 느낀 바를 적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만 해도 사람사는 인심이 지금과 달랐던 때문인지 길을 가는 사람들을 집에 들여 묵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경우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우리 선조 역시 사랑채에 과객을 쉬게 하거나 사정이 그렇지 못한 집에서는 건넌방 혹은 헛간을 치워서라도 잠자리를 마련하고 거친 음식일지라도 대접했다 하니 양의 동서를 떠나 사람사는 것이 비슷한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이처럼 좋은 풍습이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가고 있어 아쉽다 하겠습니다.

 

카로사박사가 도보여행에 적고 있는 것들, 예를 들면 여행길에서 눈에 들어오는 풍경, 만난 사람에 대한 이야기에서 쏠쏠한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한 구절을 소개해드리면, “얼마 후에는 보다 섬세하고 색채가 예리한 식물세계가 전개되기 시작해서 눈길을 끌었다. 감자밭은 빛나는 리라색으로 꽃이 만발했고 톱니풀은 도나우 강 하류에서 보듯 엷은 갈색이 아니라 아름다운 홍색이었고 귀뚜라미풀꽃도 푸른 색깔이 더 짙었다. 바위틈에 자란 가시 있는 관목도 백적색의 입술 모양의 꽃잎을 피웠다.(211쪽)” 저도 도보여행을 꿈꾸고는 있습니다만, 이렇게 아름다운 글을 쓸 자신이 없는 탓인지 실행에 옮기는 일이 더디기만 합니다.

 

글을 옮기신 홍경호교수님은 카로사박사야말로 독일 문학의 전통에 가장 충실했던 ‘전통의 수호자’라고 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그리고 있는 아름다운 자연의 신비, 티 없이 순수한 젊은이의 미적 발전은 비뚤어질 수 있는 젊음을 바로 세우고 생에 대한 따듯한 애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했습니다. 그런 생각 때문에 “이런 의미에서 그의 작품은 정신적인 불모로, 허약해져 가는 우리 젊은이들에게는 더할 수 없는 양식이 되리라 믿는다.(8쪽)”라는 말씀으로 옮기는 수고가 얻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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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2012-06-18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넷신문 <라포르시안>에서 SNS를 통한 댓글 이벤트를 통하여 도서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다음 주소의 포스팅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www.rapportian.com/n_news/news/view.html?no=6208
 
죽음, 그 후 - 10년간 1,300명의 죽음체험자를 연구한 최초의 死後生 보고서
제프리 롱 지음, 한상석 옮김 / 에이미팩토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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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죽음 이후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경험한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종교에서 말하는 사후세계는 아마도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사람들의 두려움이 만들어낸 상상의 세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제가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가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사람들이 보았다는 죽음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경우를 정확하게 죽음을 맞았었다고 정의하는 것이 옳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분야를 연구하는 분들은 임사체험(near death experience; NED)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죽음의 문턱에까지 다녀왔다는 것이겠지요.

 

우리가 죽음에 대하여 알 수 없으니 죽음 근처에 가본 사람들의 경험이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임사체험에 관한 이야기가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가, 혹은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문제인가를 생각해보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겠습니다. 흔히 과학적 연구를 통해서 입증된 이론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를 비판하기 위한 연구를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회의론이라고도 합니다만, 회의론자들은 다양한 이론들을 연구하여 이를 과학, 비과학, 변경지대 과학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즉, 이론적 바탕이 충분히 과학이라 할 만한 경우 이를 과학의 영역으로, 전혀 과학이라 할 수 없으면 비과학, 이론은 충분히 과학적이라 할 만 하지만 아직 이를 뒷받침할 근거라 충분히 쌓이지 않은 경우를 변경지대과학이라고 분류하는 것입니다.

 

우리시대의 대표적 회의론자인 마이클 셔머가 쓴 <과학의 변경지대; http://blog.joinsmsn.com/yang412/12502415>에서는 회의론자들이 논하고 있는 대표적인 이론들을 들고 있습니다만, 임사체험은 아직 어디에 속하는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방사선종양학을 전공한 제프리 롱박사가 임사체험자들의 사례를 수집하여 과학적으로 분석한 결과를 담고 있다는 <죽음, 그 이후>는 좋은 참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자는 회의론자들이 임사체험에 대하여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감추지 않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임사체험을 통하여 죽음 이후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임사체험을 했다는 사람들의 경험을 광범위하게 수집하여 통계적으로 분석하는 작업을 오랫동안 해왔는데, 지난 10년 동안 1300여 건의 통계적으로 검증된 사례가 수집되었고, 이를 분석한 결과를 이 책에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의 사례에서 추출한 공통점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유체이탈 경험, 즉 의식이 몸에서 분리된다.

2. 모든 감각이 매우 예민하게 고조된다.

3. 감정이나 느낌이 매우 격렬하고 대체로 긍정적이다.

4. 터널로 들어가거나 터널을 통과한다.

5. 신비롭거나 눈부신 빛과 만난다

6. 신비로운 존재들, 죽은 친척이나 친구들 등과 재회한다.

7. 시공간의 개념이 달라진 느낌이 든다.

8. 주마등처럼 삶을 회고한다.

9. 비현실적인 영역을 접한다.

10. 특별한 지식을 접하거나 알게 된다.

11. 경계나 장벽을 만난다.

12. 자의 혹은 타의에 의해 몸으로 돌아온다.


저자는 임사체험에 관한 인터넷 사이트를 열고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의 경험을 광범위하게 수집하고 있는데, 특히 설문조사방식을 적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통계학에서는 설문작성이 연구의 시작이기도 하면서 연구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증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도 합니다. <죽은, 그 후>에는 설문의 구성은 제시되고 있지 않습니다만 작성자들에게 연구의 긍정적 방향을 암시하는 내용이 담겨있을 가능성이 느낄 수 있습니다.

 

회의론자들은 임사체험연구자들의 주장에 대하여 다양한 반론을 제시하고 있다고 합니다. 저자가 임사체험의 증거로 제시하고 있는 경험사례에서 볼 수 있는 증언 가운데 설명이 불가능한 점도 없지 않습니다만, 과학적이라 할 수 없는 내용도 적지 않습니다. 임사체험 연구에서 결정적인 문제라고 할 수도 있는 점은, 사전에 디자인된 실험을 통하여 그들의 이론을 입증할 수 없다는 점일 것 같습니다. 누가 죽음을 시험하겠다고 자원하겠습니까? 그렇다면 시험대상군의 체험과 비교할 수 있는 비교대상군을 설정해야 하는데, 이 부분을 볼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즉 이들이 정의하고 있는 임사의 경험을 한 사람들 가운데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의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제시하지 못하고 있고(경험자들의 자발적 참여에 의한 사례증언을 수집하는 방식의 연구라는 한계 때문일 것입니다.), 임사체험을 하지 못한 사람들은 왜 그런지 이유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유체이탈만해도 유체이탈의 경험은 독특한 점이 있다고 보입니다만, 임사사례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병원에 임사체험을 증언할 수 있는 특별한 장치를 배치해두었지만, 이 장치에 대하여 증언하는 사례는 아직까지 한건도 없다는 점에서 연구결과의 신뢰성을 입증하기 위하여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사항이 빠져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죽음, 그 후>에서 제시하고 있는 사례를 하나하나 짚어서 반론을 제기하다보면 리뷰가 연구보고서의 분량에 이를 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제 판단으로는 임사체험은 아직 개별사례의 수준에 머물고 있어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다고 주장할 단계가 아니라는 판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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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 스완네 집 쪽으로 2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창석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199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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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권은 스완네집 쪽으로의 후반부에 해당합니다. 1권은 전체 7편을 통해서 저자가 그려나갈 등장인물과 사건에 대한 바탕이 되는 것들을 설명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1권을 읽으면서 스완씨가 별로 등장하지 않는다 싶어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왜 ‘스완네집 쪽으로’라는 부제를 달았나 싶었습니다(http://blog.joinsmsn.com/yang412/12825113). 하지만 2권을 읽고서야 충분히 이해가 되었습니다. ‘스완네집 쪽으로’라는 부제를 단 제 1편은 ‘1부 콩브레 I과 II, 2부 스완의 사랑, 3부 고장의 이름-이름’으로 되어 있는데, 1권에 ‘1부 콩브레 I과 II’를 2권에는 ‘2부 스완의 사랑, 3부 고장의 이름-이름’을 담고 있습니다.

 

2부 스완의 사랑에서는 당시 파리의 사교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세밀하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사교계 사람들은 그리고 보다 영향력이 있는 그룹에 끼어들기 위하여 벼라별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고 사교계 모임에 초대받지 못해서 요즘 말로 왕따라도 당하게 되면 치욕이라 생각하고, 심지어는 목숨을 버리는 일까지도 있었다고 합니다.

 

사교계 모임을 통하여 신분 상승을 노리는 남녀들도 적지 않았고 이들의 유혹에 넘어갔다가 버림받은 순진한 사람들은 비참하게 죽어가는 일이 비일비재했던 모양입니다. <춘희>도 그런 이야기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특히 ‘스완의 사랑’에서는 신분상승을 노리는 여자(읽어가다 보면 남자관계가 매우 복잡한 것으로 밝혀지고, 결국은 스완씨와 결혼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만) 오데트가 남자를 홀리는 현란한 기술(?)을 엿볼 수 있고, 스완이 빠져 들어가는 과정을 바로 스완의 곁에서 들여다보듯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1부에서는 내가 화자가 되어 콩브레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을 포함한 모든 것들을 기록에 남기려는 듯 꼼꼼하게 적어가고 있습니다만, 2부에서는 파리 사교계가 돌아가는 모습을 역시 눈으로 보듯 그리고 있습니다.

 

스완씨가 오데트에 집착하는 모습은 요즈음의 정신의학 수준으로 판단해보면 편집증의 초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오데트가 어떤 사람인지 스완씨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잘 알고 있지만, 정작 스완씨만 모르고 있다가 누군가 은밀하게 이런 사실을 전했지만, 그것을 믿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오데트가 전략상 스완씨를 외면하는 척하면서도 치밀하게 밀고 당기는대로 스완씨가 끌려다니다가 결국은 결혼에까지 이르게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 결과는 일부 사교계에서는 스완씨를 한 수 접어 보게 된다는 설명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주인공에 스완씨의 사연을 먼저 절절하게 적어나가고 있는 것은 스완씨의 딸 질베르트에게 마음이 쏠리게 된 까닭이라 생각됩니다. 이런 변화는 주인공의 정신세계가 성장하는 과정을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1부에서 저자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에 목말라 하는 모습을 여러번 그리고 있습니다. 어릴 적 콩브레에서 지낼 때 스완씨가 저녁 늦게까지 머물며 부모님과 어울리는 까닭에 혼자서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주인공은 어머니의 밤키스를 받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모습을 보면, 오디푸스 콤플렉스를 떠올리게 합니다만, 어느덧 나이가 들어 사랑의 대상이 어머니에서 질베르트라는 젊은 여성으로 옮겨가는 과정을 보이고 있습니다.

 

1권에서는 미각과 후각이 기억에 미치는 영향을 마들렌이라는 매개물을 이용하여 설명하였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2권에서는 청각이 기억에 미치는 영향을 음악이라는 매개물을 이용하여 설명하고 있다는 점을 짚어야 하겠습니다. 저자는 스완이 어떤 야회에서 피아노와 바이올린으로 연주된 음악을 들으면서 느꼈던 감동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유연하고, 탄력있고, 치밀하고 통일적인 바이올린의 가는 줄 밑에서 월광에 홀려 반음계로 떨어진 물결의 연보라 소요처럼, 수많은 꼴이 꼬리를 문, 잔잔하면서도 가볍게 서로 부딪치는 피아노의 가락이, 물결의 찰랑거림이 되어 솟아올라오려고 하는 것을 보았을 때, 그건 이미 커다란 기쁨이 되었다.(37쪽)”

 

스완은 오데트를 처음 만나게 되는 베르뒤랭 부인의 파티에서 이 곡을 다시 듣게 되면서 이 곡이 콩브레에서 이미 설명한 뱅퇴유가 작곡한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의 안단테였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41쪽). 이 음악이 오데트에 대한 기억을 매개하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을 읽으면서, 제 경우와 아주 흡사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대학신입생이었던 시절 동아리에서 만난 여자친구를 오랫동안 좋아했습니다. 언젠가 다방에서 만났을 때 마침 폴 모리아 악단이 연주하는 “Song for Anna”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그 친구는 이 노래를 제일 좋아한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부터는 “Song for Anna”를 듣게 되면 반사적으로 그 친구가 머리에 떠오르게 됩니다. 음악이 기억을 되살려내는 매개체로서의 역할을 훌륭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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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리터 - 피의 역사 혹은 피의 개인사
빌 헤이스 지음, 박중서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얼마 전 읽은 <해부학자; http://blog.joinsmsn.com/yang412/12613169>를 읽고서 의학과 관련된 일이 역사적 배경을 뒤쫓는 철저함이나 그렇게 얻은 자료를 글로 풀어내는 솜씨에 반해서 읽게 된 책입니다. ‘피의 역사 혹은 피의 개인사’라는 부제가 달려 있는 것처럼 혈액과 관련된 분야가 발전해오는 역사적 과정을 뒤쫓는 한편 혈통이라고 할 수 있는 가족사, 혹은 특히 혈액과 관련이 있는 질환에 관한 이야기, 특히 동성애자로 커밍아웃하고 동성과 같이 생활하고 있는 저자로서 관심이 혈액 매개 질병에 관한 이야기들을 적절하게 섞어 두꺼운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어 새삼 저자의 글솜씨에 놀라게 됩니다.

 

현대의학으로 발전하게 된 유럽의학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그리스의학, 심지어는 그리스 신화에 이르기까지 혈액에 관한 기록을 뒤쫓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어디에 좋다해서 사슴의 피를 마시는 분이 적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만, 우리나라 사슴목장이 한때 캐나다에서 수입한 사슴으로 인하여 광우병과 같은 프리온질환인 만성소모성질환이 확산될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시기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면 찜찜해하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피를 보면 쉽게 흥분하는 경향도 있고, 피를 보면 속이 메스꺼워지기도 하는데, 저 역시 의과대학에 입학할 무렵에는 국소마취를 하고 수술하는 가족을 지켜보다가 졸도지경(?)에 이르는 불상사도 겪었습니다만, 피는 물론 죽은 이를 해부하는 전공을 하기에 이르렀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책의 제목이 되는 <5리터>는 정상적인 성인의 몸에 들어있는 피의 양이기도 합니다. 로마시대이래 서양의학의 역사에서 히포크라테스만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갈렌이 정맥으로부터 피를 뽑아내는 사혈요법으로 환자를 굶기는 치료로 로마의료계를 석권하던 에라시스트라투스 학파를 제압했다는 설명에 관심이 끌렸습니다. 사혈법은 그리스의학의 근거가 되었던 체액의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써오던 것인데 갈렌시대를 거쳐 근대에 이르기까지 서양의학에서도 비중있게 사용되던 것이었지만, 혈액에 대한 과학적 사실들이 속속 밝혀지면서 폐기되었던 것인데, 우리네 전통의학에서는 여전히 남아있는 치료법이기도 합니다.

 

르네상스시대에 이르러 벨기에의 해부학자 베살리우스가 근대해부학의 토대를 마련하면서 갈렌의 해부학이 오류투성이라는 점을 밝혀낼 때까지 갈렌은 해부학분야에서도 독보적인 존재였습니다. 이 책에서 저의 관심을 끌었던 부분은 바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인체해부에 관한 기록입니다. “다 빈치가 날조한 내용 가운데서도 가장 기발한 것은 이른바 눈물의 원천에 대한 설명이 아닐까 싶다. 즉 감정을 관장하는 기관인 심장에서 눈물을 운반하는 가느다란 도관이 있다는 것이었다.(47쪽)” 물론 왼손 네 번째 손가락과 심장을 연결한다는 ‘사랑 정맥’은 더 기발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저자는 동성애 상대인 스티브가 앓고 있는 에이즈 때문에 일상에서 많은 주의를 기울이고 있으며, 에이즈와 관련된 혈액정책이나 사건 등의 진행사항도 책을 통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건은 스티브가 일하고 있는 회사의 의무실에서 근무하는 채혈사가 1회용 채혈바늘을 소독도 하지 않고 반복해서 사용하는 바람에 에이즈나 간염과 같이 혈액을 매개하여 전염되는 전염병에 걸린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건이 마무리되기까지 뒤쫓기도 합니다.

 

여기서 미국에서 혈액정책이 변화된 과정도 소개하고 있는데, 남북전쟁 이후 흑인노예제도가 폐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남아있던 인종분리정책이 혈액관리사업에도 있었다는 사실을 전하고 있습니다. 1941년에 이르도록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헌혈에 참여할 수 없었다고 하며, 이후에도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헌혈한 피는 따로 관리하여 아프리카계 미국인에게 수혈하도록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런 조치는 1960년대에까지 지속되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혈액관리에 있어서 보수적인 미국정부의 정책은 에이즈의 위험이 큰 집단인 게이에 대해서도 오랫동안 제한이 풀리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광우병예방을 위한 사료정책이나 도축정책 등과 비교해보면 에이즈예방을 위한 혈액관리사업의 사전예방의 원칙은 아주 철저하다는 점을 보면 사전예방의 원칙을 적용하는데 있어 해당 분야에서 위험의 본질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불확실성이 예상되는 경우에 적용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보인다.

 

저자는 감사의 말에서 “내가 이 책을 쓰기 시작하고, 또 이렇게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은 내 삶과 글쓰기 모두에 있어 사랑하는 배우자 스티브 번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나뿐만 아니라 그의 피로-문자적으로나 비유적으로나 모두-씌여진 것이기도 하며, 그 덕분에 이처럼 마지막 한 단어까지 빛나고, 솔직하고, 또 진실한 작품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416쪽)”

 

사랑의 힘은 위대하고도 위대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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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선물이다 조정민의 twitter facebook 잠언록 1
조정민 지음 / 두란노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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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에 저의 생일이 들어있었습니다. 지난 주 전체 회의가 시작되기 전에 위원장님께서 당신 방으로 따라 부르시더니 책을 한권 건네셨습니다. 생일선물이라 하셨습니다. 날아갈 듯한 붓글씨로 축하말씀까지 적어주신 책이 바로 조정민목사님의 <사람이 선물이다>였습니다.

 

‘조정민의 Twitter잠언록’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것처럼 이 책은 트위터를 통해서 정제된 목사님의 생각모음이라고 합니다. 트위터를 통해서 메시지를 전하게 되신 계기를 프롤로그에서 읽고 반성을 많이 했습니다. “트위터는 점점 ‘긴 말하기 훈련’에 익숙해져 갈 무렵 새롭게 발견한 한마디 광장입니다. 다들 광장에 쏟아져 나와 140자의 틀 속에 생각을 쏟아냅니다. 광장을 거닐다 문득 성경의 잠언이 떠올랐습니다. ‘솔로몬에게 주셨던 지혜를 주시면 또 하나의 땅 끝에 메시지를 전하겠습니다.’ ‘홍수에 마실 물이 귀하다는데 샘물같은 메시지를 전해보자…’(4쪽)”

 

이렇게 트위터를 통해서 전하신 말씀 천여 구절 가운데 365개를 골라서 책으로 묶으셨답니다. 즉, 하루 하나씩의 말씀을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하신 것 같습니다. 저도 최근에야 트윗을 시작했습니다만, 아직은 정제된 생각을 적기보다는 문득 만나는 좋은 말씀을 옮겨적거나, 혹은 블로그 등을 통해서 길게 적은 제 생각을 소개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책을 통해서 읽게 되는 목사님의 트윗글은 140자보다 많지 않은 속에 읽는 사람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말씀대로 ‘솔로몬에게 주셨던 지혜를 얻으신 것이 분명합니다. 목사님은 이런 작업이 가능했던 것은 언론사에서 받은 훈련 덕분이라고 겸양의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만, 사실 140자로 생각을 다듬기 위하여 정말 많은 시간을 들였을 것이라고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40자로 된 글을 365개는 책 하나로 묶기에 턱이 없을 정도의 분량입니다. 보통 한권의 책을 내기 위하여 쓰는 글의 분량은 200자 원고지 1300매 내외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적은 원고량은 오히려 글과 잘 어울리는 삽화 그리고 흰여백이 생각할 여유를 주는 것 같습니다. 편집자 역시 꽤나 자유분방한 면모를 보이고 있습니다. 사진에서 보시는 것처럼 양면에 하나의 말씀과 삽화를 담기도 하고, 가로쓰기를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때로는 세로쓰기도 볼 수 있습니다. 옛날 세로쓰기 편집방식은 책 오른쪽으로부터 왼쪽으로 읽어나가도록 되어 있습니다만, 요즘에는 그런 편집의 책읽기가 쉽지 않아서 왼쪽으로부터 오른쪽으로 읽어나가도록 변화를 주기도 했습니다. 아주 커다란 활자체로 한면 전체에 말씀 하나를 담은 곳도 있습니다.

 

이런 책을 단숨에 읽어서는 의미를 제대로 새길 수 없기 마련입니다. 한 구절씩 읽고 그 안에 담긴 저자의 생각을 같이 공유해보려 노력하는 것이 바른 책읽기가 될 것 같습니다. 제가 요즈음 관심을 두고 있는 눈물과 기억에 관한 주옥같은 말씀을 적지 않게 볼 수 있어 준비하고 있는 글쓰기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요즈음 제 생각에 잘 어울리는 한 대목을 소개해보려 합니다. “나누어야 할 때 나누지 않으면 빼앗깁니다. 내려와야 할 때 내려오지 않으면 떨어집니다. 떠나야 할 때 떠나지 않으면 쫓겨납니다. 그럴 때를 아는 것이 어렵고, 알아도 결단하기는 더 어렵습니다.(200쪽)”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잘 아는 것이 군자의 도리라는 옛말씀을 쉽게 풀어내신 글이라 생각합니다. 사실은 욕심을 버리라는 간단한 충고를 여러 가지 상황에 맞게 하고 계십니다만, 욕심을 버리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은 것이 우리네 인생이기도 합니다. 예전에 본 <인디아나존스>라는 영화에서 절벽 위로 쫓긴 주인공이 절벽에 발을 내미는 순간 절벽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딛게 되는 장면이 기억납니다. 버릴 수 있어야 새로운 것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지요. 요즈음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 두었던 욕심을 접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야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으니 늦었다 할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생일에 좋은 선물을 주신 위원장님께 감사드립니다. 곁에 두고 생각을 곁들여가며 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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