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에 미친 조선의 지식인들 - 유의열전
김남일 지음 / 들녘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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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과 의료기기를 한방진료에 사용할 수 있다는 주장이나 천연물신약이 한방의료영역이라는 주장에 대하여 의료계의 반발이 고조되는 등, 최근 의료계와 한의계의 갈등의 골이 더욱 심화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슈가 대두될 때마다 한의학의 한계를 보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합니다.

 

천연물신약이 이슈가 되고 있다는 뉴스를 듣고, 제가 식약청에서 근무할 때 주관했던 독성물질국가관리사업에서 하던 생약제의 독성기준을 정하는 프로그램이 생각났습니다. 생약제는 자연에서 얻을뿐더러 독성이 있더라도 법제라고 하는 가공단계를 거쳐 독성을 순화시키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전문가들마저 생각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뒷받침할 수 있는 과학적 근거는 그리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독성을 평가하는 방법마저도 막연한 것도 현실입니다.

 

독성물질국가관리사업은 미국정부가 주관하고 있는 National Toxicologic Program을 우리 실정에 맞게 만든 것입니다. 미국의 제도가 일반 화학물질의 독성을 규명하여 국민들에게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반면, 독성물질국가관리사업에서는 생약제의 독성관련 정보를 표준화하려는 의도를 담고 출발한 것이기도 합니다. 동아시아 국가에서는 아직 인프라가 구축되어있지 않아서, 선진국에서는 관심대상이 아니라서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생약제를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시스템을 구축하던 초기단계를 넘어 이제는 연간 시험대상 항목을 확대하여 우리나라에서 주로 사용하고 있는 생약재의 독성관련 정보 데이터 구축이 어느 정도 이루어져야 할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사업이 방향을 잃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처음 사업을 주도한 입장에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의료계와 한의계가 첨예하게 부딪히기 시작할 무렵, 해결방안을 찾기 위하여 관련 자료를 찾아 읽기도 하였습니다. 출발은 역시 뿌리를 찾는 것이 좋다는 생각에서 일본의 과학사가인 야마다 게이지씨의 <중국의학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http://blog.joinsmsn.com/yang412/4849711>로 시작하여 김두종교수님의 <한국의학사; http://blog.joinsmsn.com/yang412/5153094> 등을 거쳤습니다. 특히 의료계와 한의계를 아우를 수 있는 방안모색을 목표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1930년대에 의료계와 한의계가 신문지상을 통하여 붙었던 논전의 경과를 담은 <한의학은 부흥할 것인가; http://blog.joinsmsn.com/yang412/5036214>를 비롯하여 해방 이후에 진행되었던 의료일원화 움직임에 관한 다수의 서적을 찾아 읽었습니다.

 

제가 한의학을 전공하지 않아 한의학의 본질에 이르는 것은 어려웠습니다만, 현대의학의 주요 방법론이라고 할 과학적 방법론은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어 의학과 한의학이 오늘에 이르기까지를 비교하는 것은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자료를 찾다보니 서양의학이 발전해온 역사를 기록한 자료들이 풍부한 반면 한의학이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역사가 제대로 정리된 자료는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김남일교수님의 <한의학에 미친 조선의 지식인들>이 반갑게 느껴졌는지 모릅니다. ‘유의열전’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것처럼 의학에 조예가 깊었던 유학자들에 대한 기록을 정리하고 있어 한의학의 역사를 살피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아무래도 생경한 유의(儒醫)가 무엇을 한 사람인지 부터 알아보는 것이 순서일 것 같습니다. 저자는 “일반적으로 유의란 유교적 사상을 바탕으로 의학의 이치를 연구한 사람, 즉 학문적으로 유학적 색채를 가지고 있는 한의사집단”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들을 세분하여 환자를 진료한 유의, 의서를 편찬한 지식인 유의, 의학적 식견으로 질병을 토론한 유의 등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9쪽). 저자가 다루고 있는 인물들이 관직에 들어오는 경로를 보면 내의원이나 혜민서와 같이 환자진료를 담당하는 사람을 뽑는 의과를 통하거나, 과거를 통하여 관직에 들어온 다음 의학을 공부하여 내의원에서 일하게 된 경우로 구분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유의라는 분들이 실제로 한의사로서 진료업무를 하기보다는 의학(물론 중국에 전해진 서양의학을 접한 실학자가 서양의학을 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우리의 전통의학에 해당될 것입니다)에 관한 서적을 읽고 의학의 이론을 공부한 분으로 ‘한의사’라기보다는 ‘한의학자’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할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들 가운데 적지 않은 인물들이 지방관직 혹은 지방관직을 수행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어 그들이 환자진료를 행하였다기보다는 의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보건행정을 펼쳤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 같습니다.

 

조선시대에 중앙 의료기관으로는 내약방(內藥房)·전의감(全醫監)·혜민국(惠民局)·동서활인원(東西活人院 : 또는 동서대비원)·제생원(濟生院)·종약색(種藥色)·의학(醫學) 등이 있었고, 지방 의료기관으로는 의원(醫院)·의학교수원(醫學敎授院)·의학교유(醫學敎諭)·의학원(醫學院)·의학승(醫學丞) 등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가운데 의학(醫學)은 병(兵)·율(律)·자(字)·역(譯)·산학(算學) 등과 더불어 6학의 하나로 설치된 의학교육기관이었으며, 중앙 의료기관인 전의감·제생원·혜민서 등에서도 각각 의생방을 설치하여 의원을 양성했다고 하는데 이는 의료기관에 의사양성소를 병설한 독특한 제도라 하겠습니다. 지방에서는 의원·의학교수관·의학교유에서 의원을 양성했다고 합니다. (다음백과사전에서 인용)

 

이와 같은 의학교육기관에서 양성한 의원들은 실제로 환자진료를 업으로 하는 자로 신분은 중인에 속하였을 것이나 특히 의술이 뛰어나 내의원에 발탁되어 왕족 혹은 중앙관료의 치료를 담당하게 되면서 고위관직에 오르는 자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내의원을 책임지는 위치에 오르는 경우도 있었지만, 내의원의 책임을 맡는 이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특히 의학에 밝은 정부고관들 가운데서 뽑아 임명하여 의관들을 관리감독하고, 특히 왕실 사람들을 진료할 때 진단과 치료의 방향을 결정하는 논의를 주관한 것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최근 읽고 있는 <착각의 심리학>의 저자 데이비드 맥레이니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능력과 성취 등을 다른 사람과 비교할 때 자신의 긍정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부정적인 측면을 제거해버리는 ‘자기위주편향’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엉뚱한 이야기를 인용하는 이유는 저자가 적고 있는 다음과 같은 구절 때문이기도 합니다. “조선 전 시대를 통틀어 의학에 조예가 깊었던 유의는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다. 그들은 자신의 학문적 소양을 바탕으로 자연과학에 속하는 의학연구에 몰두 하였고, 심지어 이를 생업으로 삼는 이들조차 있었다. 유학적 자연관을 밑바탕에 깔고 의학 연구에 미진한 이들의 수준은 매우 높아서 한의학을 연구하는 계층 가운데 가장 윗자리를 차지하면서 학문 발전을 선도하였다.(10쪽)”

 

필자가 보기에는 조선시대 유의가 공부한 의학은 자연과학적 접근이라기보다는 서지학적 접근이라고 해석함이 옳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이를 응용과학에 속하는 현대의학의 개념을 차용하여 전통의학에 자연과학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의복을 입히려는 의도가 아닌가 싶다는 것입니다. 서양의학 역시 과거에는 경험에서 얻은 자료들을 바탕으로 환자진료가 이루어지던 시절이 있었지만, 동양의학에서는 외면하였던 사후부검을 통하여 얻은 자료들을 통계적 분석을 통하여 공통점을 찾고 이들을 환자의 병증과 연관시킴으로서 병인을 구하는 방식으로 발전해온 반면, 동양의학은 환자의 병증을 음양오행이라는 철학적 사유를 통하여 설명하고 있어, 이런 방식을 과학적이라고 정의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할 것입니다. 특히 한의계가 자랑하고 있는 <동의보감>의 바탕에 깔려있다는 도교적 논리를 과학적이라 할 수 있는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간혹 해석이 어려운 부분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저자가 인용한 김우선의 <유의소변술(儒醫笑變術)>의 한 구절입니다. “유학자가 변신하여 의사가 되니 이는 정말로 웃음살 일이로다. 비록 그러하지만 유학자는 도(道)를 다스리는 사람이고, 의사는 병을 다스리는 사람이니, 그 치료하는 기술은 서로 비슷하다. 그러므로 의사를 병공(病工)이라 하였으니 병을 치료하여 낫게 하여 그 집안사람들로 하여금 근심을 변화시켜 웃는 얼굴로 만드니 이것은 웃을 일이다.(51쪽)”는 구절의 뒷부분, 의술을 통하여 환자의 근심을 덜어준다는 의미해석보다 앞부분의 유학자가 의원이 된 것이 왜 웃음살 일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아마도 의술을 생업으로 삼는 사람들은 중인출신 의관들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며, 먹고사는데 문제가 없었을 유학자들이 의술을 행하는 경우 대부분 치료비를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요즈음도 간혹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의술(醫術)은 인술(仁術)”이라는 말이 무료진료를 한 유의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한 부분입니다. 따라서 유의가 중인이나 하는 치료비를 받는 의술을 행한다면 아무래도 남들에게 웃음을 사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유의를 바라보는 조선사회의 시각이 이럴진대 유의들이 문화계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던 것이 이들이 의술로 인하여 경제적으로 풍요로울 수 있었기 때문(170쪽)이라는 저자의 판단이 타당한가 싶기도 합니다.

 

한 가지 더 사족을 붙이자면, <동의보감>에 관한 저자의 입장이 오락가락하는 면이 엿보인다는 점입니다. 제가 알기로도 <동의보감>은 당시 중국이나 일본에까지 그 명성이 자자할 정도로 유명한 의서였다고 합니다. <동의보감>이 유네스코 세계 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일은 대단하고도 당연한 일이라는 점에 공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이 한국에서 대단한 공신력이 있다(32쪽)하면서도 <의문보감><방약합편> 등 <동의보감>의 업그레이판 서적들이 출판되었다고 하였을 뿐더러(103쪽), “강명길은 1799년 왕명에 따라 <제중신편>이라는 의서를 간행하는데, 이 책은 <동의보감>의 단점을 극복하고 활용도가 높은 의서를 만들고자 하는 정조대왕의 의지를 반영한 것”이라 하였습니다. 제중신편은 동의보감에서 ‘산번보루’라 하여 번잡한 것은 베어내고 빠진 것을 보충할 뿐 아니라 잘못 인용하고 있는 문장을 바로 잡았다고 적고 있습니다.(196쪽) <동의보감>이 완성도 높은 의서로서의 위치를 인정받으려면 편찬 이후에 드러난 문제점을 반영하여 보완하는 작업, 즉 개정판을 내는 작업이 이어졌어야 할 것이다.

 

저자의 의도가 어디에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1525년 간행되었다는 전염병 관련 의서인 <간이벽온방(簡易辟溫方)>에 서문을 보면 조선시대 의학의 수준을 알 듯도 합니다. “갑신년(甲申年, 1524년) 가을에 백성들이 죽어나가는 이들이 많았는데, 을유년(乙酉年, 1525년) 봄에 이르러서도 그치지 않았다. 임금님(중종)께서 이를 일찍부터 근심스러워하며 제사까지도 거행하셨다. 또한 의관들을 나누어 파견하여 약이(藥餌)를 가지고 와서 구제하도록 하셨지만 두루 효과가 나타나지 않음을 염려하셨다. 이에 특별히 행부호군(行副護軍) 김순몽, 예빈사주부(禮賓寺主簿) 유영정, 전내의원정(前內醫院正) 박세거 등에게 명령하셔서 모든 처방 가운데 온병(溫病)을 치료하는 법들을 모아서 일편(一篇)으로 하여 <간이벽온방)이라 이름하도록 하셨다.(248쪽)”

 

가을에 시작한 전염병을 겨울을 지나 봄까지 제압할 수단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당시 알고 있던 모든 처방가운데 온병치료법을 모아 골라낸 치료법을 묶어 만든 의서를 배포한 것으로 할 일을 다했다는 식은 아니었을까요? 특히 내용을 보면, “학술적인 내용을 과감하게 생략하고, 당시 유행했던 전염병의 증상을 조목조목 나열하면서 위험성을 경고하고 그 치료법을 상세하면서도 요점있게 기록하고 있다. 그 처방 내용에 있어서도 전염병의 예방법, 예방 처방, 치료법, 치료 처방 등을 기록하고 있다. 특별히 처방 약물에 있어서도 한두개의 약물로 구성되어 있는 처방들을 많이 기록하고 있어서 궁벽한 시골에 거주하고 있는 백성들을 배려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249쪽)” 한 두 개의 약물로 구성된 처방으로 예방 혹은 치료될 전염병 같았으면 가을부터 다음 해 봄까지 기승을 부렸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궁벽한 시골에서 구하기 쉬운 약제를 알려 환자를 돌보는 가족들이 나름대로는 무언가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은 아닐까요?

 

“한의학이 백성들의 삶 속으로 깊이 파고든 조선 후기에 들어가면 활용이 간편한 의학지식들이 실생활 속에 널리 보급되었고, 더불어 이것들을 생활의학서의 형태로 간행했다.(258쪽)”는 저자의 설명은 양생(養生)에 주안점을 두었던 한의학을 치료의학으로 발전시키는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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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2012-09-03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넷신문 <라포르시안>에서 SNS를 통한 댓글 이벤트를 통하여 도서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다음 주소의 포스팅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www.rapportian.com/n_news/news/view.html?no=7506
 
착각의 심리학 - 당신의 감정, 판단, 행동을 지배하는
데이비드 맥레이니 지음, 박인균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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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분야가 주목받게 되면서 다양한 심리학 관련 서적들을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대부분 심리학을 전공하시는 학자들이 자신들의 연구결과 혹은 임상결과를 바탕으로 하여 심리현상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맥레이니의 <착각의 심리학>은 분명 심리학전문가들과는 달리 쉽게 읽힌다는 점이 달랐습니다. 그것은 저자가 ‘심리학 블로그’를 표방한 자신의 블로그(http://www.youarenotsosmart.com; 사진)를 통하여 소개한 글들이 폭발적인 반응을 얻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일반인이 읽고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는, 즉 검증된 글발이었다는 해석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역시 짧지 않은 세월동안 블로그를 운영해온 저로서도 부럽기도 하고, 무언가 배울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에 책을 읽을 수 있었던 것 같고, 역시 책읽기를 마치고서는 확실한 무엇을 손에 잡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저자는 자신의 블로그에 ‘인간의 망상을 기념함(A Celebration of self delusion)’이라는 문패를 걸어두고서 우리가 일상에서 부딪히는 오해에 대한 심리학적 설명을 올리는데 당연히 심리학 혹은 뇌과학에 관한 전문가들의 연구논문을 일반인도 이해하기 쉽게 풀어 설명하면서, 상식과 관습에 시시콜콜 딴지를 거는 내용이 방문객들의 폭발적 반응으로 이어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블로그에 담은 그의 글들은 출판쪽의 주목을 받게 되고, <착각의 심리학>은 그 첫 번째 결과물이라는 것입니다.

 

블로그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대부분 느낄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블로그 글은 지나치게 길면 독자들의 눈길을 끄는데 실패하기 쉽습니다. 저의 경험에서는 A4 용지 한 장 정도의 분량, 아니 그보다도 화면을 이동하지 않아도 전체 글을 읽을 수 있는 정도면 딱입니다. 그러므로 짧은 글에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잘 요약하는 글쓰기 솜씨가 필요한 것입니다.

 

<착각의 심리학>은 기본적으로 문제 제기에 이어 주제에 관한 관련분야의 논문 혹은 텍스트를 요약하는데, 이 부분 역시 두 세 개 정도의 대표적 논문을 인용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사실은 이 부분이 핵심이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만, 주제에 관한 저자의 생각 혹은 독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를 반 페이지 내외의 분량으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편집자는 특히 이 부분을 붉은 글씨로 강조하는 특별한 기획으로 독자의 눈을 붙들고 있습니다.

 

‘인지적 편견’, ‘발견적 학습’ 그리고 ‘논리적 오류’의 주제에 속하는 모두 서른아홉 꼭지의 이야기를 1. 착각하는 자아, 2. 억측에 가까운 예측, 3. 어설픈 경험, 4. 허점투성이 논리, 5. 관성화된 습관 등 다섯 부문으로 나누어 정리하고 있습니다. 이야기들은 독립적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어디를 펼치고 읽어도 문제가 없습니다. 어떻든 저자는 이 책을 읽은 독자라면 다음과 같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새로운 주제를 만날 때마다 당신은 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바라보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곧 자신이 생각만큼 똑똑하지 않으며 끝없이 이어지는 인지적 편견과 불완전한 발견적 학습, 그리고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논리적 오류 덕분에 시시각각 자신을 속이며 현실과 타협하고 있음을 깨달을 것이다.(18쪽)” 정말 그런가?

 

금년 말에 대통령선거가 있으니 “도대체 왜 사람들은 정치인의 빤한 거짓말에 속는거야?”라는 제목으로 된 ‘제3자 효과’편을 보면 세상의 관찰자이면서도 자신은 제대로 관찰하지 못하는 당신을 ‘나는 대중이 아니라고 착각하지 말라’고 질타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나를 세뇌시키기 위하여 어떤 감언이설로 속이고 있는지 냉정하게 검토해보라는 저의 해석을 덧붙여 봅니다. 하지만 부정적인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미래는 당신이 예측한 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첫 단계가 늘 현재 상황에 대한 잘못된 해석에서 시작되지만 그래도 이어지는 행동은 상황이 진짜인양 행동하다 보면 예측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도 기억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재미있습니다. ‘나는 그렇지 않아’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읽어보시고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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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재익, 크리에이터 - 소설.영화.방송 삼단합체 크리에이터 이재익의 거의 모든 크리에이티브 이야기
이재익 지음 / 시공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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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런 책 읽으면, 일단 울컥하게 됩니다. 그리고 ‘참 대단하다!’하는 독백이 이어지게 됩니다. 울컥하는 이유는 ‘왜 나는 이렇게 못할까?’ 자조(自嘲)하는(?) 느낌이 들어서입니다. 그런데 이 책 <나 이재익, 크리에이터>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나는 방송국에 출근하는 평일 5일중에 이틀은 집에서 생활하고 사흘은 작업실에서 지낸다. 퇴근하면 바로 작업실로 가서 잘 때까지 작업을 한다. 대신 집에서 지내는 이틀은 온전히 가족과 함께 지낸다. 주말도 마찬가지. 여행을 가지 않는 한, 토요일에는 가족과 함께 온종일 있고, 일요일은 종일 글을 쓴다.(115쪽)” 이렇게 해서 이재익 작가는 한해 평균 4~5권씩의 소설을 낼 수 있었던 것이고, 틈틈이 시나리오를 쓰고 SBS FM의 간판프로 <두시탈출 컬투쇼>의 프로듀서를 맡고 있는 것입니다. 작가처럼만 한다면 반정도는 따라갈 수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이재익 작가는 한 가지도 힘들다는 창작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소설가, 시나리오작가, 그리고 방송사 PD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런 분야에서 일하는 분을 ‘크리에이터’라고 한다고 하는데, 다음 사전에 나오는 “① 창조자 ② 조물주 ③ 신”으로 해석되는 creator의 뜻이 딱 떨어진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서인지 크리에이터라고 적은 이유를 알듯 하기도 합니다.

 

<나 이재익, 크리에이터>의 성격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이재익 작가가 살아온 방식을 정리한 자전적 에세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만, 창작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분야에 뜻을 세우고 있는 분들에게 훌륭한 안내서 역할을 할 수 있겠다 싶기도 합니다. 실제로 작가는 프롤로그에서 ‘어떻게 당신처럼 될 수 있죠?’라는 의미를 담은 질문을 받다가 별 생각없이 살아오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자신만의 세계를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고 고백하면서, 자신이 받고 있는 질문에 답이 될 수도 있겠다 싶다고 합니다.

 

그리고 크리에이터라는 직업에 대한 개념을 잡고, 이어서 자신이 지나온 실전경험을 필드 매뉴얼 형식으로 구성하고 있어 읽다보면 나름대로의 전략을 짤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제 경험과 비교하면서 공감했던 두 가지를 적어보겠습니다. ‘소설가도 자격증이 있나요?’라는 작은 제목으로 적고 있는 소설가 되는 길에서는 일단 소설을 쓰는 일도 중요하지만 완성된 원고를 어떻게 활자로 만들어내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공모전에 원고를 출품하는 방식은 엄청난 경쟁을 뚫어야 하기 때문에 만만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이야기에 이어서 “이름하여 무작정 문 두드리기. 출판사에 직접 원고를 투고하는 것이다.(51쪽)”라고 적었습니다.

 

사실 저도 몇권의 책을 세상에 내보낸 저자입니다. 처음 쓴 원고가 치매를 일반에게 쉽게 알리기 위한 원고를 하루에 10시간 씩, 일주일에 4~5일씩 쓰기를 4달 정도 매달린 끝에 탈고를 한 다음에, 유명한 일간지 출판국 세곳에 목차를 담은 기획서를 보내고 하회를 기다린 끝에 동아일보사에서 연락을 받고서 바로 계약에 성공하게 되었습니다. 1996년의 일이었는데 출판국장님께서 당시 분위기로 보아 치매가 곧 사회적 이슈가 될 것으로 예견하셨던 것이지요. 개인적으로 집안에 치매에 걸린 가족이 계셨다고 들었습니다. 출판을 위하여 에디터와 원고를 다듬는 작업은 원고를 새로 쓰다시피 할 정도로 힘들었지만 결국은 집필을 시작한지 10개월 만에 <치매, 나도 알면 고친다>가 나올 수 있었습니다.

 

‘크리에이티브한 마인드를 갖기 위한 좋은 방법은 없나요?(68쪽)’라는 질문에 대하여 작가는 나름대로의 ‘레퍼런스 라이브러리’, 쉽게 말하면 일단 관심을 둔 주제에 관한 자료를 꾸준하게 모으는 데, 더 좋은 것은 나름대로 자신의 의견을 요약하여 두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저자의 조언에 역시 어줍잖은 제 경험을 덧붙인다면, 자료를 모으는 장소로 블로그를 활용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벌써 8년째 되어가는 제 개인 블로그에는 치매, 죽음, 보건정책 등에 관한 자료들을 모아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자료들은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공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숙제에 필요한 자료를 찾는 학생들도 애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뿐 만 아니라 정책을 연구하시는 분들도 자료를 구하러 방문하시기도 합니다. 저 역시 블로그에 모아둔 자료를 바탕으로 칼럼을 쓰기도 하고, 이런 칼럼들을 모아 책으로 묶어 내기도 한 바 있고, 자료를 토대로 또 다른 책을 세상에 내놓기도 했으니 자료모음은 글쓰기에 있어 일종의 기초공사와 같은 것입니다.

 

제 블로그 친구분들 가운데는 장편소설을 쓰시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분 들의 작품을 읽으면서 솔직한 느낌을 전하기도 합니다만, 그분들이 <나 이재익, 크리에이터>를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꼭 소설쓰기가 아니더라도 글쓰기나 창작에 관심이 계신분들에게도 도움이 될 내용을 많이 담고 있는 보물창고 같다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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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과 망각의 책 밀란 쿤데라 전집 5
밀란 쿤데라 지음, 백선희 옮김 / 민음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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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과 망각이라는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은 단어를 묶어 제목으로 정할 수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쿤데라는 소설 <웃음과 망각의 책>에 모두 7개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7개의 이야기는 간혹 같은 주인공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전혀 독립된 이야기처럼 보이기 때문에 소설집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만, ‘잃어버린 편지들’이나 ‘천사들’과 같이 같은 제목을 단 이야기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독립된 이야기 모음이라고 보기에도 어려운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독자가 헷갈릴 수도 있겠다싶었던지 작가는 이 작품의 제목 뿐 아니라 성격까지도 설명하고 나섰습니다. “이 책 전체는 변주 형식의 소설이다. 서로 다른 부분들이 나로서는 이해하려면 막막함에 빠져들게 되는 한 테마의 내부로, 한 생각의 내부로, 하나뿐인 독특한 상황의 내부로 인도하는 여행의 서로 다른 단계처럼 이어진다. 이것은 타미나의 소설이다. 타미나가 무대를 떠나는 순간에는 타미나를 위한 소설이 된다. 타미나는 주인공이자 주된 청중이다. 다른 이야기들은 그녀 이야기에 대한 변주들이며 거울 속 처럼 그녀 삶 속에서 서로 만난다. 이것은 웃음과 망각에 관한, 망각과 프라하에 관한, 프라하와 천사들에 관한 책이다.(P.310)”

 

음악에서 주로 사용되는 변주(變奏)란 ‘음악을 선율적·화성적·대위법적으로 변화시키는 기술’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잃어버린 편지들’의 주인공 타미나가 다시 등장하는 ‘천사들’에서 쿤데라는 오랜 투병에 지친 아버지가 손을 잡아끌어 베토벤의 소나타 「op 111」의 악보를 펼처보이면서 “이젠 난 알아!”라고 한 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베토벤은 (음악사상 처음으로) 변주를 최고 형태로 만들고 거기에 그의 가장 아름다운 생각을 집어넣었다.(300쪽)”, “교향곡은 음악의 서사시다. 교향곡은 외부 세계의 무한을 가로질러 하나에서 다른 하나로 인도하며 점점 더 멀어지는 여행을 닮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변주 또한 여행이다. 변주에서 베토벤은 탐험할 다른 공간을 발견했던 것이다. 변주는 새로운 여행에의 초대였다.(308쪽)” 음악의 변주가 새로운 영역의 발견이었던 것처럼 쿤데라는 인간이 거대한 무한의 심연과 작은 무한의 심연 사이에서 산다고 한 파스칼의 생각을 인용하여 자신의 작품세계에서 펼쳐 놓은 변주는 모든 것 속에 감춰진 내면세계의 무한한 다양성 속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보았던 것 같습니다.(308쪽)

 

웃음과 망각에 관한 변주를 통하여 쿤데라가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어쩌면 소련의 꼭두각시들에 점령당한 조국을 등지고 떠난 사람들, 혹은 어쩔 수 없이 남은 사람들이 겪는 정체성의 해체과정을 에둘러 혹은 콕 짚고 있다고 읽었습니다.

 

두 개의 ‘잃어버린 편지들’에서는 조국을 떠나지 못한 미레크가 감시자들의 눈을 피해 감추고 싶은 기록들은 헤어진 연인 즈데나와 주고받았던 끔찍할 정도로 감상적인 편지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잃어버린 편지들’에서는 조국을 등지고 떠난 타미나가 망명길에 들고 나설 수 없어 시댁에 맡겨두었던 편지를 되찾기 위한 노력을 그리고 있는데, 편지는 죽은 남편과 같이 한 시간들에 대한 기록이기도 합니다.

 

‘잃어버린 편지들’에서 미레크는 ‘인간의 권력투쟁은 망각에 맞서는 기억의 투쟁(11쪽)’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사람들이 과거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져가는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옌데 암살은 러시아의 보헤미아 침공에 관한 기억을 금세 뒤덮어 버렸고, 방글라데시의 유혈 사태는 아옌데를 잊게 했으며, 시나이 사막 전쟁은 방글라데시의 울부짖음을 뒤덮었고, 캄보디아 학살은 시나이를 잊게 했으며, 그런 식으로, 계속해서 그런 식으로 모든 사람이 모든 것을 깡그리 잊을 때까지 사건이 이어졌다.(19쪽)” 쿤데라가 체코 동포들이 쓰라린 기억을 망각해가는 것을 걱정한 것처럼 우리 역시 일본이 지난 세기 우리선조를 비롯하여 아시아 주변국에 저질렀던 만행을 잊어가는 것을 걱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국가의 지도자들이 나서서 전쟁중에 저질렀던 반인륜적 행위를 철저하게 반성해온 독일과는 달리 일본은 자신들이 저질렀던 만행을 기를 쓰고 부정해왔다는 점에서 더욱 과거를 망각해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쿤데라는 ‘천사들’에서 웃음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천사들의 웃음과 악마들의 웃음을 대비시키면서도 애초부터 웃음은 악마의 영역에 속하였다고 하는데, “웃음에는 어딘지 사악한 데가 있으며 또한 웃음에는 편안한 안도감을 주는 측면도 있다.(122쪽)고 합니다. 웃음은 곧 쾌락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되며, 쾌락의 범위에는 ”먹는 것, 마시는 것, 배뇨하는 것, 만지는 것, 듣는 것, 혹은 그저 존재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할 수 있습니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 등장하는 호르헤 수도사가 수도원의 장서관의 비밀장소에 감추고자 했던 서책이 바로 그리스 희곡을 바탕으로 한 웃음을 다룬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2편’이었던 것은 중세기독교 사회에서는 웃음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처럼 쿤데라는 웃음으로 대표하는 쾌락주의가 조국의 어두운 현실을 도피하려는 일탈된 행동이라는 비판으로 읽힌다는 점입니다. ‘엄마’에 서 마르케타와 에바가 카렐과 함께하는 성행위라던가 ‘리토스트’의 여주인공 크리스틴의 외도를 통하여, 혹은 ‘경계선’에서 바바라가 주도하는 집단 성행위 등이 그 예가 될 것 같습니다.

 

쿤데라가 웃음을 망각과 관련지은 뜻을 ‘경계선’에서 새길 수 있을 듯합니다. “얀에게는 그와 마찬가지로 옛 조국을 떠나서 잃어버린 자유를 위해 투쟁에 모든 시간을 바친 친구들이 있다. (…) 그들은 경계를 보고 경계 너머로 미끄러져 들어갈까 봐 겁이 나서 고개를 돌렸다. 경계 너머에서는 고문당한 그들 민족의 언어가 이매 새들의 지저귐처럼 아무 의미 없는 소음일 뿐이었다.(4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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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다른 골목의 추억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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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도 독자층이 탄탄하다는 요시모토 바나나씨의 소설을 처음 만났습니다. 다섯 편의 단편을 묶은 <막다른 골목의 추억>인데, 재미있는 것은 다섯 편의 단편소설의 주인공은 모두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때라고 할 수 있는 청춘들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제목에서 받는 인상처럼 삶이 막다른 골목에 갇힌 것만 같은 상황에 봉착한 인생들이라는 공통점에, 저자는 이들이 어떻게 막다른 골목에서 새로운 인생길을 발견해가는 과정을 한폭의 수채화 그리듯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다섯 여인의 다섯 색깔의 사랑이야기라고나 할까요?

 

첫 번째 이야기 「유령의 집」의 남녀 주인공은 롤케익점을 하는 남자친구와 가족레스토랑을 가업으로 하는 여자주인공의 특징없는 생활 자체를 ‘막다른 골목’으로 인식할 수 있읗 것 같습니다. 가업 이어받기를 거부하는 남자주인공과 역시 가업 이어받기를 거부한 오빠 덕분에 가업을 이어받게 될 여자주인공이 우연히 같은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알게 되고, 일상을 탈출하기 위하여 파리로 유학을 떠나는 남자주인공과 헤어지기 전에 잠자리를 같이 하지만 미래를 서로를 구속하는 약속은 없습니다. 다만 이들이 잠자리를 같이 하는 장소인 남자친구의 숙소에서 나타나는 노부부 유령의 모습에서 무색무취할 정도로 일상적인 생활도 하나의 삶일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하겠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 「엄마!」에서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은 소녀가 역시 아무 것도 할줄 아는게 없는 엄마로부터 받은 학대가 마음 한켠에 쌓여있는데, 어느 날 사내 식당에서 주문한 점심에 넣은 독극물(사실 음식에 넣었다는 감기약은 안전영역이 넓은 편이라서 건강에 심각할 정도의 부작용이 생기려면 상당한 양을 복용해야 합니다. 따라서 적절한 설정이라고 보기에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을 복용한 여자 주인공은 병원에 실려가 위세척 등 응급가료를 받고 퇴원하게 됩니다. 불특정 다수를 향한 범죄의 희생양이 된 여자 주인공은 어릴 적 엄마로부터 받은 학대와 그 사건으로 엄마와 헤어지게 되면서 형성된 보호본능이 발동되는데 퇴원하고서 복귀한 회사업무 상 만난 사람의 지나치다싶은 관심에 다시 보호본능이 표출되면서 감정조절에 혼란을 겪게 되는 ‘막다른 상황’에 봉착한다는 메시지로 보입니다. 결혼을 전제로 동거하는 남자친구의 무심한 듯한 격려가 해결책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가장 짧은 스토리 「따뜻하지 않아」는 어린 시절 부잣집 이웃에 사는 남자아이와 함께 했던 기억에 붙들려 있는 여성 작가의 이야기입니다. 널찍한 자기 집보다도 헌책방 2층에 있는 여자아이의 집을 더 좋아했던 남자 아이는 집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버티다가 가정부의 손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갔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생모에 의하여 납치되어 죽음을 맞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합니다. 죽음이 무엇인지도 모를 나이에 맞은 갑작스러운 이별은 오랫동안 여자아이를 미로 속에 밀어 넣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과거의 기억과 어떻게 화해하는지 또 다른 해결방안은 없었는지 작가에게 물어보고 싶은 생각이 남는 이야기입니다.

 

아버지의 외도와 부모의 이혼, 그리고 10대 시절 소꿉친구에 의해 강제로 관계를 맺는 등 여자 주인공의 삶은 이미 뒤틀려져 있었다고 할 수 있는 「도모 짱의 행복」에서는 5년여의 기간을 바라보기만 하는 짝사랑이 이루어질까 하는 기대를 걸게 하고 있습니다. 짝사랑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 다는 우리들의 편견을 작가가 속 시원하게 깨트려 주었으면 하는 강한 바람이 있었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마음에 담았던 짝사랑을 이루지 못한 저의 아픈 기억 때문에 더욱 그런 느낌이 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쉬운 점은 유독 이 작품에서만 작가가 소설가로 등장해서 소설 속의 소설로 만드는 결말을 보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결말은 독자의 상상에 맡기는 열린 결말이라는 점에서 마음에 상처를 담고 사는 여자 주인공이 이제는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바람을 결말로 덧붙이고 싶어집니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막다른 골목의 추억」은 약혼한 남자가 떨어진 곳으로 근무를 떠나게 되면서 조금씩조금씩 멀어지다가 결국은 다른 여자가 생긴다는 끔찍한 상황이 ‘막다른 골목’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단숨에 읽었습니다. 그만큼 빠져들게 만드는 매력이 있습니다. 이야기의 구조가 복잡하지 않은 탓도 있겠습니다만 어떻게 보면 주위에서 쉽게 만날 수도 있는 상황이고, 좋은 도움말을 주고싶은 충동을 느낄 수도 있는 이야기들이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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