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 스캔들 - 키스의 문화와 예술, 그 상상력 읽기
윤향기 지음 / 이담북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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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키스를 기억하십니까? 그 첫 키스의 기억은 당신만의 비밀인가요? 아니면 당신 주위에 계신 분들도 모두 알고 있나요. 소중하게 간직할 사랑에 관한 내밀한 이야기를 마치 전리품처럼 떠벌이는 사람도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연예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에게 흔히 첫 키스는 언제 해보았느냐는 질문을 미끼로 던지는 세태입니다. 이 질문을 시작으로 상대가 누군지 등 그 사람의 애정행각을 본격적으로 탐색하는 순서로 진행되곤 합니다.

 

출연자들은 마땅한 이야기 거리가 없으면 자신의 연애사를 거침없이 터뜨리고, 이런 이야기들이 다음 날 아침 신문의 연예란에 주먹만한 글자로 대서특필되기도 합니다. 그 상대방에게는 치명적인 상처를 주는 일이 될 수도 있을 터인데 사전에 허락은 받은 것일까 궁금합니다.

 

만해 한용운님께서는 <님의 침묵>에서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라고 적어 첫 키스의 순간이 한 사람의 인생에서 차지하는 무게가 작지 않음을 가늠한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첫 키스의 추억도 두 사람만의 비밀로 소중하게 간직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늘의 주제는 윤향기시인의 <키스 스캔들>에서 다루고 있는 키스가 되겠습니다. 첫 키스라 함은 어느 아기라도 예쁘기만 한 시절, 가족 혹은 친지로부터 받는 뽀뽀를 이르는 것은 물론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보니 얼마나 다양한 키스의 종류가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윤향기시인은 메모리된 키스가 워낙이 다양하다면서 버드키스, 크로스 키스, 햄버기 키스, 에어클리닝 키스, 슬라이딩 키스, 인사이드 키스, 프렌치 키스, 이팅 키스, 와이드스페이스 키스 등 대표적인 9가지 형태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키스가 “때로는 따뜻하고, 때로는 차갑고, 때로는 단단하고, 때로는 부드럽고, 때로는 격정적이고, 때로는 잔혹한 사람이 나고 죽는 것보다 더 오래된 옹알이 소리가 그 속에는 들어있다.(22쪽)”고 적고 있어 종류와 느낌을 조합하면 같은 느낌의 키스는 없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녀는 키스가 무의식적 본능에서 표출되는 하나의 기호로서 “누군가에게는 환희의 기호로, 누군가엔 더할 나위 없는 슬픔으로 표현되는 저항, 방어, 광기, 도취, 매혹만 있는 것이 아니라 치유와 통합, 회복의 힘이 옵션으로 들어 있다.”고 프롤로그에 적고 있습니다. 저자의 남다른 흥미와 관심으로부터 배태되어 오랜 노력 끝에 탄생한 <키스 스캔들>을 통하여 키스의 종류와 연원과 의미변천을 명화와 명시를 통해 생물학, 인류학, 문화심리학, 정신분석학적 분석을 감상해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 될 듯합니다.

 

연희원교수님의 <에코의 기호학; http://blog.joinsmsn.com/yang412/12910610>을 통하여 순수미술과 대중미술이 공유할 수 있는 점을 소개드린 적이 있습니다. 에코의 기호학적 방법론과 세계관을 적용하여 예술과 미의 보편적 전달가능성에 대한 기호학적 해답을 구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는 말씀을 드렸던 것 같습니다. “21세기에는 순수미술과 대중미술을 구분하는 일이 무의미해졌다. 과거 예술은 특별한 사람들에게 하녀처럼 봉사했지만 현대 대중미술은 대중들과 함께 걷는다.(176쪽)”라고 정리하고 있는 윤향기 시인께서도 공감하는 부분 같습니다. 더 나아가 ‘최근 아트 개념 속의 몸은 상품으로서의 섹슈얼리티로 포장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클림트, 뭉크, 실레, 브랑쿠시, 마그리트, 비어즐리, 루벤스, 워터하우스 등 대가들이 키스를 소재로 하여 그린 명화를 씨줄로 하고, 다양한 작가들의 시(詩)는 물론 소설, 영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키스에 관한 이야기들을 날줄로 엮어 이야기를 풍성하게 하고 있습니다. 윤향기 시인께서 독자들을 위하여 카르페디엠, 소울 푸드, 에로티시즘, 팜므파탈, 타나토스, 에로스 등 무려 열두 가지나 되는 키스의 성찬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가질듯한 ‘인간은 왜 키스를 하는가?’하는 원초적 궁금증에 대하여 저자는 “사회심리학자들은 이 같은 행동은 촉각을 통해 서로의 존재를 살피려는 의도에서 시작됐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생물학자들은 키스를 교환하는 것은 소금기를 얻으려는 시도로부터 유래됐다고 분석한다.(17쪽)”고 적었는데,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생물학자들의 주장은 너무 메마른 사고의 결과로 보여 혹시 허점은 없을까 심각하게 연구해봐야 하겠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저자는 에드바르트 뭉크가 키스를 소재로 하여 그린 여러 점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뭉크의 <절규>라는 작품은 미술에 문외한인 저도 알 정도로 잘 알려진 작품입니다. <절규>가 제작된 배경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고 합니다. 1893년 어느 날 황혼 무렵 친구 두 명과 함께 길을 걷고 있는데, 피오르드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쪽으로 태양이 지고 있어 하늘이 핏빛으로 붉게 물들었다고 합니다. 이 정경을 보는 순간 뭉크는 갑자기 알지 못하는 슬픔에 휩싸이면서 불안감이 엄습하여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난간에 기대어 검푸른 피오르드와 거리 위로 낮게 깔린 불타는 듯한 구름을 바라보고 있는 그를 잠시 지켜보던 친구들은 다시 걷기 시작했는데, 뭉크는 공포에 떨면서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고 합니다. 마치 언제 끝날지 모르는 자연의 날카로운 절규가 대기를 갈갈이 찢는 것 같은 느낌 때문이었다는 것인데, 이 날의 강렬한 느낌이 <절규>로 탄생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다음 블로그 ‘금모래 사진 겔러리’ 자료를 다시 구성하였습니다. http://blog.daum.net/jdchung5/3366489) 뭉크의 <절규>는 오슬로에 있는 노르웨이 국립미술관에서 볼 수 있고, 사진촬영이 가능하다고 하니 오슬로에 가실 기회가 있으시면 꼭 들러보시기를 권합니다.

 

뭉크의 작품은 대체적으로 어둡고 섬뜩한 느낌을 주는데, 이는 우울증을 앓던 여동생을 비롯한 가족사를 비롯하여 세 살 연상의 유부녀와의 사랑이 실패하면서 생긴 정신적 상처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면 이해하기 쉽지 않을 부분입니다. 뭉크가 명성을 얻기 전까지만 해도 전시회 때마다 혹평이 뒤따랐다는 사실에서도 이런 점을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저자가 인용한 “나는 매일 죽음과 함께 살았다. 나는 인간에게 가장 치명적인 두 가지 적을 안고 태어났는데, 그것은 폐병과 정신병이었다. 질병, 광기, 그리고 죽음은 내가 태어난 요람을 둘러싸고 있던 검은 천사들이었다.(36쪽)”고  한 뭉크의 말은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질투>라는 제목으로 된 작품에 대하여 작가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방은 뭉크의 무의식이고, 뒤의 두 남녀는 마음속에서 일어난 상상을 그린 것이다. 에로스와 타나토스, 사랑과 미움, 선과 악의 경계에서 안주하지 못한 채 흔들거리는 사내가 한없이 무기력해 보인다. 그러나 그의 왼쪽 눈은 분노, 오른쪽 눈은 절망으로 이글거린다. 자기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그녀의 포식본능을 새장 안에 가두고 싶어 하는 눈빛이다.(40쪽)” 욕망 혹은 호기심이 바깥으로 향하는 연인을 붙들어 매려는 노력은 마르셀 푸르스트 역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9; 갇힌 여인>에서 알베르틴과의 숨바꼭질을 통하여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어 쉽게 이해가 됩니다만, 화가의 제작의도가 함축적으로 담기는 회화작품에서는 이해가 쉽지 않습니다. 제 눈으로는 <질투>에서 뭉크의 간절함을 제대로 읽어낼 수 없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합니다.

 

팜므파탈적 키스를 논하고 있는 ‘위험한 욕망의 키스’라는 제목의 글에서는 자신의 구애를 거절한 세례 요한의 목을 끌어안고 키스를 퍼붓는 살로메를 그리고 있는 회화작품들과 오스카 와일드의 시 <살로메>가 눈길을 끕니다. “당신의 입술에서는 쓴 맛이 나는군. / 피 맛인가? 아니야! 사랑의 맛이겠지. / 사랑이 쓴 맛이라지.” 하지만 섬뜩한 느낌을 주는 오브리 빈센트 비어줄리의 <살로메> 연작이나 막스 클링거의 <율리우스 살로메>와는 달리 뤼시앵 레비 뒤르메르의 <살로메>는 마치 잠든 연인에게 살짝 입을 맞추듯 한 느낌이 드는 것은 파스텔화 특유의 분위기도 한 몫을 한 것이겠지만, 세례 요한의 목을 다정하게 감싸는 듯한 살로메의 포즈도 기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자가 ‘불온한 쾌락의 키스’라는 범주에 넣은 이야기들 가운데, 한트 세발트 베함의 <키스>라는 작품을 제외하고는 딱히 불온하다싶은 느낌이 오지 않습니다. 카미유 클로델과 오귀스트 로댕 사이의 안타까운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카미유 클로델의 작품 <사쿤달라>의 배경이 되는 인도의 고전희곡 <샤쿤탈라>의 스토리 역시 고난을 겪게 되는 남녀가 종국에는 사랑을 이룬다는 내용입니다. 카미유의 동생 폴의 작품해설을 보면 이해가 되실 것 같습니다. “남자는 무릎을 꿇었고, 욕망덩어리에 지나지 않는 이 남자는 고개를 들고, 감히 잡을 수 없는 이 놀라운 존재를, 저 높은 곳에서 그에게로 추락한 이 신성한 육체를 열망하며 껴안는다. 눈멀고 귀먼 이 여인은 사랑이라는 무게에 짓눌려 굴복하고 만다. 이 보다 더 강렬하고, 동시에 정결한 작품을 본다는 것을 일을 수 없다.(49쪽)” 물론 이러한 해설에는 누이 카미유에 대한 위로가 포함되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키스는 성적 친밀감의 원초적 본능이다.”라고 시인은 단도직입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키스를 통해 관능의 새로운 세계로 발을 들여 놓을 때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감각을 통해 세상을 경험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저자가 풀어놓은 키스의 미학을 제대로 알려면 미학에 관한 기본적 지식을 쌓아야 할 것 같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미학을 집대성한 아리스토텔레스는 “미(美)란 크기와 질서가 잡힌 배열에 근거한다.(미학산책 43쪽; http://blog.joinsmsn.com/yang412/12918284)”고 말한 바 있습니다. 즉, 사물의 모든 부분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상태를 미적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미의 대상에 대한 별도의 설명이 없어도 보는 이가 마음으로 미를 느끼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고전적 개념의 미학이라 하겠습니다. 반면 뭉크의 예에서도 보는 것처럼 현대 화가들의 작품은 전문가의 설명이 곁들여지면 이해의 폭이 깊어진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미학, 특히 현대 미학을 이해하는데 있어 전문가들의 설명을 구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다만 기억해 두어야 할만한 점은 있습니다. 로저 킴볼은 예술사에 정치적 개입을 경계하면서도 예술작품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온갖 종류의 문화적, 사회적, 역사적 요소들이 개입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습니다.(평론, 예술을 엿먹이다, 61쪽; http://blog.joinsmsn.com/yang412/12866017) 다만 생생한 기운의 중심은 작품 자체가 되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예술사가 아니라 일종의 자서전 혹은 정치적 설교가 되어버리고 말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언제쯤 키스를 해보셨습니까? 혹시 너무 오래되어 키스하는 방법을 잊어버리신 것은 아닌가요? “당신이 일상에서 잊어버린 키스! 그러나 어쩌면 당신의 영혼이 아직 기억하고 있을 키스! 生의 에너지가 맞부딪치는 소리가 나는 키스에는 요란한 온도와 불빛이 있다. 그것은 때로 당신이 느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넓고 훨씬 신비롭다.(53쪽)“고 합니다. 그러니 하던 대로 사랑하고, 하던 대로 그래도 키스를 하라고 윤향기 시인은 조언하고 있습니다. 키스는 바로 치유인 동시에 휴식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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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2012-10-02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넷신문 <라포르시안>에서 SNS를 통한 댓글 이벤트를 통하여 도서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다음 주소의 포스팅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www.rapportian.com/n_news/news/view.html?no=7983
 
지금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 게리 해멀이 던지는 비즈니스의 5가지 쟁점
게리 해멀 지음, 방영호 옮김, 강신장 감수 / 알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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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이면 제가 참여하고 있는 학회의 회장을 맡아야 합니다. 10년 전 학회 창립 당시 간사장을 맡아 어려운 여건에서 자립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던 학회가 이제는 국제학회를 공동으로 개최하기에 이르렀으니 나름대로 성장은 이루었다고 하겠습니다. 문제는 국내외에서 명실 공히 인정받는 학회로서 위상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내실을 기하는 것이 새로운 과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학회가 참여하고 있는 국제학회의 회장에 내정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어, 국제학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해결하고 비전을 준비해야 하는 시점이기도 합니다. 학회 역시 다른 조직사회와 크게 다를 것이 없이 전체 회원들이 같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끄는 강력한 리더십을 필요로 합니다. 이러한 개인적인 고민으로 머리를 싸매고 있는 때, 세계 최고의 경영전략가 게리 해멀의 최신작 <지금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를 읽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자는 지금의 비즈니스 세계에서 다뤄야 할 최대 쟁점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고 있습니다만 리더십, 팀, 동기부여 같은 경영에 관한 평범한 소재가 아니라 비즈니스 세계에서 극심한 변화와 치열한 경쟁을 이겨내고, 멈추지 않는 혁신의 바람을 타고 가기 위한 조직관리 이론을 다방면에서 고찰하였다고 하니, 비즈니스 이외의 영역에서의 조직관리에 응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입니다.

 

저자가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다섯 가지의 멋진 화두(話頭)는 가치(Values), 혁신(Innovation), 적응성(Adaptability), 열정(Passion) 그리고 이념(Ideology)입니다. 가치를 제일 먼저 꼽은 이유는 최근 글로벌경제를 위기로 몰아넣은 금융위기를 전후하여 기업사회가 보인 도덕적 해이를 바로 잡기 위해서는 가치, 즉 도덕적 가치의 부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혁신은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살아남기 위한 장기 가치를 창출하는 유일한 지속 가능전략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혁신을 추진하면서 이상과 현실의 격차를 인식하고 좁히기 위한 구체적 전략이 필요하다는 주장입니다. 적응성이나 열정은 급변하는 환경에서 추진동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절대적으로 필요한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점이며, 마지막으로 이념, 즉 경영이념은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통제의 개념과는 다른 열린 경영이념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쳐내고 있습니다.

 

저자의 논리전개 방식을 드러내 듯, 다섯 가지의 화두를 설명하기 위하여 다섯 개로 나눈 장에는 서로 보완할 수 있는 내용을 담은 다섯 개의 글을 담았습니다. 42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면서도 대하소설처럼 중언부언하지 않고 간결한 문체에 핵심은 개조식으로 요약정리하고 있어 독자들이 빠트리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관리에 필요한 다섯 가지의 핵심사항, 즉 신의, 관용, 신중, 책임, 공정 등을 가치편의 머리부분에서 짧게 요약하여 독자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내공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점은 경영을 논하면서도 물리, 수학은 물론 의학 등 다양한 자연과학 영역의 지식을 인용하여 경영전략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는 점입니다. 역시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융합이 시야를 넓게 해주는데 크게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국격이 달라졌다는 정부의 주장을 자화자찬이라고 주장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만, 세계적인 경영전략가가 쓴 책에서 한국사회와 한국의 기업에 대한 평가가 인용되고 있음을 보면 이런 분들이 생각을 바꾸셔야 할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저자의 처가의 성공사례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핀들리농장의 가치 기반이 되었던 검약, 절약, 절제, 희생 등의 미덕은 미국과 영국, 한국과 일본 등 동서양 여러 나라에서 중요시되고 있다.(62쪽)”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LG전자가 7위에 올라있는 비즈니스 위크 선정 혁신기업 명단을 인용하고 있고, 삼성을 수상자형 혁신기업으로 소개하고 2010년 미국특허를 4,551개나 신청하고 있음을 인용하고 있을 뿐 아니라 애플이 여타의 경쟁기업들에 비해 폭넓은 기술 역량을 갖추고 있다고 하면서도 삼성을 예외로 한다는 전제를 두고 있기도 합니다.

 

이런 정황을 읽으면서 대기업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늘고 있는 우리나라의 사정도 저자가 주장하는 선진국의 소비자 행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도 적어둡니다. 맥킨지 앤드 컴퍼니가 2007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선진국에서는 대기업들이 ‘다소’ 또는 ‘대체로’ 사회에 긍정적 기여를 한다고 생각하는 소비자들이 10명 중 4명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67쪽)”

 

조직관리에 관심이 있는 중간관리자는 물론 조직관리에서 무언가 변화가 필요한 CEO들이 읽으면 고민을 해결할 무엇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나름대로의 생각이 정리된 경영전략서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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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9 - 갇힌 여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9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창석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199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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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8부 능선에 해당되는 ‘갇힌 여인’은 마라톤으로 치면 마지막 고비에 해당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4부까지는 두 권으로 나뉘었던 것을 578쪽이나 되는 한권으로 묶었으니 일단은 두텁다는 느낌이 드는데다가, 알베르틴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전체 스토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간에 알베르틴이 꼬투리가 되어 방문하게 되는 베르뒤렝부인의 살롱파티에서 샤를뤼스씨와 모렐과의 관계가 파경에 이르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다가, 발베크에서 같이 지내다가 파리로 돌아와 같이 살게 되는 알베르틴과의 관계 역시 그녀가 동성애에 탐닉하는 속사정을 감춰왔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파탄에 이르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어, 어쩌면 전편 ‘소돔과 고모라’에서 풀어놓았던 남성과 여성의 동성애에 대한 당시 사회의 부정적 인식의 일면을 정리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알베르틴의 행적에 대한 주인공의 의심과 감시가 지루할 정도로 이어지고 있어 다시 마라톤경기에 비유하자면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황영조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코스 가운데 마지막 난코스 몬주익언덕에 해당된다고 하겠습니다.

 

프루스트가 주변에서 일어나는 상황에 얼마나 예민했던가는 매 스토리를 여는 대목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갇힌 여인’은 다음과 같이 시작됩니다. “아침 일찍, 얼굴을 아직 벽 쪽으로 돌린 채, 창문의 커다란 커튼 뒤쪽으로 새어드는 빛살이 어떤 빛깔인지 보지 않아도, 나는 이미 날씨를 알 수 있었다.”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요? “한길에서 맨 처음 들려 오는 소리가, 습기로 부드럽게 굴절되어 들여 오는지, 아니면 차갑게 밝아진 드넓은 아침의, 높게 울리는 공허한 공간을 화살처럼 떨면서 들려오는지에 따라서 알 수 있는 것이다.” 사소한 변화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모두 기억에 담아 두고 차이를 비교해야만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고 미묘한 차이까지도 인식할 수 있어야 가능한 일이라고 한다면 주변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에 민감한 주인공이(사실 주인공이 바로 프루스트라는 사실은 ‘갇힌 여인’에서 알베르틴이 공공연히 언급함으로써 밝혀지게 됩니다.) 선병질적일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됩니다.

 

주인공 역시 여러 차례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만, 당시에도 미혼의 남녀가 같은 집에 동거한다는 것이 남의 입초시에 충분히 오를 가십거리였음에도 불구하고 특히 어머니도 아픈 친척을 간병하기 위하여 콩브레에 가있는 상황에서 주인공이 알베르틴을 파리의 집으로 데려와 같이 지내겠다는 결정을 내린 배경이 아리송하다는 것입니다. 질베르트나 게르망트부인에게 향하던 연심을 접는 과정에서 단호하고 쿨한 성격이구나 싶었던 주인공은 알베르틴과의 관계에서는 애매모호하다는 것입니다. 알베르틴의 숙모의 부탁으로 알베르틴의 동성애적 성향을 바로 잡기 위하여 파리로 데리고 가서 동성애 상대들과의 접촉을 차단하기 위하여 동거를 시작했다고 설명하면서 그녀의 관심이 자신을 향하도록 하기 위하여 게르망트공작부인의 조언을 받아 새옷을 사주는 등 어머니의 걱정을 들을 정도로 돈을 쏟아붓는 태도 역시 이해할 수 없는 점이기도 합니다.

 

절절한 사랑을 고백하는가 하면 어느 순간에서는 알베르틴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고 고백하기도 하는, 다중인격이 의심되는 대목을 곳곳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태양의 송가를 노래하는 나의 내부의 꼬마 인물 쪽이 그녀보다 더 많은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을 아는지라, 우선 엄라 동안 이 인물과 상면을 즐기는 게 예사였다. 한 개인은 허다한 인물로 형성되는데, 그 중에서 가장 표면에 나타나는 자라고 해서 반드시 가장 본질적인 자는 아니다.(11쪽)”

 

그런 점에서 주인공은 알베르틴 역시 다중인격을 가진 것으로 오해하기도 하는데, ‘갇힌 여인’을 모두 읽고 나면 알베르틴은 치밀하게 계산된 행동을 하지만 자신이 한 말을 모두 기억하지 못하여 비밀을 스스로 내뱉어 스스로 발목을 잡는 짓도 저지르는 구석도 있어 단순한 성격으로 보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에서 시작된 남녀 동성애자의 성향은 동성간의 관계가 주를 이루다가 ‘갇힌 여인’에서는 모렐과 쥐피앙의 질녀와의 관계를 비롯해서 주인공과 알베르틴과의 관계 등 주요등장인물들의 양성애(兩性愛) 성향을 그리고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동성애 성향이 있는 사람들은 이성에게서는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고 들었습니다만, 프루스트는 스토리 구성의 다양함 때문에 양성애 성향으로 구성하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가지 더 헷갈리는 점은, 세월이 꽤나 흐른 탓인지 죽음을 맞아 이야기 흐름 속에서 사라지는 인물들이 많아지고 있는데, 문제는 앞에서 죽었다고 언급한 인물이 뒤에서 다시 등장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아 참, 그 말씀인데, 애도의 뜻을 표하는 걸 까맣게 잊었군요. 불쌍하게도 그 선생(코타르)이 그렇게 급사할 줄이야!(320쪽)”, 라고 했는데, “샤를리의 서훈에 큰 발언권을 가질 수 있는 이 인물이, 코타르에게 건강 상담을 몇 마디 물어 본 다음 총총히 돌아가는 참이었다.(371쪽)”, “커타르가 왜 안왔는지 아시오? 사니에트의 곁에 있었기 때문이야.(436쪽)”고 다시 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등장인물이 많은 대하소설의 경우 등장인물을 관리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합니다. 박경리선생님의 대하소설 <토지>에서는 이런 상황을 본 기억이 없어 참 대단하시단 생각을 했던 것과 대조적인 상황이라서 당황스럽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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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침팬지
재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 문학사상사 / 199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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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균쇠; http://blog.joinsmsn.com/yang412/12850611>를 읽고서 제레드 다이아몬드교수의 전작 <제3의 침팬지>에 관심이 커졌습니다. 박물학을 바탕으로 하여 다윈이 제시한 <진화론>은 분자생물학의 발전에 힘입어 과학적 근거가 확대되고 있습니다. 유인원 중 인간에 가장 가깝다는 침팬지와 인간의 유전적 차이는 불과 1.6%에 불과하다고 하는데, 인간이 동물과 다른 발전의 궤적을 따라가도록 만든 핵심요소는 무엇이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자는 이런 의문에 가장 근접한 답을 구하기 위하여 다양한 학문적 성과들을 종합하여 검토하고 있습니다. 모두 5부로 구성된 <제3의 침팬지>에서 1부는 수백만년 전부터 1만년 전 경까지 인류가 유인원의 계통을 떠나 독립적인 개체로 성립되어 농업을 시작할 때까지의 경과를 다루고 있습니다. 2부는 2세가 출생하면 먹이고 키워 독립할 수 있도록 돌보는 일처럼 인류가 동물들과는 다른 점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즉, 1부와 2부에서는 인류의 문화가 번영해 가는 생물학적 기반을 검토하고 있는 것입니다. 3부에서는 언어, 예술, 기술, 농업 등과 같이 인간이 동물과 확연히 구별되는 문화적 특징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3부에서는 약물남용을 비롯하여 독성화학물질에 의한 환경오염과 같은 인류의 어두운 면도 짚고 있으며 4부로 넘어가면서 부족간 혹은 국가간 전쟁과 같은 사회적 갈등을 그리고 있으며, 앞서 지적했던 대규모 환경파괴와 함께 생물체의 멸종을 가속시키고 있는 인류의 행태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제3의 침팬지>를 냉정하게 평가해보면, 저자가 한국어판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밝힌 것처럼 인류의 위기가 코 앞에 닥치고 있음을 경고하면서 핵전쟁을 비롯하여 대규모 환경파괴와 생물체의 멸종을 가속시키고 있는 인류의 행태에 대한 대책마련을 촉구하려는 생각을 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내가 이 책을 쓴 동기는 우리 인류가 직면해 있는 생존에 대한 위험, 즉 환경파괴와 대량 살육, 그리고 약물남용이 이미 위험수위에 이르고 있는 데 대한 경각의 마음을 널리 갖게 하고자 하는 열망에서 비롯됐던 것입니다.(8쪽)”

 

지금과 같은 인류의 행태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제3의 침팬지로서 인간이 지니는 폭력성이 인류의 몰락을 초래할 것”이라는 경고를 담고 있다 하겠습니다. 일단 다양한 영역의 학문적 성과를 집대성하여 500쪽이 넘는 방대한 양임에도 불구하고 이해가 쉽게 설명하고 있어 책읽기가 수월하다는 점이 저자의 장점이라 하겠습니다. 다만 같은 내용이 몇 차례씩 반복되는 것들이 눈에 띄기도 합니다. 또한 현생인류에 이르기까지 변곡점, 예를 들면, 유인원과 원인(猿人), 네안델타르인과 크로마뇽인으로 대체되는 과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분명하게 정리되지 않은 것은 아마도 고고학적 성과가 아직 충분하지 않기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4부에서 다루고 있는 야생의 식물과 동물의 재배와 가축화에 관하여 정리한 저자의 생각은 확대보완되어 <총,균,쇠>로 다듬어진 것 같습니다. 제노사이드를 정리한 부분은 다카노 가즈아키의 소설 <제노사이드; http://blog.joinsmsn.com/yang412/12853780>에서 인용하여 충분하게 검토한 바 있습니다만, 저자가 검토하지 않은 채 묻힌 제노사이드의 사례가 더 있었을 것이란 생각입니다. 하지만 유럽인에 의하여 자행된 테즈메니아인의 멸종과정은 충격이 아닐 수 없었고, 중세 교회가 저지른 과오에 대하여 교황성하께서 사과의 말씀을 하셨던 것처럼 누군가 책임을 이어받은 사람이 사죄의 말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하긴 일본의 우익들은 이미 세상이 다 알고 있는 전쟁범죄가 아예 없었던 것처럼 호도하는 뻔뻔함을 보이고 있어 더 얄밉다고나 해야 할까요?

 

저자는 쿠루병으로 유명해진 포레족이 살던 파푸아 뉴기니에서도 조류에 관한 연구를 위하여 누비고 다녔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사라진 병이 된 쿠루병은 지금은 프리온이라고 하는 단백질이 감염원인이 된다는 설이 유력하지만 저자가 이 책을 썼던 1993년만 하더라도 가쥬섹에 의하여 제안된 슬로우 바이러스가 원인일 것이라는 바이러스설이 주도하던 시절인지라 쿠루병을 바이러스질환으로 적고 있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최근에 나온 쇄에서 프리온설에 대한 주석을 달아주는 센스는 없었을까 아쉽습니다.

 

전반적으로 보면 인류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강하다 보니 인용된 자료의 해석 역시 긍정적 해석보다는 부정적인 방향으로 해석하고 있지 않은가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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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학 - 죽음에서 삶을 만나다
林綺雲 외 지음, 전병술 옮김 / 모시는사람들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퀴블러 로스는 죽음을 ‘성장의 마지막 단계’라고 정의하였습니다. 즉 죽음은 인간의 삶에서 피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죽음으로부터 도피하려 하지 말고 ‘죽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죽음에 대하여 일찍 눈을 뜬 서양에 비하여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국가들은 죽음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부정적인 단계에 머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죽음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충분하기 않은 탓에 일반에게까지 정보가 충분히 제공되지 않을 뿐 아니라 교육과정 역시 미흡하기 짝이 없는 수준이라 하겠습니다. 우리나라의 자살율은 세계에서 가장 높다고 합니다. 꽃다운 젊은이들이 쉽게 목숨을 버리는 일이 자주 일어나는 것은 죽음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죽음학>은 타이완 동해대학교 임기운교수를 비롯한 여섯 분의 대만학자들이 동양적 시각에서 접근한 죽음에 대한 인식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원저에 포함된 ‘타이완의 삶과 죽음의 의식’에 관한 부분이 우리나라의 현실과 동떨어진 측면이 많아 제외하고 대신에 이화여대의 최준식교수님의 ‘한국인의 죽음관’이란 제목의 글을 대신하였다고 하는데, 타이완에서의 죽음학에 대한 상황을 이해하는 자료로 활용할 필요가 있는 분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겠습니다.

 

옮긴 전병술교수님의 요약에 따르면 모두 4부로 이루어진 이 책은 제1부에서 죽음교육의 영역으로 죽음학의 범위 및 아동을 포함한 학교에서의 죽음교육을 다루고, 제2부에서는 세계 각 민족의 신화와 서양의 대표적 종교인 기독교 및 동양의 대표적인 종교인 불교에서의 죽음에 대한 인식을 다루고 있습니다. 제3부에서는 죽음과 관련된 다양한 양상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이 슬픔을 극복하는 방법을 다루고 있으며, 제4부에서는 사회적 의제가 되고 있는 호스피스, 안락사 등 의료현장에서 부딪히는 죽음과 관련된 사항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죽음에 대한 중국인의 인식이 잘 정리되어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에서처럼 유가사상의 영향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보는데, 유가의 죽음에 대한 특징은 첫째, 인간의 자연사와 죽음의 필연성에 대한 인식이 분명하고, 둘째, 생사나 귀신에 대하여 가급적 언급하지 않으려는 경향, 셋째, 공리주의적이며 현세주의적 생사관의 영향이 강하며 넷째, 죽은 자에 대한 애도, 상․장례 의식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죽음에 대한 아동의 인식에 대한 논의는 주목할만합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최근 들어 자살하는 아동들이 늘고 있는 현상이 바로 생명존중교육의 부재에 기인하는 것이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아이들이 생명의 가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삶의 의의와 아름다움을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학습에 대한 과도한 부담과 적절치 못한 교우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인하여 잘못된 결정을 내리게 되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흔히 사랑하는 이를 앞세운 사람이 뒤따라 세상을 떠나는 사례가 드물지 않다고 하는데, 이는 사별에 따른 정서적 스트레스를 제대로 풀어내지 못하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한 사람을 위로할 때 지나친 애도가 건강을 해칠 것이라면서 달래는 경우를 흔히 보게 됩니다만, 정서적으로는 실컷 울어서 사별로 인하여 오는 고통을 말끔하게 풀어내는 것이 오히려 자기조절이 쉬워질 수 있다고 합니다. 이처럼 상실에 따른 슬픔을 어떻게 달랠 것인가를 정리한 ‘상실과 슬픔’에 관한 글도 매우 인상적입니다.

 

‘의학과 죽음’이라는 제목으로 된 제4부에 담긴 의료현장에서 만나는 의학적 죽음의 정의, 임사체험, 안락사 및 자살, 장기기증과 호스피스 등에 관한 글들은 그동한 많이 읽어온 소재로 개인적으로는 특별하다할 내용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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