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제라블 3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3
빅토르 위고 지음, 정기수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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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의 제목은 마리우스입니다. 마리우스에 대한 설명으로 이야기를 시작할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1831년 당시 파리의 거리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떠돌이 생활하는 청소년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파리 변두리의 성긴 모퉁이나 음산한 담모퉁이에서 얼굴이 핼쓱하고 흙과 먼지투성이의 남루한 더벅머리 소년들을 쉽게 만날 수 있는데, 이들은 가난한 집에서 뛰어나온 소년들이라는 것입니다. 테나르디에부인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딸은 귀하게 키우면서도 아들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을뿐더러 어린 아이들을 남에게 주어버리는 짓까지도 하는 모습을 보면 당시 파리사회는 남존여비사상이 뿌리 깊던 동아시아 사회와는 정반대의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자는 파리가 우아한 도시인 것처럼 그리려 하고 있지만, 그가 스케치하고 있는 거리풍경은 민중들의 삶이 불안하여 사회가 동요하고 있음을 눈치챌 수 있습니다. 그 말미에 이 긴 이야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거리의 아이 가브로슈가 처음 등장하고 있습니다. 뒤에 밝혀지게 되지만 가브로슈는 테나르디에의 큰 아들입니다만, 부모의 냉대를 견디다 못해 거리로 뛰쳐나온 부모가 있으면서도 고아인 소년인 셈입니다. 오죽하면 “이 아이는 거리에서만큼 기분 좋은 때가 결코 없었다. 포도는 그에게 제 어머니의 마음보다 덜 냉혹했다.(43쪽)”고 했겠습니까? 그래도 가끔은 고르보의 누옥이라고 부르는  50-52번지의 집에 들를 때가 있는데 이 집은 바로 장발장이 파리에 잠입했을 때 처음 몸을 숨겼던 곳이기도 하며, 3부의 주인공 마리우스가 거처하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보면 작가들은 가급적이면 같은 장소에 등장인물들을 모아 사건을 전개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파리 거리의 아이들에 대하여 한바탕 설명을 늘어놓은 끝에 3부의 주인공 마리우스의 배경에 대한 긴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2부의 첫 번째 이야기였던 워털루전투의 끝장면에 등장했던 퐁메르시 대령이 바로 마리우스의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퐁메르시 대령은 왕당파 질노르망 노인의 둘째 사위인데 공화주의자인 그는 장인과 결코 화해할 수 없는 사이였고, 아내가 죽은 다음 아들 마리우스를 노인과 처형에게 내주고는 외롭게 살다가 죽음을 맞게 됩니다. 할아버지의 배려로 아버지의 사후를 수습하게 된 마리우스는 퐁메르시 남작의 유언을 읽고서 공화주의자로 변신하게 되고, 종국에는 질노르망 노인에게 들통이 나면서 집을 나가게 됩니다. 이 또한 코제트와의 만남을 위한 신의 섭리라고 보아야 할까요?

 

저자는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의 흐름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1831년)에는,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았으나 어떤 혁명적인 떨림이 은연중에 흐르고 있었다. 1789년과 1792년의 심층에서 되돌아온 숨결이 공중에 감돌고 있었다. (…) 시계 문자판에서 가고 있는 바늘은 사람들 마음속에서도 역시 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걸어가야 할 걸음을 앞으로 걸어 나아가고 있었다.(131쪽)” 그것은 1932년 혁명으로 분출되기 위하여 에너지를 축적하는 과정이었던 것입니다.

 

마리우스는 자연스럽게 뮤쟁다방의 뒷방을 근거지로 하여 뜻을 모으고 있던 청년들의 모임에 들어가게 되면서도 운명은 그의 발길을 코제트와 장발장 그리고 테나르디에와 에포닌과 얽히도록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작가는 본격적인 만남이 있기 전에 우연히 조우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마리우스는 뤽상부르공원의 인적이 드문 통로에 있는 벤치에서 쉬고 있는 한 남자와 아주 어린 처녀와 반복적으로 만나게 되는데, 그러다 보니 관심을 가지게 되는데 이들이 우연히 같은 50-52번지에 살고 있는 종드레트(사실은 테나르디에가 사용하는 여러 가명 가운데 하나입니다.) 가족들이 돈많은 노인과 어린 처녀를 위협하여 돈을 빼앗을 음모에 말려들게 되면서 그들이 바로 뤽상부르공원에서 만난 사람들이라는 것과 종드레트가 바로 아버지의 유언에 나오는 테나르디에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범행도 막아야 하겠고, 아버지의 은인을 도와야 하는 갈등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마리우스는 진행되는 음모를 경찰에 신고하게 되는데, 그 경찰이 바로 자베르형사라는 점도 우연이 연속되면 필연이라는 공식을 깨닫게 합니다. 사건현장에서 자베르형사와 조우하게 된 장 발장은 현장이 혼란스러운 틈을 타서 탈출할 수는 있었지만, 자베르 형사의 마음 구석에 의구심을 남기게 됩니다.

 

3부는 1,2부와는 달리 등장인물도 많고 이들이 서로 얽히는 모습을 그리고 있어서 등장인물의 관계를 파악하는데 다소 집중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프랑스 혁명 이후의 파리의 하층민들의 삶과 공화정 이후 왕정복고 시절의 사회적 분위기를 파악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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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제라블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2
빅토르 위고 지음, 정기수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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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의 제목은 ‘코제트’입니다. 당연히 코제트의 삶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2부의 일곱 번째 이야기 ‘여담’에서 저자는 “이 책은 무한을 첫째 인물로 삼고 있는 드라마다. 인간은 둘째 인물이다.”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옮긴이는 원문에 쓰인 'infini'라는 단어에는 ‘무한’이라는 뜻 외에 ‘무한한 존재, 절대자, 하느님’이라는 뜻이 있다고 각주를 달아놓으셨습니다. 손오공이 재주를 부려도 부처님 손바닥 안이더라는 이야기처럼 저자는 인간사가 복잡하게 얽혀드는 것이 참 신묘하다고는 하지만 절대자의 뜻에 따라서 펼쳐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1부의 시작에서 디뉴교구의 미리엘주교의 성품을 미주알고주알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2부의 시작은 엘바섬을 탈출한 나폴레옹이 마지막으로 치룬 워털루 전투의 현장을 그리고 있습니다. 저자가 워털루전쟁에서 나폴레옹의 패배를 꼼꼼하게 기록하는 이유는 왕정을 타도한 프랑스혁명을 계승한 공화정이 나폴레옹의 패전을 계기로 하여 왕정으로 복귀하게 된 것에 대한 시대적 아픔을 바탕으로 근왕파와 공화파의 갈등을 예고하고, 코제트와 엮이게 될 마리우스의 배경이라던가, 1부에서도 등장했던 테나르디에가 이야기의 전체에 걸쳐 등장하는 인물들과 끈질기게 엮여 있다는 점을 설명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보입니다. 한편으로는 워털루 전투의 진행과정을 독자들에게 인식시키려는 생각도 엿보이는데 저자는 나폴레옹의 자랑인 포병이 전투를 앞두고 내린 폭우 때문에 적기에 기동하지 못한 것이 중요한 패전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인상을 받습니다. 천시(天時)는 지리(地利)만 못하고 지리(地利)는 인화(人和)만 못하다고 들었습니다만, 하늘의 뜻을 얻지 못해 패전을 피하지 못했다는 변명이 아닐까 싶습니다.

 

1부에서 마들렌으로 변장하여 시장으로 활약하던 장발장이 자신의 죄를 뒤집어쓰게 된 샹마티외의 법정에 출두하여 자신이 장발장임을 밝히고 수감되었다가 팡틴이 부탁한 코제트를 구하기 위하여 탈옥하였지만 결국은 다시 체포되어 감옥으로 보내진 것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1부에서도 느낀 점입니다만, 빵한 조각을 훔친 죄로 19년의 옥살이를 하게 된 것은 수감 중에 몇 차례에 걸쳐 탈옥을 시도하는 바람에 가중처벌된 것인데, 수감생활이 그의 삶에 탈옥을 반복할 정도로 고통스러웠던가 하는 점입니다. 형기를 채우고 출옥하는 편이 더 나은 선택이 아니었을까요?

 

2부에서도 다시 탈옥에 성공하는 장발장은 몽페르메유로 가서 테나르디에의 여관에서 하녀로 구박받고있는 코제트를 구출해서 파리로 잠입하게 되는데, 자베르의 추격을 받는 탈옥수가 미국과 같은 외국으로 도주하거나 한적한 시골에 파묻혀 지내는 것이 더 안전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파리로 잠입한 것도 의외입니다. 파리로 잠입한 초기에는 허름한 집을 세내어 지내지만 정말 우연히 자베르와 조우하여 쫓기게 되고 시장을 지내던 시절에 구해주었던 포슐르방의 도움으로 수녀원에서 숨어 지낼 수 있게 됩니다. 아마도 어린 코제트가 안정적인 생활과 교육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선택이었던 것일까요?

 

“그런데 신은 자기의 길을 가고 있다. 수녀원은 코제트처럼, 장 발장 속에 미리엘 주교의 사업을 유지하고 완성하는데 이바지 했다. 덕의 여러 면 중 한 면은 교만에 이르는 것이 확실하다. 거기에 악마가 놓은 다리가 있다. 장 발장은 아마 부지불식간에 그 면에, 그리고 그 다리에 꽤 가까이 있었을 것인데, 그때 하늘의 뜻은 그를 프티 픽퓌스 수녀원에 던졌다. 자기를 주교하고만 비교했던 동안에는 그는 자기가 비천하다고 느꼈고 그는 겸손했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그는 자기를 사람들과 비교하기 시작했고, 교만이 싹텄다. 누가 알랴? 그는 아마 마침내 아주 서서히 증오심으로 되돌아갔을 것이다. 수녀원은 그를 그 비탈 위에 멈추어 세웠다.(449쪽)” 역시 신의 뜻이라는 것이죠.

 

악은 악을 낳고, 선은 선을 낳는 법입니다. <레미제라블>에 등장하는 인물들 가운에 장발장과 테나르디에가 대표적인 극단의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미리엘주교의 감화를 받은 장발장은 쫓기는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꾸준하게 어려운 사람들을 보듬고 선행을 베풀고, 테나르디에는 기회만 있으면 남의 것을 훔칠 궁리만 하는 모습으로 비교되고 있습니다. 장발장은 위기의 순간을 맞아서 그의 도움을 받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위기를 벗어나는 반면 테나르디에의 가족들은 파산하여 파리로 흘러들어와 바닥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또한 신의 뜻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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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일하러 갑니다 (골든애로우플래너 1+1 증정) - 퇴직 이후 40년 두 번째 직업 찾기
인제이매니지먼트 지음 / 알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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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재계약을 신청하기 위하여 지원서를 제출했습니다. 계약이 연장될지 아니면 종료될지는 발표가 나보아야 알 수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고 담담하게 생각을 합니다만 막상 계약이 종료되면 생각이 복잡해질 것 같습니다. 시기가 시기인 만큼 ‘퇴직 이후 40년 두 번째 직업 찾기’라는 부제를 단 <다시, 일하러 갑니다>가 반갑고 고맙게 느껴지게 되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수련을 받고, 수련이 끝난 다음에 바로 대학에 발령을 받으면서 그곳에서 정년을 맞을 것이라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역마살이 있었던지 모교를 떠나게 된 것을 시작으로 몇 곳의 직장을 거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직장을 옮기는 것에 대한 부담이 큰 편은 아닙니다만, 정년을 맞는 경우를 상정해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처음 직장을 옮길 때는 휴식기간 없이 바로 일을 시작하였지만 점차 쉬는 기간도 생기는 것 같습니다. 일단 회사에서 퇴직한 많은 사람들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여행이라고 하는데, 제 경우는 그냥 집에서 쉬었던 것 같습니다.

 

전문직에서 일하는 경우에는 아직은 일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은 것 같습니다만, 일반 회사에서 일하시는 분들에게 정년은 삶의 중요한 변곡점이 되기 마련인 것 같습니다. 예전보다는 기대여명이 엄청나게 늘어난 요즈음은 은퇴하고서도 이 책의 부제처럼 40년을 살아야 한다는 현실을 제대로 인식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저 역시 피치 못하게 퇴직을 하고서 새로운 직장을 결정하지 못하던 시절에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만, 은퇴 혹은 피치 못한 퇴직을 앞둔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막막할 것 같습니다. 속 시원한 조언을 듣거나 참고할만한 무엇이 마땅치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다시, 일하러 갑니다>는 좋은 참고서라고 하겠습니다.

 

일반적으로 퇴직을 하신 분들은 1, 소자본 창업, 2, 1인 창조기업, 3. 기업 운영, 4. 경력을 살린 재취업, 5. 새로운 분야로의 취업, 6. 귀농, 7. 사회 기여활동, 8. 완전한 은퇴, 9. 복합적인 활동 등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보면 저도 이 가운데 몇 가지를 생각해본 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막상 어떻게 해야 가능할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그려보지는 못했습니다. 저처럼 막연하게 대처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는 것이 저자들의 조언입니다. 퇴직 이후의 삶을 쫓기듯 살아온 인생의 전반부와는 달리 의미있게 살기 위하여 저자들은 현실을 냉정하게 판단해볼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즉, 현재 본인이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고 어떤 기술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지 객관적으로 평가해보고, 이를 하고자 일에 어떻게 접목시킬 것인지 면밀히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2의 생애설계를 위하여 중요한 점검사항 9가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조금 어렵다는 느낌도 있습니다만, 1. 변화에 대한 적응, 2. 주도적인 삶의 가치, 3. 은퇴에 대한 재성찰, 4. 일에 대한 재인식, 5. 신체적, 정신적 건강, 6. 경제활동과 재성의 안정, 7. 여가생활의 설계, 8. 삶의 균형과 행복, 9. 가족과 대인관계 등입니다. 저자들이 소개하는 다음과 같은 은퇴인생이 실감나게 다가왔습니다. 쉰셋에 멋진 은퇴를 하신 분이 20년이 지난 73세의 생일에 엄청 울었다는 것입니다. 앞선 53년의 삶은 자랑스러웠지만 이후 20년의 삶이 부끄럽고 비참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은퇴 이후의 삶이 목적도 없고 희망도 없이, 그저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게 살아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삶의 방향을 바꾸어 새로운 일을 배워 자신의 일을 시작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이 책에는 중요한 부록이 있습니다. 바로 <골든 애로우 플래너>입니다. 막연하게 흘려보내는 아이디어들을 정리해서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계획하고 지향하는 일을 지속적으로 확인시켜주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고 나아갈 수 있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자신의 새로운 인생에서 할 일을 찾고, 그 일을 실행하기 위해 준비해나가 결과적으로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기를 바란다.(237쪽)”고 저자들이 책을 마무리한 것처럼 은퇴 이후의 삶을 신중하게 생각하고 현명한 선택으로 행복한 노후생활을 가꿀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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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극장 - 영원회귀와 권력의지의 드라마
고명섭 지음 / 김영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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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를 무는 책읽기’에 관한 이야기를 몇 차례 드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읽고 있는 책에서 저자의 강력한 추천에 이끌려 책을 읽게 되는 경우가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오늘 소개드리는 <니체극장> 역시 이런 사례에 해당되면서도 조금 특별한 점이 있습니다.

 

지난 해 ‘현대의학과 다시 만남을 모색하는 철학’이라는 제목으로 김선희교수님의 <철학자가 눈물을 흘릴 때; http://blog.joinsmsn.com/yang412/12474996>를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철학한다는 것이 바로 사유를 통하여 물음을 던지는 일이자 던져진 물음에 답을 구하는 일’이며, 철학적 탐구의 목적은 지식과 진리, 현실, 이성, 의미, 가치에 대한 통찰을 얻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철학이 우리가 살면서 느끼는 실질적인 삶의 문제와는 거리가 있다싶은 형이상학적 문제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경도되어 온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결국 철학이 일반대중의 관심에서 벗어나 전공하시는 분들만의 영역에서 고립된 학문으로 자리하게 되고, 대중에게는 ‘철학은 어려워’라는 선입관이 자연스럽게 남겨진 것 같습니다.

 

그레일링은 “의학기술이 계속 발전하면서 생명윤리학의 주제가 철학과 의학, 법학, 사회학, 공공정책, 교육 및 관련 분야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에게 갈수록 현실적으로 중요한 문제가 되고 있다.”고 했습니다.(AC 그레일링 지음, 새 인문학 사전; http://blog.joinsmsn.com/yang412/12467909).” 의학영역에서 철학적 사유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것처럼 철학영역에서 역시 마음의 철학 혹은 신경철학과 같이 인간의 심리 혹은 인간의 사고체계에 대하여 사유하는 사조가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인간의 삶에 대한 고민해결을 위한 철학적 실천방안을 구체화하려는 움직임도 있다고 합니다.

 

치료자로서의 철학자의 역할을 자리매김하기 위한 방법을 구하는 과정에서 쇼펜하우어와 니체에 주목하게 되었다는 김선희교수님의 설명을 마음 한 구석에 갈무리해두었던 모양입니다. 그 사이에도 스탠리 큐브릭감독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오프닝에 장엄미를 더해 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들으면서 역시 니체를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런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고명섭기자님의 <니체극장>을 만나게 된 인연이 특별하게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제목에 대하여 저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니체의 철학 작품들은 하나의 독특한 공간을 구성한다. 그 공간은 극장이라고 이름 붙일 만한 공간이다. 니체의 예외적인 삶이 떠받치고 그의 특별한 문체가 만들어내는 한없이 낯선 분위기의 공간, 그 극장의 무대에서 니체는 모놀로그를 한다.(23쪽)” 이런 저자의 설명을 읽으면서 KBS에서 방영하고 있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인간극장>이 떠오릅니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보통사람들의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삶을 있는 그대로 영상으로 담아내기 때문에 쉽게 공감하게 되는 프로그램입니다. 우리네 삶이라는 것이라는 것이 바로 각자가 주인공으로 연기하는 한편의 드라마인 셈이라면 니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드라마를 공연하는 극장이 바로 <니체극장>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의 책읽기는 작가의 단편적인 생각을 읽는데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요즈음 유행하는 저자와의 대화라거나 작품에 대한 저자의 생각들을 담은 다양한 매개체를 통하여 작품에 대하여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고명섭 기자님의 <니체극장>이야 말로 1844년 10월 15일 태어난 프리드리히 니체의 출생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전 생애를 뒤쫓는 한편 그가 발표한 작품에 담겨있는 그의 정신을 분석해서 담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작가는 니체의 작품과 니체가 가족 친지들과 주고받은 편지 등을 바탕으로 니체의 삶과 정신을 재구성하는 독특한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니체극장>에 담아낸 그의 삶을 정리해보면 니체의 사상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것은 기독교와 쇼펜하우어와 바그너였던 것 같습니다. 선조 대대로 루터파 신도였던 집안에서 목사가 된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외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소년시절 니체는 ‘꼬마 목사’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깊은 신앙심은 열 네 살이 되던 해에 자신의 삶을 기록한 첫 번째 글 <나의 삶>에 담겨있다고 합니다. “나는 이미 너무나 많은 것을 경험했다. 기쁨과 슬픔, 즐거운 일과 슬픈 일들을, 하지만 이 모든 것 속에서 신은 아버지가 자신의 약하고 어린 아들을 인도하듯이 안전하게 나를 이끌어 주셨다. 나는 내 마음속에서 영원히 그분의 종이 되겠다고 확고하게 결심했다.(45쪽)”

 

하지만 이 약속은 청소년기가 끝나기도 전에 깨어질 뿐만 아니라 종국에는 차라투스트라의 목소리를 빌어 신이 죽었다고 선언하기에 이릅니다. “지난 날에는 신에 대한 불경이 가장 큰 불경이었다. 그러나 신은 죽었고 그와 더불어 신에게 불경을 저지른 자들도 모두 죽어갔다.(366쪽)” 심지어는 인간이 신의 작품이 아니라 신이 인간의 작품이라고 단언하고 “저편의 또 다른 세계를 꾸며낸 것은 고통과 무능력, 그리고 더없이 극심하게 고통스러워하는 자만이 경험하는 그 덧없는 행복의 망상이었다.(368쪽)”고 그 이유를 설명하였습니다. 저편의 또 다른 세계는 사제의 주도에 따라 각자가 만들어내는 허상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두 번째는 쇼펜하우어였는데 니체는 본대학을 거쳐 라이프치히대학에서 고전문헌학을 전공하게 되는데, 라이프치히의 고서점에서 우연히 마주친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의 세계>를 읽고 빠져들게 되었는데, 당시 독일에서는 쇼펜하우어가 문화적 유행이었다고 합니다. 이 무렵 외롭게 방황하고 있던 니체는 쇼펜하우어의 세계인식, 즉 염세주의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삶이란 치유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하며, 이런 사태를 깨닫는 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부정’이다. 곧 그는 ‘의지를 부정하며’, 모든 노력을 포기하고, 욕망의 굴레에서 벗어나, 오직 삶에서 해방되기만을 기다리는 수행자나 성자가 된다.(69쪽)”고 요약하는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철학을 사상적 지주로 삼았던 니체는 10년이 지난 다음에는 이를 벗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리하르트 바그너였습니다. 1868년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 <트리스탄과 이졸데>,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 등을 들으면서 격한 감동을 느꼈는데, 특히 쇼펜하우어에 대한 두 사람의 경외심이 서로를 이끌리게 했는지도 모릅니다. 삶이 치유를 필요로 할 때 예술과 철학의 역할을 논한 쇼펜하우어를 두고 바그너는 음악의 본질을 이해하는 철학자라고 평했던 것에 니체가 공감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니체와 바그너의 이런 긴밀한 관계도 결국에는 끝이 나고 말았는데, 평생을 독신으로 외롭게 지낸 니체의 독특한 개인적 취향이 두루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결국 니체는 자신의 사유세계에 크게 영향을 미쳤던 세 가지 요소 모두를 뛰어넘으면서 독자세계를 구축하게 되었다고 한다면 틀을 뛰어넘는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고도 중요한 일인 것 같습니다.

 

바그너와의 만남이 있고나서 니체는 바젤대학에서 문헌학자로서 입지마련을 시작하게 되는데, 첫 번째 작품 <비극의 탄생>은 그의 전공이라고 할 고전문헌학적 탐구의 범주를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작품의 핵심내용은 쇼펜하우어 철학의 세계관에 입각해 그리스 비극의 본질을 해명하고, 이어 바그너예술을 그리스 비국의 부활로 해석하고 찬양하는 것으로 찬사와 비판을 동시에 받았다고 합니다. 어쩌면 자신이 숭배하는 쇼펜하우어와 바그너를 위한 헌사를 쓰다 보니 객관적인 입장을 견지하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요?

 

니체는 ‘모순의 철학자’, 2000년 서양철학사 중 ‘가장 위험한 철학자’로 일컬어지기도 합니다. 그것은 니체가 새로운 인식을 깨닫기 위하여 치열하게 사유한 결과를 공격적으로 쏟아냈기 때문에 그런 별명이 붙었을 것 같습니다. 얼마 전 모 대선후보가 인용해서 기억에 남는 다음 구절은 니체의 <즐거운 학문>에서 볼 수 있는데, 이 글에서 니체의 사유가 얼마나 치열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대지를 떠나 출항했다! 우리는 건너온 다리를 태워버렸다. 게다가 우리는 뒤에 남아있는 대지까지도 불살라버렸다! 자, 작은 배여, 조심하라. 대양이 너를 도처에서 둘러싸고 있다.(302쪽)”

 

저자가 <니체극장>을 통하여 정리하고 있는 방대한 니체의 저술에 대한 해설을 짧게 요약하는 일은 저의 일천한 인문학적 책읽기로는 결코 가능하지 않겠다는 생각에서 한 가지만 인용하려 합니다. 바로 귀족주의를 바탕으로 한 민주주의 비판입니다. 귀족주의 옹호자라는 시각에서 니체는 플라톤과 맥을 같이 한다고 하겠습니다. 니체는 자신의 조상이 폴란드의 귀족이었다고 했다는데 근거가 분명하지는 않다고 합니다.

 

저자는 “(니체는 다수의 저술을 통하여) 기독교에 반대하고, 민족주의, 민주주의, 사회주의 여성해방, 심지어는 휴머니즘과 같은 모든 근대적 이념을 부정하였다.(564쪽)”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인간의 가장 커다란 위험은 병자다. 악인이나 ‘맹수’가 아니다. 처음부터 실패한 자, 유린당한 자, 좌절한 자, 가장 약한 자들인 이 사람들은 인간 삶의 토대를 허물어버리고 삶과 인간과 우리 자신에 대한 우리의 신뢰를 의심 속으로 몰아넣고 그 신뢰에 아주 위험하게 독을 타는 자들이다.(627쪽)”라는 <도덕의 계보> 제3논문의 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니체의 이런 주장은 자유민주주의의 시각으로 보면 당연히 위험한 사상이 아닐 수 없겠습니다만, 자유, 평등, 복지, 약자에 대한 보호와 사회적 정의를 기반으로 보편적 복지를 추구하는 민주국가의 행태가 현대에 들어 더욱 치열해진 국가간 글로벌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도태되는 원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습니다. 저자가 보충자료로 인용한 박찬국의 주장을 일부 인용합니다. “국가가 개인의 노후 생활을 비롯해, 질병, 실업 등 인간다운 삶에 책임지는 경향의 주요한 동기도 니체는 그것이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인도주의에서 찾지 않고 국가가 모든 것을 해주기를 바라는 허약한 인간들의 의존 성향에서 찾을 것이다.(588쪽)”

 

앞서 인용한 <철학자가 눈물을 흘릴 때>에서 김선희교수님은 치유의 방법으로서의 철학을 논하면서 쇼펜하우어와 니체가 공히 인간의 고통을 철학의 출발점으로 삼고 해답을 찾고자 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특히 니체의 경우 <우상의 황혼>으로부터, 인간이 창조한 우상을 신봉함으로써 스스로를 경멸하게 되므로 우리의 삶에서 우상의 흔적을 지워내야 할 것이며, 그로써 인간 내부에 있는 자기 치유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데, 여기에는 자기긍정이라는 접근법이 효율적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니체극장>을 통해서 만난 니체가 절망으로 나락에 떨어진 인간을 위하여 긍정적인 조언을 주었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런 경향은 니체가 역사상 그 어떤 철학자보다 넓은 사상의 스펙트럼를 가지고 있고, 그의 저서는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극단적일 정도로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결국은 그의 작품을 직접 읽고 나름대로의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겠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니체가 남긴 다양한 자료를 토대로 구축한 그의 삶과 사상의 줄기를 정리한 <니체극장>이야말로 니체의 정신세계에 들어가는 안내서로 사용하기에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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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들 - 500년 미술사와 미술 시장의 은밀한 뒷이야기
피에르 코르네트 드 생 시르 외 지음, 김주경 옮김 / 시공아트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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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작품에 대하여 잘 알지는 못하지만 외국에 출장을 가게 되면 그 곳에 있는 미술관은 꼭 챙겨서 방문하곤 합니다. 이런 일을 나름대로는 문화적 사치라고 부릅니다만, 그래도 어디서라도 제가 감상했던 그림을 대하게 되면 반갑기도 합니다.

 

시공아트에서 최근 출간한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들>을 감상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이 책은 프랑스 파리에 있는 팔레 드 도쿄의 관장으로 있는 피에르 코르네트 드 생 시르와 그의 아들 아르노 코르네트 드 생 시르가 같이 만들었다고 합니다. 피에르는 프랑스 뿐 아니라 세계 미술시장에서 큰 영향력을 가진 경매인이자 수집가이고, 아르노는 아버지와 함께 경매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책에 수록되어 있는 100여점의 미술작품들은 모두 경매에 나왔던 작품들이고 거의 대부분이 개인컬렉션에 포함된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유명한 화가의 작품이면서도 미술관에서 본 기억이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들을 경매가 순서로 늘어놓으면 피카소의 작품이 무려 17점이나 포함되어 있고, 베이컨이 11점, 크림트가 7점, 모네, 모딜리아니, 반 고흐, 세잔 그리고 워홀이 각각 5점씩으로 이들 8명의 예술가 작품이 무려 60점이나 된다고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들>을 모아놓은 지상 미술관에서는 예술가 당 한 두점의 작품만을 선정하여 독자들이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고 합니다.

 

작품들은 시대별로 고딕 미술-근세 미술, 인상주의 미술, 근대 미술, 현대 미술 등 네 그룹으로 나뉘어 수록되어 있습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여기 수록된 작품들이 대부분 개인컬렉션인 까닭에 저도 처음 보는 작품들이 대부분입니다. 다만 근세에서 인상주의를 거쳐 근대기에 활동한 예술가들의 작품들은 그들의 화풍을 잘 알고 있는 탓인지 마치 이미 잘 알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지상미술관이라고 불러도 될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들>은 검정색 하드커버를 채택하여 품격을 갖추고 있고, 두터운 아트지에 채색이 섬세하여 미술관에서 그림을 감상하는 것만큼이나 밀착해서 그림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일반 미술관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작품에 대한 해설을 그림의 반대쪽에 수록하고 있는 점도 지상미술관만이 갖출 수 있는 강점입니다. 그림 설명에는 작가와 작품에 관한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을 뿐 아니라 경매에 얽힌 특별한 사연이 소개되기도 하여 다른 도록과 차별되는 점이라고 하겠습니다.

 

경매를 통하여 개인의 손으로 들어간 작품들은 황당한 상황을 맞는 경우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이 책에 수록된 반 고흐의 <의사 가셰의 초상>과 르누아르의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를 낙찰받은 일본의 제지업계의 대부호 료에이 사이토는 자신이 죽으면 두 작품을 불태워서 자기 시신과 함께 매장시키겠다고 공언하여 예술계를 경악케했다고 합니다. 세상에 이런 오만이 어디있습니까? 다행이 귀물(貴物)은 스스로를 지키는 힘이 있는 모양입니다. 사이토의 사업이 고전을 면치 못하게 되면서 다시 경매시장에 나와 구매가격보다 훨씬 낮은 가격으로 팔려갔다고 합니다. 주인이 주인다워야 귀물을 지킬 수 있는 것이겠지요.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의 설명에는 빠져 있습니다만, 제가 듣기로는 이 작품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의 시선이 모두 제각각인 점이 특징이라고 합니다.

 

물론 이미 유명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어 경매시장에 나올 수 없는 작품들이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작품들보다 훨씬 더 비쌀 수도 있기 때문에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그림들이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들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들>에 담은 그림들이 얼마나 비싼 그림인가 하는 것보다는 쉽게 만날 수 없는 작품들이라는 점에 더 관심이 가는 것 같습니다. 여기 이 가상의 미술관을 통해서 쉽게 만날 수 없는 세기의 명화들을 즐기고 가까이 소장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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