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정의를 말하다 - 셰익스피어 희곡에서 배우는 정의
켄지 요시노 지음, 김수림 옮김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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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간의 융합이 화두가 되고 있는 시대에서 법학과 문학 역시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는 무언가를 발견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학의 전통적인 분위기는 “법조인이라면 무릇 ‘가공의 이야기에서 배우는 정의’ 대신 ‘있는 그대로의 정의’를 논해야 한다는 것.(9쪽)”인 모양입니다. 사실 법이란 대다수의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판결을 통해서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목표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욕대학교 법과대학의 켄지 요시노교수님은 법과 문학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역할을 하고 계시는 대표적 인물이라고 합니다. 자신이 가진 생각을 설파할 최적인 ‘힘의 언어’, 즉 법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하였지만, 젊어서는 영문학교수가 천직이라는 생각을 가질 정도로 열혈문학청년이었던 영향이 남아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아직도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단편적으로 밖에 접해보지 않았습니다만, 셰익스피어의 광팬을 자처하는 저자는 “셰익스피어의 작품 세계는 삼라만상을 망라하고 있다. 그곳에는 내가 아는 모든 언어, 내가 만나 본 모든 인간유형, 내가 해 본 모든 생각이 빠짐없이 담겨 있다.(12쪽)”고 설파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셰익스피어가 현대에도 풀지 못한 수많은 정의에 관한 담론들을 그 시절에 고민했고, 자신의 생각을 온 세상에 널리 전했다(14쪽)”는 것입니다. 바로 그래서 셰익스피어의 작품세계를 천착함으로써 ‘가공의 이야기에서 배우는 정의’를 탐구한 결과를 이 책 <셰익스피어, 정의를 말하다>에 담아내게 된 것입니다.

 

희곡은 소설과 같은 다른 문학작품과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 즉, 작가가 생각하는 주제가 희곡의 형태로 독자를 만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희곡이 연극이라는 형태로 만들어져 관객에게 전달되는 경우에는 작가가 생각하는 세계는 연출 작업을 통하여 해석되고, 그 해석을 배우라는 객체의 표현을 통하여 전달되기 때문에 작가가 처음 생각했던 바가 변형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말을 하지 않고 몸짓을 통하여 뜻을 전달하는 게임처럼 원래의 말이 끝에 가서는 전혀 엉뚱하게 변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지난 년말 극단 목화가 오태석 선생님의 재해석으로 무대에 올렸던 <템페스트; http://blog.joinsmsn.com/yang412/12493038>의 공연 느낌을 참고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저자는 <티투스 안드로니쿠스>, <베니스의 상인>, <자에는 자로>, <오셀로>, <헨리아드>, <맥베스>, <햄릿>, <리어왕>, <폭풍우> 등 모두 여덟 편의 셰익스피어 희곡에 담긴 정의를 논하고 있습니다. 특히 <티투스 안드로니쿠스>, <베니스의 상인>, <자에는 자로>, <오셀로>, <헨리아드>에서는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담긴 정의의 실체를 논하면서 동시에 우리 시대에 있었던 인물과 사건을 비교해보고 있어 읽는 재미를 더하고 있습니다.

 

개인 사이에서 벌어진 사소한 사건이 확대되어 집안 사이에 대를 이어 죽음의 복수가 이어지는 것이 정의이던 시절이 있습니다(멜라니 킹 지음, 거의 모든 죽음의 역사; http://blog.joinsmsn.com/yang412/12436588). 셰익스피어의 비극 <티수스 안드로니쿠스>에서 반복되는 복수의 실체를 논하면서 9.11 사건 이후 미국이 벌인 아프간전쟁이 과연 정의라 할 수 있는가는 논하고 있는 점이다.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하는 포샤의 명쾌한 법해석과 현란한 말의 성찬이 과연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타당한 것인지를 논하면서 클린턴이 섹스스캔들에서 매끄럽게 빠져나가는 모습을 비교한 점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리고 2009년 소니아 소토마요르 부연방대법관의 인준청문회와 연관지어 <자에는 자로>를 비교하여 판사의 자질을 논하면서 거론하는 ‘지혜로운 판결의 비결’에 주목하였습니다. “고대부터 지금까지 존재하는 모든 판결은 모두 다음 세 종류의 판결로 분류할 수 있다. 한쪽의 처지를 과도하게 공감한 나머지 법치주의를 훼손한 판결, 법치주의의 확립, 즉 ‘법문의 자구’에 충실한 ‘엄격한 해석’에 집착한 나머지 한쪽에게는 너무 가혹한 처분을 내린 판결, 마지막으로 사안이 법치주의의 관철과 감정이입 그 어느 것으로도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로 골치 아픈 상황이라는 것을 통감하고 내린 판결, 이 세 종류의 판결이 그것이다.(116쪽)” 결국 법의 엄정한 집행과 감정이입이라는 두 가지 상충하는 가치는, 이 어려운 임무를 영원히 풀 수 없는 숙제로 만들어 버렸다는 것인데 결국 해답은 중용(中庸)의 도에 있다는 점을 깨우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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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치는 뇌 - 당신의 뇌가 정보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법
토르켈 클링베르그 지음, 한태영 옮김, 정갑수 감수 / 윌컴퍼니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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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도가 지나침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면 컵에 물을 따를 때처럼 용량이 정해진 경우에는 금세 이해가 됩니다만, 인간의 능력과 같이 딱 떨어지는 적절한 한계가 어딘지 분명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 적절한 한계보다 조금씩 더 활동을 해온 것이 오늘날의 인간의 모습이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과거에 살던 사람들과 비교해보면 엄청난 분량의 정보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렇게 쏟아져 들어오는 정보를 처리하기 위하여 우리의 뇌는 어떻게 반응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답을 인지신경과학을 전공한 토르켈 크링베그그교수의 <넘치는 뇌>에서 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외부로부터 들어온 다양한 자극이 기억으로 저장되는 과정은 아직도 완전하게 밝혀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뇌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신경세포와 신경세포를 연결하는 신경섬유망이 복잡하고 얽혀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생각같아서는 수없이 많은 작은 방에 기억이 차곡차곡 저장될 것 같지만, 이런 방은 볼 수 없습니다. 이 책을 감수하신 정갑수박사는 “특정한 정보는 하나의 세포에 저장되기보다는 세포들의 집단에 특별한 패턴으로 저장된다. (…) 하나의 기억이란 하나의 패턴인 것이다.(5쪽)”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인류의 조상 크로마뇽인과 비교가 되지 않는 분량의 정보를 받아들이는 현대인이 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하여 통제주의력, 자극주의력 그리고 각성이라는 세 가지 주의력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외부의 자극에 주의를 집중하지 않으면 이를 쉽게 잊어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부주의가 건망증의 가장 흔한 원인이며, 대니얼 샥터는 <기억의 일곱가지 죄악; http://blog.joinsmsn.com/yang412/12562617>의 하나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자극이 우리의 뇌에 기억으로 갈무리되려면 작업기억의 형태로 일시적으로 저장된다고 합니다. 대개는 몇 초 동안 정보를 기억하는 것인데, 시각정보 저장을 담당하는 시공간메모장, 구두정보 저장을 담당하는 음운루프, 그리고 이 둘을 조율하는 중심요소인 중앙관리자가 있다고 합니다.(69쪽) 그밖에도 작업기억 속에 일화정보를 저장하는 임시완충기라는 작업기억 저장소도 있다고 합니다. 이 작업기억은 용량이 제한되어 있지만 장기 기억은 무한용량이라는 것입니다. 저자는 장기기억과 대비되는 단기기억과 작업기억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요즈음 젊은이들은 한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하는 멀티태스킹 능력이 옛날 사람들보다 뛰어난 것 같습니다. 이는 훈련을 통해서 가능해진 것이라 생각됩니다. 멀티태스킹 능력은 작업기억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운전하면서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것과 같은 경우가 해당이 되겠는데, 실험에 따르면 운전 중에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일은 혈중알코올농도가 법정한도를 넘어선 상태와 비교될 정도로 주의력을 분산시키는 효과를 가지고 있어 매우 위험하다고 합니다. 앞서 요즘 젊은이들의 멀티태스킹 능력을 말씀드렸습니다만, 작업기억은 훈련을 통하여 향상될 수 있음이 입증되었다고 합니다.

 

인지기능에 관한 훈련에 관한 내용도 있습니다. 즉, 치매를 예방할 수 있는 두뇌훈련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독서, 체스, 악기연주, 춤과 같이 지적으로 도전적인 활동을 일주일에 2~3회 정도로 하는 것이 치매발병위험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전거타기, 걷기, 골프 등과 같은 신체운동은 정신건강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이를 기억으로 저장하기 위한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서는 정보를 수용하기 위하여 주변환경을 통제하고 쉽게 몰입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하는데, 명상수련이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정리를 해보면,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에 노출되어 있는 우리들의 뇌를 훈련시켜 기억용량을 늘릴 수 있다는 내용으로 압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문용어들이 많아 다소 이해가 어려운 점이 아쉬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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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 가슴으로 말하라 - 손님을 대하는 의사인가 사람을 돌보는 의사인가
황진복 지음 / 이담북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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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역사, 철학을 아우르는 인문학을 의학의 교과과정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북소리] 코너를 통하여 다양한 인문학 서적들을 읽고 얻은 느낌을 소개해온 것처럼, 책읽기를 통하여 무언가 마음에 남는 것이 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싶지만 한발 더 나아가 의학과 연관을 지어 생각해볼 수 있다면 금상첨화가 될 것 같습니다.

 

황진복교수님의 <의학, 가슴으로 말하라>는 바로 그런 인문학공부의 좋은 예가 될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좋은 의사’가 되기를 꿈꾸지만 자신과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없어 앞날에 대한 안목이 좁아질 수밖에 없는 의학도를 위한 자기계발강의록입니다. (…) 어딘가에 숨어있을 능력을 찾아 이를 흔들어 깨우고, 지나치게 웃자란 오해와 편견을 가지 쳐 없애 당신이 보다 ‘좋은 의사’가 되도록 도와주는 것이 이 책을 집필한 목적입니다.(11쪽)” 라고 적으신 집필의도에 공감하게 됩니다.

 

제가 의과대학에 들어갈 때와는 달리 수능시험에서 상위권 성적으로 얻은 학생들이 의과대학으로 몰리고 있는 현상이 꽤 오래 지속되고 있습니다. 물론 머리가 좋은 분들이 연구와 진료 등의 의학분야에서 들어오셔서 뛰어난 성과를 이루어내면 우리나라의 의학수준이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수재들이 모두 의학에 쏠리는 현상은 바람직한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의학은 수재형보다는 근면성실하고 마음이 따듯한 사람이 더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황진복교수님 역시 환자를 가슴으로 대하는 의사가 ‘좋은 의사’라고 말씀하십니다.

 

인문학 공부를 해야 한다는 요즈음 분위기에 대하여 이미 졸업한 의사들이나 의과대학생들 모두 시간적 여유가 없다고 볼멘소리를 한다고 합니다. 빠르게 발전하는 의학이 홍수처럼 쏟아내는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기도 벅차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이 순간 잠시 멈추어 서서 마음의 평안을 준비하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고 저자는 조언을 하고 있습니다. <의학, 가슴으로 말하라>는 인문학적 감수성으로 의학에 접근하는 길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앞부분에서는 근대의학이 시작될 무렵 있었던 몇 가지 에피소드들을 살펴 의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일반으로부터 비판적인 시선을 받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25세 여자 백혈병으로 사망, 오전 5시 45분’이라는 글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마치 사망선고를 듣는 느낌입니다. 자신의 환자가 사망했다는 사실을 가족들에게 전하는 일은 어느 의사에게나 마음이 무거운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의사는 ‘의사’라는 이유로 ‘사람’이 알아야 할 환자의 스토리에 너무 무심했던 것은 아닐까?(23쪽)”라는 저자의 질문이 아프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보니 백혈병으로 사망한 25에 여자는 에릭 시걸의 <러브 스토리>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됩니다.

 

‘시체도둑, 야반도주, 아동노동’이라는 제목의 글은 의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뼈아픈 자기반성이라 하겠습니다. 요즈음에는 의학발전에 기여하겠다는 숭고한 정신으로 시신을 기증하신 분들 덕분에 기초의학의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만, 과거에는 장례를 치른 시체를 훔쳐서 해부를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멜라니 킹의 <거의 모든 죽음의 역사; http://blog.joinsmsn.com/yang412/12436588>에서 시체도둑에 대한 이야기를 더 자세히 읽을 수 있습니다. 중세에 사체가 질병을 치료하는데 효험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사체를 훔쳐 약제로 팔았다는 이야기도 다루고 있는데, 이런 황당사건이 현대의학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 요즘 우리사회에서 은밀하게 일어나고 있다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의학교육에서 인문학 교육이 빠지게 된 것은 일제강점기에 들어온 현대의학을 교육하면서 조선인의 정신적 계몽이나 진보를 일깨울 인문학 교육을 배제한 것이 시초인데, 조선인은 단순 지식만을 배워 일상에서 보조하는 역할에 그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는 안덕선교수님의 설명이 설득력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의사가 차갑고 권위적인 모습으로 변모하게 되었는데,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는 견제장치가 미흡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매뉴얼 월러스틴이 “인문학이라는 비판자를 배제하자 과학과 기술의 힘은 더욱 거세졌으나 점점 그들의 속성을 빼닮아 차가워지고, 대학이 양산한 사람들은 기술자에 불과하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되었다.(48쪽)”고 설파한 것처럼 과학적 방법론을 차용하여 눈부신 발전을 거듭한 의학 역시 과학의 행보를 뒤쫓게 된 것입니다. 즉 환자로부터 얻는 정보의 비중은 점차 낮아지고 환자로부터 얻는 숫자정보에 의존하는 진료가 되다보니 환자의 교감이 줄어들게 된 것입니다.

 

저자가 인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하다보니 의학의 본질에 대하여 다소 비판적 시각을 가지는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만, 저자의 해석에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눈에 띕니다. 예를 들면 현재 사람의 수명이 고대 그리스 시대에 비하면 거의 두 배나 길어졌는데, 인간의 평균수명을 늘리는데 의학이 기여한 바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주장(50쪽)은 지나쳐 보입니다. 근대에 들어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하여 농업 및 유통의 혁명으로 먹거리가 풍부해진 것이 평균수명의 연장에 기여한 바가 의학의 기여보다 획기적이었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있으나, 항생제의 개발로 감염증을 치료할 수 있게 되었고, 소독법 및 분만술의 발전으로 인하여 모성사망과 신생아 사망을 극적으로 줄인 것은 분명 의학이 인간의 평균수명을 획기적으로 늘린데 기여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밖에도 불치병이라 여겼던 암질환 가운데 상당수를 만성질환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만든 것 역시 평균수명의 늘린데 대한 의학의 기여라고 하겠습니다.

 

의학이 발전해온 과정을 보면 과학의 한 분야라는 사실에 대하여 찬반양론이 있으나 분명 응용과학의 범주에 포함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과학의 논리만으로는 풀리지 않는 한계가 있으니 그 이유는 과학과는 달리 인간이 그 대상이 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의학이 과학분야에서의 획기적인 발전에 힘입어 현재의 위치에 도달하기까지 환자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점차 빛을 잃어온 것도 사실입니다. 따라서 저자는 바로 지금이 변해야 할 시점이라는 점을 깨우치고 있습니다. 어쩌면 과거에도 혁신을 통해 변화해왔지만 변화의 폭이 그리 크지 않았기 때문에 쉽게 적응할 수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변화의 폭도 점차 커지고 있어 거부하는 반응이 생기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혁신의 부작용 사례로 저자가 인용하고 있는 병원진료의 적정성평가에 관한 내용을 심각하게 읽었습니다. 제가 하고 있는 업무가 바로 병원진료의 적정성평가이기 때문입니다. 병원에서의 환자사망률을 공개하게 되자 병원들이 사망률을 낮추기 위해 상태가 위중한 중환자를 진료하기 않는 식으로 대응하기 시작했고, 병원의 진료의 질을 높이려는 의도를 가지고 혁신적으로 시작한 적정성평가는 진료의 차별성이 없는 병원진료의 하향평준화를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옮겨보면, “평가는 진료 프로토콜을 표준화된 방식으로 유도하여 의료과실을 줄일 수 있는 여건 조성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각 병원의 차별성을 없애고 진취적인 진료를 봉쇄해버리는 부작용을 낳은 것이다.(89쪽)”

 

하지만 적정성평가의 기본틀에 대하여 다소 오해하고 계신 점이 있는 것 같다는 말씀을 드리게 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수술사망률을 공개하면서 병원계에 커다란 파장이 일었던 적이 있습니다. 평가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중환자진료에 소홀함이 없도록 중환자를 진료하는 병원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적절한 보정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치료법을 적용하는 경우에는 적정성평가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어 의학발전에 장애요인이 될 수도 있다는 오해가 없으면 합니다. 다만 표준프로토콜을 적용한다는 점은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이 제시한 표준치료가 아닌 근거가 분명하지 않은 치료법을 차별된 치료라는 주장이 과연 환자에게 이익이 되는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자가 1부에서 의학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인문학적 시각에서 조명했다면, 2부에서는 인문학적 접근을 통하여 ‘좋은 의사’가 되는 방법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수재보다는 근면성실한 사람이 환자의 아픔을 같이하는 좋은 의사가 될 수 있다는 말씀을 앞서도 드렸습니다만, 저자 역시 의사가 되는데 필요한 요소를 의학지능이라고 부른다면 의학지능은 다중지능의 요소들로 구성되어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자기성찰지능, 대인친화지능, 논리수학지능의 논리지능, 언어지능은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것이며, 논리수학지능의 수학지능, 신체운동지능, 공간지능, 실존지능 등은 활용가능성이 높은 지능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좋은 의사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의학지식은 갖추어야 하는 기본적인 지식이며, 여기에 다양한 능력을 더하여야 한다는 것인데, 그 종류가 만만치 않은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의학지식의 습득에만 매달리다 보면 의사로서의 갖추어야 할 인성을 연마하지 못한 채 의업에 나서게 될 수밖에 없고 이런 의사들이 사회적으로 커다란 파장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저자는 마지막 주제를 소통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일반이 잘 모르는 의학지식의 권위에 기대어 환자들에게 일방적으로 대해도 별다른 문제가 생기지 않았는지 모르겠지만, 특히 건강과 관련된 정보에는 일반인의 관심이 크기 때문에 건강정보가 가장 빠르게 대중화되어 왔습니다. 그 결과 요즈음에는 의학정보의 불균형이 많이 개선되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의학지식의 권위는 종이호랑이가 된지 오래되었다고 하겠습니다. 이런 상황은 결국은 진심을 담은 소통이 중요한 역할을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저자는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의료과오로 소송을 당하는 의사의 스타일을 구체적으로 예시하면서 참고하도록 귀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칭찬이 고래를 춤추게 하는 것처럼 적절한 사과는 슬픔에 잠겨 있는 환자가족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수 있다는 점을 소개하는 다양한 책자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책으로는 정재승과 김호교수의 <쿨하게 사과하라; http://blog.joinsmsn.com/yang412/12147514>입니다. 환자를 진료하는 과정에서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맞는 불행한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가족들은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의사 자신이 특별한 과오가 없다하여 사무적으로 대하다 보면 상황이 꼬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가슴으로 환자와 가족들을 대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이 왜 있는지 생각해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의료과오가 있는 경우에도 때를 놓치지 않는 진심을 담은 사과는 상황을 부드럽게 이끈다는 것을 <쿨하게 사과하라>의 ‘쏘리웍스! 사과는 반드시 먹힌다’에 적고 있습니다. 저자는 환자를 진료하는데 있어서도 원활한 소통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를 제롬 그루프먼의 <닥터스 씽킹; http://blog.joinsmsn.com/yang412/8719292>을 인용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소통이라 함은 의사는 열린 마음으로 환자를 대할 것이며, 환자 역시 자신의 질환에 관한 모든 정보를 의사에게 제공하고 의사의 관심을 끌어들이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리해보면, 다양한 영역에 걸친 저자의 방대한 책읽기에 놀라게 되고, 책을 읽는데 그치지 않고 책에서 얻은 주옥같은 내용을 엮어서 의학을 공부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 참고서로 꾸며낸 저자의 글쓰기에도 역시 놀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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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성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1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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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모든 소설은 이전에 발표한 소설 속에서 태어난다.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에 나오는 젊은이들에서 <고요한 집>이 탄생했고, <고요한 집>에 나오는 파룩에게서 <하얀성>이 나왔다.”라고 오르한 파묵은 말했다고 합니다만, 엄밀하게 말하면 고요한 집에 등장하는 파룩이 <하얀성>의 배경을 설명하는 역할을 맡고 있어 <고요한 집; http://blog.joinsmsn.com/yang412/12957187>과 <하얀성>이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하기는 어려울 것같습니다. 오히려 첫 작품인 <제브데트씨와 아들들>을 완성하고서 구상을 시작했다고 <하얀성>의 작품해설에서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구상을 <고요한 집>에 일부 반영한 것이라 하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하얀성>은 그의 엄청난 독서편력의 결과가 집대성되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예를 들면, <하얀성>에는 이야기를 끌고 가는 베네치아 학자 출신 노예, 그리고 그와 닮은 터키 학자 호자가 등장하는데, 이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분신>을 비롯하여 쌍둥이가 등장하는 문학작품을 참고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야기의 끝부분에서 오스만인 호자는 나의 고향 베네치아로 건너가고 나는 호자로 변신하여 터키에 잔류하는 반전을 보이는데, 저자가 이런 반전을 유도한 이유는 오랜 세월을 통한 담론을 통하여 두 사람이 서로의 세계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해석, 즉 동서양이 서로 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저자의 이런 문학적 경향은 2006년 스웨덴 한림원이 파묵을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하면서, “파묵은 고향인 이스탄블의 음울한 영혼을 탐색해 가는 과정에서 문화 간 충돌과 복잡함에 대한 새로운 상징을 발견했다.(216쪽)”고 한데서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밖에도 아드난 아드와르의 <오스만 터키의 과학>, 아서 케스틀러의 <몽유병자들>, 쉬헤일 윈베르의 <이스탄블 천문대> 등의 책에서 얻은 영감을 <하얀성>에 녹여냈다는 것입니다. 특히 몽유병자에서의 독일 천문학자 케플러의 해석 ‘나는 왜 나인가?’는 <하얀성>에 등장하는 나와 호자가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베네치아에서 나폴리로 향하던 중 터키함대의 공격을 받아 포로가 되어 터키로 끌려간 주인공은 평소 읽어둔 의학지식을 활용하여 의학자 행세를 하면서 노역을 피하였을 뿐 아니라 터키의 학자 호자의 노예로 주어지면서 구속이 풀리고 호자와 함께 천문학, 생물학, 점성술, 의학, 무기제조 등 과학전반에 걸쳐 토론하고 연구를 계속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파디샤를 중심으로 한 파샤들 사이의 권력다툼이 그려지고 있고, 두 사람 역시 파디샤의 관심을 끌어 연구활동에 필요한 재정지원을 받으려 노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가 멸망하면서 그리스의 학문적 전통이 로마로 건너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오히려 터키 등 중동지방으로 많은 학문적 성과가 넘겨져 번역되어 연구되고 발전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파묵의 작품 곳곳에서 읽을 수 있는 유럽문화를 동경하는 터키의 분위기가 사실 이해되지 않는 점도 있습니다.

 

읽어가면서 작품의 시대적 배경이 17세기의 중반으로 되어 있음에도 흑사병이 퍼져서 터키사회가 혼란에 빠지는 장면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다음 백과사전에 따르면 “중국과 아시아 내륙에서 유래한 흑사병은 1347년 킵차크 군대가 크림에서 제노바 교역소를 포위하고, 페스트 환자의 시체들을 노포(弩砲)로 도시를 향해 쏘아보냄으로써 유럽인들에게 전파되었다. 흑사병은 지중해 항구들로부터 퍼져나가 1347년 시칠리아, 1348년 북아프리카·이탈리아·스페인·영국·프랑스, 1349년 오스트리아, 헝가리, 스위스, 독일, 베넬룩스 3국, 1350년 스칸디나비아와 발트 해의 국가들에 영향을 끼쳤다. 흑사병은 1361~63, 1369~71, 1374~75, 1390, 1400, 1664~65년에 다시 유행”했다고 합니다. 14세기 전반에 걸쳐 유럽을 휩쓴 흑사병으로 약 2,500만명이 죽었다는 것이고, 영국의 경우 1300년과 비교하면 1400면에는 인구가 절반에 불과하였다니 유럽인들에게 흑사병은 공포 그 자체였을 것 같습니다.

 

이 가운데 1664년의 유행은 런던을 중심으로 영국에 유행한 것이기 때문에 17세기 중반에 터키에서 흑사병이 대유행을 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다만 시대적 배경에 대하여 17세기 중반으로 했지만 그 전후에 있었던 작은 삶의 단편들도 반영했다고 한 저자의 설명을 참고하면 이해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얀성’이라는 제목에 대하여, 파디샤는 폴란드를 공략하기 위하여 출전하면서 호자가 개발한 무기(아마도 장갑차로 보입니다)를 가지고 가는데 역시 날씨와 전장의 상황 때문에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전투에 실패하고 마는데, 당시 공략하던 성이 바로 하얀색이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성은 높은 언덕 위에 있었다. 깃발이 걸린 탑에 지는 해의 희미한 붉은빛이 반영되고 있었다. 그러나 성은 하얀색이었다. 새하얗고 아름다웠다. 어쩐지 이렇게 아름답고 도달하지 못할 존재는 꿈에서만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180쪽)” 결국 하얀성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곳을 의미하는 것, 나아가 동서양이 만날 수 있는 곳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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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행정실무 - 저탄소 녹색도시구축 방법과 사례
이순영.신범석 지음 / 이담북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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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1일 국제녹색기구기금(Green Climate Fund; GCF)의 사무국을 인천 송도 유치가 확정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녹색기후기금은 UN의 산하기관으로, 전세계적 과제인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막대한 재원을 총괄하는 기구입니다. 녹색기후기금은 자체 자금조성이 어려운 개발도상국이 온실가스를 감축하고 기후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하여 선진국이 UN 기후변화협약(UNFCCC)을 중심으로 만든 기후변화특화기금을 지칭합니다. 2013년부터 2020년까지 연간 1,000억 달러, 총 8,000억 달러(904조원)의 기금을 조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이러한 기금의 규모는 국제통화기금(IMF)의 8,450억 달러에 버금가는 규모로서 사무국을 우리나라에 유치하게 된 것은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이 그만큼 높아진 것을 나타내는 것이며, 그동안 정부가 녹색정책을 꾸준하게 개발하고 이를 발전시켜온 노력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물이나 공기의 고마움을 깨닫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인간문명이 급속하게 발전하게 된 근대들어 화석연료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된 까닭에 자연이 파괴되고 온실가스가 급속하게 늘어나 일어나고 있는 지구온난화 등으로 병들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이런 상황을 지구의 위기상황으로 규정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으로의 방향을 전환할 필요성이 대두된 것입니다.

 

녹색교육원이 기획하고 이순영박사님과 신범석 박사님이 쓴 <그린행정실무>에서는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이해하고 관련분야에서의 국내외 추진현황을 담고 있어 그린행정을 담당하고 있는 분들에게 좋은 참고자료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자들에 따르면 기후관련 문제는 선진국들 사이에서 논의되는 것으로 우리 형편에 논의의 장에 진입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생각에 머물고 있던 것인데, 지난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저탄소 녹색성장”을 국가비전으로 선포하면서부터 주목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저자들이 소개하는 독일의 프라이부르크(Freiburg), 스웨덴의 하마비 허스타드(Hammarby Sjostad), 영국의 베드제드(BedZED), 일본의 쓰쿠바 등의 해외사례를 읽다보면 녹색산업은 주민의 실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이를 통해서 주민의 생활환경이 획기적으로 개선되는 효과도 거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부가 녹색성장을 화두로 내세우면서 녹색성장위원회의 ‘생생도시’, 국토해양부의 ‘U-City’, 환경부의 ‘저탄소 그린시티’, 지식경제부의 ‘온실가스감축정책’ 등이 추진되고 있고, 강릉시에서는 ‘저탄소 그린시티 국가시범사업’을, 서울 성동구에서는 ‘저탄소 그린시티 마스터플랜’을, 경남 창원시에서는 ‘자전거도시 조성’을 추진하는 등 주민친화적인 그린행정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고 합니다.

이 책의 주제가 되고 있는 그린행정은 회색개발 위주에서 벗어나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도시의 생태계를 회복시키고자 하는 실천활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회색개발의 예를 들면, 콘크리트 및 아스팔트로 대변되는 도시개발정책, 화석연료중심으로 발전해온 에너지정책, 교통량증가를 도로건설로 대응해온 교통정책, 폐기물 매립 혹은 소각 위주로 전개해온 폐자원정책 등입니다. 이러한 정책들은 시민참여가 배제된 가운데 추진되어 온 것으로 그 한계에 도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저자들은 다양한 그린행정의 사례를 소개하고, 핵심전략 추진 로드맵, 핵심 전략별 재원조달 방안을 비롯하여 평가지표, 제도화를 위한 조례 제정 등을 함께 제시하고 있어 일선에서 그린행정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분들에게 좋은 참고서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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