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투자은행 1
구로키 료 지음, 최고은 옮김 / 펄프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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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금융분야 역시 빠르고 복잡하게 발전하고 있어 수박 겉핥기식으로 이해하는 수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년전에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의 버블이 깨지면서 일어난 금융위기가 미국경제에 엄청난 타격을 가하고 세계경제에까지 영향을 미쳤는데, 그 효과는 지금도 남아 있다고 합니다. 일본 역시 세기말 일었던 버블경제가 무너진 여파가 여전히 남아 경제력이 예전만 못하다고 합니다.

 

일본작가 구로키 료의 <거대투자은행>은 1980년대 중반부터 미국 월 스트리트의 금융가와 일본 금융계를 무대로 대기업과 금융기관이 얽혀있는 투자와 기업합병이 일어나는 과정을 기본 줄거리로 진행되는 금융맨들의 숨가쁜 하루하루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은행, 증권 회사, 종합상사에 23년간 근무하며 국제 협조 융자, 프로젝트 파이낸스, 무역 금융, 항공 파이낸스 등에 종사한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금융현장을 실감나게 그리고 있어 두터운 볼륨에도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금융분야의 전문용어들이 많이 나오지만 독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충분한 설명을 덧붙이고 있어 읽는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제목이기도 한 투자은행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투자은행의 업무는 전통적 투자은행 업무와 세일즈 및 트레이딩,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전통적인 투자은행 업무란 기업고객의 재무상태를 파악해 어떤 타이밍에 어떤 투자를 하면 좋을지 다양하게 조언하고, 자금조달(주로 증권발행)와 인수합병을 하는 것이다.(93쪽)”

 

미국의 금융시스템이 세계를 지배하는 이유를 저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기도 합니다. “최고 수준의 급여로 끌어모은 동부 아이비리그 중에서도 손꼽히는 인재들이 보스의 호령 한 마디에 일치단결해 거래성사를 위해 온 힘을 기울였다. 거래 성사를 위해 사내의 모든 인적, 물적 자원이 최고효율로 투입되는 기업문화와 조직, 일본의 금융기관은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리라.(108쪽)”

 

연말에 성과를 나누는 것을 ‘그해의 사냥감을 배분하는 투자은행의 직원들은 마치 수렵민족 같다.’고 표현하는 것처럼 저자는 아주 흥미로운 비유를 적절하게 사용하기 때문에 읽는 재미가 더한 것 같습니다. 로버트 드니로와 메릴 스티립이 주연한 영화 <폴링 인 러브>에 나오는 장면을 찍은 카페에도 가보는 것처럼 독자들은 저자의 안내에 따라서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다양한 나라들을 같이 여행할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금융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수익을 내기 위하여 앞뒤 가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금도(襟度)를 지키는 품위를 엿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M&A 자문의 본래 역할은 앞뒤 가리지 않고 거래를 성사시키는 것이 아니라 고객에게 최선의 조언을 하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한달에 10만 달러 이상의 자문료를 받는 것(442쪽)이라고 하는 장면이나 증권투자에 경험이 별로 없는 기관에 복잡한 형태의 파생상품의 판매를 거절하는 장면(447쪽)의 경우입니다.

 

생소하다 싶은 금융분야의 현장을 다루는 소설입니다만, 거품경제, 걸프전, 9.11 사건 등 실제 있었던 역사적 사건들이 배경으로 등장하고 있어 현실감을 더해주는 것 같습니다. 일본의 도도은행을 퇴사하고 뉴욕의 투자은행 모건 스펜서로 자리를 옮기는 주인공 가쓰라기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게 됩니다만, 살로먼의 류진 소이치와 후지사키 등이 적절하게 등장해서 분위기를 전환시키거나 긴장을 높이고 있습니다. 650쪽에 달하는 1권을 마치고서 700쪽이 넘는 2권에 바로 도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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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하루 - 실록과 사관이 미처 쓰지 못한 비밀의 역사 하루 시리즈
이한우 지음 / 김영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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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대통령선거가 마지막 열기를 더하고 있습니다. 삼권분리를 근간으로 하는 민주주의국가에서도 대통령이라면 막강한 권한을 가지는 것이라서인지 옛날 왕조의 왕이 가지는 권한과 비교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왕손으로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막강한 권한을 휘두르는 왕좌에 오를 수 있었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무슨 일을 했는지도 궁금하기도 합니다. ‘실록과 사관이 미처 쓰지 못한 비밀의 역사’라는 부제를 붙인 이한우기자님의 <왕의 하루>에서 그런 궁금증에 대한 답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번 대통령선거에서는 대통령의 자질을 검증하는 과정이 충분했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시는 분도 계신 것 같습니다만, 조선왕조의 왕들은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혹은 사정이 여의치 않은 경우에는 왕위에 올라서도 제왕학이라는 특별한 공부를 했다고 합니다. 제왕학의 핵심 교과서는 진덕수의 <대학연의>였다고 합니다. 선조 즉위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영의정 이준경은 임종을 앞두고 선조에 올리는 유언상소를 통하여 일종의 조선왕 리더십 가이드라고 할 내용을 정리하고 있어 왕이 지녀야 할 기본적 자질이 무엇인지 가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첫째는, 제왕은 학문하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는 아랫사람을 대하는 데 위의(威儀)가 있어야 한다. 셋째는 군자와 소인을 분별해야 한다. 넷째는 붕당의 사론을 없애야 한다는 네 가지를 짚었다고 합니다. 저자는 학문이 뛰어났던 조선의 왕으로 태종, 세종, 세조, 예종, 숙종, 영조, 정조 등의 학식이 뛰어나 유학자였던 신하들과 겨룰 수 있었다고 합니다.

 

조선왕조가 시대적 배경이 되는 드라마나 영화가 관심을 끄는 경우가 많습니다. 영화나 드라마는 관객이나 시청자의 관심을 끌만한 장면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그분들의 일상은 어땠을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저자는 <왕의 하루> 프롤로그에서 아침에 기침하는 시간부터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조선왕의 하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밖에도 왕의 하루 가운데 특별한 날들, 예를 들면, 즉위식, 학문, 결혼, 죽음에 관해서도 정리하고 있습니다. 일상이야 매일 반복되는 일이니 특별할 것이 없기 때문에 역대 왕들의 특별한 날의 특별한 순간을 재구성하여 들려주기도 합니다. 태조 이성계가 고려조를 마감하고 새로운 왕조를 열게 되는 과정, 반정이 일어나던 날 연산군과 광해군이 보냈던 하루의 일정, 그리고 신하와 대립각을 세웠던 태종, 세조, 중종 등의 이야기도 들려주고 있습니다.

 

연산군이 폐위되던 날의 하루는 제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역사와는 사뭇 다른 점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옥새를 내놓고 동궁으로 거처를 옮기라고 했다. 나는 두말 않고 그대로 했다. 박원종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왕좌에 대한 미련이 없었기 때문이다.(62쪽)” 연산은 “나면서부터 영리해 일찍부터 인효의 성품이 현저하고, 총명이 날로 더해가 장차 학문의 공이 융설할 것이니, 마땅히 동궁에서 덕을 기르고 대업을 계승할 몸임을 보여야 할 것이다.(71쪽)”이라고 책문에 기록되어 있고, 부왕인 성종의 기대가 컸던 것으로 보아 좋은 군왕이 될 자질을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비극적 죽음을 뒤늦게 전해듣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폭정을 일삼게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사실은 비대해진 신권과 대립하여 왕권을 강화하려는 의지가 강했다는 평가가 있다는 것입니다. “연산군은 아버지를 배신하고 어머니의 죽음을 방조한 신하들을 믿으려야 믿을 수 없었다. 그는 반란의 조짐을 알고서도 적극적으로 대책을 세우지도 않았다. 인간에 대한 신뢰상실은 결국 자기 파멸로 이어졌고, 왕위 폐출은 시간문제였다.(80쪽)”고 저자는 적고 있습니다. 중종반정이 성공할 수 있었던 미스터리는 바로 활폐해진 연산의 심리상태에 있었다는 해석으로 보입니다.

 

전해오는 역사서를 바탕으로 과거를 재구성하기 위해서는 풍부한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상상이 틀을 벗어나게 되면 역사를 왜곡하는 우를 범할 수도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것입니다. 어떻든 <왕의 하루>는 저자가 풍부한 상상력으로 빚어낸 조선왕조의 흥미로운 읽을거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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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제라블 세트 - 전5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빅토르 위고 지음, 정기수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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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세밑, 우리 문화계는 <레 미제라블>이 뜨거운 이슈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우선 독일 도르트문트에서 열리는 NRW 트로피 대회를 통하여 은반에 복귀하는 피겨스케이팅의 여왕 김연아 선수가 쇼트프로그램에서 72.27점으로 여전한 기량을 선보였는데, ‘레 미제라블’을 연기하는 프리스케이팅에서도 아름다운 연기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지난 달 용인 포은 아트홀에서 뮤지컬 <레 미제라블>이 라이선스공연으로는 한국 초연의 막을 올렸고(http://blog.joinsmsn.com/yang412/12972541) 휴 잭맨, 앤 해서웨이, 러셀 크로우가 주연하고 톰 후퍼 감독이 연출한 영화 <레 미제라블>이 곧 개봉될 예정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50대 연기자 그룹’이 무대에 올리는 연극 <레 미제라블>이 19일부터 대학로 아르코 예술극장에서 박장렬 연출로 개막될 예정입니다.

 

뮤지컬 관람을 앞두고서 시작한 민음사판 <레 미제라블> 전작 읽기를 마쳤습니다. 배고픈 조카들을 위하여 빵 한 덩이를 훔친 장 발장이 19년에 걸친 감옥생활을 마치고 출옥한 다음 성당에서 은촛대를 훔치지만 미리엘 주교의 용서는 나락으로 굴러 떨어질 수도 있던 한 인간을 구원한다는 내용을 그려내고 있다는 정도로만 겨우 기억하고 있는 <레 미제라블>에 담겨 있는 많은 메시지를 제대로 읽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레 미제라블>의 마지막 부분, ‘장 발장’이라는 제목으로 된 제 5부에서는 앙졸라를 중심으로 하는 젊은 공화주의자들이 바리게이트를 쌓고 시가전을 벌이지만 연대규모의 근왕군의 공격을 받아 전멸하는 과정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마리우스가 코제트에게 보낸 편지를 받게 된 장 발장은 두 젊은이의 사랑을 지켜주기 위하여 바리게이트 전투에 참여하게 됩니다. 이곳에서 뜻밖에 밀정으로 체포되어 있는 자베르 형사를 방면하면서 오랜 세월을 두고 쫓고 쫓기던 두 사람의 관계도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게 되고, 역시 전작에 걸쳐 끊임없이 장 발장과 엮이던 테나르디에도 이야기의 마무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전투과정에서 중상을 입은 마리우스를 구한 장 발장이 그 유명한 파리의 하수도를 통하여 포위망을 뚫고 할아버지 질노르망씨집으로 무사히 도착하게 되면서 마리우스와 코제트의 사랑은 결혼으로 아름다운 결말에 이릅니다. 하지만 그동안 자신과 함께 숨어살 수밖에 없었던 코제트가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마리우스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두 사람으로부터 떠나는 장 발장은 결국은 마리우스와 코제트의 감사 속에서 죽음을 맞게 됩니다.

 

<레 미제라블>은 19년에 걸친 감옥생활을 통하여 정신이 피폐해진 장 발장이라는 남자가 우연히 디뉴교구의 미리엘주교의 집에서 하루 묵게 되고, 은촛대를 훔쳤다는 혐의로 다시 감옥으로 돌아갈 위기에 처하지만 미리엘주교가 감싸준 것이 계기가 되어 바른 정신을 되찾게 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삶을 살게 된다는 평범할 수 있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장 발장의 일생을 중심으로 하여 당시 프랑스 사회에 대한 역사적, 사회적, 철학적, 종교적, 언어학적 고찰을 더하고 있습니다. 나폴레옹황제가 워털루에서 벌였던 마지막 전투가 진행된 과정을 세밀하고 묘사하고 있을 뿐 아니라, 왕정복고에 대한 프랑스사회의 혼란상, 파리의 부랑아들의 삶, 프랑스 수도원의 수도자들의 삶, 당시 프랑스사회에서 사용하던 곁말, 심지어는 파리의 하수도에 대하여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말대로 이야기가 곁가지로 빠지게 됩니다만, 파리의 하수도가 저자의 관심을 끌게 된 이유가 궁금해집니다. 생 드니의 바리게이트가 엄청난 규모의 근왕군에 포위되어 있는 상황에서 유일한 탈출로가 될 수 있다고 착안한 것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도시의 하수도야말로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는 최악인 곳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즉, 바닥까지 자신을 낮춤으로써 새로운 국면이 열릴 수 있다는 것을 감추고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역사는 하수도를 통과한다.(161쪽)”고 적고 포석들 사이에서 한 방울 한 방울 여과된다고 하였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철학은 시궁창을 가지고 다시 도시를 만들고, 진흙을 가지고 다시 풍습을 만들어 낸다.(162쪽)”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구원의 삶으로 승화시켜가는 장 발장이 있는가 하면 끊임없이 남을 속이고 위협하면서 스스로를 파멸로 몰아가는 테나르디에의 삶을 극명하게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신분상승를 꿈꾸며 부나비처럼 살던 팡틴은 코제트를 낳고 남자로부터 버림받으면서 몰락하여 몸을 파는 지경에 이르게 되지만 돌아간 고향마을에서 장 발장을 만나면서 코제트의 미래를 부탁하고서야 고단한 삶을 마무리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이 있어 장 발장의 삶이 빛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조카들의 배고픔을 끝내 외면할 수 없었던 장 발장이 마을 빵집 유리를 깨고 한조각의 빵을 훔친 죄로 체포되어 감옥에 수감되는데, 조카들이 눈에 밟혀 몇 차례 탈옥을 시도하면서 형기가 늘어나 19년에 이르게 됩니다. 오랜 수형생활이 순수했던 장 발장의 마음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들었는지 작가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마음이 메마르면 눈도 마른다. 형무소를 나올 때까지 십구년 동안 그는 눈물 한 방울 흘린 적이 없었다.(1부, 173쪽)” 그렇기 때문에 출옥하여 사회로부터 냉대를 받던 그를 받아들였던 미리엘주교의 집에서 은촛대를 훔칠 생각을 한 것이겠지요.

 

하지만 주교님은 그 은을 정직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 쓰겠다는 약속을 잊지 말라고 당부하면서 “장 발장, 나의 형제여. 당신은 이제 악이 아니라 선에 속하는 사람이오. 나는 당신의 영혼을 위해서 값을 치렀소. 나는 당신의 영혼을 암담한 생각과 영벌(永罰)의 정신에서 끌어내어 천주께 바친 거요.(1부 193쪽)”라는 말을 전합니다. 미리엘주교님은 무한한 사랑의 비로 메마른 그의 정신을 적셔 종국에는 많은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입니다.

 

장 발장은 주교님의 당부대로 주교님의 은을 종자돈으로 하여 팡틴의 고향 몽트뢰유쉬르메르에서 구슬을 만드는 사업을 벌여 돈을 벌게 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그를 뒤쫓는 자베르형사가 잡아넣은 샹마티외가 자신을 대신하여 감옥에 갇히지 않도록 자신의 정체를 밝힌다거나 자신의 오해로 피해를 입게 된 팡틴에게 약속한대로 쫓기는 상황에서도 코제트를 돌보는 등, 정의를 외면하지 않는 삶을 살아갑니다. 숨어살면서도 삶이 어려운 사람들을 꾸준하게 돌보기도 하는데, 장 발장의 이런 행적은 남에게 빌붙어 살 궁리만 하는 테나르디에의 사악한 계교에 말리기도 합니다.

 

어쩌면 장 발장이 몽트뢰유쉬르메르에서 번 돈을 가지고 코제트와 함께 외국으로 도망을 쳤더라면 자베르형사의 추격을 따돌리고 행복한 삶을 살았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만, 파리를 떠나지 못한 것은 삶이 어려운 사람들이 눈에 밟혀서였는지 아니면 코제트때문이었는지 분명하지는 않습니다. 어린 코제트가 훌륭하게 성장하기 위한 장 발장의 배려라고 한다면 자베르형사에 쫓기는 과정에서 숨어든 픽퓌스 수도원에서 코제트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 전부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젊은이라면 언젠가는 이성에 눈을 뜨게 된다는 점도 생 드니 거리에서 바리게이트를 쌓고 시가전을 준비하는 마리우스에게 보낸 코제트의 편지사본을 우연히 본 다음에서야 깨닫게 되고, 코제트와의 관계를 다시 정리하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코제트에게 마음을 의지하겠다는 이기적일 수 있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실제로 픽퓌스 수도원에서 코제트와 생활하는 동안 “그는 부성애가 태어나 마음속에서 더욱더 커져 가는 것을 느꼈고, 마음으로 이 아이를 품고 있었고, 이 애는 내 딸이다, 아무 것도 이 애를 내게서 빼앗아 가지 못한다.(4부, 105쪽)”고 고백하기도 합니다. 코제트를 통하여 자신이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은 코제트의 행복을 위하여 자신의 마지막까지 희생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생 드니 바리게이트의 전투에 참여하여 마리우스를 보호하고 부상을 당한 그를 복잡하기만한 파리의 하수도를 통하여 구해내고 코제트와 결혼으로 이끌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코제트의 행복한 삶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는 자신의 범죄사실을 마리우스에게 고백하고서 두 사람으로부터 떠날 결심까지 한 것입니다.

 

번역을 하신 정기수교수님은 “이 소설의 줄거리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한 저주받은 비천한 인간이 어떻게 성인이 되고, 어떻게 예수가 되고, 어떻게 하느님이 되는가 하는 과정을 그린 것(5부, 497쪽)”이라고 정리했습니다. 작가는 마리우스의 눈을 통하여 장 발장의 변모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는 이 장 발장 속에서 뭔지 알 수 없는 높고 어두운 모습을 어렴풋이 보기 시작하고 있었다. 놀라운 덕이 그에게 나타나고 있었다. 그의 광대무변함 속에서 겸손하고, 온화한 최고의 덕이. 이 죄수는 예수로 변모하고 있었다.(5부 470쪽)” 스스로를 희생하여 누군가를 구하는 삶은 동서고금을 통하여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레 미제라블>이 미리엘주교님의 사랑으로 한 인간의 피폐한 정신이 구원받게 되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고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만, 저는 이야기 곳곳에 흩어둔 19세기 말 프랑스 민중들의 공화주의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도 주목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빅토르 위고는 1830년 7월 혁명과 1848년 2월 혁명 사이의 프랑스 사회의 사상적 움직임을 이 작품에 녹여낸 것이라고 하는데, 예를 들면 앙졸라를 중심으로 하는 ‘ABC의 벗’들이 주동하여 생 드니 거리에 바리게이트를 쌓고 근왕군과 전투를 벌이는 장면을 설명하면서 공화주의자들의 혁명배경을 설명하고 이들의 항전심리에 대한 섬세한 심리묘사를 읽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빅토르 위고가 나폴레옹 황제의 휘하에서 장군이었던 부친을 따라 유럽 각지를 따라다녔음에도 성장하면서 전통 왕정을 찬성하는 입장에 섰다가, 1948년 2월 혁명 이후에는 민주주의자가 되었고 공화제를 지지하게 되었던 삶이 배경으로 작용한 것이라고 합니다. 위고는 루이 나폴레옹이 쿠데타에 성공하여 황제가 된 다음에는 국외로 망명하였다가 1870년 쿠데타로 나폴레옹3세 황제가 물러난 다음에 귀국하여 왕성한 작품활동과 정치활동을 하였다고 합니다. <레 미제라블>은 망명 중에 쓴 작품으로 군주제를 반대하고 공화제를 찬성하는 그의 사상이 반영되고 있는 것입니다.

 

저자는 젊은 공화주의자들의 모임 ‘ABC의 벗’을 리드하는 앙졸라가 생 드니거리의 바리게이트 앞에서 민중들에게 하는 연설을 빌어 당시 프랑스 민중들이 왜 싸워야 하는지 밝히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것이오. 굶주림, 착취, 곤궁으로 인한 매춘, 실업으로 인한 비참, 그리고 교수대, 그리고 전쟁, 그리고 싸움, 그리고 사건들의 숲 속에서 우연히 일어난 강도질들 같은 것 말이요. (…) 사람들은 행복할 것이오. 지구가 자신의 법칙을 수행하듯이 인류는 자신의 법칙을 수행할 것이고, 영혼과 천체 사이의 조화가 회복될 것이오.(5부, 45쪽)”

 

오래 전에 읽었던 것으로 기억하는 <레 미제라블>의 전체 줄거리가 제대로 기억에 남지 않은 것은 아마도 축약된 번역본을 읽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제 1962년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원전을 바탕으로 번역 소개하셨던 정기수교수님께서 이번에 다시 원전을 새롭게 대조해가면서 요즈음의 우리말로 번역소개하여 쉽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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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사는 살인인가 - 사례로 만나는 의료윤리의 쟁점들 한겨레지식문고 8
토니 호프 지음, 김양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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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공단과 대한병원협회가 올해 수가협상에서 “협회는 만성질환 예방 및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등 국민운동을 전개한다. 단, 목표지표를 설정하고 그 성과에 대한 별도의 인센티브를 고려할 수 있다.”는 부대합의문을 채택하여 사회적 파장을 불러온 바 있습니다.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줄이게 된다면 의료비를 절감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경제논리로 접근했기 때문에 나타난 심각한 반작용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만약 무의미한 연명치료의 중단이라는 화두를 환자 입장에서 고려했더라면 어떤 반응이 나왔을까요? 2008년 우리 사회의 뜨거운 이슈가 되었던 김할머니 사건에서 재판부는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해달라는 자녀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인공호흡기를 떼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습니다. 우리의 헌법 제10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생명권과 마찬가지로 존중되어야 할 가치로 보았던 것입니다. 비록 연명치료를 중단함에 따라 환자의 생명이 단축된다고 하더라도 진료행위를 통하여 인위적으로 환자의 신체에 개입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생명현상에 따라 죽음에 이를 수 있다면, 이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부합한다고 해석한 것입니다. 만약 무의미한 연명치료에 관한 사항을 경제적 이슈가 아니라 김할머니 사건에서처럼 의료윤리적 이슈로 전개하였더라면 오히려 긍정적 반응을 얻었을 것입니다.

 

의료윤리가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의료윤리문제라고 하면 안락사, 낙태, 체세포복제와 같은 굵직굵직한 이슈를 떠올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범위가 의외로 광범위하다는 점을 알게 되면 평소에 윤리적 문제에 대하여 나름대로의 판단기준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소개하는 옥스퍼드대학교 의료윤리학 토니 호프교수의 <안락사는 살인인가?>에서 일상적인 의료행위에서 만날 수 있는 윤리적 문제를 볼 수 있습니다. 같이 고민해보시겠습니까?

 

당신의 환자 가운데 치매를 앓고 있는 할머니가 갑작스럽게 급성 중증질환이 생겼다고 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급성기 병원으로 이송하여 최신 의약품을 포함하여 가능한 모든 치료를 받도록 하시겠습니까? 만약 가족들이 집에서 요양하도록 해달라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경우에는 그 요구를 받아들여야 할까요? 물론 환자마다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답을 적용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환자의 질병상태와 환경을 최대한 고려하여 환자에게 최선이 될 방안을 결정해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토니 호프교수의 <안락사는 살인인가?>에서는 다양한 의료윤리문제들 가운데, 안락사, 유전학, 인공임신시술법, 자원분배, 정신보건, 의학연구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저자가 윤리적 판단을 내리는데 적용한 논리를 요약하여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그의 논리에 반드시 동의하지 못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겠습니다.

첫 번째 이슈는 책의 제목에도 인용되고 있는 안락사문제입니다. 저자는 자발적인 적극적 안락사가 원칙적으로 그릇된 것이라는 견해에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하게 하고 있습니다. 적극적 안락사란 시술자가 적극적으로 조치를 취하여 시술을 받은 사람이 죽음에 이르는 경우를 말하는데, 자발적인 경우는 사리분별력이 있는 사람이 스스로 죽음을 원하는 경우입니다. 저는 적극적 안락사는 동의하지 않습니다만, 연명치료를 중단하여 자연적으로 죽음에 이르는 소극적 안락사에는 동의하는 입장입니다.

 

그것은 저자가 인용하고 있는 것처럼 적극적 안락사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입장에는 살인이 윤리적으로 그릇된 것이라는 기본원칙에 동의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환자가 오랫동안 엄청난 고통을 받는 것보다 당장 죽는 것이 환자에 가장 이롭다면, 살인이 더 이상 그릇된 것이 아니라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자는 “적극적 안락사가 원칙적으로 그릇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은, 살인이 그릇된 것이라는 개념과 죽음이 해롭다는 개념 간의 연관성을 망각한다.(47쪽)”고 잘라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환자가 호소하는 엄청난 고통의 크기가 과연 인위적으로 죽음을 앞당겨야 할 정도인가를 판단하는 일을 틀림없이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에 답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안락사 반대론자들이 사용하는 논증의 예로 “당신들의 입장은 나치주의 신봉자들의 견해와 다를 바 없다. 따라서 당신들의 입장은 완전히 비윤리적이다.(23쪽)”라는 ‘나치카드 활용하기’를 예로 든 것도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보건자원의 분배에 관한 이슈를 다루고 있는 ‘통계상’의 익명자들이 죽지 않도록 예방하는 조치를 논하면서 저자는 영화 <라이언일병 구하기>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군고위층은 자식들을 전쟁터로 보낸 어머니를 위하여 하나 남은 막내아들을 전쟁터에서 불러내야 하겠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는데, 한 명의 병사를 전쟁터에서 불러내기 위하여 여덟 명의 병사가 죽음으로 내몰리는 상황은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인공수정시술은 불임부부들의 고통을 해결해주고 있습니다만, 윤리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문제도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자는 이탈리아까지 날아가 인공임신시술을 받아 쌍둥이를 출산한 59세의 영국여성의 사례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인간의 수정 및 배아발생에 관한 법’은 꽤나 엄격해서 장차 태어날 아이들의 복지에 대한 우려 때문에, 너무 나이든 여성은 인공임신시술을 받지 못하도록 금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저자는 인공임신시술을 입양과 유사한 측면이 있는지 비교하고 또한 인공임신시술은 존재하는 경우와 존재하지 않는 경우를 비교하고 있습니다. 한 아이를 입양을 원하는 여러 부모를 비교하여 최선의 조건을 갖춘 부모에게 입양을 보내는 것과는 달리 인공임신시술은 제한된 자원을 두고 피시술자가 경쟁하는 구도가 아닐 것입니다. 따라서 시술을 통하여 태어날 아이가 문제의 부모에서 태어나는 경우와 문제의 부모에서 태어나지 않은 경우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하겠습니다. 비교 가능한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노령의 여성에게 인공임신시술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아이가 불행해질 것이라는 추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인데, 그 추론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타당한가하는 문제와 함께 임신을 원하는 여성의 행복추구권 역시 논의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자는 일상적인 의료행위에서 윤리적 문제에 직면하였을 때 결심을 얻는데 도움이 되는 추론의 도구들을 예시하여 설명하고 있어 이를 활용하면 많은 도움을 얻을 것 같습니다. 먼저 윤리적 명제에 적용하는 논증은 결론을 뒷받침하는 근거들의 집합이므로 논리적으로 옳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올바른 추론이 가능하려면 개념분석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개념분석에는 정의 내리기, 개념 명료화, 차이 구별, 서로 다른 두 가기 개념 간의 유사성 확인이라는 네 가지 유형을 상황에 맞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의료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은 무엇이 환자를 가장 이롭게 하는 것인가를 고려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주어진 상황에서 서로 다른 결정을 내려야 할 때 그 결정의 윤리적 차이를 분명하게 구별할 수 있어야 하며, 윤리적으로 모순이 적은 방향으로 결정하는 것이 옳겠습니다. 이처럼 무모순성을 결정하는데 있어 가상적 사례를 사용하는 ‘사고실험’을 활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또한 의료의 네 가지 원칙에 입각한 추론을 통하여 좋은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데, 네 가지 원칙으로는 1. 환자의 자율성 존중, 2. 환자에게 최대한 베푸는 선행의 장려, 3. 악행 금지, 4. 분배 정의, 법 존중, 권리, 보복적 정의 등 네가지 요소로 구성되는 ‘정의’가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추론상의 오류 찾기는 의료윤리에서 매우 유익한 훈련이라고 합니다.

 

최근 들어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가 범죄와 관련되는 경우가 늘고 있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영국법률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형법은 공공의 안전을 위협하는 범죄행위를 한 사람이 유죄판결을 받으려면 해당행위를 한 자가 바로 이 자여야 하며, 이 사람이 그 행위의 책임을 질 수 있을 만큼 정신적으로 건강해야 한다는 전제를 충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범죄행위와 범행의도가 입증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신질환자의 범죄행위의 피해자 입장에서는 수용하기가 쉽지 않겠습니다만 온전하지 않은 정신상태에서 저지른 일이라는 점에서 범행의도를 구체적으로 입증하기 어렵기 때문에 무죄판결을 받게 되는 자유주의 원칙이라는 것입니다.

 

이미 저지른 범죄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토록 위험한 인물로부터 사회를 보호하기 위한 조처로서 정신병원에 강제입원시켜 치료를 받도록 하는 적극적 조치에 대하여 정신질환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일이므로 타당하지 않다는 주장이 대립되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저자는 환자가 자신에게 이롭다고 할 수 있는 치료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는 원칙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의 권리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 개인의 권리를 일정 수준에서 제한함으로서 권리의 형평을 추구하는 것이 옳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영국의 정신보건법에서도 정신질환자의 보건이나 안전을 위해서나 타인들의 보호를 위하여 정신질환자에 대한 강제치료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이와 같은 규정이 정신질환자를 차별하는 처사라는 입장에 서는 것으로 보입니다.

 

의학연구에 관해서는 신약의 임상시험에 대하여 논하고 있습니다. 미래의학을 위한 연구는 일정부분 위험을 안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러한 위험을 이유로 연구조차 할 수 없도록 제한한다면 의학의 발전은 매우 더딜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러한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춘 경우에 한하여 임상시험이 허가되는 방향으로 발전해온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몇 년간 전문가들이 심각한 의견대립을 보이고 있는 카바수술에 대한 판단을 구체화하는데 있어 참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여 관심이 가는 이슈입니다. 제한된 지면에서 카바수술 임상시험의 타당성을 논하는 것이 적절하지 못하다는 생각입니다만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환자들의 안전을 위한 제반규정은 반드시 지켜져야 할 것입니다.

 

신약의 효능과 안전성을 평가하는 임상시험에서도 윤리적 판단이 요구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신약이 기존의 치료약을 대체하게 되는 경우에는 기존의 의약품과 대조시험을 하게 되기 때문에 신약의 안전성 부분에 대한 윤리적 판단의 무게가 실리게 됩니다. 하지만 대조약이 없는 신약의 경우에는 효능을 비교하기 위하여 대조위약을 사용하게 되므로, 치료효과를 기대하면서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환자들 가운데는 치료효과가 없는 대조위약을 먹게 되는 대조군에서의 윤리적 타당성도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자는 빈곤국에서 실시되고 있는 에이즈 치료약물에 대한 임상시험의 윤리적 판단을 함에 있어 부유국에서의 임상시험과 차별적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여 불편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즉,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부유국에서 실시되는 임상시험에서 어느 환자든 위약을 받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는 입장을 취하면서도 빈곤국에서 실시되는 임상시험에서는 치료약을 받는 사람이 누릴 치료효과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논리의 형평성을 잃고 있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정리를 해보면, 윤리적 판단을 함에 있어 개인에 따라 시각차가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판단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상황에 따라 적용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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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제라블 4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4
빅토르 위고 지음, 정기수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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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의 제목은 ‘플뤼메 거리의 서정시와 생 드니 거리의 서사시’입니다. 전체 5부작 가운데 인명이 없는 유일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플뤼메 거리는 장발장과 코제트가 사는 집이 있는 거리입니다. 뤽상부르 공원에서 처음 만나고서 몇 차례 조우한 코제트의 거처를 찾아 헤매던 마리우스가 에포닌의 도움으로 플뤼메 거리의 집에서 코제트를 만나 사랑을 시작하기 때문에 두 사람의 사랑을 ‘플뤼메 거리의 서정시’라고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 장발장입장에서는 코제트가 타인과 만나 사랑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상정한 적이 없기 때문에 새로운 위험요인이라는 판단을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보호를 구실로 이곳저곳을 전전하면서 숨어사는 것이 과연 코제트의 인생에 어떤 보탬이 되는 것인지 저자가 유념하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쫓기는 삶을 살아야 하는 운명에 있는 장발장이 코제트를 독점하여 자신의 삶의 동반자로 삼으려는 생각은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생 드니 거리는 레 미제라블의 후반부를 구성하는 1832년 6월 5일의 왕정에 항거하는 시민폭동의 무대가 되는 곳으로 앙졸라를 중심으로 하는 ABC의 벗들이 주동하여 바리케이트를 쌓고 근왕군에 대항하여 전투를 벌이는 곳입니다. 당연히 공화정주의자들의 혁명배경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고 이들의 항전심리에 대하여 섬세한 묘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빅토르 위고는 나폴레옹 황제의 휘하에서 장군이었던 부친을 따라 유럽 각지를 따라다녔으면서도 성장하면서 전통 왕정을 찬성하는 입장에 섰다가 1948년 2월 혁명 이후에는 민주주의자가 되었고 공화제를 지지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루이 나폴레옹이 쿠데타에 성공하여 황제가 된 다음에는 국외로 망명하였다가 1870년 쿠데타로 나폴레옹3세 황제가 물러난 다음에 귀국하여 왕성한 작품활동과 정치활동을 하였다고 합니다. <레 미제라블>은 망명 중에 쓴 작품으로 군주제를 반대하고 공화제를 찬성하는 그의 사상이 반영되고 있는 것입니다.

 

4부에서는 3부에서 장발장을 옭아서 한밑천을 장만하려다가 마리우스가 개입하는 바람에 자베르형사에게 붙잡혀 감옥에 갇힌 테나르디에가 탈옥하는 과정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면 당시 프랑스의 교정행정이 치밀하지 못하였던 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여러 차례 탈옥에 성공하는 장발장의 사례나 테나르디에의 사례를 보면 그런 추측이 무리가 아닐 것 같습니다. 테나르디에의 탈옥과정에서 곁들이는 곁말에 대한 저자의 장황한 설명은 소소한 읽을거리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고, 나아가 당시 프랑스 사회가 사용하던 언어학적 기록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국어사전에서는 “똑바로 말하지 아니하고 다른 말로 빗대어 하는 말”이라고 곁말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곁말은 말의 직접적인 창조와 비유 그리고 임시방편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기왕 사용하고 있는 언어를 바탕으로 하여 형용이 풍부한 말이 창조되고 있어 신비롭기까지 하다는 것입니다.

 

<레 미제라블>을 읽다보면 선문답에 가까워 이해가 쉽지 않은 문구를 읽을 수 있습니다. 곁말에 대한 설명을 담은 부분에서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가운데 적은 다음 구절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알 때도 사랑할 때도 그대는 괴로워한다. 빛은 눈물 속에서 태어난다. 밝은 사람들은 설령 그것이 어두운 사람들 위에 지나지않는다 할지라도 눈물을 흘린다.(286쪽)”

 

이 작품의 후반을 장식하고 있는 1832년 6월 5일의 혁명은 민중의 큰 지지를 받아오던 라마르크장군의 사망과 장례식이 계기가 된다고 하였는데, 생 드니 거리에서 세워진 바리케이드를 지키는 민중은 불과 50여명, 이들이 규모를 알 수 없는 근왕군과 처절한 전투를 벌이게 되는 것인데, 아무리 민중혁명이 자생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산발적일 수밖에 없는 민중을 통일된 힘으로 이끌어가는 구심점이 없이 투쟁을 벌인다면 이는 분명 의미없는 희생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는 것입니다. 당시 프랑스 민중운동이 실제로 이랬다면 그들은 불속으로 뛰어드는 하루살이와 같이 무모한 사람들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치열한 전투가 예상되는 긴박한 순간에도 남녀 간의 사랑은 어쩔 수 없는 것. 오해는 상황을 극단으로 몰아가지만 끊어질 듯 이어지는 인연은 새로운 상황을 만들어내는 법, 에포닌이 개입하여 끊어질 것 같던 코제트와 마리우스의 인연은 마리우스의 비장한 마무리에 의하여 반전을 가져올 것으로 보입니다. 생 드니 거리의 바리케이트에서 기다리는 처절한 전투의 결말과 긴 이야기의 결말을 어디로 향할 것인가 궁금하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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