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2/63 - 2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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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습니다만, 이제는 시간여행의 고전이라고 해도 될 영화 <백 투더 퓨처> 시리즈에서 과거로 시간여행 중인 맥플라이에게 브라운박사는 과거의 사건에 개입하여 운명을 바꾸어 놓지 말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스티븐 킹은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신작 <11/22/63>에서는 과거로 가는 시간여행 출입구를 발견한 앨 템플턴과 제이크 에핑이 과거에 일어났던 불행한 사건에 개입하여 바로 잡아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설정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과거의 사건을 바로잡으려는 앨과 제이크의 시도에 대하여 과거가 다양한 형태로 저항한다는 설정과 토끼굴이라고 표현하는 시간여행을 출입구를 통하여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순간 이전에 개입했던 사건들이 모두 원상을 회복한다는 설정을 두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전편에서 앨과 해리가 막아낸 비극적 사건의 결말이 과연 해피엔딩이었을까 하는 의문을 품게 만들었던 점과, 후편의 하이라이트가 될 케네디암살을 저지한 것이 과연 후세에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을까 하는 의문을 해결하기 위한 장치라고 하겠습니다. “밑져야 본전이잖아. (…) 상황이 구리게 흘러간다 싶으면 제자리로 돌려 놓으면 돼. 칠판에 적힌 추잡한 단어를 지워 버리는 것만큼이나…(661쪽)”라고 한 앨의 말처럼 토끼굴 출입을 통해서 리셋시키면 된다는 것이지요.

 

어떤 독자도 리뷰에서 링컨암살이 아니라 케네디암살을 저지하는 선택을 했을까 의문을 표시했습니다만, 아마도 시대적 배경으로 고려하였을 때 현대에서 과거 시점으로 돌아가 적응하기에는 세월의 벽이 두터웠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떻든 1958년으로 갈 수 있는 시간여행 출입구를 발견한 앨 템플턴이 1963년 11월 22일 달라스에서 일어난 케네디 암살사건을 저지하려 시도했다가 병을 얻어 더 이상 시도할 수 없게 되면서 주인공 제이크 에핑에게 그 일을 부탁하게 됩니다. 케네디를 살린다면, 베트남전이나 세상을 혼란스럽고 우울하게 만들었던 수많은 일들이 사라지고 세상은 더 나아질 것이라는 이유였습니다.

 

사실 케네디 암살사건 만해도 리 오스왈드가 범인이라고 합니다만, 여러 가지 가설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물론 앨이 먼저 시도하면서 꼼꼼하게 조사한 자료를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한 번의 시간여행에서 오스왈드의 저격을 막겠다는 시도가 터무니없어 보기기까지 합니다. 007시리즈처럼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는 남자주인공의 애정행각이 중요한 눈요기가 되기도 합니다만,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자칼의 날>이라는 영화에서 대통령을 암살하는 미션을 수행하는 자칼처럼, 이런 종류의 임무를 맡게 되면 아무래도 사건에 집중하기 위하여 남들과의 관계를 최소화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 제이크가 5년여의 세월을 과거에서 살아야 하는 상황을 고려했음인지, 아니면 임무수행을 방해하는 과거의 집요한 저항을 고려한 안전장치로 삼기위해서인지 분명하지는 않습니다만, 제이크는 달라스 인근의 작은 마을 조디에서 교편을 잡게 되고 학교에서 새디 호킨스라는 여교사를 만나 서로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조디에서 거점을 만들어 지내면서 한편으로는 오스왈드가 소련에서 미국으로 돌아와 달라스로 들어온 다음의 행로를 따라 미리 감시초소를 만들어 두고 그의 행적을 추적하는데, 그 과정에서 소련의 개입가능성을 넌지시 비치기도 합니다. 물론 뒤에 가서는 리의 배후세력을 지우는 것 같습니다.

케네디 대통령이 달라스에 도착하는 63년 11월 22일을 앞두고 제이크는 과거의 거센 저항을 받아 치명적인 부상을 입게 되지만 새디의 도움을 받아 오스왈드가 케네디를 저격했다는 빌딩으로 가기 위하여 나서는데, 그 과정도 역시 순탄치 않습니다. “과거는 바뀌길 원치 않거든요. 바꾸려고 하면 저항을 해요. 변화의 가능성이 클수록 더 심하게 저항을 하죠.” 우여곡절 끝에 오스왈드의 케네디 저격을 저지하는데 성공하게 됩니다만, 과연 바뀐 과거가 미래에 미친 영향은 저자가 앨 탬플턴을 통하여 그려냈던 환상적인 것이었을까요? 달라스에서 제이크의 개입을 저지하지 못한 과거가 만들어낸 나비효과는 무엇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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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투자은행 2
구로키 료 지음, 최고은 옮김 / 펄프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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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전편 <거대투자은행 1>이 1985년부터 1990년 말까지 그리고 있습니다. 1990년은 일본의 거품경제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는 해였습니다. 주가가 폭락하는 가운데서도 지수와 연계한 상품을 판매하여 수익을 내는 사람도 있었으니 참 알다가도 모를 동네가 아닐 수 없습니다. 후지사키씨는 이런 상황을 ‘암환자에게 모르핀을 주사하는’ 꼴이라고 자조하고 있습니다. 살로먼의 류진은 주가가 폭락하는 장세에서도 전환사채 차익거래로 1000억엔의 수익을 올렸다는 것입니다.

 

잘 나갈 때 오히려 더욱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인용하고 있는 세익스피어의 <율리우스 카이사르> 4막 3장에 나오는 ‘There is a tide in the affairs of men.’(저자는 ‘인생에는 일정한 흐름이 있다.’고 번역하고 있습니다만,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의미가 더 가깝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는 경구가 아니더라도 잘 나갈 때 별 생각없이 폭주하다가 한순간에 무너져 내릴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거품경제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아오르는 과정에서 세계 금융계를 요리하는 큰 손들이 벌인 모럴 헤저드는 결국은 사직당국의 철퇴를 맞고 물러나면서 거품이 꺼지는 단초가 되었던 것인데, 전편에서 도덕성이 돋보이던 금융계 종사자들도 막상 끝없이 무너지는 상황에서는 추악한 면모를 드러내기도 해서 주인공 가쓰라기의 모습이 대조되는 것 같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상투를 잡는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위험을 경고하는 사람이 전혀 없지는 않으나 그 사람의 경고는 대부분 무시되면서 추락으로 이어질 결정이 내려진다는 점입니다. 투자의 고수들과 각종 이론으로 무장한 전문가들이 포진하고 있는 금융계도 보통사람들이 사는 곳과 크게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는 것입니다.

 

전편에서는 이야기가 펼쳐지는 주무대가 뉴욕과 동경이었는데 후편에서는 모스코바, 런던, 아일랜드, 심지어는 동구의 부다페스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소로 무대를 옮겨가면서 읽는 재미를 더해줄 뿐만 아니라 어렵기만한 금융 이야기 뿐 아니라 레저와 예술, 문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를 화제에 올리고 있습니다. 저자의 박학이 돋보이는 부분입니다.

 

후편은 1990년 말부터 2003년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일본 국내은행에서 근무하던 가쓰라기씨가 미국계 투자은행 모건 스펜서에서 재능을 펼치다가 잠시 주춤하는 사이 일본 상업은행 투자업무 담당 상무이사로 영입하겠다는 제안을 받게 되는데, 앞서도 인용했던 셰익스피어극의 대사처럼 일은 언제나 풀리기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금새 입증되기도 합니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가운데 일어났던 국제적인 사건을 인용하여 이야기에 변조를 넣던 작가는 9.11사건은 가쓰라기를 월드트레이드센터 쌍둥이빌딩에 보내 사건 현장을 직접 들여다 보도록 하기도 합니다.

 

어떻든 정도를 걷는 가쓰라기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이어져 결국은 모건 스펜서의 부회장으로 자리를 옮기려는 상황에서 금융 경제 재정 담당 대신의 요청을 받아 막 국유화한 은행의 CEO를 맡게 되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는데, 그 배경에는 가쓰라기의 은사가 제자들에게 남긴 말이 여운이 되어 남아있었기 때문인 듯합니다. “자네들은 졸업하면 다양한 길을 걸을 게야. 그리고 다양한 위치에서 여러 가지 판단을 하게 되겠지. 그럴 때 자신의 판단이 과연 사회에 도움이 되는지 항상 생각해 보았으면 하네. 만일 법률이, 사회를 위한 자네들의 판단에 반한다면 법률을 바꾸기 위해 애써야 하네. 그리고 나라를 위해 힘써 주길 바라네.(316쪽)” 가쓰라기 개인의 입장에서는 보수가 많지 않아도 돈과 개인의 경력을 위해 일을 고르는 단계는 이미 지났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일종의 사회를 위한 봉사의 의미일까요? 치열한 금융계의 부침을 뒤쫓던 이야기는 우아하면서도 조금은 맥빠지는 결말에 이르는 감이 없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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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그 가슴 뛰는 마법 - 종교, 신화, 미신에 속지 말라! 현실을 직시하라!
리처드 도킨스 지음, 김명남 옮김, 데이브 매킨 그림 / 김영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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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동물행동학자이자 진화생물학자이며 잘 알려진 대중과학 저술가라고 소개되는 리처드 도킨스의 진가를 <이기적 유전자; http://blog.joinsmsn.com/yang412/12583563>와 <눈먼 시계공; http://blog.yes24.com/document/6265571, 읽으면서 확인한 바 있습니다. 원시지구환경에서 우연히 만들어진 유기물분자들이 스스로를 복제하는 능력을 갖추게 된 것을 출발점으로 하여 오늘날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생물종으로 발전하게 된 것인데, 유전체에 담긴 생물체의 형질에 나타나는 사소한 변화가 자연에 의하여 선택되는 과정에 반복되어 축적되면서 궁극적으로 다양한 종의 차이로발전한 것이라 설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눈먼시계공>에서의 바이오모프모델, 그리고 <이기적 유전자>에서는 문화의 복제를 설명하는 밈모델은 독창적인 탓인지 이해가 쉽지 않은 바 있었습니다.

 

리처드 도킨스의 최신작 <현실, 그 가슴 뛰는 마법>에서는 그의 전작에서 느낀 놀라운 글솜씨가 새로운 모습으로 발전되어 있다는 점을 깨닫게 만들었습니다. 미립자의 세계에서 무한 우주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을 과학적 논리를 바탕으로 아주 쉽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특히 12개의 장으로 나뉘어져 있는 주제를 세계 구석구석에서 전해오고 있는 신화들을 인용하여 이야기의 꼬투리를 만들고 이어서 과학적 근거를 들어 독자의 머릿속에 개념이 쉽게 정리되도록 하고 있습니다. 열 두 개의 주제는 얼핏 보면 순서가 뒤죽박죽인 것처럼 보입니다만, ‘현실이란 무엇인가? 마법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되는 첫 장에서는 과학적 추론이란 무엇인가를 먼저 제시하고, 이어서 ‘최초의 인간은 누구였을까?’라는 질문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저자가 인간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열 두개의 주제가 의문문으로 되어 있는 것도 아주 독특하다 싶은데, 그의 진가를 알린 작품 <이기적 유전자>의 첫 번째 장을 ‘사람은 왜 존재하는가?’로 시작한 것을 보면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과학적 사실을 아주 쉽게 설명하고 있는지 놀랐다는 말씀을 드린 바 있습니다만 직접 예를 들어보여야 할 것 같습니다. 저자도 “면역체계는 무척 복잡하기 때문에, 제대로 설명하려면 책 한 권은 바쳐야 한다.(243쪽)”고 적고 있습니다. 이런 면역계의 기능과 이상을 두 쪽 정도의 글로 개념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면역체계가 잘못되는 또 다른 방식은 잠재적 ‘공격자’에 대해 지나치게 열심히 대항하는 경우로, 알레르기가 그런 현상이다. 해롭지 않은 것에 대해서 쓸데없이, 소모적으로, 심지어 파괴적으로 싸우는 것이다. 공기 중의 꽃가루는 보통 무해하지만, 어떤 사람들의 면역체계는 과민하게 반응해 ‘건초열’ 혹은 ‘알레르기성 비염’을 일으킨다.(244쪽)”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도킨스의 뛰어난 글솜씨와 함께 이 책에서 주목되는 점은 바로 저자의 이야기를 쉽게 풀어 그림으로 표현한 데이브 메킨의 270장이나 되는 일러스트레이션입니다. 이 책을 옮긴이는 <현실, 그 가슴 뛰는 마법>이 저자의 전작들과 다른 점을, “첫째. 자신의 주무대인 생물학을 넘어서 과학 전체를 이야기한다. 둘째. 이 책은 그림책이다. 셋째. 이 책은 어른과 아이가 함께 읽을 수 있다.”라고 요약하고 있습니다. 정리를 해보면, 우주의 시원에서부터 지구환경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아주 쉽게 설명하고 있어 생물학이나 지구과학, 물리학 등을 전공하지 않은 어른으로부터 중학생까지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자는 마법같은 현실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세 종류의 마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신화나 동화에 등장하는 ‘초자연적 마법’은 결코 존재할 수 없는 현상이고, 마술사가 무대에서 행하는 마법은 보는 이의 눈을 속이는 일이라는 것이며, 감정으로 느끼는 시적 마법이야말로 저자가 이 책의 제목에 담은 ‘마법’의 의미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은 마법 같거나 혹은 기적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과학이 발전하게 되면 언젠가는 설명이 가능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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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윤리 딜레마 31
마크 G. 커쥬스키.로사 린 B. 핀커스 지음, 강명신 옮김 / 청년의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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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는 환자를 위하여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진료를 제공해야 한다고 배웁니다. 하지만 의료현장에서는 비용문제를 비롯한 다양한 현실의 벽을 만날 수밖에 없습니다. 인턴시절 응급실근무를 하다보면 소생가능성이 낮다는 설명을 듣게 된 보호자가 환자를 집으로 모시겠다고 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건강보험이 있어도 진료비 부담이 만만치 않던 때라서 보호자의 요청을 병원에서 말리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소생가능성과 진료비부담을 고려한 판단이었을 것입니다.

 

최근 우리사회에서 연명치료의 중단이 다시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보건복지부가 연초에 발표한 ‘생명나눔 인식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국민의 72.3%가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는데 찬성하고 있다고 합니다(http://blog.joinsmsn.com/yang412/12521333). 그 이유로 ‘가족의 고통’(69.4%), ‘고통만을 주는 치료’(65.8%), ‘경제적 부담’ (60.2%) 등을 꼽고 있습니다. 설문의 결과만을 놓고 보면 설문의 응답자가 자신이 환자인 상황에서라기보다는 보호자의 입장에서 판단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연명치료중단을 반대하는 이유로는 ‘생명은 존엄하므로 인위적으로 사망에 이를 수 없다’(54.5%)가 가장 많았다고 하는데, 이 부분의 해석에 다소 오해가 있었을 것 같기도 합니다. ‘고통만을 주는 치료’인 연명치료가 생명의 존엄성을 해치는 것이라고 보는 견해와 상충된다고 하겠는데, 연명치료 자체가 인위적으로 사망을 유예하는 행위라는 점에서 보면 연명치료의 중단은 죽음에 이르는 자연과정에 따르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노인인구가 급증하고 있고 상대적으로 만성질환이 많은 노인층에 의료비가 집중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노인환자들은 건강보험이 커버하는 요양병원에서 치료를 받거나 요양보험이 커버하는 요양시설에서 간병을 받고 있습니다. 노인환자의 진료는 상황에 따라 의료진의 판단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고, 그 타당성 여부는 아직 구체적으로 논의되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연명치료에 대하여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환자나 보호자들의 요구에 대하여 병원이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바로 2009년 보호자가 연명치료의 중단에 대하여 법의 판단을 요구한 김할머니사건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결국 법은 보호자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그렇다고 의료현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례를 법원으로 가져갈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에 제도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병원윤리위원회나 임상윤리자문 등이 그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어, 일부 병원에는 병원윤리위원회가 설치되어 있기도 하지만 아직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지 않은 실정이라고 합니다. 위원회의 전문성이 떨어지거나 일선 의료인들이 임상현장에서 만나는 상황이 윤리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한국의료윤리학회장을 지내신 고윤석교수님께서는 의료인 개개인의 의료윤리에 대한 인식을 제고시키기 위한 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십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분야에 대한 관심이 늦었던 까닭에 교육에 필요한 자료가 별로 없는 상황에서 서울대학교 치의학대학원의 강명신교수가 번역하여 소개한 마크 커쥬스키와 로사 린 핀커스의 <병원윤리 딜레마 31>는 좋은 참고서가 될 것 같습니다. 저자들이 펜실베니아 주 서부지역 병원을 네트워크로 연결하여 윤리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참여자들이 발표한 사례들 가운데 31건을 뽑아 다듬은 것이라고 합니다. 먼저 사례를 요약하고 관련용어와 쟁점을 정리한 다음, 관점과 주요 포인트를 환자와 가족 병원관계자들의 입장에서 짚고, 이어서 가능한 다른 결말과 실제 결말을 소개하고서 사례 전체에 대한 해설과 참고문헌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사례들은 ‘동의와 의사결정능력’, ‘퇴원딜레마’, 그리고 ‘의료의사결정과 가족’ 등과 같이 환자중심의 이슈 뿐 아니라 ‘조직윤리와 기관윤리’, ‘재활윤리’, ‘고용문제’ 및 ‘기말보호의 문제’ 등 기관중심의 이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에 따라 나누고 있습니다.

 

물론 사례들이 미국의 병원과 요양시설 등을 포함한 의료 환경에서 이루어진 것들이라서 문화적 배경이나 의료 환경이 다른 우리나라에 바로 적용하기 어려운 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참고할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하겠습니다. 그 가운데 관심이 가는 몇 가지 사례를 생각해보겠습니다.

 

먼저 적극적 치료를 거부하는 급성심근경색증환자의 사례입니다. 우울증으로 치료받은 환자의 병력을 고려한 의료진은 혹시 환자가 우울증 때문에 치료를 거부하여 죽음에 이르려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 확대하면 의사조력자살을 시도하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지게 된 것인데 결국은 윤리위원회에서 신중한 검토 끝에 적극적 치료대신 통증완화를 위한 약물치료에 머물기로 결정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환자와 가족 그리고 의료진의 입장이 대립하는 상황에서 윤리위원회가 개입하여 3자적 시각에서 상황을 검토하고 결론에 이르는 윤리위원회의 전형적 활동 사례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대장암에 동반된 패혈증으로 입원한 67세 여자환자의 사례에서 환자와 보호자는 끝까지 적극적 치료를 다해줄 것을 요청하였는데, 패혈증에 의하여 쇼크 상태에 빠지게 되는 경우 심폐소생술을 시행하지 않도록 하자는 의료진의 요청에 동의하지 않은 경우입니다. 이 사례의 경우 심폐소생술을 시행하여 심장박동을 되돌렸다고 하더라도 환자의 삶의 질은 계속 나빠질 것이고 결국에는 죽음에 이를 것입니다. 저자들은 “무의미한 치료 사례들 이면의 윤리적 추론은 의료제공자가 지닌 두 가지 의무, 즉 환자의 자율성을 존중해야 하는 의무와 불필요한 통증과 고통 또는 모욕감을 환자에게 주지 말아야 하는 의무 사이의 갈등으로 번역될 수 있다.(92쪽)”고 정리하였습니다. 적극적 치료들 가운데 성공이 거의 불가능한 무의미한 치료에 대한 판단기준을 분명하게 하고 의료진은 환자가 처한 상황을 가족에게 분명하게 전함으로서 불필요한 갈등의 여지를 줄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68세의 울혈성심근질환 환자가 심장마비로 입원한 사례는 반대의 경우입니다. 환자의 병력과 병세를 감안하였을 때 깊은 혼수상태에 빠진 환자가 회생할 가능성이 낮다고 본 가족들이 완화치료를 제외한 적극적 치료를 제한해달라고 요구했지만 주치의가 동의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오랫동안 환자와 접촉해온 주치의로서 치료를 제한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저자들은 의료의 온정적 간섭주의와 의사가 가진 환자자율성 존중의무라는 의료윤리 이슈가 충돌하는 상황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만든 주치의의 본래 의도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저자들은 다양한 경우를 상정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앞서 말씀드린 환자에 대한 정서적인 애착이 있었을 수도 있고, 적극적 치료를 철회하는 것이 적극적 안락사행위에 해당된다고 판단하였을 수도 있으며, 종교에 기반한 삶의 존엄성에 대한 나름대로의 철학이 작용되었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주치의의 개인적 윤리의식이 반영될 수 있는 방안은 없었을까요? 하지만 주치의가 가족들과의 접촉을 기피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고수한 것은 같이 일하는 의료진에 부담을 키우는 일로서 적절치 못한 선택이라고 하겠습니다. 결국은 가족들과 만나 의견을 조율했어야 옳을 것입니다.

 

과도한 흡연으로 인한 다기관 폐쇄성폐질환과 울혈성 심부전, 당뇨, 비만, 갑상선 부전증 등 다기관질환을 앓는 49세 여자 환자가 심장발작으로 뇌사에 빠진 사례에서는 자원의 배분문제와 함께 환자의 병력과 치료경력에 관한 윤리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1. 환자의 과거의 ‘불순응(비협조, 불이행) - 예를 들어 경고에도 불구하고 흡연을 지속한 것이나, 당뇨병에도 불구하고 비만인 것’은 죽기를 원하는 - 즉 생명연장기술로 삶을 지속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욕구를 표현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가? 2. 만일 환자나 대리인이 삽관과 ‘풀코드(full code)’를 요청했다 하더라도, 환자의 불순응을 고려할 때, 이 요청에 따르는 것은 고가의 의료자원을 공정하게 사용하는 것인가?(128쪽)”하는 문제입니다.

 

이는 사회보험의 성격인 건강보험의 보장한계를 구체화하고 가입자들의 의무를 확대하여 보험자의 부담을 줄이려는 의도라고 해석할 수도 있는 문제입니다. 건강보험공단이 금년 수가협상과정에서 무의미한 연명치료의 중단에 대한 인센티브 연계방안을 병원협회와 논한 것을 두고 사회적 반발이 극심했던 것을 고려한다면 보험가입자에게 건강에 위해요인이 될 행동을 자제하도록 하는 의무를 부과하는 논의가 우리사회에서 과연 가능할까 싶습니다. 저자들은 흡연자에 대한 자원배분의 타당성에 대하여 다양한 방향에서 접근한 논거들을 인용하고 있어 나름대로의 추론을 세우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자원배분 이슈와 관련하여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제도 자체가 제한된 자원을 바탕으로 운용되고 있는 점을 고려한다면 적용범위를 좁게 하되, 범위 밖의 영역은 의료소비자의 부담으로 하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검토할 시점이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임신21주째 주폐포자충 폐렴과 거대세포바이러스 감염증이 동반된 에이즈에 뇌경색까지 합병되어 인공호흡이 필요한 저산소증 상태에 빠진 임산부의 사례에서 의료진의 선택을 다룬 사례를 보면서 역시 제가 인턴시절 겪었던 사례를 이해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인턴 시절 경험한 사례는 오래되어 병력이 모두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전격성 간염으로 입원한 임신부에게 분만을 유도하는 의료적 처치를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자들이 다루고 있는 사례에서는 병원의 원내변호사는 주의 생전유언법을 바탕으로 태아가 출산가능한 시기에 이를 때까지 사전의료의향서나 연명치료 보류의 권리가 임산부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의료진은 그 결과에 대한 뒷감당을 남편과 아들이 짊어져야 한다는 점을 고려했다고 합니다. 결국은 적극적 치료로 인하여 기대할 수 있는 환자의 여명이 태어난 아이가 생존하는데 필요한 재태기간 25주를 채울 수 없는 상황이 고려되어 심폐소생술을 시행하지 않기로 결정되었고 환자는 임신상태로 죽음을 맞았다고 합니다. 인턴 시절 제가 지켜보았던 임신부 역시 가족들과의 협의를 통하여 분만을 유도하는 의료적 처치없이 죽음을 맞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고르디우스의 매듭과 알렉산더대왕의 해결방식이 생각나는 순간입니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고르디우스왕은 자신의 수레를 신에게 제물로 바치고 아주 복잡한 매듭으로 묶어 놓고서 “장차 이 매듭을 푸는 사람이 아시아의 지배자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고 합니다. 이후 많은 사람들이 이 매듭을 풀려했지만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는데, 알렉산더대왕이 예언을 듣고서 매듭을 단칼에 끊어버렸다는 것입니다. 발상의 전환을 이야기할 때 잘 인용하는 이야기입니다.

 

앞서 인용한 임신부의 사례에서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권리와 임산부의 권리가 상충되는 상황은 고려할 사항이 많아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을 수밖에 없습니다만, 저자들은 오히려 간단한 해답을 내놓고 있습니다. 즉 “의료진이 그들의 상식을 묵묵히 따르고 환자를 위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행할 때, 법적으로 또한 도덕적으로도 최선을 다하게 된다는 것(156쪽)”입니다. 저자들이 다루고 있는 31건의 사례 가운에 극히 일부인 4건의 사례만을 인용하였습니다만, 다른 사례들 역시 의료현장에서 만날 가능이 충분한 사례들이라 생각합니다. 사례에 따라서 다른 판단이 필요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에 저자들이 소개하는 사례들과 다른 결정이 필요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평소 의료윤리에 관심을 가지고 검토해두면 판단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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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저하는 근본주의자 민음사 모던 클래식 60
모신 하미드 지음, 왕은철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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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9.11테러사건이 발생한지 벌써 11년이 넘었습니다. 2001년 9월 11일 오전 뉴욕에 있는 세계무역센터 건물에 이슬람 테러단체에 의하여 납치된 항공기가 돌진하여 충돌한 뒤 무너져 내려 엄청난 숫자의 무고한 시민들이 사망한 사건입니다. TV를 통하여 전해지는 뉴스를 지켜보면서 경악을 금치 못했던 기억이 분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무고한 시민이 테러의 타깃이 되었다는 것으로 테러리스트에 대하여 분노했고, 이후 강화된 항공기 보안검색 때문에 유색인이라는 이유로 별도 보안검색을 받아야만 했던 불편함에 다시 분노하던 기억도 생생합니다. 하지만 정작 사건을 일으킨 이슬람단체와 관련이 있는 나라의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했을까 하는 의문을 가져보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9.11테러사건을 전후하여 미국에서 생활한 파키스탄 청년의 의식이 변하는 과정을 솔직하게 그리고 있는 파키스탄 출신 작가 모신 하미드의 소설 <주저하는 근본주의자>를 읽으면서 이슬람교도, 혹은 9.11테러사건이 이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가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뉴욕 월드트레이드센터 쌍둥이 건물이 하나둘 무너지더군요. 그때, 나는 미소를 지었어요. 그래요. 혐오스럽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의 첫 반응을 놀랍게도 즐거움이었어요.(67쪽)” 소설의 주인공 찬게즈는 왜 그랬을까요? 희생자들이 발생한 것에 대한 가학적 사고의 결과라기보다는 누군가가 그렇게 가시적으로 미국의 무릎을 꿇렸다는 사실에 그랬다는 것입니다.

 

엄청난 테러공격을 받은 미국의 입장에서는 분통이 터질 노릇이고 쉽게 이해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아무리 세월이 흘렀다고는 해도 이런 생각을 직설적으로 토로하는 작품을 내놓은 작가의 대담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주인공은 같이 일하는 미국인 동료들을 의식하여 외양으로는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고 적었지만, 종국에는 근무하던 회사를 그만두고 고국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그 배경에는 꼭 9,11사건만이 배경이 되었던 것은 아니고 에리카와의 굴곡진 사랑과 이별이 또 다른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라고 보입니다.

 

소설은 인도의 펀자브지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파키스탄의 동쪽 끝 국경도시 라호르에 있는 어느 레스토랑에서 만난 미국남자에게 미국에서 보낸 자신의 젊은 시절을 회상하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이야기를 하는 사이사이 두 사람의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현재형으로 섞고 있는 독특한 형식입니다. 찬게즈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남자인 것은 양복을 입고 짧게 깍은 머리에 우람한 가슴을 가졌다고 적고 있어 눈치를 챌 수 있습니다.

 

이슬람 근본주의자의 생각에 대한 부분이 눈길을 끄는 점이라고는 하지만, 주인공 찬게즈가 프린스턴대학을 졸업하고 주로 기업체에 컨설팅을 전문적으로 해주는 언더우드샘슨이라는 회사에 취직하여 발군의 업무처리능력을 발휘하면서 한편으로는 졸업 무렵 그리스여행길에서 만난 에리카와 사랑이 시작되어 끝나기까지의 과정이 큰 줄거리를 이루고 있습니다.

 

세상이 넓은 만큼 사람들도 다양하겠습니다만, 밖으로는 외향적으로 비치는 에리카는 사랑하던 이가 폐암으로 사망한 다음 그 사람과의 추억에 묶여 마음이 닫혀 있는 여성이기도 합니다. 한편 저자는 찬게즈의 성품은 에리카의 시선을 통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나는 내 또래에서 당신처럼 예의 바른 사람을 만난 적이 없는 것 같아요. (…) 지루한 예의바름 말고요. 정중한 예의 바름 말이죠. 당신은 사람들에게 공간을 줘요.(26쪽)” 회사에서도 상사에게 신뢰감을 주는 타입이라는 것입니다.

 

찬게즈와 에리카의 사랑이 왜 이루어지지 못했는지는 미스터리한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의 사이가 가까워지면서 에리카의 정신적 갈등이 심화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점에 대하여 작가는 속시원하게 풀어놓지 않고 독자의 상상에 맡기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원제목 <The Reluctant Fundamentalist>를 <주저하는 근본주의자>라고 번역하여 제목으로 하고 있습니다. 사전에서 ‘reluctant’는 마음 내키지 않는, 마지못해 하는, 달갑지 않은 등의 뜻을 가지고 있고 reluctant dragon이라는 관용어를 ‘충돌을 피하려고 하는 지도자’라고 옮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reluctant'에는 고어로 반항[저항]하는, 다루기 힘드는 등의 의미가 있어 다소 의미의 차이가 있다고 보입니다. 일독한 느낌으로는 옮긴 제목처럼 주인공이 이슬람 근본주의자라고까지 할 정도로 교리에 철저한 것으로 보이지 않으나 종국에는 칠레 출장길에 피상담자와의 접촉이 계기가 되어 회사를 정리하게 되는 것으로 보아 주인공의 행동이 미지근한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미국에서 일어난 사건을 제3세계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독특한 경험이 되는 책읽기였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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