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크리스 임피 지음, 이강환 옮김 / 시공사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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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을 여는 날, 인터넷신문 프레시안은 ‘빅 히스토리’를 주제로 하여 진화생물학자 장대익교수님, 역사학자 조지형교수님, 그리고 천문학자 이명현 위원님이 함께한 ‘과학수다’를 강양구기자님이 정리하였습니다(http://blog.joinsmsn.com/yang412/13042159). 물론 다양한 분야에서 크고 작은 역사가 있을 수 있습니다만, ‘빅 히스토리’라고 하니 생경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빅 히스토리’를 ‘거대사’사로 번역하여 소개한 조지형교수님은 개인사, 가족사, 지방사, 민족사, 지구사, 자연사, 우주사 등 세상의 모든 것이 가지고 있는 나름의 역사를 가능한 가장 크고 넓은 관점에서 보자고 하는 것이 ‘빅 히스토리’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빅 히스토리는 세상의 모든 것이 어떤 관계를 갖고서 상호 연결되어 있는가를 다루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빅 히스토리 안에는 우주의 역사, 생물의 역사, 인간의 역사가 다 들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빅 히스토리를 따라 거슬러 올라가면 우주의 시원에 이를 수밖에 없습니다. 개념적으로 보면 요즈음에는 융합이라고 정리되고 있는 학문의 통섭을 역사분야에 적용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여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물론 한때의 유행으로 끝날 수도 있겠지요.

 

칼 세이건과 앤 드루얀의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 http://blog.joinsmsn.com/yang412/12597810>와 이브 파칼레의 <신은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http://blog.joinsmsn.com/yang412/12894271>에서 인류가 진화해온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지구와 우주의 시원까지 설명하고 있어 빅 히스토리의 전형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들 책에서도 우주의 시원에 관한 이야기는 인류의 진화과정을 뒤쫓는 과정의 일부로 다루어져, 개략적인 개념을 맛볼 수는 있었지만, 보다 심화된 내용이 아쉽다고 느꼈습니다. 예를 들면,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에서 저자들은 우주가, 태양이, 그리고 지구가 태어나는 모습을 아주 간략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아득한 과거에 태양도 지구도 없었던 때가 있었다. (…) 기체와 먼지의 거대한 덩어리가 자체 중력으로 급속히 붕괴하면서 점차 빠른 속도로 회전함에 따라, 혼돈과 같이 불규칙하던 구름이 점차 질서정연한 얇은 원반형 구조로 변해간다. (…) 천체 형성의 모태가 되는 회전하는 원시 원반은 은하계 속에 펼쳐져 있는 광대한 성간진공에 잠재하는 희박한 물질들이 모여 형성된다.”

 

그런가 하면 이브 파칼레는 우주의 기원 빅뱅으로부터 태양계의 탄생에 이르기까지 적지 않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습니다만, 자연철학을 전공한 저자가 천문학을 비롯하여 물리학, 분자 생물학, 진화 생물학, 진화 심리학, 인류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오랜 세월 쌓아올린 연구 성과를 인문학자의 시각에서 사유한 결과를 풀어내고 있어 역시 꼬집어 말할 수 없지만 미묘한 아쉬움을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끈이론을 연구하는 과학자 그룹을 이끌고 있는 스탠퍼드 대학교의 레너드 서스킨스 교수는 <우주의 풍경; http://blog.joinsmsn.com/yang412/12797504>을 통하여 우주를 이루는 기본물질은 어떻게 만들어졌고, 이들이 초미세하게 조정되어 우주가 시작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우주의 풍경>에서 우주를 이루는 기본물질인 소립자와 이들의 상호작용을 설명하는 수학적 함수와 관련된 물리학적 모형이 1차원의 끈이라는 주장을 설명하고,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우주와 우리가 알고 있는 물리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는 우주 이외의 우주가 실재한다는 다중우주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풍경개념과 메가버스의 개념을 이끌어낸 끈이론에 따르면 우주에는 수학적으로 모순이 없고, 우아하고 유일한 이론으로 설명할 수 우주는 10,500개나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서스킨스교수의 주장은 끈이론을 바탕으로 한 설명이란 점을 유념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회의주의자들은 양자역학이나 대폭발 우주론의 이론이 확실한 근거 위에 세워진 정상과학으로 인정하고 있는 반면, 초끈 이론이나 인플레이션 우주론은 아직은 이론적 근거가 부족한 주장으로 분류되고 있기 때문입니다.(마이클 셔머 지음, 과학의 변경지대; http://blog.joinsmsn.com/yang412/12502415)

 

<세상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는 천문학자가 쓴 우주의 시원에 관한 설명을 담고 있습니다. 우주생물학자이며 아리조나대학교 천문학과 교수인 크리스 임피교수는 ‘세상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하는 의문에 답을 하기 위하여 책을 썼다고 했습니다. 저자의 말대로 “(우주의 시작이라고 하는) 빅뱅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우리는 어떻게 우주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요?”

 

저자는 서문에서 “나는 미로 속의 미로를 생각했다. 과거와 미래, 그리고 별까지 어찌 이어지는 복잡한 미로를”이라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자연과학을 하시는 분들이 풍부한 인문학적 소양을 담은 책을 좋아합니다. 딱딱할 수 있는 자연과학의 성과가 독자들에게 보다 쉽게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보르헤스의 작품들 가운데 미로를 모티프로 한 것이 적지 않습니다. 저자가 인용한 보르헤스의 말을 찾으려고 <픽션들; http://blog.joinsmsn.com/yang412/12878043>과 <알레프; http://blog.joinsmsn.com/yang412/12879477>를 다시 읽어보았지만 임피교수가 인용한 문구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1899년 태어나 1986년 사망한 보르헤스가 작품을 통하여 다중우주의 개념을 다루었다는 점이 놀랍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보르헤스는 단편 ‘바벨의 도서관’에서 “다른 사람들이 ‘도서관’이라고 부르는 우주는 육각형 진열실들로 이루어진 부정수, 아니, 아마도 무한수로 구성되어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알레프, 97쪽)

 

임피교수는 가까운 달을 거쳐 태양계여행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이들 행성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데, 지속적인 충돌 암석핵이 만들어지고 여기에 주변에 있는 수소와 헬륨을 끌어 모아 거대한 기체행성을 만들었다는 핵부착이론이라는 표준이론이 있고, 거대한 기체행성들이 기체 원반 안에서 중력 씨앗을 중심으로 바로 수축하여 만들어졌다는 중력수축이론이 경쟁하고 있다고 합니다. 여기에 더하여 천문관측결과를 토대로 모성(母星)이 없이 독립적으로 기체와 성간 먼지구름에서 만들어진 다음 항성계에 편입되는 경우도 있다는 새로운 학설이 제기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카오스는 행성계의 기본적인 성질이지만 태양계는 이미 수십억년 동안 안정된 상태이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 세상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절대 알아낼 수 없다고 합니다. 다만 태양계 밖에서 새롭게 만들어지는 항성계를 관측한 결과로 유추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1부에서 ‘가장 가까운 이웃’이라 할 태양계를 벗어나면서 저자는 별들의 모임인 은하에 대한 설명으로 2부 ‘멀리 있는 세계’를 시작합니다. 풍부한 사진자료는 이 책의 특징 가운데 하나입니다. 은하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저자는 허블 우주망원경으로 찍은 소용돌이 은하(M51)의 정면사진을 싣고 있습니다. 별들이 거대한 소용돌이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모습은 손바닥만한 사진으로 보아도 전율을 느낄만합니다. 우리 은하를 포함한 나선은하는 형태가 없는 기체 구름에 중력이 작용하여 만들어졌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우주의 구조를 설명하는데, 현 시점에서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과학적 증거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3부에서 빅뱅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만, 팽창하는 우주의 변두리, 즉 처음 우주가 열리는 시점에 만들어진 별에서 나온 빛을 우리가 볼 수 있을까요? 그리고 우주는 얼마나 빠른 속도로 팽창하고 있을까요? 만약 우주가 빛보다 빠른 속도로 팽창하고 있다면 우리는 결코 최초의 빛을 볼 수 없는 것 아닐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현대 우주론에서 망원경은 타임머신이고 천문학자들은 우리의 기원을 찾아서 과거를 탐색하는 시간여행자들이다.(253쪽)”라고 합니다. 빅뱅이론은 관측을 통하여 얻은 결과들과 1964년 확인된 우주 배경복사를 통하여 우주의 기원과 진화를 설명하는 가장 훌륭한 이론으로 자리매김이 되었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랄프 알퍼, 로버트 허먼과 협력하여 빅뱅 핵합성(BBN)을 소개한 조르주 르메트르는 가톨릭교회의 사제였다는 점입니다.

 

빅뱅이론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우주의 모든 물질이 한 점에 집중되어 있다가 확산을 시작한 우주의 기원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가 진화해가는 과정을 제대로 묘사할 수 있다는 점에 무게를 두어야 한다는 저자의 설명을 이해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것은 허블팽창, 은하와 퀘이사의 진화, 가장 결정적인 초단파 우주 배경복사, 그리고 우주 가벼운 원소들 특히 헬륨의 양이 빅뱅이론을 지지하는 근거가 되고 있는 반면, 몇 가지 문제와 한계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주가 왜 편평한지, 왜 매끄러운지, 왜 고르지 않은지, 우주에 이상한 입자들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 우주가 왜 팽창하고 있는지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왜 우주에 복사가 많고, 물질은 조금밖에 없고, 반물질은 사실상 거의 없는지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천문관측의 결과 빛의 적색편이를 조사해보면 우주가 가속팽창하던 시기가 있었는가 하면 감속팽창하던 시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우주의 가속팽창은 중력에 반대되는 암흑에너지가 작용하여 시공간을 빠르게 팽창시키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것 이외에는 알려진 바가 없다고 하니 우주물리학의 한계라고 하기보다는 현재의 수준에서 관측의 한계라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저자들은 “우리가 관측 가능한 우주의 크기는 얼마나 될까?”하는 의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답을 내놓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우주의 끝은 우주가 시작된 이후 빛이 여행한 거리와 같다. 이것은 137억년이 아니다. 그것은 우주가 정지해 있을 때의 값이다. 그 계산에는 감속되었다 가속된 우주 팽창의 역사가 포함된다. 우주는 지난 137억년 동안 풍만하고 관능적인 모습을 드러내왔다. 그 결과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경계까지의 거리는 약 460억 광년으로 허블 공간까지의 거리보다 3배나 더 멀다. 우주론에서는 이것을 입자의 지평선이라 부른다.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정보의 한계지점이다.(289쪽)” 우주의 역사는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137억년의 3배가 넘는 460억년이라는 것입니다.

 

저자는 “현실과 비교해보면 우리의 모든 과학은 원시적이고 유치하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가 가진 가장 소중한 것이다.”라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말을 인용하여 우리의 과학은 아직 성숙하지 못했지만 인류는 아직 젊은 종족이고 우리의 여행은 이제 시작한 것이라고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바로 각 장의 앞뒤에 있는 짧은 글입니다. 처음에는 무슨 내용일까 싶습니다만, “고향의 현재 모습보다는 과거의 모습을 볼 수밖에 없는, 점점 먼 곳으로 여행하는 사람의 모습을 시각화 한 것”이라는 저자의 설명을 읽으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크리스 임피교수가 안내하는 우주의 시원으로 가는 여행은 그의 풍부한 인문학적 소양을 덕분에 유익하고 재미있었다고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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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소설 전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0
이상 지음, 권영민 엮음 / 민음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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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 300번째 작품으로 선정된 <이상 소설 전집>에는 이상이 남긴 열 세편의 소설을 모두 수록하고 있습니다. 작품들은 <지도의 암실, 1932> <휴업과 사정, 1932> <지팡이 역사, 1934> <지주회시, 1936> <날개, 1936> <봉별기, 1936> <동해, 1937> <종생기, 1937> <환시기, 1938> <실화, 1939> <단발, 1939> <김유정, 1939> <십이월 십이 일, 1920>의 순으로 수록되어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작품들은 발표된 순서대로 수록되어 있지만 유독 이상의 첫 번째 소설인 <십이월 십이 일>을 제일 끝에 두고 있다는 점입니다.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153쪽이나 되는 부피때문이었을까요?

 

제목을 살펴보니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116쪽)”로 끝나는 <날개>를 제외하고는 읽은 기억도 내용을 들은 적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근대문학작품들을 천착해보지는 못했지만 읽는 흉내는 내보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제 자신이 부끄러워졌습니다.

 

한편으로는 지금으로부터 백여년 전 사람들의 삶을 읽어낼 자신이 없었던 지, 첫 작품을 읽기 전에 작품해설을 먼저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제 기억에도 작품해설을 먼저 읽는 책읽기를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작품을 옮기신 권혁민교수님은 작품해설의 모두에 이상의 작품 <십이 월 십이 일>의 한 구절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나는 죽지 못하는 실망과 살지 못하는 복수, 이 속에서 호흡을 계속할 것이다. 나는 지금 희망한다. 그것은 살겠다는 희망도 죽겠다는 희망도 아무 것도 아니다. 다만 이 무서운 기록을 다 써서 마치기 전에는 나의 그 최후에 내가 차지할 행운은 찾아와 주지 말았으면 하는 것이다. 무서운 기록이다. 펜은 나의 최후의 칼이다.(397쪽)” 스무살 청년 이상이 최후의 칼인 펜으로 기록해낸 무서운 소설을 통하여 후세에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요?

 

이상이 살았던 시절은 조선왕조의 봉건통치가 일제의 식민지배로 이어지면서 대중의 삶은 여전히 피폐한 상황이었습니다. 이상의 소설작품은 별나지 않은 사람들의 하찮아 보이는 일상들이고 그 일상들은 특별한 사건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시나브로 마무리되는 것 같습니다. 기승전결이 없는 탓인지 읽으면서 손에 땀을 쥐게 하거나 가슴이 조이는 듯한 긴장감을 느낄 겨를조차 없어 맥이 빠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꼭 짚고 싶은 것은 요즈음 우리 사회에서도 있을까 싶은 복잡해보이면서도 대범해 보이는 인간관계가 그때 당시에는 과연 가능했을까 싶은 부분입니다. <동해>에 등장하는 화자와 윤(尹) 그리고 임(姙)이의 노골적인 삼각관계. 그런가 하면, “영원히 선생님 ‘한 분’만을 사랑하지요. 어서 어서 저를 전적으로 선생님만의 것을 만들어 주십시오. 선생님의 ‘전용(專用)’이 되게 하십시오(167쪽).”라는 편지를 보낸 <종생기>의 정희가 사실은 S와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것을 알고서는 무너지는 자신을 버텨보려 안간힘을 쓰기도 하고...

 

밝아 보이지 않는 그의 작품들에서 언뜻 죽음의 그림자가 읽히기도 합니다. 실제로 <단발>에서는 선이와 동반자살을 그리면서도 그녀가 수락할 것 같지 않아 “혼자 죽을 수양을 허지”라고 스스로를 달래기도 하지만 사실은 “죽음은 식전의 담배 한 모금보다도 쉽다. 그렇건만 죽음은 결코 그의 창호를 두드릴 리가 없으리라고 미리 넘겨짚고 있는 그였다.(223쪽)”고 미리 못박고 있는 것으로 보아 스스로의 목숨을 버리는 만용은 부리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을 해봅니다.

 

이상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요즈음에도 만날 수 있으려나 생각을 해보면 사람 사는 것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워낙 사람들의 삶이라는 것이 다양할 수 있으니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을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초벌 읽기에서 작품 속에 쉽게 녹아들지 못했다는 느낌이 강하게 남는 책읽기였습니다. 주인공을 비롯한 등장인물이 생경해보인 탓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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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탄생 - 윌리엄 캘빈이 들려주는 인간 지능의 진화사 사이언스 마스터스 12
윌리엄 H.캘빈 지음, 윤소영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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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캘빈교수의 <생각의 탄생>을 읽기 시작하면서 든 의문은 “생각이란 무엇일까?”였습니다. 옮긴이는 “이 책은 뇌에서도 특히 대뇌 반구와 관련있는 생각 그리고 지능이 어떻게 기능하는가 하는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다.(5쪽)”고 적고 있어 쉽게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부풀리게 만들었습니다. 실제로 2장 ‘만족스러운 추측의 전개’에서는 제임스 굴드와 캐럴 그랜트 굴드가 쓴 <동물의 마음>에 나오는 “선천적인 정보 처리과정, 본능적 행동, 내적 동기와 본능적 욕구, 선천적으로 유도되는 학습, 이 모든 것은 분명 동물의 인식 능력 범위에서 가장 본질적이고도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생각이나 판단, 결심과 같은 우리 정신활동의 보다 심원한 영역을 이루고 있다고는 볼 수 없다. 그렇다면 생각은 무엇일까?”라는 구절을 인용하고 있지만, 생각이 무엇인지 똑 떨어지는 답을 찾을 수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저자가 에둘러 설명하고 있는 인간의 지능과 언어능력, 기억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 생각일까요?

 

몇 가지 힌트를 모아보면, 2장을 통하여 저자는 인간의 지능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은 학습속도가 빠르다는 점, 유연성과 창조성이라는 점, 논리적으로 추론한다는 점, 미래에 대하여 세세하게 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점 등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3장에서 “자신이 보았다고 생각한 것의 일부는 실은 기억으로 채워진 것이다.(85쪽)”는 구절을 읽을 수 있습니다. 5장의 제목은 '지능의 토대로서의 통사론‘입니다. 여기에서 저자는 “통사론이 사람다운 지능을 판가름한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통사론이 없다면, 우리는 침팬지보다 영리할 것이 없다.(128쪽)”고 잘라 말하고 있습니다. 즉 언어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이며, 생각의 경계를 확산시키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이라고 보는 것 같습니다.

 

‘끊임없이 진행되는 진화’라는 제목의 제6장에서 저자가 남겨놓은 결정적 단서를 놓칠 뻔 했습니다. “사고는 감정과 기억의 조합으로 나타난다. 아니, 어떻게 보면 생각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그리고 어쩌면 결코 일어나지 않을) 움직임이다. 생각은 대부분 순식간에 덧없이 흘러가 버린다.(211쪽)” 그리고 보면 저자가 사용한 사고(思考)라는 단어가 바로 생각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서 기억에 대하여 강조한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는 장기기억이 ‘시’공패턴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 공간패턴이 시공패턴으로 전환되는가를 가르쳐 주는 많은 사례를 알고 있다. (…) 단기 기억은 활동중인 시공패턴(심리학 문헌에서 ‘일하는 기억’으로 일컬어지는 것)일 수도 있지만, 순각적이며 공간적이기만 한 패턴 일 수도 있다.(215쪽)”

 

제7장 ‘지적 행동의 진화에서는 대뇌 피질의 뉴런의 활동으로 기억이 저장되는 과정을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지능과 언어의 비약적 발전을 불러일으켰을 후보들을 가지고 있다. 다윈기계 그리고 피질과 피질 사이의 연결이 그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약 25만년 전, 혁신이 어려운 호모 에렉투스 문명이 호모 사피엔스의 끊임없는 변화하는 문명으로 진화하도록 한 동인이었을 수 있다.(281쪽)” 즉 신경세포가 담겨 있는 대뇌피질의 용적이 커지고 신경세포들 사이의 네트워크가 복잡해져 상호작용의 종류가 다양해진 것이 결정적이었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는 설명입니다.

 

정리를 해보면, 저자는 인간의 삶이 다른 동물들과 달라질 수밖에 없었던 근본적인 원인, 즉 ‘생각’이란 지적 활동이 탄생하게 된 원인을 추적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인문학적 자료들을 인용하여 독자의 생각의 날개를 펼쳐나갈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혹시 지나치게 현학적이라는 느낌을 가지는 분도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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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를 따라 산을 오르다 - 조선 선비들이 찾은 우리나라 산 이야기
나종면 지음 / 이담북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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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 산에 최초로 도전했던 미국의 산악인 조지 맬러리는 1924년 필라델피아에서의 한 강연회에서, “당신은 왜 위험하고 힘들어 죽을지도 모르는 산에 갑니까?”라는 어느 부인의 질문에, “산이 그곳에 있어 오른다(Because it is there)”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보니 산에 가는 일을 ‘등산’, 높은 산에 오르는 일을 ‘정복’했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산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산을 무서워할 줄 알아야 한다’고도 말씀합니다. 어느 쪽이 맞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가까운 야산의 작은 오솔길을 즐겨 찾는 수준에 만족하고 있는 저는 ‘산에 든다’고 적기도 합니다.

 

산수를 즐기셨다는 우리네 선조들께서는 산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셨을까 궁금합니다. 이미 8세기 초에 혜초대사께서 천축국까지의 여행길을 <왕오천축국전>에 기록하셨던 것을 보면 보고 들은 것을 기록으로 남기는 전통이 우리의 핏속에 면면히 이어져왔을 터입니다. 마침 한국학을 연구하시는 나종면박사가 쓴 <선비를 따라 산을 오르다>를 통하여 산에 대한 조선 선비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연전에 부안문화원이 임진왜란 직후인 17세기 초 문인 심광세의 유변산록(遊邊山錄)과 17세기 문인 김서경의 송송사상유변산서(送宋士祥遊邊山序) 그리고 19세기말 소승규의 유봉래산일기(遊蓬萊山日記)를 묶은 <유봉래산일기; http://blog.joinsmsn.com/yang412/11202235>를 읽으면서 조선 선비들의 유람이 어떠했다는 것을 엿볼 수 있었던 것을 조금 더 심화시켜 이해하는 계기가 될 것 같습니다.

 

사실 조선 시대 선비들의 산수유람은 독서를 중심으로 정진하던 전대의 수양방법론에 변화가 일어 몸으로 직접 경험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생겨난 결과였다고 합니다. 머리를 쥐어짜서 상상의 날개를 펼쳐 글을 짓는 것과는 달리 직접 산천을 유람하면서 사물을 눈으로 보고 느낀 바를 글로 적어내는 훈련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었습니다.

 

한자문화권에서는 기행문을 유기(遊記)라는 이름의 산문형식으로 남겼는데, 글쓴이가 자신의 여행일정을 중심으로 하여 행로에서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하고, 산천경계를 묘사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기행문은 그곳을 찾아가 보려는 사람들에게는 안내서가 되고, 찾아가기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읽을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소승규는 유봉래산일기에서 “뒷날 누워서 산수를 유람하는 읽을거리로 삼고자(와유; 臥遊)” 변산기행을 글로 남긴다 하였습니다. 이 책을 옮기신 허경진교수는 각주에서 송서(宋書) 종병전(宗炳傳)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종병이) 병이 들자 강릉으로 돌아와서 탄식하며 생각했다. ‘늙음과 질병이 함께 이르렀으니, 이름난 산들을 두루 구경하기 어렵겠구나. 이제는 마음을 맑게 하고 도를 살피며, 누워서 즐기는 수밖에 없겠다.’ 그리고서는 자신이 다니며 노닐었던 산들을 모두 방 안에 그려 놓았다.(유봉래산일기, 115쪽)” 사실은 저 역시 외국을 여행하게 되면 출발 전부터 여행과 관련된 일들을 정리하고, 여행을 하면서 보고 들은 이야기 거리를 정리해오고 있습니다. 꼭 누군가에게 읽히고 싶다기보다는 훗날 다시 꺼내 읽으면서 기억을 되살려보려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나종면박사님은 <선비를 따라 산을 오르다>에 백두산, 금강산 등 조선의 명산이라 할 만한 곳을 포함하여 스물 세 곳의 산에 대한 조선 선비들의 유기(遊記)를 살펴, 산에 드는 선비들의 마음가짐과 그분들이 산수를 그려낸 솜씨를 우리 시대에 맞게 옮기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정조 때 문인, 문무자 이옥이 중흥유기(重興遊期)에 적은 산행에 관한 재미있는 계율도 있습니다. “도성의 문을 나서며 삼장의 법을 세웠다. 첫째, 시에 대한 규율이다. 둘째, 술에 대한 규율이다, 셋째 몸가짐에 대한 규율이다.(30쪽)” 조선 선비들의 산수유람은 단순히 산을 오르내리는 일에 그친 것이 아니라 산수 속에서 심성을 도야하였으며, 관리생활을 하면서도 동경했던 은일의 세계를 즐기기 위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속리산 문장대에 오른 정조 때 문인 지암 이동항은 “천리를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한껏 다 바라보아서 속세의 티끌과 먼지들이 가득했던 가슴을 씻어내었으니, 이것이 내가 대에 올라온 목적이다.(109쪽)”라고 소감을 남기고 있습니다.

 

산수유람은 뜻이 통하는 몇몇이서 술과 음식을 챙겨 종자에게 지우고 나서게 되는데, 산수가 좋은 곳에 머물면서 술과 음식을 즐기면서 돌아가면서 시를 지어 부르기 마련입니다. 집나가면 개고생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습니다만, 문무자 이옥의 설명에 따르면 조선의 선비들의 유람길 준비도 만만치 않았던 모양입니다. “나귀나 말 한 필, 동자로서 행구를 가지고 갈 종자 한 명, 짚는 척촉장 하나, 호리병 하나, 표주박 하나, 반죽 시통 하나, 통속에는 우리나라 사라의 시권 하나, 채전축 하나, 일인용 찬합 하나, 유의 한 벌, 이불 한 채, 담요 한 장, 담뱃대 하나, 길이가 다섯 자 남짓한 담배통 하나를 준비했다. (…) 오리쯤 가서 다시 생각해보니 잊은 것이 붓과 먹과 벼루였다.(16쪽)”

 

소승규의 유봉래산일기(遊蓬萊山日記)의 경우 1897년 4월 16일부터 5월 5일까지 19일 동안 부안의 변산을 유람하면서 기록한 기행문인데, 산수의 유려함을 기록하는 한편 동행했던 소초 김은학과 동운 황치경 등 3명이 번갈아 지은 여든 세편의 시를 수록하고 있습니다. 난곡 소승규가 변산 채석강에서 지은 시를 소개하면,


백구야 훨훨 날지 마라

너 잡을 내 아니로다.

나 또한 욕심을 잃은 지 이미 오래니

강호 어느 곳 경치가 가장 좋던가.

白鷗翩翩莫飛去, 捕爾者非我(백구편편막비거, 포이자비아)

我亦忘機今己久, 江湖何處景最好(아역망기금기구, 강호하처경최호)


동행하는 선비들이 돌아가며 시를 짓는 경우에는 미리 떼어둔 운을 맞추어 지었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시를 지을 때나 산수를 묘사할 때도 고금의 예를 인용하는 것을 보면 좋은 글쓰기는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주영숙교수님이 연암 박지원의 산문을 엮은 <눈물은 배우는 게 아니다; http://blog.joinsmsn.com/yang412/13020858>의 ‘붉은 깃발을 세우라’는 제목의 글에서는 ‘병법을 이해하는 사람이 글을 잘 지을 것’이라 하였습니다. ‘글자는 군사요, 글 뜻은 장수요 제목은 적국이다’라고 시작하는 짧지 않은 비유는 물론 ‘글 짓는 자의 걱정은 항상 갈피를 잃고 헤매거나 요령을 얻지 못하는 데에 있다.(눈물은 배우는 것이 아니다, 197쪽)’고 정리한 점까지도 쉽게 공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단 한 토막의 말일지라도 정곡 찌르기를 눈 오는 밤 채주에 쳐들어가듯이 할 수 있어야 한다.’거나, ‘ 또한 딱 한 마디 말로 핵심 뽑아내기를 세 번 북을 울리고 관문을 빼앗듯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은 당나라 헌종 때 장수 이소의 전략이나 춘추시대 노나라 장공 때 사람 조귀의 전략을 모르는 독자라면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연히 독자를 위하여 설명을 더하는 친절을 베풀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고문학이 어렵다는 일반의 생각은 인용하고 있는 고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면 조선의 선비들의 산수유람에 따라 나서 볼까요? 요즈음이야 산에 든다고 하면 복장과 각종 장비를 갖추고 걸어 올라갈 생각을 합니다만, 조선의 양반님네들은 걸어가는 법이 없고 종자나 승려가 들어주는 남녀를 타고 가기 마련이라서 양반들의 고상한 취미는 이들의 위태롭고 힘든 노동이 뒷받침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도 산세가 험해지기 전까지는 어려움이 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옛사람의 산행기는 요즈음 사람들과는 달리 산의 초입에서부터 상세하게 그려나가기 시작하는 점이라고 합니다. 옥오재 송상기가 남긴 유계룡산기(遊鷄龍山記)에서는 동학사의 초입의 동구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동구에 들어서자, 한 줄기 시냇물이 바위와 수풀 사이에서 쏟아져 나와, 혹은 바위에 부딪혀 격하기 튀어 뿜어 나오듯 흩어지기도 하고, 혹은 널찍하게 깔려서 잔잔하게 흐르기도 하며, 빛깔은 하늘처럼 푸르다. 바위 빛깔도 역시 창백하여 사랑스럽다. 좌우의 단풍나무 붉은색과 소나무의 비췻빛은 그림처럼 점철되어있다.(101쪽)”

 

이와 같은 산의 초입에 옛사람들의 관심이 지금과 다른 이유를 남종면박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옛사람들의 입산은 산의 입구에서부터 이루어진다. 평지와 산이 만나는 접점, 즉 산의 입구를 초도(超道)라 부르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저 현실세계[속세]의 넝쿨처럼 질기게 얽힌 인연[반연(攀緣)]을 뛰어넘어야만 올바른 수양이 시작된다고 본다.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냄새나는 것, 느껴지는 것을 억지로 차단하지 않아도 초도를 지나는 것 자체가 외부를 차단하며 끊는 것이다.(18쪽)” 당연히 산의 초입에서부터 마음을 다듬어 산에 서려있는 신령한 기운을 온몸으로 받아들일 준비를 하였을 것입니다.

 

슬로우 어답터라고 할 수 있는 저는 아직까지도 금강산구경을 해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당 이상수의 동행산수기(東行山水記)를 더욱 꼼꼼히 읽었는지도 모릅니다. 금강산을 돌아 배를 띄우고 해금강까지 돌아본 어당이 해금강의 수려한 풍광을 세세하게 묘사한 끝에 “하늘의 신기한 기운이 세차게 달려 동으로 모여들어 만 이천 봉우리를 크게 벌이어 놓고 바다에 닿아서 끝이 나며 그 나머지로 기교를 베풀어 놓은 것이 의당 이와 같다.(172쪽)”고 하였으니 그저 읽는 것만으로는 양에 차지 않음을 절감하게 됩니다.

 

여기 더하여 저자는 어당이 산수를 오래 관찰하여 사색하여 내린 다음과 같은 결론을 전하고 있습니다. “산수란 자신의 마음에 따라 만 가지 모습으로 보일 수가 있다 이미 자신의 칠정(七情)이 변한 상태에서 산수를 보면 산수도 칠정에 따라 변한다. 산수는 미추(美醜)가 없으므로, 자신의 감정을 개입하지 않는 평정 상태를 가져야 한다. 그러므로 산수는 스스로 신령해질 수 없다. 산수는 사람이 신리(神理)로 만나는 것이다. 산을 온전히 보고자 한다면, 다가가서 그 골체(骨體)를 보고 떨어져서 그 신리를 보아야 한다. 마주 보고 등짐에 따라 취(趣)와 태(態)가 모두 다르니, 높은 안목과 세심한 마음으로 품평을 정밀히 해야 한다. 또 부족한 점을 알아야 하고, 빼어난 곳을 지날 때면 그 요점을 터득해야 할 뿐이다. 갑자기 매우 장대한 것을 보았다고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된다.(173쪽)” 어떻게 공감이 되십니까?

 

제가 미국에서 공부할 때 사우스다코타주에 있는 배드랜드(Badland) 국립공원을 세 차례나 방문하였습니다. 구경할 곳이 많은 탓에 같은 곳을 두 번 볼 여유가 없던 시절인데 유일하게 반복해서 찾은 곳이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맑은 날 황혼 무렵에 처음 찾은 배드랜드는 넓게 펼쳐진 초원 한 복판에서 갑자기 드러나는 황량한 모습으로 나타나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리도 그 충격은 근처를 지나는 여행일정을 짤 때마다 발길을 당겨, 한번은 맑은 날 아침 무렵에, 그리고 한 번은 안개가 자욱한 날에 이곳을 더 찾게 만들었습니다. ‘산수란 자신의 마음에 따라 만 가지 모습으로 보일 수 있다.’고 한 어당의 말씀과는 달리 배드랜드는 다양한 분위기를 스스로 연출한다고 느꼈던 것 같습니다. 다시 배드랜드를 찾게 된다면 어당의 말씀을 이해하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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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정의 역사 - 절대 측정을 향한 인류의 꿈과 여정
로버트 P. 크리스 지음, 노승영 옮김 / 에이도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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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시절이었으니 아마도 80년대 초반이었던 것 같습니다. 모시던 교수님께서 당시로서는 생소한 SI Unit 체계에 대하여 발표하시는 것을 지켜보았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새로운 것을 찾아 공부하시고 후학들에게 가르쳐주기를 즐겨하셨던 분입니다. <SI Unit>는 국제단위로 번역되는 불어 “Systeme International d'Unites”를 줄인 용어입니다. 각국에서 사용되고 있는 단위계를 서로 비교하는 번잡함을 피하기 위하여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단위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국제적 노력의 결과라고 하겠습니다. <측정의 역사>는 바로 이러한 국제적 노력의 과정을 모아서 정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척, 관 등과 같이 옛날부터 사용되어온 도량형을 대체하여 사용하고 있는 미터법이 바로 이 국제단위입니다. 도량형의 표준을 세우는 것은 상거래의 질서를 투명하게 하기 위한 중요한 정책적 수단이었던 것으로 권력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가름하는 중요한 정책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사실 난전에서 물건을 사면서 저울의 눈금을 속인다는 이야기를 흔히 들을 수 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국제단위의 핵심이 되는 미터법은 프랑스 혁명을 계기로 실현되었다는 것인데,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이전의 프랑스 사회는 도량형의 표준이 없어 상거래에서 불편이 가중되었고 사회적 혼란이 극심해지고 있어 프랑스 과학계에서는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도량형의 표준을 정할 필요성이 꾸준하게 제기되어 왔던 것인데, 프랑스 왕은 관습을 바꾸지 않으려는 관련 분야의 저항을 두려워하여 반대했던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프랑스 혁명을 계기로 하여 개혁세력이 힘을 얻게 된 것은, ‘영주가 기존 도량혈을 악용하여 농민들을 가혹하게 수탈했다고 성토하는 목소리가 고조되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과학아케데미에서 제안한 도량형은 ‘모든 시대를 위해, 모든 사람을 위해’ 고안된 것인데 길이와 무게의 표준을 자연표준에 연계했던 것입니다. 즉, “파리를 지나는 자오선의 4000만 분의 1로, 킬로그램은 물 1세제곱데시미터의 무게”로 정의되었고, 1799년 제작되어 프랑스 국가기록원에 보관된 에탈롱를 길이와 무게의 기준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미터법은 단순하고 합리적이었지만 프랑스에서 정착되는데도 수십년이 걸렸지만 점차 다른 나라에도 전파되었지만, 영국과 미국에서는 여전히 자국의 도량형을 표준으로 사용하면서 미터법을 병용하고 있는 정도에 그치고 있는 것은 국제단위로 변환하는데 투입되어야 할 재정적 부담과 독자적 도량형에 대한 자존심이 같이 작용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프랑스에서 시작한 미터법은 1875년 미터법에 대한 국제협약이 체결되면서 감독권한이 프랑스를 떠나 새로 설립된 국제기구, 국제도량형국으로 넘어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1879년에는 도량형원기가 제작되어 채택되어 국제도량형국은 원기를 관리하고 회원국의 부원기를 교정하는 임무를 맡는 한편 미터법을 시간과 전기 등의 영역으로 확대하여 MKSA 단위계를 확립하였습니다. 여기에 온도와 빛의 세기로 켈빈과 칸델라 그리고 1971년에는 몰이 일곱 번째 단위로 추가되었고, 뉴턴, 헤르츠, 줄, 와트 등의 기본단위에서 파생된 ‘유도단위’까지 정해졌습니다.

 

최초의 길이단위 미터가 파리를 지나는 자오선을 기준으로 삼았던 것처럼 임의의 기준을 적용했던 단위들을 자연에서 측정이 가능한 불변의 대상을 찾는 작업이 꾸준하게 이어져서 <측정의 역사> 290쪽에서 정리하고 있는 것처럼 길이는 진공 속에서 빛의 속력을 상수로 하여 정하게 되었고, 시간은 세슘 133 원자의 초미세갈라짐을 상수로 정하였으며, 국제질량원기를 상수로 하던 무게도 플랑크상수를 기준으로 바꾸게 되었다고 합니다.

 

단위는 필요해서 만든 것이며, 인간의 삶은 다양하고 끊임없이 변한다. 우스꽝스러운 단위는 측정행위가 얼마나 자의적인가를 풍자하고 조롱하고 드러내는 나름의 역할을 한다. 우리는 측정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하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좀처럼 인식하지 못한다. 측정체계가 주목받는 것은 무엇인가 문제가 생겼을 때 뿐이다.(199쪽)“라고 저자는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뒤에 미국의 대통령이 된 존 퀸시 애덤스는 “미터법은 인간의 창의력이 만들어낸 최고의 발명‘이라고 평했다고 하는데 정작 미국은 아직까지도 미터법을 표준도량형으로 채택하지 않고 있는 것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역자는 표준도량형은 만물의 언어로 통하게 되었지만, 보편성은 차별을 없애는 한편 차이까지 없었다면서 측정의 표준이 가지고 올 그 무언가에 대한 불안한 느낌을 적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정리해보면 국제단위가 탄생하게 된 역사적 흐름을 정리하고 있는데, 다소 산만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생소한 분야라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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