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우리를 진화하게 하는가 -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사람과 기술의 콜라보레이션
스티브 발머 외 지음, 서울디지털포럼 사무국 엮음, 방영호 외 옮김 / 알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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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사람과 기술의 콜라보레이션’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무엇이 우리를 진화하게 하는가>는 2012년 열린 서울디지털포럼에 참석한 연사들이 발표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2004년 처음 시작하여 지난해에 9회째 열렸던 서울디지털포럼은 디지털 시대의 흐름을 읽어내고 혁신을 이뤄낼 영감을 공유하며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기 위해 마련된 비영리 목적의 국제 포럼이라고 합니다.

 

TIME(Technology, Information, Media 그리고 Entertainment)산업과 주요 글로벌 이슈를 토대로 주제를 선정하고 세계 정상급 연사들을 초청하고 있는데, 초청연사들은 범세계적인 지식혁명과 산업의 변화에 대해 논의하고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고 합니다. 각계의 리더들이 미래를 읽는 혜안을 공유함으로써 이 시대의 지식격차를 해소하고 사회문제를 해결하며 경제발전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2012년 제9회 서울디지털포럼은 ‘공존-기술, 사람, 그리고 희망’이라는 주제로 열렸다고 합니다. ‘공존’이라는 단어를 읽으면서 최근 국내외로 화제가 되고 있는 아파트 층간소음으로 벌어진 참혹한 사건들이 떠오릅니다. 공존하는 방법을 잊어버린 현대인들이 만들어낸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공동주택에 사는 윗층 사람은 심야시간에는 생활소음을 줄이는 배려를 한다거나 아래층 사람 역시 자신도 다른 아래층에 피해를 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서 어쩔 수 없는 생활소음은 이해하는 아량을 베풀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도 저도 싫으면 공동주택이 아니라 생활소음을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고립주택으로 이사를 가면 될 일입니다.

 

이 책의 편집을 맡은 윈드호스 인터내셔널의 CEO 머렐라 크리스투우는 ‘90퍼센트를 위한 기술’이라는 제목의 서문에서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들이 세계 상위 10퍼센트에 해당하는 부자들을 위한 기술을 개발하는 데만 치중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상위 10퍼센트를 제외한 나머지 90퍼센트 사람들이 기술이 주는 이점을 누릴 때 비로소 그것의 진정한 가치를 실현했다고 할 수 있다(11쪽)”고 강조하였습니다. 특히 이번 포럼에서는 사회공동체의 정치적, 문화적, 환경적 조건을 고려해 해당 지역에서 지속적인 생산과 소비가 가능하게 만들고 인간 삶의 질을 궁극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적정기술’에 많은 관심이 쏠렸다고 정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25년 후에는 나머지 90퍼센트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대기업의 미래를 좌우하게 될 것으로 믿는 필자는 멀지 않은 미래에 나타날 세 가지의 특징을 소개하였는데, 첫째는 ‘나머지 90퍼센트 고객을 위한 비즈니스’이고, 둘째는 ‘기술의 소형화’와 ‘저가화’이며, 셋째는 ‘디지털 혁명’이라고 합니다.

 

모두 스물세명의 국내외 연사들이 발표한 내용이 ‘기술과 사람이 함께 가야 할 길’, ‘스마트 사회의 새로운 기회’, ‘넘쳐나는 정보의 무한한 가능성’, ‘놀이와 예술이 공존하는 콘텐츠의 미래’, ‘속도와 진정성이 공존하는 세상’이라는 5개의 주제로 나뉘어 있습니다. 아무래도 아날로그 세대에 가까운 저는 그럭저럭 따라가 보려 몸부림을 치고 있지만 빠르게 변하고 있는 디지털 혁명의 그림자마저 붙드는 일도 힘겨운 형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디지털 세계의 실체는 가늠조차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특히 버너 보겔스 아마존닷컴 부사장이 소개하는 빅데이터의 세계는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그는 현대과학은 현재 제4 패러다임 단계에 와있는데, 제1 패러다임에서 과학은 경험을 통해 증명이 가능했으며, 제2 패러다임에서는 과학이 이론으로 증명될 수 있었고, 제3 패러다임에서는 컴퓨터시뮬레이션을 통하여 증명하였는데, 제4 패러다임에 이른 오늘날 과학은 주변에서 관찰한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여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예측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연자들이 공존을 화두로 삼고 있는 것은 이번 포럼이 공존을 주제로 하고 있기 때문일 터인데, 주최측이 그 동안의 주제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비기술적 개념의 주제를 선정한 이유를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성’이라는 시대적 물결이 디지털 분야에 쪽에도 일종의 반성과 새로운 미션을 요구하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디지털 기술의 눈부신 발전이 과연 약속한 대로 우리의 삶을 행복하고 풍요롭게 만들어주고 있는가 반성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앞서 층간소음문제를 인용했습니다만, 우리 모두 같이 사는 세상이라는 점을 인식하는 일이 절실하다는 느낌이 드는 시점에 적절한 주제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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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 생명의 위기와 대안적 성찰 생명문화총서 3
서강대학교 생명문화연구소 지음 / 한국학술정보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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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주말 늦은 시간에 방영되는 <인간의 조건>을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잘나가는 개그맨 6명이 현대 문명의 혜택 없이 일주일을 어떻게 보내는지 밀착하여 관찰하는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입니다. 파일로트 프로그램 성격으로 방영될 때의 주제는 “휴대전화, 인터넷 , tv없는 생활”이었는데, 유선전화를 활용하면서 같이 지내는 멤버들 사이의 관계가 끈끈해지는 모습을 시청하면서 저 자신의 일상을 돌아보기도 하였습니다.

 

결국 정규방송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은 <인간의 조건>은 “쓰레기 줄이기”를 첫 번째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음식물 쓰레기를 포함한 일상의 모든 쓰레기를 줄이는 생활에 들어가기에 앞서 보여준, 여섯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배출하는 엄청난 양의 쓰레기들은 어느 사이 우리들 삶에 깊숙하게 자리 잡은 편리한 생활의 부산물로서 다소 불편함이 있는 과거의 생활로 회귀하게 된다면 대폭 줄일 수 있다는 결론을 예측해 봅니다.

 

사소해 보이는 일상에서의 자원낭비를 지구적 차원으로 확대하다보면, 급증하고 있는 인류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지구자원을 고갈시키고 종국에는 지구를 황폐화시켜 생존할 수 없는 환경으로 이끌게 될 것이라는 비관론자들의 주장에 이르게 됩니다. 1993년부터 2001년까지 제45대 미국 부통령을 지냈고, 2007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과 함께 노벨 평화상을 공동수상했던 앨 고어 전 미국 대통령이 출연했던 영화 <불편한 진실; http://blog.joinsmsn.com/yang412/6680385>을 보면서 마음이 불편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하여 이산화탄소를 줄일 수 있는 생활이 몸에 익힐 것을 권고하고 있는데, 요즈음 같은 동절기에 실내온도를 2도 낮추고 여름철에는 냉방온도를 2도 높이는 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양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고 합니다.

 

엘 고어의 환경보호운동은 영화 이외에도 저술활동을 통해서도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는데, <우리의 선택; http://blog.joinsmsn.com/yang412/11794488>에서는 재생에너지 개발, 생태복원, 에너지 소비혁명 등에 관한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있습니다. 앨 고어는 “나는 우리의 손안에 기후 위기를 서너 번 정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다양한 도구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직 단 한 가지 부족한 것은 전 세계인의 단합된 의지다.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기후 위기가 전 지구적인 비상사태임을 인식하고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시점에 아주 가까이 다가와 있다.(우리의 선택, 13쪽)”고 인류적 사고의 변환을 촉구하는 한편, 탄소배출의 주범인 몇몇 거대 석유회사, 자동차 회사, 석탄회사, 선탄을 태우는 회사들이 연합하여 기후위기를 희석시키기 위하여 기후 변화의 과학적 증거를 기만하는 캠페인을 시작했다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앨 고어의 말대로 과학적 증거에 기반하고 있다는 환경보호론자들의 주장을 들으면 지구의 종말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위기의식이 들게 됩니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에 대하여 반론을 제기하는 낙관주의자들이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가장 최근에 읽은 매트 리들리의 <이성적 낙관주의자; http://blog.joinsmsn.com/yang412/11893963>에서는 현재 당면하고 있는 환경오염의 문제 혹은 자원고갈의 문제는 인류가 풀어야 할 문제에 불과하여 조만간 해답을 찾아 개선시킬 수 있을 것으로 믿어지기 때문에 인류가 경제성장이라는 어리석은 목표를 포기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비관론자들의 “후퇴하라는 거짓 경보에 속지 말라.”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지구환경의 변화에 대하여 비관론자들과 낙관론자들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여 이들의 주장을 같은 거리에 두고 들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글머리에서 <인간의 조건>을 인용한 것은 최근에 읽은 엘리자베스 파렐리교수의 책 <행복의 경고; http://blog.joinsmsn.com/yang412/12988622>와 맥이 통하는 점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당신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운전을 지나치게 많이 한다. 지나치게 많은 물건을 사며 지나치게 많은 물건들을 소유하고 있고 지나치게 많이 버린다. 아이들과 나 자신을 지나치게 방임하며 산다.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물과 에너지, 공기, 공간을 지나치게 많이 사용한다. 즉, 나란 존재는 지구가 내게 베풀어 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비용을 들인다.(7쪽)”는 파렐리교수의 자가진단은 편하고자 하는 개인들의 욕망을 억제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한편 파렐리교수는 근본적으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지구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노력을 종교적 차원으로 승화시켜야 할 것이며, 아무래도 남성보다는 여성이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는 해결방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환경의 위기를 극복할 대안을 종교에서 찾을 수 있다는 파렐리교수의 제안에서 ‘과학을 넘어 종교와 철학에서 길을 찾다’는 부제를 단 <생태 생명의 위기와 대안적 성찰>이라는 제목으로 서강대학교 생명연구소에서 나온 책을 떠올리게 됩니다. 환경의 위기를 과학이 아닌 종교와 철학에서 대안을 찾아 해결하려는 책의 기획의도가 적절한 것일까 궁금합니다. 아무래도 자연과학의 영역에 속하는 저의 생각의 단순함 때문일 것 같습니다.

 

편집을 맡으신 김완구님은 (환경의) 오염방지 및 정화기술 등과 같은 과학기술이 환경문제들을 즉시에, 일시적으로 그리고 효과적으로 눈에 띄게 해결해 주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인간이 개발해온 과학적 기술은 긍정적 가치와 부정적 가치를 동시에 지니는 양면성을 가지는 만큼, 과학을 넘어 환경에 대한 인간의 태도에 대한 반성과 전환을 요구하는 종교적이고 철학적 접근이 필요할 것이라는 취지에서 기획된 것이라 하였습니다.

 

“인간이 자연의 지배자나 정복자로서 단순히 자연을 수단으로 여기고 이용해 먹는 존재라고 보는, 이른바 인간중심적 사고에서 인간은 이제 자연의 일부인 자연의 동등한 구성원으로서 혹은 자연과 하나로서 자연에 본래적인 가치를 부여하고 자연을 소중히 여기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살아가야 하는 존재로 보는 생태중심적 사고로의 획기적인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인식 아래, 1부에는 환경문제에 대한 종교적 논의를, 2부에는 철학적 논의를 담고 있습니다.

 

종교적 논의는 가톨릭, 동학, 불교 그리고 유교적 관점에서의 논하고 있습니다. 심상태교수께서 논하신 가톨릭 관점에서의 논의에서는 그동안 인류가 직면한 환경위기의 사상적 바탕이 서양의 종교적 전통에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극복하기위한 해결책을 다시 성서 안에서 발견해보려는 하고 있습니다. 즉 성서의 창세기에 나오는 “우리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자! 그래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 또 집짐승과 모든 짐승을 부려라”는 구절이 세계가 인간을 위하여 창조된 것 같은 인상을 주어 근세 이후의 서구인들이 세계를 정복하는 과정에서 인간중심적 세계관이 성서의 전거에 입각하고 있다고 믿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성서의 표상은 동물에 대한 인간의 지배관계가 ‘착취의 지배관계’가 아니라 ‘관리적 지배’의 성격을 지닌다고 해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자연세계는 하느님이 관리를 위탁한 것으로서 인간이 하느님의 뜻에 따라 충실하게 관리해야 할 실재이다.(63쪽)”라는 것이 새로운 시대에 맞는 가톨릭의 새로운 해석입니다.

 

표영삼 천도교 상주선도사께서 논하신 동학(東學)적 관점에서는 동학의 생명관을 바탕으로 환경파괴에 대한 오늘의 문제점을 개관하면서 ‘온 천지 생명체계로 돌아가 한 몸처럼 되자’는 동귀일체(同歸一體)의 가르침을 통해 정신적 의미의 세계를 넓혀나가면 환경과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특히 “인간 조건에는 결핍성이 있으므로 물질적 만족은 한도가 없다. 물질적인 세계에 갇히지 말고 무한한 의미의 세계를 넓혀 나가야 한다. 온 천지 생명체계와 하나 될 때 거기서 얻어지는 의미의 세계는 무한하다. 정신적 의미의 세계를 넓힐 때 진정으로 세상을 만날 수 있다.(80쪽)”고 하였습니다.

 

유정길 사무국장님이 논하신 불교적 관점에서는 환경문제를 진보라는 인간의 집단적 관념에 대한 문제제기로 보고 있습니다. 어제보다 오늘, 오늘 보다는 내일이 나을 것이라는 사고가 바로 진보적 사고라 할 수 있는데 이는 보이는 것만이 존재의 전부라는 사고에 기인하는 것입니다. 불교의 근본 가르침은 연기법(緣起法)으로 재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 열반적정(涅槃寂靜)의 삼법인(三法印)을 내용으로 합니다. “세계는 제석천의 그물망처럼 구슬 하나하나에 전체가 비춰 있어, 하나 속에 전체가 전체 속에 하나가 있으며, 서로 연결되어 있는 세계인 것이다. 이것을 깨닫는 것이 불교의 시작이자 끝이다.(83쪽)”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세계가 서로 연관 맺으며 순환하는 이치를 무시하고 직선적인 시간관, 직선적인 발전, 직선적인 세계관이 바로 근저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점을 생태학에서 놓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환경운동이 파괴된 자연을 회복하는 운동과 나아가 자연을 파괴한 인간에 대해 새로운 변화, 새로운 가치관 각성 운동, 생활양식 전환운동으로 발전시켜 나가는데 있어 종교의 역할이 가장 적합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놓고 있습니다.

 

최영진 교수님이 논하신 유교적 관점에서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주역으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나’를 규정할 때 나에 대립하는 존재, ‘너’를 타자(他者)로 마주하게 되는 것처럼, ‘자연’을 ‘인간’에 대립하는 타자(他者)로 구성합니다. 인간의 외부에 존재하는 사물을 ‘물(物)’이라고 지칭하는데, 설괘전 3장에서는 하늘, 땅, 산, 연못, 우레, 바람, 물, 불 등 여덟 가지 사물, 즉 기본존재들이 상호작용하여 자연을 구성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늘과 땅은 제 위치에 자리 잡고 있으며, 산과 연못은 기를 통하고, 우레와 바람은 서로 부딪히고, 물과 불은 서로 쏘지 않으나 팔괘가 서로 착종된다.(天地定位 山澤通氣 雷風相薄 水火不相射 八卦相錯, 116쪽)] 유교에서도 ‘오직 인간만이 그 빼어남을 얻어 가장 귀하다.’고 하는 인간우월주의에 대한 이론 보완이 필요할 것이라 정리하고 있습니다.

 

2부에는 김완구 서강대학교 생명문화연구소 상임연구원이 쓴, ‘환경철학과 윤리에서의 생명’과 ‘인간과 자연: 큰 자아실현과 다중심주의’, 김성한 숙명여대 교수가 쓴 ‘무엇을 먹어야 하는가에 대한 윤리학적 고찰’ 그리고 정민걸 공주대학교 교수가 쓴 ‘환경갈등에 대한 철학적 반성을 통한 자아실현’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하여 환경문제에 대한 철학적이고 윤리학적 접근방법을 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생태와 개별 생명체에 대한 본래적 가치를 어떻게 따질 것인가 하는 문제를 비롯하여, 생태계를 둘러싼 환경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여 비교할 것인가 하는 등, 복잡한 문제를 안고 있어 다양한 시각이 존재할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 사안에 따라 견해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서문에서 “지구온난화문제나 새만금방조제 건설사업 그리고 4대강 살리기 사업 등의 환경쟁점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낙관론과 비관론이 늘 병존하기도 한다.”고 전제하면서도 막상 필자들의 논의에서는 해당 문제들에 부정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인식을 숨기지 않고 있어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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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 - 정진홍의 900킬로미터
정진홍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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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생장피에드포르에서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이르는 소위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은 걷는 사람들에게는 꿈의 길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무릎부상으로 꽤나 오래 쉬고 있습니다만, 주말마다 서울근교에 있는 걷기에 좋다는 코스를 따라 걷기에 나서면서 언젠가부터 저 역시 산티아고로 가는 길을 따라 걸어보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주말걷기를 같이 하는 아내와 함께 하면 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정진홍교수의 <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는 얼마 전에 참가한 예스24의 파워문화블로그 네트워크데이에서 온라인 네트워크의 독특한 경험을 소개하고 상품으로 받은 것인데, 산티아고로 가는 길을 한 걸음 떼어놓은 것 같아 마음이 흡족해졌습니다. ‘안주는 안락사다!’라고 늘 자신을 타이른다는 정진홍교수는 ‘그저 저질러보고 그저 남이 안하는 이상한 짓거리로 튀는 것’이 아니고 강변하고 있습니다. 안주하다보면 삶은 산소가 아닌 이산화탄소로 가득 차 언젠가 질식사하게 되기 때문에 도전에서 나오는 산소로 자기 호흡을 할 수 있게 끊임없이 도전을 해야 했고, 산티아고도 그래서 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여행은 현지에 가서 보는 것보다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이 더 즐겁고 흥분되는 것 같습니다. 현지에 관한 정보를 모으고 일정을 짜면서 머릿속에서 미리 코스를 따라가면서 필요한 것들을 미리 준비하는 것인데, 그렇게 세심하게 준비를 한다고 해도 현지에서 일어나는 돌발상황 때문에 매번 일정을 조정하여 상황을 편하게 열어가는 재미가 있는 것입니다. 기행문에는 이런 경험들을 담아서 같은 길을 따라 가려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정보를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교수님은 산티아고로 가려는 꿈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친절을 베풀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다만 그의 인문학적 감성이 풍부한 글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는 좋은 읽을거리를 만들어냈다고 하겠습니다. 정진홍교수님의 인문학적 감성이 넘치는 글은 이미 <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 시리즈를 통해서 흠뻑 빠져들었던 터라 <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에서는 독백하듯 풀어놓는 산티아고가는 길에 대한 그의 느낌을 오롯이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산티아고 가는 길은 ‘내 안의 까닭 모를 눈물’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남자의 눈물이 그리 흔한 것이 아닌데, 그것도 까닭모를 눈물이 쏟아지는 경험을 산티아고에서 했다면 그곳에는 아주 특별한 무엇이 있을 것만 같습니다. 생장의 순례자사무소를 나서 눈보라속에서 피레네 산을 오르면서 저자는 “나도 모르게 북받치듯 눈물이 났다. 단지 힘들어서가 아니었다. 내 속에 응어리져 있던 그 무언가가 분출하듯 쏟아진 것이었다. 오장육부의 속을 비집고 올라오듯 오래 묵은 내 속의 숙변 같은 눈물들이 솟구쳐 올랐다. 정말이지 눈물을 흘린 것이 아니라 토해냈다.(36쪽)” 뿐만 아니라 저자가 삼류하를 건너 요양의 백탑이 멀리보이는 탁 트인 요동벌판에 서서 “훌륭한 울음터로다! 크게 한번 통곡할 만한 곳이로구나!”라는 ‘호곡장론’을 남긴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인용하고 있어 다시 놀랐습니다. 남자의 눈물을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 우리 사회, 특히 조선사회에서 당당히 눈물을 논하다니 당장 열하일기를 읽어 연암의 호곡장론을 새겨보아야 할 것만 같습니다.

 

정교수님은 산티아고에서 보고 느낀 것을 단순하게 기록하기보다는 인문학적 재료와 섞어서 느낌을 더욱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끔은 교수님의 생각과는 다른 기억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보아디어 델 카미노에서 쏟아지는 폭우를 뚫고 들어갔더니 오히려 비가 개이고 머물을 뻔 했던 장소가 빗속으로 파묻히더라는 이야기에서는 대학신입생 때 홍도에 갔다가 태풍 빌리를 만났을 때 생각이 났습니다. 청명한 날씨였는데 태풍이 들이 닥친다하여 배를 얻어 타고 홍도를 탈출했지만 겨우 흑산도에 이르렀을 뿐 흑산도성당의 작은 방을 얻어 태풍이 지나갈 때까지 꼼짝도 못했던 추억이 있습니다. 그때 홍도에 남았던 사람들은 홍도에서 맞은 태풍의 경험이 특별하더라는 자랑이 많이 부러웠던 기억도 말입니다.

 

생장에서 피니스테레까지 900km의 거리를 걷는 다는 것은 걷는 순간 스스로의 깊이를 토해내고 자신만의 둘레를 드러내는 길을 오롯하게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는 저자의 고백에 제 마음도 벌써 산티아고 가는 길로 떠나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는 가보겠다는 결심에서 이제는 한 걸음 정도 가까이 다가선 것 같은 느낌이 남는 산티아고 가는 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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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보는 나, 착각하는 너 - 나보다 타인이 더 신경 쓰이는 사람들 심리학 3부작
박진영 지음 / 시공사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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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제목이 재미있어 눈길을 끌었습니다. 무슨 책일까? 너 혹은 내가 주변사람들과 맺는 관계에서 볼 수 있는 무엇을 다루고 있을까?

 

그렇습니다. 제목이 강하게 암시하는 것처럼 <눈치 보는 나, 착각하는 너>는 저자의 전공을 살린 사회심리학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다음 백과사전에 따르면 사회심리학은 “사회적·문화적 장면에서의 인간행동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자가 들어가는 글에서 적은 설명이 귀에 쏙 들어옵니다. “사회심리학이란 사회 속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면서 누구나 피부로 느끼는 궁금증들을 연구하는 학문이다.(6쪽)”

 

제가 부러워하는 저술모델이기도 합니다. 저자는 실생활에서 유용한 심리학 지식이 사람들 사이에 널리 나누어지지 못하고 어려운 심리학 논문을 이해할 수 있는 학자들만 독차지 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워 사회심리학블로그와 트위터 계정를 통하여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은 사회심리학에 관하연 정리해온 지식을 책으로 묶어냈다고 하였습니다. 아주 쉽게 풀어서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읽다보면 ‘그래 바로 내 이야기야!“하는 감탄이 절로 나오게 됩니다.

 

첫 번째 이야기 ‘아파도 좋아, 함께 살 수 있다면’에서 다루고 있는 소외감, 소위 왕따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이슈이기도 합니다. 20년도 넘은 이야기입니다만 미국에서 공부할 적에 살았던 동네에는 한국에서 공부하러 오신 분들이 꽤나 살았습니다. 객지에서 고생한다는 분위기 때문이었던지 거의 뭉쳐 사는 분위기였습니다. 마치 그런 분위기에 끼어들지 못하면 왕따를 당하는 것처럼 생각하고 두려워하는 분도 계셨던 것 같습니다만, 그런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독자적으로 사는 분도 계셨던 것 같습니다. 제 경우는 어땠을까요? 외로움에 대처하려면 눈치를 잘 봐야 한다고 저자는 추천하고 있습니다만, 세상사는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외로울 틈이 없이 재미있게 살면되는 거죠.

 

작은 아이가 남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면서 사는 스타일인 것 같아 걱정입니다. 관계의존적이라서 혼자라는 생각이 들면 꽤나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습니다. 저와는 스타일이 다른 것 같습니다. 하지만 행복은 타인과의 맺고 있는 좋은 인간관계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 나쁜 것 같지는 않아 지켜보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기에 느끼는 아픔(외로움)과 기쁨(사랑하며 살아갈 때 얻는 행복과 건강), 사회적 동물로서 잘 살아가는 방법(좋은 관계의 비밀과 기술들), 연인 및 직장 상사 등 관계별 알아둘 사실들, 인간관계에서 갈등이 생겼을 때 대처하는 방법까지 쉽게 설명하고 있어 누구나 공감하는 대목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씀을 앞에서도 드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혹시 읽는 이가 지금 사회생활을 하면서 부딪히고 있는 문제가 있다고 한다면 그 답을 이 책에서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나도 잘 몰랐던 나’라는 제목을 단 1부의 주제는 ‘나’입니다. ‘행복에 가까워진 너’라는 제목을 단 2부는 ‘너’에 대하여 적고 있고, ‘이해할 수 없었던 우리’라는 제목의 3부의 주제는 ‘우리’입니다. 그리고 결론부분에 해당하는 ‘상처받지 않고 단단해지는 단계’라는 제목의 4부는 우리의 관계를 탄탄하게 만드는 비결을 요약하고 있습니다. ‘나와 너가 만나 우리가 되고, 그 우리의 관계가 견고해진다.’는 논지의 전개가 참 튼실해 보이지 않습니까? 저자의 사회심리학 분야의 후속작품을 기대하게 만드는 강한 포스가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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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잘 만드는 사람 - 1000명의 속마음을 훔친 설득과 소통의 달인
김명수 지음 / 중앙생활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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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니 다양한 형태의 인터뷰에 응해왔던 것 같습니다. 인터뷰의 결과가 기사로 만들어졌을 때, 만족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제가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빠졌던 때도 있었습니다. 저 역시 글을 쓰고 있으니 잘 만들어진 인터뷰 기사를 읽게 되면 부럽다는 생각이 들기 마련입니다. (부러우면 진다던가요?)

 

블로그를 오랫동안 운영해오다보니, 제 주변에 계신 분들을 인터뷰하여 기사로 만들어 블로그에 올려보면 어떨까 싶다는 조금은 허황스러운 생각을 하면서도 인터뷰를 만드는 법을 몰라 망설이던 참이었습니다. 김명수 기자님의 <인터뷰 잘 만드는 사람>을 바로 이런 타이밍에 만난 것은 행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모든 분야에 멘토가 필요하듯이 인터뷰와 글쓰기에도 자신이 닮고 싶은 롤 모델이 있어야 한다. 10년 넘는 세월을 인터뷰와 글쓰기에 빠져 살아오면서 터득한 노하우를 알리고 싶어 이 책을 썼다.”고 머리말에 밝히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 책은 모두 여섯 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장에는 저자의 경험과 자랑(?)을 담아 인터뷰가 무엇인지 정리하고 있습니다. 2장에서는 초보 인터뷰어가 달인이 되는 과정에서 꼭 챙겨야 할 기본적인 원칙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기자는 기사를 발로 쓴다고 이야기를 합니다만, 인터뷰어 역시 현장에서 직접 보고 들은 것만을 살아있는 지식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즉 단순한 글쓰기가 아니라 글발이 살아있는 글을 쓰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터뷰이를 만나기 전에 철저한 준비작업이 필요하다는 점도 새겨야 하겠습니다. 3장은 저자가 인터뷰 기사쓰기의 실전에서 부딪히면서 몸으로 깨달은 팁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분량이 적은 4장은 기사 이외의 인터뷰, 예를 들면 취업, 영업, 섭외과정에서 활용할 수 있는 인터뷰방식을 소개하고 있는데, 바로 인터뷰를 통하여 의사전달 능력을 키울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인터뷰는 인맥구축의 지름길이며 소통의 종합예술이라는 것입니다. 글쓰기와 화술은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이들에게 필수적으로 필요한 스펙이라고 주장하는 저자는 마음을 사로 잡는 화술 노하우로, 1. 밝은 표정으로 눈높이에 맞춰라, 2. 일방통행은 금물, 3. 상대방의 말을 끊지 마라, 4. 많이 알아야 말도 잘한다, 5. 말을 살리되 반복하지 마라, 6. 진실은 통한다, 7. 최고의 화술은 경청이다, 8. 설득하려 하지 마라, 9 긍정적으로 말하고 칭찬하라, 등을 들고 있습니다. 또한 마음을 움직이는 글쓰기 노하우로는 1. 메모는 글쓰기의 기본, 2. 좋은 글은 좋은 마음에서 나온다, 3. 글씨기는 습관이다, 4. 글의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5. 쉽고 간단하게 표현하라, 6. 많이 읽고 생각하고 글로 써라, 7. 창의적 글쓰기로 생명을 불어넣어라, 8. 많이 듣고 경험하라, 9. 메모하는 습관을 길러라, 10. 공공장소 화장실은 글쓰기 보물창고이다, 등을 꼽았습니다. 6장에서는 저자가 인터뷰를 하고 작성한 인터뷰기사의 열한 건의 실제 사례를 예문으로 실어 독자들이 실감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 책에 관심을 두는 독자라면 인터뷰한 내용을 어떻게 기사로 정리하는가 하는 점이 핵심이 될 듯 합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듯이 철저하게 준비하여 인터뷰를 잘 마무리했다면 인터뷰에서 얻은 자료를 제대로 글로 옮기는 작업이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일단은 인터뷰한 내용을 머릿속에서 정리하면서 글의 순서를 정해서 논리적으로 생각을 전개하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 역시 글쓰기는 초를 잡는다고 해서 첫문장을 어떻게 풀어내는가에 90%가 달렸다고 하겠습니다. 첫문장을 잡지 못해서 자판을 두들기다가 지우기를 몇 십차례 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습니다. 저자는 인터뷰 글쓰기를 이렇게 요약하고 있습니다. “모든 글이 그렇듯이 글쓰기에 있어서도 처음과 끝이 중요하다. 첫머리에서 독자를 본문으로 들어가도록 유도하고 본문에서 본격적으로 다룬 내용을 간추려서 글의 요지를 알기 쉽게 마무리하면 글쓰기가 완성된다.(66쪽)”

 

일단 인터뷰를 어떻게 진행하는지 감을 정리한 다음 조만간 시도를 해볼 생각입니다. 재미있을 것 같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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