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가고 나는 남아서
김원석.남궁인.오흥권 외 지음 / 청년의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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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진료로 하루하루를 숨 가쁘게 살아가는 의사들이지만 특히 몇 명 정도의 환자들은 기억에 갈무리해두고 있을 것입니다. <그는 가고 나는 남아서>는 기억에 남는 환자들에 관한 이야기들을 모아 엮은 책입니다. 한미약품이 후원하는 한미수필문학상은 의료계의 신춘문예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가고 나는 남아서>에는 15, 16, 17회 입상작들 42편 가운데 40편을 수록하였습니다.


입상작들은 횟수와는 무관하게 글의 성격에 따라서 1. 환자가 의사를 만든다, 2. 아픈 이들에게도 삶이 있다, 3. 죽음 앞에 서서 묻다, 4. 더 나은 세상 속 우리이기를, 5. 그대로 희망은 있기에 등으로 묶었습니다. 한미수필문학상에 응모한 사연들은 대부분이 환자를 직접 진료하는 임상과 의사들의 경험담을 담고 있는데, 저처럼 환자를 직접 만나지 않는 병리과의 경우는 특별한 사례는 기억에 남기도 하지만 환자와의 구체적 이야기까지 발전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에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없은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는 가고 나는 남아서>라는 제목을 보면 진력을 다했지만 환자를 구하지 못한 의사의 안타까움이 느껴집니다만, 이 책에 사연을 담은 환자들이 모두 안타까운 결과에 이른 것은 아닙니다. 전문 과목은 제각각이지만 비슷한 과정을 거쳐 제 몫을 다하는 의사로 성장해왔기 때문인지, 이야기를 읽으면서 공감이 되는 사례들이 많았습니다.


제가 암환자가 많은 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까닭인지 암환자에 관한 이야기들이 특히 눈길을 끌었습니다. ‘오기로 똘똘 뭉친 사나이라는 제목의 글은 최근에 전립선암으로 수술을 받은 저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뇌암으로 수술을 받고 3년 시한부판정을 받은 40대 남성에게 쌍거풀 수술을 해주게 된 사연입니다. 수술하기 전부터 쌍거풀 수술을 하려던 환자였는데 시한부 판정을 받고서는 오기가 생겨서 쌍거풀 수술을 하기로 작심했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30대 남자는 MRI검사에서 소세포암으로 확진되는 순간 쓰러져 영영 일어나지 못했다고 합니다. 쌍거풀 수술을 한 남자는 수술하자마자 토하면서도 밥을 먹기 시작했고, 강원도 산골에서 요양을 한 끝에 3년 넘게 활기차게 살아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알코올 중독자에 관한 이야기는 심각하게 다가왔습니다. ‘알코올 중독자에세 술을 자제하라고 말하는 것은 전 세계에서 가장 극심한 설사병에 걸린 사람에게 똥을 자제하하고 말하는 것과 똑같은 일이다라는 스티븐 킹이 <유혹하는 글쓰기>에 적은 구절을 인용하고 있는데, 대체로 알코올 중독증 환자를 진료하는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술에 관한 이야기보다는 취미생활 등에 관한 이야기로 환자의 관심을 돌리는데 주력한다고 합니다. 저 역시 관심을 쏟을만한 일을 찾아봐야 하겠습니다.


담도암 말기인 환자와 얽힌 기묘한 운명도 생각할 거리가 많았습니다. 반복되는 치료에 지쳐 삶을 포기하기로 하였지만, 그의 선택은 자신이 아닌 누군가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기묘한 운명을 불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작가는 우리는 이 생명들이 얼기설기 위태롭게 엮인 우연으로 삶과 죽음이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그렇게 이해하고서도, 실은 우리는 어떤 죽음에 관해서도,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라고 적었습니다.


제가 가끔 부닥치는 골치아픈 사례에 관한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난소암이 복강 내로 퍼진 환자에서 복강 내 장기를 뭉텅이채로 절제하는 경우에는 장기별로 구분하여 병소를 찾아내고 보고서에 적어야하는 병리과의사로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사례를 수술했다가 세 차례나 수술을 해야 했던 외과선생님은 자신의 심정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만약 거만하고 바쁜 척하던 의사가 어느 날부터 사랑에 빠진 듯 밝은 표정으로 환자 앞에서 시간을 오래 쓰고 하루에 두 번 이상 회진을 돌고 있다면, 그 환자는 합병증으로 고생하고 있는 게 거의 확실하다


매년 봄에 공모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한미수필문학상에 저도 응모해볼만한 이야기 거리를 찾아봐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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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선생님, 6개월 안에는 뵐 수 있을까요?
니콜 드뷔롱 지음, 박경혜 옮김 / 푸른길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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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립선암으로 수술을 받고 관찰 중에 있습니다. 근무하고 있는 병원에서 전립선 항원검사를 하고 있는데 값이 내려갔다가 다시 오르는 바람에 걱정이 되어서 수술을 해주신 의사선생님을 만나려고 외래예약을 하렸더니 2달 뒤에나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1년이 넘어서야 만날 수 있다는 다른 의사선생님보다는 나은 편입니다만 그래도 2달씩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입니다.


우연히 읽게 된 <의사 선생님, 6개월 안에는 뵐 수 있을까요?>에서 프랑스 파리에서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는 쓴 웃음을 짓게 되었습니다. 유명하다는 의사선생님의 진료를 받으려면 6개월을 기다려야 하는데, 친구의 친구의 친구의 친구를 통하면 금세 만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정말?’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병원에는 아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실감하던 시절 말입니다. 지금은 김영란법 때문에 누군가의 소개로 진료순서가 바뀌기라도 하면 난리가 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의사 선생님, 6개월 안에는 뵐 수 있을까요?>를 통하여 파리의 병원 사정을 고자질한 주인공은 잘나가는 작가입니다. 그래서 작가의 경험을 책으로 쓴 것이 아닐까 싶고, 그러다보니 파리에서 아프면 큰일이겠구나 싶기도 했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손주가 있는 할머니 작가입니다. 시골에 있는 집에서 양 축사를 개조한 서재에 들어갔다가 전등이 고장 나는 바람에 더듬거리다 키 높이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사고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파리로 돌아와 병원 응급실에 갔지만 텅 빈 응급실에서 무조건 15분을 기다려야 진료를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응급실을 찾는 환자들 가운데 외래진료를 받아도 될 환자가 적지 않아서 응급환자 진료가 늦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특히 그런 환자들은 진료가 늦는다고 갑질을 한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 역시 시골집에서 툴루즈를 경유해서 파리로 돌아온 다음에 응급실을 찾았다고 하는 것을 보면 응급상황은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응급실을 찾아 이러저런 검사를 해본 결과 관절과 심장에 이상이 발견되어 수술과 검사까지 받아야 하는 오랜 병원순례가 시작됩니다. 수술을 받고 재활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에 오래 입원하게 되는데 의사선생님은 얼굴을 보기 어렵고, 의료진은 환자를 존중해주는 구석이라고는 전혀 없다는 생각이 들 지경입니다.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는 몇 년 전부터 환자경험평가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병원에 입원했던 환자가 적절한 대우를 받고 있는지 평가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책의 주인공이 입원했던 병원이라면 평가에서 꼴지를 했을 것 같습니다.


어떻든 주인공이 유명 작가인 까닭인지 아니면 발이 넓은 까닭인지 진료 순서도 쉽게 바꿀 수 있고 해를 넘겨서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프랑스의 건강보험이 우리나라와 다소 차이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 치료비의 일정부분만 환자가 병원에 내면 되지만, 프랑스에서는 일단 환자가 전체 진료비를 병원에 내고, 그 명세를 공단에 제출하면 공단부담금을 환자에게 돌려준다고 합니다. 보험료를 청구하는 주체가 우리나라의 경우 병원인데 반하여 프랑스는 환자가 되는 셈입니다. 각각의 장단점이 있을 듯합니다.


어떻거나 <의사 선생님, 6개월 안에는 뵐 수 있을까요?>는 파리의 병원에서 벌어지는 불합리한 장면들을 고발하는 느낌이 들지만 주인공 역시 상황을 빠져나가기 위하여 이리저리 손을 쓰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읽은 프랑스 독자들은 너무나도 우스워 의료보험공단으로부터 항우울제 명분으로 환불을 받아야 할 소설이에요!”라고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그런 모습이 우습기도 하지만 씁쓸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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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라이프 마인드 - 나이듦의 문학과 예술
벤 허친슨 지음, 김희상 옮김 / 청미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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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미출판사의 서평단 청미에 선정되어 읽게 된 책입니다. 사실은 중년 무렵부터 우아하게 늙어가기를 화두로 삼았기에 읽고 싶었던 책이기도 합니다. 다만 제가 중년에 해당되는지 살짝 걱정이 된 것도 사실입니다. 다만 서평단을 공모하면서 중년은 35세부터 노년 전의 연령대를 의미한다고 해서 저도 여전히 중년이라 생각하기로 하였습니다.


흔히 중년의 위기를 이야기합니다만, 돌이켜 보면 소년시절부터 위기가 거듭되었던 것 같고, 중년에서 겪었던 위기라고 해서 딱히 별달랐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사실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시기를 특정해서 구분한다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에는 인생을 유년기, 중년기, 노년기의 3단계로 단순하게 분류했던 것을 기대여명이 늘어나고, 사회가 발전하여 복잡해지면서 보다 세분화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미국의 사회학자 윌리엄 새들러는 인생주기를 크게 4개의 단계로 구분하였습니다. 태어나서 청년기까지의 첫 번째 연령기, 직장을 잡고 가정을 이루는 20~30대를 두 번째 연령기, 마흔부터 30년 정도를 중년기, 그리고 이후에 삶을 마무리하는 노년기가 이어진다고 하였습니다.


어찌되었거나 영국 켄트대학에서 유럽문학을 가르치는 벤 허친슨교수는 <미드라이프 마인드>에서 우리의 삶에서 중년의 의미를 이해하고 바람직하게 노년에 진입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였습니다. 특히 저자는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시에서 희곡에 이르기까지, 작가들은 우리 인간이 중년을 통과하면서 어떻게 해야 창의적 인생을 살 수 있을지 끊임없이 성찰해왔음에 착안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단테와 몽테뉴, 괴테, 보부아르 그리고 베케트 등의 삶과 작품을 살펴 중년의 의미를 찾아내려 하였습니다.


하지만 중년의 위기를 논하기 시작한 것은 캐나다의 정신분석학자 엘리엇 자크가 죽음과 중년의 위기라는 수필에서 개념을 내놓으면서 시작되었다고 하는 것을 보면 그보다 이전에 활동했던 작가의 삶이나 작품에서 중년의 의미를 찾는 것이 옳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특히 슬픔: 중년의 다섯 단계라는 모형이 스위스 정신과 전문의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죽음과 죽어감에서 제안한 바 있는 부정, 분노, 협상, 우울, 수용 등의 단계를 중년의 슬픔에 적용한 것은 타당하다고 보기 어려웠습니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대상으로 한 것은 암 등 불치의 병을 통보받은 환자를 대상으로 죽음을 수용하는 과정을 살펴보았던 것인데 과연 중년에 대한 슬픔과 비교할 수 있겠나 싶습니다.


작가는 젊었을 적에 인도양의 마다가스카르와 모리셔스 사이에 있는 레위니옹 섬에서 지낸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때 단테의 신곡,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프랑스 서정시 선집, 그리고 T. S. 엘리엇의 시 모음집을 읽었다고 합니다. 섬에서 돌아와서는 괴테의 파우스트, 몽테뉴의 에세,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셰익스피어의 희곡 선집,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등을 읽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책들을 읽으면서 지적인 성숙함에 이르는 경로를 찾아냈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 이들 책을 모두 읽었는데, 늦은 중년에 이르러서 읽은 것이 작가와 다른 점입니다. 중년에 이르기 전에 지적 성숙함에 이르는 경로를 찾기보다는 비판적 책읽기였던 것 같습니다.


우리의 청년기가 다양한 시도를 통하여 암중모색을 하는 것처럼 시작은 다소 모호한 느낌이었습니다만, 책읽기가 중반에 접어들면서 중년의 위기라기 보다는 중년의 성숙함으로 논지가 중심을 잡아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내가 생각하는 나의 이미지에서 덜어낼 것은 덜어내고 채울 것은 채우는 재조정이야말로 중년의 본질이다(280)”라는 핵심을 정리해냈습니다. 후반에 들어서는 여성의 삶에서 중년의 의미까지 두루 살펴보고 있어서 남성은 물론 여성 독자들에게도 묵직한 무언가를 느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보통사람들의 삶은 다른 이들의 관심을 끌지 못합니다. 문학작품들은 읽는 이의 관심을 끌기 위하여 보통사람들과는 다른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문학작품 속에서 보통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추론해내는 작업이 적절할까 하는 의문이 남는 책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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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리토마토파이
베로니크 드 뷔르, 이세진 / 청미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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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리토마토파이>는 청미출판사의 누리사랑방에서 소개받은 책입니다. 90세가 되어 쓰기 시작했다는 프랑스 시골 할머니의 일기입니다. 저도 금년 초에 전립선암으로 진단을 받으면서 다시 일기를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중학교 2학년때 시작한 일기쓰기를 대학교 2학년 무렵까지 쓰다가 중단했던 기억을 되살린 셈입니다. 물론 주간활동을 10년 넘게 써오기는 했습니다만, 매일 일기쓰기는 오랜만입니다. 투병기라는 제목이지만 소소한 일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휴대전화기에 기록하는 것이라서 삶에 대한 생각을 적을 여력은 아직 생기기 않고 있습니다.


<체리토마토파이>는 리옹과 리모주의 중간, 프랑스 중부지역에 있는 완전한 시골에 사는 과부 잔이 90살이 되는 해 춘분에서 시작하여 꼭 1년간 써내려간 일기입니다. 가까운 마을 베르도 5를 나가야 한다고 합니다. 잔은 스물세 살 때 르네와 결혼하면서 파리에서 이곳으로 이주해왔다고 합니다. 도시처녀가 시골에 사는 보험외판원과 결혼을 한 셈인데 어떤 인연으로 맺어졌는지는 분명치가 않습니다.


시골이라고는 하지만 딸과 아들이 수시로 찾아와 함께 지내는 것을 보면 행복한 만년을 보내는 셈입니다. 완전 시골에서 산다고는 하지만 잔은 심심할 겨를이 없다고 합니다. 50m 떨어진 곳에는 페르낭과 마르셀 부부가 살고 조금 떨어져 있지만 수시로 모여 카드를 치는 질베르트, , 투아네트라는 친구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는 춘분에 시작하는 봄, 하지에 시작하는 여름, 추분에 시작하는 가을 그리고 동지에 시작하는 겨울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프랑스 중부의 사계절을 볼 수 있는 셈입니다. 먼저 책을 읽은 소감은 대단하다였습니다. 아흔 살 노인여성의 일상이 골골하는 중년보다 더 활동적이라는 생각과 함께 작가의지나친 욕심은 아니었을가 싶으면서도 머지않은 나의 앞날을 그려보는 기회도 되었습니다. 사실 나이가 들수록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완전한 시골보다는 도회지에서 다양한 문화적 자극을 받으면서 사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도 해봅니다.


계절의 변화와 먹고 사는 일상을 시시콜콜 적기도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는 것에 대한 단상도 조금씩 내비치고 있습니다. 어떤 날은 몇 줄에 그치지만 1~2 쪽에 이르는 글을 쓰려면 상당한 시간을 내야 하지 싶습니다. 앞서 작가의 욕심이라고 말씀드렸던 것은 725일 라팔리스에서도 몇떨어진 곳에 있는 본가에 온 조카들과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길을 잘못 들어 헤매다가 11시에 도착해서 겨우 잠자리에 들었다고 했는데 언제 일기를 썼을까 하는 의구심 때문입니다.


물론 일기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하루를 돌아보면서 적는다고 생각을 합니다만, 제 경우도 하루 가운데 시간이 날 때 적고 있고 가끔은 하루 이틀 치를 몰아서 적기도 합니다. 잔의 경우에는 전자기기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공책에 일기를 쓰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여행을 하는 동안에는 건너뛰는 것을 보면 집에 있을 때만, 가끔은 날짜를 건너뛰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봄과 여름에는 살아가는 나날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더니, 가을로 넘어가면서 죽은 남편과의 추억이 많아지고 체력이나 기억력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다가, 겨울에 들어서는 세상을 떠나는 친구, 친지들의 이야기가 많아지는 것을 보면 1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소년, 청년, 장년 그리고 노년의 삶을 그려낸 것으로 이해됩니다. 완전 시골이기는 하지만 먼 곳에 사는 자녀들이 손주들과 찾아와 함께 지내고 가까이 사는 친구들과도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에 말 그대로 심심할 겨를이 없습니다만, 다음해의 일기에는 어떤 내용을 적을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체리토마토파이라는 제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했습니다. 1020일자 일기를 보면 잔이 친구들을 초대해서 대접하려고 체리파이를 구웠는데 막상 먹어보니 맛이 영 아니었다고 합니다. 체리라고 넣었던 재료가 알이 아주 작은 체리토마토였던 것입니다. 그저 재료를 착각했을 뿐이지 노망이 든 것은 아니지만 잔으로서는 심각했던 모양입니다. 책의 제목 체리토마토파이에는 닥칠지도 모르는 불행에 대한 걱정이 담겨있다고 생각됩니다. 체리파이가 체리토마토파이가 되었습니다만,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에서는 감자껍질파이도 등장하는 것을 보면 파이는 재로에 따라서 아주 다양하게 구워내는 후식인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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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의 인류학자 - 뇌신경과의사가 만난 일곱 명의 기묘한 환자들
올리버 색스 지음, 이은선 옮김 / 바다출판사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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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책에서 읽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꼬리를 무는 책읽기로 올리버 색스의 <화성의 인류학자>를 읽었습니다. ‘뇌신경과의사가 만난 일곱 명의 기묘한 환자들이라는 부제는 원저에는 없는 것으로 적절해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냥 신경과의사하면 될 터이고, 올리버 색스가 저서에서 다루는 대부분의 환자들이 기묘한 환자라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특별난 환자들과의 만남을 맛깔나게 적은 책으로 많은 독자들에게 감명을 주어온 색스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처음 만났던 <깨어남>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저자는 <화성의 인류학자>의 주제는 질병의 역설적인 측면과 숨겨져 있는 창의력이다.(29)”라고 하였습니다. 결함, 장애, 질병은 평상시에는 보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상상조차 못했던 인간의 잠재적인 능력, 성장, 진화, 삶의 형태를 발현시키는 역설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서는 투렛증후군에서부터 자폐증, 기억상실, 전색맹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신경병에 걸린 일곱명의 환자들이 인간 특유의 놀라운 복원력과 적응력을 통해 180도 달라진 환경을 극복하고 생존한 과정을 기록하였습니다.


<화성의 인류학자>에서 특이한 점이 더 있습니다. 프랑스의 신경학자 프랑수와 레르미트(François Lhermite)가 환자를 진료실에서만 만난게 아니라 집으로 찾아가고, 식당이나 극장으로 초대하고, 자동차로 바래다 주는 등 최대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려고 애쓴 바를 따랐다는 점이다. 확대된 형태의 왕진이라고 하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과거에는 한의학이나 의학의 전통에 따라 의사가 환자의 집으로 찾아 왕진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건강보험제도가 도입되면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첫 번째 사례는 교통사고로 뇌진탕을 일으킨 화가가 합병된 전색맹을 극복해낸 과정을 다루었습니다. 사고 이후에 시간이 지나면서 색에 관련된 기억을 상실해갔지만, 전혀 새로운 시각과 상상력과 감성의 세계를 만들어내 장애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저자 역시 인간이 색을 인식하는 과정에 대한 그동안의 연구성과를 살펴 이 화가의 전색맹을 설명해보려 한 점이 돋보입니다. 뉴턴, 쇼펜하우어, 존 돌턴, 헬름홀츠, 괴테, 맥스웰 등 우리에게 익숙한 분들을 비롯하여 토머스 영, 헤르만 빌리브란트, 에드윈 랜드, 고든 홈스 등이 색채에 관한 다양한 이론을 세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사례는 작사에 천부적인 감각을 가졌던 소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소년은 청소년기에 돌출된 반항아적인 기질로 인하여 마약과 환각제에 취한 생활을 하다가 다시 크리슈나의 철학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리고 시력을 잃어갔습니다. 교단에서는 내면의 빛이 자라는 증거라면서 예지자가 되었다고 추켜세웠다는 것인데 사실을 뇌하수체종양이 커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4년여 만에 아들을 찾은 부모가 병원에 데려가서야 거대한 종양을 발견하고 수술을 받았지만 손상된 뇌를 돌려놓을 수는 없었습니다. 청년은 모든 감정이 사라진 사람처럼 무표정하고 잔잔했습니다. 더하여 기억까지 잃어버렸습니다.


세 번째 이야기는 투렛증후군을 앓고 있는 외과의사가 수술은 물론 경비행기를 조종하는 등 일상에서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는 사례입니다. 투렛증후군은 특이한 행동을 강박적으로 하기 때문에 일상이 힘들 것으로 짐작하지만 1,000명당 한명꼴로 발병하는 투렛증후군 환자들은 의외로 섬세한 작업이 필요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네 번째 이야기는 어렸을 때부터 백내장과 색소성 망막염을 앓아 시력을 잃었던 중년 남성이 백내장 수술을 통하여 시력을 회복하였지만 가족들을 비롯한 주변의 인식부족으로 퇴행해버린 사례입니다. 다섯 번째 사례는 발작성 성격증후군(왁스먼-게슈빈트 증후군으로 바뀌었고 도스토예프스키 증후군이라고도 합니다)에 걸린 화가가 측두엽간질과 고향 폰티토에 집착하는 추억의 발작으로 고통을 받는 사례입니다. 작가는 이 사례에서 기억에 관하여 설명합니다. 여섯 번째 사례를 자폐증을 앓으면서도 기억력이나 표현기법이 뛰어난 소년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보니 <화성의 인류학자>에서 다룬 사례들은 화가가 많은 듯합니다.. 마지막 사례는 책의 제목인 화성의 인류학가라고 자칭하는 자폐증을 앓고 있는 여자 수의사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보니 자폐증에 관한 이야기가 많은 것도 이 책의 특징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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