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주 시인을 기억하나요?

조국은 하나다  -  김남주

 
"조국은 하나다"
이것이 나의 슬로건이다

꿈속에서가 아니라 이제는 생시에
남 모르게가 아니라 이제는 공공연하게
"조국은 하나다"
권력의 눈앞에서
양키 점령군의 총구 앞에서
자본가 개들의 이빨 앞에서
"조국은 하나다"
이것이 나의 슬로건이다

나는 이제 쓰리라
사람들이 오가는 모든 길 위에
조국은 하나다라고
오르막길 위에도 내리막길 위에도 쓰리라
사나운 파도의 뱃길 위에도 쓰고
바위로 험한 산길 위에도 쓰리라
밤길 위에도 쓰고 새벽길 위에도 쓰고
끊어진 남과 북의 철길 위에도 쓰리리라
조국은 하나다라고

나는 이제 쓰리라
인간의 눈이 닿는 모든 사물 위에
조국은 하나다라고
눈을 뜨면 아침에 맨 처음 보게 되는 천정 위에 쓰리라
만인의 입으로 들어오는 밥 위에 쓰리라
쌀밥 위에도 보리밥 위에도 쓰리라

나는 또한 쓰리라
인간이 쓰는 모든 말 위에
조국은 하나다라고
탄생의 말 응아 위에 쓰리라 갓난아기가
어머니로부터 배우는 최초의 말 위에 쓰리라
저주의 말 위선의 말 공갈협박의 말........
신과 부자들의 말 위에도 쓰리라
악마가 남긴 최후의 유언장 위에도 쓰리라
조국은 하나다라고

나는 또한 쓰리라
인간이 세워 놓은 모든 벽 위에
조국은 하나다라고
남인지 북인지 분간 못하는 바보의 벽 위에
남도 아니고 북도 아니고
좌충우돌하다가 내빼는 망명의 벽 위에
자기기만이고 자기환상일 뿐
있지도 않는 제 3의 벽 위에
체념의 벽 의문의 벽 거부의 벽 위에 쓰리라
조국은 하나다라고
순사들이 순라를 돌고
도둑이 넘다 떨어져 죽은 부자들의 담 위에도 쓰리라
실바람만 불어도 넘어지는 가난의 벽 위에도 쓰리라
가난의 벽과 부의 벽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갈보짓도 좀 하고 뚜쟁이 질도 좀 하고
그래 돈도 좀 벌고 그래 이름 좀 팔리는 중도좌파의 벽 위에도 쓰리라
조국은 하나다라고

나는 또한 쓰리라
노동과 투쟁의 손이 미치는 모든 연장 위에
조국은 하나다라고
목을 베기에 안성맞춤인 ㄱ자형 낫 위에 쓰리라
등을 찍어 내리기에 안성맞춤인 곡괭이 위에 쓰리라
배를 쑤시기에 안성맞춤인 죽창 위에 쓰리라
마빡을 까기에 안성맞춤인 도끼 위에 쓰리라
아메리카 카우보이와 자본가의 국경인 삼팔선 위에 쓰리라
조국은 하나다라고

대문짝만하게 손바닥만한 종이 위에도 쓰리라
조국은 하나다라고
오색종이 위에도 쓰리라 축복처럼
만인의 머리 위에 내리는 눈송이 위에도 쓰리라
조국은 하나다라고
바다에 가서도 쓰리라 모래 위에
파도가 와서 지워버리면 나는
산에 가서 쓰리라 바위 위에
세월이 와서 긁어버리면 나는
수를 놓으리라 가슴에 내 가슴에
아무리 사나운 자연의 폭력도
아무리 사나운 인간의 폭력도
지워버릴 수 없게 긁어버릴 수 없게
가슴에 내 가슴에 수를 놓으리라
누이의 붉은 마음의 실로
조국은 하나다라고

그리고 나는 내걸리라 마침내
지상에 깃대를 세워 하늘에 내걸리라
나의 슬로건 "조국은 하나다"를
키가 장대 같다는 양키들의 손가락 끝도
언제고 끝내는 부자들의 편이었다는 신의 입김도
감히 범접을 못하는 하늘 높이에
최후의 깃발처럼 내걸리라
자유를 사랑하고 민족의 해방을 꿈꾸는
식민지 모든 인민이 우러러 볼 수 있도록
겨레의 슬로건 "조국은 하나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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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김남주 시인을 기억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도 남편이 해남에 김남주 시인 생가가 있다며 가 보자고 했을 때 머릿속에서 김남주? 이름 끝에 물음표가 따라붙으며 그가 누군지 금방 떠오르지 않았다. 해남 출신 시인이라고 했을 때도 고정희가 먼저 떠올랐는데 남편은 김남주를 먼저 떠올렸다.  

남편이 <조국은 하나다>라는 시를 쓴 시인이라고 했을 때에야 아~ 했다. 조국은 하나다/이것이 나의 슬로건이다 라고 시작되는 아주 긴 시. 그 이야기를 듣고 책장을 들여다보니 남편의 사인이 있는 김남주의 <나의 칼 나의 피>라는 시집이 누렇게 변한 채 꽂혀 있었다. 남편은 학교 다닐 때 나름 운동(?)깨나 하면서 어머니 속을 뒤집어놓았으니 이런 시집도 끼고 다니며 애송을 한 모양이다.  

큰길을 사이에 두고 같은 마을에 있는 두 시인의 생가 중 난 고정희 시인의 생가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남편이 운전대를 잡고 있으니 고정희 생가는 나중으로 미루게 되었다. 사실 이곳은 녹우당 다녀오던 날 저녁 무렵에 잠깐 들렀는데 이제야...  

김남주 시인의 생가는 원래 양철 지붕으로 된 허름한 집이었는데 얼마 전 해남군에서 복원했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복원이 아니라 번듯하게 새로 지은 것처럼 보였다. 가난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농민 운동을 하고 오랫동안 옥살이를 했던 시인의 집으로 보이지 않았다. 예전 집을 그대로 유지했으면 더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 아쉬운 마음이 든다. 이건 복원된 문학인들의 생가에 가면 늘 드는 생각이기도 하다.


생가를 들어서면서 왼쪽으로는 작은 기념 공원을 꾸며놓았다. 앞에 보이는 건 뭘까? 조그마한 게 꼭 화장실처럼 보이지만 아니다. 김남주 시인이 옥살이를 했던 독방을 재현해놓은 곳이다. 누구라도 빗장을 열고 들어가 감옥 체험을 해볼 수 있다. 들어가 보았는데 한 사람이 들어가면 머리는 천장에 닿아 허리를 구부려야 하고 팔도 벌릴 수 없을 정도로 비좁은 공간이었다. 한 평도 안 될 듯한 아주 작은 공간에서 김남주 시인은 유우곽에 못으로 시를 썼다고 한다.


김남주 시인의 모습. 시골 출신답지 않게 아주 샤프하게 생기셨다.

유신 시대 감옥에 투옥되었던 정치범 중 가장 늦게까지 감옥에 남아 있었던 시인은 감옥에서 나와 결혼도 하고 해남으로 내려와 농민 운동을 했다고 한다. 그렇게 좀 살만 해지니까 병에 걸려 돌아가셨고...




그의 대표작인 <조국은 하나다>를 붉게 녹슨 철판에 새겨놓았다. 시인의 생각대로 빨리 통일이 되어야 할 텐데 어째 요즘 세상 돌아가는 걸 보면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 같으니 세상 떠난 시인이 얼마나 기가 막힐까...

 어딘지 모르게 어색해 보이는 초가집. 방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벽에 김남주 시인을 기억할 만한 기념 사진 몇 장이 걸려 있었다.


동지였다가 아내가 된 박광숙 씨와 결혼하는 모습. 


옥중에서 엽서에 쓴 편지.  





생가 마당에 서면 보이는 풍경이다. 집 앞에 있는 호박밭에는 저녁 비를 맞은 호박꽃이 시인의 생가 쪽으로 환하게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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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조국은 하나다 - 김남주
    from 소나무집에서 2009-08-14 23:07 
    조국은 하나다  -  김남주   "조국은 하나다" 이것이 나의 슬로건이다 꿈속에서가 아니라 이제는 생시에 남 모르게가 아니라 이제는 공공연하게 "조국은 하나다" 권력의 눈앞에서 양키 점령군의 총구 앞에서 자본가 개들의 이빨 앞에서 "조국은 하나다" 이것이 나의 슬로건이다 나는 이제 쓰리라 사람들이 오가는 모든 길 위에 조국은 하나다라고 오르막길 위에도 내리막길 위에도
 
 
꿈꾸는섬 2009-08-15 0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겐 김남주평전이 있어요.^^
해남에 김남주 생가와 고정희 생가가 있군요. 모두 가보고 싶어요. 다음에 고정희 생가에도 다녀오시면 글 남겨 주세요.^^ 바로 달려올게요.^^

소나무집 2009-08-15 09:50   좋아요 0 | URL
김남주를 기억하는 분이 계셔서 정말 반가워요.
해남은 문인들이 참 많아요.
황지우 시인도 해남 출신이랍니다.
아마 윤선도를 비롯해 예전부터 물이 다른 듯...

날아오르라 2009-08-16 0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오늘 그것이 알고 싶다-윤동주-님 편을 보면서 김남주 시인도 생각이 났었는데, 이렇게 상면하게 되네요. 학교 다닐 때 해남으로 MT을 갔던 적이 있었죠..
다시 한번 집에 있는 시집을 열게 되네요. 감사해요~

소나무집 2009-08-17 07:10   좋아요 0 | URL
아, 그랬군요.
저도 고마워요.
 
정원 소요 - 천리포수목원의 사계
이동협 지음 / 디자인하우스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천리포 수목원은 충남 태안군 소원면 천리포 해안가에 있다. 친정 근처여서 언젠가 한 번 가봐야지 하고 있던 참인데 요즘 숲해설을 공부하다 보니 부쩍 더 가고 싶었다. 마침 이 책이 신간 안내에 떴길래 수목원에 가기 전에 읽고 싶어서 샀다. 책을 보고 가면 수목원의 모습을 더 잘 보고 올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에.   

천리포 수목원은 칼 밀러라는 귀화한 미국 사람이 만든 수목원으로 40년이 되었다. 국립 광릉수목원이 1987년에 생겼으니까 천리포 수목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수목원인 셈이다. 원래는 천리포 해안가에 별장을 짓고 정원을 꾸미기 시작한 듯한데 나중에 주변의 땅을 더 많이 사들이면서 수목원으로 가꾸기 시작한 것 같다.  

얼마 전 직접 찾아가 보니 수목원이라기보다 한 개인의 취향에 맞춘 정원을 보는 느낌이 더 들었다. 마치 담양의 소쇄원 같은. 수목원을 거닐다 보니 나도 정원이 있는 집에서 느릿느릿 살고 싶은 욕심도 생겨났다.

이 책은 천리포 수목원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모습을 보여준다. 저자가 6년 동안 무려 101번이나 찾아가서 찍은 사진들은 수목원에 가보지 않았어도 가본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대충 따져봐도 한 달에 한두 번씩은 갔다는 얘긴데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마디로 이 책의 저자는 천리포 수목원에 중독된 사람인 듯하다. 

글 속에도 천리포 수목원의 나무와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겨 있다. 그래서 밀러 씨를 예전부터 아는 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니었다. 그가 천리포 수목원에 처음 찾아갔을 땐 이미 밀러 씨는 돌아가신 후였다고 한다. 수목원에 가서 한두 번 머물다 보니 나무와 풀꽂들까지 사랑하게 된 이야기가 넘쳐난다. 

그런데 책의 내용은 내 기대를 많이 벗어났다. 글에서 정성이 부족해 보인다. 너무 감상에 치우치게 글을 써서 블러그에 올린 글을 그대로 책으로 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본인 혼자 신이 나서 쓴 글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도 사진은 훌륭하니 그것으로 만족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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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2010-01-01 0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원래 책이란게 자신에 블러그나 투고 등에 있던 자료들을 한곳에 모아 발간하는 것 아닌가요?
글에서 정성이 부족해 보인다는 말도 저자에게 예의가 아닌 것 같네요
평자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내용은 아닐지 몰라도 아마도 자신의 책을 내면서 정성이 들이지않고 대충 만드는 저자는 없을겁니다
 

친정집 마당에서 승용차로 10분만 더 들어가면 되는 천리포 수목원, 그동안은 일반인의 출입을 허용하지 않아서 못 가봤다. 국립공원 지역이라서 언제든 남편 빽으로 들어갈 수도 있었지만 내가 누구한테 신세 지는 걸 싫어하는지라... 이번에 가서도 입장료(성수기 어른 8천원, 동반 어린이는 무료) 다 내고 들어갔다. 동네 사람은 무료라고 했더니 친정엄마께서 자주 와야겠단다.

요즘 완도 수목원에서 숲해설 강의를 듣다 보니 관심도 더 생겼지만 천리포 수목원에 대한 이야기를 어렸을 때부터 많이 들어서 꼭 가 보고 싶었다. 수목원이 아니라 수목원을 만든 칼 밀러(한국 이름은 민병갈) 이야기라고 해야 맞으려나. 

외국인을 보기 힘들었던 당시 그 외진 시골에 정착해서 사는 외국인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화제 거리였다. 주한 미군이었던 밀러는 1962년 만리포 해수욕장에 놀러왔다가 인연을 맺어 천리포에 땅을 사고 수목원을 꾸리게 되었다고 한다. 남자로서는 우리나라 최초로 귀화한 사람이기도 하고. 결혼도 하지 않고 수목원 꾸미는 일에 인생을 바치다 2002년에 돌아가셨다.  

또 그에 관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그 동네에서 공부 잘하는 학생 하나를 양자삼아 서울대를 보내고 변호사를 만들었다는 것. 그래서 늘 그 사람의 이야기가 궁금했더라는...


늦은 아침을 먹고 친정엄마랑 아버지도 함께 나섰다. 가까운데 있어도 두 분 역시 누가 모시고 가지 않았으니 초행길이었다. 엄마는 좋아라 하셨지만 친정아버지는 할 일도 많은데 그런 데는 왜 가느냐고 핀잔을 하면서도 따라나서고...  살짝 등이 굽은 엄마의 뒷모습이 안쓰러워 가슴이 찡해진다.


나무가 꼭 텐트를 쳐놓은 것처럼 가지가 아래로 축축 늘어져 있다. 나무 그늘 아래 앉을 수 있도록 해놓아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정겹다. 


우리 아들은 실잠자리 한 마리를 잡아서 외할아버지랑 이야기중이다. 할아버지는 밑도 끝도 없이 질문을 해대는 아들 녀석의 말에 귀를 귀울여주고 정성껏 대답을 해주셨다.


딸아이가 찍은 사진인데 나무 그늘 아래에서 올려다 본 모습이 멋진 것을 넘어 화려하기까지 하다. 가을에 단풍이 아름답게 드는 니샤나무란다. 나무 이름 표기를 영어로 해놓은 게 많아서 우리나라 이름을 알 수 없으니 답답하더라. 그리고 주인이 외국인이라서 그런지 외국에서 들여온 수종도 상당히 많았다.


산책할 수 있는 많은 길들이 있었는데 개방한지 얼마 안 된 수목원이라서 그런지 길을 안내하는 표지판 같은 게 많지 않았다.  


숲 사이로 보이는 천리포 해변. 기름 유출로 몸살을 앓았던 해변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깨끗하고 아름다운 풍경이다.


수목원 곳곳에 이런 한옥이 여섯 채가 있다. 미리 예약을 하면 숙박을 할 수도 있다고 한다. 이곳은 다정큼나무집.


가운데 부분은 원래 논이었다고 한다. 수목원을 꾸미고 나무에 필요한 물을 주기 위해 연못으로 만들었는데 아직 네 마지기의 논이 남아 있어 봄이면 수목원 직원들이 직접 모를 심는다고 한다. 


녹음이 너무 우거져서 온통 초록빛이었다. 특히 목련나무들이 많아 봄에 찾아가면 화사한 꽃들을 많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내년 봄에 부모님 모시고 꼭 꽃구경을 가야겠다.


친정아버지와 엄마가 '나 찾아봐라' 놀이를 하고 계시는 중. 내년이면 칠순인 친정아버지의 장난끼가 난 너무 좋다. 친정에 자주 갈 형편이 못 되다 보니 부모님이랑 놀러 다녀본 기억도 없다. 어쩌다 집에 가도 항상 농사일에 바쁘시니 놀러 나갈 생각도 안 했는데 이번 천리포 수목원 나들이는 친정엄마랑 아버지랑 함께 할 수 있어서 정말 뿌듯했다. 50대 초반에 허리 수술을 하신 이후 약간 구부정해진 엄마의 허리가 자꾸만 눈에 밟히네그랴.


수련이 있는 작은 연못.   










봄만큼 꽃이 많지는 않았는데 가끔 눈에 띄는 꽃의 자태가 아주 화려했다.  

워낙 넓고 수종도 많은 완도 수목원에 자주 가다 보니 천리포 수목원은 아주 넓은 개인 정원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수목원 전체 면적이 2만 평이 넘는다는데 비공개하는 부분도 너무 많은 것 같고...   

완도 수목원이 더 좋은 걸 보니 자주 보고 애정을 줘야 사랑하게 된다는 말이 맞나 보다. 친정에 갈 때마다 찾아가서 변화하는 천리포 수목원의 계절을 느껴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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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야 놀자 1 : 조선시대 - KBS 역사 프로그램
KBS 역사야 놀자 제작팀 엮음 / 경향미디어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요즘 들어 자꾸 우리 역사를 바로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를 바로 알아야 나라가 바로 서고, 역사를 제대로 알 때 나 자신도 바로 선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인들의 경우 역사를 바로 알려고 하기보다 이용하려고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속상해지기도 한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아이들은 역사를 좋아하는데 독서 수업을 하면서 의외로 역사를 어려워하는 아이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런 아이들 대부분은 역사를 단순히 외워야 하는 공부로 생각하고 있다. 처음 역사를 접하는 아이들에게 연대순으로 된 책을 들이대고 읽으라고 하면 당연히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역사를 정면으로 나열한 책보다 자꾸 옆길로 샌 듯한 책을 읽으라고 권해준다. 먼저 역사에 흥미를 갖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이 책은 KBS에서 방영된 <역사야 놀자>라는 프로그램 중 조선 시대 편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역사 프로를 좋아하는 데 왜 한 번도 못 보았는지 안타깝다. 어렸을 때 배운 역사는 머릿속에서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다. 그게 잘못된 역사였다 할지라도. 역사에 대한 시각은 바라보는 이의 입장에 따라 바뀌기도 하므로 새로운 책을 읽고 계속 업그레이드시켜야 하는 건 아닌지... 

이미 TV 프로그램으로 검증되기도 했지만 일단 지루하지 않아서 좋았다. 주로 인물 위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세종이나 이순신 등 우리가 잘 아는 인물들도 많지만 청나라의 요청에 따라 러시아 정벌에 나선 신유 장군은 나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인물이다. 잘 안다고 생각했던 인물에 대한 새로운 평가들이 많아서 흥미로웠다. 

특히 동생 영창대군을 죽이고 어머니를 유폐시킨 폭군으로 알려진 광해군에 대한 평가는 아주 새롭다. 선조가 청나라 침입으로 무력하게 도망 다니고 있을 때 전국을 돌면서 백성들을 달랬고 임금이 되어 백성 위주의 대동법도 실시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청으로부터의 자주권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  

<토정비결>의 저자로만 알려진 이지함이 양반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백성들을 위해 장사를 하고, 국가가 나서서 해외 통상을 통해 부를 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 박제가는 이런 이지함의 영향을 받은 실학자이고. 김정호의 대동여지도가 일제의 역사 왜곡에 의해 박물관 지하실에서 묻혀질 뻔했다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얼마나 화가 나고 안타까웠는지 모른다. 아이들도 이런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역사를 바로 아는 게 왜 중요한지 깨달을 것 같다. 

기록된 역사를 지식이 아닌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재평가하고 올바른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한 게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책이 두꺼워서 좀 부담스러울 수도 있지만 깔끔한 편집과 주제별로 엮은 이야기, 다양한 사진 덕분에 6학년 정도면 충분히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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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12 22: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소나무집 2009-08-14 13:26   좋아요 0 | URL
넘 훌륭해요.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