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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우주를 보여준 날 ㅣ 크레용 그림책 34
에바 에릭손 그림, 울프 스타르크 글, 사과나무 옮김 / 크레용하우스 / 200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아빠가 일찍 들어오신 날은 모든 게 낯설다. 밥을 먹을 때도, 공부를 할 때도 자꾸 신경이 쓰인다. 한 달에 일주일은 출장을 가시는 우리 아빠, 출장 안 가실 땐 언제 나가고 언제 들어오지 알 수가 없다. 아빠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은 겨우 주말밖에 없다. 같이 살고 있지만 아빠가 보고 싶은 날이 정말 많다. 아빠가 회사에 안 갔으면 좋겠다.
그런데 정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아빠가 일주일 동안 회사에 안 간다고 했다. 방학인데 못 놀아줘서 함께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는 것이다. 엄마랑 나랑 동생이랑 아빠랑 정말 오랜만에 신이 났다. 우리 가족이 도착한 곳은 무주에 있는 덕유산이었다. 깊은 산속에 있는 통나무집에서 잠을 자기로 했다. 산속에는 눈이 많이 쌓여 있어서 아주 춥게 느껴졌다. 사람이라곤 우리 가족밖에 없어서 더 추운 것 같았다.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아빠가 해서 엄마가 정말 좋아했다. 음식 찌꺼기를 버리러 나가는 아빠를 따라 나갔다. 겨울 산에는 먹이가 많지 않기 때문에 음식 찌꺼기를 뿌려놓으면 새나 동물들이 와서 먹는다고 했다.어두운 숲속엔 통나무집에서 새어나오는 불빛과 하늘의 별빛밖에 없어서 조금 무서웠다. 나는 아빠 손을 꼭 잡고 아빠 곁에 바짝 붙어 섰다. 그러자 아빠가 꼭 안아주며 말했다.
"하늘에 별이 참 많지? 별들은 이 세상의 사람보다, 아니 모래알보다도 더 많단다. 저 별들이 있는 우주는 아주아주 멀고 넓단다. 너랑 아빠도 이 우주의 한 부분이지."
"나랑 아빠도 우주라고요.?"
"그럼, 우주는 이 세상 전체란다. 이 숲에 있는 나무랑 돌멩이, 고드름까지도 다 포함하지. 이들 모두가 우주를 이루는 거야."
아빠는 조금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특히 우리 인간은 우주 속에 아주 작은 부분이라는 말이 그랬다. 사실은 내가 우주라는 말도 조금 어려웠다. 확실한 건 집 근처에서 본 하늘의 별보다 산속에서 본 하늘의 별이 무지무지 더 많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아빠 품이 이렇게 따뜻하다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되었다.
아빠랑 함께 본 밤하늘은 정말 아름다웠다. 아빠가 들려준 이야기 가운데 별자리 신화도 재미있었다. 특히 페르세우스가 고래를 죽이고 안드로메다 공주를 구한 이야기는 하늘의 별을 볼 때마다 생각날 것 같다. 아빠는 내년엔 소백산 천문대에 가서 더 많은 별과 더 큰 우주를 보여주겠다고 약속했다.
통나무집에서 엄마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빠와 나는 무슨 비밀을 들키기라도 한 듯 동시에 몸을 움츠렸다. 나는 아빠의 손을 꼭 잡고 뛰어갔다. 이젠 더이상 아빠가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