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학 온 종민이의 친구 만들기

짜장 짬뽕 탕수육 ㅣ 나의 학급문고 3
김영주 지음, 고경숙 그림 / 재미마주 / 1999년 7월

시골에서 살다 도시로 전학 간 종민이는 학교에 가도 이야기할 친구가 없습니다. 혼자 덩그렇게 자리만 지키고 있지요. 그런데 사건은 화장실에서 벌어졌습니다. 비어 있는 변기 앞에 섰는데 갑자기 덩치 큰 아이가 달려오더니 '왕거지'를 외칩니다. 아이들은 그 아이가 정한 왕 자리에 줄을 섭니다. 비어 있는 변기가 많지만 아무도 그 자리에는 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거지 자리이기 때문이지요. 얼떨결에 거지가 된 종민이는 눈물이 납니다. 새 학교에서의 생활이 정말 힘듭니다.

중국 요리집을 하는 종민이는 엄마 아빠가 맛있게 만들어주신 짜장밥을 도시락으로 싸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덩치 큰 아이는 종민이를 놀립니다. 거지라서 짜장을 커피병에 싸왔다고요. 이래저래 화가 치밀지만 주먹만 부르르 떨 뿐입니다. 먼저 다니던 학교로 돌아가고 싶어집니다.  옛 선생님이랑 친구 얼굴이 떠오릅니다.

여러 번 화장실에서 당한 종민이는 마침내 좋은 생각을 해냅니다. 화장실에서 '왕거지'를 외치고 줄을 서는 아이들 뒤에서 '짜장 짬뽕 탕수육'을 외치고는 제일 비싼 탕수육 자리에 섭니다. 아이들이 어리둥해하다가 어떤 게 더 좋은 거냐고 묻네요. 덩치 큰 아이가 아무리 '왕거지'를 외쳐도 아이들의 관심은 '짜장 짬뽕 탕수육'에만 있습니다. 덩치 큰 아이마저 작은 소리로 짜장이 좋다며 줄을 설 때는 누구라도 웃음이 터지고 맙니다.

왕을 선택하지 않으면 기분 나쁜 '왕거지' 놀이를 어느 것을 선택해도 기분 좋은 놀이로 바꾼 종민이가 대견스럽습니다.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재잘거리고 있는 종민이의 얼굴이 행복해 보입니다. 아마도 종민이는 그날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간 모양입니다. 반 아이들이 장미 반점에서 짜장면을 먹는 그림으로 마지막을 장식했거든요.

아이들의 교실에서 일어나는 유쾌한 이야기입니다. 사실 엄마들은 잘 모르는 이야기이도 하지요. 학교 선생님인 작가의 경험을 작품으로 썼다는군요.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 노는 선생님의 모습까지 떠오릅니다. 글의 양이 많지 않아서 그림책에서 글책으로 넘어가는 아이들에게 권합니다.

2월 말에 이사 계획이 있는 우리집 아이는 벌써부터 걱정이랍니다. 자기도 아이들이 놀리면 어쩌냐고요. 사실 새로운 환경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가 걱정이 되긴 해요.

잔소리 없는 날은 모든 아이들의 소원

잔소리 없는 날 ㅣ 동화 보물창고 3
A. 노르덴 지음, 정진희 그림, 배정희 옮김 / 보물창고 / 2004년 10월

방학을 하고 나니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더 많이 하는 것 같다. 잔소리하지 말자고 꾹 참다가도 한두 시간을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는 걸 볼라치면 기어이 참았던 잔소리가 나오고 만다. "세수하고 양치질해야지."  "하루 종일 내복 차림으로 있을 거니?" " 이불 속에서 좀 나와라. " "책 읽었으면 독서록 좀 쓰지?" 등등 나의 잔소리는 끝없이 이어진다.

잔소리를 하는 나도 지겹고 듣는 아이도 지겹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요즘처럼 지내다간 우리 아이도 조만간 푸셀처럼 잔소리 없는 날을 선언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우리 아이는 신이 나서 펄쩍펄쩍 뛰겠지? 하지만 얼마나 갈까? 내일이라도 하루쯤 잔소리 없는 날을 정해 보아야겠다. 과연 아이가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궁금하다.

우리 아이에게 물으니 가장 듣기 싫은 잔소리는 공부하기와  동생이랑 싸우지 말기란다. 그리고 잔소리 없는 날이 온다면 공부도 안 하고 놀다가 실컷 어지르고 여행을 가고 싶단다. 내가 그렇게 공부하라는 말을 많이 한 것 같지도 않구만 아이는 그렇게 느낀 모양이다. 그런데 2학년짜리가 여행은 어디로 가려나 그래!

푸셀은 잔소리 없는 날 자두잼 실컷 퍼 먹기, 선생님에게 거짓말하고 수업 빼먹기, 비싼 오디오 사려고 시도하기, 술주정뱅이 아저씨 데려오기, 어두운 밤에 공원에서 텐트 치고 지내기 등을 한다. 한 가지 행동을 할 때마다 부모님을 의식하고 점점 더 큰 걱정거리를 만들어주려고 한다.

하지만 어른의 간섭이나 잔소리가 없으면 정말 좋을 줄 알았던 푸셀은 아이들이 비싼 물건을 사려면 어른의 허락을 받아야 하고,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알콜 중독자가 존재한다든가 캄캄한 밤에는 폭력이나 범죄가 도사리고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하나하나 알아간다.

푸셀을 공원으로 보내놓고 아이의 뒤를 따라가는 아빠의 모습을 보고는 안심이 되었다. "왜 여기 있냐"는 푸셀의 말에 "너를 지켜주려고... 엄마 아빠는 너희들이 여기서 자는 게 위험하다고 생각했거든." 이런 아빠의 대답과 함께 아빠 품에 안기는 푸셀은 잔소리가 왜 필요한지 깨닫는다.

빨리 커서 뭐든지 혼자서 하고 싶은 우리 딸, 하지만 조금만 기다려다오. 아직은 엄마의 잔소리가 필요할 것 같구나!

미생물들이 들려주는 발효 음식 이야기

썩었다고? 아냐 아냐! ㅣ 과학과 친해지는 책 2
벼릿줄 지음, 조위라 그림 / 창비 / 2006년 12월

오늘 아침 주요 메뉴는 청국장이었다. 시큼한 김치를 썰어넣고 걸죽하게 끓인 청국장에 아이나 어른이나 밥을 비벼 먹었다. 특히 딸아이는 찌개가 맛있다며 밥을 더 먹기까지했다. 어떤 집에선 먹어라 먹어라 해도 먹지 않는 음식들, 하지만 몸에는 이로운 김치나 된장, 젓갈 같은 음식들을 잘 먹어주는 아이들이 정말 고맙다. 오늘 아침 밥상에서 나누는 대화는 좀더 특별했다. 이 책을 읽은 덕분에 청국장과 김치에 들어 있는 미생물 이름을 되새겨가며 밥을 먹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우리가 별 생각없이 먹었던 김치나 된장, 젓갈에 살고 있는 미생물들이 다 소개되어 있다. 그냥 뭉뚱그려 발효식품이라고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각각의 이름이 다 있었다. 볏짚에서 살던 미생물 바실루스 서브틸리스는 된장과 청국장 발효균, 김치의 시큼하면서도 시원한 맛을 내는 류코노스토크, 국산 천일염으로 간을 한 강경 새우젓 발효 세균인 페디오쿠스, 함경도 사람들이 만들어 먹던 가자미식해 발효 세균인 스트렙토코쿠스, 포천 막걸리의 알콜 발효 미생물인 사카로미케스, 초두루미에서 식초를 만드는 아세토박터 등 이름도 참 어렵다.

전통 음식은 거의 다 집에서 해 먹던 농촌에서 자란 내게 이 책은  낯설지가 않다. 볏짚을 가져다 푹 익힌 콩과 섞어서 안방 아랫목에 놓아두고 며칠이 지나면 지독한 냄새 때문에 도망 다니곤 했던 기억, 부뚜막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던 예쁜 항아리가 바로 초두루미였다는 사실, 명절 때마다 큰 시루에 밥을 쪄서 누룩이랑 섞어 술을 앉힐 때 옆에서 집어 먹던 고슬고슬한 밥. 낯설다면 가자미식해 정도. 하지만 남편이 가자미식해를 좋아하는 바람에 강원도가 고향인 지인으로부터 해마다 주문해서 먹고 있던 터라 정말 반갑기 그지없는 책이었다.

발효 음식은 몸 안에 있는 나쁜 독을 빼주고 새로운 기운이 솟게 해준다. 전국에 있는 발효 음식들을 모아 식당을 차린 주인 아저씨도 발효 음식 덕분에 건강을 회복한 경우다. 아저씨네 식당에 모인 미생물들이 소곤소곤 이야기를 들려준다. 전국에서 모인 덕분에 각 지방의 구수한 사투리도 맛볼 수 있다. 미생물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이 이로운 점을 들려주고 아이들로부터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해 서럽다고 푸념을 한다. 귀엽고 익살스런 캐릭터의 미생물들이 늘어놓는 이야기가 술술술 재미있게 읽힌다. 실제 미생물 사진도 실려 있어 서로 비교해 볼 수도 있다.

한 발짝 더 코너에서는 각각의 음식이 언제, 어디서 처음 만들어졌는지, 왜 몸에 좋은지 알기 쉽게 설명해 주고 있다. 마지막 장에서는 플라스틱 그릇에 밀려 사라져가는 옹기 이야기를 실어 옹기 그릇의 좋은 점까지 알려주는 친절함을 베풀고 있다. 제대로 만든 옹기에 담긴 발효 음식들은 정말 행복할 것 같다.

책을 읽은 딸아이가 자기도 된장찌개를 해보고 싶다고 하는 바람에 우리집이 한바탕 요리 교실이 되기도 했다. 된장이나 김치를 좋아하는 3,4학년 정도 아이부터 읽을 수 있다. 발효 음식을 싫어하는 아이라도 이 책을 읽고 나면 청국장 찌개가 먹고 싶다고 할 것 같다.

요리 팁 하나, 청국장을 끓일 때 신김치를 썰어 넣고 된장과 청국장을 반반 섞으면 냄새가 별로 안 난답니다.

우리 딸은 승준이가 밉대요

젓가락 행진곡 ㅣ 나의 학급문고 9
전방하 지음, 이소현 그림 / 재미마주 / 2007년 1월

우리 딸아이는 책을 다 보고 난 후에 승준이가 너무 밉다고 했다. 그래도 현정이의 마음이 참 예쁘지 않냐고 했더니 자기 같으면 끝까지 승준이에게 피아노를 치지 못하게 했을 거란다. 뭐든지 다 잘하는 승준이가 한 가지쯤은 못해도 될 텐데 피아노까지 욕심을 부리는 게 싫다고 했다. 너무 솔직한 대답에 약간은 당황스러웠다. 작가의 의도는 그게 아니었을 텐데 아이는 한참 동안이나 승준이에 대한 분을 삭이지 못해서 씩씩거렸다. 아마 현정이처럼 은연중 누군가와 비교당하고 그래서 자존심도 상했던 기억이 되살아났던 건 아닐까?

표지 그림,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두 아이의 모습이 참 다정하다. 종알종알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 걸까? "진짜 피아노를 쳐 보니까 어때? " "피아노에서 나오는 소리가 신기해." 이런 말을 주고받았을까? 아이들의 밝은 표정으로 보아 같이 피아노를 쳐도 불협화음은 없을 것 같다.

한 동네에 승준이 같은 아이들 하나씩은 꼭 있다. 뭐든지 잘해서 늘 비교당하는 현정이는 승준이가 밉다. 다행스럽게도 현정이네 집엔 피아노가 있고, 피아노 실력으로 승준이를 꺽어버릴 수 있어 신이 나기도 한다. 집안 형편이 어려운 승준이 엄마가 현정이네 피아노를 같이 칠 수 없느냐고 부탁하지만 엄마는 거절한다. 이때부터 현정이의 고민은 시작된다. 종이 건반을 베개에 붙여놓고 억척스럽게 피아노 연습을 하는 승준이를 바라보며 뭔가 답답함을 느낀다.

피아노와 승준이를 볼 때마다 가슴이 답답하던 현정이는 젓가락 행진곡을 치다가 울분을 터뜨린다. 젓가락 행진곡은 원래 둘이서 치는 연탄곡이기 때문에 혼자 치면 재미가 없다. 승준이에 대한 마음을 알아챈 엄마가 승준이를 불러와 같이 피아노 앞에 앉는다.  처음 어색했던 분위기는 현정이가 피아노 치는 법을 가르쳐줌으로써 사라지고 만다. 젓가락 행진곡의 리듬을 타고 현정이의 답답하고 우울했던 기분은 하늘 높이 날아가버린다.

어른들 같았다면 끝까지 경쟁심 때문에 피아노 앞에 친구를 앉히지 못했을 것 같은데 어른보다 나은 아이들의 모습이다. 이렇게 경쟁을 하면서 아이들은 더 클 수 있는지도 모른다.

아이들 마음속에 있는 경쟁 심리와 그에 따른 갈등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특히 늘 승준이에게 뒤지는 현정이의 심리를 아주 세심하게 묘사하고 있다. 반면 승준이의 마음은 엄마들의 말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현정이를 바라보는 승준이의 마음을 직접 들을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약간 아쉽다. 

 현정이 엄마가 대단해 보인다. 나라면 내 아이보다 뭐든지 뛰어난 승준이에게 학습대백과 사전이나 전과를 선뜻 빌려주지 못했을 것 같다. 아이들을 경쟁의 바다로 밀어넣는 건 엄마이기가 쉽다. 잘하는 아이와 비교함으로써 늘 기분이 상하게 하고 어쩌면 친구 관계까지 멀어지게 만들지는 않았나 반성해 본다.

책이 얇고 그림이 많아서 학교 입학을 앞둔 아이들부터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 엄마와 아이들이 함께 읽고 아이들에게 진짜 중요한 게 무엇인지, 엄마로서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이야기를 나눈다면 좋겠다.

만화로 읽는 북한 사람들의 평범한 생활 이야기

평양프로젝트 - 얼렁뚱땅 오공식의 만화 북한기행
오영진 지음 / 창비 / 2006년 12월

이 책을 우리집에서 제일 먼저 신나게 읽은 사람은 아이들 아빠다. 소파에 누워 킬킬대고 있어서 쳐다보면 <평양 프로젝트>를 붙잡고 있었다. 그 다음은 아이들이었다. 만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볼까 말까 하다가 세 식구의 웃음의 정체가 궁금해서 책을 손에 들고 말았다.

북한은 우리들에게 정말 가깝고도 먼 나라다. 거리상으로야 가깝지만 마음대로 가 볼 수가 없으니 자꾸만 마음이 멀어져가는 것 같다. 북한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는 다 접어두기로 하자. 우리는 평범한 북한 사람들의 생활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우리가 아는 것은 고작 언론에서 전해주는 것들뿐이다. 우리는 그것들이 진짜인지 아닌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고 북한에 대해 다 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우리가 알 수 없는 북한 사람들의 평범한 생활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 편 한 편의 이야기는 그동안 내가 얼마나 북한에 대해 오해를 품고 살았는지 깨우쳐주었다. 작가가 직접 일 년 반 동안 북한에서 살면서 취재하고 느낀 것들을 만화로 풀어놓았다. '얼렁뚱땅 오공식의 북한 기행'이라는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는다. 어딘가 부족해 보이는 오공식 씨의 눈을 통해 바라보는 북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재미있다.

북한 사람들이 미제는 싫어하지만 한국에서 만든 것은 좋아하고 그래서 짝퉁이 나돌기도 한단다. 그리고 서울말이나 '또 만났네' 같은 서울 노래를 열심히 배우기도 한단다. 아이들의 유치원과  학교 생활은 우리와 많이 달라 보인다. 선생님에게 봉투(?)를 갖다 주며 방과 후에 동원되는 활동대신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부탁하는 엄마가 북한에도 있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다. 치맛바람은 사회주의도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북한 남녀의 연애관이나 인기 신랑감 신부감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다. 예전엔 군인이나 당간부가 일등이었지만 지금은 외국 돈이 많거나 장사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니 시대의 변화가 느껴진다. 여성들의 옷차림도 유행을 따르고, 나이키나 아디다스 같은 외국 브랜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있단다.

북한 사람들의 생활 중 가장 서글펐던 건 돈을 벌기 위해 장에 나가서 가루 비누를 파는 가장이 그나마도 8:3으로 적을 둔 회사와 나눠야 한다는 이야기는 북한의 경제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게 해준다. 또 분기별로 학교에 토끼 가죽을 내지 못해서 결석을 한 학생의 이야기나 키가 크기 위해 방학 동안 아무도 없는 운동장에 나와 철봉에 매달려 있는 아이의 이야기는 마음을 짠하게 했다.

만화로 읽는 북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정말 재미있다.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긴다. 어떤 건 한 편의 개그를 보는 듯한 생각도 들었다. 아니 이 만화를 대본으로 개그나 드라마를 만들어도 될 것 같다. 이 책은 성인 대상으로 나왔지만 학생편이 나와서 아이들이 북한에 대해 좀더 친근하게 받아들이고 통일이 되었을 때 <평양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