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루북 세트 - 전4권
던칸 크로스비 지음, 히도 반 헤네흐텐 그림, 서남희 옮김 / 보림큐비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어린 아가들에게 책은 하나의 놀잇감일 뿐입니다. 책에서 지식이나 그 외의 것들을 얻는다는 생각은 좀더 자란 후의 일이지요. 이번 보림에서 나온 아코디언 놀이북은 어린 아가들의 마음을 딱 알아 준비한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단 책의 형태가 다릅니다. 둘둘 말려진 상태의 책이어서 한 장 한 장 펼치면서 볼 수 있습니다. 다 펼쳐놓으면 꼭 병풍 모양이 됩니다. 시리즈로 나온 네 권을 모두 이어 붙여놓으면 아가들이 그 안에 들어가 놀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집니다. 자기들만의 작은 공간 만들기를 좋아하는 아가들에게 딱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튼튼하고 안전합니다. 아가들이 끌고 다니면서 노는 책들은 금방 찢어지기 십상입니다. 하지만 이 책은 하드북은 아니지만 튼튼하게 코팅되어 있어 일부러 찢지 않으면 동생에게 물려주면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 아가들의 안전까지 생각해 책의 모서리 부분을 둥글게 만들었습니다.

아무리 모양이 좋은 책이라도 내용이 재미없으면 안 되겠죠? 책을 한 번 펼칠 때마다 동물의 다양한 변신이 시작됩니다. 우리 아이들이 좋아하는 순서대로 책의 내용을 살펴볼게요.

<고양이일까, 아닐까>에서는 장난기 많은 고양이 귀는 물갈퀴를 가진 오리 주둥이로, 오리 주둥이는 따라쟁이 앵무새의 한쪽 날개로, 앵무새의 날개는 갑작스럽게 오징어의 몸통으로 변신, 제일 마지막엔 낯선 모습의 새가 나오는데 부리가 크고 긴 투칸이라네요. 오징어로 변신할 때 아이들은 정말 의외였나 봅니다. 소리 지르고 야단났었답니다.

<개구리일까, 아닐까>에서는 놀기 좋아하는 꼬마 개구리의 뒷다리가가 등장하더니 이내 등껍질이 우툴두툴한 거북이로 변신, 거북이는 올록볼록 애벌레가 되었군요. 애벌레는 불을 뿜는 용이 되었는데 하나도 무섭지 않아요. 마지막엔 웃고 있는 거대한 악어가 되었어요.

<생쥐일까, 아닐까>에서는 치즈를 들고 있는 생쥐의 주둥이가  하얀 얼음 나라에 사는 부리가 엄청 긴 펭귄으로 짜잔 하고 나타납니다. 저 긴 부리가 뭐가 될까 궁금했는데 원숭이의 꼬리가 되었군요. 곧이어지는 건 길고 긴 뱀이고요, 마지막에 등장하는 건 아이들이 좋아하는 어마어마하게 긴 코를 가진 코끼리랍니다.

<달팽이일가, 아닐까>에서는 등에 집을 지고 다니는 달팽이가 어딘가로 가고 있습니다.달팽이의 꼬리가 뭐가 될지 궁금한데 얼른 넘기니까 잠자리가 나오네요. 여기서 우리 가족의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날개가 잠자리가 아니라 꼭 나비 같았거든요. 그래서 날개를 우리나라 고추잠자리처럼 그려서 붙이기까지 했지요. 어쨌거나 말 많은 잠자리의 꽁무니는 생쥐의 꼬리가 되었다가 길고 긴 지렁이가 됩니다. 그럼 마지막엔 뭐가 되었을까요? 첫장에서 괜히 등장한 줄 알았던 파리가 힌트였군요. 바로 파리를 제일 좋아하는 카멜레온의 긴 혀가 첫장의 파리를 향해 낼름거리고 있거든요. 

책을 펼칠 때마다 뭐가 나올지 아이들은 기대가 정말 큽니다. 맨 처음 책을 본 우리 아이들도 이것저것 상상을 해보았지만 쉽게 맞출 수가 없었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동물이 나오는 데서 아이들은 희열을 느끼는 것 같았어요. 이렇게 놀다 보면 아이들의 상상력도 쑥쑥 늘 것 같습니다.

다섯 살 이하의 아가들에게 적극 권하고 싶은 놀이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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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있는 마을 - 아름다운 책의 도시 파주 책마을을 찾아서, 페달을 밟아라 9
김청연 지음, 고정순 그림 / 파란자전거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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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영국의 헌책방 마을 헤이온와이에 대한 책을 읽고 우리나라에도 그런 곳이 있다면 좋을 거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한 사람이 나뿐은 아니었던 듯하다. 그러고 얼마 안 있어 우리나라에도 정말 그런 도시가 생겨났으니 말이다.

이젠 파주 하면 출판 도시가 떠오른다. 이 마을에는 대부분 책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들어와 살고 있다. 나는 파주에서 여는 책잔치에 두 번이나 다녀왔다. 야트막한 산 아래 유명 건축가들의 손을 거친 건물에는 익숙한 이름의 출판사가 하나씩 입주해 아름다운 꿈과 지식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처음 갔던 해에는 공사도 다 끝나지 않아서 불편한 점이 많았지만 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정겨웠고 애정을 듬뿍 주고 싶었다.

우리집에선 책을 읽고 나면 가장 많이 하는 독후 활동이 책 만들기이다. 엄마인 내가 출판사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지라 아이들과 책 만들기는 언제나 신나고 재미있는 놀이로 할 수 있었다. 처음 작가가 원고를 쓰듯 글을 쓰고, 그림 작가처럼 그림을 그리고, 인쇄하는 과정 대신 바로 제본해서 만드는 책 만들기였지만 아이들은 항상 즐거워했다. 표지를 만들고 차례나 판권, 바코드까지 꼼꼼하게 있을 건 다 있는 자기만의 책을 들고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나도 흐뭇해지곤 했다.

이 책을 만나고는 정말 반가웠다. 책을 좋아하는 엄마와 아이라면 한 번쯤 궁금해했을 책 만드는 과정과 그 책이 서점 판매대 위에 놓이기까지의 과정이 한 편의 동화 속에 다 들어 있기 때문이다. 책의 역사에서 인쇄와 제본, 책에 관한 것들이 딱 초등 저학년 아이들의 눈높이다. 책을 읽는 동안 내가 다시 편집자로 돌아가 책을 쓰고 있는 착각마저 들었다. 이런 책이라면 나도 자신 있게 쓸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에...

편집자라고 하면 흔히 교정이나 보는 줄로 아는 분들이 많은데 사실은 일인 10역으로도 모자란다. 원고 기획에서 글작가와 그림 작가 섭외, 글쓰기, 교정, 교열, 필림 교정, 인쇄와 제본 과정 관리까지 책이 나올 때까지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예전엔 홍보 업무까지 했다. 혹여 잘못된 내용이 들어간 책이 나오기라도 하면 몇천 권의 책이 나오는 날 바로 폐휴지가 되는 아픔을 겪는 이도 바로 편집자들이다.

꼭 파주 출판 도시에 가 보라고 권하고 싶다. 기회가 된다면 아이들에게 책 만드는 과정을 보여줄 수도 있고, 책 만드는 아름다운 사람들도 만나기도 하고, 책향기를 실컷 맡을 수 있는 기회도 될 테니까 말이다. 혹시 아이들이 자라 멋진 책을 만드는 사람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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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09 2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miony 2007-09-10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일을 하시던 분이군요. 지금은 아이들과 멋진 일을 하고 계시고^^

소나무집 2007-09-13 09:24   좋아요 0 | URL
저는 정말 책 만드는 일을 좋아했답니다.
 
구덩이 창비청소년문학 2
루이스 새커 지음, 김영선 옮김 / 창비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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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농사를 짓던 우리집에선 굴을 많이 팠다. 깊이도 꽤 깊어 사다리를 놓아야 들어갈 수 있었고, 아래로 내려가면 양 옆으로 파놓아 생강이나 고구마 같은 걸 저장하는 용도로 사용했다. 그런데 그게 아이들에겐 아주 좋은 놀이 장소였다. 특히 남자 아이들에게는. 어린 시절 나도 오빠를 따라 한두 번 들어가 본 기억이 있다. 하지만 깜깜한데다 뭔가 나올 것 같은 오싹함 때문에 굴 속에 오래 머물러 있기는 싫었다. 그리고 재미있는 건 겨울이면 노루나 살쾡이 같은 동물들이 빠졌다가 밖으로 나오지 못해 굶어 죽는 일이 가끔씩 생기기도 했다. '구덩이'라는 제목을 보는 순간 갑자기 어린 시절의 그 굴이 떠올랐다.

'구덩이'라는 제목에선 뭔가 부정적인 냄새가 난다. 그래서 처음엔 제목을 뭐 이렇게 번역했을까 싶었다. 하지만 책을 읽다 보니 '구덩이'라는 제목이 아주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비밀을 숨겨놓기에는 구멍이나 틈보다는 구덩이가 훨씬 좋을 듯했기 때문이다. 불운하기 짝이 없는 주인공 스탠리가 끊임없이 구덩이를 파야 하는 이유가 황당하기도 하지만 결국 필연적인 운명이었음을 책을 다 읽을 즈음에서야 깨닫게 되었다. 

이게 추리 소설을 읽는 맛일까? 이야기가 중반을 넘어가면서 자꾸만 앞으로 다시 책장을 넘기는 일이 많아졌다. 지독하게도 운이 없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소년원에 들어온 스탠리, 그리고 가족들은 모든 잘못을 이름이 같은 고조할아버지의 탓으로 돌린다. 고조할아버지가 약속을 안 지켜 집시 할멈 제로니의 저주를 받은 탓에 대대손손  불운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고조할아버지가 못 지킨 약속을 스탠리가 지켜낼 수 있을까?

하늘에서 떨어진 운동화 한 켤레가 데려다준 '초록 호수 캠프'. 소년원의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게 예쁜 이름이다. 결말이 다시 밝은 느낌의 초록 호수로 돌아올 거라는 암시가 아닌가 싶다. 갑자기 등장하는 백 년 전 흑인 양파장수 쌤과 백인 여선생 케이트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는 또 어떤 사연이랑 맞물리는 건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왜 하필이면 양파 장수인지...

힘들게 구덩이를 파며 나누는 제로와의 눈물겨운 우정이 집시 할멈과 관계 있다는 것을 캠프를 탈출해서 엄지손가락 산을 다 오를 때쯤에야 알아채고는 손바닥을 쳤다. 케이트 바로우가 사랑한 사람이 양파 장수일 수밖에 없는 사연은 또 얼마나 교묘한지 모른다. 고조할아버지의 전재산이 든 가방을 훔쳐간 이가 케이트 바로우이고, 그 가방이 초록 호수 마을에 묻혀버린 사연을 알기까지 한순간도 긴장을 멈출 수가 없었다. 스탠리가 죄없이 끌려와 이유도 모른 채 구덩이를 파야 하는 까닭. 이 모든 것에 대한 궁금증은 책장을 덮을 때쯤에야 풀리니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중간에 도저히 멈출 수가 없다.

4대에 걸쳐 불운에 불운을 거듭하던 스탠리의 가족은 모든 매듭을 푼 스탠리 덕분에 비로소 행복해진다. 크게 세 덩어리가 하나로 연결된 이야기지만 그 중 나는 스탠리와 제로니의 우정 이야기에 흐뭇했고, 흑인 양파 장수와 백인 여선생의 사랑 이야기에는 덩달아 마음이 설레이기도 했다.

결국 구덩이에는 소중한 것들이 들어 있었다. 우정, 희망과 행복. 그런데 그런 것들은 내가 직접 나서서 애쓰지 않으면 결코 얻을 수 없는 것들이란 사실도 아이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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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맘 2007-09-05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에 모든 얘기가 함축되어 있군요.
음~. 오늘도 좋은 책 소개받고 갑니다. ^^.

소나무집 2007-09-06 10:06   좋아요 0 | URL
어른들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네요.

비로그인 2007-09-05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추천 ^^

소나무집 2007-09-06 10:06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하늘바람 2007-09-06 0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창비 새책이인가요?

소나무집 2007-09-06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추리 소설인데 재미있어요.

프레이야 2007-09-06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창비 청소년 추리소설이군요, 재미나 보여요^^

소나무집 2007-09-20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편도 읽더니 재미있다네요.
 
가면 쓰고 어흥 세계는 내 친구 1
국립한경대학교 디자인학부 기획, 유승하 그림 / 보림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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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을 받아들고는 아이 둘이서 싸움이 벌어졌다. 대상 연령이 유아라서 3학년인 딸아이는 거들떠보지도 않을 줄 알았다. 하지만 서로 먼저 써 보겠다고 야단을 피우는 아이들을 보며 어쨌거나 성공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놀면서 세계 문화를 배울 수 있도록 한 기획 의도가 돋인다.

세계는 내 친구 시리즈 중 마지막인 이번 책에서는 아이들에게 친근한 동물이 주인공이다. 책 전체에 구멍이 뚫려 있어 펼쳐서 쓰면 바로 가면이 된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 바로 이 대목이 아닐까 싶다. 스스로 가면을 써 보고 인사도 하고 동물 소리도 흉내내 볼 수 있어서 아이들이 더 좋아하는 것 같다. 

'니하오!' 중국의 국보인 판다는 '만만텅텅' 걷는 모습도 귀엽다. 옆에 있으면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생길 정도로 귀여운 모습이다. '봉주르!' 프랑스 사람들은 수탉이 어둠을 몰아내고 새벽을 알린다고 믿어 교회의 뽀족탑 위에 수탉 모양의 풍향계를 세웠다고 한다. 책을 펼치면 에펠탑 배경 옆으로 수탉의 벼슬이 튀어올라 아이들을 깜짝 놀라게 만든다.

'나마스떼!' 네팔인들은 가족이 죽으면 황소가 천국으로 데려간다고 믿어 성스러운 동물로 여겼다고 한다. 죽음을 인도하는 소라서일까 황소 얼굴도 슬퍼 보이고 '바아!' 하는 울음 소리 또한 울적하게 들린다.

'앗살람 알라이쿰!' 이집트를 지켜주는 수호신이 코브라는 사실이 놀랍다. 이집트 사람들은 적이 파라오를 공격하면 왕관에 달린 코브라가 독을 쏘아 파라오를 지켜준다고 믿었다고 한다. 난 적보다 코브라가 더 무서웠을 것 같은데...

'사왓디!' 타이 사람들은 흰 코끼리가 신성한 힘을 지니고 있다고 믿어 왕이 되려는 자는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했단다. '쁘렌쁘렌!' 흰 코끼리의 울음 소리가 귀여운지 아이들이 자꾸만 흉내를 낸다. 책을 펼치면 코끼리 코와 상아가 튀어나와 정말 코끼리랑 놀고 있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알로!' 남태평양에 있는 작은 섬나라 바누아투는 처음 들어보는 나라 이름이다. 어디 있나 궁금해서 찾아보니 파퓨아뉴기니 아래쪽에 있는 섬이다.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 자꾸 지도를 찾게 된다. 책 한 귀퉁이에 지도를 그려 표시해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이곳 사람들은 힘과 부유함을 상징하는 멧돼지의 송곳니를 몸에 지니고 다닌다고 한다. '츄츠츄츠' 소리를 내는 멧돼지는 어째 하나도 안 무서울 것 같다.

'야사스!' 그리스의 올빼미는 전쟁과 지혜의 여신 아테나를 상징하는 새란다. '쿠쿠!' 이거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인데. 그 밥솥 회사에서 올빼미의 울음 소리를 빌려왔나 보다. '하이!' 추운 핀란드에서는 순록이 꼭 필요한 동물이다. 썰매도 끌어주고 고기랑 우유랑 가죽도 주니까. 또 '로우크 로우크!' 힘차게 소리내며 산타의 썰매 끄는 일도 빼놓을 수 없는 순록의 일이다. 책을 펼치면 순록의 뿔이 화려하게 튀어나온다.

아참, 표지에 있는 우리나라의 호랑이를 빼놓을 뻔했다. 우리들이 좋아하는 호랑이는 새해를 맞는 기쁨과 복된 앞날에 대한 바람을 담고 있다.

유아에서 초등 저학년까지 다 가지고 놀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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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타고 세계의 걸작 그림책 지크 71
아라이 료지 지음, 김난주 옮김 / 보림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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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어른도 아이들도 다 바쁜 세상입니다. 조금 여유가 생겨 시간이 나면 뭔가로 꼭 채워보려고 하지요. 그러다 보니 바빠야 제대로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바쁜 어른들은 자신만 그렇게 사는 게 아니라 아이들까지도 바쁘게 만들어놓아야 만족을 합니다.

걸어가기보다는 차를 타고, 차보다는 기차나 비행기를 타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비행기를 타면 우리는 볼 수 없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하늘로 붕 떠올라 위에서 아래만 어렴풋이 내려다볼 수 있지요. 하지만 걸어가면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걷다가 꽃이나 나무를 만나기도 하고, 냇물이나 강을 만나기도 하고, 또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천천히 느리게 하는 것이 손해 같지만 손해가 아니라는 걸 우리들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됩니다.

이 그림책에 나오는 한 소년의 이야기는 바쁜 세상 사람들에게 한 번쯤 쉬었다 가기를 권합니다. 소년은 버스를 타고 여행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황량한 사막에 버스 정거장 하나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고 어딜 가려는지 소년의 보따리는 정말 큽니다. 그 속에 무엇이 들어 있을지 살짝 궁금합니다. 책도 몇 권쯤은 들어 있겠죠?

사막의 태양은 뜨거운데 버스가 오질 않네요. 심심한 소년은 라디오를 틀어놓고 룸룸파룸 룸파룸 음악을 들어요. 처음 듣는 신나는 음악이에요. 이 리듬 속에는 여행을 떠나는 이들의 신나는 마음이 들어 있는 같아요. 짐을 잔뜩 실은 트럭이 지나가고, 말을 탄 사람도 지나가고, 자전거를 탄 사람도 지나가고, 많은 사람들이 지나갔지만 버스는 안 옵니다.

캄캄한 밤이 되자 소년은 불평 한마디 없이 버스 정거장에 누워 잠을 잡니다. 밤하늘 가득한 별을 보며 버스가 오는 꿈을 꾸었을까요? 해가 떠오르고 아침이 되자 소년은 룸룸파룸 룸파룸 라디오를 켰어요. 하지만 여전히 버스는 안 오네요. 소년이 버스를 기다리다 그냥 집으로 돌아가는 건 아닐까요? 기다려도 기다려도 버스는 안 오지만 소년은 돌아가지 않습니다. 소년의 얼굴엔 희미한 미소마저 감돌고 있습니다.

드디어, 드디어 기다린 보람이 있어서 버스가 왔군요. 하지만 기차보다도 더 긴 버스는 북적북적 발 디딜 틈이 없네요. 버스는 소년을 사막에 내버려둔 채 휭하니 지나가버렸어요. 얼마나 기다린 버스인데 그냥 지나가버리다니 이젠 어떡하죠? 그쯤이면 실망을 할 만도 한데 소년은 룸룸파룸 룸파룸 기운을 차립니다. 버스는 소년의 것이 아니었던가 봅니다. 탈 수 없는 버스 대신 소년은 걸어가기로 합니다. 마음을 바꾸면 걸어서도 여행은 할 수 있거든요. 타박타박 걸어서 멀리멀리 갈 수 있거든요.

마음을 비우고 걸어가는 소년의 여유가 책장을 넘기는 이들을 행복하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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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9-02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쁜 일상에 맞추어 점점 바빠지는 마음에 여유로운 바람을 불어주는 책인 것 같군요.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조금 편해지는 것 같습니다.^^

소나무집 2007-09-04 0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유와 느림의 미학을 가르쳐주는 책인 것 같아요.